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민수기

하나님께 감사가 없으면 민21:4-9, 눅12:16-210

nam씨 2023. 11. 18. 17:27

하나님께 감사가 없으면 21:4-9, 12:16-210
오래전에 지리산 뱀사골에서 뱀을 잡아다 팔던 한 청년이 동물원 뱀 사육사로 취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취직 턱을 내느라 술에 만취가 되었던 모양입니다. 술에 취한 채로 동물원 일터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는 인도산 코브라가 있는 울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코브라 한 마리를 붙들고 목에 감아보기도 하고 품속에 넣어 보기도 하고 만용을 부리고 있었습니다.
순찰을 돌던 사육사가 "코브라다! 위험하다!" 소리를 질러댔지만 그러나 아랑곳하지 아니하고 꼿꼿이 일어선 코브라 코에다가 입김을 쐬는 사이에 그만 코브라가 그 사람의 코를 꽉 물고 말았습니다. 비명을 지르며 피를 흘리고 쓰러졌습니다. 아무도 그를 도와줄 수가 없었습니다. 긴급 구조반이 도착했을 때 이미 청년의 혀와 시력과 청각이 마비되었고 병원으로 옮기는 도중 그의 몸에 독이 퍼져 싸늘한 시체로 변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구약 본문에 보면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원망하다 불 뱀에 물려 죽게 되는 사건이 기록이 되어 있고, 신약 본문에는 감사도 모르고 자기중심, 물질중심으로 하나님도, 감사도 모르고 살다가 돌연 목숨을 잃게 된 내용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두 본문을 중심으로 하나님께 대한 감사가 없으면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감사가 없는 사람은,


1.불신앙의 사람인 것을 자인하는 불쌍한 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적적인 하나님의 도우심을 통해 출애굽을 했고, 홍해를 육지처럼 건너기도 했으며, 낮에는 구름 기동, 밤에는 불기둥의 보호를 받고, 만나를 통해 일용할 양식을 공급 받는 등 감사할 일들이 너무 많았지만, 그들은 불신앙으로 감사 보다 불평하고 원망하다 하나님의 진노를 사고 심판을 받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민수기에 보면 하나님의 진노를 산 몇 가지 사건들이 기록되어 있는데,
먼저, 므리바의 물 사건입니다. 20:2 이하에 보면 백성들이 가데스 바네아란 곳에 이르러 물이 없으므로 모세와 아론 앞에 나와 어찌하여 광야로 오게 하여 우리와 짐승들을 죽게 하느냐고 원망했습니다. 그동안 그 보다 더 큰 문제들도 해결해 주신 좋으신 하나님이 신데, 이 문제도 해결해 주시리라는 믿음이 없었기 때문에 불평하고 원망한 것입니다.
물로 인한 원망의 사건은 먹고 사는 문제에서 오는 시련을 통해 일어난 사건입니다. 오늘의 그리스도인도 먹고 사는 문제로 인해 시험에 드는 신앙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부족하면 부족해서 불평 원망에 빠지게 되고, 넉넉하면 넉넉해서 하나님 보다 세상으로 빠져가게 됩니다. 신약 본문에 나오는 어리석은 자도 소출이 많아지자 감사는 없고 도리어 세상에서 즐길 것을 생각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었습니다.
다음에, 고라를 중심한 반역 사건입니다. 민수기 16장에 보시면 고라의 반역사건이 일어납니다. 레위 자손인 고라’, 또 르우벤 자손 중에 엘리압의 아들 다단 아비람’, 벨렛의 아들 이 주축이 되어 힘 있고, 유력한 족장들 250명과 세력을 규합하여 모세와 아론의 권위에 도전한 사건입니다. 고라는 교만하여 모세와 아론, 그리고 나아가 불신앙으로 하나님의 권위에까지 도전하게 된 것입니다. 모세는 회중들을 회막 앞으로 나오게 했습니다. 그 때 고라가 자기를 따르는 무리와 함께 모세와 아론을 대적하려 하자 그 때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났습니다.(16:19)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아론에게 그 무리들로부터 떠나라 하시니 모세는 회중들에게 이 악인들의 장막에서 떠나고 그들의 물건도 만지지 말라 했습니다. 그가 말을 마치자마자 고라 일당들이 섰던 땅이 갈라져 그들과 집과 재물을 삼켜 버렸습니다.(31-33)
그 사건 이후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에 대한 불신앙으로 원망을 그치게 하기 위해 모세에게 명하여 각 조상의 가문을 따라 지파대로 지팡이에 이름을 기록하여 12개의 지팡이를 내놓게 한 후 증거궤 앞에 두게 했습니다. 이튼 날 모세가 보니 다른 지팡이는 그대로인데 똑같이 마른 지팡이 지만 아론의 지팡이에 움이 돋고 순이 나오고 꽃이 피어서 살구 열매가 열려 있었습니다.(17:8)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기적의 사건을 통해 믿음의 사람이 되어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와 질서에 순종해야함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그리고, 물이 없다는 불평의 사건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또 불평을 합니다. 신광야에 이르러 '물이 없다!'고 불평했습니다. 심지어는 '만나도 지겹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지날 때 농사를 짓거나 길쌈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았습니다. 만나를 이슬처럼 매일 내려주시자 기름석인 꿀 과자 같은 만나를 먹고 좋아 하더니, 이제는 불신앙으로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95)하며 불평하는 것입니다. 이 불신앙이 있는 곳에 하나님의 심판에 따르게 됩니다.
인류에 저주가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 창세기 3장에 기록되어 있는데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순종하는 대신 사단의 말을 따라 먹지 말라 명하신 선악과를 먹으면서 저주, 재앙, 죽음의 고통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아담의 후예인 인간들 속에는 불신앙의 뿌리가 있어 그런 자들과 사귐을 같게 되면 함께 불신앙의 마음을 가져 불신앙의 말을 하고, 행동을 하다가 같이 심판을 받게 됩니다. 선한 것은 배우기 어려운데, 악한 것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잘 따라합니다. 어떤 사람이 두 마리의 앵무새를 각각 다른 새장에 길렀답니다. 그런데 한 마리는 찬송을 배우고, 한 마리는 욕을 배웠습니다. 주인은 두 마리 앵무새를 함께 두면 찬송을 배우리라 생각하고 함께 새장에 두었습니다. 얼마 후 주인이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두 마리가 똑같이 "주인 새끼 온다." 그러더랍니다. 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런 모습이 있기 쉽기에 부단한 경건의 훈련이 필요합니다. 우리 모두 멸망을 자초하는 불신앙을 버리고 항상 믿음으로 사는 성도가 됩시다.


2.자기중심으로 사는 자의 모습입니다.
불신앙으로 사는 사람들에게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모습은 자기중심적이요, 이기적인 모습입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뜻이나 인도하심에는 아무런 관심을 가지지 않고, 오직 내 뜻대로 자기만 생각하고 삽니다. 신앙인이라 해도 내 생각대로 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과는 거리가 멀고, 타인의 유익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그런 신앙을 가진 자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리가 없고, 드러낼 수도 없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불평과 원망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된 불신앙의 사람들이 그러한 사람이고, 그 대표적인 자들이 고라 무리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오늘 신약 본문의 배경을 보면 무리 중 한 사람이 주님 앞에 나와 유산을 형과 공평히 나누게 해 달라는 부탁을 받으신 주님은 삼가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않다.’하시고, 비유의 말씀을 통해 교훈하신 내용입니다. 한 사람이 어느 해 농사한 소출이 너무 많아 즐거운 비명을 지르며 창고를 늘리고 자기를 위한 앞으로의 계획을 늘어놓습니다. 그에게는 소출이 많은 것에 대한 감사도 없고, 그 계획 속에는 하나님도 이웃도 없으며, 오직 자기 자신 밖에 모릅니다. ‘란 말이 여섯 번이나 나옵니다.
이 사람에게 있어서 물질은 향락의 도구에 불과합니다. 풍성한 소출을 기뻐하며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며 앞으로 즐길 생각만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물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는데 목적이 있지 않았습니다. 6장에 보면 사람들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체험한 후 많은 무리가 주님을 따르며 우리의 임금이 되어 달라는 요청을 했습니다. 주님은 그들이 떡 때문임을 아시고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 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 일하라 하시며 내가 생명의 떡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십자가의 희생을 통해 죄를 사하여 주시고 우리들을 죄에서 구원하시는데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탐심 때문에 구속의 종교를 물질의 종교로 바꾸는 자들은 아무리 많은 물질을 가지고도 물질로는 영혼의 만족을 줄 수가 없기에 만족을 모르고 삽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님의 사랑을 알고 따르는 믿음의 사람은 주님 은혜에 감사 하면서 물질을 하나님과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사용함으로 주님 영광을 드러내며 살게 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물질도 필요한 것이지만 물질보다 우리의 생명이 더 귀합니다. 아무리 값진 옷이라도 몸을 위해 옷이 있는 것이지 의복을 위해 몸이 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물질이 좋다지만 생명을 위해 물질이 필요한 것이지 물질을 생명 보다 더 귀하게 여기며 생명을 잃으면서까지 탐욕을 부리는 것은 어리석은 일임을 깨우쳐 주시는 비유입니다. 우리는 이비유의 말씀을 통해 사람이 사는 데는 물질이 전부가 아니고 의복과 먹는 음식이 전부가 아니라, 오직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고 감사드리며 섬기고 사는 날까지는 먹고 입고 사는 정도로 족하게 여기고 장래의 소망 가운데서 살아가야 함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 자기중심으로 사는 어리석은 자의 모습을 버리고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사는 자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3.눈을 들어 주를 바라보는 자는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똑같은 환경이지만 눈을 들어 주를 바라보는 신앙의 사람은 감사하는 자가 되어 살게 되지만 자기나 세상 것만 바라보는 불신앙의 사람에게는 감사가 없고 결국 심판을 받게 됩니다. 불신앙의 사람은 환경이 좋아도 어리석은 부자처럼 감사할 줄 모릅니다. 환경이 나쁘면 더 불평합니다. 본문 민20:5 "너희가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여 이 악한 곳으로 인도하였느냐 이 곳에는 파종할 곳이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도다."하며 불평했습니다.
3:17-18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했습니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황이나 하박국 선지자가 처한 상황이 같이 좋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불신앙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원망했지만, 눈을 들어 주님을 바라보는 믿음의 사람 하박국은 여호와를 바라보고 즐거워했으며,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기뻐했습니다.
구약 본문에 보면 원망 하다가 불 뱀에 물려 죽어갈 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처방전을 알려 주셨습니다. 21:8-9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본즉 살더라.”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놋을 녹여서 불뱀을 만들어 장대에 달고 백성에게 그 놋뱀을 쳐다보라고 말했습니다. 모세의 말에 순종해서 놋뱀을 쳐다본 사람은 해독이 되어 살았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불순종하며 땅만 쳐다보고 원망, 불평한 사람들은 서서히 독이 퍼져서 죽고 말았습니다. 놋뱀은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것을 미리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3:14-15에서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에서 뱀은 저주받은 것의 대표적 존재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장대에 달리니 사람을 살리는 것이 되었습니다. 십자가도 저주받은 사형 도구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림으로 사람을 살리는 것이 되었습니다. 저주받은 십자가에 예수님이 달려 사람을 살리는 것이 되었습니다. 눈을 들어 그 십자가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의 영혼이 삽니다. 우리의 영혼이 살면 우리의 삶이 달라집니다.
신약 본문에서 하나님께 대하여 부유치 못한 부자를 어리석은 자라고 했습니다. 이런 사람은 아무리 돈이 많아도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사용할 줄을 모릅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재능을 주시고, 모든 것을 주신분이 하나님이신데 감사할 줄 모르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는 배은망덕 자입니다. 그런 사람은 어리석은 자요, 불행한 자입니다. 앤드류 카네기는 죽을 때 물질을 가지고 가지 못한다.’고 말하면서 무려 2555억 달러를 이웃을 위하여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우리 모두 눈을 들어 생명의 하나님을 바라보고 십자가로 구속하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감사하는 성도로 사시기를 기원합니다. 정리합니다. 두 본문을 중심으로 하나님께 대한 감사가 없으면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감사가 없는 사람은,
.불신앙의 사람인 것을 자인하는 불쌍한 자입니다.
.자기중심으로 사는 자의 모습입니다.
.눈을 들어 주를 바라보는 자는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멘.

 

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호현낙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