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를 옷 입은 한 여자 8 (계 12:14)
14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
오늘은 "해를 옷 입은 한 여자"라는 제목으로 계속해서 ‘교회의 연단’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신 꿈이 크십니다. 하나님의 형상 곧 그리스도 예수의 장성한 분량의 사람을 만드시기를 간절히 원하고 계십니다.
10년 경력의 베테랑 F16 조종사 한 명을 길러내는데 76억이 든다고 합니다. 이것은 2003년 기준이니까 지금은 100억이 훨씬 넘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길러내는데 그 비용이 얼마나 될까요? 그 아들 예수님을 희생시킨 것 빼고도 숫자로 계산할 수 없는 더 많은 비용을 지출하고 계신다고 믿습니다.
전직대통령 경호하는 비용만 해도 년간 10억, 현직대통령은 수십억 100억 상상할 수 없는데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천군 천사들을 보내 24시간 호위해 주시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의 신앙훈련이 너무 귀하기에 지금 이 시간도 모든 것을 다 기울여 신앙훈련시키시고 계십니다.
이처럼 오늘 본문의 배경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과 광야에서 훈련 받던 출애굽기와 예수님께서 제자교육하시던 3년 반 공생애가 그 배경입니다. 내용은 지상의 그리스도의 교회가 하나님의 특별하신 섭리 가운데 연단 받는 이야기입니다.
그럼 우리에게 어떻게 연단이 주어질까요?
4. 연단은 불가항력적인 하나님의 능력으로 주어집니다.
14절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여기 큰 독수리의 두 날개란 출32:11이나 신4:37이나 행13:17에 “큰 권능으로” 인도하셨다는 말씀 대로 전능하신 하나님의 권능을 말합니다. 이 하나님의 권능을 이길 자가 누가 있겠습니까?
아무리 연단의 광야 싫어도 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믿음 없으면 하나님의 연단을 피할 수 없고, 그 연단은 우리가 항복할 때까지 계속됩니다. 하나님을 이기려고 하면 안 됩니다. 빨리 항복할수록 좋고 빨리 순종할수록 좋습니다.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의도를 빨리 깨달아야 합니다.
광야를 졸업할 가장 빠른 길은 우리가 회개로서 성화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믿음으로 온전히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세상을 사랑했던 마음을 회개하고, 신앙생활에 소홀했던 무너진 제단을 수축하고 우리 몸과 마음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산 제물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진실로 회개하기 전에는 하나님의 손길이 치워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벧전5:6에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군대를 편성하여 그 대오로 진을 치고 그 대오로 행진한 것처럼 우리가 말씀에 살고 말씀에 죽는 그런 투철한 믿음 가져야 진정 회개했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신약에 로마의 특수부대 장교인 백부장처럼 투철한 군인정신으로 하나님을 섬기시기 바랍니다.
5. 연단은 자신의 위치와 환경을 통해서 주어집니다.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여기 자기 곳은 어디일까요? 여기 자기 곳은 먼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파별로 자기 위치와 자리를 정해 주신 그 배경에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민수기를 보면 하나님께서 각 지파의 우두머리를 정하신 후에, 20세 이상 싸움에 나갈만한 자를 계수하게 하신 다음, 성막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에 진을 치게 하셨습니다. 먼저 성막을 중심으로 먼저 레위지파가 사면으로 둘러 진치고, 이 레위지파를 이스라엘 열두 지파가 3지파씩 사면으로 둘러 진을 쳤습니다. 행진할 때는 여호와의 법궤가 맨 앞에 서고 그 뒤에는 유다지파가 선두에 서서 진행하게 됩니다. 이처럼 이스라엘은 모두 자기 곳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자기 환경, 자기 위치에서 훈련을 받습니다. 먼저 우리의 삶이 바로 광야 훈련소입니다. 이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왜 이런 일이 있을까? 각자의 삶이 훈련인 줄 모르기 때문에 삶이 이해가 되지 않고 하나님과 싸우려고 합니다. 우리의 삶이 우리의 환경이 바로 훈련용이라는 것만 알아도 신앙훈련이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생활에 합격하시기 바랍니다. 예배 100점, 말씀 100점, 기도 100점, 찬송 100점, 감사 100점, 사랑 100점, 봉사 100점 100점, 순종 100점, 순교적 신앙 100점 맞으시기 바랍니다.
6. 연단은 교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집니다.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여기 광야 자기 곳의 또 다른 의미입니다. 가장 중요한 광야의 자기 곳은 성막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자기 곳을 삼으시고 거하시기로 하셨으므로 이스라엘 백성들도 성막을 떠날 수 없습니다. 이처럼 광야 자기 곳은 바로 교회입니다. 그래서 행7:38에 광야교회라, 칼빈도 교회는 천국 백성 훈련소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 떠나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엡4:11-12에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해서 양육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군들은 유모와 같습니다. 교회 떠나서 잘 믿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해입니다. 교회를 존중하고 교회의 가르침 잘 받으시기 바랍니다.
7. 연단은 강도가 높아 한눈팔 사이가 없습니다.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여기 뱀은 앞의 큰 붉은 용을 말합니다. 아이가 남자가 되고, 큰 용은 뱀이 됩니다. 영적 세계란 그래서 신비합니다. 마귀가 큰 모습으로 나타났다가도 성도의 믿음 앞에 아주 작아져 버리기도 합니다. 온 세상을 전쟁으로 세속으로 문화로 온갖 흉악한 일로 휘젓고 다니던 막강한 사탄이 성도 앞에서 어린이보다 못할 만큼 약해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기 뱀이란 에덴동산의 그 간사한 뱀입니다. 그러니까 꾀고 속이고 혹하고 그럴듯하게 미혹하는 우리에게 잡념을 몰아넣어주는 사탄을 그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뱀의 낯을 피하여 연단을 받게 됩니다. 뱀의 낯을 피한다는 뜻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연단의 강도가 높아서 연단을 받는 도중 다른 곳에 한눈팔 사이가 없다는 말입니다. 몸이 병들어 죽어 가는데 어디에 마음 둘 수 있겠습니까? 자녀에게 문제가 생겼는데 어디에 신경 쓸 여력이 있겠습니까? 물질문제가 생겨 잠을 이룰 수도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루도 나와서 하나님 앞에 부르짖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습니다.
훈련소가 그런 곳입니다. 한눈팔 시간도 신세타령할 시간도 없습니다. 채찍도 아파야 채찍이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신앙 훈련을 시키실 때 다른 곳에 신경 쓸 수 없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오로지 하나님만 붙들고 마음 다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을 완성하시기 바랍니다.
8. 연단은 섭리와 말씀 안에서 단계적으로 이루어집니다.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는다 했는데 먼저 성경에서 양육이란 말씀의 양육을 말합니다. 딤전4:6에 “믿음의 말씀과 네가 따르는 좋은 교훈으로 양육을 받으리라” 했습니다.
그런데 이 양육이란 어떤 것일까요? 그런데 양육 일자에 대한 표현이 오묘합니다. 같은 기간인데 6절에서는 1260일 동안이라 하고, 여기 14절에서는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라고 했습니다. 마흔 두달이라는 표현도 있습니다. 그 의미는 이렇습니다. 우리의 훈련은 두 방향에서 진행된다는 것입니다.
즉 1260일은 하루 하루를 강조한 표현으로 매일 매일 섬세한 섭리로서 우리를 지도하시고 인도하심을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깨닫는 말씀이나 이적이나 체험이나 일상생활의 작은 어떤 것도 하나님의 섭리로 나타난 훈련으로 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적을 통해서 제자들에게 깨닫게 하신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교육은 이적과 섭리만이 아니라 말씀을 가르치시는데도 힘쓰셨습니다. 그게 바로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입니다. 모두 합하면 세 때 반인데 이것은 3년 반 예수님의 공생애 제자사역을 여러 단계적으로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기 때는 예수님의 사역의 계획표와 같은 것입니다. "때가 차매"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습니다." "비로소" "아직 낮이매" "그 때로부터" 혹은 자기 감춤과 계시,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 만에 살아나시고 40일 후에 승천하신고 오순절에 성령을 부어주시는 등등 모두 때에 의해서 사역하셨습니다.
또한 여기 때는 제자사역의 커리귤럼과 같습니다. 먼저 세례요한이 죽자 비로소 그 때부터 회개를 외치시며 천국복음을 증거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을 부르사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알게 하셨고,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들으신 후에야 비로소 제자들에게 십자가의 복음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잡히시던 날 밤 전과는 달리 사랑을 많이 강조하셨고, 승천하실 때는 기도에 전념하고 성령 받는 일에 집중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이것이 때를 따라 주시는 은혜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는 우리의 훈련은 다 끝난 것이 아닙니다. 한 가지 수료하면 또 다른 것을 훈련하시고 또 다른 것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신의 성품의 참여를 말하면서 벧후1:5-7에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에게 복 주시고 귀하게 쓰시기 위하여 이 세상 광야에서 섭리와 말씀을 통해서 훈련시키시고 계십니다. 우리가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훈련 받아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으로 만들어지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연단은 불가항력적이며, 피할 수 없고, 자기의 위치와 환경과 교회에서 주어지며, 그 강도가 높아 다른데 한 눈 팔 수 없고, 섭리와 말씀 안에서 때를 따라 단계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깊이 깨닫고 십자가 군병으로 온전히 거듭 나는 귀한 성도들이다 되시기 바랍니다.
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원문보기 글쓴이: agas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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