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마가복음

예수께서 지신 십자가의 능력 마가복음15:33-39

nam씨 2022. 4. 9. 11:11

예수께서 지신 십자가의 능력    마가복음15:33-39(종려주일)

 

나무 모형의 작은 십자가 전시회가 있었습니다.

사순절을 맞이하면서 갖가지 나무 모형의 십자가를 만들어서 십자가의 의미, 십자가 신앙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마련된 전시회 같았습니다.

여러 가지 나무로 만든 십자가 모형을 보면서 저는 두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는, 십자가의 종류가 참으로 많다는 것이고 또 한 가지는, 십자가가 참으로 아름답다는 생각입니다.

전시회를 위하여 만들었기에 대부분 잘 깎고 다듬고 칠을 해서 예쁘게 만들지 않았나? 생각되어집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는 결코 예쁘거나 아름다운 십자가는 아니었습니다.

찬송가 150장 가사에 나오는 대로 험한 십자가입니다.

갈보리산 위에 십자가 섰으니 주가 고난을 당한 표라/

험한 십자가를 내가 사랑함은 주가 보혈을 흘림이라/

최후 승리를 얻기까지 주의 십자가 사랑하리/

빛난 면류관 받기까지 험한 십자가 붙들겠네./

 

당시 주님께서 지신 십자가는 찬송가 가사가 보여주는 대로 험한 십자가였습니다.

주님이 지신 십자가는 주님이 홀로 감당하기 어려운 무거운 십자가였습니다.

십자가를 만든 나무 자체가 잘 다듬어지지 않는 거친 나무였을 것이고 그 십자가는 33세의 청년이었던 예수님도 감당하지 못하여 넘어지고 쓰러졌던 무거운 십자가였습니다.

예수께서 홀로 십자가를 감당하지 못하자 로마 병정은 구경꾼으로 와 있던 한 사람을 지목하여 십자가를 대신 지도록 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올라온 구레네 시몬이 억지로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할 정도로 십자가는 버거웠습니다.

주님이 지신 십자가는 가장 중범죄에게 지우는 십자가였습니다.

로마 당국은 유대인들에게 많은 자치권을 허락했지만 한 가지 사람을 죽이는 권한은 주지 않았습니다.

사람을 사형시킬 때는 반드시 로마 총독의 허락을 받아야 했습니다.

예수님도 로마 총독의 허락을 받아 십자가를 지게 된 것입니다.

로마 총독이 허락했다는 것은 겉으로 볼 때는 가장 극악한 죄를 범한 사람이라는 증거였습니다.

아울러 주님이 지신 십자가는 가장 고통스러운 십자가였습니다.

십자가를 지기 전부터 고통은 시작되었습니다.

로마 총독의 사형언도가 끝나자 로마 군인들이 가시 면류관을 씌우고 채찍질을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는 가시면류관과 못 박힌 손에서 나온 피로 얼룩져있었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꼼짝 달싹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죄인이 느끼는 고통을 누가 알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예루살렘에 사는 경건한 부인들은 몰약을 포도주에 타서 마취제로 주기도 하였습니다.

십자가 자체가 고통이었지만 그 이전에 받았던 고통까지 더해져서 인간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십자가가 주님이 지신 험한 십자가였습니다.

 

그런 십자가를 쳐다보는 것 자체가 얼마나 역겹고 거북스러웠겠습니까?

당시에 십자가는 절대로 예쁘거나 아름다울 수 없는 험한 십자가였습니다.

그런데 찬송가 150장을 작사한 베르나르도는 그 험한 십자가를 내가 사랑한다고, 빛난 면류관 받기까지 험한 십자가를 붙들겠다고, 멸시 천대 받은 주의 십자가에 나의 마음이 끌린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험한 십자가가 사랑스런 십자가가 되었습니다.

멀리 할 수밖에 없었던 십자가가 가까이 하고 싶은 십자가로 바뀌었습니다.

쳐다보기도 역겨웠던 십자가가 붙들고 싶은 십자가가 되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역사가 이루어졌을까요?

한 마디로 갈보리 산 위에서 주님이 고난 받으시고 죽으신 험한 십자가가 능력의 십자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지신 십자가는 분명 가장 험한 십자가였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그 십자가를 지셨을 때 이루어진 놀라운 역사를 아울러 보여주고 있습니다.

 

먼저는, 바라바라는 사람이 석방을 받아 살았습니다.

바라바는 분명히 십자가를 지고 죽어야 할 사람이었지만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게 됨으로 대신 유월절 특사로 풀려나 살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졌던 구레네 시몬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세 번째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지게 됩니다.

이것은 성소와 지성소의 휘장이 찢어졌다는 말인데요, 이 휘장을 넘어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대 제사장밖에 없었습니다.

그것도 일 년에 한 번만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 휘장이 찢어졌다는 말은 이제 누구든지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뜻입니다.

네 번째는, 그 십자가 사형을 주관했던 최고 책임자인 백부장이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다.’고 고백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당시 최고의 범법자들에게 지웠던 고통과 수치의 십자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는 죄인 한 사람의 죽음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그 주변을 놀랍게 변화시켰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지신 십자가의 능력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십자가의 능력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1:18)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1:16)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십자가의 능력은 믿는 자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이 십자가를 믿는 것 외에는 달리 구원의 방법이 없습니다.

주님께서 지신 십자가는 유일한 구원의 능력입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십자가가 어떻게 구원의 능력이 되는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예수께서 지신 십자가는 세상의 죄악 됨에 대한 고발입니다.

 

빌라도가 예수님을 심문했을 때 죄가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10절 말씀처럼 대제사장들의 시기로 예수님이 지금 자기에게 끌려왔다는 사실을 알고 빌라도는 3번이나 예수님을 놓으려고 했습니다.

먼저는 매를 친 후에 놓으려고 했습니다.

그것이 안 되자 유월절 특사로 예수님을 석방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대제사장의 사주를 받은 군중들의 요구를 거부하지 못하고 바라바를 석방하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사형언도를 합니다.

결국 죄 없으신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것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주님은 인간이 얼마나 악한 죄인인가를 고발하고 있습니다.

아무런 죄가 없으셨지만 인간에 의해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찬송가 147장에 보면 거기 너 있었는가? 그 때에/ 주님 그 십자가에 달릴 때,

주님 그 나무 위에 달릴 때, 해가 그 밝은 빛을 잃을 때, 오 때로 그 일로 나는 떨려/

거기 너 있었는가? 그 때에이런 가사가 나옵니다.

거기 너 있었는가? 그 때에

주님을 십자가에 달리게 한 것은 당시 대 제사장이나 서기관들이나 로마 병정들뿐 아니라 오늘 나 자신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노래입니다.

우리가 그 당시에 있었다면 우리도 그들과 똑같이 행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얼마나 많은 죄를 통해서 주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고 있습니까?

망치를 들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모습을 보고 화가 난 사람이 그 사람을 끄집어 내렸습니다.

내려온 그 사람을 보니까 다름 아닌 자신이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세상 죄악과 유행을 따라 주님을 얼마나 자주 십자가에 못 박고 있습니까?

주님이 지신 십자가는 우리가 얼마나 큰 죄인인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입니다.

 

2. 예수께서 지신 십자가는 대속의 십자가였습니다.

 

예수님 대신에 유월절 특사로 풀려난 바라바에 대한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십자가 형틀에서 꼼짝없이 죽을 줄 알았던 바라바가 유월절 특사로 풀려났을 때

그는 자신이 살았다는 사실이 실감나지 않았습니다.

어리둥절한 마음으로 군중들에 섞여 예수님의 십자가를 따라갑니다.

십자가에 달리시는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그때마다 속에서 들리는 음성이 있었습니다.

저 십자가는 내가져야 할 십자가였는데, 저 십자가는 내가 달려야 할 십자가였는데,

저 예수가 나대신 십자가를 지는구나. 예수 때문에 내가 살아났구나.’

이후 바라바는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을 전하면서 평생 살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전도할 때마다 저 십자가는 내가져야 할 십자가였는데, 내 대신 주님이 지셨습니다.

그래서 내가 살았습니다.’ 전하였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주님은 전혀 죄가 없으셨습니다.

죄가 없으신 분으로 결코 그 험한 십자가에서 죽으실 분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분이 왜 죽으셨을까요?

이것을 단순히 대제사장의 시기 때문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죽음의 의미를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는 우리가 범죄 한 것 때문에 내 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4:25)

죄가 없으신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우리 인간을 죄에서 구속하시기 위한 대속의 죽음이었습니다.

애굽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어린 양이 속죄의 죽음을 당했듯이,

속죄일에 인간을 의롭게 하기 위하여 짐승이 대신 죽임을 당했듯이

주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음을 당하신 것입니다.

우리대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가 속죄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3. 예수께서 지신 십자가는 인간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대속의 십자가를 지신 이유는 인간들을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죄에 빠져서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구원의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먼저는, 독생자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시는 것입니다.

사람 중에서는 죄가 없는 대속의 제물이 될 자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죄가 있기에 대속의 죽음을 당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죄가 없으신 예수님을 인간의 몸을 입게 해서 이 땅에 보내시기로 작정을 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주님께서는 인간을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심으로 모든 인간의 죄를 속죄하시고 구원받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고 예수님이 인간을 대신하여 십자가를 자신 것은 한 마디로 인간을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인간을 사랑하사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항상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게 할 정도로 여러분들을 사랑하십니다.

세상에 자기 아들을 희생할 정도로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의 독생자를 십자가에 못 박을 정도로 여러분들을 사랑하십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4. 예수께서 지신 십자가는 인간을 구원하는 유일한 길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십자가가 인간을 구원하는 길이라는 사실을 세 가지 사건을 통하여 증거하고 있습니다.

먼저, 십자가를 대신 지었던 구레네 시몬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구레네 시몬이 처음 억지로 십자가를 졌을 때 그는 가장 재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많은 사람 중에 왜 하필이면 나냐, 너무나 재수 없고 억울한 일이었습니다.

죽음이 두려워 어쩔 수 없이 십자가를 졌지만 놀랍게도 억지로 진 십자가가 자신은 물론 그 가정을 구원하였습니다.

구레네 시몬을 소개하면서 마가는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라고 하는데 이것은 마가가 복음서를 기록할 때 알렉산더와 루포가 교회에 잘 알려진 인물이라는 것을 시사합니다.

그리고 로마서에서 사도바울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라고 소개합니다.

시몬이 진 십자가 그것도 죽음이 두려워 억지로 진 십자가였지만 그 십자가가 시몬과 그의 가정을 구원하였습니다.

 

두 번째로, 마가는 예수님이 돌아가실 때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었다고 말씀합니다.(38)

이것은 이미 말씀드린 대로 대제사장이 일 년에 한 번 나아갈 수 있었던 지성소의 휘장이 찢어졌다는 말인데 이 말의 의미는 이제는 모두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가 있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모든 사람이 담대히 하나님께 나아가게 된 것이 예수님의 십자가였습니다.

세 번째로, 마가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형을 주관했던 최고 책임자인 백부장을 통하여 인간을 구원하는 길이 되었음을 선포합니다.

백부장은 예수님을 향하여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마가가 전하려고 했던 핵심메시지였습니다.

 

오늘은 사순절 마지막 주일, 종려주일, 고난주일입니다.

이 뜻깊은 주일에 주님께서 지신 십자가의 능력을 생각하면서 십자가를 믿고 십자가를 받아들이고 십자가를 지고 십자가를 자랑하며 십자가의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