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성도에게 있는 것 신33장26-29, 빌4:10-13
어떤 사람이 살고 있던 집을 팔려고 했습니다. 이유는 그 집에 너무 오래 살아서 지루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부동산 중개업자에게 자신의 집을 내놓았습니다. 과거에는 집을 사려면 이리저리 다리품 팔아 가면서 직접 눈으로 봐야 했지만 요즘은 인터넷의 발달로 편리해졌습니다. 그 사람은 인터넷으로 어느 집이 좋은지를 하나하나 체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한 집이 눈에 확 띄었습니다. 그 집의 소개 첫 타이틀은 "언덕 위에 있는 집"이었습니다.
"언덕 위의 아름다운 집입니다. 멀리 평야가 보이고 그 평야위로 떠오르는 해를 보고 있노라면 하루일과를 시작하는 힘이 나는 것 같습니다. 또한 아름다운 정원이 있습니다. 작은 정원이지만 사시사철 갖가지 꽃들이 피어납니다. 이 정원을 거니노라면 마치 천국에 온 기분을 느낄 것입니다. 이 집의 방의 구조는 편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부부는 사랑을, 자녀들은 행복을 나눌 수 있는 참 좋은 집입니다. 이 집에는 이웃이 참 좋습니다.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좋은 일 뿐 아니라 나쁜 일도 서로 나누기 때문에 바로 이 동네는 가족과 같습니다."
이런 소개의 글을 읽은 이 사람은 마음속으로 '아 이 집을 사야겠다.'는 결정을 하고 그 집을 찾아가려고 주소를 확인하니 그 집은 바로 자신의 집이었습니다. 부동산 중개업자가 자신의 집을 팔려고 내놓은 아름다운 글귀였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시 한 번 살펴보면서 자신의 집을 보았더니 자신의 집이 그렇게 좋은 집이었던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이 그 집을 팔았겠습니까? 그는 팔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것은 귀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팔려고 했던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에게도 각양 좋은 것들을 가지고 있으면서 신앙생활에 타성이 생겨 좋은 것들을 다 잊고 살기 쉽습니다. 그러나 성도들 가운데는 정말 행복한 마음을 가지고 사는 자들도 있습니다. 오늘은 그러한 성도들에게 있는 것이 무엇인지 두 본문을 중심으로 “행복한 성도에게 있는 것”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행복한 성도에게는 구원에 대한 감사와 감격이 있습니다.
모세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430년간 애급에서 지냈습니다. 처음에는 7년 흉년에서 애급을 구원했던 요셉의 공로 때문에 애급 사람들에게 대우를 받으며 살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애급의 왕들이 요셉의 공로를 잊어버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급의 노예로 삼아 온갖 굳은 일을 시키게 되었습니다. 그런 중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번창하게 되자 반역하게 될 것을 우려해 남자를 낳으면 아기를 죽이도록 명령을 내렸습니다. 고역으로 인해 고통이 심해지자 하나님을 잊고 살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모세를 보내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급 왕 바로의 압제에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실 때 모세를 통해 특이한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즉 어린양을 잡아 그 피를 문 인방 설주에 바르고 그 고기를 먹게 하셨습니다. 애급 모든 가정의 장자를 칠 때 죽음의 천사가 피를 바른 가정은 재앙이 없었습니다. 이것이 유월절의 유래입니다.
여기서 어린양의 희생은 세상 죄를 지고 십자가 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고전 5:7에 보면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구원은 그들의 공로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구원의 방법을 받아드리므로 가능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구원 역시 하님이 제시하신 구원의 방법을 받아드리므로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인류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당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신약 본문을 기록한 바울 사도는 엡 2:8에서는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주님의 십자가 사랑을 깨닫고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자랑하면서 십자가를 통한 구원과 부활의 복음을 전하는 일을 위해 그의 삶 전체를 드렸습니다.
성도가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소망 가운데 살면 어떤 시련 중에도 감사 할 수 있습니다. 친구 사모님이 심각한 대장암 판정을 받고 서울대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입원하여 있을 때 그 분에 마음 가운데는 분노와 미움과 절망이 교차하는 복잡한 마음을 가졌는데, 마침 같은 암으로 수술을 받은 같은 병실의 사모님 한 분이 명랑한 마음을 가지고 우리는 축복 받은 사람들입니다. 만일 교통 사고로 갑작스럽게 회개 할 기회도 없이 죽었다면 어쩔 번했겠습니까? 다행히 암으로 철저히 회개하고 하나님 나라 갈 준비를 할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친구 사모님은 옆에 같은 처지에 있는 이분과 대화를 나누면서 감사의 마음을 회복하게 되었고, 암도 극복하여 두 분 다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건강히 잘 지내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구원의 감사와 감격을 가지고 사시기를 소망합니다.
2.행복한 성도에게는 하나님의 도우심에 대한 확신이 있습니다.
구약 본문 26절에 “그가 너를 도우시려고” 했고, 27절에 “그의 영원하신 팔이 네 아래 있도다.” 했으며, 29절에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라고 말합니다. 방패는 적의 공격으로부터 군인들을 보호해 줍니다. 하나님이 방패이시라는 말은 하나님은 우리의 보호자이시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애급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의 보호자가 되어주셨습니다. 애급의 쫒아오는 군사들과 홍해 앞에서 보호자가 되어 주셨고,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보호해 주셨고, 아멜랙 이라는 강력한 적의 공격으로부터 보호자가 되어 주셨습니다. 그들이 광야에서 농사 짖지 않고, 길쌈하지 않았어도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힘이시며 방패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놀라운 보호자이시오, 위로자요, 공급자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보호하심 속에서 살기 때문에 행복합니다. 바울 사도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는가? 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모든 대적과의 싸움에서 넉넉히 이긴다고 말합니다. 주님이 우리의 공급자가 되시기에 신약 본문 13절에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말합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가면 금문교가 있습니다. 샌프란시스코 해협에서 태평양을 가로지르는 다리인데 이 다리를 건설할 때 여러 사람이 밑으로 떨어져 죽기도 하고 다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리 밑에 그물을 쳤습니다. 그물 하나 쳐놓았는데 희한하게 그 밑으로 떨어지는 사고가 한건도 없었습니다. 그물이 인부들의 마음에 두려움을 제거해주었습니다. 인부들은 그물 하나를 믿고 담대하게 그리고 안전하게 공사를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전능하신 하나님, 좋으신 아버지가 계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방패이십니다. 우리의 보호자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행복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도우시면 우리를 대항하여 공격하는 모든 대적들을 이길 수 있습니다. 모든 시험과 시련을 이길 수 있습니다. 모든 두려움을 이길 수 있습니다. 주님의 도우심을 믿고 의지하는 자에게 은혜와 힘을 주시어 죄를 이기게 합니다. 율법의 정죄도 이기게 합니다. 그리고 세상도 이기게 하고, 육신의 정욕도 이기게 합니다. 우리의 최대의 적인 마귀도, 죽음의 공포도 주님의 도우심으로 이길 수 있습니다.
한국교육방송공사 경영본부장을 지낸 이덕선 장로님이 평사원에서 이사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간증한 글이 있습니다. 그는 가난 속에서 자랐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 아버지, 어머니가 모두 세상을 떠났습니다. 7남매의 가장으로서 그는 동생들을 돌보아야 했습니다. 막노동, 학교 급사 등 안 해본 것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새벽 기도를 하며 하나님의 도움을 구했습니다. 이분이 방송통신학교를 거쳐 석사과정, 박사과정을 모두 마칠 때 나이가 55세였습니다. 참으로 고단한 길을 살아왔지만 그는 하나님이 자신의 도우심이였다고 고백합니다. 그분은 이런 고백을 합니다. “저에게는 도움을 줄 만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부모님은 일찍 세상을 떠났지요, 동생들은 줄줄이 있지요, 친척도 친지도 아무도 나를 도와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나는 도움 받을 사람이 아무도 없고 의지할 것이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만 의지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할 수밖에 없었고 하나님만 믿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 앞에 아침마다 가서 새벽 기도를 했습니다. 여행할 때도 어디를 가서나 새벽 기도를 늘 빠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믿음을 주시고, 용기를 주시고, 희망을 주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이 자신의 도움이었고 하나님의 은혜로 인생에 승리했다고 고백합니다. 부모가 없어도, 재산이 없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어도, 하나님은 우리를 도와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행복자입니다. 시 118:8,9에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사람을 신뢰하는 것보다 나으며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고관들을 신뢰하는 것보다 낫도다.” 배경이 없어도, 돈이 없어도 괜찮습니다. 주님을 의지하여 승리하기를 바랍니다.
3.행복한 성도에게는 성령 충만함과 사랑이 있습니다.
성령 충만하면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게 되기 때문에 행복합니다. 롬 14:17절에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이라고 말합니다. 내 마음에 성령이 충만하면 모든 근심, 염려, 두려움이 물러가고, 감사와 기쁨과 평강과 담대한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교회에서 “은혜 받았다”라는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그 말은 성령을 경험했다는 말의 다른 표현입니다. 우리는 찬송하다가 은혜 받고, 말씀을 읽고 묵상하다 은혜를 받고, 기도하다가 은혜 받고 또 설교 듣다가도 은혜를 받습니다. 아무리 괴로운 일이 있어도 은혜를 받으면 행복해집니다. 노력하고 애써도 안 되던 일이 은혜 받으면 희한하게 풀려집니다. 은혜가 충만하면 현실을 보면 괴로울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도 이상하게 마음에 감사와 평안과 기쁨이 넘칩니다. 성도에게 은혜가 떨어지면 근심, 염려, 두려움이 그 마음을 주장하게 됩니다.
성령 충만은 사랑의 사람이 되게 합니다. 성령의 열매 가운데 맨 먼저 사랑의 열매가 맺어집니다. 사랑은 사람을 행복하게 합니다. 모든 것이 다 갖추어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불행하게 됩니다. 그러나 가진 것 없어도 사랑이 충만하면 행복한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사랑에는 기쁨이 있고, 감사가 있고, 치유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미국에서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어느 병원에서 한 산모가 쌍둥이를 조산으로 낳아서 인큐베이터에 따로 따로 두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쌍둥이 동생의 심장이 안 좋아서 숨이 고르지 못하고 점점 죽어가자, 의사가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 때, 간호사가 “선생님 이왕에 며칠 있으면 죽을 턴데 제 형하고 같이 인큐베이터에 있게 하지요.”라고 말했답니다. 병원 법으론 안 되는 것이지만, 죽을 아이니까 한 인큐베이터에 형과 동생을 나란히 눕혀 놓았답니다. 그런데, 그 쌍둥이 형이 오른손으로 동생의 목을 감아주었고, 하루가 지나자 동생이 정상으로 회복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조산아지만, 형이 동생을 사랑으로 포옹해 줄 때, 놀라운 치유력이 발생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아이는 며칠 후에 건강해져 잘 살고 있다고 합입니다. 이것이 사랑의 치유력입니다. 사랑하고 사랑받으면 몸도 마음도 행복하고 건강해집니다.
성령 충만한 은혜로 여러분에게 사랑이 넘치기를 기원합니다. 여러분, 가족을 사랑하세요. 가정생활 행복해집니다. 교우들을 사랑하세요. 교회생활도 행복해집니다. 직장동료들을 사랑해보세요. 직장생활도 행복해 질 것입니다.
4.행복한 성도에게는 범사에 감사하는 자족의 마음이 있습니다.
사람마다 제각각의 삶의 방식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적은 것을 가지고도 만족하면서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많은 것을 가지고도 늘 불만족스럽게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적은 것 때문에 낙심하고, 자신을 비관하면서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많이 가진 그것 때문에 오히려 불행스럽게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렇게 혼란스러운 인생들에게 신앙인의 삶은 어떤 것인지 본문에서 바울은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바울은 환경에 따라 희비가 바뀌는 삶을 살지 않았습니다. 있든지, 없든지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 어떤 형편에서든지 감사하며 사는 신비로운 삶을 살았습니다. 바울에게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함으로 자족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것은 곧 신앙의 자족을 말합니다. 바울은 이런 자족의 생활을 자신의 삶을 통해서 배웠다고 했습니다. 자족은 모든 경험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입니다. 여기 '배웠다'는 말은 그냥 터득된 것이 아니라 어려운 과정을 통해서 배웠다는 것입니다. 인생의 희로애락 속에서 철저하게 배운 삶의 비결이라는 말입니다. 바울은 그래서 '어떠한 형편에든지'라는 단서를 달고 있습니다. 가난 속에서도, 부함 속에서도, 질병의 고통 속에서도, 건강한 상태에서도, 핍박과 죽음 앞에서도 변함없이 살 수 있는 자족을 배웠다는 것입니다.
이런 자족의 비결은 어디서 온 것일까요? 13절에서 우리는 그 답을 찾을 수가 있습니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내게 능력주시는 자라는 말속에는 바울의 마음속에 내재하고 계신 그리스도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울 안에 계신 예수님이 그의 능력이 되시고, 공급자가 되시고, 위로 자가 되시고, 소망이 되시고, 복과 은혜의 원천이 되시니 아무 부족함이 없다는 고백입니다. 이 고백이 우리 모두의 고백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행복한 성도에게는 ♡구원에 대한 감사와 감격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에 대한 확신이 있습니다. ♡성령 충만함과 사랑이 있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자족의 마음이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 행복한 성도로 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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