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머리 열뿔짐승 4 (계 17:13-14)
13. 그들이 한 뜻을 가지고 자기의 능력과 권세를 짐승에게 주더라 14. 그들이 어린 양과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그들을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기리로다
이 시간에 계속하여 “일곱머리와 열뿔짐승”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손자병법 모공편에 나오는 유명한 말이 있지요.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라는 말입니다. 그 뜻은 자신과 상대를 잘 알고 있으면 백번 싸워도 위태로울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이 부분의 원문은 知彼知己 百戰不殆 不知彼而知己 一勝一負 不知彼不知己 每戰必殆(지피지기 백전불태 부지피이지기 일승일부 부지피부지기 매전필태), 즉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로울 것이 없으나 나를 알고 적을 모르면 승과 패를 각각 주고받을 것이며 적을 모르는 상황에서 나조차도 모르면 싸움에서 반드시 위태롭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영적전쟁도 그렇습니다.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서 적을 알 뿐 아니라 우리 자신들에 대해서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 계시록을 통해서 인간론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럼 계속하여 자아와 그 특징은 무엇일까요?
5. 자아는 그리스도의 주권에 대립하는 존재입니다.
14절 “그들이 어린 양과 더불어 싸우려니와” 여기 어린 양은 우리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이 어린 양에 반대되는 개념은 염소입니다. 자아란 고집불통 염소와 같다는 말입니다. 이 모든 일이 우리 마음에서 일어난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하나가 되어 싸우고자 합니다. 악행하려 할 때 두렵기도 하고 잘못임을 깨닫기도 하고 마음이 갈라져야 정상인데 하나 되었습니다. 아주 완악한 모습입니다.
그런데 “더불어” 싸웁니다. 맞상대하려고 한단 말입니다. 천상천하에 예수님을 맞상대하려는 자는 자아 빼고는 아무도 없습니다. 사탄도 이미 패배자입니다. 자아가 자리를 차지하려고 싸웁니다. 내가 더 크다고, 내가 더 옳다고, 내 뜻대로 해야 한다고 굽히지 않고 마음의 자리 빼앗으려는 그런 싸움입니다.
교만한 사탄이 그랬습니다. 사14:12-14에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 도다.” 이건 사탄으로 상징된 두로왕의 마음이었듯이 이 마음은 우리 마음에도 존재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내가 마음의 왕좌에 앉아 주님을 밀어내고 왕이 되려고 합니다. 그래서는 주님을 따를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마16:24에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4장을 보면 자기 십자가를 교훈하시면서 망대 건축 비유와 전쟁 비유를 하셨습니다. 즉 망대를 건축하기까지 비용이 족할는지 계산해 보거나, 군사 일만으로 적군 이만을 대적할 수 있을지 헤아려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자기를 십자가에 내어주지 아니하고 영적인 삶을 추구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교훈이십니다. 그 만큼 중요한 것이 나를 내려놓는 자아처리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주님의 주권에 대항하는 자아의 정체입니다.
6. 그러나 그 어떤 자아도 예수님을 이길 수 없습니다.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그들을 이기실 터이요” 여기 어린 양 예수님을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으로 소개합니다. 만주의 주와 만왕의 왕이란 세상의 어떤 주나 왕도 다스리시는 왕 중의 왕이시라는 뜻입니다.
이건 세상 통치자들의 우두머리라는 의미 외에도 우리 자아가 일종의 왕인데 그것 역시 다스려 주신다는 신령한 의미도 있습니다. 아무리 우리 자아가 열 뿔 곧 열 왕과 같을지라도 만왕의 왕이신 주님을 이길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단8:25에 “스스로 서서 만왕의 왕을 대적할 것이나 그가 사람의 손을 말미암지 않고 깨어지리라” 했습니다.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는다 하신 계19:16에도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했습니다.
만약 대항하다가는 어떻게 됩니까? 눅20:18에 “무릇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라.” 하셨습니다. 누구도 주님을 대항 할 수 없습니다.
히5:8에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다고 했는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가만 두시겠습니까? 완악하면 할수록 불같은 연단은 그를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히12:9에 징계를 통해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도록 하신다고 했습니다.
이삭과 야곱을 비교해 보세요. 이삭은 순종의 사람이기에 고난이 없었습니다. 고난이 있어도 기도 한 마디만 하면 즉각 응답해 주시고, 어려움이 닥치도 더 큰 도움이 나타납니다. 그러나 완악한 야곱의 생애는 고난과 고통의 연속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손길을 이길 수 없는 야곱은 결국 하나님 앞에 순복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7. 또 어떤 사람이 자아를 이길까요?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이깁니다.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기리로다.” 여기 한 사람을 약 네 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제가 본문 그대로 내용 삼아 문제를 낼 때 이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맞춰보시기 바랍니다. 스므고개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있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나를 따라오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들은 주님이 밤이 맟게 기도하신 후 특별히 택하신 자들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와 함께 살고 죽기를 약속한 진실한 자들입니다. 이들은 누구일까요?" 누구긴요.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이긴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계시록은 신비하고 재밋는 책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와 함께 있다는 것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로 한 것을 가리킵니다. 막3:13-14에 “또 산에 오르사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 여기 제자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함께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막5:18-19에도 “예수께서 배에 오르실 때에 귀신 들렸던 사람이 함께 있기를 간구하였으나 허락하지 아니하”셨습니다. 거라사의 군대귀신 들린 광인이 예수님의 도움으로 자유를 얻어 정상인이 된 다음에 주님과 함께 하기를 원했는데 그 함께 함이란 제자가 되는 것을 의미했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왜 자아 즉 나를 이길까요? 마16:24에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16:24)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제자의 도예요. 예수를 주로 삼고 나를 내려놓는 것, 나를 부인하고 주님을 인정하고 따르는 것이 제자의 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교만을 내려놓는 훈련을 열심히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제자의 도를 끝까지 따라야 합니다. 그것은 성령 충만까지 받는 것을 말합니다. 행1:4-5에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제자훈련이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성령 충만 받아야 합니다. 그것을 순종한 제자들이 예수님 말씀대로 오순절에 성령 받고는 새로워졌습니다. 기가 센 사람도 더 센 사람을 만나면 고분고분해지는 것과 같습니다.
이처럼 예수 안에서 성령이 우리 안에 찾아오시면 온유와 화평과 충성과 절재의 열매를 맺혀 착한 마음이 압도하기 때문에 순종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겸손해지고 악령이 임하면 교만해지는 것은 영적공식입니다. 그러므로 자아처리에 있어서 기도와 찬송으로 말미암는 성령 충만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런데, 진실한 제자여야 합니다. “진실한 자들도 이기리로다.” 그러니까 더 정확한 답은 예수님의 11제자들입니다. 가룟 유다는 진실하지 않으니 빼야합니다. 그러니까 이기는 자의 정답은 예수님의 진실한 제자가 정답입니다.
이 말씀에는 가짜 제자 되지 말라는 말도 암시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눅6:46에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아니하느냐.” 예수님을 주라고 부르면서 주님의 뜻에 불순종하거나 그 순종함에 부족하다면 가짜란 말입니다.
바울은 진짜 종이었습니다. 그래서 고전15:32에서 “내가 사람의 방법으로 에베소에서 맹수와 (더불어) 싸웠다면 내게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했는데 여기 맹수는 동물 맹수가 아닙니다. 바울을 미워하고 핍박하던 악인들을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원치 않으시기에 더불어 싸우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도 핍박하는 원수들을 피하여 지나가셨습니다. 반면 겟세마네에서는 잡히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열두 사단도 더 되는 천군을 동원하여 싸우셨을 것이지만 아버지 뜻이 아니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진실한 제자가 되기 위해 예수님과 한 멍에를 메고 예수님의 말씀은 물론 예수님을 배우고 실천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는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하나님, 나의 왕, 나의 주로 삼았으니 우리 인생의 주인을 바꿨습니다. 우리의 신분에 맞게 살아가십시다. 그동안 내가 왕 되어 내 주관대로 살아왔기에 실패와 방황의 연속이었지만 이젠 주 앞에 순종만 하면 모든 것이 만사형통입니다. 우리 모두 어린 양 예수님을 우리의 주와 모본으로 삼고 마음의 괴물인 자아의 속성을 온전히 처리하는 온전한 믿음의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원문보기 글쓴이: agas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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