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기는 자 왕하4:8-16, 마20:20-28
고려 말 공민왕 때의 사람이었던 문익점은 그 당시에는 겨울만 되면 많은 사람들이 추위를 견디지 못해 얼어 죽는 모습을 보고 안타깝게 여겼습니다. 당시 겨울은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무서운 죽음의 계절이라고 여겨지기까지 했습니다. 그러한 때 문익점은 사신으로 중국의 원나라에 파견이 되었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놀라운 사실을 한 가지 발견했습니다. 날씨는 중국이 더 추운데 이상하게도 얼어 죽는 사람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유를 알아보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베옷을 입고 있는데, 그들은 목화를 재배해서 그것으로 따뜻한 솜옷을 만들어 입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문익점은 나라를 위해서, 백성들을 섬기기 위한 마음으로 목숨을 건 결심을 했습니다.
그 당시 중국 측 국경 경비대의 검문은 아주 살벌했습니다. 원나라에서도 목화를 재배한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에 함부로 목화씨를 가지고 나가다가는 죽음을 면키 어려웠던 것입니다. 그는 궁리 끝에 자기가 쓰는 붓 뚜껑 속에 목화씨앗 세알을 몰래 감추었습니다. 그리고는 가까스로 국경을 넘었습니다. 그는 정성을 다해 씨앗을 심고 가꾸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전국적으로 목화가 재배되었습니다. 그리고 난 뒤 문익점은 자기의 장인인 정천익과 함께 물레 만드는 법과 베 짜는 법을 백성들에게 가르쳤습니다. 그 결과 우리나라 사람들도 겨울을 따뜻하게 날 수 있었습니다. 한 사람의 섬기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교회 안에, 공동체 안에, 나라 안에 섬기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다면 소망스런 교회, 아름다운 공동체, 살기 좋은 나라가 될 것입니다. 오늘은 두 본문을 중심으로 “섬기는 자”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먼저 섬기는 자의 모습에 대해 상고해 봅시다.
'섬김(dia,konoj / diakonos)'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식사 시중을 하다(waiter)입니다. 고급 식당에 가면 웨이터가 있는데, 손님들의 식사를 돕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사람입니다. 언제라도 필요하면 달려와서 즐겁고, 편안하게 식사를 할 수 있도록 돕는 자를 말합니다. *'돌보다, 돕다(to serve)'입니다. 나의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에서 서서 돌보아주고 도와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영어 표현인 service 라는 단어가 나왔습니다. 또한 이 단어에서 servant(종)이라는 말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원래 집사라는 단어 역시 섬김, '디아코노스deacon'에서 나온 말입니다. 교회에서 집사라는 직분은 '섬기는 자'를 의미합니다. 그러면 섬기기 위해 오신 예수님이 우리들에게 요구하시는 섬김이란,
먼저 나보다는 먼저 남을 배려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남을 섬긴다는 것은 나보다는 먼저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필요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채우려고 합니다. 그러나 섬김은 나보다는 먼저 남을 생각하고 배려하는 삶의 태도로부터 출발합니다. 물론 이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따라서 부단히 훈련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몸에 배어 있어야 합니다.
어느 분이 식당에서 음식을 먹다가 화장실에 다녀왔습니다. 웨이터를 불러 “화장실에 마지막 남은 화장지를 쓰고 나왔는데 화장지를 갔다 놓으면 좋겠습니다.”했습니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입니다. 남을 섬기는 일에 익숙한 분입니다.
구약 본문에 나오는 수넴 여인이 바로 그런 여인이었습니다. 왕하4:13에 “엘리사가 자기 사환에게 이르되 너는 그에게 이르라 네가 이같이 우리를 위하여 세심한 배려를 하는도다.”했습니다.
다음에 자신을 겸손히 낮추는 것입니다. 남보다 자신을 높이고자 하면 절대로 섬길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한 분이십니다. 그러나 자기를 비워 종의 모습으로 낮추셨습니다. 이 낮아짐의 마음이 바로 섬김입니다. 사람들은 높아지기를 원하면서도 낮아지기를 싫어합니다. 그래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높아지려고 합니다. 신약 본문에 보면 두 제자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요청을 합니다. 21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엇을 원하느냐 이르되 나의 이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했습니다. 이처럼 우리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기를 원하면서도 여전히 자꾸 높아지려고 한다면 섬김과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우리는 높은 자리에서 낮은 자리로 내려가야 합니다.
그리고 섬김은 자신을 희생하고 주는 것입니다. 나를 주지 않고서는 남을 섬길 수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섬김은 물과 같고 소금과 같습니다. 물은 형태가 없습니다. 끊임없이 자기를 퍼주는 것이 물입니다. 갈증을 해결해 줍니다. 식물이 자라도록 도와줍니다. 그러나 자신의 모습은 드러내지 않습니다. 소금 역시 스스로를 녹여 자신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음식의 맛을 냅니다. 부패를 방지합니다.
우리가 세속적인 마음을 가지게 되면 세상 사람들처럼 자신을 위해 계속해서 쌓아두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그러나 자신에게 있는 것을 자꾸 베풀면 더 풍성해 지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모습입니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법칙> 이라는 책을 쓴 스티븐 코비는 '고갈의 관념'과 '풍요의 관념'을 말합니다. 사람들은 자기 것을 주면 모든 것이 다 고갈 될 것이라는 두려움을 가집니다. 그래서 자꾸 모으려고 하고, 쌓아두려고 합니다. 그러나 성숙한 사람은 자꾸 남을 위해 줍니다. 주면 줄수록 새로운 것이 나오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성도의 축복의 원리입니다. 우리 모두 나보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 자신을 겸손히 낮추는 마음, 자신을 희생하고 주는 섬김의 사람으로 사시기를 소망합니다.
2.섬기는 자의 생활에 대해 상고해 봅시다.
우리 인생들에게 있어서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해야 할 중요한 일이 하나님을 잘 섬기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불신하고 떠나 사는 것이 가장 큰 죄입니다. 하나님을 잘 경외하고 섬기는 일이 인생의 본분이요,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이 목적에 어긋난 삶은 아무리 선하게 산다 해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고,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신 목적도 영원히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 죽기까지 하시면서 우리를 구원해 주신 목적은 우리의 안락한 생활과 쾌락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 세상에서와 천국에서까지 영원히 하나님을 섬기기 위함입니다. 계 4:11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했습니다. 계 19:4-5 "또 이십 사 장로와 네 생물이 엎드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 경배하여 가로되 아멘 할렐루야 하니 보좌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하나님의 종들 곧 그를 경외하는 너희들아 무론대소하고 다 우리 하나님께 찬송하라"했습니다.
성도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성전을 가까이 하며 예배를 드리고 봉사하고 헌신하는 모습이 하나님을 잘 섬기는 모습입니다. 그런 자는 항상 주님을 향하여 마음을 기울이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를 힘씁니다.
그리고 형제와 이웃을 섬기는 생활에 마음을 기울입니다. 구약 본문에 나오는 수넴 여인이 그렇게 했습니다. 왕하4:8-10 에 “하루는 엘리사가 수넴에 이르렀더니 거기에 한 귀한 여인이 그를 간권하여 음식을 먹게 하였으므로 엘리사가 그 곳을 지날 때마다 음식을 먹으러 그리로 들어갔더라/ 여인이 그의 남편에게 이르되 항상 우리를 지나가는 이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인 줄을 내가 아노니/ 청하건대 우리가 그를 위하여 작은 방을 담 위에 만들고 침상과 책상과 의자와 촛대를 두사이다 그가 우리에게 이르면 거기에 머물리이다 하였더라.”했습니다. 수넴 여인은 엘리사 선지자에게 간권하여 음식을 대접하고, 남편과 상의 하여 거처할 방을 마련하여 언제든 불편함이 없이 그 곳에서 머물게 했습니다.
신약 본문 마20:28에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했습니다. 성도들은 예수님을 본받아 섬겨야 합니다. 칼빈은 "왕이라도 섬김이 없이는 진정으로 의롭게 다스릴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목사도, 집사도 다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어떤 이들은 교회 직분이 높아지면 으스대고 행세를 하려고 합니다. 교회는 직분이 높아질수록 예수님을 더욱 닮은 모습으로 주님이 본을 보이신 것처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목사도 섬기기를 잘 해야 좋은 목사가 됩니다.
성도라면 누구나 하나님을 잘 섬기고 형제와 이웃을 잘 섬기는 자가 귀한 자요 하나님은 그런 자들을 높여 주시고 더 큰 은총을 주십니다.
한 초등학생이 하굣길에 구덩이에 쓰러져 있는 한 할머니를 발견했습니다. 갑자기 쏟아진 폭우로 자신도 물에 빠진 생쥐 신세여서 빨리 집에 가고 싶었지만 집의 위치를 물어 할머니를 모셔다 드렸습니다. 간호도 하고 말벗도 했습니다. 어린 소년의 이 같은 보살핌에 감동을 한 할머니는 건강을 되찾고 찾아와 소원 하나를 들어 줄 테니 말해보라고 했습니다.
소년은 말했습니다. “제 소원은 너무 큰 것이라 말씀드리기 곤란합니다.” 그러자 할머니는 “도대체 그 큰 소원이 무엇이어서 그러느냐”며 답변을 재촉했습니다. 소년이 수줍은 듯 말했습니다. “교회 예배당을 새로 짓고 싶어요.” 자신이 주일마다 다니는 교회 예배당이 너무 오래돼 낡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어른이 되면 꼭 예배당을 짓겠노라고 결심했다고 소년은 설명했습니다. 할머니는 이 교회에 새 예배당을 지어줬습니다. 할머니는 큰 부자였던 것입니다. 이 소년은 비록 어리지만 하나님을 잘 섬기는 아이였습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사랑하고, 어려운 이웃을 사랑하고 섬길 줄 아는 아이였습니다. 이런 아이를 통해 하나님은 어른들도 하기 힘든 일을 하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을 잘 섬기고, 형제와 이웃을 잘 섬기는 성도로 사시기를 소망합니다.
3.섬기는 자가 받는 복에 대해 상고해 봅시다.
구약 본문에 보면 수넴 여인의 정성어린 섬김을 받은 엘리사가 하루는 그 종 게하시에게 수넴 여인을 불러오라고 합니다. 여인이 들어오자 “내가 너를 위하여 무엇을 해 줄 수 있겠느냐” 물으니 여인은 “나는 내 백성 중에 거하는데 무엇을 구할 수 있겠습니까?” 라고 사양하자 엘리사가 게하시에게 이 여인에게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알아보라고 했습니다. 게하시는 “이 여인에게 아들이 없는데 남편은 이미 늙었습니다.” 라고 하자 엘리사가 그 여인을 다시 부르다가 말하기를 “돌이 되면 네가 아들을 안으리라”고 하니 여인이 말하기를 “내 주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의 계집종을 속이지 마십시오.” 라고 했는데 정말 그 후 일 년이 지나매 엘리사가 축복한 대로 여인이 아들을 낳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섬기는 자를 사랑하시고 복을 주십니다. 그리고 높여 주십니다. 신약 본문 마20:25-27에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겸손하면 손해를 본다고 생각합니다. 겸손은 힘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바보 취급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기를 들어내고 자기 스스로 높여야 유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낮아지고 사랑으로 섬기면 그것이 위력이 되는 것입니다. 큰 힘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로 높아지려는 제자들을 향하여 주님은 크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종이 되어야 한다고 하신 것입니다.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와 알베르 까뮤는 모두 노벨상 수상자입니다. 슈바이처 박사는 박사 학위만도 네다섯 가지나 되는 사람인데 아프리카 람바레나에 가서 흑인 병자들을 치료해 주며, 사랑으로 섬기면서 그의 삶을 바쳤습니다. 그가 모든 명예를 버리고 아프리카 적도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모두 그를 미쳤다고 했었습니다. 그는 노벨 상금으로 아프리카에 병원을 짓고 흑인들을 치료해 주며 생애를 보냈는데, 사람들은 오늘날 그를 20 세기의 태양이라고 불렀습니다. 까뮤는 상금을 가지고 한적한 교외에다 자신을 위해 멋있는 별장을 짓고 신나게 승용차를 타고 별장으로 가다가 전신주를 들이받고 그 자리에서 그의 생애를 마치고 말았습니다. 남을 섬기는 생활이 바보 같고 어리석어 보여도 이것이 보람 있는 생활이요, 복된 생활이요, 선한 일에 부한 생활이요, 하늘에 상급을 쌓는 일입니다. 그런 자가 남을 행복하게 하는 사람이요, 자기도 행복해집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을 본받아 몸에 밴 모습으로 섬기는 자가 되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정리합니다. 오늘은 두 본문을 중심으로 “섬기는 자”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먼저 섬기는 자의 모습에 대해 상고해 보았습니다. *섬김이란 남을 배려하고, 자신을 겸손히 낮추고, 희생하고 주는 것이라 했습니다.
◑.섬기는 자의 생활에 대해 상고해 보았습니다. 주님과 이웃을 섬기는 것입니다.
◑.섬기는 자가 받는 복에 대해 상고해 보았습니다. 섬김은 어리석음이 아니라 영원한 복을 예비하는 지혜자의 삶입니다. 우리 모두 섬기는 자가 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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