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 알곡론 4 (계 14:18)
18 또 불을 다스리는 다른 천사가 제단으로부터 나와 예리한 낫 가진 자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불러 이르되 네 예리한 낫을 휘둘러 땅의 포도송이를 거두라 그 포도가 익었느니라 하더라
이 시간은 “천국 알곡론”이라는 제목으로 ‘영적추수와 열심’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우리가 천국 알곡이 되기 위해서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인간 편에서 열심 있는 믿음도 필요합니다. 그래서 딤전4:5에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늘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알곡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성령의 불을 받아야 합니다.
18절 “또 불을 다스리는 다른 천사가” 여기 불이 나오는데 여기 불은 어떤 불일까요? 성령의 불입니다. 그러니까 성령의 불을 받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사 6장을 보면 제단 불을 다스리는 스랍 천사가 나옵니다. 사6:6-7에 “그 때에 그 스랍 중의 하나가 부젓가락으로 제단에서 집은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그것을 내 입술에 대며 이르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이처럼 성령의 불을 받을 때 변화도 받고 알곡도 되고 헌신적인 일군도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4:3-4에 “시온에 남아 있는 자,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 자 곧 예루살렘 안에 생존한 자 중 기록된 모든 사람은 거룩하다 칭함을 얻으리니 이는 주께서 심판하는 영과 소멸하는 영으로 시온의 딸들의 더러움을 씻기시며 예루살렘의 피를 그 중에서 청결하게 하실 때가 됨이라” 했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느헤미야서에도 나오지만 예루살렘은 대대로 적의 공격목표였기 때문에 시온에 거주자는 목숨 걸고 싸울 자세가 없이는 거주자가 될 수 없었습니다. 이런 목숨 건 예루살렘 거주자에게 하나님께서 성령의 불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목숨 건 신앙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다니엘이 목숨 걸고 신앙생활하다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고, 예루살렘에 모여 목숨 걸고 기도했던 120문도들이 알곡이 되었고, 지금도 하나님을 힘차게 경외하는 자들이 성령의 불을 받고 변화되고 있습니다.
2. 헌신적인 믿음이 필요합니다.
다시 18절 “또 불을 다스리는 다른 천사가 제단으로부터 나와” 이번에는 천사의 출처입니다. 이 불을 주관하는 천사가 어디서 나왔습니까? 제단으로부터 나왔습니다. 성전에 불이 있는 제단은 두 곳입니다. 먼저 성전뜰에 있는 번제단입니다. 이곳은 제물을 태워 제사하는 곳입니다. 그리고 다른 한 곳은 성소 안의 분향단입니다.
그럼 본문에 나오는 제단은 어느 제단일까요? 그러나 두 곳을 다 포함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분향단의 불은 반드시 번제단에서 옮겨오기 때문에(레16:11-12) 불을 다스리는 천사는 번제단과 분향단을 오가는 천사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번제단은 헌신을 상징하고, 분향단은 기도를 상징합니다. 즉 참된 알곡이란 우리의 몸과 마음을 바쳐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는 말입니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알곡이 될 수 없습니다.
3. 경건을 연습해야 합니다.
“불을 다스리는 다른 천사” 이번에는 불을 다스린다는 의미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불은 성령의 불이요, 제단은 헌신과 기도라면, 그럼 불을 다스린다는 것은 무얼 말할까요? 불이 활활 타오르게 도와주는 걸 말합니다. 번제만 보더라도 불이 잘 탈 수 있도록 놋그물 위에서 번제를 드립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헌신할 수밖에 없고 기도할 수밖에 없도록 말씀으로 감화 감동 혹은 연단을 통해서 신앙의 불이 타오르게 합니다. 그렇지 않고 완악할 때는 강제로라도 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시32:8-9에 “내가 네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 너희는 무지한 말이나 노새 같이 되지 말지어다 그것들은 재갈과 굴레로 단속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가까이 가지 아니하리로다” 했습니다.
이것이 본문의 배경과도 어울리는 해석입니다. 즉 가을에 포도를 짓밟아 추수하듯 우리를 은혜와 연단으로 하나님 앞에 나와서 엎드리지 않을 수 없도록 훈련시키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말씀의 감동을 받으면 받을수록 좋고 하나님을 두려워 할 줄 아는 경건이 깊을수록 좋습니다.
그래서 히12:11-12에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했습니다. 여기 무릎을 일으켜 세우는 것은 적극적인 기도의 사람이 되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환경을 원망하지 마시고 왜 이런 환경을 주시는지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규칙적인 신앙생활에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다니엘이 바벨론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것도 목숨 걸고 하루 세 번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그 외에도 주일성수와 정한 예배와 개인기도 역시 큰 은혜의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규칙을 정해 놓고 힘써 할 때 하나님 나라의 참 알곡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4. 그러나 말씀 안에서 열심해야 합니다.
18절 “또 불을 다스리는 다른 천사가 제단으로부터 나와 예리한 낫 가진 자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불러 이르되 네 예리한 낫을 휘둘러 땅의 포도송이를 거두라 그 포도가 익었느니라 하더라” 불 다스리는 천사가 예리한 낫을 가진 천사에게 포도송이를 거두라고 외치는 모습입니다. 그러니까 불 더하기 낫입니다.
그런데 작은 음성이 아니라 큰 음성이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열심이 말씀을 떠나서는 안 된다는 소극적인 의미와 아울러 열심을 다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는 적극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고전4:20에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했기 때문입니다.
그걸 알지 못하고 성령의 은혜를 간구한다면서 말씀을 떠나 신비주의로 나가는 자들이 있는데 그래서는 사탄의 잔치밖에는 더 되지 않습니다. 그런 열심히는 알곡이 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열심을 내시기 바랍니다.
5. 그리고 말씀 안에서 열심할 때 참된 알곡으로 변화를 받습니다.
18절 “네 예리한 낫을 휘둘러 땅의 포도송이를 거두라 그 포도가 익었느니라 하더라” 여기 포도송이를 땅의 포도라고 한 점을 주시하시기 바랍니다. 본래 땅은 죄악으로 저주를 받았으며 노아의 때 세상이 물의 넘침으로 멸망한 것처럼 이제 이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셨습니다(벧후3:7).
그러므로 땅은 죄와 심판의 상징입니다. 그리고 포도송이는 그 땅의 소산이므로 죄의 열매를 상징합니다. 그러니까 땅의 포도송이는 우리 마음속의 갖가지의 죄성을 가리킵니다. 죄란 원문으로 보더라도 죄다발입니다. 헬라어로 ‘하마르티아스’ (άμαρτίας)인데 복수형입니다.
이처럼 인간의 죄는 마치 포도송이와 같이 가장 큰 줄기인 불신 죄에서 비롯되어 하나님에 대한 죄 사람에게 대한 죄로 구분되고 이것 역시 다시 세분화되어 있습니다. 이런 어찌할 수 없는 큰 죄 다발을 우리가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땅의 포도송이가 푸르지 않고 익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죄인임을 깊이 인식하고 죄를 처리하고자 하는 열망이 충분히 극에 달하였음을 의미합니다. 인간은 옛날에도 죄인이고, 지금도 죄인입니다. 그러나 다만 변한 것은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그 죄를 처리하고자 하는 인식도가 성장했다는 것입니다.
마치 창15:16에 가나안 사람들의 죄악이 아직 관영하지 않았지만 점점 타락하여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거기 사는 일곱 족속들이 완전하게 타락하여 심판을 받음과 같이 우리가 전적으로 타락한 구제불능의 죄인임을 그렇게 점점 인식하기 시작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나는 심판의 대상일 수밖에 없고 범죄하여 넘어질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깨달아 온전히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으로 자라갈 때 그 때가 바로 우리 속에 죄가 심판 받을 때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경외함의 부족해서는 죄가 처리되지 않습니다.
잠16:6에 “인자와 진리로 인하여 죄악이 속하게 되고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말미암아 악에서 떠나게 되느니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늘 하나님을 경외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예배로서 가까이 하면 우리 속의 죄다발은 사라지게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먼저 율법을 통하여 우리 죄를 깨닫게 하시고 혹은 삶의 환경과 각종 연단의 파트너를 통하여 우리가 본질적으로 얼마나 악한 자임을 깨닫게 하십니다. 그래서 참으로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는 살 수 없음을 깨닫고 날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으로 발전해 나가는 것이 죄악의 포도송이가 처리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은 상한 갈대로 꺾지 아니하시고 꺼져가는 심지도 끄지 아니하시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시는 좋으신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그만큼 우리가 온전한 천국의 알곡 되기를 갈망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강단에서 선포되는 주의 말씀과 또 우리의 삶에서 연단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의 의미를 깊이 깨닫고 더욱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인으로 거듭나셔서 하나님의 참 믿음의 알곡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원문보기 글쓴이: agas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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