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의 신분 요1장9-14, 벧전2:4-9
과거 우리나라에 반상 제도가 엄격했던 시절에 있었던 일입니다. 양반 가문의 서자로 태어난 반석평은 노비 신분으로 이 참판 댁의 종으로 살게 됩니다. 그런데 반석평은 주인집 아들이 공부하는 동안 몰래 밖에서 도둑 공부를 하는 등 공부에 대한 열의를 보였습니다.
이에 반석평의 재능이 대단하다는 것을 눈치 챈 주인은 그의 노비 문서를 불태우고 반석평을 어느 돈 없는 양반 집안의 양자로 들어갈 수 있도록 주선해줍니다. 그렇게 반석평은 양반 신분을 얻게 되고 1507년 과거에 급제하여 후에 형조판서의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형조판서 시절 반석평은 어느 날 길을 가다가 자신의 노비 신분을 없애준 주인의 아들을 만나게 됩니다. 주인 집안은 어느새 몰락했고 주인의 아들인 이오성은 가난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종2품이었던 반석평은 그런 그를 보자 바로 수레에서 내려 이오성에게 절을 합니다. 후에 반석평은 중종에게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이오성에게 벼슬을 내려줄 것을 청합니다.
이를 기특하게 여긴 조정에서는 반석평의 원래 신분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반석평의 지위를 유지함과 동시에 이오성에게 벼슬자리를 하나 내리게 됩니다. 노비 신분에서 재상의 자리에 까지 오른 반석평은 후에 종1품 좌찬성까지 오르게 됩니다. 그리고 그의 직계 후손이 바로 반기문 전 UN사무총장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을 양자 된 것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롬 8:15에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오늘은 두 본문을 중심으로 “성도의 신분”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하나님을 떠난 자는 죄와 사단에 메어 있는 종의 신분을 가진 자입니다.
복음서 본문에 보면 예수님은 어두움의 세상에 참 빛으로 오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서신서 본문에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어두움은 죄와 두려움과 절망과 지옥의 세계를 지칭하는 단어입니다. 빛이 되신 하나님을 떠나 사는 자들은 어두움 가운데 속한 자들입니다.
이 어두움에 속한 자들의 모습에 대하여 엡2:1-3에서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했습니다.
빛 되신 하나님을 떠나 사는 자들은 아무리 선하게 산다 해도 그의 신분은 죄와 허물로 죽은 자들이요, 공중 권세 잡은 사단의 종노릇 하며 사는 자들로 하나님의 긍휼을 입지 못하고 진노와 심판의 대상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공중 권세 잡은 악한 영, 사탄은 온갖 영향력을 행사하여 자기 세력을 확장시키기 위해 죄와 허물로 죽은 사람의 영혼을 움켜잡고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게 합니다. 하나님을 대적하게 합니다. 하나님 없이 살게 만듭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합니다.
비키니라는 작고 아름다운 무인도 섬이 있었습니다. 이 섬에는 매년 때가 되면 많은 거북이들이 와서 모래 속에 알을 낳고 돌아갑니다. 뜨거운 햇살이 모래를 달구고 이 열기로 알들이 부화하여 새끼 거북이가 태어나게 됩니다.
알에서 태어난 거북이는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도 본능적으로 자신들이 살아야 할 곳은 바다라는 것을 알고, 바다를 향하여 달려가 바다 속에 뛰어 들어 새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알에서 태어난 거북이들이 산으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바다를 만나서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할 텐데 산으로 간 거북이는 결국에는 고통 가운데 죽고 마는 것입니다.
이 섬에서 얼마 전에 원폭 실험을 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방사능이 온 섬을 덮고 있습니다. 방사능에 오염된 거북이들에게는 바다를 찾아가는 감각 기관이 파괴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다로 가야 하는 거북이가 산으로 올라갔던 것입니다.
이처럼 사단은 세상을 온통 죄로 오염시켜 놓았습니다. 그 결과 우리 인간들에게도 원하는 바 선을 행할 마음은 있지만 선을 행한 능력이 상실되었습니다. 죄와 허물이 우리의 선한 양심을 파괴하였고, 우리의 선한 의지를 파괴하였기 때문입니다.
우주 만물에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을 바라보면서도 마땅히 하나님께 나아와 하나님을 경외하며 믿는 대신에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과 짐승과 버러지를 하나님으로 섬기는 어리석은 우상 숭배의 생활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런 모습으로는 아무리 착하게 살고, 선한 일을 많이 했어도 결코 하나님의 진노와 형벌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이 모습이 하나님을 떠나 죄와 사단에 메어 종의 신분을 가지고 있는 자들의 모습입니다. 우리 가운데에는 그런 사람이 없기를 소망합니다.
2.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신분으로 바뀌게 됩니다.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사랑이 우리를 감싸고 있습니다. 엡2:4-5절에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다" 고 말씀하십니다. 죄와 사단과 사망의 권세에서 벗어나는 길은 참 빛으로 오신 생명 되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가능합니다.
복음서 본문 요1:11-13에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했습니다. 본문에 의하면 유대인들이 예수에 대해 거부를 했습니다.
그것은 엄청난 잘못 이었고, 그들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잘못된 선택을 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그들이 거부해서는 안 되는 내 인생에 가장 소중한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그들이 그동안 애타게 기다려왔던 메시야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막상 그들 앞에 오셨으나 그분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영접한 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은 자들이 됩니다. 세상에서 돈을 많이 벌어서 신분이 바뀐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성공해서 신분이 변화 된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명예, 권세를 얻어서 신분이 바뀐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음으로 신분이 바뀐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는 진리와 생명이 있고, 권세와 존귀가 있고, 사랑과 은혜가 있고, 구원과 영생이 있고, 온갖 보화가 담겨져 있습니다. 이 예수님을 만나면 인생이 새로워지고, 절망이 변하여 소망이 되고, 미움이 변하여 사랑이 되고, 염려와 근심이 변하여 기쁨과 감사가 되고, 두려움이 변하여 평안이 넘치는 사람이 됩니다.
미국 아리조나의 피닉스에 살고 있던 사람이 일정한 기간의 징역을 살고 출감되어 나왔습니다. 이 사람은 자기가 형무소에서 나가는 날에는 반드시 자기를 그곳에 보낸 사람을 쏘아 죽이기로 작정하고, 하루, 하루 출감되는 날만 기다리고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드디어 자유의 몸으로 풀려 나오는 날 집에 가보니 어린 아들 둘만이 있었습니다. 두 아들을 바라보는 이 사람의 마음에는 이제 자기가 한 사람을 쏘아죽이면 아이들을 다시는 볼 수 없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자기는 불행한 운명으로 이러한 길을 가지만 자식들만은 잘 되기를 원해서 그날 저녁에 아이들과 함께 교회를 찾아갔습니다. 마침 ‘톰프손’ 이라는 목사가 부흥집회를 인도하고 있는 교회를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될 때에 생명의 말씀은 이 사람의 가슴을 파고들었습니다. 그는 주체할 줄 모르는 상태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제 말씀을 끝낸 강사 목사는 그리스도를 모시고 새로운 인생으로 살 사람은 앞으로 나와서 주님을 영접하라고 했습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은 이 사람은 복음말씀에 순종하여 두 아들의 손목을 양편에 잡은 채로 중앙 통로를 걸어서 강단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주르르 흘리며 이 사람은 품에 품고 온 권총을 꺼내서 목사에게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다음과 같이 말을 했습니다. "여러분, 나는 오늘 밤에 한 사람을 쏘아 죽이려고 총을 품에 품고 나온 악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의 복음은 나를 새 사람으로 만들어 주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나는 이제부터 새롭게 살렵니다. 오늘 이후로 나는 권총을 들고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들고 나를 감옥에 보냈던 사람을 계속 찾아다니겠습니다." 그가 빛 되신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므로 빛의 사람이 되고, 새 신분으로 변화가 된 것입니다.
서신서 본문에서 사도 베드로는 벧전2:9에서 새 신분으로 변화된 성도의 모습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렇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자들입니다. 왕 같은 제사장들입니다. 거룩한 나라요, 하나님께 소속 된 빛의 자녀들입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 안에서 새 신분을 가진 자들로 사시기를 소망합니다.
3.새 신분을 얻게 된 자들에게 따라오는 복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영접한 자들에게 따라오는 엄청난 은총과 복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몇 가지 대표적인 것을 든다면,
먼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아바’는 아빠라는 아람어인데 요즘말로 하면 아이들이 부모에게 ‘아빠’라고 부르는 것과 똑 같습니다. 아주 하나님에 대한 친근한 표현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 해 주시고 우리는 하나님을 향해서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세상에서 권세 있는 아버지를 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데, 만물을 지으신 분이 나의 아버지가 되시니 얼마나 든든하고 자랑스러운 일입니까? 하나님 나라의 왕자가 되고, 공주가 되는 은총을 입은 것입니다. 돈 많은 부모들은 자식에게 카드를 주면서 필요한 데 쓰라고 합니다. 그 카드로 쓸데, 안 쓸데 가리지 못하고 사용하다가 죄 가운데 빠지고 망가지는 자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시는 카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을 겸하여 주시기 때문에 주신 물질, 주신 재능, 주신 은사, 주신 복을 감사할 줄 알고, 나눌 줄 알고, 겸손히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자로 삽니다. 하늘 아버지가 주신 카드는 세상 카드로는 절대 통하지 않는 천국 마스터키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마태복음 16장에 보면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고백한 베드로에게 “바요나 시몬아 내가 참 복되도다. 내가 네게 천국 열쇠를 맡기겠다.” 그 열쇠는 천국을 열수 있는 권한이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자녀를 돌봅니다. 하늘 아버지가 나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정죄 할 자도, 대적할 자도 없습니다.
다음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풍성한 삶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은 진리의 근원이 되시고 복의 근원이 되시는 분입니다. 시편 1:3에 보니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쫒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라.”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사막에 뿌리를 내린 것이 아니라 시냇가에 뿌리를 내리고 있으니 기근에도 늘 풍부한 수분을 공급 받을 수 있고 사철 푸르고 잎이 마르지 않고 열매를 맺고 그 행사가 형통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말씀의 시냇가에 뿌리를 내린 예수 믿는 하나님의 자녀가 받는 축복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들은 환경을 초월하여 그 얼굴에 늘 기쁨이 있고, 평안이 있고, 싱싱한 활력이 있고, 하늘 소망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천국을 기업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어떤 목사님이 설교하면서 그런 말을 했습니다. 자기가 어렸을 때 아버지가 예수님을 믿지 않으시고 사셨는데 술만 먹으면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돈 많이 벌지 못해서 미안하다. 그런데 이놈아! 이 수저, 이 밥그릇, 이 집도 다 너의 것이야! 내가 죽으면…….” 그런 말이 늘 기억이 난다고 합니다. 성도는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기업이 우리에게 상속되어질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집이 없을지라도 영원한 천국에 집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4:1에서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는 거할 곳이 많도다.”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나있는 곳에 인도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 나라에 예비 된 영원한 집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이런 은총을 받은 성도는 하늘 백성다운 신분을 잊지 말고 늘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면서 주님과의 거룩한 교제 나누는 것을 기뻐하며 힘써야 더욱 복된 아버지의 사랑과 은총을 입게 됩니다.
전쟁고아가 어느 날 부잣집 양자가 되었습니다. 더 이상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어디서 오늘 밤을 보낼 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멋진 옷과 맛있는 음식이 지천에 널려 있고, 꿈에도 보지 못한 고급 장난감이 가득합니다. 꿈과 같은 나날이 지나갑니다.
그런데 뭔가 불편함이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냄새 나고 지저분한 거리가, 아무데서나 먹고 자던 옛날이 그리워진 것입니다. 그래서 깨끗하고 화려한 침대를 빠져 나와 마구간에서 잠을 잡니다. 지저분한 환경과 악취가 오히려 익숙하여 좋았습니다. 그러나 이 아이가 끝까지 이처럼 과거의 습관을 고수한다면 양부모는 그대로 두고 보지 않을 것입니다.
성도가 주님을 믿고 따르겠다고 결단하고 거듭난 후 삶에 엄청난 변화가 온 것은 사실입니다. 죽음에서 생명으로, 영벌 아래 있을 우리가 영생을 소유한 자로, 사랑과 긍휼을 입지 못하던 자가 사랑과 긍휼을 입는 자로 신분이 변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확실히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기주의의 본능이나, 기분 따라 살던 옛 습관이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으로 쉽사리 바뀌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해 주시면서 우리의 죄 성을 없애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죄 성을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이 되시는 성령님을 보내 주셨습니다. 우리 삶 속에 예수님이 진실로 길과 진리가 되시어 생명으로 뿌리 내리도록 성령님을 보내 주셨습니다. 우리의 능력만으로는 끊임없이 밀려오는 죄를 다스리지 못합니다. 성령님은 쉽사리 넘어지는 우리의 연약함을 이미 잘 알고 계십니다. 자신을 바로 보고, 예수님을 바라보며,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도록 우리 마음을 계속 만지시며, 격려 하시며, 책망하시며, 위로 하시며, 대신 간구 하시며 끊임없이 주님의 마음으로 바꾸어 가십니다. 성령님은 우리로 하여금 새롭게 변화된 신분에 합당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여러모로 우리를 도우십니다.
이렇게 도우시는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보다 성숙한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정리합니다.
오늘은 두 본문을 중심으로 “성도의 신분”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자는 죄와 사단에 메어 있는 종의 신분을 가진 자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신분으로 바뀌게 됩니다.
◐.새 신분을 얻게 된 자들에게 따라오는 복이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고, 풍성한 삶을 살아갈 수 있으며, 썩지 않고 쇠하지 않는 하늘 기업의 상속자들이 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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