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마태복음

말씀하신대로 살아나셨느니라. 마태복음 28장 1~ 10절

nam씨 2020. 5. 2. 16:57


: 말씀하신대로 살아나셨느니라. 마태복음 281~ 10

 

개요 : 예수님의 부활기사는 공관복음서 모두가 기록하고 있다(16:1-8 24:1-12 20:1-10). 마가 누가 요한과는 달리 마태는 부활한 예수께서 여인들에게 나타나심과 갈릴리에서 제자들에게 나타난 사실만을 기록하고 있다. 이는 마태가 몇 가지 주제를 강조하려 하기 때문인데 구약에 예언된 말씀 그대로예수께서 이 땅에서 오셨으며(4:15,16; 9:9-13), 부활을 증명하는 예수님의 무덤이 비어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예언된 그대로 천대받는 자들에게 먼저 자신의 빛을 비추시기 위해 그 자신이 천대받는 지역에서부터 나오셨다는 것이다(2:23 1:46). 이는 하나님의 나라가 심령이 가난한 자의 것’(5:3)이라는 예수의 가르침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유대인들 중에서도 멸시 천대받는 계층이었던 여인들과 가난한자들 및 제자들에게 나타나 부활의 증인으로 삼으셨다는 점이다.

 

1안식일이 다 지나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갔더니 안식 후 첫날은 그 주간의 첫날이라는 뜻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날이 금요일이었고, 금요일 저녁부터 안식일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시신에 향품을 바를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안식일이 끝나고 이른 새벽에 여인들(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였다)이 예수님의 무덤을 찾았던 것이다. 이 이야기가 좀 더 자세히 기록된 것은 마가복음인데, 여인들이 예수님의 시신에 향품을 바르기 위해 무덤을 찾았다고 밝힌다(16:1).

오늘날의 주일(主日)을 가리키는 말로서 역사상 최초의 주일을 가리킬 뿐 아니라, 구약의 안식일이 예수 부활로 말미암아 주일로 대체되어 지키게 되었음 나타내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구약의 안식일이 하나님의 천지창조의 사역을 기념하는 날이라면 주일은 예수께서 새 생명을 주시고 이 세상을 다시금 새롭게 재창조 하셨음을 기념하는 날이다.

 

2-4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 같이 희거늘 지키던 자들이 그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더라

성경에서 지진은 하나님께서 강림하여 역사하실 때 나타나는 현상으로 특별히 하나님의 전능성을 증거 해주는 것으로 자주 언급되고 있다(27:50 19:18 68:7 16:26 12:26). 따라서 여기서 지진이 발생했다고 하는 것은 곧 예수의 부활 이면에 하나님의 크신 능력이 함께 역사하셨음을 의미한다(2:5,6).여인들이 무덤에 이르렀을 때 지진이 일어났고, 천사가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셨을 때와(27:51), 부활하셨을 때도 지진이 일어난 것이다. 그러므로 지진은 예수님의 신성(神性)을 나타내는 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 형상이 번개 같고 눈같이 희거늘본문에는 천사에 대해 자세히 묘사되어 있는데(옷이 눈같이 흰 것은 변화산 사건에도 나타남), 천사들이 이 세상의 존재가 아님을 말해준다(17:2 9:3 9:29). 천사의 출현 역시 예수님의 신성을 보여주는 표적(表迹)이라고 할 수 있다.

 

천사의 형상(ἄγγελος είδέα)은 생긴 모양새나 형태를 뜻하기보다는 외관’ ‘표면상의 모습을 뜻하는 단어로, 본문에서는 막달라 마리아가 눈으로 본 천사들의 모습을 나타낸다. 이는 천사의 겉모습이 번개와 같이 밝게 빛나고 있었음을 나타낸다. 동일한 내용을 묘사하는 누가복음24:4절에는 찬란한(άστραπτω)으로 번역되었다. 이 역시 번개같이 빛나는이란 의미다. 이어서 천사의 옷이 눈같이 희다고 묘사되는데, 희거늘(λευκόν)은 단순히 흰색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빛나게 흰’ ‘눈부시게 흰이라는 뜻으로 마리아가 본 천사가 번개같이 밝게 빛나는 흰옷을 입고 있었으며, 지키던 자들이 무서워 떨며 죽은 자처럼 될 정도로 천사들에게서 밝은 광채가 났음을 증언하고 있는데 이는 하늘에서 보낸 존재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5,6천사가 여자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는 무서워하지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천사는 예수님이 부활(ἀνάστασις)하셨음을 선언한다. 이는 예수께서 누차 말씀하셨던 대로 죽음의 권세를 깨트리고 살아나셔서(12:40; 16:21; 17:23; 20:19), 예수님이 여기무덤에 계시지 않는다고 말한다. 무덤은 시신이 있는 곳이므로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이 계실 곳이 아니다. 무덤은 이미 비어 있다. 여인들은 정성을 다해 향품을 준비했지만 빈 무덤을 향해 올라간 것이다. 누가복음에서는 천사들이 여인들에게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24:5)라고 하면서 무덤에서 예수님을 찾는 것이 헛된 일임을 강조한다.그가 말씀하시던 대로라는 어구는 예수님이 십자가의 고난에 부활에 대해 여러번 말씀하셨음을 상기시킨다(16:21; 17:23; 20:19). 그가 살리심을 받았느니라로 번역된 에게르쎄(ήγέρθη)는 수동태이므로 그가 살리심을 받았었느니라라고 번역되어야 한다. 예수님이 스스로 죽음에서 살아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 계신 예수님을 살리신 것임을 이 단어가 보여준다.

 

7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 하거늘부활하신 예수님이 갈릴리에 가셨다는 소식이다. 예수님이 살아나신 후에 갈릴리에서 제자들을 다시 만나시겠다는 것도 전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바였다(26:32). 그 말씀대로 예수님은 제자들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셨다. 예수님의 부활과 갈릴리의 연관성은 중요하다. 마태는 이사야의 예언을 인용하면서 갈릴리 지역을 이방의 갈릴리라고 불렀고, 거기에 살고 있는 백성을 흑암에 앉은 백성이라고 묘사했다(9:1 4:15,16). 유대인들은 갈릴리를 이방 사람들의 땅이라고 손가락질하며 멸시했다. 그들이 볼 때 갈릴리는 그늘진 죽음의 땅이었다. 유대인들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라고 할 정도로 갈릴리를 천하게 여겼다(1:46). 그러나 예수님은 갈릴리에서 자라나셨고, 그곳에서 제자들을 부르셨으며, 그곳에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고 기적을 행하셨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도 갈릴리에서 제자들을 만나 그들이 새롭게 출발하기를 원하신 것이다.

 

8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빨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알리려고 달음질할새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것은 큰 기쁨의 소식인 동시에 마음을 진정시키기 어려울 정도로 깜짝 놀랄 만한 소식이었다. 무서움과 기쁨의 감정이 동시에 일어나는 상황을 여과 없이 묘사하는 것은 마태복음의 특징 중 하나다. 여인들은 기쁨과 두려움을 마음에 품고 즉시 제자들에게 부활의 소식을 전하려고 달려갔다.

 

9,10예수께서 그들을 만나 이르시되 평안하냐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평안의 질문을 건네신 것은 내가 진실로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기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느니라(요한복음16:20) 말씀대로 평안을 전하고 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달음질하던 여인들에게 나타나시자 여인들은 예수님의 발을 붙잡고 경배했다. 예수님은 여인들에게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라고 명하신다. 하지만 여인들은 두려운 마음도 떨칠 수 없었다. 마태복음에는 이처럼 복잡한 감정을 그대로 묘사하면서도 그 안에 담겨있는 핵심을 잘 파악하도록 인도하고 있다. 제자들은 물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고 무서워하면서도 예수님께 간청하기도 했다(14:22-33). 또한 갈릴리에서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경배할 때도 여전히 의심을 떨치지 못한 사람들이 있었다. 마태는 이런 복잡한 감정을 있는 그대로 묘사한다(28:17).

예수님은 여전히 두려움을 느끼는 여인들에게무서워하지 말라라고 하시며 그들을 안심시키신다. 예수님은 먼저 평안하냐(χαίρετε)’고 인사를 건네셨는데 이는 단순한 평안의 인사를 넘어 부활의 기쁨이 넘치라는 축원이 내포되어 있다. 예수님이 여인들에게 하신 말씀 가운데 중요한 점은 제자들을 내 형제들이라고 칭하신 것이다. 예수님이 체포되실 때 3년 동안 동고동락(同苦同樂)하면서 가르쳤지만 배신하고 도망친 제들이었다. 예수님은 그들을 모두 용서하시고 형제로 대하고 계심을 보여 준다. 예수님의 부활의 날 이른 아침에 예수님을 찾아간 제일 처음 만난 사람들은 여인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