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누가복음

부활 생명, 산 신앙 눅24:1-12, 고전15:12-19

nam씨 2016. 3. 26. 11:37


부활 생명, 산 신앙 눅24:1-12, 고전15:12-19

 

미국에서 스탠포드 대학은 우리나라 서울 대, 연 고대처럼 명문 대학입니다. 그런데 그 스탠포드 대학을 설립한 사람이 바로 '스탠포드'입니다. 스탠포드가 스탠포드 대학을 설립한 동기가 있습니다. 스탠포드는 부자였습니다. 캘리포니아 출신 상원의원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외아들이 죽었습니다. 잘 생기고 수재였던 외아들이었습니다. 극도의 슬픔에 잠긴 아버지는 장례식에서 말을 잃었습니다. 슬픔 속에 잠을 자지 못 하고 있는 데 그 날 밤 꿈에 아들이 생생한 모습으로 나타나 말했습니다. '아버지 저는 부활하신 예수님 곁에 있습니다. 저 대신 청년들을 도와주셔요.'

 

스탠포드는 이 환상을 보고 인생관이 확 바뀌고 말았습니다. '예수님도 살아 계시고 내 아들도 살아있다!' 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아들의 소원을 들어 주기로 하고 청년 교육에 전력을 다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 당시 거액인 2천만 달러 약 200억 원을 바쳐서 오늘의 명문인 스탠포드 대학을 설립했습니다. 그리고 어려운 학생들을 돕는 일에 전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는 죽을 때 이런 유서를 남겼습니다. '나의 재산은 10원짜리 동전 하나 남기지 말고 청년 교육에 사용하라' 우리가 부활하신 주님을 믿고 장차 주님과 함께 산다는 믿음을 가지게 되면 스텐포드처럼 인생관, 가치관이 변화되어 하늘나라에 소망을 두고 사는 자가 됩니다.

오늘은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부활절입니다. 두 본문을 중심으로 부활 생명, 산 신앙이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예수님의 부활은 인류 역사에 획기적인 사건입니다.

 

지구상에는 수많은 종류의 종교가 있지만 부활절을 지키는 종교는 없습니다. 이유는 종교 창시자나 믿음의 대상이 믿는 자들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죽은 일이 없고 부활한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에는 부활절이 있습니다.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가 믿는 자들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상에서 못 박혀 죽으셨다가 3일 만에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간혹 사이비 이단들이 자기는 죽지 않고 영원히 산다고 했다가 죽게 되어 허황된 거짓으로 드러나게 되었고, 지금도 그렇게 미혹하는 자들도, 또 그러한 미혹 자들을 추종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말고는 세상에 그러한 자들이 없습니다. 조만간 그들도 얼마나 허황된 미혹 자들인가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어느 재벌이 자기가 젊었을 때에 잃어버렸던 아들을 찾는다고 광고를 했습니다. 아들로 인정이 된다면 수많은 재산을 물려받게 될 것이기에 많은 젊은이들이 아들이라고 찾아왔습니다.

 

그 중에 한 젊은이는 진짜 아들 같았습니다. 나이도 같고 생김새도 재벌과 닮았고, 어깨의 흉터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유전자검사를 했는데 전혀 다르게 나왔습니다. 알고 보니 미리 재벌의 잃어버린 아들의 정보를 캐내서 다 조작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처음부터 다 가짜였습니다. 그가 재벌과 같은 김 씨라는 것도, 어렸을 때에 어느 고아원에서 자랐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얼굴도 성형해서 비슷하게 했고 흉터도 교묘히 위장한 것이었습니다.

 

친자확인에 있어서 유전자 검사는 가장 중요한 증거가 됩니다. 그러므로 유전자검사에서 친자식으로 인정되면 그가 주장하는 모든 증언은 사실이 되는 것이고 친자가 아닌 것으로 검사결과가 나왔다면 그가 주장한 모든 것은 거짓이 되는 것입니다. 이단들은 사단의 영을 받아 너무 지혜롭게, 그럴 듯하게 꾸미고 조작하여 사실인 것처럼 위장을 잘 합니다.

성경을 너무 잘 알고 말씀을 교묘히 조작하여 교묘한 짝퉁을 만들어 자기들이 가르치는 것이 진짜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그 모든 것들이 거짓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기독교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부활신앙입니다. 부활이 없다면 기독교신앙 자체가 무너지고 맙니다. 사도바울이 그토록 심각하게 염려한 것은 고린도교회에 이 중요한 부활신앙에 균열이 생기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부활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성경이 잘 증거하고 있습니다. 복음서 본문 눅24:5-6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했습니다. 서신서 본문 고전15:13-15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였음이라 --”했습니다.

 

주님의 부활은 역사적 사실임을 성경 여러 부분에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 증거 중 몇 가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빈 무덤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무덤을 찾아 갔을 때 천사가 증거하고 있습니다.

*부활의 증인들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고전15:3-7에는 예수부활을 목격한 사람을 순서대로 기록하고 있는데 나중에는 500여명에게 일시에 보였고 그 중 태반이 지금 살아있다고 하였습니다. 이 성경을 기록한 때가 예수 부활로부터 불과 25년 남짓한 때였으므로 목격자가 생존해 있다는 위 성경은 사실대로 쓴 것입니다.

*제자들의 변화가 증거하고 있습니다. 처음에 부활을 믿지 못하고 두려움 가운데 있었던 제자들이 부활 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에 돌변하여 고난과 죽음을 무릎 쓰고 부활하신 예수를 증거 했습니다.

*교회의 탄생이 주님의 부활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확고한 부활 신앙으로 무장하여 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2.부활 생명을 믿는 산 신앙인으로 삽시다.

 

서신서 본문에 부활을 확신하는 믿음이 없으면 그 믿음이 헛것이 되고 만다고 말합니다. 주님은 죽은 분이 아니라 사신 분으로 나와 함께 하시는 분이요, 장차 나도 부활하여 주님과 함께 주님께서 예비한 나라에 들어가 영생하는 하늘 백성이라는 사실을 의심 없이 믿고 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가 아무리 예수를 잘 믿었다고 해도 참 믿음의 사람이 아닙니다. 결국 망하는 것이라고 서신서 본문은 말합니다.

 

어떤 성도가 꿈에 새 예루살렘성에 가 보게 되었습니다. 높은 시온 산꼭대기에 새 예루살렘 성을 잘 지었는데 금강석과 홍보석과 녹 보석과 가지각색 보석으로 아름답게 장식한 성이었습니다. “내가 정말 새 예루살렘성에 가까이 왔구나.” 한 걸움 두 걸음 점점 올라가 보니 큰 문이 있는데 계시록에 기록한 대로 큰 진주로 된 문이었습니다. “. 내가 새 예루살렘성에 왔구나!” 생각하고 문을 두드렸습니다. 두드리자마자 문이 곧 열리더니 베드로가 척 내다봅니다.

 

저는 아무 교회에서 온 아무개올시다.”라고 말하니 베드로가 묻습니다. “이 성에 들어오려면 믿음표가 있어야 하는데. 믿음 표를 가지가 왔느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사업가였던 이 분은 사정을 해보았습니다. “나에게는 믿음표가 없지만 아무 교회에 십년 이상을 다녔는데 좀 들어갈 수 없습니까.”

 

베드로가 하는 말이 그것은 안 돼! 아무리 오래 다녀야 쓸데 있나 믿음표가 있어야지.” “그런게 아니올시다. 사실은 제가 그 교회에서 장로였습니다. 그래도 좀 들어갈 수 없습니까?” 베드로 사도가 하는 말이 아니. 믿음 없이 장로 십여 년이나 했으면 얼마나 말썽만 부렸을꼬. 그게 무슨 쓸데가 있어하고는 베드로가 성격이 급한 분이라 문을 꽝 닫고 들어갔습니다. 문을 꽝 닫치는 소리에 깨 보니 꿈이더랍니다. 꿈이었기에 다행이지 실제 상황이었다면 얼마나 황당한 일이었겠습니까?


왜 부활 신앙이 중요할까요? 그 몇 가지 이유를 들어보겠습니다.

*성경과 예수님이 믿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부활에 대해 곳곳에서 증거하고 있고, 예수께서도 십자가 수난과 부활에 대해 몇 차례 언급하셨습니다. 만일 부활의 사실을 은폐 하려 했던 당시 종교 지도자들의 말대로 제자들이 시신을 몰래 숨겨두고 거짓을 유포했다거나, 주님을 너무 사모하여 헛것을 보고 거짓 증거 했다면 기독교는 거짓 위에 세워진 사기 집단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복음전파가 헛된 것이 될 것입니다.

서신서 본문 14절에 예수님이 부활하시지 않았다면 복음을 전하는 것도 헛것이고 또 전한 복음을 믿는 것도 헛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 헛것이라는 말은 내용이 아무것도 없고 외형만 가진 빈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믿는 것은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신 주님을 믿고 의지함으로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인데 예수님이 부활하시지 않고 죽어서 썩어버리셨다면 그리스도인들은 헛것을 믿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죄의 사함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17절에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지고 십자가에 죽으셨고, 부활하심으로 죄의 결과인 죽음을 이기시고 다시 사신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부활이 없다면 인간은 여전히 죽음의 권세 아래, 즉 죄의 권세 아래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에서 해방될 수도 없고 죄를 사함 받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불쌍한 자들이 될 것입니다.

19절에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했습니다. 왜 불쌍한 자들이 될까요? 왜냐하면 부활과 구원을 믿고 열심히 주님을 위하여 살다가 죽은 성도들은 영생을 얻지 못하고 그냥 망해버리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는 여인들처럼 죽은 신앙인으로 사는 것은 아닌지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산 생명의 부활 신앙의 사람으로 사는 성도들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3.부활 신앙을 가진 성도답게 살면서 부활의 증인으로 삽시다.

 

부활 신앙이 없다는 것은 이 세상만 있고 영원한 세상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부활 신앙을 가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을 위하여 사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천국을 바라보며 이 땅에서 천국의 복을 바라보고 희생하고 절제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어렵고 힘들지만 의로운 길을 걸어가는 자로 살게 됩니다.

 

만일 하루밖에 살수 없는 하루살이가 일주일 후에 먹을 양식을 저축하기 위해 오늘 굶는다면 어리석고 불쌍한 존재일 것입니다. 5년도 살지 못하는 생쥐(수명 3)10년 후에 살 집을 짓기 위하여 현재 고생을 하고 있다면 얼마나 어리석고 안타까운 일입니까?

마찬가지로 영원한 생명도 없고 천국도 존재하지 않는다면 천국의 축복을 위하여 믿음을 지키며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살기 위하여 물질도 시간도, 명예도 포기하며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야말로 가장 어리석고 불쌍한 인생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부활이 있어서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가난해도, 병이 들어도, 사업이 망해도, 억울하게 고난을 당해도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AD 54년에 17세의 나이로 즉위한 네로황제는 자칭 예술가라고 여기면서 자아도취에 빠졌지만, 정서적인 불안감이 심한 인물이었습니다. 10년 후인 AD 64년경에 로마시의 1/3이 타버린 방화사건 이후에, 네로황제는 그 방화의 책임을 초대 그리스도인들에게 물었습니다. 방화의 주범은 네로황제가 아니라, 바로 초대 그리스도인들이라고 억지로 우겼습니다. 그 일을 시작으로 로마에서는 초대 그리스도인들을 무섭게 핍박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심지어는 원형경기장 안에 초대 그리스도인들을 모아놓고 여러 날을 굶긴 사자들을 풀어놓기도 했습니다. 사자들이 초대 그리스도인들에게 달려가 물고 찢으며 먹는 것을 보고 즐기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을 사자 밥으로 만든 그날 밤에, 네로황제는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얼마나 고통스럽게 죽었는지 확인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는 횃불을 들고 죽은 그리스도인들의 시신을 보기 위해서 시체보관소로 들어갔다가, 그만 충격을 받고 말았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이 고통스러운 얼굴을 하고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예상과는 다르게 죽은 그리스도인들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그걸 바라보면서 네로황제는 중얼거렸습니다. ‘어떻게 사람이 죽음 앞에서, 그것도 사자 밥이 되어 죽어가면서도 밝게 웃을 수 있는 걸까? 이 사람들이 믿는 기독교가 도대체 무엇이기에 죽음조차도 초월할 수 있단 말인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죽음을 이기는 부활의 힘입니다. 온전한 부활의 신앙만 있다면, 사자의 밥이 되어도, 교수형을 당해도, 부글부글 끓는 쇳물 속에 던져진다고 해도, 그 상황을 능히 신앙으로 극복하고 이길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육신의 죽음으로 모든 게 끝나는 인생이 아니라, 영생으로 이어지는 부활이 있음을 확실히 믿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죽은 자의 부활을 알지 못하고 천국과 지옥심판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지금도 부활 후에 들어갈 영원한 세상을 꿈꾸며 믿음생활을 하는 우리들을 어리석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세상 마지막 때에 진정 어리석은 사람은 자신이었음을 깨달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죄 사함 받은 성도들이 천국으로 갈 때에 자신들은 지옥심판을 받으면서 땅을 치며 후회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고 말았습니다.

 

그러니 그 심령들이 얼마나 불쌍합니까? 부활하신 사랑의 주님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고 제자들에게, 오늘 우리들에게 당부하셨습니다. 복음서 본문에 천사들이 예수님의 부활 예고를 이야기하자 여인들이 비로소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였습니다. 여인들이 무덤을 떠나 제자들이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여인들은 제자들에게 자기들이 보고 들은 것을 말하였습니다. 부활의 증인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후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소식을 전하는 부활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부활 신앙을 가지고 담대한 믿음으로 부활의 증인으로 살다가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하는 복 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정리합니다.

 

1.예수님의 부활은 인류 역사에 획기적인 사건입니다.

 

2.부활 생명을 믿는 산 신앙인으로 삽시다.

 

3.부활 신앙을 가진 성도답게 살면서 부활의 증인으로 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