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음녀의 정체 1 (계 17:1-2)
1. 또 일곱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 중 하나가 와서 내게 말하여 이르되 이리로 오라 많은 물 위에 앉은 큰 음녀가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 2. 땅의 임금들도 그와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에 사는 자들도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 하고
이 시간에 “큰 음녀의 정체”라는 제목으로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죄의 성질에는 10대 성질이 있습니다. 그 성질이란 전염성 유전성 고착성 성장성 부패성 파멸성 압박성 채무성 체포성 그리고 흑암성입니다. 일일이 다 설명할 시간은 없지만 그만큼 죄는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고는 인생을 이 지상 뿐 아니라 내세까지 영원한 파멸로 끌고 갈만큼 두려운 것입니다.
바로 그것을 보여주는 말씀이 계시록의 본문입니다. 1절에 온 세상을 미혹시켜 파멸에 빠뜨릴 큰 음녀가 나옵니다. 여기 큰 음녀란 누구일까요? 큰 음녀가 무엇인지 17장 18장 전체에 힌트가 있지만 그 중에서 17:18에 중요한 힌트가 있습니다.
“또 네가 본 그 여자는 땅의 왕들을 다스리는 큰 성이라 하더라.” 여기 큰 성은 바벨론 성을 말합니다. 즉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멀리할 때 예루살렘를 비롯해 많은 나라들을 초토화하고 백성들을 잡아다가 노예로 만들던 하나님을 반역하던 그 바벨론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음녀 + 바벨론의 개념으로 접근해야 할 사항입니다. 즉 바벨론은 무력으로 사람들을 잡아갔지만 여기서 바벨론은 큰 미혹의 권세로 잡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가인 바벨론은 역사 속에 사라졌으니 여기 큰 음녀는 바벨론이 상징하는 바 그 무엇을 가리킵니다. 즉 수많은 사람들을 잡아다가 자기들의 노예로 만드는 그 무엇을 말합니다. 그것이 과연 무엇일까요?
여기에 대한 학자들의 견해를 보면 “로마를 가리킨다.”, “사치 음란 우상숭배 부정 등의 바벨론 사상이라.”, “마호멧교 불교 도교 등 이방종교를 가리킨다.”, “소련을 중심한 공산주의다.”, “온 세상에 편만한 로마 천주교를 가리킨다.”는 견해도 있고, 가장 좋은 견해는 박윤선 박사의 견해입니다.
박윤선 박사는 “이것은 하나님을 배반하는 이 세상과 및 거기에 속한 것을 총칭한다.”고 했습니다. 여기에는 도덕적 종교적 정치적 모든 악을 망라한 하나님을 대적하고 사람들을 미혹하는 죄악된 세상을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큰 음녀는 세상을 말합니다. 무수한 사람을 타락시켜 자기 종을 만들고 지옥으로 끌고 가는 세상을 가리킵니다.
여기서 벗어나는 것이 바로 구원입니다. 그래서 구원란 넓은 길로 비유되는 죄악 세상 떨쳐버리고 좁은 길의 하나님 나라를 가는 즉 이 세상에서의 구원입니다. 그래서 행2:40-41에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했습니다.
이런 고약한 것이 세상이요, 우리가 사는 날 동안 끊임없이 경계해야 할 세상이기 때문에 주님은 계시록 17-18장을 통해서 더 심도 있게 다루시며 우리에게 각성시켜 주시고 계십니다. 17장과 18장의 차이는 17장은 음녀인 세상의 정체와 그 미혹성을 강조한 것이라면, 18장은 이를 바벨론이라는 이름으로 그들의 강력함과 죄악상과 그 최후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먼저 큰 음녀의 정체, 즉 세상이란 무엇일까요?
1. 세상은 모든 고난의 원인입니다.
1절 “또 일곱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 중 하나가 와서 내게 말하여 이르되 이리로 오라” 여기서 우리는 음녀의 정체를 보여주는 자가 다른 재앙도 아닌 일곱 대접재앙을 행사한 일곱 천사 중의 하나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대접이 무엇입니까? 고난입니다. 예수님의 고난의 사랑일 수도 있고, 바로 고난 자체를 가리킬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대접재앙을 가진 천사가 음녀의 비밀을 알려준 것은 우리가 세상을 멀리 하지 않는 한 고난의 징계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성경이 말씀하는 바입니다.
그래서 롬2:9-10에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는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며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라.” 했고
시73:27-28에는 “무릇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 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 했습니다.
2. 세상의 미혹은 차별이 없습니다.
다시 1절 “많은 물 위에 앉은 큰 음녀가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 큰 음녀가 어디에 앉았습니까? 많은 물 위에 앉았습니다. 많은 물이니 온 세계를 다 삼켜버릴 만한 물입니다. 성경에서 물은 남녀 간의 애정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잠5:15-17에 “너는 네 우물에서 물을 마시며 네 샘에서 흐르는 물을 마시라 어찌하여 네 샘물을 집밖으로 넘치게 하겠으며 네 도랑물을 거리로 흘러가게 하겠느냐 그 물로 네게만 있게 하고 타인으로 더불어 그것을 나누지 말라”고 교훈 합니다.
그런데 여기 물은 집 안에만 있는 샘이나 우물 같은 순수한 부부 간의 사랑이 아닙니다. 문제의 밖의 물인데 졸졸 집밖으로 흐르는 도랑물 수준도 문제인데 그보다 많은 물, 바다와 같은 물입니다. 그러므로 이 물은 누구라도 마실 수 있는 그런 애정이란 말입니다.
문자대로 말하면 완전한 성적해방입니다. 그러나 꼭 성적인 면만 말하는 것은 아니고 이처럼 세상은 누구든지 다 미혹하여 타락시키는데 차별이 없다는 말입니다. 세상은 누구에게든지 애인이 되어줍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거짓에 미치고, 물질에 미치고 이성 명예 권세 사치에 미치고 기타 온갖 것에 미치게 합니다. 세상 사랑에는 장벽이 없고 예외가 없어요.
그러나 하나님보다 더 추구하고 섬기면 그것이 영적 간음이 됩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일과 선행과 애국심 같은 고결한 것도 하나님보다 더 앞 설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더 심각한 것은 모든 인간은 아담 안에서 그 속에서 태어났고 이미 그 안에서 죄인 줄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엡2:2-3).
3. 세상 문제는 인간에게 작은 문제가 아닙니다.
어떤 음녀라고 했나요? “많은 물 위에 앉은 큰 음녀” 작은 음녀가 아닙니다. 이 음녀의 세력이 얼마나 큰지 아담 이래 이 미혹에 걸려들지 않았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수많은 인생들을 지옥으로 끌고 갔습니다. 거룩함을 입은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까지도 조금만 방심하면 넘어지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므로 큰 음녀라는 것은 그만큼 큰 문제라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세상은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계시록의 여러 주제 중에서 음녀 문제가 큰 분량을 차지하며 여러 곳에서 빈번하게 강조됨은 세속이 얼마나 하나님 앞에 큰 죄악이며, 또 성도에게 당면한 큰 문제인가 그리고 그 패역한 세대에서 건짐을 받는 일이 얼마나 귀한 일인가를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계시록의 목표를 정확하게 깨달아야 합니다. 계시록은 우리에게 하나님 아버지를 섬기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할 뿐 아니라, 나아가 세속에게서의 구원을 강조하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술되고 있는 무서운 심판들이 먼저는 우리 속의 세상 악에 대한 심판입니다. 죄에 머물러 있지 말고 거기서 구원을 받으라는 말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새로운 목표를 제시해 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계시록을 알게 되면 회개운동은 일어나게 되어 있고, 이것이 바로 예수님과 세례 요한이 그토록 외쳤던 하나님 나라 운동이기도 합니다.
4. 세상은 성령 안에서 심판을 받습니다.
“많은 물 위에 앉은 큰 음녀가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 감사한 것은 하나님께서 음녀를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심판에는 그냥 심판이 있고 은혜의 심판이 있습니다. 그냥 심판은 죄의 값은 사망이라 했듯 행함의 결과대로 값을 받는 결과를 말합니다. 그러나 은혜의 심판은 성령이 임하시므로 사람 속의 악만 처리하시는 그런 구원의 심판입니다.
마12:18-21에 “보라 내가 택한 종 곧 내 마음에 기뻐하는 바 내가 사랑하는 자로다 내가 내 영을 그에게 줄 터이니 그가 심판을 이방에 알게 하리라 그는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또한 이방들이 그의 이름을 바라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이렇게 성령을 주셔서 죄를 이기게 하시는 심판입니다.
죄병은 성령의 주사 아니면 고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은 아버지의 계획과 사랑,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우리에게 적용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임하시면 아버지의 사랑을 누리게 되고, 그리스도의 공로로 온전한 새 사람이 됩니다. 그러므로 항상 성령에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5. 육신에 속한 자들이 세상 정욕에 빠집니다.
2절 “땅의 임금들도 그와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에 사는 자들도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 하고” 그럼 이 여자와 음행하는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여기서 음행의 대상이 땅의 임금들과 땅에 거하는 자들이라 했습니다.
문자적으로 본다면 어떻게 온 인류가 한 여인과 음행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여인도 땅에 거하는 자도 모두 영적인 측면에서 봐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세상 정욕에 빠질까요?
여기 땅의 임금들과 땅에 거하는 자들은 바로 육신에 속한 자를 가리킵니다. 땅의 임금은 땅의 지배자로서 예를 들면 자기 노력으로 선하려는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이길 수 없습니다. 그들은 근본적으로 육에 속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귀한 진리가 숨겨져 있습니다. '육에 속한 자만 세상에 빠진다.' 이 말은 신령한 자는 세속에 빠지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롬8:9에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계시면 넘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은혜를 받으며 살아야 합니다. 노아가 세속에 빠지지 않았던 것도 그가 은혜를 입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창6:8) 증거합니다. 그러므로 늘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6. 세상은 강한 중독성이 있습니다.
여기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 는 말씀이 바로 그것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포도주에 물을 타서 연하게 마셨습니다. 그렇지만 여기 나오는 포도주는 물에 타지 않은 포도주로서 마시면 금방 취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세상맛을 보게 되면 그 미혹에 도취되지 않을 수 없다는 교훈입니다. 그러므로 그 무엇보다 세상 조심해야 합니다. 그 중독성이 얼마나 강한지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오기 어렵습니다. 삼손처럼 하나님이 주신 능력과 인생가지 망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잠5:4-5에 “대저 음녀의 입술은 꿀을 떨어뜨리며 그 입은 기름보다 미끄러우나 나중은 쑥같이 쓰고 두 날 가진 칼같이 날카로우며 그 발은 사지로 내려가며 그 걸음은 음부로 나아가나니 그는 생명의 평탄한 길을 찾지 못하며 자기 길이 든든치 못하여 그것을 깨닫지 못하느니라.” 했습니다. 이것이 세상 모습입니다. 세상 따라가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멸망하고 맙니다. 우리 모두 세상이 무엇인지 그 정체를 깨달아 주 예수의 은혜로 온전히 피할 수 있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원문보기 글쓴이: agas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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