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을 받는 자세 (잠 19장8-10)
이 시간에 “말씀을 받는 자세”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 믿음이 훌륭하려면 무엇보다 자세가 좋아야 합니다. 특히 말씀을 받는 자세가 좋아야 합니다. 예수의 발치에 앉아 말씀에 귀를 기울였던 마리아는 매우 값진 향유를 예수께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 발을 닦아드렸으며 예수님께 가장 큰 칭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야 위대한 은총이 있습니다. 복음의 말씀을 받으면 거기서 구원의 은총이 나고, 축복의 말씀을 받으면 거기서 행복이 나고, 또 어떤 말씀이든지 그 말씀에 서면 그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놀라운 기적이 있습니다. 가나의 혼인집 보세요.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해서 그대로 했더니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말씀이 위대합니다.
그럼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자세는 어떠해야 할까요?
1.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8절 “지혜를 얻는 자는 자기 영혼을 사랑하고 명철을 지키는 자는 복을 얻느니라” 그러므로 자기 영혼을 사랑하고 복을 원한다면 지혜를 얻어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 지혜는 그냥 지혜가 아닙니다. 원문에 ‘레브’인데 ‘호크마’와 같은 의미로 쓰이는 것으로 지식에 그치지 않는 지정의를 포함한 참된 인식 상태를 강조한 낱말입니다.
그러니까 여기 지혜는 다름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깨닫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말씀이 우리의 생각과 인격과 삶까지 변화시켜야 합니다. 그러므로 진정 자기 영혼을 사랑한다면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의 약속한 복을 받으려면 그 말씀을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생명이 있고 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영혼과 행복은 모든 인간이 사모하는 것들입니다. 사람들이 자기 목숨 얼마나 사랑합니까? 다른 본능은 있다가도 사라지지만 생명에 대한 본능처럼 지속적으로 강한 것은 없습니다. 행복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은 행복을 찾아 떠난 나그네와 같습니다. 그렇다면 그만큼의 애착을 가지고 성경을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2. 말씀을 성령의 확신으로 받아야 합니다.
9절 “거짓 증인은 벌을 면하지 못할 것이요 거짓말을 뱉는 자는 망할 것이니라” 이 구절은 5절에서도 나오는 중복된 표현인데 그 전장도 아니고 바로 앞의 말씀을 이중으로 기록했을까요? 지혜의 대왕 솔로몬이 잠시 정신이 오락가락했을까요?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된 책이기에 중복 같아도 중복이 아니고 실수 같아도 실수가 아니고 그 말씀이 그 위치에 있어야 하고 꼭 필요해서 기록된 말씀입니다.
율법에서는 법정에서 거짓 증거를 절대 금지하고 있습니다. 신 19장을 보면 위증자에게는 그가 형제에게 꾀하려 한만큼 그에게 갚아준다(18-20절) 했습니다. 얼마나 두려운 일입니까? 요즘도 무고죄가 큰 죄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 성경은 증거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증인입니다. 그런데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위증자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성령의 은혜로 충만해야 합니다. 행1:8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셨습니다. 성령의 확신이 없으면 거짓 증인입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믿음을 보세요.
살전2:13에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처럼 믿음으로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그렇게 말씀을 잘 받아들인 이유가 무엇일까요?
살전1:5-6에 “이는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떤 사람이 된 것은 너희가 아는 바와 같으니라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성령의 은혜 속에서 전파되고 또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환난 중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갈급했고 그래서 더 온전한 믿음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성령의 은혜도 구하지만 우리도 힘써 믿어야 합니다. 성령 탓만 하지 말고 생명 걸고 믿자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확신, 이것이 말씀에 대한 올바른 자세입니다.
3. 말씀 앞에 순복해야 합니다.
10절 “미련한 자가 사치하는 것이 적당하지 못하거든 하물며 종이 방백을 다스림이랴” 미련한 자가 재물을 많이 소유했을지라도 올바르게 활용할 줄 모르고 그저 육신의 욕망만 채우는데 만 급급하다면 종이 방백을 다스리는 꼴과 같다는 말입니다. 성령을 다르지 않고 육신을 따라 사는 육신에 속한 사람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방백은 시장이나 도지사 같은 관리입니다. 그런데 정치와 행정 분야의 배움도 경험도 없는 종이 방백더러 이래라 저래라 한다면 이 얼마나 우습고 비참한 일입니까? 전문가도 아니면서 스스로 전문가가 되어 전문가 노릇하다가 전문가들 일을 방해하고 그르치고 온갖 혼란을 야기합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이고 얼마나 많은 기업을 파산내고 혼란스럽게 합니까? 참으로 비참하고 우스운 일입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말씀에 비유해 보십시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 앞에 절대 복종해야지 종이 방백을 다스리듯 거역하지 말란 말입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은 하늘과 땅의 차이입니다. 말씀이 우리를 끌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복은 곧 하나님에게 순복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 오직 아멘으로 받고 순복할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뭘 보시고 의롭다 인정하셨나요? 말씀을 믿는 것을 보셨습니다. 그러나 롯의 사위들은 농담으로 여겼습니다. 말씀을 믿지 않으면 불행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200년 전 영국의 윌리엄 윌버포스라는 정치인이 있었습니다. 당시에 노예제도가 매우 성행했는데 그는 기도 중에 노예제도를 폐지시키고 모든 노예들에게 자유를 주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그러나 이 제도를 폐지한다는 것은 대통령도 하기 어려운 혁명적인 일이었습니다.
모든 정치인들이 노예제도의 혜택을 받고 있어 폐지를 원치 않았고 자신은 굽은 곱사등에다 외모마저 볼품없는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어 누가 내 말을 들을 것인가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며칠간의 고민 끝에 그는 하나님께 불가능한 일이 없고 말씀하셨다면 하나님이 하실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노예제도 폐지를 위해 헌신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죽을 때까지 노예제도 폐지와 세계선교를 위해 고군분투했습니다. 그는 죽을 때까지 그 결과를 보지 못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의 믿음에 응답하셨고 윌리엄이 세상을 떠나던 그 해 영국에서는 노예제도를 폐지한다는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이처럼 성경 말씀을 그대로 믿고 행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성경을 향한 우리의 바른 자세입니다. 성경은 믿는 대로 되는 역사가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믿으면 성경이 우리를 위대하게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요10:35에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였거든” 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 신이라, 하나님이라 하신 이 요10:35의 예수님의 말씀은 무엇일까요? 정말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까? 이단 교주들이 이 말씀으로 자기를 신격화합니다. 말씀을 받기는요. 허무맹랑한 말하면서 그런 주장을 합니다.
그렇다면 모두가 말씀을 받으니 모두가 신이 되어야 하는데 왜 그 사람만 신이 됩니까? 그럼 모두가 신이라 해봅시다. 그렇다면 의미가 없잖아요. 성경은 유일하신 하나님이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 잘 해석해야 합니다. 잘못 해석하면 멸망하는 것입니다.
요10:35의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였거든” 어디서 인용하신 말씀일까요? 출7:1을 인용한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볼지어다 내가 너를 바로에게 신 같이 되게 하였은즉” “신 같이 되게” 이 부분에 대해서 개정역 성경이 번역을 잘했습니다. 신이 아니라 “신 같이 되게” 여호와께서 함께 하셔서 역사하시므로 하나님처럼 능력 있게 보인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요14:12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아버지께로 가셔서 성령을 보내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성령이 친히 역사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실재 그런 일이 있었잖아요. 행 14장 루스드라에서 바울과 바나바가 앉은뱅이를 걷게 하자 제우스와 헤르메스신이 임하셨다면서 숭배하려고 하여 제지하느라 얼마나 애썼습니까? 신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신이 아니었지요. 무엇이라 했나요?
"두 사도 바나바와 바울이 듣고 옷을 찢고 무리 가운데 뛰어 들어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함이라"(14-15절) 이렇게 말씀이 분명한 데도 말씀 받았으니 하나님 되는 건가요?
그리고 시82:6에 “너희는 신들이며 다 지존자의 아들들이라” 했는데 배경을 보면 이 말씀은 권세자들에게 한 말이에요. 즉 “신들(엘로힘)”은 하나님을 의미하지만 넓게는 왕과 같은 통치자나 재판관 같은 사람들을 가리켜서 말할 때에도 쓰여졌습니다. 가령 에클레시아가 용어적으로는 교회만이 아니라 달리 쓰일 때는 일반적인 회합 모임도 가리킨 것과 같습니다.
이들에게 심판을 선언합니다. 왜 그럴까요? 시편 82편에 등장하는 “신들” 즉 권세자들은 악인의 편을 들어서 공정하지 않은 재판을 되풀이한 심판 받을 “악한 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본문의 배경은 생각하지 않고 함부로 끌어다 사용하면 안 됩니다. 그렇지만 우리 모두 확신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면 위대해지고 하나님의 능력이 온전히 나타난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말씀이십니다. 말씀을 받는 것은 하나님을 받는 것이고 말씀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 무엇보다 말씀을 받는 바른 자세를 가지고 말씀을 사모하십시다. 성령의 은혜와 확신으로 말씀을 받으십시다. 그리고 말씀 앞에 절대 순복하십시다. 그래서 우리 모두 그 말씀이 그대로 우리에게 이루어지는 영육 간에 복되고 능력 있는 귀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구약 > 잠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에 속한 사람 (잠 21장1-3) (0) | 2015.03.25 |
---|---|
너는 여호와를 기다리라 잠언 20장22 (0) | 2015.03.18 |
그리스도인의 영성 (잠 18장4-5) (0) | 2015.02.28 |
작아도 큰 것 (잠 17:1-3) (0) | 2015.02.21 |
16장: 경영을 이루는 비결 (0) | 2015.02.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