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의 삶으로 이끄는 동행 창 5:21-24, 히 11:5-6
킷토라는 분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생활을 꼬마 아들의 손을 잡고 아들과 더불어 산들바람이 부는 언덕을 오르고 있는 아버지에 비유했습니다. 그 아이가 아버지와 같이 걷는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과 같이 걷고 있습니다. 그 아이는 아버지를 사랑합니다. 아버지를 온전히 신뢰합니다. 그러므로 어떤 처지에 이르러도 절대로 두려워하거나 낙심하지 아니합니다. 아버지와 같이 걷는 아들은 마냥 기쁘기만 합니다. 길이 험하고 날씨가 사나워도 아버지와 같이 걷는 아들은 문제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신명나게 걷습니다. 그저 아버지와 같이 걷는 것으로 만족하고 기쁜 것입니다.
아버지와 같이 걷는 아이의 마음은 그저 단순합니다. 어린아이에게는 자기 아버지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가장 훌륭하고, 좋은 사람으로 여겨집니다. 아버지가 말씀하고 행동하는 것은 무엇이나 감탄합니다. 그 아버지를 따라가노라면 아버지에 대해서 최고의 애정을 느낍니다. 뿐만 아니라 아버지에 대한 아들의 경외심은 대단합니다. 그는 언제나 아버지 곁에 있고 싶어 합니다. 어린애는 아버지가 왕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아버지를 온전히 신뢰합니다. 어린애는 아버지와 같이 길을 걷는 동안 길 잃을 염려가 없습니다. 아버지의 인도를 의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팔에 붙들려 걷는 동안 넘어질 염려가 없습니다. 내 조그만 실수로 넘어지려 해도 아버지의 강한 팔이 나를 붙들어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정말 힘든 길이 있을 때, 험한 구덩이가 있으면 아버지의 팔이 우리를 번쩍 들어 건너갑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하면 이와 같은 복을 받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목자와 양으로 비유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하나님이 나를 푸른 풀밭에 눕게 하시며 쉴 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십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 받을 것을 두려워하지 아니합니다.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그렇습니다. 목자와 함께 가는 양은 염려할 필요도, 두려워할 것도 없습니다.
오늘 두 본문에는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다가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된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천국이라는 본향을 향해서 걸어가고 있는 순례자들입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삶이 최선의 삶이요, 천국에 들어가는 삶이 최고의 축복을 받는 삶입니다. 오늘은 두 본문을 중심으로 “최선의 삶으로 이끄는 동행”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에녹은 믿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신약 본문 히 11:6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우리가 가진 것이 없어도, 배운 것이 없어도, 인물과 배경이 없어도 우리는 얼마든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모든 것 다 있어도 믿음이 없으면 우리는 결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없습니다. 에녹에게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는 믿음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갈 2:20에서 믿음으로 사는 삶을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에녹은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심을 믿었고, 불신앙과 불순종의 삶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따른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구약 본문 창 5:21-22에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했습니다. 그는 므두셀라를 낳고부터 하나님과 동행하였습니다. 므두셀라의 뜻은 「그가 죽으면 심판하신다.」입니다. 에녹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심판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의 심판을 전하는 선지자였습니다. 유1:14-15에 “아담의 칠대 손 에녹이 이 사람들에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이는 뭇 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하지 않은 자가 경건하지 않게 행한 모든 경건하지 않은 일과 또 경건하지 않은 죄인들이 주를 거슬러 한 모든 완악한 말로 말미암아 그들을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했습니다. 아담의 칠대 손 에녹은 경건한 셋의 후예였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몹시도 타락했습니다. 노아의 홍수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 때 에녹은 동시대 사람들의 경건치 않은 일과 경건치 않은 말을 정죄하면서 하나님의 임박한 심판을 경고하고 있었습니다. 그만큼 그 당시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범죄하며 죄악 된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당시 에녹과 똑 같은 아담의 칠세 손 라멕은 불경건한 가인의 후예였는데, 그는 창4:23∼24에 보면 자기 아내들을 향해서 이렇게 외치고 있습니다. "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창상을 인하여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을 인하여 소년을 죽였도다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 하였더라." 라멕은 자기가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을 자랑하듯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비웃고 있습니다. 이 라멕에게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두려움도 없이 악을 행하는데 담대했습니다.
오늘 이 시대에도 라멕처럼 하나님 없는 것 같이 사는 삶이 있고, 에녹처럼 하나님께서 옆에 계신 것을 느끼며 사는 삶이 있습니다. 우리는 에녹처럼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고, 우리의 언행심사와 행위를 감찰하고 계심을 믿고, 하나님을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믿고 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2.에녹은 하나님과 동행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신약 본문 히11:5 하반 절에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는 원어로 “유에레스 데케나이”인데 “하나님과 함께 거닐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도 결코 쉽지 않습니다.
예컨대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해서 결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살지 않아서 쳐다보는 것만 해도 싫다고 이혼을 해버립니다. 사람들의 관계에서도 그렇습니다. 사람이 누구를 기쁘게 한다는 것은 언제나 상대적인 일입니다. 자기는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한다고 생각하지만 상대방의 입장에서 보면 기쁘기는커녕 오히려 고통일 수도 있습니다.
영적인 면에서도 그렇습니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 서기관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긴다고 했지만 그들은 결코 하나님을 기쁘게 못했습니다. 실제로는 하나님의 일을 거스르는 일을 했습니다. 성도의 신앙은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성도와 주님과의 관계에서, 성도와 성도의 관계에서 서로에게 기쁨과 신뢰와 사랑과 인정됨으로 증거를 받아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바른 신앙이라 할 수 없습니다.
어떤 소년원에서 정기적으로 예배를 인도하시는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하루는 목사님께서 예배를 인도하던 중 낯이 익은 소년 하나가 보였습니다.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까 알 것 같았습니다. 그 소년은 소매치기를 하다가 붙잡혀서 복역이 다 끝나고 난 뒤에 만기 출소를 했습니다.
그런데 또 다시 소년원에 들어온 것입니다. 예배가 끝나고 난 뒤 목사님은 그를 불러서 물었습니다. "너 왜 또 들어왔니?" 그러자 소년은 원망스럽다는 듯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다 목사님 때문입니다." 목사님은 깜짝 놀라서 물었습니다. "왜 네가 나 때문에 이곳에 다시 들어오게 되었다는 말이냐?"
그 소년의 대답은 이러했습니다. "제가 출소하자 전에 같이 일하던 형들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저는 다른 것을 배운 것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형들과 다시금 소매치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소매치기를 할 때마다 목사님의 말씀이 생각이 났습니다. '하나님은 어디에든지 계셔서 모든 사람을 불꽃같은 눈으로 보고 계신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제가 소매치기 할 때마다, 정말 누군가가 저를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말 때문에 신경이 쓰여서 자연히 제 손놀림이 느려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붙잡혀서 다시 이곳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다 목사님 때문이지 않습니까?" 이 소년이 하나님에 대한 바른 믿음이 있었다면 다시는 전에 행했던 소매치기 같은 죄를 끊고 열심히 노력해서 바르게 사는 길을 택했을 것입니다. 그런 삶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증거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들에게 그런 증거를 찾으십니다.
에녹에게는 그런 증거들이 있었습니다. 어두운 세상, 부패한 세상에 물들거나 본받지 않고 날마다 매순간마다 하나님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로 살았습니다. 그 말은 그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해서 살았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나의 뜻을 포기하고 주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주님과 동행이며,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입니다. 우리 모두 에녹처럼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로 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3.에녹의 하나님과 동행은 하나님 나라로 이어졌습니다.
창5:24에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했고, 히11:5에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했습니다. 창5장에 보면 아담 자손의 계보가 등장을 하고 있습니다. 각 사람의 계보가 일정한 양식에 의해서 기록되어 있습니다. 각 사람의 일생을 마무리할 때는 언제나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그가 몇 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이 말로 끝맺음을 합니다. 그런데 에녹만큼은 예외입니다.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옮기 운 사람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로 최선의 삶을 살다 최고의 경지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에녹처럼 죽음을 보지 않고 천국으로 승천한 인물이 선지자 엘리야였습니다. 왕하 2장에 보면 엘리야가 그의 제자 엘리사와 더불어 함께 길을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홀연히 하늘에서 불수레와 불말들이 나타났습니다. 두 사람 사이를 떼어 놓았습니다. 그러더니 엘리야는 회리바람을 타고서 하늘로 올리워졌습니다.
요단강 맞은편에서 이 모습을 보던 선지 생도들은 엘리야가 승천했다는 사실이 확실하게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엘리야가 회리바람에 휩쓸려 올라갔다가 어디론가 그 시체가 땅에 떨어졌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엘리사를 강권했습니다. 엘리야의 시체를 찾기 위해 용사 오십 인을 보냈습니다. 사흘 동안이나 엘리야의 시체를 찾지 못하고서야 믿었습니다.
에녹이 하나님과 300년 동안 동행할 때 많은 우여곡절과 힘든 일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에녹은 끝까지 믿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랬을 때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산 에녹에게 크게 보상하시고 상급을 주신 것을 보게 됩니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까 마지막 순간까지도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리도록 하시면서 그의 삶을 보상해 주신 것을 보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불신앙으로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인정하는 삶을 산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반드시 보상해 주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히6:10). 우리가 이 땅에서 믿음으로 사는 것이 쉽지 않지만 우리가 끝까지 믿음으로 살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궁극적으로 상급을 주시고, 엄청난 축복을 베풀어 주신다는 약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요11:25∼26에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예수님이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승리하신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한 우리들도 사망의 권세를 이미 이겼습니다. 우리가 육신의 장막을 벗을 때 우리는 순간적으로 사망의 관문을 지나갑니다. 그러나 사망은 단지 우리를 영원한 본향으로 인도하는 하나의 관문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살아 있을 동안에 예수님께서 영광가운데 재림하신다면 에녹이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옮기운 것처럼 우리 모두도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옮기우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에녹처럼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다가 천국으로 이어지는 복을 받으시기를 기원합니다. 정리합니다.
오늘은 두 본문을 중심으로 “최선의 삶으로 이끄는 동행”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에녹은 믿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에녹의 하나님과 동행은 하나님 나라로 이어졌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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