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요한복음

주님과 연합된 성도 요15:1-11 사56:1-8,

nam씨 2015. 11. 6. 21:59

주님과 연합된 성도 사56:1-8, 15:1-11

 

어느 선교사가 태국 항공기를 타고 여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스튜어디스에게 전도를 할 생각으로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스튜어디스는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요." 라고 하고는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선교사가 한참동안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그 스튜어디스가 돌아와 하는 말 "아무리 승객 명단을 뒤져봐도 그런 분은 이 비행기에 탑승하지 않았습니다."하더랍니다. 세상에는 구주이신 주님을 모른 채로 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독일의 유명한 철학자 칼 야스퍼스는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4가지 감각을 가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첫째는 소속감입니다. 내가 누구에게, 어디에 소속되어야 행복할 수 있는가를 본능처럼 알고 살아야 합니다. 둘째는 한계성입니다. 나의 한계를 아는 것입니다. 이것을 아는 사람은 겸손할 수 있으며, 그 한계 너머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셋째는 유일성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독특한 피조물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에 나와 똑같은 사람을 만드시지 않았습니다. 유일성의 감각을 지닌 사람은 스스로를 존중하며 살게 됩니다. 넷째는 정체성입니다. 나는 누구이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자신에 대한 정체성의 감각을 바르게 가질 때 값진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바른 감각을 통해 창조주 하나님과 연합되어 그분을 기뻐하고 또 그분을 기쁘게 해 드리는 삶은 우리를 승리의 포구, 행복의 포구에 이르게 할 것입니다. 승리하는 인생을 살 수 있게 됩니다.

 

오늘은 구약 사56:1-8, 신약 요15:1-11의 말씀을 중심으로 주님과 연합된 성도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주님과의 연합은 주님과 동질화됨을 의미합니다.

 

1)사람은 누구와 연합되느냐에 따라 그의 운명이 결정됩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에덴동산에서 주님과 교제하며 부족함이 없는 복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비극은 사단의 미혹을 받고 복의 근원이 되시는 주님과의 연합 대신 거짓의 아비요, 도적이요, 강도인 사단과 연합을 도모함으로 발단이 되었습니다. 급기야 하나님 만나기가 두려워 지고 주님 보기를 회피하게 됩니다. 결국 에덴에서 축출되게 됩니다. 사단이 주는 온갖 쓴 뿌리와 저주와 고통이 그들의 가정과 인류에 임하게 되었습니다.

 

가롯 유다의 비극도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시는 주님과의 연합을 버리고 사단과 연합이 되면서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는 주님의 부름을 받아 열두 제자 중 하나가 되는 은총을 입은 사람이요, 주님의 사랑과 신임을 받아 돈 전대를 맡은 사람이요, 다른 제자들과 함께 주와 복음을 위해 특별한 사명자로 부름을 받은 영광을 얻은 자였지만 그를 미혹하는 사단과 결합함으로 주님을 은 삼십에 팔고, 저주 받은 운명의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 땅에 모든 사람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누어집니다. 주님께 연합된 사람들과 사단과 연합된 사람들입니다. 우리 모두 생명 되시는 주님과 연합된 성도가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2)주님과 연합을 위해서는 장애되는 요소를 과감히 제해야 합니다.

오늘 신약 본문 요15:2에 보면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했습니다과수원을 경영하는데 얼마나 많은 일손이 필요한지 겨울철을 제외하고 항상 바쁩니다. 그 일 중 하나가 가지치기입니다. 쓸모없는 가지를 가려 잘라 주는 일입니다. 그래야 튼튼하고 좋은 열매를 맺게 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오늘 우리 성도들이 주님과 잘 연합하여 좋은 열매 맺으려면 내 안에 쓸모없는 것들을 잘라 주어야 합니다. 교만이라는 가지를 잘라 주어야 합니다. 사단이 하와에게 접근하여 이 실과를 먹으면 하나님처럼 된다는 교만의 마음을 부추겨 넘어지게 했습니다. 유다에게도 그런 교만이 있었습니다.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들이 사는 북쪽 갈릴리 출신의 다른 열한 제자와 달리 남쪽 가롯이라는 교육 여건이 좋은 도시 출신의 유다는 학력도 다르고 똑똑한 것이 그의 교만함이 되어 주님과 진정한 연합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자기의 뜻의 가지를 잘라야 합니다. 유다는 나름대로의 뜻을 가지고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주님을 따랐지만 주님의 가르침과 하시는 일은 자기의 뜻과는 도무지 맞지가 않았습니다. 내 뜻 버리고 나의 주인이요, 왕이요, 복의 근원이요, 진리요, 생명 되시는 주님의 뜻에 맞춰야 되는데 반대로 자기의 뜻대로 하려다 안 되니까 주님과 연합을 버리고 주님을 떠난 것입니다. 그리고 내 속에 있는 탐심과 정욕의 가지를 잘라 버려야 합니다. 사단은 하와 속에 있는 탐심을 부추겨 미혹했습니다. 3:6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했습니다. 유다의 결정적인 약점은 물질에 대한 탐욕이었습니다. 그는 가끔 돈 전대에서 돈을 훔치기도 했고, 주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값비싼 향유를 주님께 몽땅 부어드린 여인을 향해 책망한 것도 가난한 자들을 생각해서가 아니라 물욕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탐심에 눈이 어두워 주님까지 파는 자가 되었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이러한 탐욕, 정욕, 명예 권세욕을 잘라버려야 주님과 온전한 연합을 이룰 수가 있습니다. 나무에 벌레나 진드기가 잔뜩 붙으면 이파리가 시들면서 열매는커녕 꽃 도 피지 못합니다. 탐심이나 정욕은 벌레나 진드기와 같은 것들입니다. 이것들을 깨끗이 제해야 합니다. 사단은 이러한 것들로 주님을 시험했지만 주님은 그러한 시험을 다 이기심으로 아버지께 연합된 순종의 본이 되셨습니다. 우리도 주님과 연합을 훼방하는 모든 것들을 과감히 자르고 주님과 연합되기를 소망합니다.

 

3)주님과 연합된 자는 주님 안에 거하여 삽니다.

사도 바울은 다메섹에서 주님을 만난 후 주님과 연합된 자가 되었습니다. 주님과의 연합을 위해 전에 좋아하던 세상 것들을 배설물처럼 여기고 과감히 버렸습니다.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아 버렸습니다. 자기 안에 꿈틀대는 옛사람의 성품을 죽이고 버리는 경건에 힘썼습니다.“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2:20)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을 뿐 아니라 내가 철저히 악에서 죽을 때 생명의 예수님께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속에 예수님이 접목되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서 사시면 주님께서 우리 성품이 되시고 우리 생명이 되시고 우리 능력이 되십니다. 이보다 더 아름답고 귀하고 위대한 것은 없습니다. 우리에게서 예수님이 나타나시는 것입니다. 주님 안에 거하는 자는 세상을 이기신 주님이 함께 하시니 두려울 것도, 염려할 것도 없게 됩니다. 중국의 내지 선교를 한 유명한 허드슨 테일러의 간증에 의하면 영적으로 매우 곤고할 때에 영국에서 온 그의 누이의 편지에 오빠는 가지이므로 포도나무이신 주님께 붙어있기만 하세요.’라는 내용을 보고 잠시 잃어버린 영성을 다시 회복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진리의 복음을 듣다보면 깨끗한 심령으로 그 분 안에 머무는 것이 자연스럽고 편해집니다. 그리고 그 분의 마음과 생각과 뜻에 점점 동화되어 갑니다. 나무와 가지의 조직이 같아져 간다는 뜻입니다. 그 분의 영과 생명의 진액이 우리의 영으로 흐르기 때문입니다. 그 안에서는 자신의 노력이 필요 없습니다. 자신의 의지가 없습니다. 오히려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를 붙들고 주님을 사모하는 일 밖에 할일이 없습니다. 성령의 내부수리를 거쳐 꿈틀거리는 권능이 나타납니다. 드디어 밖으로 열매가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그 열매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령의 열매, 의의 평강한 열매, 빛의 열매, 회개에 합당한 열매, 전도의 열매 등으로 나타납니다.

2.주님과 연합된 성도는 삶을 통해 주님을 드러냅니다.

 

1)주일을 거룩히 지키는 자로 삽니다.

하나님은 백성이 하나님을 올바로 섬긴다는 표시로 가장 중요시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안식일을 온전히 지키는 것입니다. 왜 안식일을 온전히 지켜야 할까요? 안식일은 그냥 안식하는 날이 아닙니다. 안식일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섬기는 날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표지가 안식일이고 그날을 구별되게 지키는 것입니다. 왜 안식일을 지키는 것으로 표지를 삼으셨을까요? 주님께 연합된 자들은 주님의 백성으로 구별된 자들입니다. 그리고 안식일은 하나님이 구별하신 날입니다. 그러기에 그날을 구별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하나님 것을 하나님 것으로 구별할 수 있다는 표시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지금은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이 율법을 완성하신고로 우리는 주님이 부활하신 첫날, 주일을 안식하는 날로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하나님 대접하는 그 개념은 똑같습니다. 2절과 6절에안식일을 더럽히지 아니하며라고 했습니다. 안식일을 더럽힌다는 것은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일까요? 날을 더럽힌다는 말은 그날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잘못되게 그날을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안식일에 무엇을 하여야 하는지 모르고 내 맘대로 그날을 사용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날은 하나님을 하나님답게 섬기고 이날을 통해 하나님과 아름다운 교제를 하며 살라고 구별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떻습니까? 그날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섬기는 날이 아니고 자기 자신을 위한 날이 되어버렸습니다. 우리 자신을 돌아보시기를 바랍니다. 주일이 누구를 위해 존재합니까? 주일을주님의 날로 만들지 못하고 내가 내 멋대로, 내 편리함대로 사용하는나의 일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것을 더럽히는 것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과 연합된 자라면 적어도 이날은 주님을 위한 날로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구약의 안식일을 매우 귀하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십계명 중에 하나가 그것입니다. 출애굽기 20:8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하셨고, 심지어는 출애굽기 31:13~14절에는 이날을 표징으로 삼고 이날을 더럽히면 죽이라고 까지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연합된 자의 중요한 특성 중 하나가 주일을 자기의 사사로운 일을 하는 날로 만들지 않고 거룩히 지킬 줄 압니다.

 

2)악행을 버리고 하나님 기뻐하는 일을 하는 자로 삽니다.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은 망할 것이고 그들은 포로로 잡혀갈 것이라고 경고를 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그 원인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 백성들이 하나님을 멀리하고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그 타락 중에 가장 무서운 타락이 우상숭배입니다. 그래서 이사야2:8~9절에서는그 땅에는 우상도 가득하므로 그들이 자기 손으로 짓고 자기 손가락으로 만든 것을 공경하여 천한 자도 절하며 귀한 자도 굴복하오니 그들을 용서하지 마옵소서.”했습니다. 이스라엘 땅 전체가 우상이 가득하고 자기 손으로 지은 것을 공경하고 천한 자나 귀한 자나 가릴 것 없이 다 그 우상 앞에 절하는 모습을 보고 경고하고 계십니다. 그 악행을 버려야 하나님과 연합된 자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우상이라고 했습니다. 돈이 우상이 될 수 있고, 자식이 우상이 될 수 있고, 세상 연락이 우상이 될 수 있고, 세상 명예, 권세가 우상이 될 수 있고, 탐심이 우상이 될 수 있고, 사랑하는 연인이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주님과 연합된 성도는 주님의 선한 마음을 가지고 선한 행실의 열매를 맺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선한 행실의 흉내를 내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동기를 가지고 주님 마음을 품고 선한 일에 부한 자가 될 때 주님은 기뻐하시고, 그 상을 반드시 주시는 분입니다. 사람은 심은 대로 거둡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루는 놀부 마누라가 장에 갔습니다. 다들 놀부 마누라의 고약한 성질을 아는지라 슬슬 피해 다녔습니다. 그런데 어느 간 큰 거지 한 명이 놀부 마누라에게 오더니 "마님, 한 푼만 줍쇼." 하는 것이었습니다. 심술기가 발동한 놀부 마누라는 지나가던 똥개 한 마리를 잡아와서는 "네가 이 똥개에게 아버지라고 한번만 부른다면 내가 동전 한 닢을 주지" 라고 말했습니다. "한번 부르면 한 닢이라굽쇼? 그럼 열 번 부르면요?" "그럼 당연히 열 닢을 주지." 흥미로운 구경거리에 사람들은 몰려들었고 이 거지는 정말로 고개를 꾸벅 숙이면서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하고 열 번을 불렀습니다. 놀부 마누라는 배꼽이 빠져라 웃고는 약속대로 동전 열 닢을 주었습니다. 그러자 이 거지는 더욱더 목청을 돋우어 이렇게 소리치는 것이었습니다. "감사해요, 어머니!!" 남을 골려주려던 놀부 마누라는 졸지에 똥개 마누라가 된 것입니다.

 

우리 모두 주님께 연합된 자답게 선한 생각을 하고, 선한 것으로 심고, 선한 열매를 거두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3)언약을 믿고 소중히 여기며 삽니다.

56:4절 하반 절에나의 언약을 굳게 잡는 고자들”6절 하반 절나의 언약을 굳게 잡는 이방인들을 언급하십니다. 이 말은 그 사람이 정상인이든 장애인이든, 환경이 어떤 환경이든, 출신지가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상관없이 누구든 언약을 붙잡는 사람은 하나님의 복을 누리게 된다는 말입니다. 특별히 6절 하반 절~7절을 보세요. “나의 언약을 굳게 지키는 이방인마다/ 내가 그를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은 나의 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했습니다.

 

성경에 보면 믿음의 사람들은 언약을 믿고 소중히 여긴 사람들이었으나 불신앙의 사람들은 언약을 우습게 여기고 소홀히 여기다가 망했습니다. 언약을 소중히 여기고 하나님께 순종했던 노아와 언약을 우습게 여긴 그 시대 사람들을 보십시오. 언약을 소중히 여겼던 아브라함과 롯의 모습과 언약을 농담으로 여기거나 무시한 소돔 인들의 모습이 얼마나 대조적 입니까? 언약을 소중히 여긴 야곱은 조부 아브라함과 부친 이삭으로 이어지는 축복의 후계자가 되었지만 언약을 대수롭게 여긴 에서는 언약의 복을 동생에게 빼앗겼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굳게 믿고 의심치 않았던 여호수아와 갈렙은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차지하게 되었지만 언약을 믿지 못했던 자들은 다 광야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제자들이 주님의 언약을 믿지 않았을 때는 십자가 사건 후에 크게 낙담하여 다시 고기 잡는 어부로 돌아갔지만 부활하신 주님의 약속을 믿고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다가 성령 충만을 받고 충성스런 사명 자들이 되었습니다. 계시록에서 주님은 빌립보 교회를 향해 볼찌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3:8) 했습니다. 주님께 연합된 자들은 이처럼 언약을 믿고 소중히 여기며 삽니다. 주님은 그런 자들에게 약속하신 언약대로 복을 주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3.주님과 연합된 자는 주님이 보장해 주십니다.

 

1)하나님의 집에서 영영히 이름이 끊어지지 않게 하십니다.

주님과 연합된 자들은 그가 이방인이든 장애인이든 차별치 않으시고 누구나에게 그런 은혜를 주시겠다고 선포하십니다. 주님 안에 있는 자들은 주님의 은혜로 믿음 안에서 다 존귀한 자들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베드로는 주님을 믿는 자들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큰항아리 속에 물이 가득 차 있는데 그 물 속에 컵이 들어 있습니다. 컵이 물속에 있는 것입니까? 아니면 물이 컵 속에 있는 것입니까? 이것은 컵이 물속에 있는 동시에 물이 컵 속에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태에 있는 사람이 성령 충만한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내 가 주님 안에 있고 주님이 내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주님 안에서 자동적으로 주님이 가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은총을 받게 됩니다. 이런 자들이 참으로 복 받은 자들입니다. 14:13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기록하라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했습니다. 주와 연합된 성도의 죽음은 곧 예수님께로 모이는 것입니다. 이제는 믿음으로만 아니라 실제적으로 주님과 함께 거하고, 앞서간 성도들과 천군 천사들과 더불어, 함께 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주와 연합된 자들의 죽음은 신앙 공동체에게는 큰 손실이 되지만 자신에게 오히려 영광의 순간이 되는 것입니다.

 

2)하나님의 집에서 영영한 기쁨 가운데 살게 하십니다.

56:7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와 연합한 자들을 기쁘게 해주신다는 말은 하나님이 우리 삶을 행복하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집에서 기쁘게 한다는 말은 기도하는 것마다 응답 받게 하시겠다고 약속을 하시는 것입니다.

 

15:11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함이니라.”했습니다. 16절에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했습니다. 주님 사랑 안에 거하는 기쁨은 세상에서 얻는 순간적인 기쁨과 다릅니다. 그래서 주님은 내가 주는 기쁨과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 다르다고 하셨습니다. 세상이 주는 것은 금세 다시 없어지는 순간적인 것이지만 주님이 주시는 기쁨은 영원한 것입니다. 영혼의 갈증을 풀어주는 참 기쁨입니다. 주님 안에 거한다는 말은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 사랑을 가지고 복음을 위해 살았던 바울은 큰 박해를 받으면서도, 감옥 안에 있으면서도 항상 기쁨과 감사가 충만했습니다. 이러한 신령한 기쁨이 우리 안에도 넘치기를 소망합니다.

 

3)하나님께서 기꺼이 받으시는 자가 됩니다.

56:7 “--그들의 번제와 나의 제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했습니다. 예배를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드리는 예배가 귀한 것은 하나님이 그 예배를 기꺼이 받으시기 때문에 귀한 것입니다. 가인의 예배처럼, 이사야 선지자가 책망했던 범죄 하면서 형식적으로 예배드렸던 이스라엘 백성의 예배처럼 받지 않는 예배는 드리나마나한 가치 없는 예배, 헛된 예배가 됩니다.

 

주님께 참으로 연합된 자는 예배를 드려도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립니다. 자신의 죄를 깨닫게 되면 진심으로 회개하는 자가 됩니다. 성결한 삶을 살기를 힘씁니다. 이웃을 내 몸처럼 진심으로 사랑하는 자가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항상 가까이 하며 말씀을 따라 말씀에 붙잡혀 살기를 힘씁니다.

영국의 유명한 조지 뮬러 목사는 독일 사람으로, 아프리카 선교사가 되기 위해 영국에 공부하러 갔던 사람이었습니다. 뮬러 목사는 평소 많은 고아들이 거리에서 방황하는 것을 보며 공부했는데 하루는 성경을 읽다가 '그 거룩한 처소에 계신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시라'(시편68:5)는 말씀을 읽었습니다. 그때 그 말씀이 뮬러 목사의 영혼을 뒤흔들었습니다. 그 말씀을 바로 뮬러 목사에게 주어진 말씀이었습니다. 여기에서 뮬러 목사는 '하나님께서 고아의 아버지시라면 나는 고아들을 돌보는 총무가 되어야지.'라고 생각하면서 "하나님, 고아를 돌보는 사명을 주셨으니 길도 열어 주옵소서."라고 기도하게 되었고 결국 고아원을 세우는 길을 얻어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고아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특별히 우리에게 말씀을 주시면 우리의 인생은 달라집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늘 읽고 묵상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인도를 받기 원한다면 항상 말씀을 읽고 묵상해야 합니다. 말씀을 깨닫는 순간 우리의 인생은 달라집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사람을 보실 때 나의 기뻐하는 종아!, 나의 사랑하는 종아!, 내 마음에 합한 종아!, 내 마음을 시원케 하는 종아!, 내가 존귀하게 여기는 종아!, 착하고 충성된 종아! 라고 인정해 주시고 불러주십니다. 그리고 영원한 천국의 은총에 참여하게 하십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 합니다.

 

주님과의 연합은 주님과 동질화됨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사람은 누구와 연합되느냐에 따라 그 운명이 결정됩니다. *주님과의 연합을 위해서는 장애되는 요소를 과감히 제거해야 됩니다. *주님과 연합된 자는 주님 안에 거하여 삽니다.

 

주님과 연합된 성도는 삶속에서 주님을 드러낸다고 했습니다. *주일을 거룩히 지키는 자로 삽니다. *악행을 버리고 하나님 기뻐하시는 일을 하는 자로 삽니다. *언약을 믿고 소중히 여기며 삽니다.

 

주님과 연합된 성도는 주님이 보장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영영히 이름이 끊어지지 않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영영한 기쁨 가운데 살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기꺼이 받으시는 자가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세상에 속한 자나 사단에게 속한 자가 아니라 주님께 연합된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주님을 드러내는 삶을 통해 하나님께서 기꺼이 받으시는 복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