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직분 (아 5장10-13)
요 약
우리가 예수님을 자랑하는 것은 우리와 관계된 아름다우심 때문이다. 먼저는 예수님은 우리의 유일한 구주가 되신다. 또 만 왕의 왕으로 우리를 다스려 주심으로 하나님 나라를 누리며 살게 하신다. 또 우리 주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사 우리를 도우시는 분이시다. 그리고 선하시고 온유하시며 사랑하시고 친절하사 우리를 지도하시고 인도하시며, 항상 은혜와 진리의 충만한 가운데로 이끌어 주신다.
설 명
1. 배 경
⇒ 술람미가 남편의 성기를 묘사하는 내용이다.
2. 적 용
(진단) 서로의 테크닉이 있어도 부족하지는 않나요?
(해결) 평안과 인격과 건강 등을 배려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3. 나의 만족이신 예수님
1) 예수님은 나의 구주
10절 “나의 사랑하는 자는 희고도 붉어 만 사람에 뛰어난다”
: 잘 발기됨을 묘사함이다.
2) 예수님은 만왕의 왕
11절 “머리는 정금 같고”
: 귀두 부분의 부드러움을 말함이다.
3) 동일하신 예수님
11절 “머리털은 고불고불하고 까마귀 같이 검구나”
: 성기 주변의 것으로서 젊음을 시사한다.
4) 선하시고 온유하신 예수님
12절 “눈은 시냇가의 비둘기 같은데 젖으로 씻은 듯하고”
: 흐르는 정액을 묘사함이다.
5) 사랑과 친절의 예수님
13절 “뺨은 향기로운 꽃밭 같고 향기로운 풀 언덕과도 같고”
: 비비거나 충동으로 인한 쾌감을 시사한다
6) 말씀이신 예수님
13절 “입술은 백합화 같고 몰약의 즙이 뚝뚝 떨어진다”
: 입맞춰 줌으로 아내의 충동을 암시한다.
아가 5:10-13
10 (술람미)나의 사랑하는 자는
희고도 붉어 만 사람에 뛰어난다
11 머리는 정금 같고 머리털은
고불고불하고 까마귀 같이 검구나
12 눈은 시냇가의 비둘기 같은데
젖으로 씻은 듯하고 아름답게도 박혔구나
13 뺨은 향기로운 꽃밭 같고 향기로운 풀 언덕과도 같고
입술은 백합화 같고 몰약의 즙이 뚝뚝 떨어진다
원 문
10 ידוד ‘도디(내 사랑하는 자는) םודאו חצ 차흐 웨아돔(밝고 붉어서) לוגד다굴(뛰어나도다) הבברמ 메르바바(만 명 중에서)’
11 ושׁאר 로쇼(그의 머리는) זפםתכ 케템 파즈(가장 좋은 금같고)
ויתוצוק 케우초타우(그의 머리털은) םילתלת 탈탈림(곱슬하고)
תורחשׁ 쉐호로트(검도다) ברועכ 카오레브(까마귀같이)
12 ויניע 에나우(그의 눈은) םינויכ 케요님(비둘기 같도다)
םימ יקיפא־לע 알 아피케 마임(샘물 곁에 있는) תוצחר 로하초트(목욕하였도다)
בלחב 베할라브(우유로) תאלמ־לע תובשׁי 요쉬보트 알 밀레트(적절하게 앉았도다)
13 ויחל 레하야우(그의 볼은) םשׂבה תגורעכ 카아루가트 합보셈(향기로운 침대 같고)
םיחקרמ תולדגמ 미게델로트 메르카힘(향기로운 들판과 같으며)
ויתותפשׂ‘시프토타우(그의 입술은) םינשׁושׁ 쇼솬님(백합화로다)
תופשנ 노트포트(떨어지는) רבע רומ 모르 오베르(몰약의 향이)
스 토 리
시녀들의 묻는 말에 술람미는
자신도 모르게 희열에 넘쳐 남편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 자랑은 아내를 만족케 하는 남편의 구체적인 면이었다.
나의 남편은 뛰어나도록 크고 강하며
지혜가 있어 여러 테크닉을 구사함은 물론
쉽게 끝내지 않고 지속시키면서
갈급한 심정으로 반복적으로
깊숙이 찾아드는 그 미끄러움은
내가 느끼는 그 부분들을 아주 잘 알고 있단다.
특히 백합화와 같은 입술로 네게 입을 맞출 때는
나도 모르게 내 몸은 뜨겁게 달아오른단다.
(강 해)
본문은 술람미의 남편 자랑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입니다. 이 구체적인 자랑에는 솔로몬의 일반적인 위대성보다 아내를 만족하게 해 줄 수 있는 인격적 신체적 지식적인 여러 조건을 구비하고 있음을 여러 방향에서 시사함입니다. 술람미는 이와 같은 남편의 서비스를 늘 경험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술람미가 욕구불만에 걸렸다면 그것은 자신의 잘못입니다. 이처럼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주님의 온전하심이 변함없는데도 참된 영적인 기쁨을 모르고 살아가는 데 깨달아야 할 바가 큽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은 신령한 의미에서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인격과 사역을 나타냄이요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나에게 진정한 행복을 주실 수 있는 여러 조건이 되심을 가리킵니다.
여기에 대한 성경의 배경은 고전1:30-31입니다. 즉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니라” 마치 술람미가 남편을 자랑하듯 우리 성도들도 자랑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그 자랑은 약 12가지인데 오늘은 6가지만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이 자랑에서 우리 영혼의 진정한 만족이신 예수님을 발견합니다.
1. 그리스도의 나의 구주이십니다.
10절에 “나의 사랑하는 자는 희고도 붉어 만 사람에 뛰어난다” 했습니다.
이 묘사가 일반적으로 젊고 건강하며 귀족의 용모를 지닌 솔로몬의 뛰어난 얼굴을 묘사함처럼 보이지만 이 표현의 진정한 의미는 남편 성기의 잘 발기되는 현상을 시사합니다. 이처럼 남자의 성은 평소에는 일반 피부 색깔이지만 발기 시에는 혈류가 강해져서 붉은 빛을 띱니다. 만 사람에 뛰어 난다고 했듯 발기가 되면 그 약하던 것이 힘을 가짐으로 아내는 그 뛰어남에 늘 놀라게 됩니다. 그 때 자기의 남편만이 그렇게 뛰어난 것처럼 느끼게 됩니다. 물론 이것은 객관적이라기보다 주관적인 느낌입니다. 여기 ‘뛰어나다’(לגד 다갈)는 기(旗)를 의미하는 (לגד 데겔)에서 유래된 말로 마치 군대의 깃발과 같이 견고히 섬을 의미합니다. 이 때는 결코 남편이 포기하거나 물러서지 않는 때이기도 하기에 이런 표현을 쓴 것입니다. 이런 건강하고 정상적인 남편을 술람미가 문제 있다고 생각한 것은 커다란 오해입니다.
신령한 의미에서 박윤선 박사를 비롯한 여러 학자들은 “흰색은 주님의 성결과 신성을, 붉음은 인성과 보혈의 속죄를 상징한다”고 해석했습니다. 여기에 나타나는 신앙양성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잘 나타내고 있으며 이는 오직 유일하신 우리의 구주이심을 가리킵니다. 그럼 왜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본체의 일부이시지만 인성을 취하셔야 했을까요? 그것은 우리를 죄악과 멸망에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대속의 죽으심을 위해서였습니다. 이러한 분은 만 사람에 뛰어난다고 했듯이 예수밖에는 구원자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처럼 “주 예수를 믿으라”고 외쳐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자랑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의 구주이심을 믿는 자는 참으로 자랑할 만큼 귀한 영생과 신분을 얻게 됩니다. 그 뿐 아니라 우리를 괴롭히던 죄과와 죄성까지도 사라지게 해 주셨으니 얼마나 만족합니까?
2. 예수님은 우리를 다스려 주시는 만 왕의 왕이십니다.
11절에 “머리는 정금 같고” 라 했습니다.
이 표현은 언 듯 지혜로운 솔로몬 즉 황금의 머리(Golden head)를 연상시킵니다. 그러나 여기 ‘정금’(זפםתכ 케템 파즈)은 ‘잘 정련된 금’(purest gold)을 뜻하는데 정금이 몇 군데에서 쓰인 용례가(5:14) 그렇듯이 대개 정금은 부드러움의 상징입니다. 부부생활의 관점에서 볼 때 정금 머리는 남편 성기의 귀두를 암시합니다. 그리고 머리의 모양이 시사하듯 귀두는 적절히 자극하기에 알맞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귀두는 부드럽고도 뭉툭하여 부부생활에서 여성의 성감대를 자극하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아내의 오르가즘을 좌우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좀 달리 솔로몬의 지혜에 적용해 본다면 아내를 만족시킬 온갖 테크닉의 소유자임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어떤 면으로 보든지 솔로몬이 아내를 만족시키지 못할 하등의 문제가 없음을 아내 자신의 입술을 통해서 우회적으로 묘사함입니다.
이처럼 주님은 우리를 지배하사 만족케 하시는 만왕의 왕이십니다. 이 왕권으로 다스리심이 곧 구원이요 하나님 나라요 영생입니다. 이 왕권은 주님께서 극히 낮아지심으로 아버지께 받아 이룩된 영구한 것입니다. 그래서 빌2:8-11에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왕권은 우리를 그 안에 포함하신 왕권이니 우리의 왕권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높이 되신 그리스도 안에서 왕권을 누림을 확신하면 하나님 나라가 임하고 죄인들에게 자랑하면 구원이 나타나고 원수 사단에게 증거하면 사단이 놀라 물러갑니다. 이 높이 되신 예수 안에 있다고 믿을 때 비로소 진정한 천상이 만족된 경험이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천국의 중심에 와 있다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통치하신다는 믿음에 서면 만사를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시는 형통이 임합니다. 참으로 만왕의 왕이신 우리 주님의 절대 주권을 믿을 때 우리는 만족을 누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3.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예수님이십니다.
11절에 “머리털은 고불고불하고 까마귀 같이 검구나” 했습니다.
이 역시 일반적인 머리털처럼 여겨지는 묘사입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머리털이 심히 고불고불하다는 것입니다. 이 고불고불은 반 곱슬머리가 아닌 완전한 곱슬머리입니다. 당시 미인의 조건은 숱이 많은 반 곱슬머리에 까마귀같이 검은머리였습니다(삼하14:25-26). 이러한 머리털의 소유자는 모두에게 특별한 사랑을 받았는데(삼하14:11, 마10:30, 눅17:7, 눅21:18) 그 예로 솔로몬의 이복형제 압살롬이 그랬습니다(삼하14:26). 그러나 여기 고불고불은 성기 주변의 것으로서 그 검음은 젊음과 활력을 의미합니다(호7:9). 이 남편의 젊고 활력 있는 그 모습은 남편이 조루증을 갖지 않았음을 암시합니다. 그러니까 솔로몬은 정상으로 아내를 만족시킬 충분한 요소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솔로몬의 머리는 언제나 동일하신 활력과 생명의 원천이 되신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강병도). 간단히 요약하면 영원토록 동일하신 생명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이 예수님은 지금도 성령을 통하여 동일하게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도우시며 2000년 전 유대 나라에 오셔서 그러하셨던 것처럼 지금도 동일하게 성령으로 우리들에게 역사하시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위로하시고 고쳐주시고 지도하시고 인도하시고 붙들어 주십니다. 그래서 히13:8에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생명의 영을 충만히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이 영을 경험하면 영생을 얻고 나아가 성화가 이루어집니다. 우리 영혼에 진정한 만족과 행복이 임합니다. 그래서 사58:11에 “나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케 하며 네 뼈를 견고케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했습니다.
4. 선하시고 온유하신 예수님이니다.
12절에 “눈은 시냇가의 비둘기 같은데 젖으로 씻은 듯하고 아름답게도 박혔구나” 했습니다.
이 말씀 역시 솔로몬의 눈과 그 눈 속에 나타나는 고운 심성까지를 칭찬한 묘사로 보이지만 남편의 흐르는 정액을 가리킨 은유입니다. 이 정액은 절정기의 정액이 아니라 아내를 맞이하기 위한 초기적인 현상입니다. 원문을 참고하면 “우유로 목욕하였도다”입니다. 젖에 대해서는 시55:21의 “그 입은 우유 기름보다 미끄러워도” 했듯 미끄러움입니다. 그러니까 남편의 성기는 자체에서 분비되는 점액질과 아울러 아내의 질에서 분비하는 점액질로 인해 원활한 성생활이 이루어짐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남편 솔로몬은 아내를 충분히 준비시키는 테크닉을 가졌음을 봅니다. 이 때 가장 삽입이 원활하고 깊은 삽입이 가능합니다. 특히 비둘기의 눈이란 깊은 것까지도 꿰뚫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깊숙한 진입을 암시합니다. 그리고 이와 같이 깊숙한 삽입은 가장 충만감을 느끼게 합니다. 그래서 ‘아름답게’(תאלמ 밀레트)라는 말은 ‘충만하다’ ‘가득 차다’에서 유래된 용어입니다. 이것을 아름답게도 박혔다고 문학적으로 표현합니다. 혹시 부부생활에서 성적인 고통을 느끼시는 부부가 있다면 테크닉을 통해서 충분히 준비되도록 하십시오. 그 때 체내에서 윤활제가 분비하게 되는데 윤활제는 남편에게서도 나오지만 아내에게서 가장 많이 나옵니다. 그러나 갱년기에 달하신 분들은 그 분비가 현저히 줄어들기 때문에 거기에 준한 보조물질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 때 부부생활이 한결 부드럽고 만족스럽게 됩니다. 이와 같은 조건임을 볼 때 솔로몬의 문제는 술람미가 의심했던 대로가 아니라 지극히 정상적인 것입니다.
이 칭찬은 신령한 의미에서 은혜로 충만하신 자애로우신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그래서 루터는 이 구절을 “한없는 온유와 겸손과 성결한 성품이다”라고 해석했습니다. 그런데 그 자애로움이 가득하고 충만하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11:28-30)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이 온유하시고 자애로우심을 경험하는 자는 만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습3:17에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셨고, 시23:1에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하시면서 6절에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하셨습니다. 그리고 고전12:3에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 자애로우신 주님을 경험한 신앙의 성도들은 행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노래는 신부가 부르는 부부생활의 만족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비둘기 같은 성령이 임하시면 마음에 평안 넘칩니다. 그래서 비둘기를 평화의 상징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이 평안은 세상의 그 어떤 평안보다 더 아름답고 행복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께서는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14:27) 하셨습니다. 롬14:17에도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했으며 빌4:6에는 이 평안을 모든 지각에 뛰어난 평강이라고 했습니다. 이 평안이 오면 세상의 그 어떤 고통과 스트레스도 한 방에 다 날려 보낼 수 있습니다.
5. 사랑과 친절의 예수님이십니다.
13절에 “뺨은 향기로운 꽃밭 같고 향기로운 풀 언덕과도 같고” 했습니다.
솔로몬의 뺨을 원문에 보면 “향기로운 꽃밭 같고”(םשׂבה תגורעכ 카아루가트 합보셈)가 ‘향기로운 침대 같고’ 입니다. 이것을 인격에 비유한다면 항상 밝은 얼굴로서 마음을 편하게 함이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부부생활의 비유로 해석해야 합니다. 그럼 왜 뺨을 향기로운 침대라고 했는가? 당시 사람들은 사랑하는 자를 맞기 위해 침대에 몰약과 침향과 계피를 뿌렸습니다(잠7:17-18). 그리고 아가서에서 향기는 대개 성적인 쾌감과 관계가 깊습니다. 더구나 부부생활에서 뺨은 포옹 시 강한 밀착 부분입니다. 그러므로 남편의 이 뺨은 단순한 얼굴이 아니라 부부생활에서 비비는 듯한 상하작용을 시사한 은유입니다. 이것이 아내에게 향기로움은 이것이 오르가즘으로 이끌어 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뺨은 - 향기로운 풀 언덕과도 같고” 란 전원적이고 목가적인 뉘앙스를 강하게 풍기는 말인데 이 역시 성생활에 적용해야 문맥에 맞습니다. 그러니까 향기란 역시 쾌감을 묘사함이요 풀이 생동적이라면 언덕은 격정을 불러오는 것으로 충동적인 행위를 시사합니다. 이는 부부생활에서 남편의 성기로 인한 충동감을 묘사한 은유입니다. 즉 아내를 오르가즘에 이르게 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상하작용을 넘어 언덕을 오르는 듯한 격정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격정을 통해서 부부는 서서히 만족을 향해 달아오르게 됩니다. 이러한 서비스를 통해서 남편은 아내에게 감동하고 아내는 남편에게 감동합니다. 이 힘든 일을 통하여 서로가 친절과 사랑을 깊이 느낍니다. 이러한 서로의 도움이 없이는 오르가즘을 도출해 내지 못합니다. 그런데 술람미가 남편의 서비스를 자랑하는 내용으로 보아 아직 술람미는 아내의 상위체위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7:1-8을 참고할 때 술람미의 사랑도 자라서 결국 이러한 사랑과 친절의 서비스를 남편에게 하게 됩니다.
이처럼 주님은 참으로 은혜로우셔서 어떠한 죄인들도 관용하시고 용서하시고 용납하시는 친절하신 주님이십니다. 마치 요한이 주님의 품에 누웠던 것처럼 주님은 누구든지 용납하시고 안아주십니다. 그런데 이 얼굴은 한 때 수치와 경멸을 체험하셨던 뺨입니다(사50:6, 마27:30). 꽃밭 같고 풀 언덕과도 같은 얼굴은 원수들에게 뺨을 맞고 침 뱉음을 당하시던 주님의 그 멍든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하시므로 우리에게 한없는 용서와 성령의 기쁨을 주셨습니다. 이 주님이시기에 우리의 죄과를 덮어 주십니다. 영적 생활에서 가장 방해되는 것은 사단의 참소입니다. 우리의 부족을 드러내고 우리의 죄를 드러내고 양심으로 가책을 당하게 합니다. 그 때 이것을 이기지 못하면 주님을 향한 영적인 분위기는 망쳐지고 맙니다. 그러나 주님은 사랑으로 이미 2000년 전에 우리의 죄과와 죄성을 담당하셨고 믿음으로 자기에게 나아오는 자를 용납하셨음을 믿으십시오. 롬5:1-2에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하였습니다. 이 진리는 언제나 담대함으로 믿어야 할 특징이 있습니다(히4:16). 벧전3:21에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오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했듯 심령의 성결함만큼 더욱 하나님 앞의 그 은혜와 영광을 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결의 빛 가운데로 나아가야 합니다(요일1:7). 그러므로 이 용서와 성결의 예수 그리스도를 안다면 어찌 영적 생활의 만족에 도달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6. 은혜와 진리의 말씀이신 예수님이십니다.
13절에 “입술은 백합화 같고 몰약의 즙이 뚝뚝 떨어진다” 했습니다.
이 구절을 먼저 일반적으로 해석해 보겠습니다. 여기 백합화는 팔레스틴 지역에서 많이 서식하는 붉은 백합입니다. 이 백합꽃은 그 모양이 나팔모양입니다. 그러한 입술에서 당시 값비싼 향품인 몰약의 즙이 뚝뚝 떨어짐은 솔로몬이 말만 하면 그 입에서 하늘의 보배로운 진리들이 선포됨을 가리킵니다(왕상4:30-34, 10:1-3). 더구나 ‘떨어지다’(ףשנ 나타프)는 의미는 ‘말하다, 예언하다’(겔21:2, 7, 미2:6)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몰약은 십자가 고난을 상징하는 향품입니다. 그래서 그 진리들을 주워 담기만 하면 모두 보배합이 됩니다. 그래서 시45:2에 “왕은 인생보다 아름다워 은혜를 입술에 머금으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왕에게 영영히 복을 주시도다” 라고 노래했습니다. 이렇게 성경은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서 신비하게 풀려집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부부생활의 관점에서 보면 입맞춤의 만족과 그것의 성적 충동입니다. 그런데 입술 모양이 백합화와 같음은 단순한 입맞춤이 아니라 6:11과 7:12의 석류꽃이 그러하듯 백합화 역시 사랑스러움의 충만함을 시사합니다. 이는 솔로몬의 입맞춤이 유별나다는 뜻이 아니라 술람미가 남편의 입맞춤을 그렇게 느낀 것입니다. 이 남편의 입맞춤은 부부생활에서 술람미의 성을 자극하는 깊은 입맞춤입니다. 이 백합화와 같은 입술로 입맞춤은 단순한 인사나 애정 표시의 입맞춤이 아니오 백합화의 꽃술이 시사하듯 혀를 이용한 키스입니다. 여성은 성적인 자극을 입맞춤을 통해서 얻습니다. 그래서 남편은 아내를 위해 백합화처럼 느끼도록 사랑과 인내로서 입을 맞추어 주어야 합니다. 그 때 아내는 성적인 충동을 강하게 느끼며 점액질을 분비하게 됩니다. 그래서 “몰약의 즙이 뚝뚝 떨어진다”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몰약의 즙이란 입맞춤에서 침이 아니라 아내의 질액의 분비를 말한 것입니다. 이미 5:5에서 언급되었듯 몰약의 즙은 거기서 남편의 정액을 뜻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그와는 달리 아내의 질액의 분비를 가리킵니다. 이토록 자기 만족만 추구하지 않고 아내를 위한 남편의 지혜로운 배려가 있는데 아내가 만족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은 아내의 잘못이요 지나친 피동성 때문입니다.
이는 신령한 관점에서 주님의 은혜로운 말씀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우리 심령의 감화를 상징합니다.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은혜로운 말씀은(눅4:22, 시45:2) 우리에게 온전한 믿음을 유발토록 만듭니다. 눅4:32을 보면 “저희가 그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말씀이 권세가 있음이러라” 했습니다. 그래서 주석가 黑埼幸吉도 이 부분을 “그리스도의 말씀에 은혜와 진리가 넘침을 의미한다”고 해석했습니다. 그래서 롬10:17에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했고, 딤후3:16-17에도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그 아름다운 믿음도 성령의 능력으로 전파된 말씀으로 된 것이었습니다(살전1:5). 그들은 말씀 상고의 모범이 되는 신사적인 교인들이었습니다(행17:11). 그리고 예수님에게 귀한 옥합을 깨뜨려 부은 마리아도 예수님의 발아래서 말씀을 들음으로 그러한 믿음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 꿀보다 더 달도다”(시19:10) 했습니다. 참으로 입맞춤이 그것에 머무르지 않듯 말씀은 지적인 인격 형성만 하지 않고 행위를 유발하고 봉사를 유발하고 예배를 유발하고 찬양을 유발합니다. 그것은 말씀에 진리와 은혜가 충만하기 때문입니다. 혹시 우리의 가르침이 교인들을 교만한 지식인으로만 만들었다면 주님으로 말씀하시도록 엎드려야 할 줄 믿습니다. 참으로 우리는 이 귀한 말씀에서 영의 참된 만족을 얻습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을 경험하고 그 은혜를 받아 우리도 주님으로 만족하고 자랑하십시다. 주님의 은혜로운 그 모든 직분은 다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마십시다. 그래서 죄에서 자유와 천국의 기쁨과 도우심의 은혜와 그의 자애로우심과 말씀을 충만히 경험하시고 자랑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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