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제거 슥5:1
5장에는 두 가지 환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4장의 순금등대의 환상이 성전 즉 이스라엘과 관련된 환상이었는데 5장 역시 성전 즉 이스라엘과 관련된 환상인 것으로 생각 됩니다. 이 환상들이 뜻을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보여주는 것이 날아가는 두루마리 환상입니다. 우리가 우선 생각해 볼 것은 두루마리가 왜 날아가는가 하는 것입니다. 두루마리는 날아가는 물건이 아닙니다. 그런데 두루마리가 날아간다는 것부터가 우리를 혼란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3절에서 이 두루마리는 저주를 뜻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두루마리가 날아가는 이유를 본문 4절에서 알 수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이것을 발하였나니 도적의 집에도 들어가며 내 이름을 가리켜 망령되이 맹세하는 자의 집에도 들어가서 그 집에 머무르며 그 집을 그 나무와 그 돌을 아울러 사르리라"고 합니다. 이것을 보아 두루마리는 여호와께서 발한 저주의 말씀으로서 죄인의 집에 들어가서 죄인을 심판하기 위하여 이리 저리 날아다니도록 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두루마리는 단순한 두루마리가 아니라 여호와께서 발한 심판의 말씀을 기록해 놓은 두루마리라는 것이 확실합니다.
2절에서 이 두루마리의 크기는 장이 20규빗 광이 10규빗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성소의 크기입니다. 그러므로 두루마리는 성소를 뜻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두루마리는 언약의 말씀이라고도 할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언약의 말씀을 보이는 형태로 짓도록 한 것이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언약의 말씀에 근거하여 심판을 행하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볼 때 "이 편 글대로" 또는 "저편 글대로"라는 구절들이 마치 십계명의 두 돌판을 연상하게 합니다. 돌판에 새겨진 십계명은 언약의 모든 말씀을 포함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가르침들이 이것에 준하여 만들어진 세칙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두루마리에는 어쩌면 십계명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 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이 언약의 말씀이 어떤 자를 심판합니까? "도적질하는 자"와 "맹세하는 자"를 심판한다고 합니다. 맹세하는 자란 4절에서 좀 더 자세히 설명이 되어 있는데 "내 이름을 가리켜 망령되이 맹세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이 두 가지는 십계명 전체를 대변한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두 돌판에 기록된 계명들 중에서 이 두 계명을 제시한 것은 아마도 그 당시 상황을 반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질에 눈이 어두워서 도적질하고 그러면서도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맹세하는 세태를 반영하고 있는 듯 합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이름은 이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들에게 두려움이란 경제적으로 가난해지는 것이었고 따라서 그것을 얻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도 하는 자들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이용해 먹는 자들이었습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도적질과 하나님의 이름으로 헛되이 맹세하는 것과는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도적질하면서 하나님은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믿는 체 했던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을 믿는 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는 않으면서 하나님 이름을 부르는 자들 즉 가짜로 하나님을 부르는 자들은 믿는 자들이 아닙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그 이름을 부르며 그 말씀을 존중히 여기고 마음에 새겨듣는 것을 말합니다.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대면하듯이 말씀을 존중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런 것이 없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는 것이며 또 육신의 소욕을 위하여 그 이름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이런 자는 육신을 위하여 하나님이 도움이 되지 않을 때 하나님도 버리는 자입니다. 믿음이 없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들을 도적이라고 하시면서 언약의 말씀으로 심판하시겠다고 하십니다. 믿지 않는 자요 이스라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런 자에 대한 심판의 철저함이 4절에 표현되어 있습니다. 발해진 저주의 말씀이 도적과 거짓 맹세자의 집에 들어가서 그 집에 머무르며 나무와 돌을 사를 것이라고 합니다. 언약의 말씀은 죄인에게는 저주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집에서 떠나지 않고 머무르며 저주하기 때문에 그 저주대로 집이 완전히 망하게 될 것을 말씀합니다. 참으로 무서운 일입니다.
하지만 어디에서 이런 일이 있을 것인지 아는 것은 이 환상의 성격을 파악하는데 단서가 됩니다. 어디서 악한 자들을 심판하는 일을 하겠다고 하실까요? 온 세상적인 범위에서일까요? 아니면 이스라엘에서일까요? 2절에 "온 지면"이란 말과 6절에 "온 땅"이라는 말이 있는 것을 볼 때 저주의 말씀이 행하는 범위는 온 세상에 미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2-3절에서 성전과 율법의 말씀이 암시되며 그래서 이 말씀에 의해서 도적과 망령되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에게 심판이 주어진다는 것을 볼 때에 이 저주는 이스라엘 내에서 이루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11절에 악이 시날 땅으로 옮겨질 것을 말씀하는 것으로 보아서도 이스라엘 내에서 심판이 이루어질 것으로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스라엘만으로도 "온 땅" 또는 "온 지면"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이 성경의 용례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볼 때 날아가는 두루마리 환상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죄악을 심판하여 제거하시고 정결하게 하겠다는 것을 보여주는 환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다음에 나오는 두 번째 환상은 바로 이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두 번째 환상은 에바 속에 든 악을 옮겨가는 환상입니다. 에바는 곡식을 되는 말을 가리킵니다. 약 한 말 반 가량 드는 말이라고 합니다. 곡식을 되는 말을 보인 것은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도적질하는 자들의 죄악이 어떤 유의 것인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저울을 속이고 되를 속이면서 일반 서민들의 생활을 착취해서 자기의 배를 채우는 죄악이라는 것을 짐작하게 합니다. 서민들의 일상 생활에서 도량형을 속이는 것은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긍휼을 잊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들의 마음이 하나님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물질에 눈이 어두웠고 물질에 치심하여 그것에 범죄하였던 것입니다. 에바는 이러한 죄악을 표현하는 도구로서 사용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 에바 속에 여인이 앉아 있습니다. 여인은 악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당시에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악이 물질로서 표현되었다고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악은 "그 악"이라는 말로 정관사가 붙어 있습니다. 특정한 악을 가리키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악을 여인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을 생각할 때 이 악은 태초의 여인 하와가 유혹을 받아 하나님을 배반하였던 그 악을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스가랴 당시에 이스라엘의 악은 물질에 마음이 빼앗겨 하나님을 잊어버렸던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속에 죄가 하나는 선악을 알게 하는 열매로 또 하나는 물질을 통해서 드러났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배반하였다는 점에 있어서는 동일한 악이기 때문에 그 악을 여인의 형상으로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이러한 악을 하나님은 시날 땅으로 옮겨서 그 곳을 제 처소로 삼고 머물도록 하겠다고 하십니다. 시날은 바벨론의 옛 이름입니다(창10:). 이 시날은 성경에서 하나님을 반역하는 세계의 상징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서 악을 제하시고 그 악은 자기의 처소에만 있게 하겠다고 하십니다. 이 악이 거하는 바벨론은 불신의 세상이요 지옥입니다. 하나님은 자기가 선택한 나라인 이스라엘에서는 악을 제하겠다고 하십니다.
결론적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5장의 환상들은 이스라엘에서 악을 제하시겠다는 것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악을 제거하고 이스라엘 전체가 거룩한 성소가 되게 하겠다는 것을 보여주는 환상입니다. 하나님은 언약에 언약의 말씀에 따라 이스라엘을 거룩한 나라가 되게 하겠다는 것을 환상으로 보여 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마침내 악을 극복할 것이며 거룩한 성전이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4장에서 말한 메시야가 다스리는 나라가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악이 제거된 거룩한 성전 이스라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되었습니다. 이 이스라엘이 바로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거룩한 성전이요 하나님의 집입니다. 악이 침범하지 못하는 세계입니다. 정화되고 깨끗한 세계가 교회입니다.
우리는 이 교회 안으로 부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 안에 들어오는 사람은 누구든지 거룩합니다. 주님이 만들어 놓으신 거룩한 세계 안에 들어 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거룩을 누리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물질 만능의 세계에 살고 있지만 주를 믿는 믿음은 이 물질도 극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물질을 극복하게 하는 것이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있는 자는 그 믿음에 의하여 '악의 근원으로서의 물질'이 제거되게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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