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야고보서

욕심을 버려야 할 이유 2 (약 4:11-17)

nam씨 2021. 8. 21. 17:29

욕심을 버려야 할 이유 2 (약 4:11-17)

이 시간에 지난 시간에 이어 “욕심을 버려야 할 이유”라는 제목입니다. 야고보는 모든 다툼과 싸움은 육체의 정욕 즉 욕심에서 온다고 정의했습니다. 그러므로 욕심을 극복할 때 비로소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보시기에 합당하게 됩니다. 욕심 이것이 문제입니다. 욕심은 거머리와 같은 것입니다. 한 번 달라붙으면 떨어지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욕심은 반드시 극복해야 할 것입니다. 욕심을 극복해야 할 이유는 욕심이 도리어 손해를 주고, 욕심 때문에 하나님의 원수가 되며, 욕심 때문에 은혜 받지 못하고, 욕심은 마귀가 우리를 멸망시키려는 무서운 꾀임이기 때문입니다.

 

욕심을 버려야 할 이유를 좀 더 말씀드리면

5. 거기에는 심판이 있기 때문입니다.

11-12절 “형제들아 피차에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자로다 입법자와 재판자는 오직 하나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관대 이웃을 판단하느냐” 이 말씀은 비방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인데 왜 욕심과 관계될까요? 그것은 성경은 모든 다툼과 비방은 욕심에서 비롯된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비방에 대한 심판은 곧 욕심에 대한 심판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보여주는 사건이 민12장에 있습니다.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하였다고 모세를 비방할 때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문둥병으로 치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 비방 자체도 죄이지만 그들의 비방의 이면에는 무서운 욕심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미리암과 아론의 비방의 이면에는 흑인이었던 구스 여인에 대한 인종적 차별의식이 깔려 있었습니다. 자기 형제 모세가 이런 낮은 여인과 결혼함은 곧 자신들의 격하로 받아들여졌던 것입니다. 즉 그들에게 자존심과 자기 우월감이라는 무서운 명예적 욕심이 도사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모세가 결코 율법을 범한 것이 아닙니다. 모세의 아내 십보라는 죽었고, 아무리 구스 여인일지라도 회개하여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면 재혼함이 잘못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갈렙도 그니스 사람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이스라엘은 언약적공동체지 형통적 사회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미리암과 아론의 모세가 율법을 범했다는 비방은 율법을 자기 편리할 대로 악의적으로 해석한 것입니다. 이처럼 모든 비방의 이면에는 자기 욕심과 율법 무시라는 두 가지 사실이 숨어 있습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형제들아 피차에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율법은 그 내용이 사랑인데 형제를 악의적으로 비방한다면 율법을 범하는 죄가 됩니다. 이것은 스스로 율법의 대적이 되며 율법 위에 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세우신 법을 범치 않으신데 율법을 무시하는 초법자가 된다면 이것은 스스로 재판자와 입법자 하나님이 되려는 교만입니다.

그러므로 비방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그리고 비방의 원인인 욕심에도 심판이 있습니다. 그래서 골3:5에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했습니다. 이게 사실입니다. 욕심을 품는 순간 미리암과 아론처럼 문둥병과 같이 우리 심령은 문드러져서 만신창이가 되고 맙니다. 욕심을 품고도 만신창이가 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법도 양심도 없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마3:10) 했습니다.
비방과 욕심에는 심판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6. 그것은 다 헛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13-17절 내용입니다. 16절에 “이제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니 이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당시 아라비아 사람들은 약대에다 물건을 싣고 먼 곳에 가서 무역을 해서 큰돈을 벌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여기에는 험난한 여행과 사기꾼과 강도들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생명을 잃거나 남편을 기다리지 못해 가정이 파산 되는 일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모험이었습니다. 성공하여 큰돈을 벌었다 해도 이것은 허탄한 일입니다. 14절에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명예도 권세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이 탐하는 그 어떤 것도 헛된 것입니다.

미국의 대부호로 알려진 하워드 휴즈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영화사, 방송국, 항공사, 호텔, 도박장 등 50개 업체를 가진 경제계의 실력자이었습니다. 한 때는 헐리웃 영화배우들과 염문을 뿌리면서 많은 가십거리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그런 휴즈가 결벽증에 걸려 혹시 병이 옮을까봐 사람들을 가까이 하지 않고 유리관으로 만든 무균실에서 생활을 했습니다. 그 증세가 더욱 악화되어 자가용 비행기로 병원으로 가던 중에 사망을 했다고 합니다. 그는 1977년에 사망하면서 남긴 유산은 2조 4천억 원이었는데 휴즈가 남긴 유명한 마지막 말 한 마디가 있습니다. “Nothing. Nothing”(아무 것도 아니야. 아무 것도 아니야). 이 말을 반복하면서 그는 숨을 거두었습니다. 돈도, 미녀도, 명예도 죽어 가는 그에게는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세계를 지배하던 로마의 황제 네로도 호화롭기 짝이 없는 생활을 했습니다. 그가 살던 왕궁은 복도의 길이만도 1마일이나 되는 호화찬란한 궁성이었습니다. 집안의 모든 벽은 상아와 자개로 장식되었고 천정은 특별한 샤워장치가 붙어있어서 찾아오는 손님에게는 향수가 이슬처럼 뿌려지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네로 황제가 머리에 쓰고 있던 왕관은 10만 달러가 넘는 것이었고, 그가 사용하던 노새와 조롱 말은 은으로 장식된 신발을 신겼습니다. 그가 한 번 정식으로 출타할 때면 천 명의 군사와 마차와 말들이 뒤따랐으며, 네로 임금이 낚시질을 할 때에는 금으로 만든 낚시 바늘을 썼다고 합니다. 좋은 옷이 너무나 많아 한 번 입었던 옷은 두 번 다시 입지 않았습니다. 그는 세상의 극치의 부귀영화를 다 누렸지만 결코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랬기에 네로는 허무와 공포 가운데서 스스로의 생명을 끊었습니다.

이처럼 인생이란 안개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많이 가진 것도 헛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고 오래 사는 것도 헛되고 헛되지 않는 것이 어디 있습니까? 세상 자랑 다 헛된 것입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의 목표와 자랑은 헛되지 않는 곳에 두어야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며, 행복과 만족이 하나님께 있으며, 생사화복이 하나님께 달렸음을 알아야 합니다. 삼상2:6-8에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음부에 내리게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핍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드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위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 했습니다.

그래서 15절에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저것을 하리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나의 인생의 주인이심을 늘 고백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려고 하면 거기에 진정한 가치와 만족이 있습니다. 거기에 형통이 있습니다. 그러나 욕심을 품으면 허무만이 있습니다. 우리가 욕심을 품으면 떠납니다. 은혜도 떠나고, 돕는 천사들도 떠나고, 돈을 붙잡으면 돈이 떠날 것이고, 자녀를 지나치게 사랑하면 자녀에게 축복이 되지 않을 것이며 내가 그들의 인생을 막는 자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주님으로 삼고 철저히 회개해야 합니다. 욕심 버리면 하나님의 은혜와 복이 찾아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사는 길은 허탄한 욕망과 자랑을 버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장차 인류가 멸망한다면 인간의 욕심 때문일 것입니다. 지금 지구 온난화도 인간의 욕심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람이 징계를 받는다면 역시 자기 욕심 때문일 것입니다. 욕심 버려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욕심 버려야 하나님께서 심판을 거두십니다. 욕심 버려야 하나님께서 쓰십니다. 욕심 버려야 하나님 말씀대로 살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헛된 욕심 버리고 하나님만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