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50:23) 감사 예배의 기적
불평만 일삼는 불평나라의 한 젊은이가 감사나라로 유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가족들과 친지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떠나는 젊은이에게 사람들은 이렇게 당부를 했습니다. “이번에 감사나라에 가서 감사를 잘 배워서 우리에게 감사를 가르쳐 주세요.”
이 젊은이는 감사나라에서 열심히 공부를 하여 드디어 감사 박사학위를 따게 되었습니다. 그는 감사 박사학위증을 가지고 자기나라인 불평나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에게 많은 기대를 했던 사람들이 얼마나 잘 배워 왔을까 궁금해 하며 그의 말을 듣기 위해 모여들었습니다. 단상에 오른 그 젊은이는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말 지겨웠습니다. 그 나라는 어떻게 된 나라인지 눈을 떠도 감사, 잘 때도 감사, 입만 열었다 하면 감사, 도대체 감사 밖에 배울 것이 없었습니다. 전 정말 지겨울 정도로 징그럽게 감사만 배우고 왔을 뿐입니다.”
반대로 감사나라의 한 젊은이가 불평나라로 유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 역시 많은 사람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면 유학을 떠났습니다. 이 젊은이는 열심히 공부하여 드디어 불평 박사학위를 따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가 어떤 것을 배워 왔는지 궁금해 하며 모여들었습니다. 단상에 오른 그 젊은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감사할 줄 알며 사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고 감사한 일인지 깨닫게 해준 그 나라 사람들에게 정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우리도 가지고 있는 것이 많이 있지만 감사보다는 불평할 때가 더 많습니다. 불평은 자신과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무너뜨리게 만듭니다. 그러나 감사하면 모든 관계가 좋아지고 환경도 점점 더 좋아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감사를 잘 하십시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먼저 성도라는 말의 뜻부터 잘 알아야 하겠습니다.
성도는 어떤 사람인가 하면 예배드리는 자입니다. 본문이 속해 있는 시편 50편 가운데 5절을 보면 성도는 예배자인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르시되 나의 성도들을 내 앞에 모으라 그들은 제사로 나와 언약한 이들이니라 하시도다.” 여기서 ‘성도’라고 번역한 원어는 ‘하시드’인데 ‘경건한 자’를 말합니다. 즉 ‘성도’를 의미합니다. NIV 영어성경은 ‘consecrated ones’, KJV 영어성경은 ‘saints’라고 하여 성도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도라는 말이 단순한 말이 아닙니다. 성도라는 말을 쉽게 부르고 있습니다만 성도가 된다는 것은 매우 큰 의미가 있습니다. 누구나 손쉽게 성도가 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성도가 될 수 있습니까? 5절을 보면 “그들은 제사로 나와 언약한 이들이니라.”고 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영어성경은 “made a covenant with me by sacrifice.”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희생제물(sacrifice)로써 하나님과 언약(covenant)을 맺은(made) 사람이 성도라는 것입니다. 성도는 희생제물로 만들어진 사이입니다.
여기서 희생제물의 의미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희생제물은 곧 제사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이 제사라는 말의 출처를 잘 알아야 성도의 의미를 제대로 잘 알 수 있습니다. 성도는 제사를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제사, 즉 희생제물(제바흐)이란 의미를 어떻게 잘 알 수 있겠습니까?
제사의 뜻을 알려면 창세기 3장 21절부터 살펴보아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고 범죄 하였습니다. 그 결과 화를 자초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자기 멋대로 판단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대로 사는 아담과 하와였지만 불쌍히 여겨주셔서 가죽옷을 만들어 입혀 주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가죽옷은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가죽옷은 짐승의 피를 흘리고 만든 옷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어린 양 예수께서 피를 흘리시는 것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죄로 멸망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있지만 속죄의 피로 용서받고 영생을 누리도록 해주신 것을 의미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낳은 아들 아벨이 양 치는 자로서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제물을 드렸습니다(창 4:4). 노아가 제물을 드립니다. 창세기 8장 20절입니다. “노아가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제물을 취하여 번제로 제단에 드렸더니.”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희생제사를 드립니다. 아브라함이 드렸습니다. 창세기 12장 7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제단이라는 말 그 자체가 무엇을 의미합니까? 희생제물을 드렸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 일어난 상황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삭도 드렸습니다. 창세기 26장 25절입니다. “이삭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거기 장막을 쳤더니 이삭의 종들이 거기서도 우물을 팠더라.” 야곱도 드렸습니다. 창세기 46장 1절입니다. “이스라엘이 모든 소유를 이끌고 떠나 브엘세바에 이르러 그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께 희생제사를 드리니.” 야곱이 가족을 데리고 요셉이 있는 애굽으로 이주할 때도 제사를 드렸습니다. 창세기 46장 1절입니다. “이스라엘이 모든 소유를 이끌고 떠나 브엘세바에 이르러 그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께 희생제사를 드리니.”
이후 이스라엘 백성이 약 400여 년이 흐른 뒤 애굽에서 나올 때입니다. 그런데 애굽에서 나온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셔서 애굽에서 자기 백성을 건져내도록 하셨습니다. 출애굽기 3장 18절입니다. “그들이 네 말을 들으리니 너는 그들의 장로들과 함께 애굽 왕에게 이르기를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임하셨은즉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려 하오니 사흘길쯤 광야로 가도록 허락하소서 하라.” 이후 애굽에 내린 재앙의 과정을 보면 계속해서 제사를 드릴 수 있도록 내 보내라는 말씀이 반복해서 나옵니다. 유월절 어린 양의 피를 기념하는 제사도 드리도록 하고 있습니다.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애굽에서 벗어나게 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세월이 다시 흘러 신약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그동안 상징이었던 어린 양 예수의 피를 실제로 이루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피를 흘려주셨습니다. 우리가 성도가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우리 죄를 대신해서 희생제물이 되셨습니다. 우리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한 희생제사를 드리신 것입니다.
이것을 볼 때 성도는 어떤 존재입니까? 굉장한 의미가 있지 않습니까? 세상으로부터 출 애굽한 성도는 하나님과 제사로 맺은 사이입니다.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있는데 그 표징 가운데 하나가 예배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예배가 얼마나 중요합니까?
그래서 주일 성수가 언약의 표징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출 31:13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게 함이라.” 그 중요성을 알 수 있습니다. 얼마나 귀한 날인지 이렇게까지 말씀하셨습니다. 출 31:14 “너희는 안식일을 지킬지니 이는 너희에게 거룩한 날이 됨이니라 그 날을 더럽히는 자는 모두 죽일지며 그 날에 일하는 자는 모두 그 백성 중에서 그 생명이 끊어지리라.”
주일을 지키는 것은 단순한 것이 아닙니다. 성도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방편이기 때문입니다. 성도가 아니면 영원히 멸망합니다.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집니다. 주일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라는 것입니까? 그들은 어떻게 되어버립니까?
그러나 반대로 주일을 지키는 성도에게는 놀라운 은혜와 축복이 임합니다. 사 58:13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하지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하게 여기고 네 길로 행하지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하지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사 58:14 “네가 여호와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기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주일을 잘 지키고 예배를 잘 드릴 때 성도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배를 통해 희생제물의 가치를 알게 됩니다. 아울러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 속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날이 되기도 합니다. 거기에다가 주일을 통해 주시는 놀라운 기쁨과 은혜와 축복까지 받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그렇다면 예배를 어떻게 드려야 할까요?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좋을 때만 감사가 아니라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선하신 하나님을 믿고 그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대로 이루어질 줄 믿고 감사드려야 할 것입니다. 본문이 속한 시편 50편 가운데 14절을 보면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라고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로 제사를 드리라고 하고 있습니다. 좀 더 살펴보면 감사의 예물을 드리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NASB 영어성경에서 “Offer to God a sacrifice of thanksgiving”이라고 잘 번역하고 있습니다. 제사를 드리는 데 감사의 제물을 드리라는 것입니다.
7절부터 13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시는 말씀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뜻으로 풀이해 볼 수 있습니다. “자, 나의 사랑하는 백성들아, 내 말을 잘 들어보아라. 나는 너희들이 드리는 제물 때문에 책망하지는 않겠다. 항상 잘 드리고 있다. 그러나 내가 너희들의 희생제물을 가져가지는 않겠다. 천하에 있는 모든 희생제물이 다 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가 배가 고프다고 가정할지라도 너희들에게서 가져가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너희들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희생제물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그토록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드리는 예배가 아닙니다. 그 예배는 잘 드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어떤 예배를 원하시고 계십니까? 그것을 14절에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무수한 예배보다는 감사로 드리는 예배를 받고 싶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감사로 예배를 드리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본문 23절입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감사로 예배를 드리는 성도에게 하나님께서 구원을 보이시겠다고 하셨습니다. 표준새번역을 보면 보다 이해하기 쉽도록 번역해주고 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을 제물로 바치는 사람이 나에게 영광을 돌리는 사람이니, 올바른 길을 걷는 사람에게, 내가 나의 구원을 보여 주겠다.” 감사의 예배를 드리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구원을 보게 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때 하나님의 구원은 무엇을 말합니까? 구원은 원어로 ‘예샤’라고 하는데 ‘구원, 구출, 구조, 안전, 복리, 번영, 승리’를 의미합니다. 건져주어 평안을 누리게 해주겠다는 것입니다.
시편 50편을 보면 1절에 “전능하신 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사”라고 시작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인 것을 강조하고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14절과 15절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존하신 이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이 말씀을 하신 다음에 최종적으로 23절에 다시 한 번 더 말씀하셨습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하나님께서 감사로 예배드릴 때 구원해 주신다고 분명히 약속하셨습니다.
요나가 그 실제 인물이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요나는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을 외쳐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반대편 서쪽에 있는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습니다. 그러다가 풍랑을 만나서 그만 바닷물에 던져져서 커다란 물고기의 밥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때 요나는 불평하지 않고 물고기 뱃속에서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요나서 2장 1절에서 9절까지 기도드리는 내용이 나오는데 그 가운데 7절부터 9절까지를 보겠습니다.
“내 영혼이 내 속에서 피곤할 때에 내가 여호와를 생각하였더니 내 기도가 주께 이르렀사오며 주의 성전에 미쳤나이다.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상하는 모든 자는 자기에게 베푸신 은혜를 버렸사오나,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 하니라.”
요나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감사로 제사를 드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물고기에게 말씀하시자 요나를 육지에 뱉어냈습니다. 요나는 그리하여 목숨을 건지게 되었고 복음을 전파하는 사명도 잘 감당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감사하는 자를 눈여겨보시고 구원해주십니다. 감사로 예배드리는 자를 구원해주십니다. 우리도 물고기 뱃속에 갇힌 요나처럼 삶과 사역 가운데 여러 가지 일로 괴로워하고 답답해하고 힘들어할 때가 있습니다. 앞뒤 “꽉꽉” 막혀서 옴짝달싹 못하는 절망적인 신세가 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가운데서도 감사를 드릴 때 건짐을 받습니다. 요나처럼 기적이 일어납니다. 이처럼 감사로 드리는 예배는 기적이 일어나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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