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요15:1-12, 고후5:15-21
장욱조 씨는 작곡자이자 가수였습니다. ‘고목나무’라는 노래를 불러 알려졌고, 수많은 히트곡과 1,000여곡을 작곡했습니다. 그러나 음반제작을 하다가 실패하여 하루아침에 빚더미에 앉게 되었습니다. 집마저 잃어버리고 가진 것 없이 떠돌아다니는 절망의 때에 아내가 교회로 인도했습니다. 연예인 선교단과 함께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이라는 찬양을 부르다가 은혜를 받았습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눈물을 흘리며 예수를 영접했습니다. 그가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사람이 되어 지은 찬양이 바로 ‘생명나무’입니다. “갈보리 언덕에 주님의 십자가 그 피로 내 죄를 깨끗하게 씻었네 아아 생명의 꽃 피었네 열매 맺혔네 나는 다시 태어났네 그 이름 생명나무라 절망과 고통의 세상길 헤매일 때 예수님 품으로 나를 인도하셨네 아아 생명의 꽃 피었네 열매 맺혔네 나는 다시 태어났네 그 이름 생명나무라 지나온 인생길 부끄러움뿐이지만 주님의 은혜로 감사만이 넘치네 아아 생명의 꽃 피었네 열매 맺혔네 나는 다시 태어났네 그 이름 생명나무라.” 그 후 변화되고 생계를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에도 하나님께서 원하시지 않는 일이기에 술집 무대에 서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마6:33의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는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나아갔습니다. 그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했습니다. 기적과 축복이 임했습니다. 1년 6개월 만에 모든 빚을 갚고, 거처할 장막까지 마련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경험하고 나서 ‘할 수 있다 하신 이는’이라는 찬양을 지었습니다. 이후 그는 신학을 공부하여 목회자가 되어 노래와 간증을 통해 대중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장욱조 목사의 고백입니다. “대중가수로서 부른 ‘고목나무’와 복음가수로서 부른 ‘생명나무’ 두 곡은 제 인생의 주전(B.C)과 주후(A.D)를 상징합니다. 두 나무의 이야기는 주님 오시는 그 날까지 제 입술의 간증이 될 것입니다. 저 같은 죄인에게 ‘할 수 있다 하신 이는’과 같은 곡을 쓰게 하시고 복음을 전하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지난날 저처럼 고목나무와 같은 사람들에게 찬송이 울려 퍼져 그들에게도 생명의 잎 새가 돋아나기를 기도합니다.”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주님 밖에 사는 사람과 예수님을 믿고 그리스도 안에 사는 삶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장욱조 목사처럼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절망 가운데 사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삶을 살게 됩니다.
오늘은 두 본문을 중심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서신서 본문 고후5:17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했습니다. 여기 ‘그리스도 안에’ 라는 말은 원문에 ‘엔 크리스토’(εν χριστω) 인데 사도 바울이 많이 사용하는 말로 바울 서신에 164회나 나타납니다. 이는 사도 바울의 깊은 신앙체험에서 울어 나온 말로, 그리스도와의 신비적인 연합을 의미합니다. 예수께서 아버지와 주님의 하나 됨에 대해서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거한다.’는 말씀과 같이 그리스도와 영적 일체가 된 온전한 그리스도인 역시 ‘내가 주님 안에 거하고, 주님이 내 안에 거한다.’는 같은 고백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복음서 본문에 예수님과 성도의 관계를 포도나무와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로 비유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자들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그 가지가 포도나무에서 잘려지는 순간 그 가지는 말라 죽어 생명을 잃고 맙니다. 따라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살았으나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는 죽은 자인 것입니다. 참 생명이 되신 예수님 안에 거하는 자들에게는 생명이 있고, 생명 되신 예수님과 관계없이 주님을 외면하고 사는 자들에게는 참 생명이 없는 것입니다.
또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했는데, 이 말은 남녀노소, 빈부귀천, 유, 무식, 죄의 경중, 나라 인종 등과 관계없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새로운 생명이 주어지게 되어 새롭게 변화되는 삶이 따르게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베드로, 요한 야고보도 예수님 만나 후 고기 잡는 어부가 주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어 사람들을 하나님께 인도하는 사람 낚는 전도자들이 되었고, 마태도 예수님 만나 세리가 전도자로 변했고, 누가도 의사였지만 복음위해 쓰임 받는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예수 믿는 자들을 박해하는데 앞장서서 훼방했던 바울이 예수님 만난 후 주와 복음을 위해 고난 받는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성경과 기독교 역사를 보면 그처럼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변화된 사람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있습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변화가 따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자들을 하나님이 의롭다 하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며, 사랑과 돌보심을 받고,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받게 하십니다. 썩지 않고 쇠하지 않는 영원한 하늘 기업을 받아 누리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엄청난 축복입니다.
예수님을 만나 변화되기 전에 가정과 사회에서 큰 문제꺼리가 되고,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고통을 주었던 사람이 주님 안에서 변화되어 새사람이 되어 살게 되는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요 능력입니다. 전혀 가치도, 소망도 없던 악하고 패역한 사람이 완전히 새 사람이 되어 아름답고 소중한 사람, 선하고 유익한 사람이 되어 하나님께 귀히 쓰임 받는 의로운 도구로 변화가 됩니다. 서신서 본문을 기록한 바울이 그런 사람이었고, 어거스틴, 김익두, 이기풍 목사도 그런 인물이었습니다.
인도 선교사로 훌륭하게 사역했던 스탠리 존스(E.stanley Jones) 가 쓴 ‘승천한 자들의 노래’라는 선교일화가 있습니다. 그 내용 중에 선교사가 개종자에게 새로운 이름을 지어준 이야기가 매우 감동적입니다. 그 중에 한 개종자는 동네에서 소문난 망나니였습니다. 그런 사람이 예수를 믿은 자체가, 동네 사람들에게 큰 화제꺼리가 되였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그가 예수 믿고 말이 달라지고, 행동이 변화되고, 생활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모든 것이 선하고 아름답게 변화되었습니다. 그가 변화 받은 후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니, 하는 일마다 형통하였습니다. 그래서 스탠리 선교사는 그의 이름을 ‘애프터’(After)라고 지어주었습니다. 그는 예수 믿고 변화된 이후, 커다란 복을 누리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본성은 잘 바뀌지 않습니다. 어느 정도 변화를 꾀하기도 하지만 결국 자기중심으로 살아가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입니다. 그러나 이처럼그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이전과 전혀 다른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됩니다. 이는 세상의 지식이나 지위, 자기 수양으로 새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진정으로 성령으로 거듭나 새 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새로운 신분이 주어집니다.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를 주십니다. 아버지가 되어주십니다. 영원토록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늘 기업의 후사가 됩니다. 우리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2.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자는 주님의 은택을 받으며 살게 됩니다.
복음서 본문 요15:4-5에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했습니다. 주님을 믿지 않고 살았을 때의 삶의 열매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쓸모없는 육의 열매 맺으며 살았습니다. 갈5:19-21에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했습니다. 이런 육의 열매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진노와 심판과 형벌이 따를 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고 그리스도 안에 거하면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육의 열매와 다른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사람이 됩니다. 주님의 은택을 받게 되어 전혀 새로운 열매를 맺으며 사는 행복한 자들이 됩니다. 그런 자들의 열매는 육에 속한 자들의 열매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열매를 맺습니다. 포도나무이신 예수님의 본성과 진액을 공급 받아 *성령의 열매를 맺는 자들이 됩니다. 갈5:22-23에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했습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습니다. (마3:8), *아름다운 열매를 맺습니다.(마7:19), *좋은 열매(눅6:43) *영생에 이르는 열매(요4:36),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롬6:22), *의의 열매(고후9:10), *선한 일의 열매(골1:10), *의의 평강의 열매(히12:11), *긍휼과 선한 열매(약3:17) 등을 맺으며 삽니다. 이런 열매 맺는 자들이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사랑을 받게 됩니다.
그런 아름다운 열매 맺는 자들에게 기도 응답의 은혜를 주십니다. 본문 요15:7에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하셨습니다. 자식이 부모에게 필요한 것을 요청하듯 성도는 당당히 하늘 아버지께 요청할 수 있고, 구한 것을 받게 됩니다.
또한 참 평안을 가지고 살 수 있는 은혜를 주십니다. 예수님은 평강의 왕이십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거하면 주님이 주시는 강 같은 평안이 내 맘에 넘치게 됩니다. 주님께서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하신 것처럼 오늘 환란 풍파 많은 세상에서 두려워 할 수밖에 없고, 근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주님이 주시는 참 평안을 가지고 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항상 기쁨 가운데 살 수 있는 은혜를 주십니다. 주님은 늘 기쁨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본문 요15:11에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하셨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평안과 기쁨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 하셨습니다. 세상이 줄 수도, 빼앗을 수도 없는 기쁨입니다. 세상의 상황은 도저히 기뻐할 상황이 아니어도 주안에 있으면 기뻐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추운 날씨라도, 요즈음처럼 아무리 무더운 날이라도 냉, 난방 장치가 잘 되어 있는 실내에 있으면 쾌적하게 지낼 수 있는 것처럼 주님 안에 거하는 자들은 환경과 관계없이 주님이 주시는 기쁨을 가지고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이 시간 우리에게도 그러한 행복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해와 같이 밝게 살길 바라고 계십니다. 우리가 잘 아는 헬렌 켈러의 집에는 이런 글귀가 써있었다고 합니다. '나에게는 하루도 행복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헬렌 켈러는 3중고의 고통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듣지 못했고, 말하지 못했고, 보지 못했습니다. 이 세 가지 중에 한 가지만 해당되어도 '불행하다'고 비관할 텐데 그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가 예수님을 깊이 알고 주님 안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 속에 주님 안에 은택을 입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도 주님 안에서 은혜와 은택을 받고 행복하게 사시기를 소망합니다.
3.새로운 가치관을 가지고 변화된 삶을 살게 됩니다.
성도가 예수님을 믿고 새사람이 되면 가치관이 변하고, 인생관이 달라집니다. 오늘 두 본문에서 보여주는 내용을 보면
*먼저 주님을 위해 사는 삶을 살게 됩니다.
주님 안에서 변화된 바울은 본문 고후5:15에서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이제 후로는 자신을 위해 살지 아니하고 이 후로는 나를 위해 십자가 지신 예수님 위해 살고, 나의 죄 사함과 구원을 위해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사랑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자가 되기를 소망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를 자랑하고 분쟁하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향해 고전10:31에서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권면했습니다.
*다음에 화목하게 하는 사람으로 살게 됩니다.
본문 고후 5:18-19에 “모든 것이 하나님께 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했습니다. 화목제물이 되신 예수님을 본받아 하나님과의 화목과 교제를 위해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순종의 삶을 살기를 힘씁니다. 이웃과의 화목에 힘쓰며 화평케 하는 자로 살게 됩니다. 당시 고린도 교회는 바울 파, 아볼로 파, 베드로 파, 예수파로 사분오열이 되어 분쟁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런 고린도교회를 향하여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냐?(고전1:13) 너희가 만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하나 되어 화목 하라는 권고의 말씀입니다.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위하여 대신 죽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강권하지 않느냐? 나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를 위해 살 때, 화목하지 못할 것이 어디에 있느냐고 권면한 것입니다. 주님 안에 있는 성도는 평화의 일꾼이 됩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을 전도하여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일에 힘쓰게 됩니다.
*그리고 사랑의 사람으로 살게 됩니다.
주님은 복음서 본문 요15:9-10에서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하셨습니다. 사랑은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새 계명입니다. (요13:34) 요일 4:16에 보면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명령이며 하나님과 함께 사는 비결이기도 합니다.
만일 믿노라 하면서도 우리들이 예수님의 사랑을 외면한다면 그는 제자도 아니고 그리스도인도 아닙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며 살 때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지금 이 세상은 사랑이 점점 메말라 가고 있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더욱 더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들은 언제 어디서나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마땅합니다. 사랑하며 사는 것이 주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자기들만 살겠다고 주님을 버리고,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고, 주님을 배신하는 제자들을 끝까지 믿어 주고, 용서하시고, 기다리며 사랑하셨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그런 사랑으로 사랑하십니다. 그 사랑이 사람을 감동 감화시키고 변화시킵니다.
학창시절 초기에 학교에서 큰 문제를 일으키는 문제아가 있었습니다. 선생님들이 혼내고 타일러도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최후로 당시 교장이었던 조만식 선생이 퇴학 조치를 내릴 단계까지 왔습니다. 조만식 선생은 훌륭한 장로로서, 눈물을 흘리며 학생의 손을 붙잡고 기도해 주었습니다. 교장 선생의 뜨거운 사랑의 눈물이 손등에 떨어지자, 학생의 마음에 드디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 학생은 그날 이후로 완전한 변화를 이루었습니다. 그 문제아가 다름 아닌 백낙준 박사입니다. 그는 변화 이후에 놀라운 복을 받아, 미국 예일대학 초청으로 유학을 가서 박사 학위를 받고, 귀국하여 연세대학교 초대 총장으로 17년이나 재직하였으며, 문교부 장관과, 참의원 의장을 지냈으며, 93세까지 장수하는 복을 누렸습니다.
성도가 예수님을 본받아 사랑의 사람으로 살 때 사랑의 아버지께서 기뻐하십니다. 그런 자들을 더욱 사랑하시고, 더 큰 은혜를 주십니다. 오늘 우리의 남은 생애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주님을 위해 사는 삶, 화목케 하는 자로 사는 삶, 사랑의 사람으로 사는 복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정리합니다. 오늘은 두 본문을 중심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자는 주님의 은택을 받으며 살게 됩니다.
◈.새로운 가치관을 가지고 변화된 삶을 살게 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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