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절, 여호와의 종
[1-3절] 섬들아, 나를 들으라. 원방 백성들아, 귀를 기울이라. . . .
선지자는, “섬들아, 나를 들으라. 원방 백성들아, 귀를 기울이라”고 말한다. ‘섬들’과 ‘원방 백성들’은 이방 백성들을 가리킴이 분명하다. 본문은 유다 백성들뿐 아니라, 이방 백성들을 향해 말한다.
선지자는 또, “여호와께서 내가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나를 부르셨고 내가 어미 복중에서 나옴으로부터 내 이름을 말씀하셨으며 내 입을 날카로운 칼같이 만드시고 나를 그 손 그늘에 숨기시며 나로 마광한 살을 만드사 그 전통에 감추시고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나의 종이요 내 영광을 나타낼 이스라엘이라 하셨느니라”고 말한다.
본문의 ‘나’는 ‘야곱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자’이며 ‘이스라엘을 하나님께로 모이게 하는 자’이고(5절), 또 ‘이방의 빛’이 되고(6절), ‘백성의 언약이 되는 자’(8절)이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 해당되는 표현들이다. 본문의 ‘나’는 분명히 메시아를 가리킨다. 파사 왕 고레스를 통한 이스라엘의 회복의 예언은 메시아 예언으로 이어지고 있다.
여호와께서는 메시아가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그를 부르셨고 그가 어미 복중에서 나옴으로부터 그의 이름을 말씀하셨다. 주의 천사가 꿈에 요셉에게 나타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고 말하였다(마 1:20-21).
본문은 또, “내 입을 날카로운 칼같이 만드시고 나를 그 손 그늘에 숨기시며 나로 마광한 살을 만드사 그 전통에 감추시고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나의 종이요 내 영광을 나타낼 이스라엘이라 하셨느니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메시아의 입을 날카로운 칼같이 만드시고 그를 그의 손 그늘에 숨기시며 그로 잘 갈아진 화살을 만드셔서 그의 화살통에 감추셨다. 메시아의 말씀 사역은 좌우에 날선 예리한 칼 같아서 영혼을 구원하는 능력이 있다. 요한계시록 1:16은, 예수 그리스도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온다고 묘사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메시아를 ‘나의 종,’ ‘이스라엘’ 또는 ‘내 영광을 나타낼 자’라고 말씀하신다. 메시아께서는 하나님의 종으로 오실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뜻을 충성되이 이루실 것이다. 예수께서는,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고 말씀하셨다(요 6:38-40).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2:6-8에서, 증거하기를, “그는[그리스도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고 하였다.
[4절] 그러나 나는 말하기를 내가 헛되이 수고하였으며 무익히 공연히 내 힘을 다하였다 하였도다. 정녕히 나의 신원이 여호와께 있고 . . . .
선지자는 또 말하기를, “그러나 나는 말하기를 내가 헛되이 수고하였으며 무익히 공연히 내 힘을 다하였다 하였도다. 정녕히 나의 신원(伸寃)이 여호와께 있고 나의 보응이 나의 하나님께 있느니라”고 한다. 이것도 메시아의 말씀을 전한 것이라고 본다. ‘신원’이라는 원어(미쉬파트)는 ‘판단, 판결, 송사’라는 뜻이다.
본문은 메시아의 사역이 헛된 수고처럼 보일 것이라고 말한다. 이 예언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그대로 이루어졌다. 예수 그리스도의 3년간의 전도와 제자 훈련은 헛된 수고처럼 보였다. 3년 동안 가르쳤던 제자 중 하나는 배신하였고 수제자 베드로는 예수께서 잡히시던 그 밤에 주를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하였고 대부분의 제자들은 도망쳤으며, 유대의 무리들은 유대 지도자들에게 충동되어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이라고 외쳤다. 인간적으로 볼 때, 주 예수 그리스도의 3년간의 사역은 헛수고처럼 보였다.
그러나 메시아는, “정녕히 나의 신원[판결]이 여호와께 있고 나의 보응이 나의 하나님께 있느니라”고 말씀하신다. 그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판결과 그의 억울함을 풀어주실 것을 확신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죽은 지 삼일 만에 부활시키심으로 그를 높여서 열왕들이 그 앞에 무릎을 꿇고 그에게 경배하게 하셨다.
[5절] 나는 여호와의 보시기에 존귀한 자라. 나의 하나님이 나의 힘이 되셨도다. 다시 야곱을 자기에게로 돌아오게 하시며 . . . .
선지자는 또 메시아의 말씀을 대언한다. “나는 여호와의 보시기에 존귀한 자라. 나의 하나님이 나의 힘이 되셨도다. 다시 야곱을 자기에게로 돌아오게 하시며 이스라엘을 자기에게로 모이게 하시려고 나를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자기 종을 삼으신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21)
메시아는 사람들 보기에는 보잘것없어서 멸시와 핍박을 당하지만 여호와의 보시기에는 존귀한 자이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스런 아들이시다. 고린도전서 1:8은 이 세상의 관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여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박았다고 말하였다. 또 그의 하나님이 그의 힘이 되셨다. 세상이 그를 모르고 핍박할 때 하나님은 그의 힘과 위로가 되셨다. 이 메시아는 야곱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시며 이스라엘을 그에게로 모이게 하시기 위해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하나님의 종으로 택함을 받으셨다.
[6절] 그가 가라사대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며 이스라엘 중에 보전된 자를 돌아오게 할 것은 오히려 경한 일이라. 내가 또 너로 이방의 빛을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
선지자는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그가[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며 이스라엘 중에 보전된 자를 돌아오게 할 것은 오히려 경(輕)한[가벼운] 일이라. 내가 또 너로 이방의 빛을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
본문은 메시아의 구원 대상이 이스라엘 백성에 국한되지 않고 땅 끝까지의 이방인들을 포함할 것을 보이는 놀라운 예언의 말씀이다. ‘빛’은 지식과 의, 생명과 행복을 상징한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말미암은 영생과 영원한 행복을 가리킨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말미암아 신약시대에 이미 성취되었다. 하나님의 구원의 빛이 온 세상에 비추었다. 하나님의 구원의 복이 온 세상에 충만히 전달되었다. 사도시대에 이미 사도 바울은,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군이 되었노라”고 골로새서 1:23에서 말하였다. 세계복음화의 뜻은 거의 이루어졌다.
[7절] 이스라엘의 구속자,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이신 여호와께서 . . . .
선지자는 또 말한다. “이스라엘의 구속자,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이신 여호와께서 사람에게 멸시를 당하는 자, 백성에게 미움을 받는 자, 관원들에게 종이 된 자에게 이같이 이르시되 너를 보고 열왕이 일어서며 방백들이 경배하리니 이는 너를 택한 바 신실한 나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인함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이스라엘의 구속자(救贖者)’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 즉 ‘이스라엘을 거룩케 하시는 자’라고 부르시며, 메시아가 사람들에게 멸시를 당하며 백성에게 미움을 받고 관원들에게 종이 될 것이지만, 하나님 자신이 역사하여서 열왕들이 메시아를 보고 일어서며 방백들이 그에게 경배하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그 앞에 굴복하는 것은 기적이며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예언하신 대로 보내주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감사하자. 예수 그리스도는, 빌립이 말한 대로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 분”이시다(요 1:45). 예수 그리스도는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기록된 바로 그 분이시다(눅 24:44). 우리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감사하자.
둘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르자. 그 발자취는 영광의 발자취가 아니고 고난의 발자취이다. 그는 사람들에게 멸시를 당하고 학대를 당하였다. 그는 마침내 십자가에 달려 수치와 극심한 고통을 당하셨다. 그러나 그 고난이 지난 후 그는 부활하셨고 승천하셔서 영광의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다. 주께서는,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말씀하셨다(마 16:24). 우리는 주님의 그 발자취를 따르자.
셋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계승하자. 메시아의 사역은 하나님의 구원의 빛을 땅 끝까지 비추는 것이다. 그의 사명은 신약교회에 전수되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신약교회에 세계복음화의 큰 사명을 주셨다(마 28:19-20; 행 1:8). 사도행전 13:47에 보면, 사도 바울은 이사야의 이 구절을 인용하면서 자신들에게 적용하였다. “주께서 이같이 우리를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을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 우리는 땅 끝까지, 세상 끝날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 교회는 이 일을 위해 충성해야 한다.
8-13절, 은혜의 때
[8절] 여호와께서 또 가라사대 은혜의 때에 내가 네게 응답하였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왔도다. 내가 장차 너를 보호하여 너로 백성의 언약을 삼으며 나라를 일으켜 그들로 그 황무하였던 땅을 기업으로 상속케 하리라.
본문은, “여호와께서 또 가라사대 은혜의 때에 내가 네게 응답하였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왔도다”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메시아에게 말씀하신다. ‘은혜의 때’와 ‘구원의 날’은 메시아 시대를 가리킨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신 신약시대를 가리킨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6:2에서 이 구절을 인용하며 말하기를,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라고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은혜의 때에 메시아에게 응답하였다고 말씀하셨다. 주 예수께서는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시며 말씀하셨다.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저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요 11:41-42).
또 하나님께서는 은혜의 때에 메시아를 도왔다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는 요한복음 8장에 보면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하시도다.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고 말씀하셨다(요 8:29). 사도행전 10장에 보면, 사도 베드로는,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하셨음이라”고 증거하였다(행 10:38).
본문은 또, “내가 장차 너를 보호하여 너로 백성의 언약을 삼으며 나라를 일으켜 그들로 그 황무하였던 땅을 기업으로 상속케 하리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메시아를 지키셔서 그의 사명을 완수하게 하실 것이다. 메시아는 사명을 완수하기까지 죽지 않을 것이다.
또 하나님께서는 메시아를 백성의 언약으로 삼으실 것이다. 과연 예수 그리스도는 새 언약의 중보가 되셨다. 주께서는 마지막 유월절 식탁에서 제자들에게 포도즙을 나눠주시면서 “이것은 죄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고 말씀하셨다(마 26:28). 히브리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히 8:6), “새 언약의 중보”(히 9:15; 12:24)라고 불렀다. 예수께서는 우리를 위해 새 언약이 되셨다.
또 하나님께서는 “나라를 일으켜 그들로 그 황무하였던 땅을 기업으로 상속케 하리라”고 말씀하셨다. ‘나라를 일으켜’라는 원문은 ‘그 땅을 세워’(KJV) 혹은 ‘그 땅을 회복시켜’(NASB, NIV)라는 뜻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을 회복시킨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황무하였던 땅을 회복시키시고 자기 백성에게 기업으로 주실 것이다. 사도행전 3:21에 보면, 사도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옛날부터 거룩한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하신 ‘만유를 회복하실 때’에 대해 언급하였다. 요한계시록 21장은,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해 증거하며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서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고 말씀하신 것을 증거한다(계 21:1, 5).
[9절] 내가 잡혀 있는 자에게 이르기를 나오라 하며 흑암에 있는 자에게 나타나라 하리라. 그들이 길에서 먹겠고 모든 자산에도 그들의 풀밭이 있을 것인즉.
본문은, “내가 잡혀 있는 자에게 이르기를 나오라 하며 흑암에 있는 자에게 나타나라 하리라. 그들이 길에서 먹겠고 모든 자산에도 그들의 풀밭이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잡혀 있는 자’와 ‘흑암에 있는 자’는 일차적으로 바벨론 포로생활을 하는 유다 백성을 가리키겠지만, 그것은 또한 죄와 사망과 마귀의 권세에 사로잡혀 있고, 무지와 죄와 불행에 빠져 있는 죄인들을 가리킬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나오라’ ‘나타나라’고 말씀하실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포로생활로부터 돌아올 것이며 하나님의 택한 모든 백성이 구원을 얻을 것이다.
또 그들은 길에서 먹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이 고국으로 돌아오는 길에서도 먹을 것이 부족하지 않게 하실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택한 모든 백성은 구원받아 천국을 향해 가며 세상을 사는 동안에 영육의 양식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이사야 55:1-2에서, 하나님께서는,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도,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말씀하셨고(요 4:14), 또한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고 하셨다(요 6:53-55).
또 본문은 “모든 자산에도 그들의 풀밭이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모든 ‘자산(赭山)’ 곧 벌거숭이 산, 황폐한 산에도 그들을 위한 풀밭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세상의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구원받은 자기 백성에게 먹을 양식을 주심을 보이는 것 같다.
[10절] 그들이 주리거나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며 더위와 볕이 그들을 상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을 긍휼히 여기는 자가 그들을 이끌되 샘물 근원으로 인도할 것임이니라.
본문은, “그들이 주리거나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며 더위와 볕이 그들을 상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을 긍휼히 여기는 자가 그들을 이끌되 샘물 근원으로 인도할 것임이니라”고 말한다.
‘더위와 볕’은 환난과 시험을 가리킬 것이다. ‘샘물 근원’은 성령을 가리킬 것이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라는 시편 23편의 시를 우리는 잘 안다(시 23:1-2). 또 요한계시록에 보면, “그가 나더러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저희가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할지니,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고 말하였다(계 7:14-17). 이것은 이사야의 예언의 성취이다.
[11절] 내가 나의 모든 산을 길로 삼고 나의 대로를 돋우리니.
본문은 또, “내가 나의 모든 산을 길로 삼고 나의 대로를 돋우리라”고 말한다. ‘산’은 인생의 어려운 문제들과 장애물들을 상징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든 어려움을 극복케 하시고 천국 가는 대로를 만드실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다(행 14:22). 그러나 우리는 환난 중에도 즐거워한다. 왜냐하면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알기 때문이다(롬 5:3-4). 오늘날 높은 산들을 가로질러 고속도로를 내듯이,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위해 천국 가는 대로를 내실 것이다.
[12절] 혹자는 원방에서, 혹자는 북방과 서방에서, 혹자는 시님 땅에서 오리라.
본문은 “혹자는 원방에서, 혹자는 북방과 서방에서, 혹자는 시님 땅에서 오리라”고 말한다. ‘시님’이라는 원어(시님)의 뜻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BDB). 첫째는 중국(China)이라는 견해이고(게세니우스, 델리취), 둘째는 스에네 사람들(이집트 남부 국경도시인 아스완 사람들)이라는 견해이다(NIV). 본문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온 세계에서 올 것을 예언한다. 본문은 세계복음화에 대해 예언한다. 요한계시록 7:9는,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옷을 입고 손에 종려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양 앞에 섰다”고 증거한다.
[13절] 하늘이여 노래하라. 땅이여 기뻐하라. 산들이여 즐거이 노래하라. 여호와가 그 백성을 위로하였은즉 그 고난당한 자를 긍휼히 여길 것임이니라.
선지자는, “하늘이여 노래하라. 땅이여 기뻐하라. 산들이여 즐거이 노래하라. 여호와가 그 백성을 위로하였은즉 그 고난당한 자를 긍휼히 여길 것임이니라”고 말한다. 주의 백성은 하나님의 구원과 회복을 인하여 하나님께 노래하며 기뻐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위로하셨고 그 고난당한 자들을 긍휼히 여기실 것이다.
본문이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의 시대가 왔음을 감사하자. 사도 요한은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고 말했다(요 1:17). 사도 바울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 말했다(고후 6:2). 신약시대가 바로 그 시대이다. 메시아께서 오셨다. 그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대속 사역을 이루셨다. 그는 우리의 의(義)와 영생이 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약시대를 감사하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자.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을 감사하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신 모든 은혜를 감사하자.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아보실 것을 믿자. 하나님께서는 길에서 우리를 먹이시고 모든 벌거숭이 산에 풀밭이 있게 하실 것이다. 그는 모든 산을 길로 만드실 것이다. 그는 구원받은 우리가 이 세상 사는 동안 우리의 영육의 필요를 공급해주실 것이다. 그는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해주셨다. 그는 우리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물, 우리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을 주셨다(요 4:14). 그것은 그의 영, 곧 성령을 가리킨다. 그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 되는 특권을 주셨다(요 1:12). 또 그는 우리에게 영생을 주셨다(요 5:24; 11:25-26).
그는 우리가 이 세상 사는 동안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도 주실 것이다. 주께서는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말씀하셨다(마 6:33). 또 그는 범사에 우리를 도우실 것이며 인도하실 것이다(롬 8:14). 주께서는 피흘려 사신 자기 백성을 결코 버리지 않으실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고 말한다(히 13:5). 또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실 것을 말한다(롬 8:28).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기뻐하고 찬송하자. 13절, “하늘이여, 노래하라. 땅이여, 기뻐하라. 산들이여, 즐거이 노래하라. 여호와가 그 백성을 위로하였은즉 그 고난당한 자를 긍휼히 여길 것임이니라.” 사도 바울은,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교훈하였다(엡 5:19-20). 또 히브리서는,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고 말한다(히 13:15).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항상 기뻐하고 찬송하자.
14-26절, 속히 돌아오리라
[14-16절]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 . . .
본장 앞부분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이 바벨론 포로 생활로부터 구원을 얻고 고국으로 돌아올 것에 대해 약속하셨다. 그러나 시온의 거민들 곧 예루살렘 거민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고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고 말하였다. 그들은 고난 중에 그렇게 느꼈다. 그것은 믿음 없는 반응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노라.” 여인이 그 젖먹는 아기를 잊지 않고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길 것이지만, 혹시 그들이 잊는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결코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잊지 않으실 것이라고 증거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그의 손바닥에 새겼고 그의 성벽을 항상 그 앞에 두었다고 말씀하셨다. 손바닥에 새겨진 것은 쉽게 또 일할 때마다 기억할 수 있다.
[17-18절] 네 자녀들은 속히 돌아오고 너를 헐며 . . . .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네 자녀들은 속히 돌아오고 너를 헐며 너를 황폐케 하던 자들은 너를 떠나가리라. 네 눈을 들어 사방을 보라. 그들이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나의 삶으로 맹세하노니 네가 반드시 그 모든 무리로 장식을 삼아 몸에 차며 띠기를 신부처럼 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이스라엘 백성은 속히 돌아올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확실히 그리고 속히 회복시키실 것이다. 그들을 멸망시켰던 자들은 그들을 떠나갈 것이다. 온 세계에 흩어졌던 자들이 다 돌아올 것이다. 그들은 몸의 장신구처럼 교회를 아름답게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나의 삶으로 맹세하노니”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이 예언이 확실함을 강조하셨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다 진리이다. 그러나 그가 맹세하시며 선언하신 말씀은 더욱 확실한 진리이다.
[19-21절] 대저 네 황폐하고 적막한 곳들과 네 파멸을 . . . .
회복된 이스라엘 자손들의 수는 많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대저 네 황폐하고 적막한 곳들과 네 파멸을 당하였던 땅이 이제는 거민이 많으므로 좁게 될 것이며 너를 삼켰던 자들이 멀리 떠날 것이니라. 고난 중에 낳은 자녀가 후일에 네 귀에 말하기를 이곳이 우리에게 좁으니 넓혀서 우리로 거처하게 하라 하리니 그때에 네 심중에 이르기를 누가 나를 위하여 이 무리를 낳았는고, 나는 자녀를 잃고 외로워졌으며 사로잡혔으며 유리하였거늘 이 무리를 누가 양육하였는고, 나는 홀로 되었거늘 이 무리는 어디서 생겼는고 하리라”고 말씀하셨다.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얻을 것이다. 그들의 거처는 좁게 될 것이다. 20절에 ‘고난 중에 낳은 자녀’라는 원어(베네 쉭쿨라이크)는 ‘무자(無子)할 때 낳은 자녀들’이라는 말로서 이스라엘이 멸망하고 포로 생활하는 동안에 낳은 자녀들이라는 뜻이다. 이스라엘에게 이렇게 많은 자녀들이 생긴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일일 것이다.
[22-23절] 나 주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열방을 향하여 . . . .
본문은, “나 주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열방을 향하여 나의 손을 들고 민족들을 향하여 나의 기호를 세울 것이라. 그들이 네 아들들을 품에 안고 네 딸들을 어깨에 메고 올 것이며 열왕은 네 양부가 되며 왕비들은 네 유모가 될 것이며 그들이 얼굴을 땅에 대고 네게 절하고 네 발의 티끌을 핥을 것이니 네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나를 바라는 자는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고 말한다.
본문은 이방나라들에 시온의 자녀들이 있을 것이며 이방나라들이 하나님의 자녀들을 품에 안고 올 것을 암시한다. 이것은 이방세계의 구원, 이방세계의 복음화를 암시한다. 이방 나라의 위정자들은 그들의 양부모와 같을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 교회 앞에 굴복케 될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교회를 존중할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섭리하시고 역사하신 결과이다. 하나님께서는 주권적 구원자이시다. 하나님을 바라는 자는 결코 수치를 당치 않을 것이다.
[24-26절] 용사의 빼앗은 것을 어떻게 도로 빼앗으며 . . . .
이러한 이스라엘의 회복과 세계적인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가능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용사의 빼앗은 것을 어떻게 도로 빼앗으며[노략물을 용사에게서 빼앗을 수 있으며] 승리자에게 사로잡힌 자를 어떻게 건져낼 수 있으랴마는[정당한 포로들을 구출할 수 있으랴마는]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용사의 포로도 빼앗을 것이요 강포자의 빼앗은 것도 건져낼 것이니 이는 내가 너를 대적하는 자를 대적하고 네 자녀를 구원할 것임이라. 내가 너를 학대하는 자로 자기의 고기를 먹게 하며 새 술에 취함같이 자기의 피에 취하게 하리니 모든 육체가 나 여호와는 네 구원자요 네 구속자요 야곱의 전능자인 줄 알리라”고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불가능한 일을 가능케 하실 것이다. 그는 이스라엘을 강대한 바벨론으로부터 건져내실 것이다. 그는, “이는 내가 너를 대적하는 자를 대적하고 네 자녀를 구원할 것임이라”고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을 학대하는 자들은 스스로 자기 고기를 먹고 자기 피를 마시는 것과 같이 스스로 멸망케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이스라엘의 원수들을 징벌하실 것이다. 모든 사람은 여호와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구원자시요 구속자시며 야곱의 전능자[용사]이심을 알게 될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우리의 구원이 오직 하나님의 긍휼로 말미암음을 알자. 하나님은 죄 많은 자기 백성을 잊지 않으시고 긍휼히 여기신다. 그는 그들을 그의 손바닥에 새기시고 기억하실 것이다. 구원은 우리의 의(義)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긍휼로 된다. 로마서 9:15-16은,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 말하고, 디모데후서 1:9는,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고 말한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세계복음화임을 알자.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온 세계에서 돌아올 것이다.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옷을 입고 손에 종려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양 앞에 서서 찬송할 것이다(계 7:9). 그러므로 주께서는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명하셨다(마 28:19).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이 충만한 구원임을 알자. 회복될 이스라엘 백성의 수효는 그 거처가 좁을 정도로 많을 것이다. 육신적 이스라엘의 거절로 구원이 이방에 전달되어 수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았고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온 후에는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을 것이다(롬 11:11-12; 25-26). 에베소서 1:23은,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고 말한다.
넷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이 주권적 구원임을 알자. 이스라엘의 회복은 이성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처럼 인류의 구원은 이성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구원은 하나님께 있다. 하나님은 구주이시다. 그가 그의 뜻 가운데 자기 백성을 다 불러내실 것이다. 우리는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다(엡 1:11).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만 바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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