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백성이 사는 방식 831-38, 고전10:31-33

바다 위에서 물고기를 잡아먹으려는 갈매기 몇 마리가 떠돌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 한 갈매기가 큰 물고기를 발견하고 쏜살같이 내려가 물고기를 낚아챘습니다. 얼마나 큰지 혼자 처리할 수 없어서 갈매기 몇 마리가 거들어 주었습니다. 다함께 먹어야 할 물고기인데도 늙은 갈매기는 혼자 먹을 양으로 입을 크게 벌려 물고기를 통째로 삼켰습니다. 그러나 날카로운 물고기 비늘 때문에 갈매기 목구멍은 찢어져 고통에 뒹굴다가 죽어버렸습니다.

어느 날 콘클레턴이라는 백작이 아침 일찍 부엌문 앞을 지나다가 ‘5파운드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요리사의 한탄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는 죽은 사람 원한도 풀어준다는데하고는 그녀에게 5파운드를 건네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를 살짝 엿보았더니 감사하기는커녕 내가 미쳤지 10파운드라고 할 걸^^ 이까짓 5파운드 가지고 무엇을 한담하며 한탄했다고 합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이 물질의 욕심과 육체적 만족을 채우기 위해 온 마음을 기울여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하늘 백성이 사는 방식이 아닙니다. 오늘 사순절 두 번째 주일을 맞아 "하늘 백성이 사는 방식"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하늘 백성은,

1.하나님의 뜻을 앞세우며 주의 일을 이루는 사람으로 삽니다.

복음서 본문 막8:31-33"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 드러내 놓고 이 말씀을 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매/ 예수께서 돌이키사 제자들을 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어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했습니다.

성도의 믿음에 사표가 되신 예수님은 항상 하늘 아버지의 뜻을 앞세우며 아버지의 일을 이루는 삶을 사셨습니다.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40일 금식 하시며 기도하실 때 사단은 물욕으로 명예욕으로, 권세욕으로 예수님을 시험했지만 욕심에 이끌리지 않으시고 하나님 말씀을 따라 말씀으로 시험을 물리치셨습니다.

예수님은 본문에서 아버지의 뜻을 따라 십자가의 수난을 앞에 두고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예고하시자 대뜸 베드로는 어찌 그럴 수 있습니까, 그럴 수는 없다고 항변 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베드로를 꾸짖으시면서 왜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느냐 하시며 사단아 물러가라고 호통을 치셨습니다.

이어서 주님께서는 주님을 따르는 생활에 대하여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8:34)하셨습니다. 여기에 주님을 따른 생활을 세 가지의 동사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먼저 자기를 부인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소극적 측면입니다. 자기의 이기적 욕망과 생각과 주장, 그리고 부패한 옛날의 내 모습, 옛사람을 철두철미 굴복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자신의 옛 사람을 부인하지 못하는 사람은 끝까지 예수님을 따를 수 없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옛 사람의 욕망을 버리지 못하여 주님의 책망을 받게 되었고, 주님이 악한 자들에게 끌려가 온갖 수난을 당하실 때 자기에게 미칠 화를 피하여 도망치고, 멀찍이 떨어져 동정을 살피다가 당신도 예수를 따르던 사람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성도들이 자기를 부인하지 못하면 예수님을 부인하게 됩니다. 내 욕심 나의 옛사람 때문에 주님을 부인하게 되면 주님도 하나님과 천사들 앞에서 너를 모른다고 부인하신다 하셨습니다.

 

다음에 자기 십자가를 지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가신 길은 십자가의 길입니다. 십자가는 사랑의 길이요, 희생의 길이요, 고난의 길입니다. 이 길은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새 가치관을 가지지 않으면 가지 못하는 길입니다. 예수님을 따라 십자가의 길을 가는 사람은 나의 내면에 잠재된 욕망까지도 내던져야 합니다. 나의 욕망과 생각을 접어두고 예수님의 생각과 마음을 앞세워야 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려면 고통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십자가의 길에는 수많은 어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십자가의 길에는 장래의 상급이 따르고 영광이 따르고, 소망이 따르는 길입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과 초대교회 성도들은 다 이 소망을 가지고 매 맞음과, 옥에 갇히는 것과 순교 하는 것을 오히려 기쁘게 여기며 십자가의 길을 갔습니다.

 

그리고 나를 좇으라는 것입니다.

성도가 자신의 옛사람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기꺼이 지고 갈 때 주님을 좇을 수 있습니다. 세상의 욕심을 버리지 못하면 주님을 따를 수 없습니다. 주님을 따르고자 하는 재물이 많은 사람에게 예수님은 막10:21-22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으로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 결국 그는 재물 욕심을 버리지 못하여 주님을 따르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오늘 우리 모두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몫의 십자가 지고 주님을 따르다가 영원한 하늘 기업을 상속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2.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하고 덕을 세우며 삽니다.

서신서 본문 고전 10:32-33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했습니다. 거치는 자란 남에게 손해를 끼치는 자, 남의 마음에 고통과 괴로움을 주는 자란 뜻입니다. 교회 안에서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쓴 뿌리가 되어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경제적으로 인격적으로 남에게 해를 끼치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남을 기쁘게 해 주어야 합니다. 33절에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라는 말씀처럼 내 자신의 유익만을 추구하는 자가 아니라 내 삶을 통해 다른 사람을 유익하게 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언제나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행동하지 말고 다른 이의 마음을 기쁘게 하며 유익을 주는 방향으로 신앙 중심이 잡혀야 합니다. 나를 위해 사는 것은 죄지만 다른 사람을 위해 사는 것은 선이요 하나님을 위해 사는 것은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몸 된 교회 안에서 항상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하여 살아가도록 힘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거치는 자는 걸림돌이 되어 남을 넘어지게 하고, 상처 입게 하는 자의 모습입니다. 성도는 자기가 하는 일을 통해, 언행을 통해 디딤돌의 역할을 하고, 모퉁이 돌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 많은 사람을 유익하게 하고, 덕을 세울 때 복음을 전하면 마음을 열어 예수님을 영접하게 됩니다.

 

허드슨 테일러의 아버지 제임스 테일러는 남다른 신앙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는 약제사로 일하면서 성경을 부지런히 읽었고,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는 소외된 자들을 사랑했고, 생계 때문에 교회에 나갈 수 없는 가난한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전도했습니다. 그는 손님들로부터 약값을 정당한 가격 이상 받는 일이 없었습니다. 정직을 사업의 신조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의 주변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약 값을 절반만 받거나 아예 받지 않았습니다. “지난번에도 거저 약을 지어 주셨는데요.”하고 송구스러운 마음을 드러낼 때 그는 우선 병이 나아야 하니까 그냥 가져가시고 빨리 건강을 회복하세요.”라고 말합니다. “그래도 죄송해서라고 말하면 조금도 염려하지 마세요. 계산서는 제가 벌써 천국에 보내 놓았으니 거기 가서 갚으시면 됩니다. 약이 다 떨어지면 또 오십시오. 그런데 한 가지 꼭 부탁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절대로 잊지 않는 것이 당신이 갚아야 할 약 값이라는 사실을 늘 기억해 주십시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처럼 제임스 테일러는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는 삶을 살면서 복음을 전하는 일에 힘썼습니다.

세상에는 세 부류의 사람이 있다고 탈무드는 말합니다. 남에게 해를 끼치는 거미 같은 사람과 남에게 해도 유익도 주지 않는 개미 같은 사람, 그리고 남에게 유익을 주는 꿀벌 같은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나에게 유익하다고 해서 다 선한 것은 아닙니다. 고전 10:23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며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니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말합니다. 우리 모두 다른 사람의 유익을 구하고 덕을 세우는 사람으로 살기를 소망합니다.

 

3.성결한 모습으로 매사에 하나님 영광을 위해 삽니다.

서신서 본문 고전 10:31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깨닫고 우리 인생의 본분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해야 함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은 사람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일은 성결하게 살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급한 일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일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일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이 세상에서 하던 일 즉시 멈추고 지금 당장 해야 될 일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이보다 더 가치 있고, 급히 해야 하고, 소중한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단 한가지만을 요구하십니다. 그것은 "바위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서 나와 깊은 사랑을 나누자"라고 말씀 하십니다. 마음 문을 열고 조용히 주님을 느끼고, 주님의 음성을 듣고, 그분과 친밀하고 개인적이고 인격적인 교제를 나누는 일이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우리의 언행의 최고의 동기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하든지 마지막에는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사람만 생각하면 못할 일이 많이 있습니다. 저 사람을 위해서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가? 의구심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위에 계신 하나님을 생각하면 마음이 달라지고 행동이 달라집니다. 이해하는 마음이 생기고, 용서의 마음이 생기고, 오래 참고 기다리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은 최고의 목적을 가지고 사는 일이요, 하나님을 최고로 기쁘게 해 드리는 일이요, 최고로 선한 일입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을 만나도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사랑의 교제를 나누면서 감사할 수 있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어느 날 유명한 찰스 스펄전 목사님이 농촌을 방문하는 중에 어떤 농장 건물 꼭대기에 세워 놓은 바람개비가 있어서 보았더니 그 뱅뱅 돌아가는 바람개비의 꼬리에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말을 써 붙여 놓았습니다. 그것을 보니 이 목사님이 좀 못마땅한 생각이 들어서 거기 있는 한 농부를 보고는 형제여, 아니 하나님의 사랑이 이 바람개비처럼 변덕이 많다는 말이오? 어찌하여 저기에다 저렇게 써 붙여 놓았소? 라며 물어 보았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그 농부가 하는 말이 그게 아닙니다. 바람은 어느 방향에서 불든지 다 하나님의 사랑이다. 라는 뜻입니다.” 라고 대답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바람이야 어느 방향에서 불든 그쪽으로 돌리기만 하면 바람개비는 돌아가는 것이니 바람이 어느 방향에서 부느냐는 상관이 없습니다. 그저 그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내 자세만 바로 하면 모든 것이 사랑이기에 이렇게 하나님은 사랑이 시다!라고 써붙였노라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이요 생각입니까? 이제 우리가 어떤 형편을 당하더라도 하나님과 나 사이에 얼굴과 얼굴을 대하는 정면의 방향으로 내 자세만 바로 정하면 하나님은 계속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은 항상 사랑이십니다. 오늘도 사랑의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성결한 모습으로 아름답게 살아가시기를 소망합니다.

왜 그래야 할까요? 하나님은 우주만물의 창조자이십니다. 통치자이십니다. 지금도 만왕의 왕으로 다스리시는 분입니다. 우리를 위해 독생자를 십자가에 죽게 하신 분입니다. 우리의 행동은 하나님의 존전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자로 하나님을 사랑하며 세상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다가 주님이 예비하신 영광의 나라에 하나님과 영원한 사랑의 교제를 나누며 살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성결하게 살면서 매사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자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이제 정리합니다. 오늘 사순절 두 번째 주일을 맞아 "하늘 백성이 사는 방식"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하늘 백성은,

.하나님의 뜻을 앞세우며 주의 일을 이루는 사람으로 삽니다.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하고 덕을 세우며 삽니다.

.성결한 모습으로 매사에 하나님 영광을 위해 삽니다. 아멘.



십자가와 구레네 시몬 막1521-23, 16:9-16

 

이솝우화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부자가 딸의 결혼식을 준비하려고 집에서 기르는 모든 동물들을 모아 회의를 소집했습니다. 주인은 동물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마을 사람들을 대접을 하려고 하는데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습니까?”라고 묻자, 동물들은 일제히 대찬성입니다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러자 주인이 거위를 보며 말했습니다. “아무래도 거위요리가 좋겠다.”라고 말하자, 거위는 얼굴이 파랗게 질려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인님, 저는 주인님에게 큰 알을 낳아주잖아요. 저 암탉을 잡으시지요.” 그러자 옆에서 그 소리를 듣고 있던 암탉이 손을 저으며 저는 매일 꼬꼬댁'하며 아침을 알려주잖아요. 저 양을 잡으시지요.” 양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말했습니다. “주인님, 저는 따뜻한 털을 제공해주잖아요. 말고기는 어떤가요?” 그러자 말이 소를 가리키며 주인님이 여행가실 때 누가 태워 줍니까? 암소고기가 최고지요.”라고 하자, 이번에는 소가 고함을 치며, “주인님, 나처럼 열심히 농사를 지어주는 동물이 어디 있습니까?”라고 항의를 했습니다. 동물들은 먹고 마시는 흥겨운 잔치에는 동의했지만, 결국 아무도 자신을 희생하지 않으려고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십자가에는 큰 고통이 따르게 되고, 희생이 따르게 됩니다. 예수님은 얼마든지 십자가를 지지 않으실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흉악한 살인강도들이나 흉악범들 아니면 반란죄를 지은 정치범들을 처형하는 형틀인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수치가 따르는 길이지만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우리의 속죄와 구원을 위해 기꺼이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내어 주셨습니다.

 

주님이 십자가 지시고 골고다를 향해 가실 때 제자들까지도 십자가 사랑과 도를 알지 못하고 이솝 우화에 나오는 동물들처럼 희생을 피해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오늘은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는 사순절 다섯 번째 주일을 맞아 두 본문을 중심으로 십자가와 구레네 시몬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시몬은 의미도 모른 채 억지로 십자가를 졌습니다.

 

예수님은 전날 밤에 늦게까지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 흘리는 기도로 진액을 쏟으시고 무리들에 의해 이리 저리 끌려 다니시며 심문을 받으시고, 무리들로부터 조롱과 시달림을 받으시고 빌라도의 뜰에서 군병들에 의해 끝에 뼈나 쇠붙이가 달린 가죽 채찍에 맞으셨습니다. 빌라도에 의해 사형 언도를 받으신 주님은 당시 풍습에 따라 60-70kg 정도의 십자가를 메고, 빌라도의 법정에서부터 예루살렘 거리를 지나 골고다 언덕까지 올라가셨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을 정복하여 다스린 로마제국은 성중에 사는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흉악한 죄를 범한다든지 반역의 죄를 저지르면 이렇게 끔찍한 죽음을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경고하기 위해서 통치 수단으로 이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이 길을 라틴어로 비아돌로로사(Via dolorossa)’라고 하는데, 그 뜻은 슬픔의 길” “고통의 길이라는 뜻입니다. 거기에는 주님이 너무 힘들어 가다가 멈춰 선 14곳에 표시가 있습니다.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가시다가 쓰러져서 로마 병정의 무서운 채찍을 맞고, 또 다시 일어나서 가시다가 쓰러져서 무서운 채찍을 맞고, 또 다시 일어나서 가시다가 쓰러지기를 5번 반복을 했을 때, 로마 병사들은 더 이상 주님께서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까지 올라갈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거리에 나와 구경하고 있던 많은 구경꾼들 가운데 건장하게 생긴 한사람을 불러내어, 그에게 주님 대신 십자가를 지게 했습니다.

 

복음서 본문 막15:21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여기 구레네는 북 아프리카의 중요한 도시 가운데 하나로, 오늘날의 리비아의 수도인 트리폴리(Tripoli)를 말합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시몬은 아프리카의 구레네 출신이었습니다. ‘시몬이라는 이름은 일반적으로 아프리카 사람들이 쓰는 이름이 아니라, 유대인들 사이에서 흔히 쓰이는 이름인 것으로 보아, 아마도 아프리카에 거주하는 어머니가 유대인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순례자로 왔다가 주님의 십자가 사건을 보게 된 것이라 여겨집니다.

 

구레네 시몬이 억지로 십자가를 지고 갔지만 그 일이 실상은 주님의 고난에 같이 동참하는 일이었습니다. 시몬은 그런 줄도 모른 채 마지 못해 십자가를 지고 간 것입니다.

 

마리아가 옥합을 가지고 와서 깨뜨려 예수님의 머리에 부어 예수님의 장사를 예비하였을 때 그것을 허비한다고 여인을 나무라던 제자도 십자가 질 때는 없었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주께서 영광을 얻으시면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던 제자들도 십자가 지고 가실 때 보이지 않았습니다. 주님을 절대로 떠나지 않고 죽는데 까지 라도 따라가겠다고 큰소리 쳤던 예수님의 제자들은 모두 도망을 가고 한 사람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진 사람이 없었습니다. 제자들도 지지 않았던 십자가를 구레네 시몬이 졌습니다. 그 십자가를 오늘 우리가 져야 합니다. 지기 싫어도 억지로라도 지면 그 일이 실은 은연중에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일입니다.

 

어느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던 한 성도가 항상 심중에 `내가 진 십자가는 너무 무거워.' 하는 불평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꿈에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언덕길을 올라갔는데 얼마를 힘겹게 가다보니 한 곳에 여러 개의 십자가가 있었습니다. 어디서 음성이 들려오길 "그토록 무거우면 그 십자가를 버려라. 네가 지고 있는 십자가가 무겁다고 불평만 하지 말고 여기 많은 십자가 중에서 하나 골라서 지라."고 하였습니다.

 

그 말을 듣고 부인은 너무도 반가워서 십자가를 던져 버렸습니다. 그는 이것, 저것 살펴보니 번쩍 번쩍 빛나는 조그만 십자가가 있어 그것을 골라서 졌습니다. 그런데 이 황금으로 된 십자가는 일어서기조차 힘들 정도로 무거웠습니다. 다시 소리가 들리길 "다시 골라 보라"고 했습니다. 이번에는 역시 조그만 십자가인데 아름다운 장미꽃이 활짝 피어있는 십자가였습니다. 좋은 향기도 나고 해서 골라졌습니다. 이 십자가는 무겁지는 않는데 지고 갈 수가 없었습니다. 가시가 등을 어찌나 찌르는지 할 수 없이 다시 내려놓았습니다. 그리고 한참을 찾다가 지고 있는 십자가를 보니 아까 버렸던 자기의 십자가였습니다. 모두가 십자가 지기를 싫어합니다. 십자가를 원치 아니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오늘 우리들에게 '나는 너를 위해 십자가를 졌고 지금도 지고 가노라'고 말씀하시면서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질 수 있느냐'고 묻고 계십니다. 오늘도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네가 십자가를 질 수 있느냐?” “네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실 수 있느냐?” 고 물으시는 주님의 질문에 내, 지고 가겠습니다. , 마시겠습니다. 라고 응답하며 주님 발자취 따라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2.시몬은 나를 위한 속죄와 구원의 십자가로 믿었습니다.

 

시몬은 처음에 엉겁결에 억지로 주님을 대신 해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향해 갔지만, 그런 그에게 주님의 은혜가 임했습니다. 시몬은 아마 그날 아침까지도 자기가 십자가를 질 것이라고 생각지도, 아니 상상도 못했을 것입니다. 그는 자기의 뜻과는 상관없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사형장인 골고다 언덕까지 운반하였습니다.

 

시몬의 입장에서 볼 때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 한 순간 이루어졌습니다. 참으로 우연치고는 기가 막힌 우연입니다. 그렇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자기의 생각이나 의지와는 상관이 없는 이와 같은 일들이 적지 않게 일어납니다. 세상에 태어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결혼하는 것, 사업하는 것, 그리고 성공과 실패하는 여러 가지 사건들이 모두 자기의 생각과는 상관없이 우연히 되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우연히 당한 일이 엄청난 축복으로 연결되는가 하면 또 다른 사람에게는 대수롭지 않게 여겨졌던 일이 돌이킬 수 없는 불행의 결과를 빚어내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에 관여된 사람들 중에 가롯 유다는 은 30에 스승을 팔아버린 자로 악명을 남기게 되었고, 총독 빌라도는 예수님을 십자가형에 언도하였기 때문에 신자들의 입에서 두고두고 그 이름이 예수님을 죽인 자로 불리어 지는 것입니다. 그런가하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던 한편 강도는 예수님을 쳐다보는 순간 회개하고 구원을 받게 되었으며, 여기 구레네 시몬은 우연히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진 사람으로, 니고데모는 주님의 장례를 위해 향품을 제공한 사람으로, 아리마데 요셉은 자신의 무덤을 제공한 사람으로 그리스도의 고난과 함께 아름다운 이름으로 기록된 것입니다.

 

이런 일들은 어느 것도 자기의 계획에 의해서 되어 지기보다는 우연한 일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우연이라고 생각하는 사건들 가운데 원대하신 하나님의 섭리가 있습니다. 엉겁결에 억지로 십자가를 지게 된 구레네 시몬의 편에서는 우연히 된 사건이지만 하나님 편에서 보실 때는 조금도 어김없이 진행된 그분의 섭리였습니다.

 

그 사건의 계기로 그 자신이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그가 주님의 십자가 사랑을 바로 알고 믿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 쓰임 받는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그 증거가 행13:1에 나옵니다. 이방인들에게 최초로 선교사를 파송한 안디옥 교회의 영적인 지도자들에 대해 기록되어 있는데, 놀랍게도 그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여기에서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이라는 이름이 나오는데, ‘니게르라는 말은 흑인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시므온은 시몬의 헬라 식 이름입니다. 그러니까 구레네 시몬은 이방인을 위해 최초로 선교사를 파송한 교회로 유명한 안디옥 교회의 영적 지도자 5명 중의 하나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몬 다음에 나오는 구레네 사람 루기오는 시몬과 같은 동네 사람이었습니다. 많은 신학자들은 구레네 시몬이 같은 동네에 사는 루기오에게 복음을 전했고 그를 말씀으로 양육한 결과, 안디옥 교회에서 함께 일하게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구레네 시몬은 복음을 증거 하는 복음증거자로, 십자가와 부활의 증인으로, 말씀으로 양육하는 교사로, 또한 안디옥 교회의 여러 가지 영적인 일을 돌보는 지도자로 쓰임 받은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의 섭리입니까? 이처럼 시몬처럼 비록 처음에는 억지에서 시작하였지만 이제는 십자가 사랑과 은혜를 바로 깨닫고 자발적으로 십자가의 사역자로 쓰임 받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3.시몬을 통해 가족과 이웃에게 십자가의 복음이 전해졌습니다.

 

아들들도 초대교회의 유명한 인물들이 되었습니다. 복음서 본문 막15:21에두 아들의 이름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비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 ”했습니다.

 

마가복음이 기록 될 당시 이미 시몬의 두 아들은 교계에 이름이 널리 알려진 유명 인물이 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들을 소개할 때 아버지의 이름을 말하면서 누구의 아들 아무개라고 소개하는 것이 보편적인 방법입니다. 왜냐면 아버지가 더 많이 알려졌을 때입니다. 그런데 마가복음에서 시몬을 소개하면서 두 아들의 이름을 열거하는 것은 두 아들의 이름이 초대교회에 이미 잘 알려져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서신서 본문의 내용은 바울과 함께 사랑으로 섬기며 사역했던 잊을 수 없는 일꾼들의 이름을 하나, 하나 열거하면서 문안 인사를 하는 내용입니다. 그 중에 롬16:13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시몬의 아내는 바울의 영적 어머니의 역할을 했습니다. 두 아들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이기도 한 시몬(시므온) 부부는 안디옥 교회에서 사도 바울을 열심히 도와주어, 나중에 사도 바울이 루포의 어머니가 곧 자신의 어머니이기도 하다며 꼭 문안하라는 부탁을 한 것입니다. 시몬 한 사람이 억지로 졌던 십자가가 자신에게는 물론 아들들과 부인, 이웃에게까지 엄청난 영향을 미쳤습니다. 온 가족이 모범적으로 주님을 섬기며 온 가족이 초대 교회에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자손에게까지 미치는 축복이었습니다. 시몬은 어쩌다가 예수님의 고난의 현장을 목도하게 되었고 그 중에도 잠시 동안 그 십자가를 대신 졌지만 그는 후대에까지 그리스도와 함께 그 이름이 존귀하게 되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자자손손 경건하고 복된 인물들로 기록에 남게 되는 복을 받았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은혜를 베풀어 후대에까지 복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오늘도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자기 몸으로 담당하는 자들에게 이 복된 주님의 약속은 그대로 적용되는 것입니다. 저의 모교인 한신 대학교 대학원 원장을 지내신 정태기 교수님이 말한 내용입니다. 교수님께서 자라난 섬마을에 시집을 온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도 아기를 낳지 못하게 되자, 이 여인은 결국 소박을 맞고 시집에서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수치와 절망 속에서 자살을 계획한 이 여인은 고향을 떠나서 서울에 올라와 죽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유명한 한강 다리에서 뛰어 내리려고 했는데, 대낮이라 사람들이 많아서 자살할 수가 없어 밤을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밤이 되어 다시 한강에 나아와서 자살을 하려고 가는 중에 가까운데서 손뼉을 치면서 노래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나는 지금 인생을 비관해서 죽으려고 하는데, 저 사람들은 뭐가 좋아서 손뼉을 치면서 노래를 부를까? 죽기 전에 구경이나 해보고 죽자고 이 여인은 생각하고 찾아가 보니 바로 교회였습니다. 이 여인은 들어가지도 못한 채, 교회 문가에 앉아서 찬송소리를 듣고 또 부흥사인 이성봉 목사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때 이 목사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사람들은 다 내게로 오라는 말씀에 근거해서 외치셨습니다. 낙심하고 실망한 사람 예수님께 나오십시오. 애기 못 나아 소박맞고 쫓겨난 사람도 예수님께 나오십시오. 병들고 가난한 사람도 예수님께 나오십시오. 걱정과 근심에 쌓인 사람도 예수님께 나오십시오. 여인은 그날 거기서 이 부르심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부흥회가 끝난 후 목사님과 이야기를 나누던 강사 목사님은 이상한 소리에 교회 문밖에 나가 보았습니다. 한 여인이 울고 있었습니다. 울면서 되 뇌이고 있었습니다. "예수가 누군디, 예수가 누군디 ..." 이 여인의 사정을 다들은 이성봉 목사님은 당신께서 섬기시던 목포의 교회로 데리고 가서 2년 동안 신앙의 교육을 시키셨습니다. 그리고 이 여인을 고향인 섬마을로 보냈습니다. 섬마을로 돌아온 이 여인은 시댁의 양해를 얻은 후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가는 곳마다 "예수 사랑하심을 성경에서 배웠네... " 찬송을 해서 사람이 모이면 그리스도의 구원의 소식을 외쳤습니다.

 

이렇게 해서 정 교수님의 고향 섬마을에 복음이 전파되게 되었는데, 이 여인의 전도를 통해서 그 섬마을에서만도 60명 가까운 목사들이 배출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가운데는 한국기독교 총 연합회 회장을 역임하신 성결교회 이만신 목사님, 한국 캠퍼스 선교의 대부이셨던 김준곤 목사님, 한국 신학대학 학장을 지내신 고재식 목사님, 또 정태기 교수님도 그 섬마을이 배출한 목회자 중 하나였다고 합니다.

 

한 사람이 주님의 십자가 사랑을 바로 알고 변화가 되면 그를 통해 많은 영혼이 주께로 돌아와 구원을 받게 되고 주님의 귀한 도구로 쓰임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은 "많은 사람들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고 약속하십니다(12:3). 이런 사람의 이름을 높여 주시며 축복해 주십니다. 여러분을 통해 자손 대대로 복을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정리합니다. 십자가와 구레네 시몬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1.시몬은 의미도 모른 채 억지로 십자가를 졌습니다.

 

2.시몬은 나를 위한 속죄와 구원의 십자가로 믿었습니다.

 

3.시몬을 통해 가족과 이웃에게 십자가의 복음이 전해졌습니다.

 

할렐루야!

 



무한한 능력의 원천 막9:17-29, 4:10-13

 

미국 콜로라도 주 스프링필드(Springfield) 근처에 지형이 높고 험한 고갯길이 있습니다. 차들이 통과하기 어려워 사고가 빈번히 일어나는 곳입니다. 지나가는 차들은 지형만 보고 지레 겁을 먹고 돌아가기가 예사였습니다. 길 자체는 도시를 잇는 요충지였지만 운전자들이 왕래를 꺼리는 탓에 도로가 폐쇄 될 위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험한 고갯길에 언제부터인가 'Yes, You Can!(당신도 할 수 있습니다)' 이라는 표지판이 세워졌습니다. 고갯길을 지나려는 운전자들이 입구에 다다르면 이 표지판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지레 겁을 먹던 예전과는 달리 "그래, 나도 할 수 있을 거야" 라는 자신감으로 고갯길을 넘어갈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당신도 할 수 있다." 라는 문장 하나가 엄청난 반향을 불러 일으켜 그 고갯길은 더 이상 공포의 길이 되지 않았습니다. 누구나 넘어갈 수 있는 길이 된 것입니다. 'Yes, You Can!' 이 말이 두려움에 사로잡힌 운전자들을 분발시키는 힘을 발휘했습니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습니다. 할 수 있다고 하면 할 수 있고 처음부터 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면 할 수 없습니다. 성공한 사람은 세 가지의 말을 절대로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없다, 잃어버렸다, 한계가 있다입니다. 믿음의 사람 역시 절대로 없다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이 나의 필요를 채워주시기 때문입니다. 잃어버렸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욥처럼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려도 하나님이 회복시켜 주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또한 내 능력이 이것 밖에 안 된다고 한계를 정하지 않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주님을 믿는 자에게는 불가능이 없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주현절 넷째 주일을 맞아 두 본문을 중심으로 무한한 능력의 원천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무한한 능력의 원천은,

 

1.전능하신 성삼위 하나님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어릴 때부터 벙어리 귀신들린 아이가 등장합니다. 원문에는 "날 때부터"라고 되어 있는데, 우리는 여기서 한 평생을 아파하고, 괴로워하고, 부끄러워해야 하고, 절망할 수밖에 없는 한 인간을 보게 됩니다.

 

아이의 아버지는 사랑하는 아들을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 강구해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그 어떤 방법도 통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의 소문을 듣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눈 먼 자를 보게 하고, 앉은뱅이를 일으키며, 귀신을 쫒아내고, 문둥병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린다는 엄청난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그래서 이 아버지는 희망을 품고 수소문 하여 예수님을 찾아 나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찾아 간 자리에는 예수님이 안 계셨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예수님의 제자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아들을 부탁하였고, 제자들은 그 아이를 고치려 했지만 고치지를 못했습니다.

 

바로 그때, 변화 산에 계시던 예수님께서 3명의 제자들을 데리고 내려오시다가 이 무력하고, 믿음 없는 절망스런 실패의 현장을 보시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그 아이를 고쳐 주십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오늘날 현대 교회는 건물도 많고, 교인도 많고, 돈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교회가 세상적인 능력, 돈의 능력, 권력의 능력은 많아지지만 영적인 능력은 점점 쇠약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무엇 보다 사랑하고 의지하기보다 세상 것을 의지하고 세상 것을 더 사랑하게 되어 각종 범죄와 사건에 교인들이 연루 되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오늘 우리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교회가 돈이 없다, 건물이 없다, 교인수가 없다. 이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오늘 우리의 문제는 영적인 능력을 상실했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영적인 능력을 상실하여 하나님의 일을 이 땅에 세우지 못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성도의 능력이 돈에서 나오는 것도, 권력의 힘이나 세상 것에서 나오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능력은 성 삼위 하나님께로부터 나옵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이긴 힘은 전능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온 힘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비웃는 골리앗을 향해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너에게 간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는 시18:1에서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전능하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의지하여 승리했습니다.

 

사도행전3:6절에 성령을 받은 베드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내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걸으라."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사람에게 그렇게 말하고 그의 오른손을 잡아 일으켰습니다. 그러자 그의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어 서서 걸으며 뛰며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

 

이 모습을 지켜본 무리들은 놀랍게 여기며 베드로와 요한을 신기한 사람으로 주목하여 바라 볼 때 행3:16에서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했습니다. 베드로는 무리들에게 이 능력이 우리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예수께로 말미암은 것임을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성도들이 믿음생활 잘 할 수 있는 것도, 주의 일 잘 감당할 수 있는 것도 성령의 도우시는 능력이 함께 할 때 가능합니다. 믿음, 봉사, 섬김, 나눔, 사랑, 전도, 헌신하는 모든 것은 주님이 주시는 능력입니다. 어느 시골교회에 맹 집사님이 계셨습니다. 그런데 자신과 친한 임 집사님이 갑자기 중풍이 걸려 거동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임 집사와 친했던 맹 집사는 그 집을 드나들면서 교회소식을 알려줍니다. 그때 임 집사는 교회에 가서 예배드리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합니다. 그 말을 들으며 맹 집사는 마음에 부담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 휠체어 한 대만 내려주시면, 평생 임 집사를 밀고 다니면서 예배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맹 집사가 그 기도를 한다는 사실을 알고 목사님이 휠체어를 사주었습니다. 맹 집사도 기뻤고 임 집사도 기뻐했습니다. 이제 맹 집사는 휠체어를 끌고 임 집사를 데리고 교회에 나옵니다. 많은 사람들이 맹 집사를 칭찬하고 박수를 쳐줍니다. 그런데 사람들로부터 칭찬받았을 때 느꼈던 감격의 순간은 잠깐이고, 얼마 지나지 않아 큰 짐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울퉁불퉁한 시골길에서 휠체어를 민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매번 예배 때마다 고통이었습니다. 어느 날 비가 쏟아져 길이 다 패였습니다. 그런데 임 집사가 수요예배를 드리러 가기를 원했기 때문에 그 날도 휠체어를 밀고 갑니다. 가면서 마음속으로 살인합니다. "좀 빨리 죽어버리지. 왜 죽지도 않고 사람을 이렇게 고생시키나!" 물론 그 날 밤에도 맹 집사는 교인들로부터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 다음 주일 아침, 임 집사를 끌고 휠체어를 밀면서 교회로 갑니다. 교회입구에 있는 가게에서 믿지 않는 동네사람들이 맹 집사를 보면서 칭찬합니다. "저 사람은 천사여, 어떻게 자식도 못하는 일을 저렇게 할 수가 있나 말이여" 그 소리를 들은 맹 집사는 교회에 도착해서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그 날도 마음으로 임 집사를 죽였기 때문입니다. "이런 주제에, 내가 어떻게 예배를 드릴 수 있는가, 내가 마음으로 살인을 했는데". 맹 집사는 감히 예배당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채 밖에서 기도를 드립니다. "주님 용서해 주십시오." 성령님의 도우심 없는 신앙생활의 모습이 바로 맹 집사처럼 겉으로 보여 지는 신앙생활은 그럴 듯한데,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사랑이 없는 형식적인 신앙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능력의 원천이 되는 성부, 성자, 성령께서 주시는 권능과 능력으로 믿음생활 하고 주님의 일을 기쁨으로 잘 감당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2.전능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에 있습니다.

 

변화 산에서 내려오신 주님은 한 아이를 데리고 온 아버지를 만났습니다. 그 아버지는 그 아이가 자기 아들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아이는 벙어리 귀신이 들린 아이입니다. 귀신이 그를 잡으면 거꾸러지게 하고 거품을 흘리게 하고 이를 갈고 파리해져 간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왔는데 예수님이 안 계시므로 제자들에게 좀 고쳐 달라고 했으나 저희가 능히 고치지 못하더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들으신 주님이 크게 탄식 하시기를 막9:19"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앞에 온 그 아이는 다시 귀신의 역사로 심히 경련을 일으켰습니다. 입에 거품을 물고 땅에 엎드러져 뒹굴었습니다. 이 장면을 보신 예수님은 그 아버지에게 묻기를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고 하셨습니다. 그는 "어릴 때부터 나이다 귀신이 저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면서 주께 청하기를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막9:23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그 아비가 소리 질러 고백하기를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라고 하였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더러운 귀신을 꾸짖고 명하시기를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 때 귀신은 소리를 지르면서 최후 발악을 하고 나갔습니다. 이로써 그 아이는 건강하게 되어 아버지의 손을 잡고 자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가진 자에게 믿음의 통로를 통해 역사하십니다. 서신서 본문 빌4:13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했습니다. 그의 믿음대로 하나님께서 그에게 공급하시는 힘과 지혜와 능력으로 감옥에서도 복음을 전하여 많은 사람들을 전도하고, 그 안에서도 말씀을 가르쳐 사람들의 믿음을 굳게 세우는 자가 되었고, 기쁨과 감사가 충만했으며, 성령의 영감으로 성경을 기록했습니다.

 

아무 소망이 없어 보이는 아이를 데리고 온 아버지가 주님 앞에 나와 믿음으로 도움을 청했을 때 문제가 해결 된 것처럼 우리의 가진 문제를 믿음으로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샬롯 엘리옷(Charlott Elliot)은 병약한 여인이었습니다. 학교 설립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가족들이 바자회로 분주하게 일할 때 멀리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느 날, 샬롯은 말란 목사(Dr. Malan)에게 '나 같은 사람도 예수를 만날 수 있느냐' 며 반항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그때 말란 목사는 단 한마디의 말을 그녀에게 전했습니다. "Just as you are- 당신의 있는 모습 그대로 오시오." 그 순간 그녀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마음을 만지심을 느꼈습니다. 무릎을 꿇고 예수께 인생을 드렸습니다. 회심의 순간이었습니다. 그녀는 그 감격으로 "큰 죄에 빠진 날 위해 주 보혈 흘려주시고 또 나를 오라 하시니 주께로 거저 갑니다." 라는 339장의 찬송시를 지었습니다. 원제목은 "Just as I am" 입니다. 빌리 그래함 전도 집회 때마다 이 찬송이 불러서 수많은 사람들이 주께 나아오게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 있는 모습 그대로 믿음으로 나와 해결 받기 바랍니다.

 

3.하나님의 도우심에 대한 의심 없는 기도에 있습니다.

 

제자들은 이미 예수께로부터 귀신을 내어 쫓는 권능을 부여 받았던 것입니다(6:7). 또한 그러한 경험도 있었습니다. 분명히 제자들은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이 자기들 안에 잠재되어 있다고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귀신을 쫓는 일에 있어서 더 이상 하나님께 기도로써 도움을 청하지 아니했던 것입니다. 그러했기 때문에 이들은 병을 고치지 못하고 망신을 당한 것입니다. 그런데 왜 이번에는 그런 권능을 자기들이 행사할 수 없었는지 궁금하여 예수님께 질문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복음서 본문 막9:28"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종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왜 귀신을 쫓아낼 수 없느냐고 묻는 제자들에게 예수께서는기도 외에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영어성경에는 '기도와 금식 외에는- by prayer and fasting' 이라고 번역되었습니다. 믿음을 가지고 금식하며 기도할 때 가난과 저주와 질병을 물러가게 하십니다. 신앙의 실패는 기도의 부족에서 옴을 기억해야 합니다. 기도의 시간이 줄어드는 것이 신앙의 큰 위기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기도는 닫힌 문을 열게 합니다. 능치 못함이 없도록 만들어 줍니다.

 

무디는 "기도란 하나님 앞에서 나를 조율시키는 것이다." 라고 말합니다. 조율(Tuning)이란 말은, 연주자가 가장 편하게 악기를 연주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입니다. 즉 기도란 내가 하나님 앞에 무엇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도구로 사용하실 수 있도록 나의 부족한 것을 다 내어놓고 나를 하나님께 조율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조율된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능력을 덧입혀 주십니다. 늘 기도하기를 힘썼던 바울은 살전 5:17에서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기도하는 자에게 능치 못할 일이 없는 것입니다. 부흥 운동가 미국의 스페스(A. Spaeth) 목사는 의사로부터 무서운 진단을 받게 됩니다. "심장에 있는 동맥 다섯 개 가운데 세 개가 막혔습니다. 가슴을 째고 심장에 막혔던 동맥을 끓고, 다리의 동맥을 끊어 심장에 잇는 대수술을 해야 합니다." 도무지 마음이 내키지 않아 '어쩌면 좋습니까?' 라며 기도하던 중에 수술하지 않아도 믿음으로 낫겠다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수술을 포기하고 전적으로 기도하면서 마음으로 건강한 심장을 바라보았습니다. 나은 줄 믿고 그냥 지냈습니다. 한 달 후 진찰하던 의사가 놀라며 말합니다. "참으로 놀랍습니다. 심장동맥의 막혔던 것이 깨끗이 나았습니다. 기적입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능치 못할 일이 없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 능력의 주님께 나오는 믿음을 가지고 기도함으로 능치 못함이 없는 삶을 살아가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정리합니다. 무한한 능력의 원천은,

 

1.전능하신 성삼위 하나님께 있습니다.

 

2.전능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에 있습니다.

 

3.하나님의 도우심에 대한 의심 없는 기도에 있습니다.

 

전능하신 성 삼위 하나님을 믿음으로 의지하고 기도함으로 승리하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오직 예수의 이름으로 사도행전 45-22

 

중세 3세경에 텔레마투스라는 늙은 수도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시골에서 작은 수도원을 섬기면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며 기도하는 경건한 수도사였습니다. 어느 날, 그가 하나님께 기도하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로마로 가라!”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로 하고 로마를 향해서 긴 여정을 떠났습니다. 그가 몇 개월 동안의 피곤한 여행 끝에 로마에 도착했습니다. 그가 로마에 도착했을 때, 그곳은 축제기간이었습니다. 그 당시에 많은 로마 사람들이 자신을 즐겁게 해주는 원형극장으로 가고 있기에 그도 군중을 따라갔습니다. 그날 검투 시합은 두 검투사가 끝까지 싸워 한 사람이 죽어나가는 것을 보면서 즐기는 행사였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보면서 환호를 지르고 자신들의 스트레스를 풀었던 것입니다.

 

경기가 시작되고 두 사람의 검투사가 황제 앞에서 인사를 합니다. “내가 죽기까지 싸우겠습니다.” 황제 앞에 충성을 맹세하는 예를 드린 후, 경기장 중앙으로 나아갑니다. 그때 그 수도사의 마음속에 불현듯 이것은 옳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를 왜 로마로 가게 하셨는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싸움이 막 시작되려는 그때, 그는 많은 사람들 앞에 일어서서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멈춰라!”고 소리를 쳤습니다. 그러자 그곳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구부정한 수도사 한 사람이 일어서 멈춰라!” “멈춰라!”하니 그것이 쇼의 일부분인줄 알고 마냥 좋아하고 박수를 쳤습니다. 군중은 살벌하게 잔인한 검투 시합에 늙은 수도사까지 고용해서 게임을 즐겁게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즐거워했습니다.

 

그런데 이 수도사는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이 검투사들이 계속 싸우려고 하니, 이제는 경기장까지 내려와 소리칩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멈춰라!” 이에 도가 지나치자 관중들이 검투사들의 싸움에 방해됨을 이유로 야유를 보내고 화를 냅니다. 그때 검투사 중에 한 사람이 수도사를 칼로 찔러 죽입니다. 그는 칼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예수의 이름으로 멈춰라!”고 외쳤습니다. 그 순간 성령께서 역사하셨습니다. 분위기는 장엄해졌고 숙연해졌습니다. 야유하고 조롱하던 그 많은 사람들은 입을 열지 못하고, 한 사람이 그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퇴장했습니다. 그는 바로 황제였던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뒤를 따라 퇴장했고, 그를 죽였던 검투사들도 고개를 숙이고 퇴장했습니다. 이것은 AD 391년에 역사 속에 있었던 실제 사건으로 로마에서 사람을 죽이는 검투사의 결투가 없어졌다고 합니다.

 

1. 베드로의 증거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하기 위하여 성전에 올라가다가 나면서 못 걷게 된 이가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베드로는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3:5)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였습니다.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하나님을 찬송함을 보고 심히 놀라 함께 찬송하며 성전으로 올라가는 일종의 시위를 벌렸습니다.

 

그들이 솔로몬의 행각에 이르렀을 때에 베드로가 군중들 앞에서 일장의 설교를 하였습니다. 우리가 예수의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3:18). 베드로가 백성에게 예수의 이름으로 설교할 때에 말씀을 듣고 믿는 사람이 많았는데, 성경은 그들의 수가 남자만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고 기록하였습니다(4:4).

 

이 사건으로 인하여 베드로와 요한이 백성들의 시위를 유도했다고 공회에 잡혀가게 되었습니다. 이튿날 관리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에 모였습니다. 그리고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와 요한과 알렉산더와 및 대제사장의 문중도 다 참여하여 사도들을 가운데 세우고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고 물었습니다.

이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백성의 관리들과 장로들아 만일 병자에게 행한 착한 일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았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한다면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8-10)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12) 라고 담대하게 말하였습니다.

 

그들이 베드로와 요한이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담대하게 말함을 보고 이상하게 여겼습니다. 그리고 또 병 나은 사람이 그들과 함께 서 있는 것을 보고 더 이상 비난할 말이 없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잠시 공회에서 나가라 하고 서로 의논하였지만 뾰족한 찾지 못하고 어물쩍거리다가 그들을 위협하여 이후에는 예수의 이름으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했습니다. 이에 베드로와 요한이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19-20) 대답하였습니다. 관리들이 백성들 때문에 그들을 어떻게 처벌할지 방법을 찾지 못하고 다시 위협하여 놓아 주었으니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2. 오직 예수의 이름으로

 

이 세상에 많은 종교가 있고 성인들도 많이 있지만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죄인을 구원할 수는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 죄인들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예수님의 이름만이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그 어떤 종교도, 그 어떠한 사람도, 그 어떠한 행위로도 죄인들이 죄악을 용서받고 천국에 갈 수 있는 길은 전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오직 예수님의 이름으로만 가능하도록 정하셨습니다(4:12).

 

우리는 오직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응답받습니다. 우리의 기도는 살아계신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것입니다.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응답을 주십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거짓 신이나 어떤 존재에게 잘못된 기도하는 모습을 볼 때 매우 안타깝고 불쌍한 마음까지 듭니다. 성도 여러분들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응답을 받으시길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는 예수의 이름으로 치유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치유의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계시는 동안에도 가시는 곳곳마다 수많은 환자들의 병을 고치셨습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병을 치유하시기 위해 무서운 채찍에 맞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의 질병을 십자가에 짊어지셨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53:5). 지금도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을 믿고 간절히 기도하면 자신과 다른 환우들의 질병도 치유하고 건강하게 살 수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예수의 이름으로 마귀를 이길 수 있습니다. 마귀와 귀신들은 사람들보다 훨씬 강하고 사악한 존재들입니다. 이 악령들은 아담 이후부터 지금까지 인류를 괴롭혀 왔습니다. 이 세상에서 이 사악한 존재들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이름은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외에는 없습니다. 예수님은 만물을 다스리시는 모든 권세의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오직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여 응답받고, 치유 받고, 마귀를 이기시기 바랍니다.

 

3. 예수의 이름보다 귀한 것은 없다

 

“1.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 이 세상 부귀와 바꿀 수 없네

영 죽을 내 대신 돌아가신 그 놀라운 사랑 잊지 못해

(후렴) 세상 즐거움 다 버리고 세상 자랑 다 버렸네 /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예수밖에는 없네

2.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 이 세상 명예와 바꿀 수 없네

이 전에 즐기던 세상일도 주 사랑하는 맘 뺏지 못해

3.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 이 세상 행복과 바꿀 수 없네

유혹과 핍박이 몰려 와도 주 섬기는 내맘 변치 못해” (찬송가 94)

하나님나라와 예수님의 가치를 발견하고 너무 좋아서 자기의 모든 재능을 다 주님께 돌린 한 분을 소개합니다. 그는 어렸을 때에 교회에 나갔으나 점점 성장하면서 출세하게 되었고 돈을 벌고 쾌락을 즐기다가 예수님을 떠난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는 시카고 방송국의 연출가였고 인기절정의 가수였습니다. 돈을 벌고 출세하고 인기가 높아 가면서도 그의 마음은 늘 불안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성경을 읽다가 예수님에 관한 추억과 향수가 진하게 살아났습니다. 그 후 어느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전 삶을 예수님께 드렸습니다.

 

그리고 자기 집에 돌아 왔는데 방송국에서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전속 계약을 체결하면 지금까지의 대우보다 몇 배나 더 주겠다고 제안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제안을 거절하면서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미안하지만 전화를 너무 늦게 걸었습니다. 앞을 나의 목소리와 재능 모든 것은 나를 구원하신 예수님 나의 주인 되신 창조의 하나님 그분의 영광을 위해 쓰여 질 것입니다.” 이 사람의 마음속에 멜로디가 솟아나기 시작했습니다. 자기를 위해 늘 기도하던 어머니가 친구 밀러 여사에게서 가져온 성시에 맞춰 작곡을 하였습니다. 이분이 바로 빌리 그래함 목사님과 평생을 동역한 조지 비브리 쉐아 입니다.

 

그는 1973년에 여의도에서 빌리 그래함 한국전도대회가 열렸을 때, 한국에 와서 이 노래를 불렀고, 1984년에 한국기독교 100주년선교대회가 역시 여의도에서 열렸을 때 그는 75세의 고령이었으나 굵은 테 안경을 쓰고 변함없이 온화한 미소와 함께 이 찬양을 불러 성도들에게 깊은 은혜를 주었습니다. 작사하고 노래 부르는 분의 결단과 행동이 뒷받침된 찬양이었기 때문에 은혜가 더욱 컸습니다.

 

오래 전 암스테르담에서 세계 모든 전도자들이 모여 <세계에 복음을 어떻게 전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열렸던 복음전도대회의 절정에 빌리 그래함 목사님이 설교를 하고, 쉐아 할아버지가 찬송을 불렀는데 주 예수 보다 귀한 분이 없네이 찬송을 불렀습니다. 장내에 참석했던 모든 사람이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 그때 쉐아 할아버지는 이렇게 답례했습니다. “이 부족한 사람을 위해서 많은 갈채를 보내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 박수갈채와도 예수님을 바꿀 수 없습니다.”

 

세상에 귀한 것은 많습니다. 하늘과 땅도 귀하고, 꽃과 나무도 귀합니다. 사랑하는 가족이 귀하고 가정도 소중합니다. 직장이 귀하고 일터도 소중합니다. 친구도 좋고 애인도 좋습니다. 건강도 소중하고 돈도 귀합니다. 그러나 세상의 하고 많은 그 어떤 귀한 것도 예수님과 바꿀 수는 없습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을 춘다고 하지만, 지식도 명예도 권세로 좋지만 예수님만큼 귀하고 좋지는 않습니다. 이런 의식이 성도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공회에서 놓이게 되매 제자들에게 돌아가 그동안 되어 진 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어디서 예수의 이름라는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 알 수 없게 성령님이 하신 일들에 대해서 고백하며 선포하는 제자들의 의연한 모습들이 보입니다. 마치 한편의 영화와 같은 장면들, 그날 있었던 일들이 눈앞에 선하였습니다. 사도와 성도들은 한 마음으로 그 일들이 성령의 역사로 고백하며 하나님께 소리 높여 찬양하였습니다. 대주재여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은 이시요 또 주의 종 우리 조상 다윗의 입을 통하여 성령으로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족속들이 허사를 경영하였는고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리들이 함께 모여 주와 그의 그리스도를 대적하도다(4:24-25).

 

우리는 내가 한 일이 아닌가?’ 하는 욕심이 생기면 내가, 내가 했다고 하게 됩니다. 우리는 내 안에 있는 내가 했던 일이 라고 말했던 일들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하지만 베드로와 요한은 자신의 신분이 상승하는 그런 일들에 자신을 그대로 놰 버려두어도 되었을 것을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예수의 이름이 하신 것을 고백하며 주님만 높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이름으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예수의 이름이라는 무기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얼마나 강력한 무기인지 모르고 살 때가 많이 있습니다. 예수의 이름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고 있었고, 그래서 그 예수의 이름을 사용할 엄두도 못하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말씀을 통해 예수의 이름의 능력을 알았습니다. 이제 오직 예수의 이름만을 쉼 없이 호흡하며, 가슴에 채우며 살아야 합니다. 오직 예수의 이름으로 삶을 바꾸시기 바랍니다. 오직 예수의 이름으로 심령이 새롭게 회복되어 자신을 이기고, 세상을 이기고, 마귀를 이기고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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