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하는 십사만 사천 4 (계 14:4-5)
4. 이 사람들은 여자와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순결한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에서 속량함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5.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
이 시간 “찬양하는 십사만 사천” 천국찬양대라는 제목으로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여기 천국찬양대란 꼭 천국 가서만 노래하는 찬양대가 아닙니다. 우리 성도는 고전10:31의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하신 대로 예배는 물론이고 모든 삶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천국찬양대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더 가치가 있습니다. 그래서 눅15:7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하신 것과 같습니다. 오늘 본문이 그것입니다. 본문은 144,000의 지상생활이 어떠했는지를 잘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그런 관점에서 말씀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계속하여 144,000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14. 그들은 담대하고 강건한 자들이었습니다.
4절 “이 사람들은 여자와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순결한 자라” 문자대로만 본다면 십사 만 사천은 남자여야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 남자에게 하는 교훈은 여자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기 때문에 어느 한 편만 이야기하는 곧잘 이런 일방적인 표현이 많습니다(마5:28). 그러나 이 본문에서는 그 의미가 다릅니다. 여기서는 그냥 남자를 의미하고 있다고 봅니다. 정확히 말하면 남성적인 사람을 가리킵니다.
왜냐하면 144,000과 같이 이렇게 강하고 좌우로 치우치지 않으려면 남자와 같지 않으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고전16:13에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라.” 했습니다. 이런 점에서 성령 받은 사람은 모두 남성적인 사람이 됩니다. 여성들 중에 능력 받은 사람들을 보세요. 얼마나 담대한지 웬만한 남자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성령 받으면 연약함이나 부끄러움 그런 것은 다 사라지고 맙니다.
왜냐하면 그런 능력이 아니면 이 세상을 이길 수 없고 맡긴 사명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런 담력을 주시는 것입니다. 강하고 담대해야 여호수아처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복지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144,000은 바로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15. 그들은 순결한 자들이었습니다.
4절 “이 사람들은 여자와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순결한 자라” 여기 여자가 나옵니다. 앞에서는 남자였으나 여기는 여자입니다. 여기 여자는 그냥 여자일 수 있고, 여자 입장에서는 그냥 남자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144,000은 이성문제로 자기를 더럽히지 않았다고 해석해도 무방한 구절입니다.
그러나 지킬 것도 많은데 그것 하나 잘 지킨다고 144,000이 다 되는 건 아닙니다. 성경은 세상 사랑을 음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방종교에 기웃 거리는 카토릭도 음녀에 속합니다. 하나님 라고 다른 것을 함께 사랑하는 것을 음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약4:4에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했습니다.
육신의 간음만 간음이 아니라 세상을 사랑하는 것도 간음이라는 말입니다. 신랑 예수만 사랑하기로 해놓고 세상을 더 좋아한다면 그것은 자기를 더럽힌 것이요, 정절을 지키지 못한 것입니다. 마치 음란한 고멜과 같이 물질 명예 권세 쾌락 등을 남편 삼고 사랑하는 것이 바로 간음입니다. 부모 자녀까지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니가 144,000은 하나님 제일주의 신앙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16. 이들은 십자가 지고 주를 따라가는 자들입니다.
4절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여기 어린양은 나를 피로 사신 구속의 주님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그리고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간다는 것은 그 길이 심히 좁고 험하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정도가 아니라 어린 양과 결부시켜서 생각해 봐야 할 말씀입니다.
즉 어린 양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시고 골고다 언덕까지 가신 것처럼 자기 십자가 지고 주를 따라 가는 자라는 것을 암시한 표현입니다. 마16:24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하신 것과 같이 자기 십자가 지고 십자가에 달린 주님을 따라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럼 구체적으로 어떻게 따라가야 한다는 말입니까? 이 말씀은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살듯 결국 구원의 과정을 밟아간다는 의미입니다. 즉 소명 중생 회개 신앙 칭의 성화 그리고 영화 구원의 과정을 밟아간다는 말입니다. 여기에서의 기초는 철저히 내가 죽는 것입니다. 내가 얼마나 어떻게 죽느냐에 따라 그 신앙의 깊이가 달라집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며 그리스도와 함께 왕 노릇하는 그 과정을 믿음으로 그리고 순종으로 철저히 수납한 자들입니다. 우리에게 십자가와 같은 환경이 주어질지라도 나를 위해 피 흘리신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한다는 생각으로 기뻐하며 감사할 수 있다면 그는 성화를 넘어 영화의 수준에 도달한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벧전4:12-14에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144,000과 같이 천국의 찬양대가 되려면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함을 심히 기뻐하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17. 이들은 역경 가운데 거룩함을 이룬 자들입니다.
다시 4절 “사람 가운데에서 속량함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여기 “사람 가운데에서” 무슨 의미일까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천에 하나 만에 하나 택하셨으니 사람 가운데서 택하셨다는 의미일까요? 그것은 맞지만 이건 너무나 당연한 말이라 사실 불필요한 말이기도 한 말입니다.
여기 “사람 가운데”란 뒤의 처음 익은 열매라든지 전후문맥을 참고해 볼 때 다름 아닌 그들의 연단을 암시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연단하실 때 대부분 사람 속에서 시키십니다.
이것이 다윗의 고백입니다. 시57:4에 “내 혼이 사자 중에 처하며 내가 불사르는 자 중에 누웠으니 곧 인생 중에라 저희 이는 창과 살이요 저희 혀는 날카로운 칼 같도다” 했습니다. 대부분의 연단은 대인 관계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입니다. 야곱 요셉 모세 다윗 이스라엘 백성들 모두 그랬습니다. 특히 가정은 여러분의 신앙 훈련장입니다.
그래서 눅12:49-53에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하게 하려 함이로라 이 후부터 한 집에 다섯 사람이 있어 분쟁하되 셋이 둘과, 둘이 셋과 하리니 아버지가 아들과, 아들이 아버지와, 어머니가 딸과, 딸이 어머니와, 시어머니가 며느리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분쟁하리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보면 가장 큰 어려움은 가정에서 시작됩니다. 그래서 대인관계 혹은 물질 자녀 질병 언어 등 작은 것 하나 가지고도 가시와 같이 찔러대니 기도하지 않을 수 없고 하나님을 멀리 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 평안한 가정 몇이나 될까요? 이것이 만족하면 저것이 부족하고 저것이 만족하면 이것이 문제가 되고, 왜 그럴까요? 이것이 다 하나님의 연단하시는 손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의 매사를 우연으로 보지 말고 하나님께서 내신 신앙훈련의 기회로 보아야 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기 시작할 때 우리의 삶은 상상할 수 없이 달라집니다.
이것을 알지 못했을 때는 겨울의 푸른 무화과 열매처럼 차가운 환경을 원망하며 수없이 시험 들게 되지만 이것을 아는 순간부터는 역경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받고 믿음의 적극적인 생활을 통해 처음 익은 무화과 같이 온전한 믿음의 사람으로 발전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 “처음 익은 열매”란 가을에 달려 겨울을 통과하여 이른 봄에 따는 봄 무화과로 혹독한 겨울을 견뎌내는 무화과를 말합니다. 이스라엘의 무화과는 이른 봄의 처음 익은 무화과와 잘 익은 여름 무화과로 나눕니다. 여기 처음 익은 무화과는 가을에 맺혀 겨울을 이기고 이른 봄에 익는 무화과이기 때문에 지상에서 온갖 연단 중에서도 성화된 성도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잘 익은 여름 무화과는 장차 천국에서 완성될 온전한 성화와 영화입니다. 그러나 지상에서 성화는 비록 처음 익은 무화과와 같이 완전하지는 못하지만 시련을 통과했다는 점에서 더욱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큰상이 되고 귀히 써 주시는 믿음이 됩니다.
그러므로 연단 잘 받으시기 바랍니다. 히12:12-13에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 간략히 말하면 연단의 목적이란 신앙생활 더 열심히 하라는 말씀입니다.
18. 이들은 온전히 하나님의 소유가 된 자들입니다.
4절 하반 절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에게도 속하고 어린 양 예수님께도 속했다는 말입니다. 왜 하나님께 속했다고 하면 다 될 텐데 하나님과 어린 양이라고 했을까요?
요17:6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그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결국 아버지의 것이 예수님의 것이라는 의미에서 함께 써도 좋을 말씀입니다.
그러나 계시록에서는 그렇게 넘어갈 수 없습니다. 왜 그런 표현법을 여기서 써야 했는지 그 진정한 의미가 뭐냐는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것이란 특별히 선택을 강조한 의미입니다. 사43:1-2에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그런데 어린 양에게 속한 자이기도 합니다. 즉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구속 받아 온전히 그리스도의 것으로 성별된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본문의 전체적인 문맥과도 어울리는 해석입니다.
말3:17-18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나는 내가 정한 날에 그들을 나의 특별한 소유로 삼을 것이요 또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아들을 아낌 같이 내가 그들을 아끼리니 그 때에 너희가 돌아와서 의인과 악인을 분별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아니하는 자를 분별하리라” 하신 말씀과도 같은 말씀입니다.
민25:2-3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알 신에 절할 때 “이스라엘이 바알브올에게 가담한지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시니라”에서 여기 “가담한지라”는 말은 개역성경에는 “부속 되니라.”로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144,000은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만 속한 자였습니다. 그러니까 이제는 세상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마귀의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원하여 성별된 자라는 말입니다.
19. 이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변화된 사람들입니다.
5절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 했습니다. 이들이 입에 거짓말이 없다는 것은 곧 그들의 온전성을 시사합니다. 왜냐하면 약3:2에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5:48) 하셨습니다.
20. 마지막 이들은 하나님의 기쁨이 된 자들입니다.
그 다음 이어지는 말씀이 “흠이 없고”, 여기 흠이 없다는 건 육신적 도덕적으로 결함이 없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흠”이란 구약에서 제물을 취할 때 결격 사유가 없는 짐승을 의미했습니다. 그러므로 흠이 없다란 하나님의 기쁨이 될 만한 제물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흠이란 용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에 대해서 말할 때도 썼던 표현입니다. 엡5:26-27에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신 대로 그들은 예수님의 신부되기에 부족함이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온전한 기쁨인 천국찬양대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구원 받은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144,000이 인침 받은 자였듯 말씀과 성령의 은혜를 더 깊이 받아들여 변화되시기 바랍니다. 성숙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 성령 충만 받아 강하고 담대하고 순결하며 십자가 지고 주를 따라가며 연단을 기쁘게 받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그의 소유가 되며 하나님의 기쁘심이 되도록 온전히 변화 받아 144,000과 같이 온전한 영광을 돌려드리는 천국의 찬양대가 다 되시기 바랍니다.
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원문보기 글쓴이: agaser
'신약 > 요한계시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 천사의 경고 2 (계 14:7) (0) | 2024.05.16 |
---|---|
세 천사의 경고 1 (계 14:6) (1) | 2024.05.11 |
찬양하는 십사만 사천 3 (계 14:3) (0) | 2024.04.26 |
찬양하는 십사만 사천 2 (계 14:2) (1) | 2024.04.20 |
찬양하는 십사만 사천 1 (계 14:1) (0) | 2024.04.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