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공부 여호수아

요단강 도하(수3장)

nam씨 2015. 11. 28. 13:53

요단강 도하(3)

 

1. 요단 도하 준비(1-6)

"여호수아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이스라엘 사람들로 더불어 싯딤에서 떠나 요단에 이르러서는 건너지 아니하고 거기서 유숙하니라(1). 3일 후에 유사들이 진 중으로 두루 다니며(2), 백성에게 명하여 가로되 너희는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메는 것을 보거든 너희 곳을 떠나 그 뒤를 즞으라(3). 그러나 너희와 그 사이 상거가 이천 규빗 쯤 되게 하고, 그것에 가까이 하지는 말라. 그리하면 너희 행할 길을 알리니 너희가 이전에 이 길을 지나보지 못하였음이니라(4)."

 

여호수아는 정탐꾼들의 보고를 들은 다음 날 아침에 일찍 일어났다. 여호수아는 대사(大事)를 앞두고 항상 최선을 다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침 일찍 진을 정리하고 싯딤에서 출발하여 요단 강 가에 도착해서 그 곳에 진을 치고 그날 밤을 지냈다. 본문에서 떠났다고 번역된 말(나사)'천막 말뚝을 뽑다', '출발하다', '여행하다'를 뜻하는 말이다. 이는 천막 생활을 하며 유랑하던 이스라엘 백서들의 역사적 생활 무대와 잘 어울리는 말이다. 그들은 다음 여행지로 갈 때에 천막 말뚝을 뽑아 천막을 걷어내고 다음 출발지로 향했다. 그리고 '유숙한다'('')는 말은 어떤 장소에서 밤을 보내려고 숙박하는 것을 말한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곳에서 3일을 보냈다. 그들은 요단 강가에서 3일을 유숙하면서 요단 강 도하를 위해 마무리 준비를 하며 여호와의 지시를 기다렸다.

 

3일 후에 유사들은 온 이스라엘 백성들의 진을 두루 돌아다니면서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는 것을 보면 그 뒤를 좆으라고 전달했다.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는 '법궤'(16:2), '증거궤'(30:6), '여호와의 궤'(4:11), '하나님의 궤'(삼상 3:3), '주의 능력의 궤'(대하 6:41)등으로 불렀다. 이 궤 속에는 십계명 두 돌판과 만나 항아리, 그리고 아론의 싹 난 지팡이가 담겨져 있었다(9:4; 왕상 8:9). 이 언약궤를 운반할 경우에는 레위 지파의 고핫 자손들이 직접 어깨에 메어 운반하도록 되어 있었다(4:4-15). 그러나 특별히 중요한 경우에는 제사장들이 직접 운반하기도 했다(31:9; 왕상 8:3, 6). 하나님은 중요한 행진을 하실 때에 한상 언약궤를 앞세우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 뒤를 따르게 하셨다(10:33-36). 이러한 행진 순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가는 것을 의미한다. 성도들의 영적 싸움은 하나님의이도를 따를 때에만 승리할 수 있다. 전령자들은 언약궤와 백성들의 사이가 약 2000규빗쯤 되게 하라고 전달했다. '상거'라는 말은 '멀리 나가다'는 뜻을 가진 '라하크'에서 파생한 형용사로 본문에서는 '...만큼의 거리거 떨어진'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보통 한 '규빗'은 손가락 끝에서 팔꿈치까지의 거리를 말하며 약 45cm가 된다. 그러므로 2000 규빗은 약 900m 정도의 거리인데, 이 거리는 요단 강의 바깥 둑, 곧 엘 그호르(el-Ghor)에서 강바닥, 곧 에즈 조르(ez-Jor)에 이르는 거리이다. 이는 제사장들의 발이 강가에 닿았을 때(8) 백성들은 여전히 바깥 강둑에 머물러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한편 이처럼 일정한 간격을 두고 언약궤를 따라가게 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언약궤에 대해 경외심을 심어 주기 위함이었다(Calvin).

2) 백성들로 하여금 언약궤를 충분히 바라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Keil).

 

한편 후일 유대 랍비들은 본절에 언급된 바 백성들과 언약궤 사이의 거리를 근거로 안식일에 걸을 수 있는 허용 거리를 산출하기도 했다. 언약궤에 '가까이 하지 말라'고 한 이유는 법궤 운반시 웃사(Uzzah)가 무분별하게 법궤에 손을 댔다가 죽은 사건(삼하 6:6, 7)으로 미루어 볼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언약궤를 가까이 했다가 죽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여호수아가 또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스스로 성결케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 기사를 행하시리라(5). 여호수아가 또 제사장들에게 일러 가로되 언약궤를 메고 백성 앞서 행하라. 하매 곧 언약궤를 메고 백성 앞에 백성 앞서 나아가니라(6)."

 

요단 강 도하를 앞두고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스스로 성결케 할 것을 명령했다. 여기서 성결은 의복을 세탁하거나(19:10, 14), 옷을 갈아입거나(35:2), 또는 여인을 멀리하는 것(35:2)과 같은 행위를 말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당시로서는 그러한 준비를 할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기서 여호수아가 명령한 성결은 영적인 성결의 자세를 가다듬으라는 의미로 볼 수 있다(Keil & Delitzsch,). 이스라엘 백성들이 스스로 성결케 해야 하는 이유는 내일 그들 가운데서 여호와께서 기이한 일을 행하실 것이기 때문이었다. 여호수아는 백성들에게 성결케 할 것을 지시하고, 제사장들에게 언약궤를 메고 백성들 앞에 서서 나아갈고 명령을 했다. 본문에서 '앞서 행한다'는 말('리프네')는 단순히 '앞에서'(before) 행하라'는 뜻보다는 '선두에 서서 행하라"는 뜻이 더 강하다. 넘실대는 요단 강물에 첫 발을 내디디는 일은 큰 믿음과 용기가 요구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임재와 동행의 상징인 언약궤가 있었기 때문에 믿음으로 발을 내디딜 수 있었다.

 

 

2. 요단 도하(3:7-18)

 

* 하나님의 지시(7-8)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부터 시작하여 너를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크게 하여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는 것을 그들로 알게 하리라(7). 너는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요단 물가에 이르거든 요단에 들어서라 하라(8)."

 

하나님은 모세가 죽은 후에 후계자 여호수아에게 나타나 위로와 격려의 말씀을 통해서 용기를 주셨다(1:9). 그리고 하나님께서 요단 강을 건너기 전에 다시 한번 그에게 크신 능력의 말씀으로 여호수아를 격려해주셨다. 왜냐하면 이 일은 큰 용기와 믿음이 필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부터 여호수아를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위대하게 만들어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모세가 홍해 도하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증거 했듯이(14:31), 요단 강 도하 사건도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와 함께 하심을 나타내는 계기가 될 것이다(Keil & Delitzsch). 하나님께서는 요단 물가에 도착하면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에게 요단 강에 들어서라고 명령하라고 하셨다. 홍해 도하 기적 때에는 모세의 역할은 지팡이를 들고 바다를 가리키고 전진할 것을 명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요단 도하에서의 여호수아의 역할은 제사장들에게 명령을 내려 앞으로 각 하는 일이었다. 한편 본문에 나타난 '들어서라'는 말('아마다')'서다', '머무르다'란 의미로서, 이 말은 제사장들이 요단 강에 들어가서 계속 서 있으라는 것을 말한다.

 

* 여호와의 지시를 백성들에게 전함(9-13)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이리 와서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하고(9), 또 말하되 사시는 하나님이 너희 가운데 계시사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히위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여부스 족속을 너희 앞에서 정녕히 쫓아내실 줄을 이 일로 너희가 알리라(10). 보라 온 땅의 주의 언약궤가 너희 앞서 요단으로 들어가나니(11), 이제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매 지파에 한 사람씩 12명을 택하라(12). 온 땅의 주 여호와의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바닥이 요단 물을 밟고 멈추면 요단 물,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끊어지고 쌓여 서리라(13)."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지시를 전달하기 위해서 백성들을 소집했다. '이리 오라'는 말('고슈')'끌어당기다', '가까이 가다'란 의미로서, 여호와의 말씀을 듣기 위해 가까이 나아오라는 말이다. 이 말은 여호수아가 전할 말씀의 중요성을 암시하며, 백성들은 그 말씀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아마 여호수아가 이 말을 전한 것은 백성의 대표자였을 것이다. 여호수아는 살아 계신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신다고 말한다. 여호와는 이방의 신과 같이 돌이나 흙으로 만들어 세운 신이 아니다. 주님은 이 세상을 만드시고 인도하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이시다. 여호수아는 하나님께서 가나안에 있는 7족속을 쫓아내심으로 자신이 살아 계신 분임을 나타낼 것이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지시대로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요단 강에 들어설 것이라고 하였다. 이제 이스라엘은 이 일을 기념하기 위해 각 지파에 한 명씩 12명을 선택해야 한다. 여호수아는 온 땅의 주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요단 강을 밟고 멈추는 순간에 흐르던 요단강이 그치고, 위에서부터 쌓이게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당시대의 사람들은 모든 신을 민족신 내지는 지역신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따라서 사람들은 어느 한 지역(민족)에서 다른 지역(민족)으로 들어갈 경우에 그 지역(민족)의 신을 따라 섬기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여기서 하나님을 온 땅의 조인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것은 지역과 민족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는 말이다. 하나님은 요단 강 도하 사건을 통해서 바다와 강들도 자신의 통치아래 있다는 것을 모든 사람들 앞에서 보여 주실 것이다. 요단강은 헬몬 산 부근의 4개의 수원(水原)에서 시작되므로 ''는 곧 '헬몬 산에서부터 발원하는 곳'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끊어지고 쌓여 선다는 말은 (15:8)에 나타난 홍해의 기적을 연상시키는 표현이다. 여기서 '끊어지다'('카라트')는 말은 '자르다', '분리하다'의 뜻으로서, 흘러내리던 요단 물이 분리되어 그 아래의 물과 합쳐지지 않았음을 가리킨다. 그리고 '쌓이다'('나다드')는 말은 멈춘 물이 점차 산처럼 쌓여갔음을 보여준다. 또한 '선다'('아마드')는 말은 마치 사람이 자기의 몸을 일으켜 세우듯 물이 자기 자리에서 일어서 계속 불어났음을 나타낸다.

 

* 요단 도하 작전(14-18)

"백성이 요단을 건너려고 자기들의 장막을 떠날 때에 제사장들은 언약궤를 메고 백성 앞에서 행하니라(14). (요단이 모맥 거두는 시기에는 항상 언덕에 넘치더라) 궤를 멘 자들이 요단에 이르며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물가에 잠기가(15),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그쳐서 심히 멀리 사르단에 가까운 아담 읍 변방에 일어나 쌓이고 아라바의 바다 염해로 향하여 흘러가는 물은 온전히 끊어지매 백성이 여리고 앞으로 바로 건널썌(17),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요단 가운데 마른땅에 굳게 섰고, 온 이스라엘 백성은 마른땅으로 행하여 요단을 건너니라(18)."

 

마침내 이스라엘 백성들은 요단 강을 건너기 위해서 장막을 거두고 그 곳을 출발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서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그들 앞에 서서 요단 강을 햐해 나아갔다. 이 일이 일어난 때는 출애굽 때와 같은 시기인 니산월(우리 달력으로는 3, 4월경) 10일이었다. 이 무렵의 팔레스틴은 많은 강수량으로 인해 호수나 강들이 최고 수위(水位)를 기록할 때였다. 그러므로 원래 이 때에는 많은 사람을 이끌고 요단 강을 건너는 일이 매우 힘든 때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로 이러한 때에 처자식과 가축을 거느린 이스라엘 백성들을 요단을 건너라고 명령하셨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건을 통해서 자신의 전능하심을 증거해 주셨다. 출애굽이나 홍해 도하 사건이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된 것처럼, 요단 도하도 하나님의 초자연적 힘으로 이루어졌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하나님의 개입은 앞으로 가나안 땅에서도 하나님의 보호와 도우심이 계속될 것을 예고해 주는 것이기도 했다. '모맥'(牟麥)'밀과 보리'를 뜻한다. '아열대 기후에 속하는 여리고 지역은 태양력 4, 5월경에 밀과 보리를 추수한다. '언덕'(가다)은 퇴적 작용으로 생긴 강의 양쪽 자연 제방을 가리킨다. 그리고 '넘친다'(말라 알)는 말은 단순히 물이 제방에 가득 찬 것이 아니라 가득 차서 물이 범람하는 것을 말한다(Keil & Delitzsch). 실제로 모맥 거두는 시기에는 북쪽 헬몬 산의 눈이 녹게 되며, 또한 봄비가 내리기 때문에 갈릴리 호수는 최고 수위에 오르게 된다. 그리고 이로 인해 요단 강물은 크게 불어 그 깊이는 3-4m, 그 넓이는 30m 이상이 되었다고 한다(J. P. Free, Archaeology and Bible History). 그러므로 이렇게 요단 강물이 만수가 되어 사해로 흘러갈 때에는 요단 강의 가장 좁은 나루터도 걸어서는 건널 수가 없게 된다. 더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처자식을 거느리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불가능한 일을 하나님께서는 실행할 수 있게 해 주셨다.

 

강둑을 넘칠 정도의 거센 물결은 사람들에게 공포심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과감하게 요단 강에 들어섰다. 그들의 이러한 용기는 가나안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신앙에서 가능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요단 강물에 잠길 때에 즉시 요단 강물은 멈추고 말았다. 하나님은 기적을 이루실 때에 두 가지 방법으로 역사하신다. 첫째는 자연을 이용한 기적이고, 둘째는 순수한 초자연적인 기적이다. 자연을 이용한 기적은 애굽에 내린 10대 재앙이나(12:29, 30), 여호수아 때에 태양과 달이 멈춘 사건(10:12-15)과 히스기야 때에 일영표 위의 해 그림자가 10도를 물러난 사건(왕하 20:8-11)을 들 수 있다. 학자들은 요단 강물의 멈춘 사건에 대하여 자연을 이용한 기적이었다고 설명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담 근처에는 오늘날에도 큰 절벽이 있는데, 그 절벅은 가끔 지진 등으로 인해 바위가 무너져 내려 요단 강물을 정지하게 한다고 한다. 실제 그러한 일이 A. D. 126712월에 일어나 16시간, 그리고 A. D. 19277월에 일어나 21시간 30분 동안 요단 강물의 흐름을 막는 일이 발생했다(J.P. Free, en-Nuwairi). 어쨌든 하나님은 약속하신대로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강물에 닿자마자 흐르던 강물을 멈추게 핫고, 그 물이 뒤로 물러나 쌓이게 하셨다.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과 가축들이 건너는데 필요한 시간을 생각하면 요단이 멈춘 시간은 잠시동안이 아니라 긴 시간이었을 것이다. 요단 강은 흐르던 물이 그치고 그 물이 위로부터 쌓이는 바람에 일종의 역류현상이 일어났다. '사르단'(Zarethan)은 여리고 북방 약 20km 지점의 요단 강에 있는 성읍이다. 강물은 이 곳에서부터 쌓이기 시작했다.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강바닥'에 굳게 서있었다(Keil)('마른 땅''물기가 없는 땅'을 말한다).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 강을 다 건널 때까지 자기가 선 자리를 확고 부동하게 지키고 있었다. 멈추었던 물이 다시 흐르게 되면 죽을 수 밖에 없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제사장을 바라보면 담대하게 믿음으로 요단 강을 건넜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수효를 200만으로 추산하고(26:51), 그들이 행군의 폭을 1-2km 정도로 했다고 가정할 때에 이스라엘 전체 백성들이 요단 강을 건너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약 반나절(half a day) 정도가 된다(Keil & Delitzsch).

 

< 요약 및 정리 >

 

1. 제사장이 법궤를 메고 앞섬(2,000규빗)- 하나님이 주도하시는 정복의 역사

 

2. 요단강 도하의 의미

1)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지도자로 세우셨다는 것을 증명(3:7)

2)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가운데 함께 계심을 증명(3:10)

3) 하나님께서 앞으로 가나안 족속들을 쫓아내실 것을 미리 보여 주심(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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