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천사의 경고 1 (계 14:6)
6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주하는 자들 곧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이 시간에는 “세 천사의 경고”라는 제목으로 부제목으로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는 내용으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말씀을 드리기 전에 영국의 유명한 부흥사 로랜드 힐이 목격한 이야기를 드리고자 합니다. 어느 날 그가 거리를 지나가는데 여러 마리의 돼지가 마치 양이 목자를 따라가듯 어떤 사람을 줄줄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돼지가 어떻게 양처럼 목자를 따라 갈 수 있겠습니까?
그는 하도 신기해서 돼지들의 뒤를 따라가 보았더니 그 돼지들은 지금 도살장으로 가고 있는데도 아무 반항 없이 따라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힐 목사가 물었더니 그 사람이 말하기를 "나에게는 비결이 있지요. 보시다시피 나는 완두콩 바구니를 들고 오면서 계속 몇 알씩 흘려주었지요." 이처럼 마귀가 사람을 그렇게 유혹하여 지옥으로 끌고 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장 어리석은 사람은 죄의 유혹에 끌리거나 죄를 버리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천둥번개치는 날 철재를 가지고 일하는 사람보다 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6절부터 보면 세 천사가 연이어서 경고를 보냅니다. 세 천사, 왜 세 천사일까요? 3은 완전수이지요. 그리고 세 천사가 전하는 복음이니까 이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언가 완전한 것을 요구하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첫째로 세상을 사랑하지 말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사랑해서는 안 되는 이유는 무얼까요?
1. 성도는 하늘에 속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6절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이번에는 천사가 독수리와 같이 공중을 날아가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그냥 공중이 아니고 복음 가지고 공중을 날아갑니다. 그러니까 그 복음은 공중복음 혹은 하늘의 복음입니다. 이것은 마치 독수리가 새끼들 앞에서 비행 시범을 보이면서 따라오기를 바라는 그 모습을 연상시킵니다.
얼마 전에 동물농장에서 매를 취재한 것을 보니까 매가 새끼들을 그렇게 훈련시키더군요. 먼저 새끼들 앞에서 날개 짓을 해서 시범을 보이고, 가까운 대로 날아가 앉아서 새끼들을 부르고, 그래도 못 따라 온 새끼들에게는 먹이를 줄듯 말듯 하면서 밖으로 날아 따라서 날도록 유인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처럼 우리 성도는 땅에 속한 자가 아니라 하늘에 속한 자입니다. 그래서 골3:1-3에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했습니다.
공중은 권세의 자리입니다. 공중을 사탄에게 내어주면 안 됩니다. 우리는 높이 되신 예수님의 공로로 땅의 사람이 아니라 하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딤후2:10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받게 하려 함이라" 했고, 빌3:20에서는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 린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천사의 공중 복음은 성도는 세상을 이긴 승리자이며, 그러므로 우리가 세상에 속해서는 안 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2. 아직 땅에 속해 있지만 곧 떠날 자들이기 때문에 세상을 사랑해서는 안 됩니다.
다시 6절 “땅에 거주하는 자들 곧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여기 복음의 대상이 나옵니다. 땅에 거주하는 자들입니다. 여기 땅에 거주하는 자들은 지구에 거한 자들도 되겠지만 그보다 아직 세상을 사랑하며 세상에 속해 있는 자들을 가리킨 말씀입니다.
성도는 하늘 사람들인데 우리가 아직도 땅의 사람으로 세상에 속해 살아간다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안타까워 하시겠습니까? 어서 죄에서 떠날 준비해야 합니다. 그래서 행2:40에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상승은 했지만 땅에만 속해 있다면 어떻게 재림하시는 주님을 맞이할 수 있겠습니까?
하늘을 날던 청둥오리 한 마리가 잔잔한 호수에서 집오리들이 한가롭게 노는 것을 보고 대열에서 이탈하여 집오리와 친구하며 겨울이 지나 북쪽으로 날아갈 때까지 함께 살기로 했습니다. 집오리들과 사는 것은 즐거웠습니다. 낮에는 호수에서 놀고 밤에 집으로 들어오면 주인이 푸짐한 먹이를 주기 때문에 배고플 일도 없고 애써 먹이를 찾아다니지 않아도 됐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느덧 겨울은 지나고 북쪽 나라로 갈 날이 왔습니다. 친구들이 하늘에 나타나 함께 가지고 청둥오리를 부릅니다. 그런데 웬 일입니까? 청둥오리가 날갯짓을 했지만 이미 날개는 굳어버렸고 몸은 무거워 날아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땅에 속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세상을 사랑해서는 안 됩니다.
3. 깊이 세속화 되어 하나님의 진노 아래 멸망 직전에 와 있기 때문입니다.
6절 “땅에 거주하는 자들 곧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방언과 백성”이라 했는데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방언과 백성”은 무엇입니까? 이들은 본래 바벨탑 이전에는 없던 분류입니다.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방언과 백성은 바벨탑을 쌓던 하나님을 거역하던 무리들을 연상시킵니다.
창11:6-9에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 후로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로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으므로 그들이 그 도시를 건설하기를 그쳤더라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음이니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바벨탑을 쌓기 전에는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교만하여 자기들의 이름을 높이고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흩어짐을 면하려고 바벨탑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그걸 보신 하나님께서 흩으시므로 그들은 민족과 종족으로 분류되고 언어가 달라져 세상으로 흩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방언과 백성이란 이런 교만하고 완악한 하나님을 거역하는 우리 인간의 죄악된 속성들을 가리킵니다. 세분해서 설명한다면 민족과 종족처럼 하늘의 사람과 땅의 사람은 영이 달라요. 거룩하고 참된 믿음의 영이 아니라 불신앙과 타락의 영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단교되어 영적으로 죽어 있습니다.
방언도 달라요. 믿음의 언어가 아니라 세상 관점의 죽겠다 안 된다 염려하고 근심하고 망령되이 일컫는 세상의 언어라는 말입니다. 말이 바뀌지 않았다는 것은 그 생각도 바뀌지 않았다는 것이요, 그 마음에 가득한 것을 말한다는 점에서 악이 가득함을 의미합니다. 백성도 달라요.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지만 세상에 속하면 세상 나라 백성입니다. 이것은 불신자의 영일수도 있지만, 예수 믿는다고 하나 아직 세속에 방황하는 영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그래서 고전3:3에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고린도 교인들의 영적상태가 바로 그랬습니다. 영적으로 보면 대단히 심각한 상태입니다. 그러므로 다 떨어버리고 하늘의 신령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4. 세상을 사랑하지 않아야 할 이유는 세상은 진노 아래 있고 무너질 날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했습니다. 영원한 복음은 예수 복음이 영생의 복음이니 곧 영원한 복음입니다. 그런데 영생의 복음이라 하지 않고 영원한 복음이라 했을까요? 이 부분을 해석할 때 마치 어떤 독특한 복음이 있는 것처럼 확대해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말씀은 상대적인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즉 이 땅의 썩고 부패하고 사라질 것 죄악된 것을 추구하지 말고 하늘의 신령하고 영원한 것을 찾으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요일2:17에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했습니다. 그러니까 영원한 복음이란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된 땅의 썩을 것이 아니라 더 가치 있고 영원한 것을 추구하라는 메시지입니다.
땅에 속한 것은 언젠가 다 사라질 날이 옵니다. 그래서 고전3:14-15에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 이 불은 시험입니다. 하늘에 속한 것이 아니면 하나님의 진노로 무도 불 탈날이 오게 될 것입니다.
존 번연의 천로역정의 맨 앞 부분 이야기인데, 번연이 한 구렁텅이에서 꿈을 꾸었습니다. 꿈에 보니 한 사람이 황막한 광야에서 남루한 옷을 입고 등에는 무거운 짐을 지고 손에는 책 한 권을 들고 집을 떠나려는 듯 집을 등지고 돌아서서 그 책을 읽다가 울고 떨며 슬퍼하며 근심하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다름 아닌 장망성(將亡城) 즉 장차 망할 성, 즉 세상에 사는 기독도(基督徒)였는데, 기독도가 장망성을 떠나 천성을 가겠다고 결심한 것은 바로 성경을 읽다가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듣고 그런 마음이 일어나시기 바랍니다. 그렇지 못하고 죄악의 시궁창에 빠져 살아가고 있다면 신령한 복은 누릴 수 없고 세상과 함께 울고 웃다가 멸망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알았기에 기독도는 불신앙과 죄를 버리고 천국행을 선택하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저 위에서 우리를 부르시고 계십니다. 더 이상 땅에 속한 자가 되지 말고 하늘에 속한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공중에 날아가는 천사가 전하는 영원한 복음처럼 하늘에 속한 영원하고 아름다운 것을 추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하나님의 은혜를 힘 입어 진노의 세상에 안주하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더욱 진실로 회개함으로 패역한 세상에서 구원을 받아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시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원문보기 글쓴이: agas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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