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은총, 최대의 저주 사7:10-14, 눅1:46-56
어느 부흥회 때 그곳에 참석했던 한 부인의 간증입니다. 그 부인은 국가 고위공무원의 부인인데 얼굴도 잘 생기고 경제적으로 부유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잘 생긴 얼굴을 더 아름답게 하고 싶은 욕망에 성형수술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수술이 잘못되어 얼굴이 이상하게 변해버려 거울을 보지도 못하고 매일 울면서 지냈습니다. 나중에는 살 의욕까지 잃었는데, 마침 어느 부흥회에 참석 하자는 권유를 받고 그곳에 참석했다가 주님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이 부인은 믿음이 자라 신앙생활에 열심이었고 개척교회들을 도와주며 전도를 충성스럽게 하고 있다면서 덧붙여 하는 말이 자기가 그때 얼굴에 화장이나 하면서 자신을 다듬는데 시간을 보내면서 평안하게 지냈다면 지옥 갈 뻔 했는데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를 알게 되니 신앙생활도 열심히 하고, 전도도 열심히 하고 있다는 간증을 하면서 그 때에 그렇게 된 것이 결국은 하나님의 인도요 섭리였다는 고백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세상 자랑과 연락에 빠져 사는 삶은 사람들이 보기에는 부럽고 화려하게 보일지 몰라도 실상은 하나님께 외면을 받고 심판과 영원한 형벌에 처할 수밖에 없는 최대의 저주 가운데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모든 것을 잃게 되어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은 최고의 은총 가운데 사는 사람입니다. 오늘 대강절 두 번째 주일을 맞아 두 본문을 중심으로 “최고의 은총, 최대의 저주”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하나님께서 주신 최고의 은총은 임마누엘의 은총입니다.
구약 본문 사7:14에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했습니다. 이는 장차 메시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예수님의 다른 이름입니다. 본문의 배경은 당시 강국인 아람이 북방 이스라엘과 연합하여 남방 유다를 공격하여 왔을 때 유다는 이들을 대항할 힘이 없었습니다. 그 전쟁에서 남방 유다가 이길 가능성은 전혀 없었습니다. 다급하고 어려운 상황에 처한 이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주시는 말씀이 “임마누엘”입니다. 그 뜻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함께 계시면 대적이 아무리 많고 강대해도 능히 이길 수 있기에 두려울 것이 없는 것입니다. 이 예언이 주전8-7세기에 주어진 겁니다.
이 예언대로 오신 사건을 신약 누가복음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바로 그 처녀가 마리아입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를 찾아와 처녀의 몸으로 수태하게 될 것이라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눅1:31에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했습니다. 이 예수의 다른 이름이 “임마누엘”입니다. 따라서 이 예언이 유다에게 주시는 위로만이 아니라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놀라운 위로와 축복의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나와 함께 계신 것, 그것만으로도 축복입니다. 예수께서 함께 계신 곳에는 문제가 해결됩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손길이 닿을 때 질병의 치유가 있었습니다. 모자란 곳은 풍성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 계신 곳에는 죽음도 생명으로 바뀌어졌습니다. 창세기39:2에 보면 ‘요셉이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형통한 자가 되어’ 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주님이 함께 하면 형통한 자가 됩니다. 가정이 형통합니다. 자녀들이 형통합니다.
어려운 시련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제자들이 갈릴리 바다를 건너갈 때에 풍랑이 일어납니다. 그들은 과거 이 자리에서 고기를 잡던 어부 출신들입니다. 그러나 풍랑에는 자기들의 경험도 통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어찌 할 줄 모르고 두려워 하다가 배 고물에서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웁니다. 주님의 명령 한마디에 바다는 잔잔하여졌다고 하였습니다. 주님이 함께 하시면 문제가 해결 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도 우리의 문제를 주님께 아뢸 때 문제에서 해방을 받을 수 있습니다.
어느 가정에서 고등학교 2학년 다니는 딸이 부모 말을 듣지 않고 말썽을 부렸습니다. 학교도 제대로 가지 않고, 불량 친구들하고 어울려 놀러 다니며, 밤늦게 집에 들어왔습니다. 부모가 야단을 쳐도 아무 소용이 없어서 고민하다가 두 부부가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어떻게 하나요? 우리 딸이 다시 좋은 아이로 돌아오는 길이 없을까요?" 간절히 기도하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마음속에 들렸습니다. "딸 때문에 안타깝지? 그런데 네가 말을 듣지 않았을 때 내 심정은 어떠했겠느냐?" 딸을 위해 기도하는데 이상하게 자기가 말씀대로 살지 못한 것이 깨달아졌습니다. 그리고 자기를 향한 하나님의 인내하심을 생각하니까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꼈고, 자기도 딸에게 그렇게 인내하면 언젠가 무사히 딸이 돌아온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어느 날 밤늦게 갑자기 전화 벨소리가 울리는데 불길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받아보니 병원 응급실에서 온 전화였습니다. 딸이 병원에 있으니 오라는 전화였습니다. 딸이 친구 셋과 함께 택시를 타고 가다가 택시가 전신주와 충돌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병원 응급실로 갔습니다. 모두 피투성이가 되어있었습니다. 그런데 운전석 옆에 앉았던 딸만 약간의 찰과상만 입고 얼굴이 하얗게 질려있었습니다. 그 때 두 부부는 하나님께 깊이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가장 위험한 곳에 앉았던 딸을 지켜주신 그 깊은 사랑을 잊지 않겠습니다." 2주일간 딸이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이들은 깊은 가족 간의 사랑을 회복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면 우리의 행복을 막는 그 무엇도 반드시 풀리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깊은 사랑의 관계가 회복이 되기를 간구해야 합니다. 주님과의 임마누엘 사랑의 관계 가운데 있을 때 어떤 문제도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주님의 은총으로 모든 것을 넉넉히 이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임마누엘의 은총 가운데 살기를 소망합니다.
2.인생의 최대의 저주는 하나님께로부터 외면당하는 것입니다.
임마누엘이 최고의 은총이라면 하나님에게서 떠난 사람,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이가봇”이 되는 것은 인생 최대의 비극입니다. 사무엘상 4:21에 “이르기를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 하고 아이 이름을 이가봇이라 하였으니 하나님의 궤가 빼앗겼고 그의 시아버지와 남편이 죽었기 때문이며”했습니다.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께 대한 신앙이 없어 회막에 수종드는 여자를 욕보이고,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도 멸시 하다가 하나님께로부터 버림을 받고 외면을 당하여 “이가봇”이 되고 말았습니다.
구약 본문의 배경을 보면 북방 이스라엘의 베가 라는 왕이 아람 왕 르신과 연합하여 남쪽으로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듣고 유다 왕 아하스가 얼마나 놀랐는지 사시나무 떨듯이 떨었습니다. 그야말로 국가의 존패가 달린 총체적인 위기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바로 이때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두려움에 떨고 있는 아하스 왕에게 보내십니다. 이사야 선지가가 하나님께로부터 말씀을 받아 아하스 왕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아람왕 르신과 이스라엘 왕 베가의 공격으로 인하여 걱정하지 말라 이 사람들이 너희들을 치러 오지만 그들은 절대로 성공하지 못한다. 너희는 패하지 않는다. 내가 너희를 반드시 지켜 줄 것이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라, 그것을 확인하고 싶거든 하나님 앞에 징조를 구해라".
그 때 유다의 아하스 왕이 징조를 구하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할 마음이 없었습니다. '해보나마나 안 될 것이니 구하지 않겠다.'는 불신의 표현입니다. 그러기에 징조를 구하지 않겠다는 아하스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서 진노하십니다. '내 말을 안 믿겠다는 거냐? 좋다, 그럼 내가 징조를 보여 주마' 하시면서 주어진 약속이 이사야 7장 14절의 말씀입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7:14) 는 말씀입니다.
불신앙의 마음에는 임마누엘의 은총이 주어질 수 없습니다. 주님을 불신하고 신앙에서 떠날 때 “이가봇”이 되고, 주님을 떠나 세상 모든 것들을 다 소유하고 살아도 주님을 떠나는 그 순간 실패한 인생이 되고, 저주 받은 인생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한 젊은 의사가 몽블랑 정상을 정복하고자 하여 마침내 성공 했습니다. 그리하여 조그만 마을은 그를 축하하느라 밝게 빛났으며 산꼭대기에는 그의 승리를 알리는 깃발이 휘날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캠프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산을 오른 후, 내려오던 중에 안내자로부터 벗어나기를 원했습니다. 로프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어 혼자 가기를 주장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안내인은 극구 만류했지만. 기어이 그는 로프에 대해 싫증을 느끼고 자유로워지기를 선언했습니다. 마침내 그의 고집으로 안내인은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얼마 가지 않아서 젊은이는 발이 얼음에서 미끄러졌는데, 얼음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자신을 막을 길이 없었습니다. 로프가 없었으므로 안내인이 그를 붙잡아서 다시 끌어당길 수도 없었습니다. 벼랑 밑의 얼음 위에는 그 젊은 의사의 시체가 놓여 있었습니다. 종이 울리고 마을 전체가 그의 성공을 축하하며 기뻐하였지만 불행히도 결정적인 순간에 로프가 싫어서 안내받기를 거절한 것입니다.
젊은이가 로프에 싫증을 느끼듯 하나님의 사랑의 섭리가 우리를 인도하고, 때로 붙잡고 막으실 때, 우리는 이에 대해 싫증을 느끼면서 그 간섭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을 가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무사히 하늘 본향에 이를 때까지 길이요, 진리요, 생명 되시는 주님의 안내가 절대로 필요합니다. 절대로 바른 믿음의 길에서 떠나지 않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3.임마누엘의 은총을 받은 자의 모습은 어떠할까요?
2천 여 년 전에 성탄하신 예수님은 오늘 우리의 마음 가운데 오셔서 임마누엘의 은총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예수께서 세상에 오실 때 마리아의 몸을 빌려 오셨습니다.
*마리아는 순결한 여자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고 택함을 받아 예수님이 세상에 탄생하는데 특별한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 주변에는 추하게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너무나 방탕하게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거룩하게 순결하게 살아야 합니다. 순결한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습니다. 주님의 십자가 보혈의 은총을 믿고 회개하여 더럽고 추한 마음과 행실을 버리고 성결한 마음을 가질 때 임마누엘의 은총이 임합니다.
*다음에 마리아는 순종의 사람이었습니다.
천사가 마리아에게 예수님을 잉태하게 되리라는 놀라운 소식을 전했을 때 마리아는 아주 감동적으로 응답하기를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나에게 이루어지이다." 라고 했습니다. 그녀는 사람들로부터 어떤 오해를 받고, 불이익을 당하는 일이 있어도 주께서 나에게 무엇을 원하시든지 간에 그 일에 순종하겠다는 자세입니다. 순종하면서 이렇게 주님을 찬양합니다.
눅1:46-48에 “마리아가 이르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이처럼 주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게 임마누엘의 은총이 임합니다.
*그리고 마리아는 하나님의 뜻을 마음에 간직하고 깊이 생각하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눅 2:19에 보면 마리아는 자기에게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들을 마음에 깊이 생각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천사가 전해주는 말을 다 듣고 그 말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였고, 엘리사벳을 만나고 나서는 자기가 하나님께서 쓰시는 도구로 선택되었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모든 암시들을 깊이 생각하였고, 예수님이 탄생하신 후 동방 박사들이 찾아와 경배할 때도, 목자들이 아기 예수님을 방문하기 위해 와서 들에 천사들이 나타나고 찬양했던 놀라운 사실을 다 말해 주었을 때에도, 유월절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왔다가 잃은 예수님을 찾아 성전에서 만나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것을 알지 못하셨느냐”는 주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등 등, 이 모든 일들을 깊이 생각하고 마음에 간직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길을 따르고자 하는 겸손하고 신실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자들에게 임마누엘의 은총이 임합니다. 그리고 내 심령에 임마누엘의 은총이 임하게 되면 하나님의 은혜로 심령이 변화되고, 가치관이 변화 되고, 삶의 자세가 바뀌어 집니다.
흑인 운동가 중에 말콤 엑스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이 분은 흑인 문학 베스트셀러 작가였습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자기가 흑인이라는 사실에 상당한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거울을 보면서 자기 검은 얼굴을 볼 때마다 비관하였습니다. 자기가 자기를 비관하고 부모를 원망하기도 하였습니다. “왜 나는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싫어하는 검은 사람이 되었는가?” 하루는 세수 비누로 하루 종일 검을 얼굴을 닦아 보기도 하였습니다. 얼굴을 희게 하여 보려고 무진장 노력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허사였습니다. 아무리 닦고 닦아도 검은 피부는 희어지지 않았습니다. 비관하기도 하였습니다. 집안에 들어 앉아 아예 두문불출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예수를 영접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 때부터 자기를 보는 눈이 달라졌습니다. 자기 자신이 하나님의 무한한 값진 창조물이라는 사실이 깨달아졌습니다. 그가 은혜를 받고 한 말이 있습니다. “검은 것이 아름답다.”(Black is beautiful) 이유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한 창조물은 모두가 아름다운 것이다. 검은 피부도 하나님이 창조하셨으니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그는 처음으로 자유 함을 얻었습니다. 하늘을 나는 것처럼 기뻤습니다. 어깨에 두 날개를 단 것처럼 홀가분한 기분이었습니다. 그는 그 동안 자기의 아팠던 경험을 되새기면서 글을 썼습니다. 그 글이 일약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그에게 외부적으로는 하나도 바뀐 것이 없었습니다. 꼭 하나 달라진 것은 그가 하나님의 은혜 받은 것 하나 달라졌습니다. 은혜를 받고 보면 자기가 자기를 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나를 받아드리는 은혜, 나를 용납하는 은혜가 달라집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고 하나님의 유일한 창조물이다”라고 믿어지는 순간 만사가 변하는 이 모습이 임마누엘의 은총 안에 있는 자의 모습입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합니다.
1.하나님께서 주신 최고의 은총은 임마누엘의 은총입니다.
2.인생의 최대의 저주는 하나님께로부터 외면당하는 것입니다.
3.임마누엘의 은총을 받은 자의 모습은 어떠할까요? *순결한 사람, *순종의 사람, *하나님의 뜻을 마음 깊이 간직하고 믿음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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