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요한계시록

유브라데 네 천사 (계 9:13-21)

nam씨 2023. 4. 29. 20:10

유브라데 네 천사 (계 9:13-21)

 

13. 여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내가 들으니 하나님 앞 금 제단 네 뿔에서 한 음성이 나서 14. 나팔 가진 여섯째 천사에게 말하기를 큰 강 유브라데에 결박한 네 천사를 놓아 주라 하매 15. 네 천사가 놓였으니 그들은 그 년 월 일 시에 이르러 사람 삼분의 일을 죽이기로 준비된 자들이더라 16. 마병대의 수는 이만 만이니 내가 그들의 수를 들었노라 17. 이같은 환상 가운데 그 말들과 그 위에 탄 자들을 보니 불빛과 자줏빛과 유황빛 호심경이 있고 또 말들의 머리는 사자 머리 같고 그 입에서는 불과 연기와 유황이 나오더라 18. 이 세 재앙 곧 자기들의 입에서 나오는 불과 연기와 유황으로 말미암아 사람 삼분의 일이 죽임을 당하니라 19. 이 말들의 힘은 입과 꼬리에 있으니 꼬리는 뱀 같고 또 꼬리에 머리가 있어 이것으로 해하더라 20. 이 재앙에 죽지 않고 남은 사람들은 손으로 행한 일을 회개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여러 귀신과 또는 보거나 듣거나 다니거나 하지 못하는 금, 은, 동과 목석의 우상에게 절하고 21. 또 그 살인과 복술과 음행과 도둑질을 회개하지 아니하더라

 

본문 유브라데 네 천사는 마병대의 전쟁이라고도 불리는데 신령한 관점에서 오순절과 같은 성령의 대부흥운동을 말씀한 것입니다. 다섯째 천사가 부는 황충재앙에서 세상을 사랑하는 세상정욕으로 말미암는 고통을 말씀했습니다. 이처럼 한 편에서는 연단으로, 다른 한 편에서는 성령으로 자기 백성을 온전케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혹은 고난 속에서 부르짖다가 성령의 큰 능력을 받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유브라데 네 천사 혹은 마병대의 전쟁은 순서적으로도 자연스럽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경고하신 대로 계시록의 비유나 상징을 한 마디도 가감하지 않고 종합해 보고 나온 결론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을 성령의 부흥운동으로 보고 퍼즐을 맞추면 한 마디도 틀리지 않고 다 맞춰집니다. 주님이 가장 원하신 것이 바로 성령의 부흥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눅12:49-50) 하셨습니다.

 

영적부흥은 무엇이며 어떻게 일어날까요?

 

1. 인간이 해야 할 일을 다 해야 합니다.

 

13절 “여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그런데 나팔재앙 가운데 왜 6번째에서 이 일이 있을까요? 6은 사역의 마지막 날로 인간의 최선을 상징합니다. 부흥 그냥 오지 않아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탁하신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웨스터민스터 소요리문답 제34문에 “성화가 하나님의 일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일이다. 성화는 신인협력적인 것이다. 그런데 신인협력적이라는 단어는 인간이 하나님께 협력한다는 뜻으로 쓰인다.”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의 공로를 믿을 뿐 아니라 말씀 기도 찬송 성찬 봉사 겸손 열심 등의 성화의 방법을 고집적으로 적용해야 합니다.

 

그래서 오순절에 120문도들이 기도와 찬송에 전무했습니다. 가만 있는데 하늘의 불이 떨어지는 것 아닙니다. 혹시 그런 간증이 있다면 누군가 그를 위해 기도했을 것입니다. 알고 보면 3년 반 동안 예수님의 경건의 모본을 보며 배웠던 그 일을 더 열심히 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교회에서 하던 일을 더 열심히 하시기 바랍니다. 더 열심히 말씀 보고 더 열심히 찬송하고 기도하고 더 열심히 사랑하고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이상한 방법으로 나가다 사탄에게 당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회개함과 경외함에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2. 영적 부흥은 말씀을 통해서 옵니다.

 

13절 “여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이 일은 나팔을 불 때 일어난 사건입니다. 여기서 나팔은 복음입니다. 오순절에 일어난 부흥의 역사도 베드로의 말씀을 통해서 몇 십배 몇 백배로 폭발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전파되는 곳마다 성령의 역사가 불일듯 일어났습니다(행1:44). 행1:4에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하신 말씀대로 순종한 결과입니다. 아무리 복음 전도가 급해도 성령의 권능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설교자를 위해서 많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3. 영적 부흥은 기도를 통해서 일어납니다.

 

13절 하나님 앞 금 제단 네 뿔에서 한 음성이 나서” 금 제단은 기도의 분향단입니다. 분향단의 네 뿔은 예수 이름의 권세를 뜻하고, 네 뿔은 동서남북 즉 천지를 움직이는 강한 권세를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예수 이름으로 강하게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약하게 기도하면 오순절의 부흥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금 제단의 금은 신성의 상징입니다. 그러므로 내 육정에서 나온 기도가 아니라 성령으로 기도해야 합니다(유1:20, 약4:3). 정욕으로 구하면 안 됩니다. 쓰임 받는 자세로 기도해야지 성령을 부리려는 자세도 안 됩니다. 자기만을 위한 이기적인 기도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기도의 줄이 잡하지 않을 때는 방언이 좋습니다. 방언이 더 깊은 가운데로 이끌어 주는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 안에서 기도하고 성령의 인도 아래 교회와 세상을 품고 열심히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4. 마음을 다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단 네 뿔에서 한 음성이 나서” 이 말씀이 시사하는 바는 각 뿔마다 음성이 있었는데 한 음성이었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초대교인들처럼 합심하여 기도하라는 의미이기도 하고, 몸과 마음을 다해서 기도하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대하16:9에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신다 하셨습니다. 마음의 천국에 있어서 주님의 임하심과 사탄의 추방은 비례합니다(마12:28). 그런 점에서 성화란 주님의 온전한 임하심과 아울러 사탄의 사라짐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성령의 충만함과 능력을 위해 강력한 기도가 필요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주님의 오신 목적이 죄인의 구원과 사탄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었던 것과도 같습니다.

 

5. 기도하는데 지장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14절 “나팔 가진 여섯째 천사에게 말하기를 큰 강 유브라데에 결박한 네 천사를 놓아 주라” 큰 강 유브라데는 은혜의 강을 상징합니다. 유브라데는 '잘 흘러가는, 좋고 비옥한'의 의미로 성령강수의 예표입니다. 여기에 결박된 네 천사란 성령운동의 일군입니다. 그런데 슬프게도 부흥의 일군들이 결박당해 꼼짝 못하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옥에 갇혔듯 부흥의 일군이 묶여 있으면 안 됩니다. 신앙의 최고의 피크(peak)에 와 있는 분들이 은퇴의 이름으로 버려지고 있는데 이 어마어마한 자원을 모아서 동력화해야 합니다. 성령이 임하면 노인들이 꿈을 꾸는데 꿈은 기도의 동력입니다. 약한 그들의 몸도 건강의 비밀로 도와 그들이 이 일에 집중하도록 해야 합니다.

 

결박한 네 천사가 풀리듯 먼저 바리새인 같은 내 신앙부터 풀려야 합니다. 가장 부흥의 방해꾼은 믿음 없고 게으른 나 자신입니다. 성령을 부정하고 거룩거룩만 따지는 교리나 전통도 문제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한적한 곳에 가셨고, 제자들도 오순절의 부흥을 위해서 마음껏 기도하기 위해 성전이 아니라 마가의 다락방으로 갔습니다. 위축되지 마시고 예배도 더욱 활기 있게 드려야 합니다.

 

6. 기도 분량이 차야 합니다.

 

그들은 그 년 월 일 시에 이르러” 여기 년 월 일 시란 큰 일이 일어날 D데이를 가리킵니다. 유브라데스의 댐이 터지는 듯 영적부흥이 일어나는 때입니다. 그 때가 기도의 분량이 찰 때입니다. 그러므로 기도가 더욱 간절하고 겸손하고, 뜨겁게 타오르고, 부르짖는 자들이 많아지고, 그래서 많은 기도가 올라가고 그래서 모아지고 모아져서 하나님께서 들으신 바가 되어야 합니다(행10:4).

 

오순절에 10일 간 기도했는데 10은 충족수 만족수 가득한 만수입니다. 이처럼 기도의 분량이 차야 합니다. 기도의 열기가 뜨거워져야 합니다. 몸과 마음이 온전히 드려져야 합니다. 성령의 부흥의 날은 우리 자세에 달렸습니다. 10년을 기도해도 뜨겁지 않는 기도라면 부흥은 오지 않습니다. 이 부흥의 역사가 오순절에 있었고, 영국 웨일즈에서도 있었고, 19세기 미국에서도 있었고, 1907년 평양에서도 있었고, 미국의 해안도시 펜사콜라에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7. 영적부흥은 회개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15절 사람 삼분의 일을 죽이기로 준비된 자들이더라” 수십 억 인구가 죽는 것처럼 보이지만 숫자까지도 의미를 부여하는 히브리적 관점에서 보면, 3분의 1은 완전수 3이 깨어지는 의미입니다. 완악한 인간이 깨어지는 것이 부흥의 목표 중 하나입니다.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 예수를 만나 깨어졌습니다. 깨어질 수 없는 인간이 깨어졌습니다.

 

20절, 21절에 아직도 회개치 않는 자도 있다는 말씀에도 힌트가 있습니다. 먼저 유브라데 네 천사 즉 부흥운동은 회개의 운동이라는 의미입니다. 다음은 성령의 능력을 받았다고 100% 성화를 이룬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령의 열매로 겸손해지기도 하지만, 한 편 은사와 능력이 나타날 때는 교만해질 수도 있습니다.

 

8. 이 날을 위해 준비해야 합니다.

 

사람 삼분의 일을 죽이기로 준비된 자들이더라” 준비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 땅에 불을 던지시기 위하여 제자들을 3년 반이나 훈련시키시고, 부활하신 후에도 40일 동안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고, 승천하시면서도 기도하며 성령을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준비가 없기 때문에 부흥이 없을 뿐 아니라 부작용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누구신지 복음이 뭔지 신앙이 뭔지 죄가 무엇이고 자신이 누군지 시험이 어떻게 오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함부로 은사에 몰입하다가 귀신의 잔치를 만들고 맙니다.

 

성령운동하다가 왜 그렇게 부작용이 많습니까? 하나님보다 은사에 더 몰입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피의 복음에 서서 하나님과 화목하여 평안한 양심을 가져야 합니다. 피의 복음이 없이는 한 발자국도 은혜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리고 세속으로 더럽혀진 마음을 씻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엎드려 마음을 정복한 세상욕망을 깨끗하게 씻어내야 합니다. 미움이 존재한다면 나를 연단시키기 위해서 그들이 악역을 한 것이라고 이해하고 용서하고 미안해 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준비된 상태에서 이웃을 위해 기도하고 하나님을 경배하면 할수록 은혜가 임합니다. 이처럼 계시록 해석하면서 자연스럽게 성령론을 말씀합니다. 그래서 복의 책입니다.

 

9. 이 부흥의 역사는 불가항력적입니다.

 

16절 “마병대의 수는 이만 만이니 내가 그들의 수를 들었노라” 마병대란 기마병이 2억인지, 병거가 2억인지 모르지만 어마어마한 위력을 가리킵니다. 수백 대의 전차군단만 지나가도 지축이 흔들리는데 2억이면 불가항력입니다. 사람들이 문자적으로만 보고 아마겟돈 전쟁이라 하는데 어떻게 2억의 마병대가 뒷동산만한 작은 아마겟돈에 모여 무슨 전쟁을 합니까? 마지막 때라면 전차를 몰고 나올 텐데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까?

 

신령한 관점에서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그들의 수를 들었노라” 한 말씀처럼 다윗이 승전하고 돌아올 때도 천천이요 만만이라 그 소리를 사울이 들었습니다(삼상18:7). 성경에서 이만 만의 2는 증인 증거의 수요, 만만은 무한충만수를 제곱한 수로 능히 헤아릴 수 없음을 가리킵니다. 이처럼 성령의 부흥이 일어나면 노도광풍과 같은 마병대의 세력처럼 아무도 막지 못합니다(갈5:23, 요15:26). 오순절에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처럼 성령의 폭풍이 몰아치면 정치 경제 문화 인간 모든 것이 변화됩니다.

 

10. 부흥의 역사는 이기는 능력입니다.

 

17절 “이같은 환상 가운데 그 말들과 그 위에 탄 자들을 보니 불빛과 자줏빛과 유황빛 호심경이 있고” 호심경은 심장을 보호하는 흉갑입니다. 호심경이 3가지 빛을 띠고 있었는데 이것은 다양한 공격을 막아냈음을 시사합니다. 가령 흉갑의 불빛은 무수한 불화살을 막아냈고, 흉갑의 자줏빛은 수많은 창칼을 막아냈으며, 그리고 흉갑의 유황빛은 적군의 화포를 막아냈습니다.

 

이처럼 성령이 임하면 생각도 감정도 세상도 죄도 정죄도 원수도 마귀도 시험 연약함도 박해도 이깁니다. 죽음도 두렵지 않습니다. 죄악에 시험 든다면 은혜 못 받아서 넘어진 것입니다. 복음의 원리로 본다면 성도는 죄를 지을 줄 몰라야 합니다(요일5:18). 그러므로 예수 안에서 그 능력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전신갑주입니다(엡6:13-16).

 

11. 부흥의 역사는 능력의 역사입니다.

 

그 말들과” 말들도 3가지 빛깔의 호심경을 입었습니다. 이 호심경을 입었으니 불속이든 물속이든 거침이 없습니다. 이처럼 능력의 역사가 나타나니 복음사역에 거침이 없습니다(막16:20, 행2:43-47). 막16:20에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언하시니라” 했습니다. 행2:43-47에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했습니다.

 

12. 성령의 부흥은 담대한 믿음을 일으킵니다.

 

17절 “또 말들의 머리는 사자 머리 같고” 말은 잘 놀라는 동물입니다. 그런데 말이 사자의 머리를 하고 있으니 창칼이 두렵지 않고 불속이든 물속이든 뛰어듭니다. 행4:19에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하며 담대했습니다. 이처럼 성령이 임하시면 주를 위해 사는데 두려움이 없습니다(행5:41-42, 딤후1:7).

 

13. 성령의 부흥이 임하면 메시지가 강해집니다.

 

17절 “그 입에서는 불과 연기와 유황이 나오더라” 이처럼 영적 부흥이 임하면 말씀의 화력이 강해집니다. 불을 토하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에 놀랐고(마7:28-29), 베드로의 증거 앞에 3,000이나 돌아왔습니다(행4:13). 연기는 심판과 진노의 상징으로(시18:8) 패역한 세상에서 구원을 외치는 능력입니다(행2:40). 그리고 유황은 지옥의 연료이기도 한데 이처럼 하나님의 원수인 악을 태우고 사탄과 그 생각을 물리치는 강력한 성화의 은혜로 보입니다(고전10:4-6).

 

14. 이 부흥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게 만들어줍니다.

 

18절 “이 세 재앙 곧 자기들의 입에서 나오는 불과 연기와 유황으로 말미암아 사람 삼분의 일이 죽임을 당하니라” 전도자들의 입에서 불을 토하는 말씀이 나오니까 3분의 1, 즉 사람들의 완악한 마음이 깨지고 변화됩니다. 그래서 자기 소유를 나누고(행2:44-47), 예수를 위해 살고 예수를 위해 죽는 예수에 미친 사람이 됩니다(고후5:15).

 

15. 부흥이 임하면 말씀과 이적이 많이 나타납니다.

 

19절 “이 말들의 힘은 입과 꼬리에 있으니 꼬리는 뱀 같고 또 꼬리에 머리가 있어 이것으로 해하더라” 여기 입은 말씀을, 꼬리는 이적을 상징합니다(출4장). 이처럼 성령이 임하시면 말씀의 권세가 나타나 가슴을 치며 회개합니다. 그리고 입을 열면 그대로 되는 기적이 나타납니다(행3:6-8, 행5:3-4). 그런데 꼬리에 머리가 있습니다. 모든 이적에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적을 주신 것은 요20:30-31에 예수를 믿어 영생 얻게 하려고, 막16:20에는 복음을 잘 증거하기 위해서입니다. 완악한 자들일수록 표적이 필요하기 때문에 살아계심과 천국도 지옥도 보여주십니다(행5:12-14).

 

16. 진실로 돌이키고 회개함이 중요합니다.

 

20절 “이 재앙에 죽지 않고 남은 사람들은 손으로 행한 일을 회개하지 아니하고” 재앙에 죽지 않고 남았다는 것은 죽은 사람도 많다는 것을 전제한 말씀입니다. 나팔 재앙이니까 말씀 듣고 불신앙과 악한 생각과 자아가 많이 죽고 새롭게 되어 변화되었습니다. 그러나 말씀의 감화를 받았다고 다 된 것은 아닙니다. 아직도 덜 죽은 것이 남아있고 시간이 지나면 그 감화력도 줄어들게 됩니다.

 

그리고 손은 행함의 상징인데 손으로 행한 일을 회개치 않았습니다. 교회 다니는 목적이 은혜를 받거나 마음의 위로를 받는 것이 전부인 사람들이 많습니다. 중요한 것은 변화되는 것인데 설교를 즐기고 부흥운동을 즐기는데 그치는 경향을 지적한 것입니다. 불을 토하는 설교 얼마나 통쾌하고 시원합니까? 수많은 이적들 얼마나 신기하고 재밋습니까? 은혜가 된 것도 좋지만 믿고 순종하고 충성하고 사랑하고 고난도 감사하고 변화되시기 바랍니다. 마술사 시몬도 성령의 능력에 매료되어 따랐지만 회개하지 않았고 도리어 성령을 이용하려고 돈으로 사려 했다가 저주를 받았습니다. 구경꾼이 되지 말고 성령의 부흥으로 회개하고 온전케 될 기회를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17. 신비주의를 조심해야 합니다.

 

20절 “오히려 여러 귀신과” 아직 덜 죽은 자들이 귀신을 더욱 섬기더라는 말씀입니다. 이처럼 아직 변화되지 못한 사람들이 체험 좀했다고 이상하게 흘러갑니다. 은사를 실용적으로 써서 점쟁이 노릇한다든지 탐욕이 발동하여 능력과 은사추구에 몰두하다가 버림을 당하기도 합니다. 주님의 삶을 본 받고 말씀 따라가는데 힘써야지 신비주의자가 되면 귀신의 잔치로 끝날 수도 있습니다.

 

18. 탐욕과 교만을 조심해야 합니다.

 

20절 또는 보거나 듣거나 다니거나 하지 못하는 금, 은, 동과 목석의 우상에게 절하고” 우상의 본질은 탐심입니다(골3:5). 이처럼 강력한 기적에 편승하여 자기 비전을 이루려고 하거나 자기 이름을 내거나 물질을 모으거나 인기에 편승하여 질서를 흔드는 일 있어서는 안 됩니다. 교만해져서 교주가 되는 일은 더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행한 고라신과 벳새다가 더 교만했습니다(마11:21-22). 능력이 임하고 기적이 나타나면 들뜨고 신나는 것은 우리 육신이기에 조심해야 합니다.

 

자기 분수를 알아야 합니다. 은사가 나타난다고 부흥사가 되거나 하나님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남보다 어리석고 완악하기에 큰 표적과 체험을 주셨으므로 초신자에서 시작하여 신앙을 배워가야 합니다.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다고 한 것처럼(고전12:28), 목회란 말씀과 기도로 양육하는 것이요, 은사란 필요 시에 돕는 것일 뿐입니다. 그런데 아직 죄악의 때도 벗지 못한 서투른 은사자들이 교회의 중심이 되어 교인들이 은사중심으로 모여들어 질서가 이원화되면 목회사역은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고전 14장에 나오듯 교회 안에서는 모든 것이 질서 가운데 진행되며 은혜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활용할 정도가 되려면 더 깊은 영성과 훈련이 필요합니다. 말씀의 은사가 있다고 남의 강단 쳐들어가는 것이 아니듯 무식하고 무례한 은사자들로 인해 복음사역에 방해가 될 때가 많습니다. 예수님도 자기 때가 있었고(눅3:23), 제자들도 자기 때가 있었습니다. 자신이 교회와 모두에게 유익이 될 수 있도록 자기 완성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지 교회와 한국교회와 세계교회에 유익을 줄 수 있는 성숙하고 신실한 은사자들이 많이 필요합니다.

 

필자 역시 말씀의 은사가 임한 후 수십 년이 지난 후에야 이렇게 강해서를 쓰고 있습니다. 이 연구가 한국교회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기를 바라며 내 이름은 사라져도 좋고 위대한 학자들이 나타나 완성시켜 주기를 바랍니다. 다른 모든 능력과 은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위치에서 능력을 기르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직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과 담임 목회자를 무시하고 장로나 권사들이 좌지우지하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19. 사랑의 열매를 맺여야 합니다.

 

21절 “또 그 살인과 복술과 음행과 도둑질을 회개하지 아니하더라” 이 목록들은 십계명에서 인간에게 관한 계명입니다. 복술도 속여 돈벌이하기 때문에 여기 포함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능력을 받았어도 사랑할 줄 모르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신앙은 믿음에서 출발하여 사랑에서 완성됩니다(벧후1:5-7). 하나님처럼 예수님처럼 사랑이 자라시기 바랍니다(엡4:15). 남이 존경하고 떠받들어도 허용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허용하면 거짓선지자라고 성경은 물론 초대교회 교훈집 ‘디다케’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유혹하는 사탄을 물리치셨고, 바울도 자기를 높이는 점치는 여자의 배후의 사탄을 물리쳤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이 땅에 진정한 성령의 부흥이 일어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우리들도 주님의 심정으로 이 땅에 성령의 부흥의 역사가 임하기를 갈망하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은혜 받기 부족함이 없는 마음을 준비하고, 하나님을 섬기되 더 열심히 섬기시기 바랍니다. 더 기도하고 더 찬송하고 더 새로워지고, 그리고 더 잘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주님이 가장 원하시는 이 시대의 부흥의 주자가 되어 세상을 변화시키는 귀한 일군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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