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에서 올라온 다른 짐승 3 (계 13:13-14)
13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고 14 짐승 앞에서 받은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오늘도 “땅에서 올라온 다른 짐승”세 번째 시간으로 ‘세상의 미혹력’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세상은 타락한 인간의 심성이나 그 문화입니다. 세상을 비유하자면 향기의 독으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향기를 좋아하는데 대부분의 향기에는 독이 있고 아름답고 진할수록 독이 더 많습니다. 그래서 향내 나는 꽃을 침실에 들여놓거나 병문안할 때 진한 향내 나는 꽃은 피해야 합니다.
한국의 약초연구가 최진규씨에 의하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향기는 살모사 향기라고 합니다. 살모사의 향기를 맡으면 정신이 황홀해져 그 향기를 따라가면 살무사 소굴에 빠져서 살모사의 밥이 되고 만다고 합니다. 그래서 살모사 굴에서 어머니 뼈를 찾아왔다고 해서 살모사(殺母蛇)라고 한다고 합니다. 지금도 뱀을 잡는 땅꾼들이 행방불명되는 사례가 많은데 이 때문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세상이 이와 같다고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미혹력은 어느 정도일까요?
7. 세상은 불꽃과 같이 열정적입니다.
13절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고” 성경에서 하늘에서 불이 내려온 이야기는 여러 번 있습니다. 역대하 7:1에 여호와의 성전 낙성식에서 솔로몬의 기도 후에 불이 하늘에서부터 내려와서 그 번제물과 제물들을 살랐고, 왕하 1장을 보면 아합왕이 엘리야의 목숨을 찾을 때 보낸 군사들이 50명씩 세 번이나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살랐습니다.
그리고 왕상 18장을 보면 엘리야가 바알 선지자들과 대결할 때 여호와의 불이 하늘에서 내려 여호와의 제단의 제물을 살랐는가 하면, 눅 9장을 보면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자 야고보와 요한이 화가 나서 불을 명하여 하늘로 부터 저들을 멸하기를 간청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세상도 하나님을 흉내냅니다. 성령이 임하면 상상할 수 없는 열심과 헌신이 생기듯, 세상의 불꽃도 정열적이며 세상에 자기를 바치게 만듭니다. 성경에 아말렉 자손이 나오는데 아말렉이 이스라엘이 약한 때마다 나타나서 치는 자로 세상정욕의 상징입니다. 그리고 아말렉의 왕을 아각이라고 부르는데 아각이란 불이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세상정욕은 열정적이고 지배적이어서 한 번 사로잡히면 자신을 불태우고 재산을 불태우고 신앙까지도 불태워 버리고 맙니다. 자기만 태울까요? 다른 사람까지 그 불에 휩싸이게 합니다. 남의 가슴에 불을 지르지 못하면 스타가 되지 못합니다. 한 동안 세계는 아무개의 말춤의 불길에 휩싸였습니다.
그렇게 세상 공연장의 열기란 대단합니다. 모두가 광란에 휩싸여 전신을 흔들며 목이 터져라 부르는 그 모습을 보면 영만 다르지 성령부흥운동을 완벽하게 흉내낸 모습입니다. 사람들이 좋아한다고 교회에 이런 불이 들어오면 안 됩니다. 다른 불을 드리다가 죽은 사람이 나답과 아비후입니다. 아론의 두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다른 불을 드리다가 죽었듯이 이 불이 붙으면 교인들의 심령은 다 죽고 맙니다.
교회에서 세상 가수 초청하면 안 됩니다. 지난날 가수였으나 복음가수가 되어 돌아왔다면 좋지만 세상노래와 찬송을 함께 부르는 가수들은 영감이 있을 수 없습니다. 단지 '아무개도 예수 믿더라.' 그 정도 효과 말고는 바랄 것이 없고 열매도 없습니다. 성경은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나는 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 하니라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냐”(약3:10-11)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세상의 불이 붙는다는 것은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사람을 타락시키고 미치게 만듭니다. 그래서 "큰 이적"이라고 했습니다. 이적도 아니고 큰 이적은 뭘까요? 성경에서 큰 이적은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부활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예수 믿고 변화되는 것을 큰 이적이라 합니다. 세상에 이적이 있다 해도 이 두 이적을 능가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세상도 모방하여 똑 같이 그렇게 합니다. 그러니까 이 큰 이적은 변화는 변화인데 반대적 변화 즉 타락으로 속화시키는 이적입니다. 세상 미혹의 마력을 멀리하며 조심해야 합니다. 사울이 아각을 살려두다 어떤 변을 당합니까? 그 귀한 왕권을 빼앗깁니다. 그러므로 영의 복 잃지 않으려면 세상 것을 잘 처리해야 합니다.
8. 세상은 인간의 정보를 기초로 만들어진 미혹합체물입니다.
손자병법에 '나를 알고 적을 알면 백전 백승이라' 했는데 육신의 모든 정보를 다 알고 미혹하니 당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14절에 “짐승 앞에서 받은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더라” 했습니다.
여기 “짐승 앞에서 받은바”란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의 정보 즉 소욕의 정보를 다 알아서라는 말입니다. 앞의 12절에서 “그가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더란 말에게 이미 말한바 있습니다. 타락한 영상매체처럼 대리 만족 비슷하게 연출시키기도 합니다.
외국 기업들이 국내시장을 공략하기 위해서 모든 조사를 완벽하게 한 다음에 쳐들어오듯이 세상이 인간의 모든 욕구를 알고 같은 톤으로 공략하기 때문에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톤이 달라 불협화음을 일으켜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말입니다.
그걸 영어로 어필(appeal)이라고 합니다. 어필하다는 말은 ‘(무엇이 사람에게) 흥미를 불러일으키거나 매력을 느끼게 하는 것’을 어필하다고 합니다. 이렇게 세상은 우리 인간의 정보를 기초로 하여 만들어진 문화이기 때문에 인간의 소욕에 어필하는 힘이 강력합니다.
그래서 이적을 행하며 미혹하는데 이적이란 본래 어떤 것을 선전하거나 보증하는 보조적인 수단입니다. 예수님께서 메시아로 오셨을 때도 이적이 그 증거가 되었고, 하나님 나라 복음 증거도 이적이 수반되어 성공적으로 수행될 수 있었습니다. 세상도 예수님을 그대로 본을 받아서 이적으로 사람들을 미혹한단 말입니다.
그럼 그 이적이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그것은 온갖 탐욕의 보랏빛 상상력과 같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마음에 세상에 대한 천하만국과 그 영광 등 온갖 환상을 불어넣어 줍니다. 성령의 환상을 모방합니다. 환상만 줍니까? 하룻밤에도 수십 번 성공의 바벨탑을 하늘 높이 쌓았다가 쓸었다가를 반복하거나, 심리적 자극을 통해 찌릿찌릿한 체험을 주면서, 마음속에서 희망의 소리가 들려오는 등 온갖 요술을 다 부립니다.
눅 12장을 보면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16-19절) 했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것은 세상이 주는 보랏빛 상상력이지 마음으로라도 그 탐욕에 빠지는 날이면 그것은 행복도 아니고 우리 영의 독약과도 같은 고통이 따라옵니다. 우리는 그 비극을 666에서 다시 배우게 될 것입니다. 성경은 "일락을 좋아하는 자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행복하려면 살모사의 독과 같은 마음의 세속을 철저히 몰아내시기 바랍니다.
9. 이 땅에 거하는 자는 누구든 그 미혹을 피하지 못합니다.
14절 중 반절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세상 사람이라면 아무도 피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엡2:2-3에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꼼짝할 수 없이 당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복음의 힌트도 줍니다. 즉 땅에 속하지 않고 하늘에 속한 자는 미혹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성도는 예수 안에서 하늘에 속한 자입니다. 그래서 요15:19에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했습니다.
그 뿐 아니라 성도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세상 죄와는 원수입니다. 이 하늘에 속한 자는 세상이 미혹할 수 없더라는 말입니다. 그런데도 세상의 미혹이 시험이 되거든 하나님을 멀리하지 않았는지 자기를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성령 충만을 받아야 거룩해지고 영에 속한 사람이 됩니다(고전2:14). 그러나 육에 속한 자는 세상의 미혹을 피할 수 없습니다.
10. 우리 양심이 말씀에 무뎌지면 그 심령은 세상의 밥입니다.
14절 하반 절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언제 탐욕이라는 우상에 빠지게 됩니까? 칼에 상하여 아주 죽어야 하는데 살아날 때입니다. 여기서 칼은 말씀인데 말씀의 칼이 무디어질 때 그 심령에 탐욕이 다가오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시119:11에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했습니다. 사실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은 올라올 때 이미 물 즉 말씀을 떠난 자입니다. 말씀충만하지 않으면 우리 신앙이 세속화되는 것은 시간 문제입니다.
어느 집사님은 자기 담임목사에게 "목사님, 신앙생활을 열심히 해도 사람의 인간성은 변하지 않는 모양이지요?" "무슨 말씀이신가요?" 하였더니 자신이 사업을 하면서 몇 번이나 사기를 당했는데 그 때마다 교인에게 당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교인들이 더 사기친다는 것은 아닙니다. 교인일지라도 그 마음에 말씀이 없다면 부덕을 저지르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 있는 사람은 -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시1:1-2) 사람입니다. 이 말씀 묵상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늘 묵상하면 자동으로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게 됩니다. 죄악 세상에서 성도가 살 수 있는 길은 기도와 말씀, 말씀과 기도밖에는 없다는 사실을 깊이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딤전4: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의 정열의 불길은 뜨겁게 타오르고 있습니다. 세상은 우리의 모든 정보를 다 알고 만들어진 미혹의 문화이기 때문에 한 번 빠지면 하나님이 건져주시기 전에는 나올 수 없습니다. 그러나 감사한 것은 하늘에 속하고 성령과 말씀으로 충만한 자는 세상이 손을 댈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예수 안에서 하늘에 속한 승리자임을 믿고 늘 말씀과 기도로 충만하여 세상이 주는 어떤 미혹도 다 이기고 승리자로서 하나님 앞에 우뚝 설 수 있는 장한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13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고 14 짐승 앞에서 받은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오늘도 “땅에서 올라온 다른 짐승”세 번째 시간으로 ‘세상의 미혹력’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세상은 타락한 인간의 심성이나 그 문화입니다. 세상을 비유하자면 향기의 독으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향기를 좋아하는데 대부분의 향기에는 독이 있고 아름답고 진할수록 독이 더 많습니다. 그래서 향내 나는 꽃을 침실에 들여놓거나 병문안할 때 진한 향내 나는 꽃은 피해야 합니다.
한국의 약초연구가 최진규씨에 의하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향기는 살모사 향기라고 합니다. 살모사의 향기를 맡으면 정신이 황홀해져 그 향기를 따라가면 살무사 소굴에 빠져서 살모사의 밥이 되고 만다고 합니다. 그래서 살모사 굴에서 어머니 뼈를 찾아왔다고 해서 살모사(殺母蛇)라고 한다고 합니다. 지금도 뱀을 잡는 땅꾼들이 행방불명되는 사례가 많은데 이 때문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세상이 이와 같다고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미혹력은 어느 정도일까요?
7. 세상은 불꽃과 같이 열정적입니다.
13절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고” 성경에서 하늘에서 불이 내려온 이야기는 여러 번 있습니다. 역대하 7:1에 여호와의 성전 낙성식에서 솔로몬의 기도 후에 불이 하늘에서부터 내려와서 그 번제물과 제물들을 살랐고, 왕하 1장을 보면 아합왕이 엘리야의 목숨을 찾을 때 보낸 군사들이 50명씩 세 번이나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살랐습니다.
그리고 왕상 18장을 보면 엘리야가 바알 선지자들과 대결할 때 여호와의 불이 하늘에서 내려 여호와의 제단의 제물을 살랐는가 하면, 눅 9장을 보면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자 야고보와 요한이 화가 나서 불을 명하여 하늘로 부터 저들을 멸하기를 간청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세상도 하나님을 흉내냅니다. 성령이 임하면 상상할 수 없는 열심과 헌신이 생기듯, 세상의 불꽃도 정열적이며 세상에 자기를 바치게 만듭니다. 성경에 아말렉 자손이 나오는데 아말렉이 이스라엘이 약한 때마다 나타나서 치는 자로 세상정욕의 상징입니다. 그리고 아말렉의 왕을 아각이라고 부르는데 아각이란 불이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세상정욕은 열정적이고 지배적이어서 한 번 사로잡히면 자신을 불태우고 재산을 불태우고 신앙까지도 불태워 버리고 맙니다. 자기만 태울까요? 다른 사람까지 그 불에 휩싸이게 합니다. 남의 가슴에 불을 지르지 못하면 스타가 되지 못합니다. 한 동안 세계는 아무개의 말춤의 불길에 휩싸였습니다.
그렇게 세상 공연장의 열기란 대단합니다. 모두가 광란에 휩싸여 전신을 흔들며 목이 터져라 부르는 그 모습을 보면 영만 다르지 성령부흥운동을 완벽하게 흉내낸 모습입니다. 사람들이 좋아한다고 교회에 이런 불이 들어오면 안 됩니다. 다른 불을 드리다가 죽은 사람이 나답과 아비후입니다. 아론의 두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다른 불을 드리다가 죽었듯이 이 불이 붙으면 교인들의 심령은 다 죽고 맙니다.
교회에서 세상 가수 초청하면 안 됩니다. 지난날 가수였으나 복음가수가 되어 돌아왔다면 좋지만 세상노래와 찬송을 함께 부르는 가수들은 영감이 있을 수 없습니다. 단지 '아무개도 예수 믿더라.' 그 정도 효과 말고는 바랄 것이 없고 열매도 없습니다. 성경은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나는 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 하니라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냐”(약3:10-11)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세상의 불이 붙는다는 것은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사람을 타락시키고 미치게 만듭니다. 그래서 "큰 이적"이라고 했습니다. 이적도 아니고 큰 이적은 뭘까요? 성경에서 큰 이적은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부활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예수 믿고 변화되는 것을 큰 이적이라 합니다. 세상에 이적이 있다 해도 이 두 이적을 능가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세상도 모방하여 똑 같이 그렇게 합니다. 그러니까 이 큰 이적은 변화는 변화인데 반대적 변화 즉 타락으로 속화시키는 이적입니다. 세상 미혹의 마력을 멀리하며 조심해야 합니다. 사울이 아각을 살려두다 어떤 변을 당합니까? 그 귀한 왕권을 빼앗깁니다. 그러므로 영의 복 잃지 않으려면 세상 것을 잘 처리해야 합니다.
8. 세상은 인간의 정보를 기초로 만들어진 미혹합체물입니다.
손자병법에 '나를 알고 적을 알면 백전 백승이라' 했는데 육신의 모든 정보를 다 알고 미혹하니 당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14절에 “짐승 앞에서 받은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더라” 했습니다.
여기 “짐승 앞에서 받은바”란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의 정보 즉 소욕의 정보를 다 알아서라는 말입니다. 앞의 12절에서 “그가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더란 말에게 이미 말한바 있습니다. 타락한 영상매체처럼 대리 만족 비슷하게 연출시키기도 합니다.
외국 기업들이 국내시장을 공략하기 위해서 모든 조사를 완벽하게 한 다음에 쳐들어오듯이 세상이 인간의 모든 욕구를 알고 같은 톤으로 공략하기 때문에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톤이 달라 불협화음을 일으켜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말입니다.
그걸 영어로 어필(appeal)이라고 합니다. 어필하다는 말은 ‘(무엇이 사람에게) 흥미를 불러일으키거나 매력을 느끼게 하는 것’을 어필하다고 합니다. 이렇게 세상은 우리 인간의 정보를 기초로 하여 만들어진 문화이기 때문에 인간의 소욕에 어필하는 힘이 강력합니다.
그래서 이적을 행하며 미혹하는데 이적이란 본래 어떤 것을 선전하거나 보증하는 보조적인 수단입니다. 예수님께서 메시아로 오셨을 때도 이적이 그 증거가 되었고, 하나님 나라 복음 증거도 이적이 수반되어 성공적으로 수행될 수 있었습니다. 세상도 예수님을 그대로 본을 받아서 이적으로 사람들을 미혹한단 말입니다.
그럼 그 이적이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그것은 온갖 탐욕의 보랏빛 상상력과 같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마음에 세상에 대한 천하만국과 그 영광 등 온갖 환상을 불어넣어 줍니다. 성령의 환상을 모방합니다. 환상만 줍니까? 하룻밤에도 수십 번 성공의 바벨탑을 하늘 높이 쌓았다가 쓸었다가를 반복하거나, 심리적 자극을 통해 찌릿찌릿한 체험을 주면서, 마음속에서 희망의 소리가 들려오는 등 온갖 요술을 다 부립니다.
눅 12장을 보면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16-19절) 했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것은 세상이 주는 보랏빛 상상력이지 마음으로라도 그 탐욕에 빠지는 날이면 그것은 행복도 아니고 우리 영의 독약과도 같은 고통이 따라옵니다. 우리는 그 비극을 666에서 다시 배우게 될 것입니다. 성경은 "일락을 좋아하는 자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행복하려면 살모사의 독과 같은 마음의 세속을 철저히 몰아내시기 바랍니다.
9. 이 땅에 거하는 자는 누구든 그 미혹을 피하지 못합니다.
14절 중 반절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세상 사람이라면 아무도 피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엡2:2-3에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꼼짝할 수 없이 당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복음의 힌트도 줍니다. 즉 땅에 속하지 않고 하늘에 속한 자는 미혹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성도는 예수 안에서 하늘에 속한 자입니다. 그래서 요15:19에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했습니다.
그 뿐 아니라 성도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세상 죄와는 원수입니다. 이 하늘에 속한 자는 세상이 미혹할 수 없더라는 말입니다. 그런데도 세상의 미혹이 시험이 되거든 하나님을 멀리하지 않았는지 자기를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성령 충만을 받아야 거룩해지고 영에 속한 사람이 됩니다(고전2:14). 그러나 육에 속한 자는 세상의 미혹을 피할 수 없습니다.
10. 우리 양심이 말씀에 무뎌지면 그 심령은 세상의 밥입니다.
14절 하반 절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언제 탐욕이라는 우상에 빠지게 됩니까? 칼에 상하여 아주 죽어야 하는데 살아날 때입니다. 여기서 칼은 말씀인데 말씀의 칼이 무디어질 때 그 심령에 탐욕이 다가오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시119:11에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했습니다. 사실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은 올라올 때 이미 물 즉 말씀을 떠난 자입니다. 말씀충만하지 않으면 우리 신앙이 세속화되는 것은 시간 문제입니다.
어느 집사님은 자기 담임목사에게 "목사님, 신앙생활을 열심히 해도 사람의 인간성은 변하지 않는 모양이지요?" "무슨 말씀이신가요?" 하였더니 자신이 사업을 하면서 몇 번이나 사기를 당했는데 그 때마다 교인에게 당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교인들이 더 사기친다는 것은 아닙니다. 교인일지라도 그 마음에 말씀이 없다면 부덕을 저지르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 있는 사람은 -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시1:1-2) 사람입니다. 이 말씀 묵상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늘 묵상하면 자동으로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게 됩니다. 죄악 세상에서 성도가 살 수 있는 길은 기도와 말씀, 말씀과 기도밖에는 없다는 사실을 깊이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딤전4: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의 정열의 불길은 뜨겁게 타오르고 있습니다. 세상은 우리의 모든 정보를 다 알고 만들어진 미혹의 문화이기 때문에 한 번 빠지면 하나님이 건져주시기 전에는 나올 수 없습니다. 그러나 감사한 것은 하늘에 속하고 성령과 말씀으로 충만한 자는 세상이 손을 댈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예수 안에서 하늘에 속한 승리자임을 믿고 늘 말씀과 기도로 충만하여 세상이 주는 어떤 미혹도 다 이기고 승리자로서 하나님 앞에 우뚝 설 수 있는 장한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원문보기 글쓴이: agas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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