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에서 올라온 다른 짐승 1 (계 13:11)
11 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어린 양 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을 하더라 오늘부터는 “땅에서 올라온 다른 짐승”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땅에서 올라온 짐승이 무엇일까요? 강해를 돕기 위해서 답부터 말씀 드리면 땅에서 올라온 짐승은 성경적 관점에서 본 ‘세상 혹은 세상정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짐승은 앞에 나온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과 한 짝입니다. 즉 육신과 세상은 불나비와 불의 관계와 같습니다. 성경에서 예를 찾는다면 창 34장 디나 사건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야곱의 딸 디나가 세겜 성읍의 딸들을 보러 나갔다가 그 땅의 추장의 아들인 세겜이 그를 끌어들여 강간하는 일이 발생합니다. 그 일로 디나의 오빠인 레위와 시므온이 동생을 욕보였다고 칼을 들고 다가가, 디나와 결혼하겠다고 온 부족이 할례 받아 꼼짝도 못하는 세겜 사람들을 모조리 죽입니다. 이 일로 야곱은 심히 두려움에 빠집니다. 그것은 할례 받은 하나님의 백성을 죽였고, 또 하나는 가나안 땅의 주민들의 보복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을 당하고 야곱은 영적인 사람인지라 깨닫고 회개하고 벧엘에 올라가 여호와를 위해 단을 쌓습니다. 여기서 세겜은 바로 세상입니다. 딸 디나는 세상에 호기심을 갖는 우리 육신에 속한 사람이고요. 벧엘은 하나님과 교통 혹은 예배생활입니다. 우리가 영적 생활에 소홀할 때 우리 마음은 세상에 강간당해 더럽혀지고 우리 마음은 온갖 악한 감정으로 쑥대밭이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이라는 주제는 요한계시록에서 다루게 되는 중요한 주제입니다. 마치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오는 것처럼 세상에서의 구원은 그리스도의 구속사의 핵심입니다. 사도행전에서도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한 베드로의 외침처럼 중요한 주제입니다. 계시록에서 세상(세속)이라는 주제가 여러 각도에서 조명이 되는데 여기서는 우리와의 관련 속에서 소개 되고 있습니다. 그럼 세속 혹은 세상정욕이란 무엇일까요? 1. 세속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닙니다. 11절 “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땅에서 올라왔습니다. 땅은 세상을 상징합니다. 여기서 오해하지 말 것은 여기서 세상이란 지구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타락한 인간의 악한 심성이나 그들이 만든 모든 세속적인 문화를 일컫습니다. 그 출처가 어디입니까? 그 출처는 땅입니다. 땅에서 올라왔다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않았다. 즉 세상 혹은 정옥 혹은 귀신에게서 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약3:14-15에 “너희 마음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지 말라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 했습니다. 이것이 땅에서 났다는 것의 신령한 의미입니다. 그러면서 야고보는 영분별하는 법을 알려줍니다.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 즉 시기가 있고 다툼도 있고 혼란하고 악한 열매가 생긴다면 그것은 사탄의 영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이 영분별의 중요한 이론입니다. 그 열매를 봐야 합니다. 그래서 마7:15-16에 "거짓선지자를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의 열매로 그 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큰 기적과 큰 능력을 행사하더라도 그런 열매가 있다면 귀신의 영이 아닌지 의심해야 하고 자랑도 뽐도 내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니가 땅에서 났다는 것은 세상에서 났다. 사탄에게서 났다는 뜻일 뿐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요일2:15-16에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세속은 출처가 사탄이며 세석을 받아들이는 것은 사탄을 받아들이는 것이 되기 때문에 철저히 회개하고 경계해야 할 대상입니다. 2. 세상은 끊임없이 거짓된 행복을 약속합니다. 다시 11절 “어린 양 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을 하더라” 어린 양은 예수님인데 어린 양 같다고 했으니 예수님을 모방했다는 것입니다. 무얼 모방했을까요? 이처럼 세상은 구세주처럼 행복을 약속합니다. ‘세상, 얼마나 좋으냐? 여기에 즐거움이 있고 행복이 있다. 너희들 바보 같이 하나님만 섬기면서 왜 그렇게 재미없이 사냐? 세상 대로 사는 것이 인생의 낙이요, 지혜라. 이게 천국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이렇게 세상은 우리 마음에 속삭입니다. 그리고 두 뿔이 있었습니다. 뿔은 권세를 의미도 하지만, 여기서 두 뿔은 구약과 신약을 모방한 상징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양의 뿔로 만든 나팔을 양각나팔이라 하는데 이것은 복음나팔을 상징합니다. 그러니까 신구약의 말씀처럼 세상은 우리에게 거짓으로 약속하고 약속하고 약속을 반복하면서 세상을 동경하게 만든다는 말입니다. 성경이 그렇지요? 구약은 약속이고, 신약은 성취입니다. 즉 구약에서 죄악으로 멸망당할 수밖에 없는 우리들에게 구세주를 보내리라. 보내리라. 온갖 모양과 방법으로 말씀하시고 또 말씀하시고 설명하시고 또 설명하신 것처럼 그렇게 세상이 우리를 미혹한다는 말입니다. 돈으로 권세로 명예로 미인계로 우리를 미혹하려 합니다. 이 모든 것을 다 가지면 행복할 것 같지요? 그러나 이것은 자기를 저주하는 것이요, 죽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잠5:3-9에 “대저 음녀의 입술은 꿀을 떨어뜨리며 그의 입은 기름보다 미끄러우나 나중은 쑥 같이 쓰고 두 날 가진 칼 같이 날카로우며 그의 발은 사지로 내려가며 그의 걸음은 스올로 나아가나니 - 그런즉 아들들아 - 네 길을 그에게서 멀리 하라 그의 집 문에도 가까이 가지 말라 두렵건대 네 존영이 남에게 잃어버리게 되며 네 수한이 잔인한 자에게 빼앗기게 될까 하노라” 여기 음녀란 음녀이기도 하지만 한 편으로는 세상을 말하는 것으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을 사랑하는 것도 곧 간음이기 때문입니다. 신랑 되신 예수님 말고 다른 것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세상은 성경처럼 약속하고 약속하고 또 약속합니다. 선악과를 가지고 미혹하던 뱀과 같이 ‘먹어봐라. 먹어봐라. 먹어봐라. 하나님처럼 되, 행복해져, 지혜로운 일이야. 이 짧은 세상 왜 그렇게 사냐?’ 그러면서 미혹한단 말입니다. 그러나 세상을 다 가질 수 없을 뿐 아니라 가진다 해도 남는 것은 수고와 슬픔 뿐이고 죄의 짐은 더욱 무거울 뿐입니다. 이것이 세상을 다 경험하고 누려본 솔로몬의 고백입니다. 전2:1-11인데 일부만 읽어드리면 “모든 자들보다도 내가 소와 양 떼의 소유를 더 많이 가졌으며 은금과 왕들이 소유한 보배와 여러 지방의 보배를 나를 위하여 쌓고 또 노래하는 남녀들과 인생들이 기뻐하는 처첩들을 많이 두었노라 - 무엇이든지 내 눈이 원하는 것을 내가 금하지 아니하며 무엇이든지 내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내가 막지 아니하였으니 - 그 후에 내가 생각해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내가 수고한 모든 것이 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며 해 아래에서 무익한 것이로다”(7-11절) 천 명의 왕후를 둔 사람인데 더 말할 것 있습니까? 그러므로 세상의 행복 약속은 빈탕이고 쓴물이니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3. 세상의 그 미혹력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그런데 그 미혹력이 얼마나 놀라운지 여기 “용처럼 말을 하더라.” 용은 뱀이 완전히 자란 모습을 말합니다. 에덴동산의 뱀도 미혹력이 대단한데 다 자란 용이라고 하면 얼마나 대단하겠습니까? 아주 가지고 놀아버립니다. 얼마나 대단했으면 다윗과 같은 믿음의 용사도 사탄에게 넘어가 자기를 뽐낼 인구조사를 착수하다 얼마나 혼났습니까? 사탄은 성경까지 인용하면서 그럴듯하게 예수님께도 접근했지만 예수님은 그것을 물리치셨습니다. 이 세상이 우리 마음속에 붙어서 속삭입니다. 그런데 속삭일 정도가 아니라 마음에 환상을 불러일으키고 체험을 주면서 속삭입니다. 막상 소유하면 별 것 아닌데 그보다 상상 속에서 체험하는 것이 더 진국처럼 느껴진다고 하지 않습니까? 인간의 상상 속에 온갖 요술을 다 부리며 미혹합니다. 이것이 뱀의 성체인 용입니다. 비유하자면 용은 마치 보혜사 성령을 모방한 것과 같습니다. 우리 생각 속에 딱 붙어서 세상의 속삭임이 얼마나 대단한지 세상이라는 지남철에 한 번 끌려들기 시작하면 천하의 장사도 막지 못합니다. 독일 라인강 기슭에 있는 로렐라이라는 큰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 위에서 물의 요정이 머리를 빗으며 노래를 부르면 그 목소리가 너무나 신비롭고 아름다워 뱃사공들이 넋을 잃고 바라보다가 난파당했다는 전설로 유명합니다. 그리스 신화에도 아름다운 용모와 노래로 남자들을 미혹하여 파멸시키는 요정 싸이렌(Siren)의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반은 처녀이고 반은 새인 요정 싸이렌의 노래 소리를 듣고 무사히 통과한 배는 신화 속에 딱 두 번밖에는 없었습니다. 한 번은 오르페우스가 탄 아르고호(號), 이 배는 싸이렌의 노래 소리보다 더 아름다운 오르페우스의 노래 덕분에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또 한 배는 트로이전쟁을 끝내고 돌아가던 오디세우스의 배였습니다. 오디세우스는 키르케의 충고대로 자신과 부하들의 귀를 틀어막고 몸을 배에 묶어놓았기 때문에 무사히 싸이렌섬을 통과할 수 있었다는 전설입니다. 이것이 세상의 미혹성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거기 걸려들면 죽는 것입니다. 살아날 길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는 것 외에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 주시면 세상 것이 배설물과 같이 보입니다. 이것은 바울의 체험입니다. 혹은 세상 것이 사탄으로 보입니다. 이것은 사도 요한의 체험입니다. 혹은 세상 것이 심히 피곤하고 견딜 수 없도록 스트레스가 옵니다. 이것은 솔로몬의 체험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에 대한 호기심 가지고 세상 구경하다가는 야곱의 딸 디나와 같이 영육 간에 낭패를 당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탄은 세상을 이용하여 육체를 가진 세상 사람들을 모두 제 그물에 쓸어 담아 지옥불로 던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가르쳐 주는 세상의 정체를 바로 직시하시기 바랍니다. 사탄이 속삭이는 거짓된 세상관이 아니라 성경이 가르쳐 주는 정확한 세상관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늘 가까이 함으로 이 패역한 세상에서 구원을 받는 승리의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
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원문보기 글쓴이: agas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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