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 사는 사람 롬8장5-17 에2:12-18,
그레이라고 하는 사람은 어렸을 때 가진 신앙을 떠나 육의 사람이 되어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마음껏 먹고 마셨습니다. 세속적인 잔치가 끝난 후에 그는 우연히 이런 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예수에게 속하지 않은 영혼은 이미 잃어버린 것이다." 그 글을 보는 순간 그는 자신의 영혼을 향하여 날아오는 깨우침의 화살을 맞은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내 영혼을 잃어버렸구나.'하는 생각에 빠지자 그는 갑자기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때 그는 변명을 하기 보다는 먼저 하나님의 자비를 간구하였습니다. 어릴 때는 매일 기도를 드렸었지만 그 날 밤처럼 절박한 심정으로 기도를 드린 적은 없었습니다. "이 죄인에게 하나님의 자비를 베풀어주시옵소서." 그는 이 기도를 수없이 되풀이하였습니다. 마룻바닥에 머리를 숙이고 고통에 가득 찬 심정으로 주님께 드린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어 주셨습니다. 그 날 밤 이후 하나님께서는 더러운 죄악의 진흙탕에 빠져 있는 그를 건져내시어 단단한 믿음의 반석 위에 그의 인생을 다시 세우게 해 주셨습니다. 이후로 그는 육신에 속한 삶을 버리고 영에 속한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육에 속한 사람이 되어 육적인 생각과 육적인 일만 추구하고 거기에 에만 매어 살게 되면 실상은 하나님 앞에서는 살았으나 죽은 자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자는 영의 생각을 하고 성령의 인도 받는 삶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게 됩니다.
오늘은 두 본문을 중심으로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믿음을 같기 전에는 육에 속한 사람으로 살았습니다.
신약 본문 롬8:5에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했습니다. 사람이 무엇을 생각하느냐 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입니다 사람의 생각은 그 인격을 만들어내고 인격은 행동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 행동들은 심은 대로 거두게 되어 인생의 성패를 좌우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아무리 아름답고 고상한 생각을 하고 고상한 삶을 산다고 해도 영의 생각을 가질 수 없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육에 속한 사람에게는 성령이 계시지 않기 때문에 자기중심으로 살게 됩니다.
본문 롬8:7-8에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의 영이 있는 사람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나 새 사람이 된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의 영의 인도를 받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없이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가 없습니다. 누구든지 성령의 역사 없이는 예수를 주라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고전 12:3).
육에 속하여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에 대해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 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갈 5:19-21)
그리스도인들도 깨어 믿음에 굳게 서지 못하면 육의 생각에 메이게 되고 마귀의 미혹을 받게 됩니다. 마귀는 우리의 생각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침투합니다. 가롯 유다가 예수를 팔려고 할 때도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롯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요 13:2)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가롯 유다는 예수를 배반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도록 팔아 넘겼으며 자신도 은 삼십을 성소에 던져두고 목을 매달고 자살을 했습니다. 마귀는 믿음에 굳게 서지 못한 신자들에게 근심을 심고, 미움을 심고, 교만을 심고, 다툼을 심고, 탐욕 등을 심어 믿음에서 떠나게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마음속에 악한 생각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지켜야 합니다. 모든 죄는 악한 생각에서 시작되며 악한 생각은 죄를 낳고 죄는 멸망을 가져옵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습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에 이르게 합니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엡 4:26-7) 했습니다.
미운 생각이 잠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해가 지도록 품지 말아야 합니다. 욕심도 잠시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래 품지 말아야 합니다. 음욕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 욕심을 품으면 도적질을 하게 됩니다. 사람이 마음에 미움을 품게 되면 살인을 합니다. 사람이 음욕을 품고 있으면 간음하게 됩니다. 그러기에 잠 4:23에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한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기독교 초창기교회의 부흥사였던 길선주 목사가 가끔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습니다. 한 교인이 그 이유를 물으니까, "갑자기 나쁜 생각이 내 머리를 스치려고 하니까, 이것을 못 들어오게 하려고 그러네." 이 말을 듣고 질문했던 사람이 많은 은혜와 교훈을 받았다고 합니다. 오늘 우리도 육의 생각이 들어오거나 사단이 악한 생각을 침투 시키려 할 때 들어오지 못하도록 차단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영에 속한 사람으로 삽니다.
영의 생각을 하며 삽니다. 믿음을 따라 사는 사람은 영의 생각을 하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살기를 힘씁니다. 사도 바울은 골 3:1-2에서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했습니다.
구약 본문에 나오는 에스더는 믿음으로 산, 영에 속한 자였습니다. 에스더서에 보면 하나님이라는 말이 한마디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에 대한 곳은 신앙과 믿음의 향기가 은은하게 풍겨 옴을 느낍니다.
신자들 중에는 하나님이란 말을 입에 달고 살아도 전혀 신앙의 향기가 나지 않고 육의 냄새만 나는 신자들이 많이 있는데, 에스더서에 나오는 모르드개와 에스더는 영에 속한 자로 살았습니다. 이들은 포로로 잡혀온 소수민족 출신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더구나 에스더는 어려서 부모를 잃고 사촌오빠 모르드개의 손에 양육된 고아 출신 이었습니다. 그런 그녀가 그 당시 인도에서 에디오피아 까지를 다스리고 있는 페르시아 왕의 왕비가 되었습니다.
에스더는 어떻게 해서 왕비로 선택될 수 있었을까요? 전국 각처에서 아름다운 여인을 물색하여 뽑혀 왔고, 그 가운데서도 많은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왕비로 발탁 된 것은 무엇보다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본문 에2:17에 “왕이 모든 여자보다 에스더를 더욱 사랑하므로 저가 모든 처녀보다 왕의 앞에 더욱 은총을 얻은지라 왕이 그 머리에 면류관을 씌우고 와스디를 대신하여 왕후를 삼은 후에 왕이 크게 잔치를 베푸니 이는 에스더를 위한 잔치라 모든 방백과 신복을 향흥 하고 또 각 도의 세금을 면제하고 왕의 풍부함을 따라 크게 상주니라.”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섭리가 아니면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아하수에로 왕의 눈에 아름답게 보였다는 것입니다. 성도가 영에 속한 사람으로 살면 환경과 여건을 초월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됩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요셉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되니 남의 나라에 팔려간 노예 신분에서 애급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다니엘이나 그의 세 친구들도 바벨론 포로였지만 모든 자들 보다 뛰어난 존귀한 자들이 되었습니다. 느헤미야도 포로였지만 왕의 사랑과 신임을 받는 관원이 되었습니다.
에스더는 외모도 아름다웠지만 신실한 신앙의 사람이요, 사촌 오빠인 모르드개의 신앙 감화로 내면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여인이었습니다. 모르드게는 교만한 하만 총리 때문에 유다 민족이 멸절의 위기를 만났을 때에도 에스더가 왕비의 자리 보다 민족 멸망의 위기 앞에서 “죽으면 죽으리라”는 결단을 가지고 3일 금식하고 기도한 후 왕 앞에 나아가 민족을 구하게 했던 믿음의 인물입니다. 참 아름다움은 외모의 아름다움만 가지고는 부족합니다. 거기에 내면적인 아름다움이 있고, 그 위에 신앙적인 미가 더해진 아름다움이 진정한 아름다움입니다. 이런 아름다움은 사람들을 감동시킵니다.
다른 왕비 후보들은 경쟁이 치열한 만큼 조금이라도 왕의 눈에 더 잘 보이기 위해서 궁녀들을 주관하는 내시 헤게에게 요구하여 “이런 보석을 주세요.” “이런 패물을 주세요.” “더 멋있는 옷을 주세요.” “이런 화장품도 주세요.”하고 자기가 최고로 잘 보이게 하기 위하여 이것, 저것들을 요구 했고, 헤게는 요구하는 대로 주었습니다. 그런데 에스더는 정한 것 외에는 더 구하지 않았습니다. 본문 에2:15에 “-- 에스더가 차례대로 왕에게 나아갈 때에 궁녀를 주관하는 내시 헤게가 정한 것 외에는 다른 것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모든 보는 자에게 사랑을 받더라.”했습니다. 성도가 믿음으로 영에 속한 사람으로 살면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 사랑을 받고 존귀한 자가 됩니다. 주님의 향기를 발하는 자가 됩니다. 우리 모두 믿음으로 살고 영에 속한 사람으로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3.두 삶의 모습과 결과가 전혀 다릅니다.
신약 본문 롬8:6에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했고, 13절에는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했으며, 17절에는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 해도 육신의 일만을 도모하여 살면 믿음에서 오는 기쁨과 평안을 맛볼 수 없습니다. 육신에 속한 신자는 다른 이들에게 은혜를 끼치고, 유익을 주고, 화평의 도구로 쓰임을 받지 못합니다. 오히려 자기를 드러내고, 교만하며, 상처를 주고, 분쟁을 일으키는 자가 됩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염려한 것은 저들이 육신에 치우쳐 서로 파당을 지어 분쟁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을 향하여 어린 아이라고 했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아직도 영적 어린아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확실하게 영적 성장을 이룰 수 있을까요? 육신의 생각에서 영의 생각으로 전환되어져야 합니다. 육신의 생각은 백날 가져봐야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합니다. 영의 생각을 보다 더 많이 가질 때 영적으로 성장하고 하나님의 축복하심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성도가 믿음을 가지고 영의 생각을 하게 되면 성령의 도우심으로 아무리 어려운 환경이라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줍니다. 잘 못된 마음을 버리게 하시고 건강한 새 마음, 창조적인 마음도 주시어 믿음의 승리자가 되게 하십니다.
청주에서 살고 있는 김경섭이라는 한 신체장애자에 관한 얘기입니다. 그는 세상에 태어나서 유아시절 때 아주 가난하게 자랐습니다. 그 이유는 그의 아버지가 늘 술만 마시고, 도박을 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가 논 팔고, 밭팔고, 집 팔아서 모두 도박으로 날려버리고, 어머니가 삯바느질해서 근근이 살아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버지가 도박해서 돈을 모두 잃어버리고, 눈이 벌개져서 돌아왔습니다. 돌아와서 아내에게 "돈 내놔"하고 졸라댔습니다. "여보, 논 팔고, 밭팔고, 집 팔아 전세 집에 들어와서 삯바느질로 사는데 무슨 돈이 있소?" "삯바느질해서 번 돈 있잖아. 내놔." "없어요. 이 아이들 먹여 살려야 하잖아요." 이 말을 들은 아버지는 화가 불같이 치밀어 올라서, 옆에서 잠을 자고 있던 아들을 들어서 마당에 던졌습니다. 그 일로 인해 아들은 척추가 어긋나고, 다리가 부러져서 장애자가 되었습니다. 이 아이는 자라나면서, 아버지를 몹시 미워하고, 큰 원한을 품게 되었습니다. 때로는 칼로 찔러 죽이고 싶은 충동도 생겼습니다. 동네에서는 다른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고, 따돌림을 받았습니다. 그는 자기 신세가 너무나 비참해서 울기도 한없이 울었습니다. 심지어 자살하고 싶은 생각도 자주 일어났습니다.
이러는 동안 그는 목사님의 심방도 받고 교회도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열심히 성경을 보고, 기도하기를 시작하였습니다. 하루는 기도하는 중에 큰 영감을 받았습니다. 그 영감을 준 말씀이 바로 오늘 본문 롬8:11의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리라." 그에게 두 가지 변화가 생겼습니다. 첫째, 자기도 무엇인가 큰일을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생각이었습니다. 둘째, 아버지의 잘못을 용서하고, 그 아버지를 사랑하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는 그때부터 골방에 들어가서 공부만 했습니다. 그래서 수재가 되고, 사법시험에 합격을 하여 판사가 되었습니다. 주님의 영이 그의 속에 들어오니까, 아버지에 대한 원한도 모두 사라졌습니다. 그는 아버지를 극진한 효심으로 섬겼습니다. 온 마을 사람들은 그가 판사가 된 것보다도, 효성을 지극히 하는 그의 아들을 높이 평가하였습니다. 자기 아버지가 자기를 장애로 만들었는데도, 그 생각이 긍정적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는 늘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나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뜻이 있어서, 이런 아버지를 만나게 하였고, 내가 장애자가 되었으나, 내가 장애자가 됨으로 말미암아, 오히려 공부를 더 열심히 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었다."
하나님의 은혜로 생각하나 바꿈으로 말미암아, 절망의 사람이 소망의 사람으로, 미움의 사람이 사랑의 사람으로, 천덕꾸러기 인생이 사랑과 존경을 받는 인생으로, 원망의 사람이 감사와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사람으로, 저주의 사람이 축복의 사람으로 바뀌어 진 것입니다. 우리도 장차 받을 하늘 기업을 바라보며 육의 사람으로 살지 말고, 믿음의 사람, 영의 사람으로 살면서 이런 복을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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