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요한계시록

큰 성 바벨론 1 (계 18:1-2)

nam씨 2025. 3. 1. 15:48
큰 성 바벨론 1 (계 18:1-2)

이 시간에 “큰 성 바벨론”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바벨론성은 느부갓네살 왕이 건설한 것으로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로 꼽히고 있습니다. 성이 크고 높고 두꺼운데다 깊은 강물이 성을 두르고 있어서 이론상으로는 무너질 수 없는 성이었습니다. 그 둘레가 90km이고 높이가 약 100m에 이른다고 하니까 어느 정도라는 큰 것임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더구나 수많은 나라들을 노예로 잡고 세계의 부요가 이곳으로 집중되었으니 어느 정도 강한 나라였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벨론 왕이 그 큰 성 안에서 성전 기명으로 술을 마시며 하나님의 이름을 능멸하다가 바벨론은 기원전 539년에 페르시아의 왕 고레스에 의해 무너졌습니다. 그래서 거기 잡혀 노예생활하던 하나님의 백성들이 1차 2차 3차에 걸쳐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이 큰 성 바벨론을 배경으로 세속에서의 해방을 자세히 조명하고 있습니다. 바벨론은 세상입니다. 박윤선 박사도 제가 보는 굿모닝 바이블도 큰 성을 세상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니까 세속론에 대한 공부입니다.


요한계시록이 가르쳐 주는 세속이란 무엇일까요?


1. 세속은 옛사람과 함께 무너지는 것입니다.


1절 “이 일 후에” 이 표현은 앞장과 다른 장면이 전개되는 것을 나타내주는 상용문구임과 동시에 어떤 연관성을 암시하는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17장과 18장을 내용별로 비교해보면 17장은 우리의 육신과 자아론이라면 18장은 세속론입니다. 이 두 가지가 동시에 처리되어야 하기 때문에 17장 자아론에 이어 18장 세속론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갈6:14에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그러니까 나와 세상, 이 두 가지가 성령으로 함께 처리되어야 합니다.


2. 세속을 처리하려면 하나님의 방법 아니고는 안 됩니다.


1절 “이 일 후에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니” 천사가 어디에서 내려왔습니까? 하늘에서 내려왔습니다. 이것은 세속을 이기는 방법은 오직 위로부터 말미암는다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그래서 요3:13-15에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위로부터 난 방법이 아니고는 세상을 처리할 수 없습니다.


약3:15-18에도 “이러한 지혜는 -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했습니다. 위로부터 난 것이 세상을 이깁니다.


그래서 요3:3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하셨습니다. 거듭난다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난다.’ 혹은 ‘위로부터 난다.’는 의미입니다.


이 중생의 결론이 요3:16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러니까 중생이란 예수를 믿음으로 오는 것입니다. 어느 단체에서는 깨달아야 온다고 하는데 예수가 나의 구주라는 걸 믿는 자는 극적인 순간이 없어도 옵니다.


그런데 이 위로부터 난 생명은 겨자씨와 같아서 혹은 누룩과 같아서 보이지 않지만 신앙생활 잘 하면 어느덧 내 인격을 모두 새 생명으로 가득 채워 버립니다. 그래서 옛 것은 사라지고 새 것이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요즘 도로공사하면서 옛날 도로 놔두고 새 도로를 놓듯, 세상을 이기는 원리도 하늘에서 내신 방법으로 가능하다는 말입니다.


3. 즉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이 아니고는 불가능합니다.


큰 권세를 가졌는데 그의 영광으로 땅이 환하여지더라.” 천사가 큰 권세를 가지고 내려왔습니다. 천사란 하늘과 땅의 복음을 맡은 자의 총칭이라 할 수 있는데 큰 권세는 바로 복음의 권세입니다.


그래서 마28:18-20에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셨습니다.


이 복음에는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과 승천과 재림의 권세가 있기에 큰 권세입니다. 베드로가 신앙고백하자 천국 열쇠를 주심과 같이 복음이 천국열쇠입니다. 복음을 받아들이면 천국이 열립니다. 세상과 지옥의 권세도 이길 강력한 권세입니다.


그래서 “그의 영광으로 땅이 환하여지더라.” 이 말씀은 세상이 어둡다는 것이 전재한 말씀임과 동시에 예수님과 그 복음이 밝은 광채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4:12-16에 “예수께서 -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 했습니다.


복음의 밝은 광채가 어둔 땅에 비쳤습니다. 감사한 것은 우리가 이 복음을 몰랐다면 얼마나 어둠 가운데 헤매겠습니까? 그러나 밝은 광채로 하나님을 알고 예수님 성령님 천국 지옥 세상 사탄 죄까지도 벗어나는 길까지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16:33에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셨습니다. 이 승리의 복음에 서시기 바랍니다.


4. 성령으로 말미암는 복음의 확신이 필요합니다.


2절 “힘찬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여기 힘센 음성은 복음에 대한 성령의 확증을 의미합니다. 복음을 알고 믿어도 성령의 확신이 없으면 그 은혜를 체험할 수 없습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승리가 그것입니다.


살전1:4-5에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이는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 했습니다. 그래서 성령 강조하지 않으면 그 말씀은 복되지 않고 그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왜 그런 힘찬 음성이 주어졌을까요? 그 만큼 세상이란 인간에게 힘겨운 상대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세상을 이길 수 없습니다. 애굽이 세상의 예표라고 볼 때, 애굽의 왕자 모세도 이스라엘을 구해내지 못했습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능력이라야 했습니다.


그런데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이 반복법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과거형 감탄형 강조형 증거형 등입니다. 이처럼 바벨론의 무너짐은 모두의 숙원이었음과 동시에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이루어진 사건이란 점, 그리고 이 진리를 성령으로 받아들여 해방될 때 하나님의 기쁨이 된다는 것입니다.


바벨론이 모든 나라들을 속국으로 만들고 사람들을 노예로 삼은 것처럼 세상을 이길 자는 아무도 없지만, 그리스도께서 승리하신 그 복음을 믿는 자는 그 공로로 다 승리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오순절에 베드로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고 외친 것입니다.


그러니까 무너졌다는 동사가 과거형입니다. 이처럼 나와 세상이 예수 안에서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것을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은혜 받으면 세상이 싫어집니다. 나와 아런 관계가 없어집니다. 그러므로 복음에 서서 늘 은혜로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5. 세상의 정체를 알아야 합니다.


2절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이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들이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죄인의 눈에는 세상의 모든 것이 그럴사해 보이지만 실재는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이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들이 모이는 곳이라는 것입니다.


귀신의 처소”란 거기에 말씀이 없다는 것입니다. 눅11:24-26에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성경에서 물은 말씀이요, 세례를 가리킵니다. 그래서 벧전3:21에 “물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했습니다. 그리고 귀신의 처소란 거기에 성령이 없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요14:17에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했습니다.


또 “각종 더러운 영이 모이는 곳” 더럽다는 것은 죄악되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유1:7-8에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그들과 같은 행동으로 음란하며 다른 육체를 따라 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 그러한데 꿈꾸는 이 사람들도 그와 같이 육체를 더럽히며 권위를 업신여기며 영광을 비방하는도다.” 했습니다. 마음상태가 더럽다면 악령의 시험이라고 보고 물리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들이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란 레 11장의 식용할 수 없는 부정한 새를 배경으로 한 교훈입니다. 레 11장의 음식에 대한 율법은 하나님 백성의 삶이 정결해야 할 것을 말씀하심인데 그 중에서 새는 정서생활에 관한 것입니다.


성도는 사랑의 정서를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독수리와 솔개와 어응과 매와 매 종류"(13-14절)는 안 됩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흉폭합니다. 또 성도는 밝고 긍정적인 정서를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까마귀 종류와 타조와 다호마스와 갈매기와 새매 종류와 올빼미와 노자와 부엉이와 따오기와 당아와 올응과"(15-18절) 이들 새의 공통점은 어둡고 슬픕니다. 그리고 성도는 안정되고 담대한 정서를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학과 황새 종류와 대승과 박쥐"(19절) 는 안 됩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불안하고 유약한 정서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혹시 마음이 아직도 흉악하고 어둠과 미움과 부정함과 슬픔 나약 절망 근심과 걱정과 한숨과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다면 어서 속히 패역한 세속에서 출애굽하시기 바랍니다. 더 이상 악의 영이 가득한 그런 생활하지 말고 성령 안에서 밝고 밝은 의와 평강과 희락이 넘쳐 흐르는 천국생활으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은 우리를 이 패역한 세상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늘의 영광 다 버리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영혼을 죄악의 노예로 삼고 오늘도 어둠을 향해 달려가게 하는 세상을 경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사는 길은 세상의 넓은 길이 아닌 천국의 좁은 길입니다. 이 세상에서 벗어나는 길은 하늘에서 내신 하나님의 방법 말고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열심히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승리와 성령의 확증해주시는 은혜를 입어서 세상은 우리에게서 다 사라지고 온전한 영광의 하늘에 속한 삶을 살아가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원문보기 글쓴이: agas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