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28장: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
1-13절, 에브라임의 술 취함과 교만
본문은 북쪽 이스라엘의 술 취함과 교만에 대해 증거한다.
[1절] 취한 자 에브라임의 교만한 면류관이여, 화 있을진저. 술에 빠진 자의 성 곧 영화로운 관같이 기름진 골짜기 꼭대기에 세운 성이여, 쇠잔해가는 꽃 같으니 화 있을진저.
선지자는, “취한 자 에브라임의 교만한 면류관이여, 화 있을진저. 술에 빠진 자의 성 곧 영화로운 관같이 기름진 골짜기 꼭대기에 세운 성이여, 쇠잔해가는 꽃 같으니 화 있을진저”라고 말한다. 에브라임은 북쪽 이스라엘 나라를 가리킨다. 본문은 북쪽 이스라엘을 ‘면류관,’ ‘영화로운 관,’ ‘기름진 골짜기 꼭대기에 세운 성’이라고 묘사한다. 그 나라는 상당한 물질적 부요와 권세와 영광을 누리고 있었다.
그러나 본문은 그 나라를 또한 ‘취한 자,’ ‘교만한 자’라고 증거한다. 그것은 그 나라가 술 취하고 교만했음을 나타낸다. 그 나라의 위정자들이나 백성이 다 술에 취해 있었다. 선지자 아모스도 그들이 “대접으로 포도주를 마신다”고 지적하였다(암 6:6). 그들은 문자적으로 그러하였을 뿐 아니라, 비유적으로도 우상숭배에 취해 있었고 육신의 쾌락과 세상 사랑에 취해 있었다.
본문은 그 나라에 화가 있을 것이라고 선포한다. 또 선지자는 그 나라가 ‘쇠잔해가는 꽃 같다’고 표현하며 다시 화를 선포한다. 지금 북쪽 이스라엘과 수도 사마리아 성은 상당히 부요와 권세와 영광을 누리고 있지만, 그 부요와 그 권세와 그 영광은 쇠해지고 사라질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심판하시고 멸망시키실 것이다.
[2절] 보라, 주께 있는 강하고 힘있는 자가 쏟아지는 우박같이, 파괴하는 광풍같이, 큰물의 창일함같이 손으로 그 면류관을 땅에 던지리니.
선지자는 또, “보라, 주께 있는 강하고 힘있는 자가 쏟아지는 우박같이, 파괴하는 광풍같이, 큰물의 창일함같이 손으로 그 면류관을 땅에 던지리라”고 말한다. ‘주께 있는 강하고 힘있는 자’는 앗수르 나라를 가리킨다. 앗수르는 하나님의 도구, 곧 하나님께서 북쪽 이스라엘을 심판하시는 도구로 사용될 것이다. 온 열국이 하나님의 도구이다. 세계 역사는 하나님의 섭리의 역사이다. 하나님은 온 세상의 주권적 섭리자이시다. 앗수르는 쏟아지는 우박같이, 파괴하는 광풍같이, 큰물의 창일함같이 이스라엘 땅에 덮칠 것이다. 이 예언은 주전 722년경에 역사적으로 이루어졌다. 열왕기하 17장은 그 사실을 기록하였다.
[3-4절] 에브라임의 취한 자의 교만한 면류관이 발에 밟힐 것이라. 그 기름진 골짜기 꼭대기에 있는 그 영화의 쇠잔해 가는 꽃이 여름 전에 처음 익은 무화과와 같으리니 보는 자가 그것을 보고 얼른 따서 먹으리로다.
선지자는 또, “에브라임의 취한 자의 교만한 면류관이 발에 밟힐 것이라. 그 기름진 골짜기 꼭대기에 있는 그 영화의 쇠잔해 가는 꽃이 여름 전에 처음 익은 무화과와 같으리니 보는 자가 그것을 보고 얼른 따서 먹으리로다”라고 말한다. 본문은 북쪽 이스라엘을 ‘면류관,’ ‘그 기름진 골짜기 꼭대기에 있는 그 영화’라고 표현하지만, 여전히 ‘취한 자’ ‘교만한 자’라고 다시 부르며, 그 면류관이 발에 밟힐 것이며 여름 전에 처음 익은 무화과를 사람들이 보고 얼른 따서 먹듯이 그 꽃이 떨어지고 쇠잔해질 것이라고 말한다. 북쪽 이스라엘은 멸망할 것이다. 그 부귀와 권세와 영광은 곧 사라질 것이다.
[5-6절] 그 날에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 남은 백성에게 영화로운 면류관이 되시며 아름다운 화관이 되실 것이라. 재판석에 앉은 자에게는 판결하는 신이 되시며 성문에서 싸움을 물리치는 자에게는 힘이 되시리로다 마는.
선지자는 또, “그 날에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 남은 백성에게 영화로운 면류관이 되시며 아름다운 화관이 되실 것이라. 재판석에 앉은 자에게는 판결하는 신이 되시며 성문에서 싸움을 물리치는 자에게는 힘이 되시리로다”라고 말한다. ‘그 날에’는 앞에서 말한 이스라엘의 멸망의 날을 가리킨다. ‘만군의 여호와’라는 명칭은 하늘의 천군 천사들을 자유로이 동원하시는 전능하신 섭리자 하나님을 증거한다. ‘그 남은 백성’은 남쪽 유다 백성을 가리킬 것이다. 북쪽 이스라엘이 멸망한 후에도 남쪽 유다는 약 136년이나 더 지속되었다.
하나님께서는 그 남은 자들, 즉 유다 백성에게 영화로운 면류관과 아름다운 화관이 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재판석에 앉은 자들에게 ‘판결하는 신’(루아크 미쉬파트) 즉 ‘공의의 영’이 되시며 성문에서 싸움을 물리치는 자들, 즉 법정에서 자신의 정당함을 위해 변론하는 자들에게 힘이 되실 것이다. 사회에 경건과 도덕성이 상당히 회복될 것이다. 그것은 히스기야와 요시야 왕 때 특히 그러하였다.
[7-8절] 이 유다 사람들도 포도주로 인하여 옆걸음 치며 독주로 인하여 비틀거리며 제사장과 선지자도 독주로 인하여 옆걸음 치며 포도주에 빠지며 독주로 인하여 비틀거리며 이상을 그릇 풀며 재판할 때에 실수하나니 모든 상에는 토한 것, 더러운 것이 가득하고 깨끗한 곳이 없도다.
그러나 선지자는 또, “그러나 그들도 포도주로 인하여 옆걸음 치며 독주로 인하여 비틀거리며 제사장과 선지자도 독주로 인하여 옆걸음 치며 포도주에 빠지며 독주로 인하여 비틀거리며 이상을 그릇 풀며 재판할 때에 실수하나니 모든 상에는 토한 것, 더러운 것이 가득하고 깨끗한 곳이 없도다”라고 말한다. 7절은 ‘그러나 그들도’라고 시작된다(KJV). ‘그들’은 ‘그 남은 백성’ 곧 유다 백성을 가리킬 것이다. 남쪽 유다가 상당한 기간 하나님을 모시고 섬길 것이지만, 그들도 마침내 부패될 것을 보이신 말씀이라고 본다. 그들은 우상숭배와 세상 사랑을 인해 부패할 것이다. 제사장들과 선지자들도 그러할 것이다. 이스라엘 온 땅에 죄악들이 가득할 것이다. 하나님의 옛 백성 이스라엘은 이와 같이 북방이나 남방이나 다 부패하여 결국 멸망하게 될 것이다.
[9-10절] 그들이 이르기를 그가 뉘게 지식을 가르치며 뉘게 도를 전하여 깨닫게 하려는가 젖 떨어져 품을 떠난 자들에게 하려는가. 대저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며 . . . .
선지자는 또, “그들이 이르기를 그가 뉘게 지식을 가르치며 뉘게 도를 전하여 깨닫게 하려는가 젖 떨어져 품을 떠난 자들에게 하려는가. 대저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되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하는구나 하는도다”라고 말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선지자들을 통해 전달된 하나님의 말씀들을 ‘젖 떨어져 품을 떠난 자들에게’ 주는 초보적 말씀이라고 무시하고 조롱하였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되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하는구나”라고 멸시하며 비방하였다. 그러나 그들 속에 하나님의 참 형상이 이루어지기까지 그들은 반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워야 할 것이다. 그들은 겸손하고 가난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며 받아야 할 것이다.
[11절] 그러므로 생소한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 이 백성에게 말씀하시리라.
선지자는 이제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를 전한다. 그는, “그러므로 생소한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 이 백성에게 말씀하시리라”고 말한다. ‘생소한’이라는 원어(라아그)는 ‘더듬거리는’이라는 뜻이다. ‘생소한 입술’ 즉 ‘더듬거리는 입술’이란 이방 나라에서 외국어로 말하는 것을 묘사한다. 이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거절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이방 나라들에 포로로 잡혀가게 하실 것을 가리킨다.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이다.
[12절] 전에 그들에게 이르시기를 이것이 너희 안식이요 이것이 너희 상쾌함이니 너희는 곤비한 자에게 안식을 주라 하셨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는 이전에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이것이 너희 안식이요 이것이 너희 상쾌함이니 너희는 곤비한 자에게 안식을 주라”고 하셨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다. 인간의 참 안식은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킴에 있다. 인간이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고 범죄함으로 안식을 잃어버렸고 수고하고 곤고한 삶을 살게 되었다. 그러나 인간은 이 중요한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을 멀리하며 죄를 버리지 않고 오히려 죄를 즐기면서 안식과 위로를 찾고 있고, 그 결과 참된 안식을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13절]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 . . .
선지자는,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고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하사 그들로 가다가 뒤로 넘어져 부러지며 걸리며 잡히게 하시리라”고 선언한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비방한 말을 되받아서 말씀하신 것이라고 본다.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선지자들을 통하여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경계에 경계를 더하시고 교훈에 교훈을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시고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증거하실 것이며 그들은 그 말씀을 받지 않고 뒤로 넘어져 부러지며 걸리며 잡히게 될 것이다. 말씀을 믿지 않는 자는 어떤 좋은 말씀도 믿지 않을 것이다.
1절부터 13절까지의 본문에서 우리가 받는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술 취하고 교만하지 말자. 멸망하는 이스라엘 백성은 술 취하며 교만하였다. 그들은 ‘취한 자,’ ‘술에 빠진 자,’ ‘포도주로 인하여 옆걸음 치며 독주로 인하여 옆걸음 치며 포도주에 빠지며 독주로 인하여 비틀거리는 자’로 묘사되었고, 또 ‘교만한 면류관’이라고 묘사되었다. 우리는 술 취하지 말자. 신약성경은 분명히 술 취하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경고하였다(고전 6:10; 갈 5:21). 에베소서 5:18은,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교훈하였다. 또 우리는 교만하지 말자. 잠언 16:18은,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교만을 가장 미워하신다. 교만은 마귀의 죄악이다.
술 취하고 교만한 이스라엘은 결국 망하고 말았다. 이스라엘의 물질적 부요와 권세와 영광은 쇠잔해가는 꽃같이 되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는 강하고 힘있는 앗수르 나라를 불러 갑자기 이스라엘에게 임하게 하시며 그 면류관을 땅에 던지고 그것을 발로 밟고 그 땅을 정복하게 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술 취하지 말고 교만하지 말자.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만 의지하고 그의 말씀을 지키자. 여호와는 그 남은 유다 백성에게 영화로운 면류관이 되실 것이다. 시편 73:25,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 욥기 22:24-25, “네 보배를 진토에 버리고 오빌의 금을 강가의 돌에 버리라. 그리하면 전능자가 네 보배가 되시며 네게 귀한 은이 되시리라.” 빌립보서 3:7-9,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말씀이 우리에게 안식이 되며 상쾌함이 되는 좋은 말씀인 줄 알자. 신명기 10:12-13,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이사야 48:18, “슬프다, 네가 나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였도다. 만일 들었더면 네 평강이 강과 같았으리라.” 우리는 하나님만 믿고 섬기며 그의 말씀을 지키자.
14-29절, 유다 지도자들에 대한 심판
본문은 유다 지도자들에 대한 심판의 선언이다.
[14-15절] 이러므로 예루살렘에 있는 이 백성을 치리하는 너희 경만한 자여,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 . .
선지자 이사야는, “이러므로 예루살렘에 있는 이 백성을 치리하는 너희 경만한 자여,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라고 말한다. 선지자는 예루살렘에 있는 이 백성을 치리하는 자들, 곧 유다 지도자들을 ‘너희 경만한 자’라고 부른다. ‘경만(輕慢)한’이라는 원어(라촌)는 ‘비웃는, 조롱하는’이라는 뜻이다. 이 말씀은 유다 지도자들이 교만하여 선지자들을 통해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비웃고 조롱하였음을 보인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비웃고 조롱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비웃고 조롱하는 큰 악이다.
선지자는 또, “너희 말이 우리는 사망과 언약하였고 음부와 맹약하였은즉 넘치는 재앙이 유행할지라도 우리에게 미치지 못하리니 우리는 거짓으로 우리 피난처를 삼았고 허위 아래 우리를 숨겼음이라 하는도다”라고 말한다. ‘음부’라는 원어(쉐올)는 본문에서 무덤을 가리킨다고 보인다. 교만한 유다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사망과 언약을 맺고 무덤과 맹약을 하였으므로 넘치는 재앙이 와도 자기들에게 미치지 못하며 자기들은 죽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또 그들은 거짓과 허위로 자신을 감추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것은 헛된 말에 불과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보시고 판단하시고 징벌하실 것이다.
[16절]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초 돌이라. . . .
선지자는 또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초 돌이라[귀한 모퉁잇돌이며 견고한 기초라]. 그것을 믿는 자는 급절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라고 말한다. ‘주 여호와’라는 명칭은 하나님께서 세상의 주인과 주권자, 곧 섭리자이시며 영원자존자(永遠自存者)이심을 증거하는 명칭이다. 우리 하나님은 영원히 스스로 계신 분이시며 온 세상의 주인이시며 주권적 섭리자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장차 한 돌을 시온에 두실 것이다. 그 돌은 ‘시험한 돌’(에벤 보칸) 혹은 ‘시험하는 돌’이라고 불린다(BDB). 또 그 돌은 ‘귀한 모퉁잇돌’(핀낫 이크랏)과 ‘견고한 기초’(무사드 무싸드)라고 표현된다. 시편 118:22에는, “건축자의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고 말씀한다.
구약성경에 예언된 이 돌은 확실히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켰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에 귀한 모퉁잇돌이며 견고한 기초이시다. 사도 바울은,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했다(고전 3:11).
예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함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고 하셨다(마 21:42-44).
사도 베드로는 유대인의 공회 앞에서,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고 담대히 증거하였고(행 4:11), 후에 그의 첫 번째 서신에서 예수님을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라고 표현한 후 말하기를, “경에 기록하였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롭고 요긴한 모퉁이 돌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의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또한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 되었다 하니라”고 이사야 28장의 오늘 본문과 시편 118:22과 이사야 8:14의 말씀을 함께 인용하였다(벧전 2:4, 6-8).
사도 바울도 로마서 9:33에서 “기록된 바, 보라 내가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고 이사야 8:14과 28:16을 인용하였다. 본문의 ‘시험한 돌’은 ‘시험하는 돌’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 이사야 8:14에, “그가 거룩한 피할 곳이 되시리라. 그러나 이스라엘의 두 집에는 거치는 돌, 걸리는 반석이 되실 것이며 예루살렘 거민에게는 함정, 올무가 되시리니”라는 말씀은 ‘시험하는 돌’이라는 번역에 맞아 보인다.
본문은 또 “그것을 믿는 자는 급절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라고 말한다. ‘급절한다’는 원어(야키쉬 )는 ‘급히 도망치다(BDB), 당황하다(NASB, NIV)’는 뜻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재앙의 날에 당황치 않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피할 곳이 있다. 로마서 5:9는,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말했다.
[17-21절] 나는 공평으로 줄을 삼고 의로 추를 삼으니 . . . .
선지자는 또, “나는 공평으로 줄을 삼고 의로 추를 삼으니 우박이 거짓의 피난처를 소탕하며 물이 그 숨는 곳에 넘칠 것인즉 너희의 사망으로 더불어 세운 언약이 폐하며 음부로 더불어 맺은 맹약이 서지 못하여 넘치는 재앙이 유행할 때에 너희가 그것에게 밟힘을 당할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심판은 공의로운 심판이다. 하나님께서는 유다 지도자들의 거짓과 불의에 대해 공의롭게, 철저하게 심판하실 것이다. 그는 그들이 은밀하게 숨은 곳들도 다 찾아내실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이 내리시는 재앙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선지자는 계속해 말하기를, “그것이 유행할 때마다 너희를 잡을 것이니 아침마다 유행하고 주야로 유행한즉 그 전하는 도를 깨닫는 것이 오직 두려움이라. 침상이 짧아서 능히 몸을 펴지 못하며 이불이 좁아서 능히 몸을 싸지 못함 같으리라 하셨나니 대저 여호와께서 브라심 산에서와 같이 일어나시며 기브온 골짜기에서와 같이 진노하사 자기 일을 행하시리니 그 일이 비상할 것이며 자기 공(功)을 이루시리니 그 공(功)이 기이할 것임이라”고 한다. ‘공’(功)이라는 원어(아보다)는 ‘일, 사역’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심판 때에 그들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침대가 짧아 몸을 펴서 눕지 못하는 것과 같고, 이불이 짧아 몸을 다 덮지 못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본문은 하나님께서 브라심 산에서와 같이, 또 기브온 골짜기에서와 같이 일어나 진노하실 것이라고 말한다. 브라심 산과 기브온은 다윗 시대의 승전 사건들을 가리킨 것 같다. 역대상 14:11, 14-16, “이에 무리가 바알브라심으로 올라갔더니 다윗이 거기서 저희를 치고 가로되 하나님이 물을 흩음같이 내 손으로 내 대적을 흩으셨다 함으로 그 곳 이름을 바알브라심이라 칭하니라,” “다윗이 또 하나님께 묻자온대 하나님이 이르시되 마주 올라가지 말고 저희 뒤로 돌아 뽕나무 수풀 맞은편에서 저희를 엄습하되 뽕나무 꼭대기에서 걸음 걷는 소리가 들리거든 곧 나가서 싸우라. 하나님이 네 앞서 나아가서 블레셋 사람의 군대를 치리라 하신지라. 이에 다윗이 하나님의 명대로 행하여 블레셋 사람의 군대를 쳐서 기브온에서부터 게셀까지 이르렀더니.”
[22절] 그러므로 너희는 경만한 자가 되지 말라. . . .
선지자는 또, “그러므로 너희는 경만한 자가 되지 말라. 너희 결박이 우심할까 하노라. 대저 온 땅을 멸망시키기로 작정하신 것을 내가 만군의 주 여호와께로서 들었느니라”고 말한다. ‘경만한 자’는 ‘비웃는 자’라는 뜻이고, ‘우심(尤甚)하다’는 말은 ‘더 심하다’는 뜻이다. 그들이 계속 교만하게 말하고 행동하면 그들은 이방 나라들에게 포로가 될 것이며 그들의 결박은 더욱 견고하게 될 것이다.
선지자는 또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멸망하실 일을 작정하셨다고 증거한다. 하나님께서는 악한 세상을 심판하신 적이 자주 있었다. 그는 옛 세상을 홍수로 심판하셨었다. 그는 소돔과 고모라 성을 유황불비로 심판하셨었다. 그는 불경건한 이방 나라들뿐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도 악을 행하면 심판하실 것이다. 그는 마지막 날에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다. 사도 베드로는, “그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고 말하였다(벧후 3:6-7).
[23-29절] 너희는 귀를 기울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자세히 내 말을 들으라. 파종하려고 가는 자가 어찌 끊이지 않고 갈기만 하겠느냐? . . .
선지자는 또 말하기를, “너희는 귀를 기울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자세히 내 말을 들으라. 파종하려고 가는 자가 어찌 끊이지 않고 갈기만 하겠느냐? 그 땅을 개간하며 고르게만 하겠느냐? 지면을 이미 평평히 하였으면 소회향을 뿌리며 대회향을 뿌리며 소맥을 줄줄이 심으며 대맥을 정한 곳에 심으며 귀리를 그 가에 심지 않겠느냐? 이는 그의 하나님이 그에게 적당한 방법으로 보이사 가르치셨음이며 소회향은 도리깨로 떨지 아니하며 대회향에는 수레바퀴를 굴리지 아니하고 소회향은 작대기로 떨고 대회향은 막대기로 떨며 곡식은 부수는가, 아니라 늘 떨기만 하지 아니하고 그것에 수레바퀴를 굴리고 그것을 말굽으로 밟게 할지라도 부수지는 아니하나니 이도 만군의 여호와께로서 난 것이라. 그의 모략은 기묘하며 지혜는 광대하니라”고 말한다.
‘소맥’은 밀을, ‘대맥’은 보리를 가리키고, ‘귀리’는 호밀을 가리킨다. 본문은 농부가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곡식을 거두어 타작하는 농사과정을 말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방 나라들과 이스라엘 백성을 심판하시지만, 그것이 그의 목적이 아니고 그것은 그의 구원 계획을 이루는 한 방편이며 그의 궁극적 목적은 사람들을 구원하는 것임을 보인다. 하나님께서 인류를 창조하신 일은 결코 실패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창세 전에 세우신 그의 구원 계획을 다 이루실 것이다. 요한복음 6: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그러므로 선지자는 “그의 모략은 기묘하며 지혜는 광대하니라”고 말한다. 로마서 11:33,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14절부터 29절까지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시온에 두신 기초석 곧 교회의 기초석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유대 지도자들에게 버림을 받으셨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믿고 의지해야 한다. 그를 믿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다. 그를 믿는 자는 장차 임할 심판과 재앙을 피할 수 있다.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이미 믿었다. 보배로우신 산 돌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왔으니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기초석으로 하여 거룩한 집으로 지어져야 한다(벧전 2:5). 우리의 믿음이 말씀과 성령 안에서 또 기도로 견고해져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교만하여 비웃는 자들이 되지 말아야 한다. 유대 지도자들은 교만하여 비웃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재앙을 피할 수 있다고 큰 소리 쳤다. 그들은 거짓과 허위로 가득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악에 대해 공의로, 철저하게 심판하시고 징벌하실 것이다. 그들은 다 멸망을 당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만하여 비웃는 자들이 되지 말자. 우리는 거짓된 자들이 되지 말자. 우리는 겸손히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앞에 복종하자. 우리는 믿음으로 살고 말씀과 기도로 살고 또 주의 계명대로 의롭고 선하고 진실하게 행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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