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아가

왕후의 아름다움Ⅰ (아6장4)

nam씨 2016. 1. 23. 19:57

 

왕후의 아름다움(64)

= 더 깊은 연합 =

 

요 약

 

만 왕의 왕이신 그리스도의 삶에 동참하는 자에게 하늘에 속한 왕후의 영광이 드러난다. 그 영광은 먼저 왕 되신 그리스도의 권세와 영광이 나타남이며, 모든 성도들에게 은혜를 끼치는 성령의 사람이 됨이며, 원수 사단의 세력이 두려워하는 승리의 사람이 됨이다. 그런데 술람미가 그러했듯 이 왕후로서의 영광은 깊은 영적인 교통을 통하여 주님과 연합됨을 경험할 때 비로소 누리기 시작함을 기억해야 한다.

 

설 명

 

1. 배 경

가정 화목을 이뤄 왕의 총애의 대상이 된 술람미가

이제는 왕후로서 그의 영광을 드러낸다.

 

 

2. 적 용

(진단) 가족을 위해 헌신했으나 늘 허탈하지 않나요?

(해결) 왕후의 모습이 되도록 자신을 위해서도 투자하십시오.

 

 

<결혼의 의미>

1. 조화될 수 없는 남녀의 만남

2. 일차적인 목표는 사랑을 통한 부부 연합

3. 궁극적 목표는 그리스도와 신령한 연합을 위한 훈련

4. 가정은 영적 생활의 모델이요 신앙생활의 최고의 훈련장이다.

 

 

 

3. 그리스도의 삶에 동참할 때

 

 

1) 그리스도의 권세와 영광이 나타난다.

4내 사랑아 너의 어여쁨이 디르사 같고

: 부부생활에 만족을 주면 서로의 기쁨이요 즐거움이 된다.

 

2) 성도들에게 은혜를 끼친다.

4너의 고움이 예루살렘 같고

: 부부생활의 만족은 서로를 좋은 배우자로 인식한다.

 

3) 원수의 세력들이 물러간다.

4엄위함이 기치를 벌인 군대 같구나

: 부부생활의 만족은 강한 결속을 가진다.

 

 

아가 6:4

 

4 (솔로몬) 내 사랑아

너의 어여쁨이 디르사 같고

너의 고움이 예루살렘 같고

엄위함이 기치를 벌인 군대 같구나

 

 

원 문

 

4 תא הפי 야파 알트(너는 아름답도다)

יתיער 라야티(내 사랑아)

הצרתכ 케티르차(디르사 같이)

הואנ 나와(어여쁘도다)

םלשׁוריכ 키루솰라임(예루살렘 같이)

המיא 아윰마(엄위하도다)

תולגדנכ 칸니드갈로트(기를 세운 군대와 같이)

 

 

스 토 리

 

시집 온 술람미는

이렇게 부부생활의 우여곡절을 겪지만

오래 가지 않아 솔로몬 왕의 총애의 대상이 되어

왕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백성들의 찬사는 물론

비웃던 자들조차 왕후 앞에서

자신들을 살피었다.

그리고 부부생활의 만족을 이룬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인식도 크게 바뀌었다.

그들은 더욱 서로 기쁨의 존재 사랑스런 존재가 되었으며

나뉘어서는 살수 없는 강한 결속을 보였다.

 

 

(강 해)

이 시간에는 왕후의 아름다움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본문은 솔로몬이 왕후인 술람미를 아내로서가 아니라 왕후로서 칭찬하는 내용입니다. 그 동안 솔로몬 부부는 신혼생활에서 많은 갈등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술람미는 빠른 시일에 이 갈등을 극복하고 솔로몬 왕의 총애를 받는 왕후가 됩니다. 이 솔로몬 왕의 총애는 술람미로 하여금 놀라운 신분 상승을 가져옵니다. 즉 왕후가 많아도 술람미보다 존귀할 수 없고, 나라를 대표하는 왕후이니 만큼 다른 왕후와는 달리 백성들을 위로할 어머니와 같은 자격이 있으며, 나아가 어떤 권력자도 총애를 받는 왕후에게는 함부로 할 수 없는 지극한 위엄이 주어졌습니다. 이처럼 화목은 원동력이 되어 이제 가정의 차원을 넘어 한 나라의 왕과 왕후로서 체모를 갖추어 나갑니다. 화목한 그리스도의 가정의 힘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다시 한 번 느끼게 하는 대목입니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왕후로서의 술람미의 아름다움을 칭찬하는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먼저 7:5에도 언급되지만 솔로몬이 술람미에게서 비로소 왕다운 대접을 받기 때문입니다. 다른 왕후들은 쟁쟁한 이방 나라의 공주들로서 앗수르나 애굽이나 두로 왕의 공주 출신의 왕후들의 경우 그 위세가 대단했습니다. 솔로몬은 그들에게서 왕다운 대접은 고사하고 그들은 항상 요구와 강압으로 왕의 마음까지 돌이키기 일수였습니다(왕상11:3). 그들은 대개 왕의 딸들로 섬김과 봉사조차 모르고 대접만 받고 자란 여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에게 왕궁의 법도는 있을지언정 잠언 31장의 현숙한 여인의 요소들이 형성되었을 리 만무합니다. 혹시 집에서 왕노릇하여 남편에게 스트레스를 주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술람미는 오빠들의 강한 교육을 받았을 뿐 아니라 자라온 환경에서 고난도 인내도 알고 왕을 섬기는 백성으로서 섬김도 봉사도 겸손도 아는 여자였습니다. 그러므로 술람미는 비록 왕후의 신분을 가졌지만 지극한 감격과 겸손과 정성으로 왕을 섬기니 어느 왕후보다 아름다운 왕후로 느껴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다음은 술람미만이 남편에게 만족을 주는 아내이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에게 많은 왕비가 있었지만 그들은 예법의 틀에 묶여 부끄러워함은 물론 능력조차 없어 왕을 만족하게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술람미는 자신의 만족을 추구할 줄 알고 문제점을 느꼈을 때 그 원인을 찾아 애쓴 결과 부부생활은 날로 발전합니다. 이러한 술람미가 총애의 대상으로 떠오를 수밖에 없습니다. 부부생활의 만족은 생활까지 연결됩니다. 이유 없이 배우자가 불친절하거나 다른 이성에게 마음을 두는 경우 혹시 부부생활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혹은 부부생활에서 불만을 주면서 배우자에게 전도가 되지 않는다고 낙심하지는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더 이상 부부생활세미나는 외설이 아니며 이 시대의 가정 회복을 위한 유일한 대안입니다. 부부생활이 회복될 때 오직 당신밖에는 없다는 시각으로 바뀝니다. 즉 부부생활의 만족은 정신적인 연합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이 그러합니다. 그런데 본문의 특징은 왕후로서의 아름다움을 배경으로 부부의 정신적인 연합을 묘사합니다. 그래서 술람미는 남편의 총애의 대상으로 떠오릅니다.

 

그럼 주님의 총애의 대상이 되면 어떤 영광이 주어질까요?

 

1. 항상 자랑스런 주님의 기쁨이 됩니다.

 

4절에 내 사랑아 너의 어여쁨이 디르사 같고했습니다.

본서에서 왕후의 아름다움을 칭찬한 부분이 6:4, 6:10, 7:1-5 등 약 세 곳이 나옵니다. 가령 6:4에서는 왕의 칭찬, 6:10에서는 백성들의 칭찬, 7:1 이하에서는 술람미의 최고의 경쟁자들인 왕후와 비빈들의 칭찬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왕후에도 수준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술람미는 최고의 경쟁자들인 비빈들과 왕후들까지도 따라갈 수 없다고 인정하는 단계에 이르렀습니다(6:9).

 

그런데 여기 디르사란 무엇입니까? 디르사는 북 이스라엘의 성의 이름입니다. 그런데 그 성이 얼마나 아름다웠던지 그 성을 디르사”(הצרת 티르차) 기쁨’ ‘즐거움’ ‘아름다움이라고 이름지었습니다. 그만큼 디르사는 도시와 주변 경관이 아름다웠습니다. 그래서 이 곳은 북 이스라엘의 6대 왕인 오므리가 수도를 사마리아로 천도할 때까지 40여 년간(B.C. 930-885) 수도로 정할 만큼(왕상14:17, 15:21, 33)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그 곳에는 당시 관개시설을 통해 조성된 아름다운 정원이 있었으며 이스라엘 왕들이 별궁을 두었던 곳입니다(왕상14:17, 16:23). 한 마디로 솔로몬은 술람미만 생각해도 기쁘고 즐겁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부부생활의 만족은 배우자 인식을 이렇게 바꾸어놓습니다. 이렇게 부부생활과 정신적인 연합은 무관하지 않습니다. 부부생활에 만족할 때 그 가정은 문제가 생겨나지 않습니다. 혹시 부부생활을 하찮거나 부끄러운 것으로 인식하고 있습니까? 결코 부부에게 있어서 성생활의 만족을 경시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이 만족을 줌이란 그만큼 배우자에 대한 세심한 배려를 의미하기 때문에 가정생활 전반에 대한 변화를 암시합니다.

 

이것은 신앙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께서는 아버지께 이토록 항상 자랑스런 기쁨이셨습니다. 8:29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자기 만족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주님이 기뻐하실 것인지 주님의 입장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5:10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했습니다. 그리고 롬12:1-2에도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내가 죽어지는 것 정도는 부족합니다.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적극적인 의미에서 십자가에 동참함입니다.

 

2. 총애의 대상이 되면 많은 은혜를 끼치는 사람이 됩니다.

 

역시 4절에 너의 고움이 예루살렘 같고했습니다.

여기 예루살렘”(םילשׁורי 예루샬라임)평강, 완전의 성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은 다윗에 의해 이스라엘의 수도로 정해졌으며(삼하5:6-10) 이 곳에 하나님의 법궤가 옮겨져서 하나님이 임재하시고 통치하시는 성읍으로(삼하6:12-19) ‘하나님의 성’(48:8, 87:3) ‘거룩한 성’(4:5)으로 호칭되었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은 그리스도의 신부된 교회의 예표이며(21:5, 9) 어머니와 같은 곳이요(4:25-26), 하늘의 새 예루살렘의 예표로서 이스라엘 온 국민들이 간절히 사모하며 꿈에도 그리며 사랑의 하나님의 품에 안기기를 원하던 거룩한 도성이었습니다(84:1-12). 그래서 백성들은 일 년 삼차씩 예루살렘에 나와 여호와 하나님께 나아와 제사를 드렸으며 온 나라의 백성들이 사모하는 장소였습니다. 이 예루살렘은 장차 나타날 새 예루살렘의 예표로서 신부가 신랑을 위해 단장함 같은 아름다움을 예표할 도성입니다. 그러므로 술람미를 이런 예루살렘에 비유한 것은 그녀의 곱고 은혜로운 심성을 묘사한 것입니다. 이처럼 부부생활의 만족은 서로가 누리는 해 아래서의 최선의 은혜입니다(9:9). 부부로서 최선의 서비스는 부부생활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너의 고움이 예루살렘 같다란 부부생활의 성공이 주는 아름다운 인식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주님의 총애를 받는 성도는 모두에게 은혜를 끼치는 가장 좋은 일군으로 인식됩니다. 마치 예수님께 아버지께서 함께 하사 역사하셨듯이 큰 은혜를 끼칩니다. 그러므로 주님 중심에서 주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인가 그 일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교회 역시 좋은 교회는 이렇게 은혜를 끼치는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어머니와 같이 은혜로운 속성이 있어서 덮어주고 다독거리고 도와주고 기뻐하고 웃고 사랑해야 합니다. 나라의 영부인은 이 일을 잘 해야 합니다. 우리 성도는 그리스도의 신부이니 하나님 나라의 영부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을 통하여 놀라운 은혜의 역사를 이루십니다. 하나님께 귀한 일군으로 쓰임을 받고 싶다면 그리스도의 총애의 대상이 되시기 바랍니다.

 

3. 총애의 대상이 되면 악의 세력들이 두려워합니다.

 

역시 4절에 엄위함이 기치를 벌인 군대 같구나했습니다.

여기 엄위함”(המיא 아우마)공포’ ‘무서움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기치”(לגד 데갈)2:4’()와 같은 것으로 는 특정한 성격이나 상징 징조(5:26, 13:2, 18:3, 30:17, 49:22) 경고(26:10) 등의 의미가 있습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들이 각 지파와 종족별로 각각의 깃발을 가지고 진을 치고 행군을 했습니다(1:52, 2:2, 2:3, 10, 18, 25, 34, 10:14, 18, 22, 25). 이 깃발은 여호와로 말미암는 승리의 상징으로(17:15) 확신과 정의와 엄위의 상징이었습니다(89:14, 16:12). 이는 정의로운 위엄을 갖춘 왕비의 강한 매력을 뜻합니다(Lange). 즉 왕의 총애를 입게 되면 어떤 권력자도 총애를 받는 왕후에게는 함부로 할 수 없습니다. 특히 왕후를 비웃던 원수들은 숨을 죽이며 자기를 살피게 됩니다. 그런데 좀 더 좁혀서 부부생활에 적용해 보면 부부생활의 만족은 진친 군대와 같은 강한 결속을 나타냅니다. 이 결속은 너무도 강하고 확실하기에 다른 왕후들이 감히 함부로 간섭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엄위하다고 한 것입니다. 만약 부부에게 성이 없다면 그 결속은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이 존재하기에 더구나 만족이 존재할 때 그 결속은 군대와 같이 강하게 됩니다. 부부생활의 만족이란 이렇게 중요합니다. 오늘날 가정의 여러 문제들이 부부생활을 하찮게 여기거나 무성의함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의외로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정신적인 연합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현대의 무너진 가정을 회복시키기 위해서 아가서의 필요성을 더욱 느낍니다.

 

이처럼 하늘의 왕권으로 충만한 성도들은 악의 세력을 이깁니다. 사단도 이깁니다. 28:7네 대적들이 일어나 너를 치려하면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패하게 하시리니 그들이 한 길로 너를 치러 들어왔으나 네 앞에서 일곱 길로 도망하리라했습니다. 죄악도 이깁니다. 4:3또 너희가 악인을 밟을 것이니 그들이 나의 정한 날에 너희 발바닥 밑에 재와 같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하셨습니다. 기타 온갖 것을 다 이깁니다. 그래서 막16:17-19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하셨습니다. 이 이김은 다름 아닌 주님과 강한 결속의 힘입니다. 이 승리하시는 주님과 함께 있는 한 우리는 언제나 이김을 경험할 것입니다. 그 동안 세 가지를 달리 종합하면 즉 주님에게 대하여는 기쁨이요 사람에게 대하여는 사랑이요 원수 사단에 대하여는 엄위한 성도입니다. 이 세 자세를 취할 때 영적인 삶은 이루어집니다.

 

<결론>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우리의 신앙 수준이 하늘에 속한 왕후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왕 되신 그리스도를 입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왕권이 성령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늘 엎드려 주님의 은혜로 충만하십시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참는 그 인내에 동참하십시다. 주님이 참으로 기뻐하시는 일을 하십시다. 그래서 만 왕의 왕이신 예수님의 총애를 받는 영광스런 왕후로 나타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