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스가랴

하나님의 성도를 향한 기대 슥8:1-8, 행13:1-3

nam씨 2016. 9. 2. 20:08


하나님의 성도를 향한 기대 슥8:1-8, 13:1-3

 

어떤 사람이 유명한 화가의 작업실을 방문했습니다. 그 작업실에는 캔버스, 종이, 그림물감 등 그림을 그리는데 필요한 도구들이 여기저기에 있었습니다. 그와 함께 영롱한 빛을 내는 여러 가지 색깔의 보석들이 여기저기에 있었습니다.

 

방문한 사람은 화가에게 저 보석들은 보석함에 넣어서 깊숙한 곳에 두지 않고 왜 이렇게 작업실에 늘어놓았습니까?’ 물었습니다.

 

화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나의 색채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서 저 보석들을 작업실에 놓고 때때로 바라봅니다. 오랫동안 그림을 그리다 보면 눈도 피로해지고 색 감각도 무디어 지는데 영롱한 빛을 발하는 저 보석들을 바라보면 눈의 피로가 사라집니다. 그리고 색채 감각이 회복되어 색을 바르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성도들은 이 보석과 같은 존재들이 되어야합니다. 이 보석과 같은 성도들이 성읍 곳곳에 있어서 사람들의 피로를 회복해 주고 바른 신앙의 감각을 가지고 살도록 해 주어야합니다. 오늘은 두 본문의 말씀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성도를 향한 기대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하나님은 사랑의 공동체가 되기를 기대 하십니다.

 

우리 믿음의 공동체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사랑을 나누는 공동체가 되기를 기대하십니다. 믿음의 공동체라는 것은 우리를 위해 독생자라도 아끼지 않고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받는 공동체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보고 너무 너무 사랑해서 견딜 수 없는 공동체를 말합니다.

 

그 사랑이 얼마나 큰지 크게 질투 하시는 하나님입니다. 구약 본문 슥8:1-2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여 이르시되,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시온을 위하여 크게 질투하며 그를 위하여 크게 분노함으로 질투하노라.”했습니다. 여기 본문에는 사랑이라는 단어가 없습니다. 그러나 사랑이 없다면 질투도 없습니다. 사랑과 질투는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사랑하지 않는데 질투가 일어날까요? 만약에 어떤 여자가 남편이 바람이 들었는데, 전혀 질투를 느끼지 않는다면 남편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전혀 없다는 증거입니다. 그가 바람이 나던지, 집에 나가던지, 나는 관심 없다. 이것은 내 마음이 그에게서 떠나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 이외의 다른 대상을 향해서 그들의 시선을 돌릴 때, 하나님은 우리를 바라보시면서 질투하십니다. 본문에 하나님께서 시온을 위해서 크게 질투하신다고 했는데, 여기에서 시온은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을 말합니다. 나아가 하나님께서 선택하시고 불러 모으신 믿음의 공동체를 말합니다. 그 시온을 위해서 조금 질투한다가 아니라, 크게 질투한다고 했습니다. 심지어 그를 위하여 분노까지 하시며 질투 하신다고 했습니다. 이 말을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은 그렇게 까지 우리를 뜨겁게 사랑하신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주님 이외의 다른 것을 향해서 시선을 돌릴 때, 밤잠을 이루지 못하시며 크게 질투하시고, 화내시면서 돌아오라고 촉구하시는 분으로 그렇게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는 마땅히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더 나아가서 우리의 믿음의 공동체가 그분의 사랑의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은 교회를 가리켜서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라고 했습니다. 주님의 신부입니다. 주님께서 보실 때에 너무나 사랑스러운 신부입니다. 우리 성도들의 심령이 정말 주님을 향하여 드려질 때, 우리의 그 순전한 시선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고 있을 때에 주님은 우리를 바라보시면서 너무 사랑스러워 견디지 못해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믿음의 공동체는 주님께서 너무 보고 싶어 하시는 주님의 사랑 받는 공동체라는 사실을 믿는 성도들이 됩시다.

 

또한 동시에 성도들 간에 서로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이 사랑으로 하나 되기를 위해 기도하셨고,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산을 옮기는 믿음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요, 구제하고 자기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유익이 없다고 했습니다. 주님은 사랑으로 사는 사람들을 위해 구원과 영생의 은총을 예비하셨습니다. 이 은총에 다함께 참여하는 복을 받기를 소망합니다.

 

2.하나님은 우리에게 진리의 사람들이 되기를 기대하십니다.

 

성도가 세상 사람들과 구별 된 것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영의 양식으로 삼고 그 말씀을 따라 성결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구약 본문 슥8:3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시온에 돌아와 예루살렘 가운데에 거하리니, 예루살렘은 진리의 성읍이라 일컫겠고 만군의 여호와의 산은 성산이라 일컫게 되리라지금 스가랴 선지자는 이런 환상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이 진리의 성읍이 되고, 그리고 예루살렘 도성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감람산, 시온 산을 보면서 이 산은 성산, 거룩한 산이 된다고 했습니다. 한 마디로 진리와 거룩한 공동체가 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공동체를 세우는 가장 중요한 기초가 있다면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요, 진리의 말씀입니다. 주님을 믿는 믿음과 이 진리의 터 위에 세워지지 않는다면 이것은 세속적인 공동체와 하나도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교회를 가리켜서 교회는 진리의 기둥과 터라고 했습니다. 성령께서 진리의 말씀을 듣고 깨닫게 해 주실 때 길이요, 진리요, 생명 되시는 예수님을 믿는 자가 되게 하고 진리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로 살게 합니다.

 

그러나 성령의 은혜 없이는 인간의 지식으로 진리의 말씀을 깨달을 수도, 믿는 자가 될 수도 없습니다. 20세기 인물들 가운데 최고의 지성 중에 들 수 있는 하나가 아마도 영국의 버틀란드 러셀(Bertrand Russell)일 것입니다. 러셀은 어릴 때부터 매우 똑똑했습니다. 교회에 다녔던 그는 총명한 머리로 성경을 굉장히 많이 읽었습니다.

 

마침내 성경을 목사님들보다 더 잘 안다고 생각되자 그는 성경 지식을 가지고 수많은 목사님들을 골탕 먹이기도 했고, 그들의 무지한 성경 지식을 비웃기도 했습니다. 결국 러셀이 그 해박한 성경 지식을 가지고 쓴 책 제목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입니다. 성경을 근거로 해서 기독교의 허구성을 통박하는 내용의 책입니다. 러셀은 성경을 많이 알았던 까닭에 도리어 예수를 안 믿고 교만해져서 기독교를 우습게보았던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의 도우시는 은혜로 말씀을 읽으면 변화되는 것이 분명한데 인간의 교만한 마음으로 세상 지식과 지혜로 말씀을 대하다 보면 러셀처럼 변화되기는커녕 오히려 자신의 성경 지식 때문에 교만하여 져서 말씀의 의미도 제대로 깨달아 알지도 못하면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됩니다.

 

교회의 최대의 자산은 건물이 아닙니다. 터전도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과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어진 교회, 하나님이 말씀이 부요하지 못한 교회, 하나님의 말씀이 흥왕하지 못한 교회, 그 교회는 주님 없는 공허한 교회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에 대한 믿음과 진리의 말씀 이 충만한 교회 가운데 하나님이 거하십니다.

 

신약 본문에 나오는 안디옥 교회는 성령 충만하여 주님에 대한 믿음으로 충만했고, 진리의 말씀으로 충만한 교회였습니다. 믿음과 진리 안에 거하여 살고자 금식하며 기도하는 교회였습니다. 우리 모두 주님을 믿는 견고한 믿음과 진리 안에 거하는 성도, 그런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3.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자들이 되기를 기대하십니다.

 

좋은 성도, 좋은 교회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에,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성도요, 교회입니다. 신약 서신서 본문 행 13:3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했습니다. 교회 공동체가 금식하며 기도하다 받은 성령의 음성은 주의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바울을 따로 세우라는 것이었습니다. 곧 선교사로 내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씀은 사실 교회적으로는 상당히 순종하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될 내용이었습니다. 바나바는 안디옥교회의 담임목회자이며, 성도들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는 목회자였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탁월한 성경교사로서 성도들에게 존경과 큰 유익을 끼치는 자였습니다.

 

이런 위치에 있는 자들을 선교사로 보내라는 충격적인 말씀 앞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때 그들은 공동회의를 해서 투표로 결정하는 인간적인 방법을 쓰거나 그럴 수 없으니 다른 사람을 보내자고 결의한 것이 아니라 이 문제를 위해 다시 금식하며 기도 했습니다. 그들을 보내야 될 것인가, 말 것인가를 위한 것이 아니라 그 말씀 앞에 순종할 수 있는 마음을 달라고 금식하며 기도한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을 합하여 결정하고 날을 정하여 파송 예배를 드리고 성령의 지시에 순종하여 보냈습니다. 안디옥교회 교인들이 자신의 교회를 생각하면 결코 놓을 수 없는 분들이지만 성령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들을 선교사로 내어 놓았다는 것입니다. 이로써 안디옥교회는 선교하는 교회로서의 아름다운 이름을 얻게 된 것입니다.

 

안디옥 교회 성도들은 예배를 제대로 드릴 줄 아는 성도였고, 금식할 줄 아는 성도였고,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성숙한 성도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 앞에 순종한 믿음의 용사들이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순종하는 자와 교회를 통해 일하시고 사랑하십니다. 좀 부족하더라도 주님은 그 부족함을 은혜와 지혜로 채워 주시고 귀하게 들어 쓰십니다. 보석상을 하는 부호가 유럽 여행을 하다가 진귀한 보석을 발견하여 거액의 돈을 주고 그 보석을 샀습니다. 물론 자신의 나라에 가지고 가서 그 이상의 돈을 받고 팔기 위해서였죠. 그는 즐거운 마음으로 보석상으로 돌아온 후 보석을 이리저리 살펴보았습니다. 그러자 살 때는 보지 못했던 작은 흠집이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 이런 흠이 있었다니그는 어찌할 줄을 몰랐습니다. 감정가들도 그 흠이 보석의 가치를 떨어뜨린다고 말을 했습니다. 그 보석은 제값을 받기는커녕 작은 흠 하나로 인해 한없이 가치가 하락하고 있었습니다. 보석상 주인은 여러 가지 생각에 잠겼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보석을 다시 원래의 가치로 되돌릴 수 있을까? 그는 오랜 노력과 고뇌 후에 한 가지 결정을 내렸습니다. 보석의 작은 흠에 장미꽃을 조각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 장미꽃 조각 하나로 보석의 가치는 몇 배 이상으로 올랐습니다. 그래서 보석상 주인은 또다시 행복해졌습니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사람을 통하여 일하십니다. 시대와 사건에 따라 필요한 사람을 다듬어 쓰십니다. 돌멩이와 같은 사람을 보석과 같은 사람으로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면 가치가 상승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으려면 이전에 가졌던 교만과 고집을 버려야 합니다. 자신의 뜻대로 하려는 것을 과감하게 포기해야 합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쳐서 복종시켜야 합니다. 그 때 하나님은 생각지 못한 은총을 주시고, 기이한 역사를 이루게 하시고, 수많은 사람들을 구원하는 일들을 이루십니다. 우리 모두 사랑의 사람이 되어 사랑의 공동체를 세우는 자가 되고, 진리의 말씀에 순종하여 진리 안에 거하는 자가 되고, 하나님의 뜻에 항상 아멘으로 순종하는 하나님의 사랑 받는 복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