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30장: 이스라엘의 패역과 하나님의 은혜
1-17절, 이스라엘의 패역
[1-2절]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화 있을진저 패역한 자식들이여. . . .
1-2절에서 선지자는,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화 있을진저 패역한 자식들이여. 그들이 계교를 베푸나 나로 말미암아 하지 아니하며 맹약을 맺으나 나의 신으로 말미암아 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패역한 자식들’이라고 부르셨다. ‘패역한’이라는 원어(소르림)는 ‘완고한, 반역적인’이라는 뜻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고 거역하는 자들이었다. ‘계교를 베푼다’는 말은 ‘의논한다’는 뜻이다. ‘맹약’이라는 원어(맛세카)는 ‘덮개’(Vg, KJV) 혹은 ‘맹약(盟約)’(LXX, NASB, NIV)이라는 뜻이다. ‘덮개를 덮는다’는 뜻이라면 환난의 위험을 덮는다는 뜻일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의 영의 감동 가운데 환난에 대처할 방법을 의논하거나 외국과 조약을 맺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 없이 행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또, “그들이 바로의 세력 안에서 스스로 강하려 하며 애굽의 그늘에 피하려 하여 애굽으로 내려갔으되 나의 입에 묻지 아니하였으니 죄에 죄를 더하도다”라고 말씀하신다. 그들은 하나님께 묻지 않고 애굽 왕 바로의 세력을 의지하고 애굽의 그늘에 피하려고 하였다. 그들은 어려운 현실 속에서 하나님께 기도하거나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지 않고 오직 인간적인 방책을 구하였던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섬기는 자들의 바른 태도가 아니었다. 그것은 죄에 죄를 더하는 일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패역한 그들에게 “화 있을진저 패역한 자식들이여”라고 선언하신 것이다.
[3-5절] 그러므로 바로의 세력이 너희의 수치가 되며 . . . .
3-5절에서 하나님께서는, “그러므로 바로의 세력이 너희의 수치가 되며 애굽의 그늘에 피함이 너희의 수욕이 될 것이라. 그 방백들이 소안에 있고 그 사신들이 하네스에 이르렀으나 그들이 다 자기를 유익하게 못하는 민족을 인하여 수치를 당하리니 그 민족이 돕지도 못하며 유익하게도 못하고 수치가 되게 하며 수욕이 되게 할 뿐임이니라”고 말씀하신다. 소안은 애굽의 옛 수도 라암셋을 가리킨다(출 12:37). 그들이 의지한 애굽 왕 바로의 세력은 그들에게 수치와 수욕이 될 것이다. 애굽은 그들에게 아무런 도움과 유익을 주지 못할 것이다.
[6-7절] 남방 짐승에 관한 경고라. 사신들이 그 재물을 어린 나귀 등에 싣고 그 보물을 약대 제물 안장에 얹고 . . . .
6-7절에서 선지자는, “남방 짐승에 관한 경고라. 사신들이 그 재물을 어린 나귀 등에 싣고 그 보물을 약대 제물 안장에 얹고 암사자와 수사자와 독사와 및 날아다니는 불뱀이 나오는 위험하고 곤고한 땅을 지나 자기에게 무익한 민족에게로 갔으나 애굽의 도움이 헛되고 무익하니라. 그러므로 내가 애굽을 가만히 앉은 라합이라 일컬었느니라”고 말한다. 6절에 ‘남방 짐승에 관한 경고’라는 원어(맛사 바하모스 네게브)는 문자적으로는 ‘남방의 혹은 남방으로 가는 짐승들의 무거운 짐’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무거운 짐’이라는 원어(맛사)는 이사야서에서 ‘경고, 하나님의 말씀(oracle)’이라는 뜻으로 자주 사용되었다(사 13:1; 15:1; 17:1 등). 본문은 문맥적으로 ‘남방으로 가는 짐승들의 무거운 짐’이라는 뜻도 되고, ‘남방으로 가는 짐승들에 대한 경고’라는 뜻도 되는 것 같다. 여기에 ‘남방’은 애굽을 가리킬 것이다(단 11장). 본문은 유대의 지도자들이 어린 나귀 등에 많은 보물을 싣고 광야를 지나 애굽에 내려가 도움을 청하였으나 그들의 수고는 헛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애굽은 가만히 앉은 라합이 될 것이다. ‘라합’(bh'r)은 ‘바다짐승’을 가리킨다.
[8-9절] 이제 가서 백성 앞에서 서판에 기록하며 책에 써서 . . . .
8절에서 선지자는, “이제 가서 백성 앞에서 서판에 기록하며 책에 써서 후세에 영영히 있게 하라”고 말한다. 책의 필요성과 유용성이 여기에 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성경에 쓰게 하셔서 후대의 사람들이 이 책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배우게 하셨다.
9절에서 선지자는, “대저 이는 패역한 백성이요 거짓말하는 자식이요 여호와의 법을 듣기 싫어하는 자식이라”고 말한다. 이스라엘 백성의 심령은 심히 부패되어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았다. 그들의 마음은 비뚤어져 있었고 반역적이었다. 그들은 거짓말을 잘하는 자들이며 하나님의 법을 듣기 싫어하는 자들이었다.
[10-11절] 그들이 선견자에게 이르기를 선견하지 말라. . . .
10-11절에서 선지자는 또, “그들이 선견자에게 이르기를 선견하지 말라. 선지자에게 이르기를 우리에게 정직한 것을 보이지 말라. 부드러운 말을 하라. 거짓된 것을 보이라. 너희는 정로(正路)를 버리며 첩경에서 돌이키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로 우리 앞에서 떠나시게 하라 하는도다”라고 말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선지자와 선견자, 즉 하나님께서 보내시고 세우신 설교자에게 하나님의 바른 말씀을 전하지 말라고 말하며 정직한 말을 하지 말고 부드러운 말, 즉 그들의 귀에 듣기 좋은 말, 아첨하는 말을 하라고 요구하였다. 또 그들은 거짓된 것을 보이라고 말하였다. 그들은 또 선지자에게 정로(正路) 즉 바른 길, 바른 노선을 버리라고 말하며 하나님을 그들 앞에서 떠나시게 하라고 말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바른 말씀을 듣기 싫어하였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 백성은 설교자의 설교내용까지 간섭하고 비평하고 판단하고 반대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 앞에 대단히 큰 죄악이었다.
[12-14절] 이러므로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가 말씀하시되 너희가 이 말을 업신여기고 압박과 허망을 믿어 그것에 의뢰하니 . . . .
12-14절에서 선지자는, “이러므로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가 말씀하시되 너희가 이 말을 업신여기고 압박과 허망을 믿어 그것에 의뢰하니 이 죄악이 너희로 마치 무너지게 된 높은 담이 불쑥 나와 경각간에 홀연히 무너짐 같게 하리라 하셨은즉 그가 이 나라를 훼파하시되 토기장이가 그릇을 훼파함같이 아낌이 없이 파쇄하시리니 그 조각 중에서, 아궁이에서 불을 취하거나 물웅덩이에서 물을 뜰 것도 얻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다. 12절에 ‘허망’이라는 원어(날로즈)는 ‘간교함’이라는 뜻이다(BDB, NASB).
이스라엘 백성은 선지자를 통해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도리어 압박과 간교함을 믿고 의지하였기 때문에 갑자기 멸망이 그들에게 임할 것이다. 그것은 마치 높은 담이 갑자기 불쑥 나와 순식간에 무너짐과 같고, 토기장이가 그릇을 아낌없이 부숨과 같을 것이다. 그러나 얼마나 철저히 부서졌는지 깨진 조각 중에 아궁이에서 불을 취하거나 물웅덩이에서 물을 뜰 만한 조각도 없을 것이다.
[15절] 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가 말씀하시되 너희가 돌이켜 안연히 처하여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 . . .
15절에서 선지자는, “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가 말씀하시되 너희가 돌이켜 안연히 처하여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어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여러 번 기회를 주셨고, 그들에게 죄에서 돌이키고 조용히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말씀하셨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요청을 거절하였고 그의 경고를 무시하였다.
[16-17절] 이르기를 아니라 우리가 말 타고 도망하리라 한 고로 . . . .
16-17절에서 선지자는, “[그들이] 이르기를 아니라 우리가 말 타고 도망하리라 한 고로 너희가 도망할 것이요 또 이르기를 우리가 빠른 짐승을 타리라 한 고로 너희를 쫓는 자가 빠르리니 한 사람이 꾸짖은즉 천 사람이 도망하겠고 다섯이 꾸짖은즉 너희가 다 도망하고 너희 남은 자는 겨우 산꼭대기의 깃대 같겠고 영 위의 기호 같으리라 하셨느니라”고 말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이 말한 대로 급히 도망할 것이며 다 뿔뿔이 흩어져 남은 자가 산꼭대기의 깃발같이 될 것이다.
본문에서 얻는 하나님의 진리는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사람이나 세상의 것들을 의지하지 말자.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 왕 바로와 그의 힘을 의지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헛되고 무익한 일이었다. 성경은 우리에게 사람을 의지하지 말라고 말하며(사 2:22) 또 은금을 의지하지 말라고 말한다(잠 11:4; 겔 7:19; 습 1:18). 그것들은 우리에게 완전한 도움이 되지 못하며, 어떤 때는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헛되게 하시면 그것들은 언제나 헛된 것이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들이나 세상 것들을 의지하지 말자.
둘째로, 우리는 패역하지 말자. 이스라엘 백성은 패역하였다. 그들의 마음은 비뚤어져 있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불순종하였다. 그들은 하나님 없이 무슨 일을 의논하고 계획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법을 듣기 싫어하였고 선지자에게 정직한 것을 보이지 말고 부드러운 말을 하며 정로를 버리며 하나님을 그들 앞에서 떠나시게 하라고 요구하였다. 그들은 악하고 패역한 자들이었다. 우리는 패역하지 말자.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만 의지하고 그의 말씀을 순종하자.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잠잠히 하나님만 의지하고 그의 법을 좋아하고 바른 말씀, 곧 인생의 정로를 걷기를 원하신다. 우리는 늘 하나님 앞에서 살며 그의 말씀인 성경책을 주야로 읽고 묵상하며 실천해야 한다. 건강 문제, 경제 문제 등 세상에 만가지 시험과 환난이 있어도 늘 회개하며 하나님만 의지하고 그의 말씀만 붙들고 행하면, 우리는 항상 승리할 것이다.
18-33절, 하나님의 긍휼하심
본장 앞부분에서 이스라엘의 패역과 하나님의 심판을 선언한 선지자는 본문에서 대조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에 대해 예언한다.
[18-19절]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 . . .
18-19절에서 선지자는 말한다. “그러나(라켄)[‘그러므로’(KJV, NASB)]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공의(미쉬파트)[혹은 ‘심판’(KJV)]의 하나님이심이라. 무릇 그를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온에 거하며 예루살렘에 거하는 백성아[‘이는 백성이 시온에, 예루살렘에 거할 것임이니라’(MT, KJV)], 너는 다시 통곡하지 않을 것이라. 그가 너의 부르짖는 소리를 인하여 네게 은혜를 베푸시되 들으실 때에 네게 응답하시리라.”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이 경고되어 있으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회개를 기다리신다. 하나님의 심판은 공의를 시행하시는 것이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다. 심판은 하나님의 본심이 아니다. 예레미야 애가 3:33는,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다(18절). 시온에서 추방되었던 그 백성이 다시 시온에 거하게 되고 통곡하던 백성이 다시는 통곡하지 않는 자들이 될 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고난 중에서 회개하며 부르짖는 소리를 하나님께서 들으셨기 때문이다.
[20-22절] 주께서 너희에게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을 주시나 . . . .
20-22절에서 선지자는 또 말한다. “주께서 너희에게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을 주시나 네 스승은 다시 숨기지 아니하시리니 네 눈이 네 스승을 볼 것이며 너희가 우편으로 치우치든지 좌편으로 치우치든지 네 뒤에서 말소리가 네 귀에 들려 이르기를 이것이 정로(正路)니 너희는 이리로 행하라 할 것이며 또 너희가 너희 조각한 우상에 입힌 은과 부어만든 우상에 올린 금을 더럽게 하여 불결한 물건을 던짐같이 던지며 이르기를 나가라고 하리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시는 은혜는 본문에 두 가지로 증거되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참 스승들, 곧 참 선지자들을 끝까지 주실 것이다.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것이 정로(正路) 곧 바른 길, 바른 노선이다”라고 외칠 것이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모든 금은 우상들을 버리게 하실 것이다. 그들의 죄는 우상숭배의 죄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의 회복은 경건의 회복 곧 모든 우상을 버리고 살아계신 참 하나님께로 돌아와 그 분만 섬기는 것이다. 순수한 경건의 회복은 구원의 본질이다.
[23-26절] 네가 땅에 뿌린 종자에 주께서 비를 주사 땅 소산의 곡식으로 살찌고 풍성케 하실 것이며 그 날에 너의 가축이 광활한 목장에서 . . . .
23-26절에서 선지자는 또 말한다. “네가 땅에 뿌린 종자에 주께서 비를 주사 땅 소산의 곡식으로 살찌고 풍성케 하실 것이며 그 날에 너의 가축이 광활한 목장에서 먹을 것이요 밭가는 소와 어린 나귀도 키와 육지창으로 까부르고 맛있게 한 먹이를 먹을 것이며 크게 살륙하는 날 망대가 무너질 때에 각 고산(高山), 각 준령(峻嶺)에 개울과 시냇물이 흐를 것이며 여호와께서 그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칠 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
선지자는 회복된 이스라엘의 모습을 본문에서 물질적 풍요로움으로 묘사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적절한 비를 주셔서 그들에게 추수할 곡식과 양식이 풍성케 하실 것이다. 밭가는 소와 나귀까지도 겨를 까부른 곡식을 먹을 것이다. 24절에 ‘맛있게 한 먹이’라는 원어(베릴 카미츠)는 ‘소금으로 간을 한 여물’이라는 뜻이다. “달짝지근한 여물은 약대들에게 빵과 같고 간을 한 여물은 과자와 같다”는 아랍 속담이 있다고 한다. 또 앗수르와 바벨론이 멸망하는 날, 곧 그 망대들이 무너질 때, 높은 산들과 언덕들에도 시냇물들이 흘러 땅들이 비옥해질 것이라고 말한다. 또 선지자는 회복된 이스라엘 땅을 달빛이 햇빛 같고 햇빛은 일곱 배나 밝은 빛이 될 것이라고 묘사한다. 그것은 장차 이루어질 새 하늘과 새 땅의 영광을 가리키는 것 같다(계 21:23).
[27-29절] 보라 여호와의 이름이 원방에서부터 오되 . . . .
27절 이하에서 선지자는 앗수르에 대한 심판을 예언한다. 앗수르와 바벨론에 대한 심판은 이스라엘에게 구원과 회복이 될 것이다. 앗수르 왕과 바벨론 왕은 사탄의 표상이다. 악의 세력들의 배후에는 사탄이 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하나님께서는 사탄과 악의 세력들을 다 멸하실 것이며, 택한 백성을 위해 새 세계를 주실 것이다.
27-29절에서 선지자는 말하기를, “보라 여호와의 이름이 원방에서부터 오되 그의 진노가 불붙듯하며 빽빽한 연기가 일어나듯하며 그 입술에는 분노가 찼으며 그 혀는 맹렬한 불 같으며 그 호흡은 마치 창일하여 목에까지 미치는 하수 같은즉 그가 멸하는 키로 열방을 까부르며 미혹되게 하는 자갈을 여러 민족의 입에 먹이시리니 너희가 거룩한 절기를 지키는 밤에와 같이 노래할 것이며 저를 불며 여호와의 산으로 가서 이스라엘의 반석에게로 나아가는 자같이 마음에 즐거워할 것이라”고 한다. 28절의 ‘자갈’은 ‘재갈’이라고 표기해야 한다.
본문은 앗수르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묘사한다. 여호와의 이름이 원방에서부터 온다는 표현은 장소적으로도 멀리, 파사로부터 아니 하늘로부터이며, 시간적으로도 멀리, 아직 상당한 후의 일임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붙듯하시며 빽빽한 연기가 일어나듯하실 것이다. 그 입술에는 분노가 차셨고 그 혀는 태워 삼키는 불 같으실 것이다. 그는 멸하는 키로 열방을 까부르실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거룩한 절기를 지키는 밤에와 같이 노래하며 저[피리]를 불 것이며 여호와의 산으로 가서 이스라엘의 반석 되신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자같이 마음에 즐거워할 것이다. 앗수르의 멸망은 이스라엘에게 기쁨과 구원과 해방이 될 것이다. 궁극적으로 사탄의 멸망은 성도들에게 기쁨과 평안이 될 것이다. 그때 성도들은 기뻐하며 노래할 것이다.
[30-33절] 여호와께서 그 장엄한 목소리를 듣게 하시며 혁혁한 진노로 그 팔의 치심을 보이시되 맹렬한 화염과 폭풍과 폭우와 우박으로 . . . .
30-33절에서 선지자는 또 말한다. “여호와께서 그 장엄한 목소리를 듣게 하시며 혁혁한 진노로 그 팔의 치심을 보이시되 맹렬한 화염과 폭풍과 폭우와 우박으로 하시리니 여호와의 목소리에 앗수르가 낙담할 것이며 주께서는 막대기로 치실 것인데 여호와께서 예정하신 몽둥이를 앗수르 위에 더하실 때마다 소고를 치며 수금을 탈 것이며 그는 전쟁 때에 팔을 들어 그들을 치시리라. 대저 도벳은 이미 설립되었고 또 왕을 위하여 예비된 것이라. 깊고 넓게 하였고 거기 불과 많은 나무가 있은즉 여호와의 호흡이 유황 개천 같아서 이를 사르시리라.”
하나님의 진노는 장엄한 목소리, 혁혁한 진노, 그 팔의 치심, 맹렬한, 태워 삼키는 불, 폭풍과 폭우와 우박 등으로 묘사되신다. 여호와의 목소리에 앗수르가 낙담할 것이라고 ‘앗수르’를 구체적으로 언급한다. 앗수르에 대한 심판은 ‘예정하신 몽둥이’ 곧 ‘예정하신 형벌의 몽둥이’(BDB)로 치시는 것이라고 말한다.
33절의 ‘도벳’은 ‘힌놈의 아들들의 골짜기’라는 곳으로 우상숭배자들이 자기 아들들을 몰렉에게 제물로 불태워 바친 가증한 곳이었다. 그곳은 지옥을 상징하였다. 본문은 도벳이 이미 설립되었다고 말한다. 지옥은 만세 전에 작정된 곳이다. 그곳은 앗수르 왕을 위해 예비된 곳이다. 앗수르 왕은 사탄의 표상이다. 그곳은 깊고 넓은 곳이다. 지옥은 깊고 넓은 장소이다. 거기에 불과 많은 나무가 있고 여호와의 호흡은 유황 개천 같아서 그것을 사를 것이다. 지옥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영원한 형벌의 장소이다. 예수께서는 ‘지옥 꺼지지 않는 불’에 대해 밝히 말씀하셨고, 또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고 말씀하셨다(막 9:43-48[전통본문]).
18-33절에서 얻는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다리며 오직 정로(正路)로 행하자.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지만 또한 은혜의 하나님이시다. 무릇 그를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다(18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을 주셨으나 정로를 지시하는 스승도 끝까지 주셨다(20-21절). 우리는 하나님만 바라며 성경말씀 안에서 바른 길, 바른 노선을 붙들고 오직 그 길로만 가자.
둘째로, 우리는 모든 우상을 버리자. 구약교회의 가장 큰 죄악은 우상숭배이었다. 구원은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 오직 그를 섬기는 것이다. 장차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이스라엘은 그들이 조각한 우상에 입힌 은과 부어만든 우상에 올린 금을 더럽게 하여 불결한 물건을 던짐같이 던질 것이다(22절). 우리는 하나님보다 더 가치 있게 여기는 것들이나 또는 하나님처럼 가치 있게 여기는 것들을 다 버리자. 우리는 돈이라는 우상, 쾌락이라는 우상, 자기라는 우상을 다 버리자.
셋째로, 우리는 외적 여건, 곧 육신적, 물질적, 환경적 여건을 염려치 말자. 하나님께서는 회복될 이스라엘에게 적절한 비와 풍성한 소산을 주실 것이다(23-24절). 우리는 육신적 건강, 물질적 여유, 환경적 평안 등을 염려할 것이 없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마 6:33).
넷째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진노를 두려워하자. 본문은 하나님의 공의의 진노에 대해 여전히 증거한다. 앗수르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이스라엘에게 구원과 회복과 기쁨이 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 자체는 참으로 두려운 것이다. 그것은 역사상 노아 홍수 심판, 소돔과 고모라 심판 등에서 이미 증거되었다.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과 지옥 형벌은 여전히 남아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를 두려워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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