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머리와 열 뿔 가진 짐승 1 (계 17:7-8)
7. 천사가 이르되 왜 놀랍게 여기느냐 내가 여자와 그가 탄 일곱 머리와 열 뿔 가진 짐승의 비밀을 네게 이르리라 8. 네가 본 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으나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니 땅에 사는 자들로서 창세 이후로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들이 이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으나 장차 나올 짐승을 보고 놀랍게 여기리라
이 시간에는 “일곱 머리와 열 뿔 가진 짐승”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말씀 드리기 전에 돕는 시사적인 말을 먼저 드리고자 합니다. 최근 북한 정보기관의 고위 당국자들의 탈북으로 인해 중요한 정보들이 유출되어선지 북한 당국이 발칵 뒤집히고 있습니다. 뉴스에도 나왔지만 최근 북한이 평양방송을 통해 남파공작원 지령용으로 추정되는 난수방송을 계속 보내고 있습니다.
난수방송이란 숫자나 문자나 단어 등을 보통사람들은 알 수 없고 훈련 받은 첩보원들만 알 수 있게 나열하여 교란 기만, 혹은 지령을 내리기 위한 용도로 쓰이는 암호방송입니다. 이미 우리나라 정보기관에서는 다 해독하고 있으리라고 예상하는데, 이 난수방송은 일반인은 물라도 간첩들은 다 해독하는 방송입니다.
비유가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이처럼 우리 하나님의 말씀 성경도 최소한 우리들은 다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역시 일반인들은 그 내용을 알 수 없을지라도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은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거나 잘못 해석한다면 그 손해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그래서 계22:18-19에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했습니다.
이 성구에 가감하지 말라는 경고와 아울러 계시록이 하나님 나라 잔치에 참여하게 하는 성결의 복음인 것을 힌트해 주고 있습니다. 계시록을 가감 없이 잘 해석하면 은혜의 잔치에 들어갈 길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예수 복음으로 풀지 다르게 풀지 말라는 것입니다. 7절에 “여자와 그가 탄 일곱 머리와 열 뿔 가진 짐승의 비밀”이라고 한 것처럼 오늘도 그 비밀을 해석하는 복된 시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럼 일곱 머리와 열 뿔 가진 짐승은 무엇일까요?
1. 세상이 이용하는 인간의 몸과 마음의 약점을 말합니다.
7절 “천사가 이르되 왜 놀랍게 여기느냐 내가 여자와 그가 탄 일곱 머리와 열 뿔 가진 짐승의 비밀을 네게 이르리라” 지난 시간에도 언급했지만 이 괴물은 육신의 본능과 인간의 자아입니다. 계12:17에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서 있더라" 한 것처럼 사탄이 틈타는 것은 성도의 육신적인 약점 말고는 없습니다.
육신을 입었다는 것은 현재로서는 최고의 약점입니다. 그러나 육신을 드려 하나님을 섬기는 등 잘 활용한다면 그만큼 보배가 없고, 또 장차로서는 가장 장점이 될 것입니다. 왜나하면 하나님 나라를 우리 영혼만이 아니라 부활하여 육체로까지 누린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복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은혜를 거절하면 육체까지도 지옥 불에 던져지는 불행을 당하게 됩니다.
그래서 마10:28에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하셨고, 마5:29-30에는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여자가 짐승을 타고 있습니다. 즉 세상이 우리를 이용하려고 합니다. 타락한 인간 역시 세상의 노예가 되기를 자청합니다. 세상은 인간을 종 삼고, 인간은 세상의 노예가 되기를 갈망하고, 서로 추구하는 목적이 있기 때문에 맞아 떨어진 것입니다. 딤전5:6에 "일락을 좋아하는 이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 하셨기에 결과는 공멸입니다.
즉 인간의 몸과 마음이 잠재적인 괴물인데 세상을 만나면 더욱 괴물로 변할 수 있습니다. 지금 세계에 문제가 되고 있는 폭탄 테러, 자살폭탄을 품고 자폭하는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의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프로이드의 이론을 빌리지 않더라도 학자들의 분석에 의하면 그들이 그 일을 자청한 진짜 원인은 신앙도 정치도 그 무엇도 아니고 알라를 위해 순교하면 내세에서 72명 처녀를 만나 영원토록 행복하게 살 것이라는 성적인 소망이 그 원인이라는 분석입니다.
알다싶이 이슬람 사회는 일부다처제이기 때문에 돈 있는 사람이 여성을 다 차지하기 때문에 짝을 못 찾고 생을 마감하는 불행한 독신남녀들이 많습니다. 그들에게 화가들이 그린 미인들의 품에서 지내는 남녀 간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교육시키는데 그런 보상의 유혹이야말로 물리치기 어려운 큰 유혹이 될 것입니다.
이처럼 세상의 온갖 범죄는 세상이 이 마음의 괴물을 충동해서 이루어진 사건입니다. 세상과 육신은 불과 불나비와 같아서 만나면 미치기 때문에 절대 만나서는 안 될 대상입니다. 그래서 요일5:21에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게서 멀리하라"고 교훈합니다. 그러므로 여자가 탄 일곱 머리와 열 뿔 가진 짐승은 세상이 이용하는 육신의 본능과 자아를 말하는 것입니다.
2. 그런데 이 짐승은 육신 말고도 죽음을 의미하기도 하다는 사실입니다.
8절 “네가 본 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으나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니 땅에 사는 자들로서 창세 이후로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들이 이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으나 장차 나올 짐승을 보고 놀랍게 여기리라”
여기 8절에서 말하는 이 짐승은 무엇일까요? 문맥상으로 보면 분명히 이 짐승은 앞의 일곱 머리와 열 뿔 가진 짐승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내용으로 보면 그것도 아닌 것 같고, 대체 뭐가 뭔지 난해한 수수께끼 푸는 것과 같아 매우 혼란스럽습니다. 과연 이 짐승의 비밀이 무엇일까요?
이제부터 본문을 근거해서 몇 가지 힌트를 드릴 테니 답을 맞추어 보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전에는 있었습니다. 현재는 없습니다. 장차 나타납니다. 그리고 장차 나타나긴 하지만 다시 영원히 사라집니다. 그러니까 현재는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건 불신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요, 은혜 받지 못하고 아직 육신에 속한 성도들도 역시 두려워하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성도는 해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영원한 원수이기에 장차는 영원히 멸망에 처해지고 말 그 어떤 것입니다.
이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이것은 바로 사망입니다. “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으나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란 우리 인간을 두고 말하는 사망 이야기입니다. 즉 우리가 세상에 나기 전에는 죽은 거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존재하지 않았으니까요. 말하자면 전에는 사망이 존재한 것입니다. 그래서 “전에 있었다가”했습니다.
그러나 죽음은 우리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현재로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생명은 죽음과 반대이기 때문입니다. 생명이 존재하는 한 사망은 없습니다. 이렇게 사망과 생명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돌아갑니다. 이것이 “시방 없으나”의 뜻입니다.
그런데 육신이 영원하지 않기에 사망이 장차 나타납니다. 그래서 사40:7-8에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했습니다.
그런데 이 짐승이 무저갱에서 나온다 했듯이 죽음은 무저갱과 같아서 모두를 데려가고 데려가도 만족할 줄을 모릅니다. 그래서 잠27:20에 “음부와 유명은 만족함이 없고” 라고 했습니다. 사망이 아니고는 그 답이 나올 수 없는 힌트들입니다. 그러므로 데려가고 데려가고 또 데려가도 결코 만족하지 않고 모든 인생을 또 데리러 오는 것이 바로 죽음입니다.
그런데 “땅에 사는 자들로서 창세 이후로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들이 이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으나 장차 나올 짐승을 보고 놀랍게 여기리라” 한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죽음의 두려움은 땅에 속한 즉 육에 속한 불신자만이 느끼는 감정이지 생명책에 기록된 예수 믿고 성령 받은 성도에게는 없는 감정이라는 것입니다. 육에 속한 자만이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그러므로 두렵다면 아직 깊은 믿음에 도달하지 못했음을 기억하고 성령의 은혜 가운데 거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바울은 빌1:23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 했고, 히2:15에서는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니라"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은혜 받은 성도는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이처럼 죽음은 성도를 해하지 못하고 예수 그리스도 재림 시에 죽음은 영원히 심판을 받습니다. 그것은 온전한 부활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계21:4에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하셨고, 고전15:26에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했습니다. 성도에게서 사망은 영원히 사라질 날이 온다는 말입니다.
이 괴물이 죽음임을 보여주는 진리가 또 있습니다. 본문에 “창세 이후로”라는 용어와 “생명책”이라는 용어입니다. 창세 이후라는 말을 볼 때 아담 이후 모두 사망 권세의 지배를 받았음이 암시합니다. 그리고 생명책이라는 용어에서 그 외의 사람들에게는 사망을 말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은 사람은 영원히 지옥에 던져지는 불행해 처해집니다.
설명해 주니까 죽음이라는 결론이 나오지요? 그러나 아직도 의문점이 남으실 것입니다. 그 의문이란 어떻게 육신의 본능과 자아를 말하는 그 짐승이, 동시에 죽음을 의미하는 것일 수 있느냐는 점 때문입니다. 7절에서는 육신을 말한다 했는데 8절에서는 문맥의 끊김 조차 없이 사망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성경이 표현이 옳습니다. 왜냐하면 죽음이란 육체와 따로 실존하는 존재라기보다 인간의 소생과 발육과 성장과 유지와 소멸이라는 과정 속에 나타나는 하나의 현상이라는 점에서 이렇게 생명과 사망 두 존재는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생명체의 소멸이 곧 죽음입니다. 죄도 그렇습니다. 죄란 따로 존재하는 어떤 실존적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과 관계적 이탈이 곧 죄입니다. 생명과 복의 하나님을 이탈하니까 죽음이 오고 불행이 왔습니다. 전기의 차단기를 내리는 순간 전기로 말미암은 모든 서비스는 그치고 불편해 견딜 수 없는 것처럼 모든 죄의 열매 역시 하나님과 이탈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왜 죄를 만들었느냐 이런 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완벽한 창조물이라면 자유의지를 가져야 하고, 자유의지를 가진 창조물이라면 어떤 면에서 순종 혹은 배반도 가능한 그래서 순종 여부에 따라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죄란 필연적으로 따라올 수밖에 없는 그런 존재가 바로 죄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동산 중앙에 금령의 법이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죽음 역시 인간과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범죄로 말미암아 그 죄 값인 육신의 연약함 때문에 찾아온 결과입니다. 우리 영혼과 육체가 영생하는 존재라면 죽음이란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육체의 생명을 말하면서 동시에 자연스럽게 죽음에 대한 내용으로 이어간 것입니다.
이런 원리로 세상 역시 인생의 청춘이 있을 때만 그것을 기회로 득세합니다. 그러나 우리 육체가 약해지고 사라질 날이 있기 때문에 이 세상과 그 정욕도 다 지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을 성령의 은혜를 받아 죽음을 초월하며 살 뿐 아니라 썩어 없어질 세상 것에 집착하지 마시고 저 영원한 것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처해 있는 환경은 심히 악하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우리 몸과 마음은 심히 위험한 존재지만 실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우리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고 늘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성령의 충만하심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붙들어주셔야 육체를 가지고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괴물과 같은 세상과 육체와 마음과 사망의 정체성을 깨닫고 더욱 정신 차려 믿음 생활하므로 하나님의 은혜로 온전히 승리하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원문보기 글쓴이: agas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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