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적이 주는 의미 요9:35-41, 행28:1-10
일본에 ‘미쓰하시’ 목사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는 일본 아오모리 현에서 출생했습니다. 3살 때 소아마비로 양다리와 오른손의 기능이 마비되어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일급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바로 그해 엄마가 돌아가시고, 열아홉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신앙생활은 아버지가 돌아가기 일 년 전부터 시작했으며 독학으로 글을 깨우쳤습니다.
1954년 지금의 아내 ‘유키코’를 만나 이듬해에 결혼을 했습니다. 유키코는 간호대학을 졸업한 간호사입니다. 그가 미쓰하시의 간호를 하면서 너무 불쌍히 여겨서 그의 이름을 불러 가면서 미쓰하시를 도와주도록 주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네가 직접 도와라"고 했습니다. 유키코의 신앙양심은 하나님의 음성을 도무지 거절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1956년 두 부부가 카루이자와 성서학원에 입학했습니다. 그녀는 남편을 등에 업고 4년 동안의 신학 공부를 하도록 뒷바라지를 했습니다. 대소변을 받아 내는 것에서부터 부인의 손이 가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부인은 남편의 뒷바라지를 하면서 육체적으로 힘들었던 부분과 마음의 상처들을 오늘 본문 요9:3의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고 한 말씀을 읽고 치유 받게 되었습니다.
1960년에 미쓰하시는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고전6:19-20절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말씀을 읽고 감동을 받아 세계선교에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한국에도 여러 차례 왔습니다. 그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장남 ‘엘리야’는 미국 하와이에서 목회하고, 차남 ‘요시아’는 일본 동경에서 목회를 합니다. 오래 전에 "북해도를 달리는 사랑"이란 자서전을 출간하여 일본인들을 크게 감동시키고 영화로도 제작된바가 있었습니다. 두 번째로 두 아들과 함께 "북해도에서 출발한 여정"이란 책이 나왔을 때 일본 왕후가 읽고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유키코의 남편 사랑은 너무도 지극합니다.
미쓰하시가 유키코라는 부인을 만난 것도, 그가 목사가 된 것도, 그의 저서를 통해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게 된 것도, 그를 통해 세상에 복음이 전해지는 것 모두 하나님께서 섭리하신 놀라운 표적입니다. 오늘은 두 본문을 중심으로 “표적이 주는 의미”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표적은 믿는 자들에게 따르는 하나님의 은혜의 사건입니다.
서신서 본문에 나오는 내용 가운데 우리는 세 가지 놀라운 표적의 내용을 보게 됩니다.
첫 번째 표적은 생사의 기로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죄수가 되어 가이사 앞에 제판을 받기 위해 로마로 호송 되어가는 도중에 그들 일행이 탄 배가 유라굴로라는 광풍을 만나 배 안에 탄 276명의 사람들이 생사의 기로에서 죽음의 공포 가운데 두려워하고 있을 때 바울은 두려워 말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안심하라고 말하며 하나님께로부터 들은 말씀을 그들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말씀대로 배도 파선되고, 배 안의 모든 물건도 잃었지만 그들의 생명은 모두 무사했습니다.
두 번째 표적은 바울이 독사에 물렸으나 아무 해를 받지 않은 것입니다.
멜리데 섬에서 섬 원주민들이 물에 빠진 그들을 위해 모닥불을 펴 주었는데 바울이 나뭇가지를 불에 넣다가 나뭇단에서 나온 독사에 물렸을 때 섬 토인들은 그가 바다에서는 구원 받았지만 그의 죄로 독사에게 물려 죽게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아무 이상이 없는 것을 보고 이 사람은 신이라고 달리 생각했습니다. 오히려 그 일로 대우가 극진해 졌습니다.
세 번째 표적은 그 섬의 대표자인 보불리오의 부친의 열병과 이질을 기도하고 안수하여 고친 것입니다.
두 번째 표적으로 섬에서 가장 높은 사람 보불리오는 그들 일행을 영접하여 사흘이나 친절하게 대접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부친이 고침을 받는 것을 보고 섬에 살고 있는 다른 병자들이 와서 바울의 기도로 고침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사도 바울은 주님의 뜻을 따라 복음을 전하다 죄수 아닌 죄수로 호송되어 가다 위태한 일을 만났을 때 하나님은 그에게 표적의 은혜를 주시어 바울을 높여 주시고,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잘 경외하는 바울 덕분에 배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생명을 건졌습니다. 행27:44에 “마침내 사람들이 다 상륙하여 구원을 얻으니라.”했습니다. 하나님을 잘 경외하고 믿는 바울 덕분에 낮선 섬에 도착한 일행은 섬사람들이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고 그들로부터 융숭한 대접을 받게 되었습니다. 본문 10절에 “후한 예로 우리를 대접하고 떠날 때에 우리 쓸 것을 배에 실었더라.”했습니다. 믿음의 사람 바울 덕분에 질병에 시달리던 섬 주민들이 질병에서 놓여 고침을 받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남의 덕 보기를 좋아하고 바랍니다. 예수 믿는 우리 성도들 때문에 많은 주변 사람들이 삶이 달라지기를 바랍니다. 득을 끼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살면서 누구와 사귀고, 동행하느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범죄자와 어울려 다니다 보면 그 범죄가 재미있어 보일 수가 있고, 자기도 모르게 죄를 저지르게 됩니다. 부정직한 사람과 자꾸 어울리다 보면 당장은 경제적인 유익이 될지 모르지만 어울리다가 자신도 부정직하게 되어 결국 심판에 이르게 됩니다.
우리 성도들도 질이 좀 나쁜 성도와 자꾸 어울리다 보면 다른 성들에 대해, 교회에 대해, 목회자에 대해 불평과 불만으로 가득 차게 되고 거치는 자가 되고 맙니다. 그래서 잠언22:24에 보면 “남을 많이 비판하고 울분을 품고 갈등이 많은 사람과 다니지 말라”고 합니다. 숯을 만지면 손이 더러워지듯이 그런 사람들과 자꾸 어울리다 보면 그와 같은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청소년들이 탈선하는 많은 경우를 보면 친구를 잘못 만나서입니다. 친구 때문에 인생망치는 청소년들이 많이 있습니다.
주님을 잘 경외하는 사람과 동행하면 믿음이 좋아질 것입니다. 경건한 사람과 동행하다 보면 말씨가 달라질 것입니다. 입에 감사가 있고, 찬양이 있고, 마음에 평안이 있는 사람과 일주일만 지내보면 자신이 좋아집니다. 하나님을 잘 경외한 사도 바울처럼 다른 사람을 살리고, 유익을 주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2.표적은 믿는 자들에게 유익과 교훈을 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나타내시는 표적은 언제나 믿는 자들에게 유익을 주고 교훈을 줍니다. 위에서 살펴본 서신서에 나타난 표적들이 사람들에게 유익과 교훈이 된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복음서 본문에서 예수께서 나면서부터 소경이 된 자를 고쳐 주신 내용도 그러합니다. 요9:3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서 사역하시면서 많은 기사와 이적을 베푸셨는데 그러한 표적을 통해,
먼저 주님께서는 죄 많은 인간에게 필요한 것들을 채워주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심(시103:14)으로 불쌍히 여기시며, 긍휼을 베푸셔서 도와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도 굶주린 무리들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러기에 주님 곁에는 많은 병자들이 몰려와 고침 받기를 원했습니다. 주님은 만병의 치료자가 되시는 분입니다.
다음에 주님이 죄를 사하는 권세를 가지신 메시야이심을 드러내셨습니다.
많은 경우 질병의 원인이 죄로 인해 발생 됩니다. 그래서 주님은 병을 고치시기 전에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말씀하신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병이 다 그러한 것은 아닙니다. 본문에서 이 소경이 나면서부터 소경 된 것이 부모나 이 사람의 죄 때문이 아니라 하셨습니다. 물론 소경과 그의 부모들은 다 죄를 범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것이 소경된 원인으로 보시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이 행하신 많은 표적은 그분이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신 분임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셨습니다.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시어 단지 육의 눈뿐 아니라 영의 눈을 가져야 할 필요를 형식적인 종교인들에게 가르쳐 주시려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육체의 가시와 같은 질병으로 세 번 간구했을 때 고후12:9에서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하는 응답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나사로의 소식을 듣고 그의 죽음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기 위한 일임을 아시고 일부러 죽은 지 나흘이 지난 뒤에 그의 무덤에 오셔서 그를 다시 살리셨습니다. 그래서 나사로의 일로 많은 사람들이 믿음의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악성 종양으로 인해 다리를 절단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20대 초반의 젊은 청년이었습니다. 가정도 남부러울 것이 없는 넉넉한 집안이었습니다. 그런 무신론자들이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참으로 드믄 일이었습니다. 뭐가 아쉬워서 예수를 믿을까? 그들은 늘 그랬습니다. 그런데 젊은 아들의 왼쪽 다리가 절단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한 달을 놓고 고민했습니다. 결국 목숨을 건지기 위해 다리를 잘랐습니다. 그를 위해 기도하고 전도하던 분이 수술을 받은 그를 방문했습니다. 전도하면 '뭐가 아쉬워서' 라고 늘 말하던 그의 어머니도 그 날은 아무 말도 못하고 복음을 받고, 처음으로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다리 한 쪽을 잃었지만 비싼 대가를 치르고 당신은 구원을 받았다고 말해주었습니다. 모두가 눈물을 흘렸습니다.
만일 그가 다리를 잃고도 주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그의 불행은 그냥 불행일 뿐입니다. 하지만 다리 한 쪽을 잃고 그와 그의 가족이 모두 예수님 앞에 마음을 열고 주님을 영접했으니 불행이 축복으로 바꾸어진 것입니다. 믿음 없는 사람은 자꾸 표적을 보려고 합니다. 표적을 보고도 다른 표적을 구합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모습을 보시고 믿음이 없는 악한 시대라고 꾸짖었습니다. 의심하는 도마에게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더 복되다 하셨습니다. 표적을 보고도 믿지 않고, 또 다른 표적을 구하는 자들이 되지 말고 보지 않고도 믿는 자들이 다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3.표적을 통한 최선의 열매는 영의 눈이 열리고 믿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소경을 보시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함이라’ 하셨는데, 우리 인생들에게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시는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이 보내신 독생자를 믿어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영생을 얻는 자들이 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을 고쳐주셨을 때 사람들은 적잖이 신기하고 놀라워했습니다. 그 중에는 예수님을 싫어하는 유대인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어떻게든지 예수님을 책잡기 위해 소경되었던 사람의 부모를 불러서 예수를 죄인으로 몰아가며 자초지종을 묻자 부모는 예수님이 죄인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분명한 사실은 자기 아들이 소경이었다가 지금 나아서 보게 되었다고 대답합니다. 유대인들은 부모에게 거듭 질문하지만 부모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사람만이 맹인의 눈을 뜨게 한다고 믿는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유대인들은 부모의 확고한 대답을 듣고는 무식한 네가 우리를 가르치려 드느냐며 화를 내고는 쫓아버립니다.
예수님이 이런 과정을 다 보고 들으신 후 맹인이었다가 눈을 뜬 사람을 만나서 질문하십니다. “네가 인자를 믿느냐?” 예수님은 맹인이었던 사람에게 예수님의 정체성에 대해서 질문하신 것입니다. 맹인이었던 사람은 예수님이 누군지 아직 모르지만 자신의 인생을 바꾸어 놓으신 분, 창세 이후로 눈을 뜨게 해주신 유일한 분임을 알고 있다고, 나는 그분을 믿고 싶다고 대답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내가 곧 그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때 그는 예수님께 절하며 ‘내가 믿나이다.’하며 고백했습니다.
소경은 예수님을 처음에는 “예수라 하는 사람” 또한 “선지자” 그리고 “하나님께로 부터 온 사람”이라고 불렀지만 주님과 대화하는 중에 예수님으로 부터 “네가 인자를 믿느냐?”하는 질문을 받고 “주여 내가 믿나이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고백은 주님께서는 인자 즉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예수님을 경배하며 절했던 것입니다. 그는 이 시점에서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이미 만났습니다. 그리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면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더 잘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기도할 때마다 예수님에 대해 더 잘 알기를 원한다고, 예수님을 더 잘 믿기 원한다고, 예수님을 더 많이 사랑하게 해 달라고, 예수님과 더욱 가까워지고 더 많이 닮게 해달라고 간구해야 합니다.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이런 믿음의 고백을 들으시기를 원하십니다. 처음에는 희미하게 알았지만 주님과의 교제가 더욱 깊어지며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나는 주님을 떠나서는 살 수 없나이다.’ 라는 고백을 들으시길 원하십니다.
어떤 이들은 처음에는 주님을 믿는 믿음으로 인해 감격과 기쁨과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믿음생활 하다가 점점 감격도 감사도 기쁨도 사라져 버리고 예배도 형식적으로 드리게 되는 신자들이 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믿음이 더 좋아져야 하는데, 세월이 지날수록 열정도 사라지고, 믿음이 시들해져 버립니다. 예수님을 더 가까이 하고자 힘쓰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아닌 다른 것에 더 많은 신경을 씁니다. 물질에 신경을 쓰고, 정치에 더 신경을 쓰고, 명예에 더 신경을 씁니다. 세상 연락에 더 신경을 씁니다. 주님이 아닌 다른 것에 마음을 빼앗겨 버립니다. 그러다 보면 믿음이 시들해지고, 알맹이가 없는 형식적인 신앙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좋은 신앙인이 되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만나 깊이 대화하고, 깊은 교제 나누는 일을 중요하게 여기고 우선적으로 여겨야 합니다. 그 때 유대인들이 주님을 믿고 따르는 자들을 미워하고 그들 가운데서 쫓겨남을 당하여 어려움을 만나는 것처럼 세상에서 조금 소외되어도, 누군가로부터 믿음에 대해 조롱을 받아도, 예수님 때문에 더 기뻐하고 감사하는 자들이 믿음의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처럼 세상을 사랑하는 자들은 영적인 소경과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요9:39에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하셨습니다. 소경은 육신의 눈만 뜬 것이 아니라 영의 눈이 열려 주님을 바로 알고 고백하게 되었고, 영적 세계를 보는 안목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존 포웰은 "그리스도인의 비전"이란 그의 책에서 한 근시안 청년을 소개합니다.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근시였기 때문에 자신의 서너 발자국 앞만 보고 살아왔습니다. 그러다가 18세가 될 무릎 안과에 가서 의사에게 진찰을 받고 그의 눈에 맞는 안경을 맞추었습니다. 안경을 끼고 창밖을 내다보니 새로운 세계가 보이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눈이 열리면 새로운 세계가 보입니다. 사람에는 육안(肉眼)도 중요하고, 지안(智眼)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영안(靈眼)입니다. 소경은 주님을 만나 영안이 열렸으나 바리새인들은 육안과 지안은 열렸으나 영안은 감겨 있었습니다. 영안이 열린 아브라함은 장차 그와 그의 후손이 하늘에 별처럼 창성하게 될 것을 믿었습니다. 영안이 열린 욥은 극심한 고난 중에서도 단련한 후 정금처럼 나오게 될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영안이 열린 바울은 현제의 고난은 장차 나타날 영광과 비교 하면 아무 것도 아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영안이 열린 믿음의 선진들은 땅에서는 나그네로 여기며 살면서 하늘에 있는 더 낳은 본향을 사모하며 살았습니다. 우리 모두 영안이 열려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바로 고백하고 신령한 은혜의 세계를 바라보고 천성을 향해 나아가는 믿음의 승리자들이 다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정리합니다.
오늘은 두 본문을 중심으로 “표적이 주는 의미”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표적은 믿는 자들에게 따르는 하나님의 은혜의 사건입니다.
⌾.표적은 믿는 자들에게 유익과 교훈을 줍니다.
⌾.표적을 통한 최선의 열매는 영의 눈이 열리고 믿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신약 > 요한복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 (요한복음 1장 1~14절) (0) | 2018.11.30 |
---|---|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요한복음 17장 3절 (0) | 2018.10.06 |
보혜사 성령에 대한 약속 요14:15-21 (0) | 2018.05.19 |
죽음으로 사는 밀알 교훈 요12:20-25, 행7:54-8:3 (0) | 2018.03.17 |
주 안에 거하는 자 요15:5-12 (0) | 2017.09.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