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바다의 은혜 막7:31-37, 계3:7-13
국민일보에 난 기사 내용입니다. 한 마리의 개가 3년 째 주일 성수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포르투갈에서 일어난 일인데 이 개는 주일이 되면 어김없이 집을 나선다는 것입니다. 교회까지 가는 거리가 26km (65리)나 되는 먼 거리인데, 이 개는 새벽 5시에 집을 나서서 7시 30분에 교회에 도착해서 교회 강단 앞에 앉아서 예배를 드리는데 사람들과 똑같이 순서에 맞춰서 자리에서 일어나고 앉을 때 앉고 한다는 것입니다. 예배가 끝나면 다시 자기 집을 향해 간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개를 구경하러 왔다가 교회에 등록하고 있는데 이 개는 전도의 역할도 충실히 이행하고 있어 주님의 은혜의 도구로 쓰임 받는다는 것입니다. 우리 속담에 "개만도 못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사람이 만물의 영장이라 하지만 영적인 안목이 열리지 못하면 미물보다 못한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은 두 본문을 중심으로 “에바다의 은혜”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에바다의 은혜는 육적인 면 보다 영적인 면에서 더 소중합니다.
예수님께서 이방 땅에서 귀신이 들렸던 한 여인의 딸을 고쳐주시고 갈릴리로 돌아오시자 사람들이 귀먹고 어눌한 자를 예수님께로 데리고 왔습니다. 이 사람은 귀가 들리지 않고 말을 하지 못하는 어눌한 자였습니다. 많은 경우 이런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다쳐진 공간 안에서 홀로 살아갑니다. 그들 나름대로 불행의 울타리를 만들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자들이 되기 쉽습니다.
이 사람을 예수님이 만나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에바다"하셨습니다. 이 에바다란 말은 헬라어 원어로 "에파타"로 “열려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귀가 먹고 말을 못하는 사람을 향하여 에파타 하신 것입니다. 그랬더니 이 사람이 귀가 열리고 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말 못하고 듣지 못하고 살았던 그 인생의 무거운 짐, 울타리가 벗겨졌습니다. 울타리를 벗어나 새로운 자유, 새로운 생명을 얻은 것입니다. 이 극적인 장면에 대해 본문 35절에 "그의 귀가 열리고 혀의 맺힌 것이 곧 풀려 말이 분명하더라."했습니다. 그는 분명한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분명히 듣기를 시작하였습니다. 새로운 세계가 이 사람에게 열린 것입니다.
육체적인 장애보다도 훨씬 더 불행한 장애가 있다면 그것은 정신적 장애, 영적인 장애입니다. 이런 사람은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합니다. 지금도 나에게 말씀하시는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사람들 얼마 많습니까? 이 세상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꽉 차있는데도 그 하늘의 영광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래서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폐쇄된 인생 속에 살아가는 답답한 사람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자기들의 지식이나 철학이 최고라고, 자기들의 경험이 제일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들이 보고 들어야 할 음성이 있다면 예수님의 말씀이요, 신령한 은혜의 빛이요, 하나님의 영광인데 그것을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구약 이사야 6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십니다.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때 이사야가 말합니다. "주여 내가 여기 있사오니 나를 보내소서." 이때 하나님께서는 그가 가야할 백성들의 상태를 말씀하십니다. "저들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내가 소원하는 것은 네가 가서 이것을 선포할 때 일어나게 되는 기대는 이것이다. 나는 저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와 고침 받기를 원하노라" (사6:9-10)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죄로 인해 어두워 진 세상 속에 오셔서 이 세상을 다시 한 번 치유하고자 하십니다. 세상을 창조했던 동일한 말씀의 권능으로 이 귀가 멀고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에게와 영적으로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세상 사람들에게 "에파타" 명령하십니다. 이 명령을 듣는 이마다 귀가 열릴 것입니다. 가슴이 열릴 것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입이 열릴 것입니다. 신령한 은혜의 세계에 대한 소망이 열릴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으로 삶이 새롭게 될 것입니다.
청주에서 목회 하셨던 김상호 목사의 은혜 체험입니다. 6.25 때 시골에서 미처 피난을 가지 못하고 공산군의 눈을 피하여 낮에는 산 속에 숨어 있다가 밤에는 집에 와서 쉬며 틈틈이 교인들 가정을 심방하곤 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웃 동네 남정들이 3∼4명이 공산군에게 몰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남편과 자식을 잃은 동네사람들은 실의에 빠져 정신을 잃은 사람과 같이 되었습니다. 이 틈에서도 용케 죽음을 면한 이장이 사태를 수습하기 위하여 친구인 김 목사에게 찾아와서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도움을 구하여 왔습니다.
친구인 이장의 말을 들은 김 목사는 쾌히 그 마을에서 부흥회를 갖겠다고 했습니다. 공산치하에서 부흥회를 갖는다는 것은 목숨을 건 것입니다. 밤이 되자 이장 설득에 못 이겨 동네 사람들이 이장네 마당에 모이게 되었습니다. 김 목사님이 달빛 아래서 한창 설교하고 있는데 동네 사람들이 한사람 두 사람 모두 슬그머니 자리를 뜨기 시작했습니다. 마지막에는 이장도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그제야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주위를 살펴보니 공산군 일개분대가 이장 집을 완전히 포위하고 말았습니다. 이젠 틀림없이 죽었구나 생각하고 죽음을 각오하고 공산군을 향하여 설교했습니다. 도망가던 이장이 동네 사람들 때문에 김 목사가 죽는구나 하고 몸을 숨기고 바라보았더니 총부리를 겨누고 점점 목사에게 접근하던 공산군들이 걸음을 멈추고 넋을 잃은 듯 목사의 설교를 듣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목사님은 그때 사력을 다해서 마지막 설교로 알고 하셨습니다. 얼마쯤 시간이 흐른 후 그들 중 분대장으로 보이는 병사가 "가자"하고 인솔하여 어디론가 가버리고 말았습니다.
공산군이 사라지자 담 너머에 숨어 있던 이장과 동네 사람들이 나와서 목사님을 붙들고 울면서 "나는 오늘 하나님을 보았네. 그리고 이어서 나는 오늘 목사님이 꼭 죽는 줄 알았네. 내가 도망을 하다가 자네가 죽는 것을 그냥 두고 갈 수 없어 담 너머로 바라보는데 공산군들이 자네에게 가까이 다가오자 갑자기 하늘에서 빛을 비추고 흰 옷 입은 사람들이 자네 주위를 둘러서는데 그 수가 공산군보다 더 많더니 그네들이 자네 주위를 서성거리자 자네에게 접근하지 못하더군. 그런데 공산군들이 물러가자 흰 옷 입은 사람들은 사라지고 하늘에 빛도 없어졌네. 이제 나는 자네가 믿는 하나님을 믿겠네.“
은혜의 세계를 보는 눈이 열리면 복음을 믿는 믿음의 사람으로 변화 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늘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사람으로 변화 됩니다. 우리 모두 에바다의 은혜로 말씀을 듣는 귀가 열리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는 입이 열리기를 소망합니다.
2.에바다의 은혜를 통해 받는 복이 무엇인가를 상고해 봅시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인생의 진로가 막히고, 자금 줄이 막히고, 직장이나 사업의 앞 길이 막히고, 결혼의 문이 막히고, 인간관계가 막히고, 건강 문제가 막혀 있으면 답답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이 때 에바다의 은혜가 임하면 문제가 해결함을 받게 됩니다. 마가복음 본문에 귀 먹고 말이 어눌한 자가 주님의 은혜로 치유 받고 밝히 듣고 잘 말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질병의 치유가 일어난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막힌 것들이 풀려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위로 하늘을 향한 문이 열려져야 합니다. 서신서 본문 계3:7-8에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가 이르시되/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했습니다.
눅 16장에 나오는 부자는 물질의 문, 연락의 문, 세상 영화의 문, 건강의 문은 잘 열려 있는데, 하늘의 문이 닫혀 있었습니다. 하늘의 문이 닫혀 있으니 하나님을 경외 할 줄도, 기도할 줄도, 감사할 줄도 몰랐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불쌍한 사람들을 향한 긍휼과 사랑의 마음이 닫혀 있었습니다. 그래서 부유한 사람들과는 잘 어울렸지만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고, 병이 들어 있는 거지 나사로는 외면했습니다. 그가 세상에 살 동안은 하늘의 문이 닫혀 있는 것이 얼마나 불행하고, 얼마나 두렵고 무서운 결과를 맞게 될 것인가를 전혀 몰랐습니다. 그가 죽고 나서야 비참한 고통 가운데 떨어지고 난 다음에야 뒤 늦게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에바다의 은혜를 받게 되면 하늘의 문이 열리게 됩니다. 그런 자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이 얼마나 귀한지를 알게 됩니다.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는 일이 얼마나 귀한지를 압니다. 베드로처럼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고 고백하여 천국 열쇠를 받는 일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를 압니다. 하늘 문이 열려 복음의 가치를 알고 복음을 전하다가 밧모 섬에 유배되어 모든 길이 막혀있고, 답답하게 갇혀 있는 요한을 향하여 주님은 하늘을 문을 열어 은혜의 세계를 보게 하셨습니다. 그는 열린 하늘 문으로 구원 받은 자들의 허다한 무리가 흰 옷을 입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황홀한 모습을 보았습니다. 잘 단장한 새 하늘과 새 땅의 모습도 보았습니다. 장래에 일어날 일도 보았습니다.
빌라데비아 교회는 규모도 적고 가지고 있는 능력도 작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주님의 말씀을 지키며, 주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았고, 주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기죽지 않고 사단의 세력을 이겼습니다. 그들에게 하늘 문이 열리는 에바다의 은혜가 함께 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에바다의 은혜가 임하면 마음이 열려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고백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귀가 열리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는 입이 열리고, 전도하는 입이 열리고, 기도하는 입이 열립니다. 그 동안 외면했던 불상한 사람들을 향한 사랑의 마음이 열립니다.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명심하여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으로 삽니다. 그러다 보면 내 안에 불필요한 것들이 떠나게 되고, 치유의 역사도 일어나게 됩니다.
어느 교회의 목사님 사모가 병원에서 위암 판정을 받았습니다. 이후 사모는 입을 굳게 다물고 미음도 입에 대지 않았습니다. 한창 나이에 이 지경이 된 것은 개척 교회 시절의 극심했던 고생 때문이라는 생각이 사모에게 들었습니다. 남편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연히 남편과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 싹터 올랐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목사님은 감리교 신학대학의 윤성범 학장님을 만났습니다. 목사님, 얼굴이 어둡군요.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목사님은 형편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러자 학장님이 제안을 했습니다. 노트를 한 권 사다가 아내에게 주세요. 그 노트에 감사할 일만 생각나는 대로 적으라고 해보세요. 목사님은 즉시 노트와 볼펜을 사들고 아내에게 갔습니다. 이 마당에 무슨 감사할 일이 있다고 그러세요. 사모가 한두 줄씩이나마 노트에 감사할 일을 써내려 간 것은 목사님이 방을 나서고 난 후에도 한참이나 시간이 흐른 뒤였습니다. 아주 평범하고 작은 일부터 적어 나갔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이 났습니다. 사모는 가장 가까운 사람부터 찾아다니며 감사의 인사를 하자고 생각했고, 또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사모는 매일 사람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하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러자 점점 통증은 사라지고, 다리에는 웬일인지 힘이 생겼습니다. 병원에 가니 의사가 깜짝 놀랐습니다. 암세포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어떤 면으로든지 에바다의 은혜가 임하면 내 속에 있는 불신앙, 미움, 두려움, 원망, 꼬인 문제, 불평, 질병, 근심과 같은 찌꺼기들이 떠나가게 되고, 대신 믿음, 감사, 사랑, 소망, 평안, 기쁨, 형통, 치유, 담대함 등으로 채워지게 됩니다. 우리 모두 에바다의 은혜를 통해 주님이 예비하신 놀라운 복을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3.에바다의 은혜를 받기위한 성도의 자세에 대해 상고합시다.
복음서 본문에 나와 고침 받은 자에게 임한 은혜를 보면
먼저 사모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인은 물론,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고침 받고자 하는 소망을 가지고 사모하는 마음으로 주님께 데려 온 것입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야곱은 하나님의 축복이 귀중함을 알았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축복을 받으려고 간절히 사모하며 안타까워합니다. 그가 형으로부터 장자권을 산 것도, 아버지와 형을 속이고서라도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자 하는 사모함이 있어 야곱은 장자가 받을 수 있는 그 축복을 아버지를 통해 받았습니다.
다음에 기도하는 자에게 열려진다는 것입니다. 막7:32에 “사람들이 귀 먹고 말 더듬는 자를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안수하여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주님은 그들의 간구를 들으시고 고쳐주신 것입니다. 주님은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열리리라" (마7:7)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급의 속박에서 해방 시키고,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을 향해 갈 때 수많은 대적과 장애물과 어려운 문제들을 만났습니다. 모세는 그 때마다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 때 해방의 문이 열리고, 홍해가 열리고, 하늘이 열려 만나가 내려오고, 바위가 열려 생수가 나오고, 앞길을 가로 막는 대적을 이기게 하셨습니다.
엘리야는 기도의 사람입니다. 갈멜 산에서 바알과 앗세라 선지자들을 모아 놓고 제단에 불이 떨어지게 하는 신이 참 신인 것을 온 백성에 증거 해 보이도록 하자하고 먼저 그들이 믿는 바알과 앗세라 신에게 기도하게 했지만 불이 내려오지 않자 엘리야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재단을 살랐습니다. 그는 그 곳에서 거짓 선지자들을 척결했습니다. 또 그가 기도함으로 굳게 닫힌 하늘의 문이 열려 3년 반 동안 가물었던 대지를 다시 흡족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생명의 주님을 만난 자에게 열립니다. 세상에서 좋은 부모를 만나고, 좋은 배우자를 만나고, 귀인을 만나고, 좋은 친구를 만나고, 좋은 이웃을 만나는 것도 큰 복입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생명 되시는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죄 사함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요, 유일한 구원의 문이 되시는 분이요, 만유를 지으시고, 다스리시고, 심판하실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세상에서 아무리 좋은 분을 만났어도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은 불쌍한 사람이요, 아무리 세상에서 사람들을 잘 만나지 못하여 실패한 사람도 생명의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복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님 안에는 온갖 보화가 감추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는 능력이 주님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과 평안을 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늘 소망을 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7장에 나오는 나인성에 사는 한 과부는 외아들을 잃고 상여를 메고 공동묘지로 향하여 가는데 나인성문에서 상여에 매달려 슬퍼하며 몸부림쳐 통곡합니다. 이때 이곳을 지나가시던 예수님이 상여를 멈추게 하시고 관을 꺼내놓고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고 말씀하실 때 관 뚜껑이 열렸습니다. 죽은 청년이 살아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이 여인은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었습니다.
12년이나 혈루병으로 고생했던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 병에서 해방을 받았습니다. 오라버니를 잃은 슬픔 가운데 있었던 마르다와 마리아는 평소 가까이 지냈던 예수께서 그들에게 오셔서 나사로를 부르실 때 돌무덤 문이 열렸습니다. 죽은지 나흘이나 된 나사로가 다시 살아났습니다.
이처럼 오늘 우리에게도 예수님 만나면 사망의 문, 어둠의 문이 열리고 질병이 떠나가고 건강의 문이 열리며 새 소망의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3:20)고 하셨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의 예수의 마음이니"(빌2:5)라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 은혜를 사모하고 기도 하여 생명의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주님을 사랑하고 교제를 나누다가 주님이 예비하신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기업으로 받는 자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정리합니다.
두 본문을 중심으로 “에바다의 은혜”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에바다의 은혜는 육적인 면 보다 영적인 면에서 더 소중합니다.
◒.에바다의 은혜를 통해 받는 복이 무엇인가를 상고해 보았습니다.
◒.에바다의 은혜를 받기위한 성도의 자세에 대해 상고해 보았습니다.
*사모하는 자에게, *기도하는 자에게 *주님은 만나 주시고 에바다의 은혜를 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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