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이신 예수 히 1:1-2
본문 1절을 보면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랫동안 여러 차례, 여러 가지 방법으로 말씀해 오셨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2절을 보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랫동안 여러 방법으로 말씀하셨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알아듣지 못했고, 깨닫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최후의 통첩으로 아들을 직접 보내셔서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영적 장애인들입니다. 청각 장애인들이 새소리, 바람소리, 파도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처럼, 시각 장애인들이 푸른 산, 바다, 하늘의 태양을 보지 못하는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했고, 하나님의 사인을 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수없이 말씀을 하시는데도 제대로 듣지를 못했습니다. 어떤 때는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듣고 이해하기도 했다가도 어떤 때는 제대로 듣지 못해 오해하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전혀 듣지도 못했습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현대 사회를 정보화 시대라고들 합니다. 삐삐다, 휴대폰이다, PCS다, 컴퓨터 통신이다 그래서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발전했습니다. 이 세상 메시지, 이 세상 정보는 빠르고 정확하게 받을 수 있게 됐습니다.
그러나 이럴수록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메시지, 하늘의 정보에는 더욱 어두워지는 것만 같습니다. 듣지를 못하고 보지를 못합니다. 모두들 더듬이를 잘린 개미처럼 영적으로 갈 곳 몰라 비틀거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우리에게 메시지를 보내십니다. 하늘을 향해 귀를 열어야 합니다. 영적 세계를 향해 눈을 열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보아야 하고, 그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말씀하시는 하나님
본문에 보면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분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본문 뿐 아니라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천지 창조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말씀하시는 분이십니다.
처음 창조하실 때는 허공에 말씀하셨습니다. "빛이 있어라." 피조물들이 나타나자 그 피조물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충만하라." 아담과 하와를 만드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둘이 한 몸을 이루라." 모두가 그 말씀을 들었고, 그 뜻을 이해했고, 그리고 순종했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타락하여 범죄하게 되자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귀가 닫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듣지 못하게 됐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게 되자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게 됐고,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게 됐고, 심지어 하나님을 대적하게 됐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래도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특별히 택하신 사람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귀를 가진 사람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노아에게 말씀하셨고,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선지자들을 세우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대언하도록 하셨습니다.
이들 모두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의 말씀이 나에게 임하셨다.",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도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오늘에도 하나님의 백성들은 같은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주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주의 말씀이 내게 임했다."
한번은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의 어머니가 생일이어서 수많은 축하객이 파티에 참석했습니다. 누군가가 대통령의 어머니에게 물었습니다. "어머님은 어떻게 아드님을 이렇게 훌륭하게 키우셨습니까?" 그 때 워싱턴의 어머니가 대답했습니다. "예, 나는 아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절대 순종하도록 가르쳤을 뿐입니다."
그 어머니는 워싱턴을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줄 아는 사람으로 키웠고, 들은 말씀을 지킬 줄 아는 사람으로 키웠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그를 축복하셔서 위대한 인물이 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신28:62절에 보면 "너희가 하늘의 별같이 많았을 지라도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므로 남는 자가 얼마 되지 못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정 반대되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고, 그 결과 그 말씀을 순종치 않게 될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린 복을 거두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우리에게 복 주시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잘 듣고 따르는 사람은 구원받고 복을 받겠지만, 이 말씀을 듣지 않고 이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사람은 구원도 받지 못하고, 복도 받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끊임없이 말씀하실까요?
첫째, 꼭 알아야 할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린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숨쉬는 법, 젖을 빠는 법, 남의 도움을 받기 위해 우는 법을 알고 있습니다. 이런 사실을 모르면 그 아이는 죽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도 영적으로 살기 위해서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알려주시기 위해 말씀하십니다.
눅16장에 보면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가 나옵니다. 한 부자가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을 즐기다가 죽었습니다. 그런데 거지 나사로는 부자의 집 상에서 떨어지는 것을 먹으며 연명을 하다가 죽었습니다.
그런데 나사로는 낙원엘 가고, 부자는 음부에 가게 됐습니다. 음부에 빠진 이 부자가 두 가지 간청을 합니다. 하나는 거지 나사로의 손가락에 물 한 방울 찍어 자기 혀를 식혀달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을 보내 자기 동생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달라는 것입니다. 물론 둘 다 거절당합니다.
이 부자는 세상에 살 때 반드시 알아야 할 것 한 가지 까맣게 모르고 살았습니다. 이제 후회해 보지만 때는 늦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자기 동생들도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동생들 생각에 다급해 졌습니다. 그래서 빨리 알려주기 위해서 다급하게 부탁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부자의 심정으로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이것만은 알아야 할 것이 있기에 말씀하십니다.
둘째, 우리가 쉽게 잊기 때문입니다.
구약성경 신명기는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갈 이스라엘 백성에게 당부하는 설교입니다. 이 설교에서 모세가 가장 힘주어 사용한 단어 하나만 꼽으라면 단연 '기억하라'입니다. 히브리어로 자카입니다. 이 명령이 신명기에만 12번 사용되었습니다.
모세가 이처럼 기억하라는 말을 강조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 신앙을 잃어버릴까봐서입니다. 화려한 선진문화, 웅장한 바알 신전에서 드려지는 장엄한 종교의식 등에 정신을 팔다가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잃어버릴까봐서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사사기를 읽어보면 모세의 염려가 기우가 아니라는 것이 증명이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을 섬기고, 조상들이 지켜오던 신앙을 저버리고 우상을 숭배하는 일들이 독버섯처럼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한 눈 팔다보면 하나님을 잃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세상 재미에 빠지다 보면 신앙을 잃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한국교회 보편적인 현상입니다만 고등학교 때까지 교회 잘 다니던 학생들이 대학에 들어가거나 직장을 갖게되면 교회를 떠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 청소년 선교단체의 조사에 의하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3년 내에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이 무려 45%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으나 가장 큰 이유는 세상에 대한 관심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일이 있을까봐서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에게 말씀하십니다. 그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 말씀을 들어야 신앙을 잃어버리지 않게 됩니다.
말씀이신 예수
본문을 보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이 피조세계에 하신 말씀의 결정판이라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하나님께서 하실 말씀이 다 담겨있다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하실 말씀을 다 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 하나님의 다른 말씀은 없다는 뜻입니다.
특별히 요한복음을 보면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이 기록되어있습니다. 1:14절을 보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라고 했습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신학에서는 성육신이라 합니다. 즉 우리에게 오신 예수가 말씀 자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이 우리 가운데 거한다고 했습니다. 말은 한번 들려지고 나면 바람처럼 사라지는 특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말씀이 늘 우리 곁에서 우리와 함께 산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더 할 수 없는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선 말씀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원래 말은 귀로 듣는 의사소통의 수단입니다. 그런데 말씀이 육신을 입고 우리에게 오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 말씀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 말씀과 대화할 수 있습니다. 말씀을 보다 깊이 깨달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백두산에 관해서 책에서만 공부하는 것과 백두산을 직접 등반하면서 공부하는 것은 그 앎의 내용에서 비교할 수 없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옛날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귀로만 들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신 후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보고 만나고 함께 대화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래서 신약시대의 하나님의 백성들은 보다 확실하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 수 있게 됐습니다.
다음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을 입고 오신 뒤에 우리 안에 거하신다고 했습니다. 결혼한 후에 사랑하던 연인과 늘 함께 살 수 있게 된 것처럼 이제 하나님의 말씀은 늘 우리 곁에 있습니다. 그래서 그 말씀이 우리를 인도해 주십니다. 그 말씀이 우리를 바로 잡아주십니다.
부부가 함께 오래 살다보면 서로 닮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외모도 닮아가게 되고, 생각도 닮아가게 되고, 사는 모습도 닮아가게 됩니다. 이것을 교육하는 사람들은 사회화라 그렇게 부릅니다.
사회화는 자기도 모르게 닮아가면서 배우는 것을 말합니다. 아이들이 아빠 엄마를 저절로 닮아서 힘들이지 않고 어느 새 배우게 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말씀과 함께 살면 그 말씀을 깨닫고 그 말씀을 지키기 위해 몸부림칠 필요가 없습니다. 늘 말씀과 함께 사는 사람들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말씀을 닮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힘들이지 않고 말씀을 따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오늘도 바라시는 것이 있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듣고 그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그 말씀을 확실하게 순종할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바로 예수입니다. 예수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예수와 동행하시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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