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마태복음

내 마음 향해 있는 곳에 마6장19-34 신6:4-9,

nam씨 2015. 10. 3. 14:37

내 마음 향해 있는 곳에 마619-34 6:4-9,

 

하루는 남자 집사님 두 분이 함께 차를 타고서 기도원에 가게 되었습니다. 가는 도중에 소낙비가 억수같이 쏟아졌습니다. 운전을 하는 집사님이 실수를 해서 자동차가 미끄러져서 실개천에 기우뚱하게 기울어졌습니다. 밤중이라 도와줄 사람도 없어서 두 집사님은 그냥 차를 두고 걸어서 기도원에 올라갔습니다. 두 집사님이 밤을 새워 기도를 하는데 기도의 내용이 서로 달랐습니다. 자동차 주인 집사는 앉자마자 하나님, 제 차가 물에 떠내려가지 않도록 꼭 좀 지켜주시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밤새도록 계속 그 기도를 했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같이 간 다른 집사님은 탄광을 운영하는 분이었습니다. 그 분은 밤새도록 하나님, 우리 탄광에 물이 새어 들어가지 않도록 지켜주시옵소서라고 기도했답니다. 이처럼 물질이 있는 곳에는 어쩔 수 없이 우리의 마음이 쏠리기 마련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내 마음을 어디에 두고 살아야 바르게 사는 삶인지 두 본문을 중심으로 내 마음 향해 있는 곳에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내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에 내 마음이 향해 있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 최우선을 두고 살면 내 마음이 항상 주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목적을 가지고 살게 됩니다. 그러나 주님 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게 되면 내 마음이 항상 세상 것에 쏠려 거기에 치심하며 살게 됩니다.

 

오늘 신약 본문에 주님은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보물은 소중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재물은 정말 소중합니다. 우리는 물질이 없어서 불편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물질이 없어서 내 마음에 불안이 있고 가정에 불화가 있을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래서 인간에게는 기본적인 물질이 필요합니다. 문제는 그것을 쌓아두는 데 있습니다. 주님은 쌓아두더라도 그 물질을 지혜롭게 쌓아둘 것을 우리에게 요구합니다.

 

이 땅에 쌓아두는 것은 좀이 먹거나 녹이 슬거나 도둑이 뚫고 들어와서 훔쳐가기 쉽기 때문입니다. 옛날에는 재산을 주로 곡간에 보관하거나 땅에 묻어 두기 때문에 실제 이런 일들이 종종 발생 했습니다. 요즈음에는 은행이나 금고라는 것이 있어 비교적 안전하다 해도 우리 돈은 어느 새 사라지고 마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이는 주식을 투자했는데 다 날려버리기도 합니다. 부동산에 투자했는데 집값이 떨어져 손해가 나기도 합니다. 사업의 실패로 다 거덜 내기도 하고, 자녀들이 이런 저런 일로 솔솔 빼어 먹거나, 아니면 병이 들어 병원비로 소진하기도 합니다. 우리 인생에서 어렵게 모은 보물들이 너무 쉽게 빠져나갑니다. 주님은 이런 보물을 더 지혜롭게 더 소중하게 사용하여 간수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물론 이 땅에 보물을 쌓아두지 말라 하여 전혀 통장에 잔고를 가지고 있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미래에 대한 위험을 대비하여 보험도 필요하고 연금도 필요합니다. 노년을 대비하여 적당한 재산도 필요합니다. 이것은 겨울을 대비하여 여름에 부지런히 식량을 모으는 개미와 같은 지혜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육신을 위한 양식일 뿐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늘에 쌓는 영원한 양식이 필요합니다. 죽음 이후의 영원한 세계를 믿는 우리는 살아 있는 동안에 그 영원의 때를 준비하는 지혜로움이 필요합니다.

 

주님이 보물을 땅위에 쌓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이유는 우리가 너무 물질에 매여 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주신 물질로 더 좋고 유용하게 쓸 수 있는데 그렇게 사용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물욕에 사로잡히면 물질을 더 많이 쌓아야 행복하다는 잘 못된 신념을 가지게 되고, 물질이 없으면 내 인생은 불행해진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물질이 하나님 보다 더 중요한 자리에 있기 때문에 물질 우상에 메어 살게 되고, 물질에 자유하지 못하고 물질의 노예가 되어 근심 걱정하며 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소득의 십분의 일을 드리는 십일조를 드리라고 하신 이유 가운데는 물질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것을 바로 알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게 하는 이유도 있지만 또 다른 이유 중에 하나는 우리가 물질의 종이 되어 사는 자가 되지 말고 물질을 잘 다스리는 물질에 대한 훈련의 의미도 있습니다. 이런 훈련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음도 자라게 하시고, 더 좋은 것을 주시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성도가 믿음으로 십일조나 다른 예물을 기쁨으로 드리게 되면 하나님의 기적적인 은혜와 돌보심이 따르게 되고, 하나님이 그 삶을 책임져 주시는 은혜를 입게 되고, 물질을 잘 관리하는 지혜를 주시어 행복한 마음을 가지게 되고, 물질을 하늘에 쌓아 장차 자신을 위한 큰 상급으로 돌아오는 복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모르고, 믿지 못하면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아까운 마음이 들게 되고, 인색하게 됩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도, 사랑도, 소망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또 이웃에 대해서도 인색하고, 사랑을 나타내지 못합니다.

 

그런 사람은 영적인 소경과 같습니다. 오늘 신약 본문에 보면 주님은 보물 이야기를 하시다가 22절과 23절에서 갑자기 눈에 대한 비유를 들어 보이십니다. 눈을 등불에 비유합니다. 눈은 몸의 등불과 같습니다. 그래서 눈이 성하면 마치 밝은 대낮을 걷는 것과 같이 우리가 넘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눈이 나쁘면 마치 깜깜한 밤길을 헤매듯 걸려 넘어지고 말 것입니다. 여기서 눈이 의미하는 바는 물질에 대한 욕심이라 할 것입니다. 욕심에 눈이 어두우면 자기 몸을 망치고 맙니다. 동서고금에 재물에 대한 욕심 때문에 망한 사례는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물질에 욕심을 부린 사람들은 다 영적인 눈이 어두워지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는 불행을 경험했습니다. 롯의 처는 물질의 욕심 때문에 소금 기둥이 되었고, 아간은 물질의 욕심 때문에 돌에 맞아 죽었고, 게하시는 나병환자가 되었습니다. 아합과 이세벨은 탐욕을 부리다가 저주 받은 죽음을 죽었고, 개들이 그들의 시신의 피를 핱게 되었습니다. 사울 왕은 욕심 부리다가 하나님께 버림을 받게 되었고, 가롯 유다는 목메어 자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늘에 보물을 쌓아두게 되면 그곳에 더욱 마음을 두게 되어 영적인 눈이 점점 더 열리기 때문에 더욱 믿음이 자라게 되고, 장차 받을 상급과 면류관과 하늘 기업의 풍성함이 얼마나 가치 있고, 소중한 것인지를 보는 눈이 열리게 됩니다. 이런 성도는 드리는 것이 아깝지 아니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감사한 마음으로 드립니다. 항상 그 마음이 주님을 향해 있고, 하나님의 나라에 소망을 두고 사는 자가 됩니다. 우리 모두 물질 보다 주님을 더 사랑하여 내 마음이 항상 주님을 향하여 사시기를 소망합니다.

 

2.내 마음이 온통 하나님을 향하여 있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무엇에든지 탁월한 사람들이나 성공한 사람들은 삶의 목표와 자세가 좋았던 사람들입니다. 성도가 하나님을 섬기는 데에도 바른 목표와 좋은 자세가 있어야합니다. 오늘 구약 본문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교육헌장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 안에는 우리가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야 승리하며 축복을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3가지 원리가 있습니다. 첫째는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말씀합니다. 본문 5절에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온 마음과 인격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라고 말씀합니다. 본문 6절에 오늘날 내게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라했습니다. 이 말씀은 말씀을 마음 판에 새겨서 간직하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여 살라는 명령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행하는 신앙생활이 되어야합니다.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증거가 행동으로 나타나야합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지배를 받고 말씀에 이끌림을 받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셋째는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라고 말씀합니다. 본문 7절에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라했습니다. 신앙생활을 내 당대로 끝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말을 자주 쓰십니다. 이것은 가문대대로 축복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의지입니다. 그러므로 대대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가문을 이루려면 자녀들의 신앙 교육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사랑하면 신61011절에 네가 건축하지 아니한 크고 아름아운 성읍을 얻게 하시며 네가 채우지 아니한 아름다운 물건이 가득한 집을 얻게 하시며 네가 파지 아니한 우물을 차지하게 하시며 네가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감람나무를 차지하게 하사 네게 배불리 먹게 하실 것이라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약속하시고 축복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우리 모두가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함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민족에게 축복하신 것과 같은 축복을 받게 되길 기원합니다. 부산에 있는 가야 성안교회에는 60이 훨씬 넘은 할머니 교사, 임옥성 권사라는 분이 계십니다. 이분이 40세에 교사의 직분을 받고 그 일을 천직으로 알아 열심히 해 오고 있는데 젊은 사람도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열심이라고 합니다.

 

이분이 예수님을 믿기 시작한 것이 19살 적, 구원의 확신으로 기쁨이 넘쳐 교사도 했는데 불신 부모들이 그녀를 불신 가정에 시집을 보내버렸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이 임권사는 그 속에서도 교회를 다녔는데 이루 말할 수 없는 핍박을 받고 눈에는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가정을 위하여 열심을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 그 기도에 응답하셔서 그렇게 핍박하던 남편이 예수님을 믿게 됐고, 예수님을 영접한지 3년 후에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되었답니다.

 

그 때 이 권사님에게는 다섯 명의 자녀가 있었는데 살아갈 날이 막막하지 않습니까? 그래도 다행인 것은 부산시 주례동에 대지 240평짜리 공장이 하나 있었는데 여기서 나온 세로 자녀들을 공부시킬 수가 있었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세 들어 있던 사람이 나가고 교회가 들어오게 되었답니다. 그 공장자리를 교회에 세를 주고 세를 받게 되었는데 이 권사님은 교회로 빌려주고 세를 받는 다는 것이 마음에 걸려 기도하는 중에 세를 받지 않고 오히려 교회에 그 공장을 바치기로 했답니다. 물론 이분이 출석하는 교회는 아니었습니다. 아무런 조건을 붙이지 않고 교회가 복음전하는 일을 하는데 진력해서 교회가 굳게 세워져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는데 쓰라고 모두를 드리게 되었답니다.

 

이 때 아이들은 자라 대학에 들어가고 한창 공부할 때였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기의 전 재산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을 모두 드렸답니다. 이분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믿음으로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이분의 믿음대로 그 권사님과 아들과 딸들을 책임을 져주셨는데 자녀들이 모두다 장학생으로 대학을 졸업을 하고,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장남은 목사가 되어 선교사로 나가 있고, 둘째는 의사로, 셋째는 고등학교 교사로, 딸들은 대기업 이사 부인으로 하나같이 남부럽지 않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권사님도 70을 바라보고 있지만 주일학교 교사로서 감사함으로 봉사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분이 장차 주님 앞에 설 때 얼마나 큰 칭찬과 상급을 받겠습니까?

 

3.내 마음이 온통 세상에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늘나라 소망을 보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이야 당연한 일이겠지만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받은 성도들이 세상 것에 마음을 빼앗기게 되면 믿음이 자라지 못하게 되고, 잘못하면 믿음이 파선 되고, 내게 있는 소중한 믿음과 사랑과 면류관을 다 사단에게 도적맞게 되고 맙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3:11에 보면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 2:15에서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라고 했습니다. 물질도, 권세도, 명예도, 연락도 다 변하고 사라지는 때가옵니다. 거기에는 만족이 없습니다. 거기에 마음을 빼앗기고 치심하게 되면 결국 허무와 후회와 절망과 심판 후 형벌만 남게 됩니다. 옛날 희랍의 전제국가의 한 왕이 24시간 여색과 주지육림에 탐닉하면서, 자기를 더 즐겁게 하기 위하여 쾌락의 도와 행복의 도를 더 높이는 수단과 방법을 상금을 걸고 천하에 널리 구하게 하였습니다. 별별 기발한 새 아이디어들이 실험되었으나 그의 불만도와 갈증은 날로 가중되기만 했습니다. 새 아이디어의 제공자들은 그를 실망시킨 벌로 사형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왕 앞에 행복의 새로운 제안자가 나타났습니다. 아름다운 소녀였습니다. 소녀는 왕 앞에 나타나서 꾸짖는 눈빛으로, “왕은 절대로 행복할 수 없습니다. 기쁨을 단념하십시오. 남을 행복하게 하거나 기쁘게 한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만일 기쁨과 행복을 원하신다면 남을 기쁘게 하고 행복하게 하십시오.” 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왕의 표정은 숙연해지고 두 눈에는 눈물이 맺히며, “딸아 그대의 말이 옳도다.”하고 상을 내렸다고 합니다. 참 행복이나 기쁨은 세상이 주는 것이 안입니다. 복의 근원이요, 생명의 근원이요, 은혜와 진리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사랑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권속이 된 성도들을 사랑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것이요, 하나님이 맡기신 직분을 사랑하고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합니다.

 

내 마음이 어디로 향해 있어야 할까요?

 

1.내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에 내 마음이 향해 있습니다.

 

2.내 마음이 온통 하나님을 향하여 있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3.내 마음이 온통 세상에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마음이 어디로 향해 있는지 자신을 한번 돌아봅시다. 변하고 썩어질 세상 것에 마음을 두지 않고, 온 마음을 다해 주님을 사랑하며 살다가 영광스럽게 다시 오실 주님을 맞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