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요한복음

믿는 자가 되라. 요한복음 20장 19절 - 31절

nam씨 2023. 4. 15. 15:41

믿는 자가 되라. 요한복음 2019- 31

 

요한복음의 마지막 부분에 해당하는 오늘 본문은 한 제자의 의심과 의심에 응답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을 구주 하나님으로 받아들이기에 의심이 많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를 위한 말씀이며 예수를 보지 않고 믿는 우리를 위한 말씀이라 생각됩니다.

 

우리는 믿음의 길을 갈 때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믿어야 되는 것인가? 예수님을 어떻게 전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 봅시다.

 

도마의 예수님 부활을 의심하는 내용은 오고 오는 세대가 부활을 보지 못하고 믿어야 한다고 말씀해 주시는 예수님의 말씀이 간접적으로 듣게 되는 우리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누군가 말을 통해서 복음을 들었고 믿게 되었습니다. 오늘 도마의 의심을 통해 믿는 것은 무엇인지, 믿음의 사람들은 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해 봅시다.

 

1. 의심하는 자.

 

24- 25절 말씀입니다.

열두 제자 중의 하나로서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도마는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하였기에 형편없는 사람일까요?

 

요한복음 1116절에 예수님께서 병든 나사로를 방문하시려고 할 때 다른 모든 제자들의 반대에 맞서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할 만큼 담대하고 의리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배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14:2-3)고 하시며 "내가 가는 곳에 너희가 그 길을 알리라"(14:4)라고 말씀하시자 당황한 도마는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삽나이까? (14:5)라고 다른 제자들이 질문하지 못할 때 용감하게 예수님께 질문합니다. 주님의 사역이 죽음저편에까지 미친다는 사실을 도마는 이해할 능력을 갖지 못하였습니다.

 

도마는 진리를 알려고 내적 갈등을 많이 하는 회의적인 사람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도마는 의심을 하는 사람이라기 보다는 질문 잘하는 사람이란 별명이 더 적절한 표현일 것입니다.

 

 

믿음을 가진 다는 것은 내적 갈등이 많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믿음이란 도마처럼 경험에 근거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 것인가요?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제자들이 모여 있는 곳에 찾아오셨어요. 그런데 도마는 이 모임에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모임에 도마가 참석하지 않았던 진정한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 아마도 낙심되고 앞이 캄캄하며 두려워서 혼자 갈등하고 있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다른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 만난 후에 기쁨이 가득하여 말하였을 것입니다.

 

. 너 어디 갔다 왔니? 예수님이 좀 전에 오셨다 가셨어.” “무슨 말을 하니 미쳤니. 죽으신 분이 어떻게 여기 오실 수 있냐?” “나는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어 봐야 믿을 수 있어. 내 손을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않겠어.“ 라고 했을 것입니다.

 

도마는 믿음을 분명히 눈으로 보아야 믿는 다고 생각했습니다.

 

분명히 보지 않고, 듣지 않는 것은 믿지 않겠다는 것은 믿음을 경험에 기초를 둔 것이죠. 그것은 올바른 믿음이 아니지요. 그럼 믿음을 어떻게 가져야 하나요?

 

사실 제자들의 말은 믿지 못할 수도 있지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믿었어야 하지 않겠어요. 내가 고난을 받은 후 부활하실 것에 대하여 말씀하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지 않겠어요. 성경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데 우리는 믿지 않지요. 우리의 믿음의 근거는 많은 체험도 중요하지만, 성경 말씀을 근거로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이야기를 제자들이 도마에게 하지만, 그 일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근거로 한다는 것을 믿었어야 하는 것이죠. 우리가 무엇을 믿고 따라야 하나요? 예수님의 말씀은 믿음으로 받아야 하고 사람의 말은 의심해도 된다는 것이죠. 믿음과 확신을 추구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사도행전 1711절에 따르면 베뢰아 사람들의 신앙에 대해 칭찬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 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여기서 상고하다에 해당하는 헬라의 뜻은 조사하다입니다. 베뢰아 사람들이 바울에게 들은 복음이 과연 그러한지 날마다 성경을 신중하게 조사했다는 뜻입니다 자신이 서 있는 믿음의 토대를 스스로 상고하는 태도, 즉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태도를 칭찬한 것입니다.

 

아무근거도 없는 것은 의심해 보아야합니다. 치열한 의심을 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죠.

 

 

 

그러나 예수님은 도마를 향하여 믿음이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무슨 의미일까요?

 

26-29절입니다.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여드레가 지났다는 것은 제자들과 도마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어야 하는지 실랑이를 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여드레 전에 오셨던 것처럼 동일하게 샬롬하시고 도마에게 찾아오셔서 말씀하시길 손을 집어넣어 보라. 하실 때 도마는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주님이 내 소리를 듣고 찾아 오셨구나. 내가 손을 넣어봐야 나는 믿겠다는 이야기를 모두 듣고 계셨다는 것이죠. 예수님은 이 말씀을 나무라는 의도로 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마음속에 신앙의 갈등을 알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의심나는 생각들을 주저하지 말고 침묵하지 말고 주님께 답을 구하여야 하는 것이죠. 궁금하면 찾아보아야 합니다. 도마는 함께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았습니다. 함께 예배하고 기도해야 하는 자리는 나의 마음 속에 갈등과 질문에 답을 찾을 수 있는 자리입니다. 우리는 계속적으로 마음속의 부정적인 질문을 가지고 답을 찾고자 하나님 앞으로 더 나아가야 합니다.

 

신앙과 이성을 대립 관계로 놓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향해 날아오르기 위해 적절히 균형을 이루는 것이 참된 신앙인 것입니다.

 

2. 믿음을 가진자.

 

30-31절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요한은 예수님의 기적은 7가지 기적 외에도 많았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기적을 경험한다는 것은 무엇을 하기 위함입니까? 기적이란 예수님을 믿는 일에 사용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생명을 얻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메시야이심을 믿고 영생을 얻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가진 자로서 살아서 죽음을 보지 않고 영원히 산 다는 것은 우리가 경험하지 않고 믿으며, 예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 믿고, 예수님께서 궁극적으로 세상을 넉넉히 이겼기 때문에 우리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해 주신 것이죠.

 

예수의 부활은 일상에서 경험되지 않는 일이었기에 그 누구라도 의심할 수 있는 성격의 사건입니다. 도마를 제외한 나머지 제자들은 감각을 통한 만남이 있었기에 믿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 감각적으로 부활한 예수를 만날 기회가 없었던 사람들은 오직 믿음으로 이 사실과 이 사실이 수반하는 의미를 알아야 했습니다. 이를 위한 자연스러운 믿음의 갈등을 극복하기 위한 발판이 되어 준 것이 도마의 부활 현장에서의 부재입니다.

 

예수님은 도마에게 자신의 손과 옆구리를 직접 만져보게 하시며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복되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지금 시대를 사는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말씀이십니다. 도마가 실제로 손가락을 예수 몸의 못 자국과 창 자국에 넣어보았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그는 다시 사신 주님을 보는 것만으로 그의 의심은 일순간에 사라져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도마는 신약성경 전체에 걸쳐 근원적인 고백을 하게 됩니다. 선생이나 주님 그리스도를 넘어 여기서 부활하신 예수는 그대로 하나님이 되셨습니다.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28)라는 고백은 요한복음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핵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 되도다"(29)라고 말씀하심은 도마가 가진 신앙의 고민으로 인한 예수님의 응답으로 지금 우리를 위한 복음을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다시 오는 세대의 믿음의 사람들에게 보지 않고 믿는 믿음의 복을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1720-21절을 대제사장의 기도라도 합니다. 예수님의 기도입니다.

 

1720- 21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내가 비옵는 것은 내 제자들만 위함이 아니요.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지금 예수님이 보시고 기도하는 사람들 뿐 아니라 또한 제자들만 위함이 아니라 그들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위하여 예수님은 기도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세대를 넘어서 기도해 주시고, 말씀을 전해주시는 것입니다.

 

왜 말씀을 믿어야 합니까 눈에 보이는 것은 사라지지만 그분의 말씀은 영원하지 않습니까?

 

사라지지 않는 말씀, 그 말씀이 요한복음 1장에서 로고스 예수님이시라고 하셨습니다.

 

말씀이 예수님 이십니다. 예수님을 향한 부활의 믿음은 말씀을 들음으로 생기게 됩니다.

 

우리는 말씀을 읽어야 하고, 날마다 큐티하며 말씀이 그러한가 연구하며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3. 전하는 자.

 

제자들이 전해준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또한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도마는 인도까지 전하게 되지요. - 가장 멀리 가서 예수님 소식을 전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첫 번째 주일 저녁에 이미 예수의 부활소식을 막달라 마리아를 통해 전해들은 제자들은 유대인들이 두려워 문을 닫고 몰래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예수의 부활이라는 아직 이해하기 힘든 사건에 대한 소식으로 마음의 혼란을 겪으면서동시에 주변의 적대적 분위기로 불안하기 그지없는 상태에 처한 이들에게 예수님은 샬롬’ (평강)을 전해 주십니다. 유대인들이 일상적으로 하는 인사말이었으나 혼동과 불안에 사로잡혀 있던 제자들에게는 더없이 간절하게 필요했던 마음의 상태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기 직전에 그렇게 약속하셨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 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그렇게 평안의 인사를 하시면서 고난의 흔적인 손과 옆구리를 제자들에게 보여주자 드디어 제자들에게 기쁨이 왔습니다.

 

두 번째 목격자들인 도마를 제외한 제자들에게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사명을 부여하시며 세상으로 파송하십니다. 이 역시 죽음 전에 제자들에게 미리 언급한 바 있었던 내용이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예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예수도 저희를 세상으로 보내신다.라고 하셨습니다. 이 파송은 성령의 수여와 함께 이루어진 것입니다. 예수께서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하셨습니다.

 

성령은 예수의 영이며 살아있는 생기입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자신의 생기를 제자들에게 불어넣는 상징적 행위를 통해 숨을 내쉬며 그들 가운데 자신의 임재를 확신시키신 것입니다.

 

약속된 보혜사로서의 성령은 항상 제자들과 함께 있으면서 예수님의 가르침과 복음의 선포를 대리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14:1626).

 

에스겔 379-10절 또한 마른 뼈들에게 생기가 들어가니 일어나 큰 군대가 되었던 말씀을 기억합니다. 그렇게 에스겔 본문을 연상한다면 예수의 성령 불어넣기는 제자들로 하여금 사명을 감당케 만들어 주는 능력의 충전이 됩니다.

 

그들이 파송 받아 담당할 복음 사역은 다름 아닌 사죄의 권세를 대리하는 것이었습니다.

 

23절입니다.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죄를 용서하거나 용서하지 않을 권세가 있다는 것은, 제자들의 말의 능력이나 기도의 능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전하는 예수의 복음과의 연결하여 이해해야 합니다. 제자들이 전하는 복음을 받아 들여 예수를 믿으면 사람들의 죄가 사함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전하는 복음을 거절하여 예수를 믿지 않으면 사람들의 죄가 그대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부활의 주님이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 주신 첫 번째 메시지는 평안이었다. 당신께서 죽음 전에 약속하셨던 그 평안이었습니다. 사명을 받아 파송되기 이전에 이들에게는 평안이 있어야 했습니다. 제자들이 보냄을 받는 것도 평안을 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들에게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이 자신의 평안이었습니다.

 

여호수아에게 사명을 맡기시던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강조하신 것은 다름 아닌 평강이었습니다. 여호수아에게 반복해서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1:9).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가 처하는 곳이 어디든지 그곳에 함께하시겠다는 약속을 하셨습니다. 부활의 주님께서도 보혜사 성령을 주심으로 동행과 내재를 약속하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사명이 주어진 것입니다. 사명자는 일하기 전에 우선 평안의 복음의 신을 신어야 합니다. 환경은 불안을 야기해도마음은 하나님으로 평강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사명자에게 예수님께서는 성령을 부으셔서 하나님 그분이 우리 안에서 일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한 사람은 성령을 부으시는 분이십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에게 부활하신 주님의 권위를 갖게 하십니다.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자. 하나님께서 일하십니다.

 

여러분도 여기서 제자로서 세상으로 파송을 받으시겠습니까?

 

가정으로, 학교로, 직장으로, 이웃으로 이 파송과 함께 예수님은 성령을 여러분에게 불어넣어 주시고 여러분 안에서 일하실 것입니다.

 

결론

 

우리는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근거하여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 말씀이 우리를 사명자로 일으키며 복음을 전하는 제자들에게 먼저 평안의 복음을 주셔서 주님 주신 그 평안을 성령의 능력으로 다른이들에게 평안을 전하는 자로 살게 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