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 받는 심령으로 사는 한 해 누가 3장 15-22절
오늘은 새해 두 번째 주일입니다. 새해가 이미 열흘이 지났지만, 아직도 제 마음 속에는 어떻게 하면 성도 여러분들로 하여금 복된 한 해를 사시게 할까하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저는 성경을 읽다가 오늘 본문 말씀을 발견했습니다. 세례 요한이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예수님께서도 세례를 받으신 내용인데, 저와 성도 여러분들이 처음에 세례를 받을 때의 심정으로 한 해를 살아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 선교사가 아프리카에서 원주님들에게 설교하다가 “세례란 예수님과 함께 마음이 죄에 대하며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거와 마찬가지입니다”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한 원주민은 이 말씀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머리를 갸우뚱하며 “몸이 살아있는데 마음이 죄에 대하여 죽는다는 것은 아무래도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선교사는 생각다 못해서 구덩이를 파고 그를 그 곳에 들어가라고 했습니다. 그는 선교사의 말대로 구덩이에 들어갔습니다. 선교사는 흙을 조금 구덩이에 넣고 “당신은 지금 죽었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웃으면서 “아니요. 죽지 않았습니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선교사는 다시 흙을 그 사람들의 허리에까지 채우고 "아직도 안 죽었습니까?" “천만에요, 아직도 살아있습니다.” 했습니다. 이번에는 흙을 그의 목까지 올라오게 채웠습니다.
그는 온 몸이 흙에 묻혀버리자 선교사가 묻기도 전에, “선생님, 이젠 죽었습니다.” “천만에요, 당신은 아직도 살아 있지 않소?” “아닙니다, 저는 죽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지 않습니까?” 그러자 선교사는 그 사람을 구덩이에서 꺼내어주며 말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몸은 살아있으나 악한 일에 대해서는 죽은 자가 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는 것이 세례를 받은 사람의 각오입니다.”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교회에 나오신지 얼마 안 되는 성도님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성도님들은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미 세례를 받으신 분들에게 뜬금없이 세례의 이야기를 하려고 하니 약간은 쑥스럽습니다만 성도는 항상 세례 받을 때의 심정으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특별히 중대한 일을 앞에 두거나 새해를 시작하면서 그러한 마음을 갖는 것은 중요합니다. 새해에 성도님 자신의 욕망과 자존심, 죄와 악, 정욕과 혈기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는 각오로 새롭게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가 물세례는 이미 받았지만 뜨거운 성령세례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1. 세례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심으로 공생애를 시작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고, 말씀을 가르치시고, 병든 자의 병을 고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마 28:19) 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세례는 모든 믿는 자들이 받아야 할 의무입니다. 세례는 단순한 통과의례가 아닙니다. 세례를 베푸는 것은 제자의 사명입니다.
첫째, 세례는 주님과 함께 죽었다는 뜻입니다. 세례는 물을 뿌리거나 붓거나 물에 잠그는 등의 여러 가지 형태로 시행될 수 있습니다. 물론 물에 잠그는 침례가 좋다고 생각되지만 교회의 윤리적 여건상 물을 머리에 뿌리거나 붓는 세례를 베풉니다. 어떻든 간에 세례는 물을 사용하는 것으로 세례를 받는 성도가 죽어 물속에 장사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롬 6:3-4). 그러므로 세례 받은 사람은 세례를 통하여 주님과 함께 장사되는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죽는다는 것은 자기를 위해 살기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육신의 일을 버리는 것입니다. 옛사람을 벗어버리는 것입니다.
둘째, 세례는 죄 사함을 받았다는 상징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자신의 죄를 사할 권세가 없습니다. 다만 우리의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만이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세례는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고, 주님의 피로 죄 사함을 받았다는 것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례를 통하여 죄 사함을 받고 의롭다함을 얻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롬 6:6-7).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은 우리의 죄를 멸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세례는 바로 주님의 은총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례를 통하여 옛사람이 죽음으로써 죄의 종이 아니라 의롭다하심을 입은 거룩한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셋째,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얻는 의식입니다. 세례를 받는 것은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겠다는 약속과 결단의 표시입니다. 침례를 받을 때에 물에 잠겼다가 나오는 것은 죽음에서 나와 생명의 길로 나아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세례는 단순한 의식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얻는 거룩한 예식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롬 6:4).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롬 6:5). 우리는 이 세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사건을 자기 몸에 체험하였으며 주님과 신령하게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세례를 받은 성도는 교회의 머리인 주님의 지체들입니다.
성도가 주님과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줄을 믿어야 합니다. 새해에 ‘하나님과 그의 나라’를 위하여 주님과 함께 죽으려는 각오로 살면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하고 복스러운 성도의 삶을 살 줄 믿습니다. 세례는 주님과 함께 죽는 것이면서 주님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세례는 죽음과 생명의 사이에 끼어 있습니다. 이 절묘한 세례의 신비를 깨닫고 1년 12달 365일 항상 세례를 받는 마음으로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주님께서 받으신 세례
예수님은 완전한 하나님이심에도 불구하고 불완전한 인간에게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더욱이 요한은 모든 사람들에게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풀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16)고 고백했건만, 예수님은 굳이 그런 말을 하고 있는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당시에 종은 주인이 외출했다 돌아오면 신발끈을 풀고 발을 씻기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요한은 스스로 예수님께 그런 종보다 못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마태복음에 의하면 요한은 예수님께 세례 베풀기를 극구 거부했습니다(마 3:14). 하지만 예수님은 부득불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죄가 없으신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예수님은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마 3:15)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의’는 궁극적으로 인간의 행복을 지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죄와 어둠에서 해방되어 창조질서의 아름다움에서 공동선을 이루며 더불어 사는 것이 하나님의 의입니다. 하느님의 의(義)는 하느님의 뜻[意]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택하신 길이 스스로 낮아져 세례를 받는 모습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새해에 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 첫째는 스스로 낮아져 겸손해 지는 것이고, 둘째는 하나님의 공의를 이루는 것이고, 셋째는 전통의 질서를 따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늘의 보좌를 버리시고 사람의 모습으로, 섬김을 받고자 함이 아니라 오히려 섬기려고 오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공의를 이루어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아울러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교회의 정통을 지키셨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모습으로 한 해를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해드립니다.
3. 새해에 가져야 할 성도의 자세
사도행전 8장에 보면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국고를 맡은 관리인 내시가 성경말씀을 읽던 중 빌립으로부터 복음을 듣고 세례를 받은 기사가 나옵니다(행 8:26-39). 이 일로 에디오피아를 중심으로 북아프리카가 복음화 되었고 초기에 몇 백년간 아프리카가 기독교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초대교회의 중요한 신조와 예식 등은 북아프리카 지역 출신의 많은 교부들에 의해서 형성되었다고 교회역사가들이 말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 세례를 받음으로 온 나라와 거대한 대륙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입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은 곧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초대교회에서 성도들이 박해를 피해 카타콤에 살면서 벽에 물고기 그림을 많이 그려놓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실 때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막 1:17)고 하신 말씀에 근거하여 물고기는 그리스도인의 상징입니다. 초대교회의 벽화에 물속에 큰 고기가 있고 그 뒤로 작은 물고기가 뒤따르는 그림이 있습니다. 큰 물고기는 주님을 상징하고 작은 물고기는 성도들을 상징합니다. 우리가 세례를 받음으로 하나님 나라에서 주님과 함께 거닐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례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듭나겠다는 결단입니다.
새해에는 세례를 받을 때의 심정으로 한 사람이라도 전도하여, 그이 가정을 복음화하고 가족을 구원하시기 바랍니다. 새해에는 주님을 따르는 성도로 매사에 말씀에 순종하고 거듭난 삶을 살고자 결단할 수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해드립니다.
디도서 3:5-7 말씀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그 성령을 풍성히 부어 주사 우리로 그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은 우리의 의로운 행위로 된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케 하는 세례와 성령의 새롭게 하시는 역사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령을 받았고, 그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 3:5)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물은 물세례를 말하고 성령은 성령세례와 성령 충만, 즉 성령의 인도하심을 말합니다. 우리는 물로 세례를 받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보증을 받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 때, “하늘이 열리며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리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22)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새해에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세 가지의 주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 새해는 성령을 충만하게 받으시기 바랍니다. 둘째, 새해에는 하나님께 사랑받는 자녀로 사시기 바랍니다. 셋째, 새해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성도로 사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례는 하나의 의식이나 교회의 규정에 따른 제도가 아닙니다. 성도 여러분을 교회의 집사가 되고 권사가 되고 장로가 되는 절차도 아닙니다. 세례를 받아야만 구원받고 천국에 가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죄인이 아니지만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하나님의 공의를 세우시기 위해서 몸소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님이 나타나셔서 삼위일체의 협력을 보여주셨습니다. 또한 주님을 따르는 성도들에게 세례의 본을 보여주심으로 거듭남의 사례를 보여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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