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을 기다리며 시130:1~6
1.주님의 은총을 간절히 기다려야 합니다
오늘 대강절 둘째주일입니다. 대강절은 말씀그대로 성탄절을 앞두고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물론 예수님은 이미 이천년 전에 오셨지만 주님 오신 날을 맞이하며 주님께서 우리 심령에 새롭게 임재하셔서 우리 심령에 주님의 생명과 능력과 은혜와 기쁨과 평강과 위로로 채워주시기를 간절히 고대하며 우리 자신을 준비하는 절기인 것입니다.
그러면 왜 이런 절기를 제정했을까요? 물론 평소에 그게 잘 안되기 때문입니다. 안 그래요? 평소에 늘 주님의 은총을 사모하며 주님을 가까이함으로 주님이 주시는 생명의 능력과 은혜와 기쁨과 평강과 위로와 소망이 넘치는 삶을 살고 있다면 굳이 이런 절기를 정할 이유가 없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렇지 못할 때가 너무나 많으므로 적어도 성탄절을 앞두고라도 주님의 은총을 간절히 사모하며 기다리며 가까이 함으로써 주님이 주시는 그 놀라운 생명의 능력과 은혜가 넘치는 삶이 되어보자는 의미로 대강절을 제정하여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이 대강절을 보내며 대강절을 제정한 뜻을 되새기며 정말 주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주님을 가까이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이 주시는 생명의 능력과 은혜와 기쁨과 평안과 위로와 소망이 넘치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오직 주님 안에 만이 유일하게 영원하고 온전한 생명의 능력과 은혜와 기쁨과 평안과 위로와 소망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그 유일하고 영원하고 온전한 생명의 능력과 은혜와 기쁨과 평안과 위로와 소망의 주님을 사모하지 않고 세상의 것을 사모하며 가까이 한다면 어찌 참생명의 기쁨과 은혜를 누릴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 생명과 은혜와 기쁨과 평안과 위로와 소망의 주님을 가까이하면 그 은총을 충만하게 누리는 것이 너무 당연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물론 세상의 돈과 명예와 권력과 건강도 기쁨과 위로와 평안을 주기는 하지만 그런 것들은 아무리 가져봐야 온전한 생명의 기쁨과 평안과 위로와 소망을 주지도 못하거니와 동시에 어느 순간 사라질지 모르는 것들입니다. 게다가 그런 별 것 아닌 것들을 바라보며 살면 결국 주님을 바라보고 가까이 하지 못하고 그런 별 것 아닌 것들에 인생의 정열을 바치며 좇아다니게 되고, 그러면 결국 그런 것들 때문에 불평 불만 시기 질투 원망 낙심 절망하게 되고, 그래서 결국 하나님이 주시는 참되고 온전하고 영원한 생명의 은총을 누리지 못하게 만드는 원흉이 될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나 오직 유일하고 영원한 생명과 능력과 기쁨과 은혜와 평안과 위로와 소망이신 주님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가까이하면 이 땅에 사는 동안도 영적 육체적 물질적 정신적 전인격적으로 생명의 은총과 기쁨과 평안이 넘치는 삶을 살다가 마침내 영광의 나라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정말 간절히 기다리고 사모하고 가까이 하고 소망해야 할 것은 오로지 주님이요, 주님 안에 있는 은혜인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6절에서는 말씀한 것입니다.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참으로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다.” 말씀그대로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리는 것보다 더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이 주시는 은총과 평안과 기쁨과 위로와 소망을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물론 파수꾼이 임무를 다하고 돌아와 따뜻한 방에서 편히 쉬는 것도 좋고, 세상의 권세와 지식과 돈과 명예를 가지고 그러한 세상적으로 꽤 좋은 것들이 주는 평안과 기쁨과 위로와 소망도 그 나름대로는 충분히 의미가 있고 또 사실 그러한 세상이 주는 평안과 위로와 소망도 누려야 하지만 다시 말씀드리지만 그런 것들은 제아무리 대단한 것이라도 완전하고 영원한 생명의 은총을 줄 수 없고, 그나마 곧 사라져 버리고, 게다가 그런 것들에 소망을 두면 결국 주님이 주시는 참된 생명의 은총으로부터는 점점 멀어지지 않습니까?
그러나 주님이 주시는 평안과 위로와 소망과 기쁨은 영적 육체적 정신적으로 완전하고 영원하고, 그래서 모든 상황과 환경과 조건을 뛰어 넘고, 그래서 세상에서도 얼마든지 은혜와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살다가 영원한 영광의 나라에서 완전하고 영원한 생명의 기쁨을 누리게 되지 않습니까? 그러니 세상의 다른 무엇을 주님이 주시는 은혜와 비교할 수가 있겠으며, 세상의 다른 무엇을 주님을 은혜를 기다림보다 더 기다리겠으며, 더 사모하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물론 세상의 좋은 것들도 누려야 하겠지만 그러나 그보다 더욱, 그보다 앞서 주님의 은혜를 더 사모하고, 주님이 주시는 평강과 은혜와 기쁨과 축복을 더 간절히 기다리고, 그래서 세상의 다른 무엇을 가까이하는 것보다 주님을 더 가까이 하며 주님과 동행할 때에 진정 주님이 주시는 생명의 능력과 은혜와 기쁨과 평안과 위로와 소망이 넘치는 삶이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주의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다른 무엇보다도 주님이 주시는 생명의 은혜와 기쁨과 평강과 소망을 더 사모하며 더 기다리며 살아야 하는데 우리가 정말 주님이 주시는 생명의 능력과 은혜와 기쁨과 평강과 위로와 소망을 더 사모하며 더 기다리며 산다면 주님의 말씀에 대한 간절한 사모함이 있어야 합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말씀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이니까 생명의 말씀, 진리의 말씀, 은혜의 말씀, 위로의 말씀, 축복의 말씀이 아닙니까? 그러면 우리가 정말 주님의 은혜를 사모한다면 생명의 말씀, 진리의 말씀, 은혜의 말씀, 축복의 말씀인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지 않을 수가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하나님안에 생명의 은총이 있다고 고백하며 어찌 그 은혜를 사모하지 않을 수 있겠으며, 그 은혜를 사모한다고 하면서 생명과 진리와 선과 의와 축복과 평강과 위로와 소망의 말씀인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지 않는다면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바로 그래서 오늘 5절에서는 말씀하신 것입니다. “나 곧 내 영혼이 여호와를 기다리며 내가 그 말씀을 바라는도다.” 여러분, 보세요. 시인은 여호와를 기다리며 그 말씀을 바란다고 하였습니다. 즉 시인은 지금 하나님께서 은총을 간절히 고대하고 있는데 완전한 생명과 능력과 은혜와 자비와 긍휼과 기쁨과 평강과 위로와 소망의 말씀인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은총을 내려주시기를 간절히 고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무엇을 관심을 갖고 사모합니까? 내 생명을 가장 풍요롭고 아름답고 복되고 귀하게 할 것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사모할 것 아닙니까?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보다 우리에게 생명의 기쁨과 은혜와 평안과 위로와 축복을 주는 것이 어딨습니까? 그러면 정말로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에게 생명의 기쁨과 은혜와 소망과 축복을 주는 말씀이라는 것을 안다면 당연히 세상의 것들과는 비교도 안되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관심과 사모함이 있어야 하고, 정말 말씀에 대한 관심과 사모함이 있다면 당연히 말씀을 가까이 하며 귀를 기울여 듣고 그 말씀 안에서 살아야 하고 그러면 당연히 생명의 능력과 은혜와 평강과 위로와 소망과 축복이 넘치는 삶이 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바로 그래서 우리가 너무나 잘 알다시피 시편 1편에서는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고 말씀하셨고, 예수님께서는 눅11:28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고 하셨고, 계1:3절에서는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여러분, 오로지 유일하고 완전하고 영원한 생명과 진리와 선과 의와 평안과 축복의 말씀인 성경 말씀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진정 말씀을 사모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하는 일에 힘쓰며 그 말씀에 아멘으로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진정 생명의 말씀, 능력의 말씀, 진리의 말씀이 주시는 생명과 평화가 기쁨과 자유와 은혜를 마음껏 누리며 살아가는 복되고 존귀한 인생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성결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진정 주님의 은혜를 사모하고 기다리며 그 은총을 누리기를 원한다면 주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기다리며 말씀을 가까이 함과 동시에 기억해야 할 것은 그렇게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고 그래서 말씀을 사모하고 가까이 한다면 성결하고 의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오직 주님 안에 참되고 영원하고 온전한 생명과 기쁨과 평안과 위로와 소망이 있고, 그래서 주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생명의 말씀, 진리의 말씀, 은혜의 말씀인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며 가까이 하면 우리 심령에 주님의 사랑과 은혜와 선과 의와 평안과 기쁨과 위로와 소망이 자리 잡게 되고, 그러면 우리 심령 속에 들어있는 악하고 추하고 왜곡된 것들이 쫓겨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추하고 악하고 왜곡된 것들이 쫓겨나고 주님의 것으로 채워지면 당연히 사랑과 선과 의와 거룩함 가운데 주님과 동행해야 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바로 그래서 오늘 시인은 1,2절에서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여 내가 깊은 곳에서 주께 부르짖었나이다. / 주여 내 소리를 들으시며 나의 부르짖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소서 / 여호와여 주께서 죄악을 지켜보실진대 주여 누가 서리이까?” 즉 지금 이스라엘은 개인적으로나 공동체적으로 뭔가 하나님께 죄를 범함으로 징계를 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죄를 고백하며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회복시켜 주셔서 성결하고 의로운 삶을 살면서 주님의 은총을 누리게 해 달라고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진정 주님의 은혜를 누리려면 주님의 말씀을 사모해야 하고, 말씀을 사모한다면 주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해야 하고, 정말 주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한다면 선하고 의롭고 성결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더욱 겸손히 엎드려 기도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그래서 죄사함의 은총을 덧입고, 나아가 주님의 것을 것으로 더욱 충만히 채워야 합니다. 그렇게 정말 기도하고 회개하고 주님의 것으로 우리 심령을 채웠다면 선하고 의롭고 진실하고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주의 성령이 우리 가운데 기쁨으로 거하시고 그러면 성령께서 주시는 참 생명의 기쁨과 은혜와 평안과 위로와 소망이 넘치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보다 세상의 것을 사모하며 그래서 주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그 말씀을 가까이 하지도 않으면 우리 심령에 죄와 무지와 왜곡된 가치관 속에 있는 세상의 온갖 잡다한 것들은 물론 나아가 더럽고 추하고 악한 것들이 자리 잡게 되고 그러면 성령이 함께 하시지 않고, 성령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주님이 주시는 생명의 능력과 은혜와 기쁨과 평안이 넘치는 삶은 물 건너 갈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그래서 엡4:23,24절에서는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즉 우리는 예수님 함께 죽고 거듭남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은즉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음을 받은 새사람의 모습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게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음을 받은 새사람으로 살아갈 때에 주님이 주시는 생명의 능력과 은혜와 기쁨과 평강과 위로와 소망이 넘치는 삶이 되고 그래야 하나님의 영광 나타내며 하나님의 역사도 이루어 갈 수 있게 되기 때문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성탄절을 준비하며 대강절을 보내며 오늘 말씀을 기억하며 정말 세상의 다른 무엇보다 주님이 주시는 생명의 능력과 은혜와 기쁨과 평안과 위로와 소망을 사모하며 그 은혜를 기다리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그 은혜를 사모한다면 오직 유일하게 완전하고 영원한 생명과 진리와 선과 의와 축복의 말씀인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며 가까이 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진정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말씀을 가까이 하신다면 정말 우리 심령 속에 남아 있는 모든 찌꺼기들을 버리고 오직 주님의 사랑과 은혜와 능력과 진리와 선과 의와 거룩함과 같은 것으로 심령을 채움으로 성결하고 의로운 삶이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진정 주님이 여러분의 심령과 가정과 교회 위에 기쁘게 임재하심으로 주님이 생명의 능력과 은혜와 기쁨과 평안과 위로와 소망이 충만한 가운데 주께 영광을 돌리는 복되고 귀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대강절설교) 성탄을 기다리며(시130:1~6)|작성자 조학환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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