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요한계시록

세상욕망의 정체 3 (계 9:10-11)

nam씨 2023. 4. 20. 16:07

세상욕망의 정체 3 (9:10-11)


10 또 전갈과 같은 꼬리와 쏘는 살이 있어 그 꼬리에는 다섯 달 동안 사람들을 해하는 권세가 있더라  11 그들에게 왕이 있으니 무저갱의 사자라 히브리어로는 그 이름이 아바돈이요 헬라어로는 그 이름이 아볼루온이더라

 


이 시간에도 세상욕망의 정체라는 제목입니다. 인류의 비극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것은 그 전에는 몰랐는데 사탄의 말을 듣고 보니 선악과가 너무도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걸 먹으면 정녕 그리고 영원히 죽는다는 사실을 망각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들이 악의 정체성을 모르기 때문에 속고 속습니다. 거짓 것일수록 더 광명한 천사로 자기를 포장합니다. 세상욕망이 그렇습니다. 우리 눈에 세상 것이 아름답게만 보인다면 그는 타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 시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영적으로 밝은 눈을 뜨는 시간이 될 수 있기 바랍니다.


계속하여 세상욕망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세상욕망은 그 결과가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10또 전갈과 같은 꼬리와 쏘는 살이 있어전갈 모양 아시지요? 전갈의 앞쪽에는 가위를 가진 우람한 팔이 있고 뒤의 치켜든 꼬리는 무서운 독침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힘 있는 앞 팔로 붙잡고 뒷발로 쏩니다. 그러므로 먹이가 전갈에게 다가가면 피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세상욕망에 빨려들면 쉽게 빠져나올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 영적 결과는 비참하기 그지없습니다. 마약과 같습니다. 마약은 진통 마취효과가 있어 의학적으로 사용되지만, 오래 사용하면 습관성 중독성 탐닉성을 유발하여 인간의 정신과 신체를 파괴합니다. 그리고 사용을 중단할 경우 격렬한 금단증세를 일으켜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하게 될 정도입니다.


그러니까 황충의 꼬리는 결론을 말합니다. 죄에 대한 결론을 말하는 굿들이 많습니다. 성경에 죄의 삯은 사망이요, 결론을 말합니다. 고전15:56사망이 쓰는 것은 죄요역시 죄악이 주는 영적 결과를 말합니다.


이처럼 세상욕망은 처음에는 달콤하게 보이지만 그 뒤에는 사람을 쏘는 무서운 독이 있습니다. 사단이 선악과로 하와를 꾈 때 얼마나 그 말이 그럴 듯하고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러웠습니까?


그러나 먹고 난 다음 그 찌르는 고통은 자손 대대로 온 인류가 그것 때문에 영원한 파멸이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를 두려워하시기 바랍니다. 베드로는 경고합니다.


벧후2:4-10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 옛 세상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경건하지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으며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 후세에 경건하지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 무법한 자들의 음란한 행실로 말미암아 고통 당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이는 의인이 그들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이 상함이라)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실 줄 아시고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에 두어 심판 날까지 지키시며 특별히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 가운데서 행하며 주관하는 이를 멸시하는 자들에게는 형벌할 줄 아시느니라


세상욕망은 예수님의 십자가에 못 박힌 존재입니다.


10그 꼬리에는 다섯 달 동안 사람들을 해하는 권세가 있더라여기 다섯 달 5에 대한 의미가 고통을 의미하는 수인 것을 5절에서 이미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다섯 달 동안이라고 시한을 못 박았습니다. 여기에 복음이 있습니다. 다섯 달 후에는 고통이 끝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다섯 달은 시간적 5달이 아니요, 세상정욕의 끝을 말합니다.


언제 끝날까요? 환난 수 10의 중심이 5이기 때문에 가장 고통스러운 때입니다. 영적 문제에 있어 내 방법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때입니다. 완전히 두 손을 든 때, 이때란 오직 예수의 복음만 의지할 수밖에 없는 때이기도 합니다. 이 죄와의 갈등 속에서 그 고통을 당해본 자만이 완전한 복음주의자가 됩니다.


그런데 불교는 예외입니다. 불교의 잘못이 그것입니다. 인간의 무능과 부족을 알았으면 하루 속히 두 손 들고 구세주 예수님께 나와야 하는데 그러지 않고 자기 발견을 무슨 가장 큰 도를 깨달은 것으로 안다는 것입니다. 인생 공부 잘해야 합니다. 함부로 결론 내리면 영원한 멸망으로 떨어집니다.


우리는 고통과 실패 끝에 온전히 예수 공로를 의지하게 됩니다. 그것 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잘 기억하세요. 예수님의 십자가에 우리의 죄과만이 아니라 죄의 욕망까지 십자가에 못 박힌 것입니다.


그래서 갈5:24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안의 죄악이 꿈틀거려도 춤을 추어도 그것 십자가에 못 박힌 것입니다. 그 진리를 그대로 믿으세요. 이 해결의 확신에 서는 자만이 세상욕망에서 자유함을 받습니다.


그래서 이미 4절에서 배웠지요. “오직 이마에 하나님의 인침을 받지 아니한 사람들만 해하라성령의 도우심으로 복음을 믿어 확신에 거하는 사람은 해하지 못한다는 것, 그러므로 진정 복음을 깨닫고 의지하는 자만이 이 고통에서 피할 수 있습니다. 진리에 서도 안 되면 자기를 낮춰보세요. 그러면 성령이 임하심으로 그 복음이 실제화 될 것입니다.


어느 성도의 이야기입니다. 이 성도가 무슨 일로 10년간이나 교회를 떠나 타락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가 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데 옆에서 점을 치던 점쟁이가 점괘가 나오지 않으니 예수 믿는 사람은 제발 나가 달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술집에 무슨 예수쟁이가 있겠나?” 했지만 점쟁이는 그 성도를 보면서 나가 달라고 사정하는 것이었습니다. 성도님은 민망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해서 술집에서 뛰쳐나왔습니다. 그리고 큰 나무 밑으로 가서 그 나무를 붙들고 엉엉 울면서 말했습니다. “주님! 내가 주님을 떠난 지 10년이나 되었는데 우리 주님께서는 아직도 내게서 성령님을 거두어 가지 않으셨군요.” 그리고 새롭게 출발해서 훌륭한 장로가 되어 충성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습니다. 진리는 변함이 없습니다. 아무리 우리 안에 죄가 있어도 세상정욕은 십자가에 목 박힌 존재라는 그 정체를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세상욕망 배후에는 사탄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11그들에게 왕이 있으니 무저갱의 사자라여기 황충들의 임금이 나옵니다. 참으로 이상한 황충입니다. 30:27임금이 없으되 다 떼를 지어 나아가는 메뚜기라고 했는데 여기 황충은 어쩐 일인지 임금이 있습니다.


그것은 어떤 진리를 설명하기 위한 것인데 여기서 세상욕망의 정체를 잘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세상욕망은 사탄에게서 왔다는 것입니다. 요일2:16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여기 세상은 사탄을 암시하는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늘 깨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단순한 욕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알고 보면 악한 일의 배후에는 모두 사탄이 배후에 있어요. 타락 방탕 불신 교만 자살까지도 그 배후에 사탄이 조종하고 있습니다. 내 말이 아닙니다. 그들에게 왕이 있으니 무저갱의 사자라고 했잖아요?


그러므로 기도하지 않으면 사탄이 넣어주는 온갖 세상 욕심으로 타락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근신하여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벧전5:8-9에서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더욱 신령한 눈을 떠서 세상의 정체를 보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그럴듯하지만 열어보면 그것이 아닙니다. 세상욕망의 결과는 두렵습니다. 세상욕망 배후에는 사탄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세상욕망은 십자가에 못 박힌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말씀과 성령 안에서 세상욕망의 정체를 바로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함을 주신 그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들여 온전히 거기서 자유함을 받는 승리의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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