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결같은 믿음의 사람 욥1:6-12,
체스트론이라는 사람이 욥기에 대하여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일이야드는 모든 삶이 전쟁으로서 유명하고, 오딧세이는 모든 삶이 유행이어서 유명하고, 욥기서의 삶은 모든 삶이 수수께끼라서 유명하다." 욥기를 읽어보면 수수께끼가 많이 등장합니다. 하나님의 질문을 받고 자신의 지식이나 지혜로는 도저히 답변할 수 없는 수수께끼들을 만나게 됩니다.
욥은 이 수수께끼 앞에서 자신의 무지 함과 부족함을 깊이 깨닫게 됩니다. 욥이 풀어야 할 수수께끼 중 하나가 바로 까닭 없이 다가오는 고난입니다. 그는 순전하고 정직하고 올바른 사람이었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난 사람으로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만한 믿음의 의인이요, 나무랄 데 없는 훌륭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혹독하게 다가오는 시련 앞에서 아무리 생각해도 매를 맞는 까닭을 몰랐습니다. 매를 맞아도 왜 맞는지 알고 맞으면 그 매를 좀 더 쉽게 견딜 수 있는데, 욥의 경우는 이유 없이 까닭 없이 고통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욥은 까닭 없이 재산을 잃었고, 까닭 없이 자녀들이 죽었으며, 까닭 없이 병이 들었습니다. 고난당하는 그를 위로한다고 찾아온 세 친구의 말은 위로는커녕 그의 염장을 지르는 그들의 말로 인해 더 상처만 받았습니다.
우리는 까닭 없이 모든 어려움을 당하는 이 욥의 수수께끼를 바라보면서 이것은 욥의 문제만이 아니라, 오늘 우리 삶 가운데도 이런 수수께끼를 우리가 풀지 않으면 안 될 경우를 종종 만나게 됩니다. 지금도 우리 가운데는 몇 가지 수수께끼를 두고 "왜 이런 일이 일어나야 할까?"하고 의심하는 마음들이 우리 속에 있을 지도 모릅니다. 오늘 두 본문을 중심으로 우리의 삶 속에서 왜 이런 수수께끼 같은 일들이 생기고, 또 그런 일을 만날 때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를 생각 하면서 “한결 같은 믿음의 사람”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사단은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성도의 믿음을 무너뜨리려고 합니다.
구약 본문 욥1:7에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서 왔느냐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땅에 두루 돌아 여기저기 다녀왔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땅은 공중권세를 잡은 사탄에게 허락된 그의 활동 장소입니다. 따라서 이 땅에서 그의 공격으로부터 피할 수 있는 곳은 아무 데도 없으며, 그의 공격을 피할 자는 그 누구도 없습니다. ‘두루 돌아다녔다’는 말은, 그의 적극적인 활동성을 말하는데, 땅 여기, 저기를 자세히 탐색하고 뒤졌다는 말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사단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다고 했습니다.(벧전 5:8). 그러니 사단의 공격을 어는 누구도 피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도 광야에서 사단의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사단이 너를 밀 까부르듯 한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본문 욥1:8에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고 하시며 사단에게 욥을 칭찬하셨습니다. 욥을 “내 종”, “내 사랑하는 자”라고 하면서 아주 자랑스러워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욥의 성품에 대하여 깊이 알고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성도들을 깊이 관찰하시는 일을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욥을 칭찬하기를 “그와 같은 자가… 이 세상에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욥은 경건함과 신실함에 있어서 이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자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사는 선한 사람들의 길과 행위에 매우 깊은 관심을 기울이시고 그것들을 지켜보십니다. 내 종 욥이라고 하신 것도 욥에 대한 하나님의 친밀하심과 특별한 관심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사단은 욥에 대한 칭찬을 들은 후 이렇게 말합니다. 욥1:9-10에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욥이 어찌 까닭없이 하나님을 경외하오리까 주께서 그와 그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산울로 두르심이 아니니이까 주께서 그 손으로 하는 바를 복되게 하사 그 소유물로 땅에 널리게 하셨음이니이다.” 사단은 욥을 시기하여 참소했습니다. 사단은 욥의 경건함의 근거와 실체성에 대하여 도전을 제기했습니다. ‘어찌 까닭 없이’란 ‘연고 없이’, ‘그 자신의 이익에 관계없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사단은 하나님께서 칭찬하는 욥의 신앙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복을 베풀었기 때문에 욥이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욥의 경건함은 단순히 어떤 보상을 바라는 이기적인 동기에서 나온 것이라고 비난한 것입니다. 이처럼 욥을 참소한 사단은 욥을 무너뜨리기 위해 하나님의 허락을 받고 온갖 시련을 겪게 하여 욥을 무너뜨리려고 했습니다. 사단은 욥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실한 신앙인들을 무너뜨리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합니다.
사탄, 혹은 사단은 하나님께 대적하는 악마를 말합니다. 히브리어에서 이 단어가 관사 없이 쓰일 때는 일반적으로 ‘적대자’, ‘대적’, ‘원수’ 등을 의미하였습니다. (삼상 29:4; 삼하 19:22; 왕상 11:14; 시 38:20). 후에 대개는 관사가 붙어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존재, 마귀라는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성경에 사단은 여러 별명들을 갖고 있습니다. ‘귀신의 왕’(마 9:34), ‘시험하는 자’(마 4:3), ‘바알세불’(마 12:24, 27), ‘원수’(마 13:39), ‘악한 자’(마 13:19), ‘벨리알’(고후 6:15), ‘대적자’(벧전 5:8), ‘속이는 자’(계 12:9), ‘큰 용’(계 12:3), ‘거짓의 아비’(요 8:44), ‘살인자’(요 8:44), ‘죄를 짓는 자’(요일 3:8), ‘무저갱의 사자, 아볼루온’(계 9:11), ‘옛 뱀’(계 12:9), ‘꼬불꼬불한 뱀 리워야단’(사 27:1), ‘이 세상 신’(고후 4:4), ‘공중 권세 잡은 자’(엡 2:2),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히 2:14), ‘이 세상 임금’(요 12:31),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엡 6:12) 등입니다. 이런 별명들은 사탄의 성품과 활동상을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런 사단의 공격을 받은 욥이 재물과 자식들을 잃은 후 욥1:20-22에서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찌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아니하니라.”했습니다. 오늘 우리도 사단의 시험으로 고난이 올 때 욥처럼 좌절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2.성도는 시험이 올 때 믿음을 지켜 한결같은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욥은 사단의 시험으로 오는 불 시험 중에도 그의 믿음이 무너지지 아니하고 한결 같은 믿음을 유지했습니다. 나아가 더 성숙하고, 더 성결하고, 더 확고하고, 더 겸손해 지고, 더욱 더 연단된 큰 믿음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신약 본문 히13:8에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했습니다.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젊음도 변하고, 인심도 변하고, 생활 패턴도 변하고, 유행도 변하고, 권세도 변하고, 강산도 변합니다. 이런 변화무쌍한 세상에서 영원히 변치 않는 분이 계십니다. 그 분은 바로 성부, 성자, 성령, 성삼위 하나님 이십니다.
변화무쌍한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 성도들의 신앙도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변함없으신 삼위일체 하나님처럼 무슨 일을 만나도 변질되지 않는 한결 같은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비천할 때나 존귀할 때나 믿음이 변치 않아야 합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빌4:11-13)라고 사도 바울이 고백했습니다.
사람이 비천할 때는 신앙생활 잘하다 존귀하게 되어 지면 사울 왕처럼 하나님을 등한히 하고, 세상으로 빠지는 신앙인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 반대로 하기도 합니다. 신실한 믿음의 사람은 비천할 때나 존귀에 처할 때 변함없이 주님을 높이고, 주님을 가장 사랑합니다.
*환난 때나 복될 때나 변치 않아야 합니다. 욥의 신앙도 그랬지만 창세기에 나오는 요셉도 열일곱 어린 나이에 이복형들의 시기와 미움을 받아 애굽으로 팔려가 온갖 고초를 다 겪었습니다. 그는 노예로 일함도 모자라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의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것을 보신 하나님은 그를 높여 애굽의 총리로 삼아주셨습니다. 그래도 그는 여전히 겸손히 하나님만 의지 하고, 하나님만 높이는 변함없는 신앙의 소유자가 되어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기근에서 구하는 자가되었습니다.
다윗도 죽음의 시련을 만나는 환란의 때나, 모든 백성의 존경을 받는 왕이 되었을 때에도 하나님께 순종하고, 주님을 높이고 찬양하는 한결같은 신앙의 사람으로 살았습니다.
*가난할 때와 부할 때의 믿음이 변함이 없어야 합니다. 많은 신앙인들이 형편에 따라 신앙이 흔들리고 변질되어 쓸모없는 신앙인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이런 인간의 약점을 잘 알고 있는 아굴은 잠30:8-9에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이 기도는 물질 때문에 하나님을 잘못 섬기는 일이 없길 사모하는 기도입니다. 이런 기도의 사람이라면 가난하거나 부하거나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물질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도는 물질 때문에 교만해 지거나 세상으로 흘러가 형식적 신앙으로, 부패한 신앙으로 변질되지 않아야 합니다.
*병들었을 때와 건강할 때의 신앙이 동일해야 합니다. 눅 17장에 나병환자 열 명이 지나가시는 예수님 앞에 긍휼히 여겨달라고 외쳤습니다. 불쌍히 보신 예수님께서 모두 고쳐 주셨습니다. 그러나 고침을 받은 후 예수님께 나아와 엎드려 사례한 사람은 한 사람 밖에 없었습니다. 이 모습을 보신 예수님은 “아홉은 어디 있느냐”하시며 서운해 하셨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건강해지니 달라지는 모습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신앙이 필요할 때만 하나님을 찾는 신앙이어서는 안 됩니다. 혹은 반대로 건강할 때에는 하나님을 섬기고 병들면 하나님을 외면하고 신앙을 저버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신실한 신앙의 사람은 건강할 때보다 병들었을 때 더욱 주님께 매달려 그 신앙이 더 깊어지기도 하고, 더 큰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기도 하고, 더욱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깊은 신앙을 가지게 되어 더욱 감사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 모두 어제나 오늘이나 변치 않고 동일하신 예수님처럼 어떤 형편에서든지 믿음을 지켜 변함없는 신앙의 소유자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3.성도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결 같은 믿음으로 끝까지 승리할 수 있습니다.
욥은 불같은 시험을 받을 때 하나님을 신뢰하는 그 믿음이 변함이 없었습니다. 욥23:10에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그의 믿음의 고백대로 때가 되니 모든 것이 회복이 되었습니다. 욥42:10에 “욥이 그 벗들을 위하여 빌매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욥에게 그전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라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본문 히13:7에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이르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저희 행실의 종말을 주의하여 보고 저희 믿음을 본받으라.”고 했습니다. 신실한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본받아 살면서 오직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았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의 공평에 대해 우리는 많은 의문이 날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일반적인 은혜, 자연환경과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시고 편애가 없으시지만 구원의 은총과 믿음에 대한 보상 및 불신앙에 대한 보응은 반드시 구별하십시다. 믿음의 보상은 반드시 보상의 자질을 갖춘 자에게 주신다는 것이 공평입니다.
우리가 사는 현실은 불공평한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세력을 부리는 사람들은 더욱 기세가 등등하며, 고통당하는 사람은 그 고통을 호소할 데조차 찾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불공평함이 사라지는 때가 올 것입니다. 고통을 주는 자에게 고통으로 되갚으시고 고통당하는 사람에게는 그 고통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주님께서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오실 때, 신실하신 주님의 공평을 확실히 보게 될 그 때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지니 이것이 당연함은 너희의 믿음이 더욱 자라고 너희가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함이니 그러므로 너희가 견디고 있는 모든 박해와 환난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하노라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요 너희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김을 받게 하려 함이니 그 나라를 위하여 너희가 또한 고난을 받느니라. 너희로 환난을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환난을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자기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가운데에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내리시리니 이런 자들은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살후 1:3~9)”
성도는 이 세상에서 고난과 박해와 시험을 만나도 공평하신 주님의 심판을 믿으며 오직 주님을 바라보고 인내 하면서 한결같은 믿음을 지키는 자들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그가 또한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내게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다.’고 고백했습니다.
미국의 '미키 톰슨'이라는 회사는 한때 빠른 경기용 차를 만드는 회사로 유명했습니다. 소문 그대로 미키 톰슨에서 만든 차는 월등히 빨랐습니다. 경기 초반에는 관중들의 열광적인 환호를 받으며 무서운 속도로 선두를 달렸지만 미키 톰슨에서 만든 차를 타고 우승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경기 도중에 모두 고장이 났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세상에는 '용두사미'식으로 사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신앙생활도 용두사미 식으로 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열심 있는 신앙인이었다가 이런 저런 핑계와 변명을 남기고 신앙인의 대열에서 탈락하여 세상으로 돌아가는 사람, 이단으로 빠지는 사람, 상한 음식처럼 병든 신앙으로 변질이 된 신앙인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사업에 실패 할 수도, 가정이 깨어질 수도, 건강이 나빠질 수도 있지만 신앙생활은 우리가 무슨 일이 있어도 마지막까지 달려야 할 인생의 가장 중요한 경주입니다. 신앙을 지키는 일에 실패하면 모든 소망이 없어지게 됩니다. 영원한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우리 모두 주님 안에서 한결같은 믿음으로 끝까지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정리합니다.
오늘은 두 본문을 중심으로 “한결 같은 믿음의 사람”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사단은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성도의 믿음을 무너뜨리려고 합니다.
◈.성도는 시험이 올 때 믿음을 지켜 한결같은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결 같은 믿음으로 끝까지 승리할 수 있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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