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요한복음

"성령이여 오시옵소서" 요14:16-17,15:26-27,행2:1-4

nam씨 2017. 6. 2. 19:52


"성령이여 오시옵소서" 14:16-17,15:26-27,2:1-4

 

오늘은 성령 강림 주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시고 우리 죄인들을 사랑하셔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주셨고 그리고 하나님의 신 성령님을 세상에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보내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죄사함과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성령님을 보내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중생과 기쁨과 승리를 얻게 되었습니다. 성령님이 오시므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이루신 구원의 사역을 우리의 몸과 영혼 안에 이루어 주셨습니다. 성령님이 오시지 않았다면 십자가 사건은 하나의 고고학적 사건으로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성령님이 오시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말씀은 단지 책 속에 쓰여져 있는 인쇄물로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성령님이 오시므로 십자가 사건은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만드는 생동하는 사건이 되었고 성령님이 오시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가슴을 적시고 녹이는 살아있는 음성이 되었습니다.

성령님은 오순절 날 한번 오심으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계속해서 우리에게 오시고 또 오셨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오순절 날, 성령의 오심은 120명이나 삼천 명에게 국한 한 것이 아니고 오고 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증거했습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며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2:38-39). 하나님은 당신의 신 성령님을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보내 주셨습니다. 사도행전은 오순절 이후 성령님이 계속해서 오신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4:31).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7:55). "이에 두 사도가 저희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8:17). 여기 저희는 사마리아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아나니아가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가로되 형제 사울아 주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9:17). 반역자 사울에게도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베드로가 이 말 할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10:44). 여기 모든 사람은 고넬료를 비롯한 가이사랴에 살던 이방인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로마인들과 이방인들에게도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후에 성령을 독일 사람들에게도 영국 사람들에게도 미국 사람들에게도 웨일즈 사람들에게도 한국 사람들에게도 인도네시아 사람들에게도 보내 주셨습니다.

성령님은 한 교회나 한 사람에게 한 번 오시고 그치는 것이 아니고 한 교회와 한 사람에게 계속해서 오십니다.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에게 성령께서 계속해서 오셨고 스데반에게 계속해서 오셨고 사도 바울에게 계속해서 오셨습니다. 우리는 성령님의 오심을 신학의 틀로 제한시킬 필요는 없습니다. 중생한 사람은 성령의 세례를 다시 받을 필요가 없다고 강하게 주장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신학적으로 맞는 말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저는 좀 극단적으로 말해서 성령의 세례를 10번 받아도 아무 상관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세례를 과거의 사람이 물 속에 잠기듯 죽고 새로운 사람이 물 속에서 일어나듯 살아나는 것이라고 이해한다면 성령의 세례를 10100번이라도 받아서 과거의 내가 완전히 죽고 성령의 사람이 나에게서 새로 태어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신학의 틀로 성령의 오심을 제한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가로 막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요점은 성령께서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그리고 나 한 사람에게 계속해서 오시고 또 오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성령의 오심을 사모해야 합니다. 김치선 목사님은 성령의 오심을 날마다 사모했고 로이드 존스 박사도 성령의 오심을 날마다 사모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 설교 제목은 "성령이여 오시옵소서" 입니다. 한번 따라서 해 보시기 바랍니다. "성령이여 오시옵소서" 성령이 우리에게 오셔서 하시는 일 세 가지만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1 첫째 성령은 살리는 생명의 영입니다.

성령은 살리는 영입니다. 성령이 오시면 우리를 살립니다. 우리가 살아납니다. 하나님의 신 성령은 생명의 영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의 사역에 근거해서 우리를 살리지만, 하나님은 성령의 사역에 의해서 우리를 살립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신을 흙으로 지은 아담의 코에 불어 넣었을 때 아담이 생령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도 사람이 성령으로 거듭나야만 새로운 영의 사람이 되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했습니다. 오순절 날 성령이 바람과 같이 그리고 불과 같이 120명에게 임했을 때 저들은 모두 살아났습니다. 몸과 영혼이 새롭게 살아났습니다.

 

살아났다는 말은 하나님을 가깝게 친밀하게 만났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과 친밀한 영혼의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즉 방언의 기도가 터져 나왔고 뜨거운 찬양이 터져 나왔습니다. 처음에는 120명이 나중에는 3천 여명이 기도하기를 전혀 힘썼고 하나님을 기쁘게 찬양했습니다.

성령이 오시면 우리가 살아납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가깝게 친밀하게 만납니다. 그러면 우리의 기도가 뜨거워지고 우리의 찬양이 뜨거워집니다.

사데교회 신자들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상은 죽은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즉 기도가 죽었고 찬양이 죽었다는 말입니다.

1907년 성령께서 평양의 장대현 교회에 임했을 때 2천여명의 신자들이 살아났습니다. 저들의 기도가 얼마나 뜨거웠던지 저들의 기도 소리에 교회당 지붕이 날아갈 버릴 정도였다고 했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살아나기를 원합니다. 저와 여러분들의 기도와 찬양이 살아가기를 바립니다. 성령이 오셔야 합니다. 충만이 오셔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 우리들의 기도는 "성령이여 오시옵소서" 입니다.

 

살아났다는 말은 또한 사람들을 가깝게 친밀하게 만났다는 말입니다.

성령이 임했을 때 사람들의 사이가 가까워졌습니다. 인사가 친절해졌고 교제가 뜨거워졌고 물건을 주고 받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서로 교제하기를 전혀 힘쓰니라"(2:42). "믿는 사람들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2:44-46). 성령 충만은 생명 충만이고 생명 충만은 교제 충만이고 사랑 충만입니다. 성령이 오시면 사랑의 공동체가 됩니다. 우리 교회가 성령 충만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교제가 충만하고 사랑이 충만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 우리들의 기도는 "성령이여 오시옵소서" 입니다.

 

2 둘째 성령은 가르치시고 도와 주시는 위로의 영입니다.

성령은 미련한 우리를 가르쳐 주시고 연약한 우리를 도와주시고 낙심하는 우리를 위로하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도 미련합니다. 예수님을 잘 믿는 사람도 연약합니다. 예수님을 열심히 믿는 사람도 곧 잘 낙심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다 그랬습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열 두 제자들은 모두 미련하고 연약하고 낙심을 잘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 주시겠다고 말씀했습니다. 성령께서 오셔서 미련한 제자들을 가르쳐 주시고 연약한 제자들을 도와주시고 낙심하는 제자들을 위로해 주실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14:26).

성령님이 우리에게 오시면 우리를 가르쳐 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가르쳐 주십니다. 우리가 무슨 말을 해야 할 것도 가르쳐 주십니다. 그래서 베드로도 스데반도 주님을 증거하는 말을 너무나 잘 했습니다.

 

성령님은 또한 우리를 도와 주십니다. 여기 보혜사라는 말은 Helper 곧 도와 주시는 분이라는 말입니다. 연약한 우리를 도와 주신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8:26)라고 기록했습니다. 성령님은 우리들에게 오셔서 우리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우리를 도와 주십니다. 우리가 시험에 넘어지지 않도록 우리를 도와 주십니다. 고난과 박해를 당해도 주님을 부인하지 않도록 우리를 도와 주십니다. 그래서 승리하게 해 주십니다. 성령님은 너무나 좋으신 분입니다.

 

성령님은 또한 우리를 위로해 주십니다.

여기 보혜사라는 말은 Comforter 곧 위로하시는 분이라는 말도 됩니다. 낙심하는 우리를 위로하신다는 말입니다. 우리 곁에 계시며 우리에게 속삭이시면서 우리를 위로해 주시는 분입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14:16,17). 성령님이 오셔서 항상 우리 곁에 계실 뿐 아니라 우리 속에 계시면서 우리를 위로해 주시겠다고 했습니다. 성령님이 우리를 위로하시면 우리는 그저 좋고 기쁘고 즐겁고 평안함을 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한 사람은 기쁨과 즐거움과 평안으로 충만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성령 안에 있으면 평강과 희락이 충만하다고 했습니다.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14:14).

우리는 모두 미련하고 연약하고 낙심을 잘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님이 필요합니다. 성령님이 우리들에게 오셔야 합니다. 우리들에게 충만이 오셔야 합니다. 우리는 성령님의 가르침을 받아야 하고 성령님의 도움을 받아야 하고 성령님의 위로를 받아야 합니다. 성령님이 우리 모두에게 오셔서 우리 모두를 가르쳐 주시고 도와 주시고 위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 우리들의 기도는 "성령이여 오시옵소서" 입니다.

 

3 셋째 성령은 우리에게 힘을 주셔서 주님을 증거하게 하시는 증거의 영입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에게 힘을 주시고 우리로 하여금 주님을 증거하게 하시는 전도의 영이십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내 증인이 되리라"(1:8). 사실 성령님이 우리를 살리시고 우리를 가르치시고 우리를 도와 주시고 우리를 위로하시는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에게 힘을 주셔서 주님을 증거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령이 오셔서 하실 가장 중요한 일이 예수님 자신을 증거하는 일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했습니다.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15:26).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1:8). 베드로에게 성령이 임했을 때 베드로는 힘있게 주님을 증거했습니다. 스데반에게 성령이 임했을 때 스데반은 돌에 맞으면서도 힘있게 주님을 증거했습니다. 빌립에게 성령이 임했을 때 빌립은 세계 곳곳을 찾아 다니며 힘있게 주님을 증거했습니다.

성령이 오시면 힘을 얻어서 권능을 받아서 주님을 힘있게 증거하게 됩니다. 여기 힘 즉 권능은 말의 힘뿐 아니라 삶과 인격의 힘을 말합니다. 삶과 인격의 힘이란 성령의 열매를 맺음으로 나타나는 삶과 인격의 힘을 말합니다. 사실 말의 힘 보다는 삶과 인격의 힘이 더 강한 힘입니다. 성령이 오시면 이와 같은 힘을 얻게 됩니다. 말의 힘과 아울러 삶과 인격의 힘을 얻어 어떠한 박해나 위협에도 조금도 굴하지 않고 주님을 담대하게 증거하게 됩니다. 우리가 구원 얻은 목적은 주님을 예배하는 일과 함께 주님을 증거하는 일입니다. 주님의 마지막 분부도 우리가 주님을 증거하는 일입니다. 성령이 오셔야 우리는 주님을 힘있게 증거하게 됩니다. 성령께서 우리 모두에게 충만이 임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 우리들의 기도는 "성령이여 오시옵소서" 입니다.

 

성령은 사모하는 사람에게 임합니다.

R.A. Torray 박사는 행1:4을 해석하면서 오늘도 우리 신자들은 성령의 세례를 사모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성령의 세례를 받으려면 1)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철저하게 신뢰해야 하고 2) 죄를 철저하게 회개하고 고백하고 버려야 하고 3) 하나님께 전적으로 헌신해야 하고 4) 성령 받기를 간절히 사모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박윤선 목사님은 이와 같은 토레이 박사의 말을 소개하면서 토레이 박사의 해석과 주장은 바른 해석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한 평생 성령의 오심을 사모해야 합니다. 한 평생 성령의 충만을 사모해야 합니다. 한 평생 성령의 세례도 사모해야 합니다.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항상 오시기를 기원합니다.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항상 충만이 임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래서 죽은 자와 같은 우리들이 모두 힘있게 살아나기를 바랍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가르쳐 주시고 도와 주시고 위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기쁨과 즐거움과 평강이 충만해 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힘있게 능력있게 주님을 증거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아침 우리들의 기도는 "성령이여 오시옵소서" 입니다. 한번 따라서 해 보시기 바랍니다. "성령이여 오시옵소서" "성령이여 우리에게 오시옵소서" "성령이여 나에게 오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