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누가복음

믿음을 더하소서 (눅 17:1-10)

nam씨 2016. 1. 23. 12:44

믿음을 더하소서 (17:1-10)

이 시간에는 믿음을 더하소서.” 라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성경에 영육 간에 복을 받은 사람이 많지만 그 중에 많이 받은 한 사람을 들라 하면 솔로몬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에게 전무후무한 지혜와 총명을 주셨을 뿐 아니라 구하지 아니한 부귀와 영광과 권세까지 주신 이유는 뭘까요? 그 비밀이 왕상3:10에 있습니다. “솔로몬이 이것을 구하매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든지라구하는 기도가 하나님 맘에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년 초에 하나님 앞에 구할 것이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가장 맘에 든 기도를 드린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구하지 아니한 것까지도 얼마든지 더하여 주실 수 있는데 우리는 과연 무엇을 구해야 할 것인지,,, 이 시간, 저는 그런 관점에서 제자들이 예수님께 부르짖었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했던 그 기도를 우리도 드려야 한다고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왜 우리가 믿음을 위해서 기도해야 할까요?

 

1. 구원의 확신을 갖기 위해서입니다.

 

16:22-23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그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오늘 말씀의 문맥을 보면 바로 앞의 눅 16장 사건까지 연결됩니다. 바로 16장의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입니다. 제자들은 부자가 지옥에 떨어진 것을 보고 불신의 결과가 얼마나 중대한가를 깨달았습니다. 잠깐도 그렇지만 영원토록 그러하다면 보통 일입니까? 믿음이 없으면 세상에서 아무리 성공하고 부귀영화를 누리며 산다고 해도 기다리는 것은 오직 뜨거운 지옥불 밖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그 부자가 예수 믿었다라고 기록하고 있지는 않지만, 믿는 자가 천국 간다는 점에서 그는 믿지 않았다. 겉으로 믿었어도 진실로는 믿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또 그가 믿음이 없었다는 것을 우리는 그의 집 대문에 거지를 방치한 것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자신은 부자로서 자색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잔치하며 살아갔지만, 그 집 대문의 나사로라 이름 한 한 거지는 그 부자의 대문에 누워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기다리며 누워 있는데 어찌나 몸이 상하고 터졌든지 그 헌데를 개들이 와서 핥았다고 했습니다.

 

과연 부자의 마음에 예수님이 계신다면 자기 혼자 호화롭게 사치하며 살아갈 수 있겠으며, 대문 밖의 거지를 방치할 수 있겠습니까? 그 열매로서 나무를 안다는 말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나사로는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천국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갔지만 부자도 죽어 장사되었으나 부자는 지옥 음부에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고후13:5너희가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받은 자니라.”고 말씀합니다. 부자와 나사로의 말씀으로 비추어 볼 때 정말 마음에 예수를 모시고 있다고 확신하십니까? 반성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믿음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2. 남을 실족시키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1-2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실족하게 하는 것이 없을 수는 없으나 그렇게 하게 하는 자에게는 화로다 그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를 실족하게 할진대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

 

이 역시 중요한 문제입니다. 내 믿음이 부족하여 작은 소자라도 한 사람 실족시킨다면 그것은 차라리 연자맷돌을 그 목에 달고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낫다는 말입니다.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을 실족시켜 지옥 가게 한다면 그만큼 두려운 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 중에 어떤 한 사람을 특정하여 고의적으로 실족시킨 일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고전9:16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

 

이처럼 우리가 믿음이 없어서 은혜를 끼치지 못하고, 우리가 믿음이 없어서 전도하지 못하고, 우리가 바로 살지 못해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지 못해 전도 길을 막았다면 우리 역시 실족시키는 자 가운데 있다는 것입니다.

 

독일 히틀러 정권에 항거하다가 8년 동안 옥고를 치른 마르틴 미네르라는 목사 이야기입니다. 전쟁이 끝날 무렵 미네르 목사가 일곱 번이나 똑같은 꿈을 꾸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 줄로 서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데 심판대 앞에 선 사람들은 한 사람도 뒤를 돌아보지 못하고 자신만 바라보고 자신의 죄를 하나님께 고백을 합니다. 그리고 용서를 구하는 것입니다.

 

이 목사님도 그 대열에 서 있는데 어떤 한 사람이 이상하게 죄를 고백하지도 않고 회개도 하지 않고 뒤를 돌아보면서 자꾸 변명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누구인가 자세히 바라보니 그가 다름 아닌 바로 2차대전을 일으킨 히틀러였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히틀러가 이렇게 된 것이 바로 네 책임이다. 네가 8년 동안 히틀러정권에 대해 항거만 했지 한 번이나 그에게 전도했느냐? 네가 히틀러에게 전도했더라면 그가 무서운 폭군이 되어 전쟁을 일으키지 않았을 것이 아니냐? 전쟁을 일으킨 죄 값이 바로 네가 전도하지 않은 데 있다.”고 지적하셨습니다. 이 말을 들은 목사님은 소스라치게 놀라 가슴을 치고 통곡하면서 이 전쟁의 책임이 바로 나에게 있다.”고 고백하며 회개의 눈물을 흘리면서 쓴 책이 바로 전쟁백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믿음을 구해야 합니다. 그런 일이 없기 위해서 믿음을 구해야 합니다.

 

3. 남을 용서하고 내가 용서 받기 위해서입니다.

 

3-4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만일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

 

우리가 용서해야 하는 이유는 그 사람을 위해서도 그렇지만 내가 하나님께 용서 받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6:14-15)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주기도문 할 때도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12) 라고 기도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금 일만 달란트의 비유에서도 주님은 또 다시 강조하셨습니다. 그 큰 죄를 탕감 받고도 남을 용서하지 않으면 나도 용서하지 않으시겠다는 것입니다.

 

혹시 마음이 답답하고 기도해도 하나님께서 들으시는 것 같지 않고 영적생활에 진전이 없다면 삶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다 용서해 주셨어도 남을 용서하지 않는다면 무효라고 말씀하십니다.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용서하고 축복하고 사랑한 만큼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누린다는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4. 하나님의 기적적인 도우심을 위해서입니다.

 

5-6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우리가 세상을 살아갈 일들이 만만치 않습니다. 우리 신앙의 문제, 육신의 문제, 우리 자녀 사업 나라 사명 그리고 내세의 문제까지 항상 평탄하면 좋겠지만 때로는 홍해나 태산과 같은 장애가 우리 앞을 가로 막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절대적인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다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 산이라도 바다에 던져지라 하면 순종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믿음이 있습니까? 사실은 그런 믿음을 주셨습니다. 다만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확인할 수 없을 뿐이지요.

 

그러나 믿음은 가졌다고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은 믿어야 믿음이고, 행해야 믿음입니다. 믿고 행할 수 있는 믿음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명령할 수 있는 믿음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 믿는 것이 부끄러워 할렐루야도 아멘도 할 수 없어 어색하다면 믿음 부족입니다.

 

부르짖고 기도해야 할 때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면 그것도 믿음 부족입니다. 봉사 헌금 헌신해야 하는데 그것이 아깝다면 믿음 부족입니다. 그 믿음 가지고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그 무엇을 간구하기보다 믿음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 때 우리 앞에 하나님의 기적적인 도우심이 있게 될 것입니다.

 

5. 그 뿐 아니라 교만하지 않고 하늘의 상을 위해서입니다.

 

7-10너희 중 누구에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그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말할 자가 있느냐 도리어 그더러 내 먹을 것을 준비하고 띠를 띠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감사하겠느냐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우리가 좋은 일하고 버림 받지 않으려면 이 무익한 종의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종이 하루 종일 일하고도 대접 받지 못하고 저녁에도 주인 밥상 먼저 봐드린 후에 밥을 먹듯이 자기 권리를 조금도 주장하지 않아야 합니다. 나아가 사람들이 나를 칭찬하고 추앙하면 내가 이 교회에서 신앙생활하기 불편하구나 할 줄 아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기에 서운하고 시험 들고 하늘의 상도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11:6에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믿음이 있어야 구원 받고, 믿음이 있어야 기쁘시게 하고, 믿음이 있어야 나도 남도 실족하지 않고, 믿음이 있어야 용서 하고 용서 받고, 세상을 이겨나갈 수 있고, 교만하지 않고 하늘의 상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들처럼 나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날마다 부르짖고 기도하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