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께서 나를 택하신 것은 사43:1-7, 요15:11-19
이솝우화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떤 농장의 주인이 당나귀 한 마리를 사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시장의 정문 앞에 있는 당나귀 파는 곳으로 갔습니다. 그곳에는 여러 종류의 당나귀가 많이 있었습니다. 주인은 당나귀들을 자세히 살펴보다가 아주 크고 예쁜 당나귀를 보았습니다. 그는 그 당나귀가 마음에는 들었지만 과연 그 당나귀가 괜찮은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당나귀 주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이 당나귀를 집에 데리고 가서 어떤 성질을 가졌는지 시험해 본 다음에 사도 좋겠습니까?”
당나귀 주인은 흔쾌히 허락했습니다. 농부는 당나귀를 데리고 와서 자기의 당나귀들이 있는 외양간에 넣었습니다. 그러자 새로 온 당나귀는 가장 게으르고 둔한 당나귀 곁으로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두 당나귀는 금방 친해져서 함께 놀았습니다. 농부는 곧 그 당나귀를 다시 끌고 가서 주인에게 돌려주었습니다. “이 녀석은 안 되겠는데요. 게으르고 둔해서 쓸모가 없거든요.” 그러자 당나귀의 주인이 물었습니다. “아니, 뭘 보고 게으르다는 겁니까?” “난 당나귀를 보고 아는 것이 아니라, 그 당나귀의 친구를 보고 안답니다.” 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안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유유상종(類類相從)’이란 말도 같은 의미입니다. 누구나 비슷한 사람끼리 모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를 가까이하고, 누구와 친구가 되고, 어떤 사람과 사귀는 것을 보면 그의 사람됨을 안다는 것입니다. 좋은 친구를 가까이하면 좋은 사람이 되지만, 나쁜 친구와 함께 하면 자연히 나쁜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좋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친구가 항상 함께 하십니다. 예수님 때문에 우리는 존귀한 신분을 가진 자가 되었고, 보배로운 자들이 되었습니다. 오늘은 두 본문을 중심으로 “주께서 나를 택하신 것은”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주께서 나를 택하신 것은,
1.하나님의 소유 된 백성 삼기 위해서입니다.
구약 본문 사43:1에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했습니다. 신약 본문 요15:19에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했습니다. 여기 “너는 내 것이라”는 말과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라”는 말은 같은 의미로 하늘에 속한 하나님의 소유 된 백성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 되게 하기 위해서 지명하여 불러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실 때 한 사람 한 사람 지명하시면서 “나를 따르라”고 하시며 부르신 것처럼 세상에서 우리를 지명하여 부르셨습니다. 여리고에 가실 때에 뽕나무위에 올라 있는 삭개오를 향하여 “삭개오야, 내려오너라.” 하셨습니다. 언제 만난 적도 없지만 주님은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구체적으로 삭개오의 이름을 불러 주신 것처럼 우리의 이름도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알고 계십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불러 주신 것은 이미 창세전에 계획하신 바입니다.
우리에게 사랑 받을 만한 면이 있고, 가치가 있어서가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바울은 고전1:26에서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門閥)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나 같이 보잘 것 없고, 허물이 만고, 연약한자 임에도 불러 주신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또한 독생자까지 희생시키시면서 까지 우리를 구속하여 주셨습니다. 베드로는 벧전1:18-19에서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했습니다. 예수님의 피 값을 지불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하나님의 것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존재들입니다. 고후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하나님의 소유 된 백성을 하나님이 보호 하시고 감싸 주시기 때문에 누구도 정죄 할 수 없고, 주님 품에서 빼앗아 갈 수도 없고, 대적할 수 없는 것은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기 때문입니다. 구약 본문 3-4절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얼마나 귀하게 여기시고 사랑하시는지 그 어떤 대가를 치르고라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살려내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도 자식을 위해서라면 돈도, 시간도, 심지어 목숨도 아끼지 아니하고 다 주기도 합니다. 하나님도 이스라엘을 위해서라면 대신 애굽도, 구스도, 스바도 내 놓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당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까지 속량 물로 내놓으셨습니다.(요3:16)(요일4:10)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귀하게 여기시고 사랑하시는지를 깨닫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사랑 받는 소중한 존재임을 잊지 말고 사시기를 소망합니다.
2.주님의 사랑을 받는 보배롭고 존귀한 자가 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사43:4에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네 대신 사람들을 내어 주며 백성들이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라고 했습니다.
요15:14절에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했습니다.
약2:23에 “이에 성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벗으로 불러 주시고, 예수님이 우리를 친구라고 불러주시는 것은 우리에게 전혀 그런 자격이 없지만 전적인 주님의 사랑에 근거한 것입니다. 우리를 친구 삼으시고 아버지의 사랑을 가르쳐 주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친구가 되려면 대등한 신분과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성육신으로 이 땅에 오신 자체가 그분은 낮아 지셔서 우리의 친구가 되어 주신 것입니다. 친구의 특성은 사랑입니다. 같은 마음으로 같은 생각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같아지신 것입니다.
돈키호테의 작가 세르반테스는 친구 사랑으로 유명한 분입니다. 젊었을 때 잡지사의 기자 생활을 하다가 그의 친구가 돈 때문에 실수하는 바람에 그를 대신하여 반년을 옥살이는 한 일이 있습니다. 한 젊은이가 친구를 위하여 몸을 희생한 것은 일직이 찾기 어려웠던 일이라 그가 출옥하자 감옥 문 앞에 많은 사람들이 붐볐습니다. 출옥 소감을 묻는 사람들에게 세르반테스는 돈은 조금밖에 잃지 않지만 친구를 잃는 것은 많은 것을 잃는 일입니다. 친구를 위하여 6개월을 고난으로도 사람들의 마음에 감동을 주었습니다.
일본 유학생이 전철에 떨어진 취객을 구하고 자기는 죽은 일은 이기적이고 개인주의가 팽대한 일본 사회를 충격과 변화시키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어느 날 대학에서 강의까지 하셨던 분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갑작스런 죽음으로 장례식장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장례식장에 모인 친구 4명에게 그날 새벽 2시에 연락이 갔지만 통화를 흔쾌히 받아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싸늘하게 식어버린 친구를 앞에 두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약 내가 죽었다면 내 친구들은 어떻게 했을까?” 그 일이 있은 후 그들은 새벽 2시에 연락을 했을 때 전화를 흔쾌히 받아주고 뛰어 와줄 친구가 몇이나 있는가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됐다고 합니다.
요15:13절에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했는데, 우리의 가장 소중한 친구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여 가장귀한 목숨까지 내 놓았습니다. 이보다 더 큰사랑은 없는 것입니다. 진정한 친구는 목숨을 아끼지 않습니다. 변함없는 진실한 친구, 주님을 친구로 얻은 자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주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은 하나님은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시고 특별한 사랑으로 사랑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과 같이 우리를 높여 영광스러운 자리에 올려놓으시려는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성도는 세상에 살고 있으나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닙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빌립보서 3:20-21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비천한 우리를 주님과 함께 영광스러운 자리에 있게 하기 위해서 우리를 택하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이런 사랑을 입은 자임을 잊지 말고 주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삽시다.
3.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입니다.
사43:7에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했습니다.
범죄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이스라엘 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들을 남기시고 다시 불러들이셔서 들어 쓰시겠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을 위해 그렇게 공들여 세우신 이스라엘을 쓰지도 않으시고 버리실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신 이상 결코 버리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어떤 상황에서라도 택하신 자녀들을 섭리하시고, 회복시키셔서 뜻을 이루시고야 마시는 분이십니다.(마28:20)(롬8:28)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여 하나님의 권속이 되게 하시고 사랑 받는 보배롭고 존귀한 자로 삼아 주심은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자가 되게 하심입니다. 바울은 고전6:19-20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했습니다.
빌1:20에서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은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라고 했습니다. 롬14:8에서는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라고 했습니다.
성도는 모든 피조물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자신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자가 되어야 마땅합니다.
영국의 시인 윌리엄 불레이크가 어느 날 이른 아침 바닷가에서 장엄한 일출의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어떤 사람이 그의 곁으로 다가와 섰는데, 그는 런던에서 내려온 상인이었습니다. 동쪽 하늘을 물들이며 수평선 위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며 떠오르는 태양에서 쏟아져 나오는 햇살이 잔물결에 부딪혀 수천 개로 갈라졌습니다.
불레이크가 먼저 고개를 돌려 옆 사람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당신 눈에 무엇이 보입니까?" "저는 마치 금 조각 같군요. 1파운드 금화로 보입니다. 당신에게는 어떻게 보입니까?" 내 눈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보입니다. 그리고 철썩거리는 저 파도 소리는 무수한 천사들이 '거룩, 거룩 전능하신 주여!.'라고 노래하는 것 같습니다." 얼마나 큰 차이입니까! 똑같이 지구 위에 두 발을 딛고 살면서 이토록 다를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가진 가치관과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것입니다. 우리도 불레이크처럼 철썩거리는 파도 소리 속에서도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사 6:3>라고 외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나아가 내가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도, 목적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함임을 깨닫고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존재로 살 때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보시기에 아름다운 자가 됩니다. 엡1:4-6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했습니다. 우리 모두 남은 생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합니다. 주께서 나를 택하신 것은,
1.하나님의 소유 된 백성 삼기 위해서입니다.
2.주님의 사랑을 받는 보배롭고 존귀한 자가 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3.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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