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나팔 5 (계 8:13)
13절 “내가 또 보고 들으니 공중에 날아가는 독수리가 큰 소리로 이르되 땅에 사는 자들에게 화, 화, 화가 있으리니 이는 세 천사들이 불어야 할 나팔 소리가 남아 있음이로다 하더라”
이 시간에도 “복음의 나팔”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본문은 공중에 날아가는 독수리가 3화를 예고하는 내용입니다. 이 본문이 중요한 이유는 이후에 나타날 3화에 대한 예고편이기 때문입니다. 곧 3가지 화가 다가올 것이라.
본문을 이해하는 열쇠는 마 24장이나 눅 17장에 나타나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주검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모이느니라”(눅17:37). 시체가 널려져 있는 전쟁터에 독수리들이 시체를 먹기 위해 모이는 장면을 연상시킵니다. 그러니까 사는 이야기가 아니라 죽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불안할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죽이시는 것은 우리에게 아직도 남아 있는 육신적인 죄악이지 다른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은혜 받고 다 죽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하나님 보실 때는 더 죽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더 죽음의 파티가 열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진실로 하나님 앞에 죽어져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1. 재림의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서입니다.
13절 “내가 또 보고 들으니 공중에 날아가는 독수리가 큰 소리로 이르되” 성경에서 독수리는 여러 가지로 쓰였는데 여기서는 주검의 시체를 먹기 위해 다가오는 것을 말합니다(눅17:37). 시체 파티가 있을 것을 예고합니다.
그런데 독수리 이야기를 언제 하셨느냐 하면 제자들이 그리스도의 재림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여쭐 때 하신 답변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에 독수리의 시체 파티라. 쉽게 이해되기 어려운데 독수리의 파티와 재림과 어떤 관련이 있다는 것인가?
그걸 알기 위해서는 재림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재림은 예수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뜻으로 재림에는 현재성과 미래성이 있습니다. 즉 ‘예수님은 지금도 성령 안에서 찾아오고 계시고, 또 장차 우리 육체까지도 변케 하기 위해서 온전히 오실 것이라.’
먼저 현재성과 관련하여 살펴볼 때 성령으로 다가오시는 그리스도의 임재는 진실로 내가 죽은 자에게 충만히 다가오신다는 것입니다. 진실로 내가 회개해야 합니다. 재림의 주님은 회개한 자에게 먼저 성령으로 임하십니다.
그래서 요일3:3에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했습니다. 우리 주님은 죄와 상관이 없는 자에게 다가오십니다(히9:28).
이것이 우리가 온전히 죽어야 할 이유입니다. 주님을 모시기 위해서, 그래야 내가 죽고 그리스도가 내 안에 나타납니다. 그동안도 죽었습니다. 그러나 더 죽어져야 합니다.
세상과 죄에서 죽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의 말씀에 온전히 순복하며 그의 고난에 동참하기를 기뻐하는 데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우리에게 임하시는 주님을 온전히 모실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의 음성을 더욱 크게 듣기 위해서입니다.
“큰 소리로 이르되” 공중의 날아가는 독수리의 소리는 큰 소리였습니다. 큰 소리는 구속사적인 큰일을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앞으로 나타날 3가지의 일은 죄인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큰일임을 시사합니다. 이 복음의 말씀이 우리의 심령에 강하게 강타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소리는 원래 큽니다. 시29:4-5에 “여호와의 소리가 힘 있음이여 여호와의 소리가 위엄차도다 여호와의 소리가 백향목을 꺾으심이여 여호와께서 레바논 백향목을 꺾어 부수시도다” 그리고 시편 19편에서는 여호와의 소리가 온 땅에 가득하기까지 합니다.
우리가 듣지 못해서 그렇지 우주가 내는 소리도 크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소리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소리는 크게 다가올수록 좋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보다가 가슴을 치며 회개합니다. 어떤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크게 들립니까? 내가 죽은 자입니다.
김두한의 후계자 '천안곰' 조일환 씨가 수원구치소에서 성경을 보다 변화를 받고 예수 영접하고 하나님을 전하는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주먹세계의 맏형으로 교만이 하늘을 찔렀지만 하나님께서 치심으로 1평 독방에서 여러 가지 중병으로 죽어갈 때 비로소 하나님 앞에 두 손 들고 성경을 보며 하나님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가 한창 잘 나가고 교만할 때는 누가 말해도 그 소리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그가 죽음의 위기에서 두 손 들게 될 때 비로소 전도자의 말씀이 그 심령에 다가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음성이 크게 들려야 합니다. 오순절 날 그토록 말씀하셔도 귀를 기울이지 않던 사람들이 성령이 임하니까 베드로의 말을 듣고는 모두 가슴 치며 통곡했습니다. 내가 죽어질 때 큰 소리로 들려옵니다. 그리고 그 음성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킵니다.
3. 내가 죽지 않고는 심판 당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땅에 사는 자들에게 화, 화, 화가 있으리니” 여기 땅에 산다는 것은 단순히 지상을 의미하는 것 아닙니다. 땅은 하늘의 반대로 세상을 의미합니다. 세상에 속한 자에게 화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골3:5에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숭배니라 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했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보세요. 마 23장을 보면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외식할 때 얼마나 화의 선언을 받았습니까?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보다 땅의 것을 더 사랑했습니다.
죄가 얼마나 무섭고 그 심판이 얼마나 두려운지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죄가 얼마나 두려운지 성경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 아담에서부터 시작하여 인간이 죄악 때문에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했고, 죄악으로 인류가 홍수로 멸망했으며, 소돔과 고모라는 불로, 가나안 7족속은 창칼로, 그리고 범죄할 때마다 징계를 당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비롯해서 죄가 얼마나 악하면 그것을 속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셔야 했을까요?
고전 10장에서는 이렇게 경고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므로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이러한 일은 우리들의 본보기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그들이 악을 즐겨한 것 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 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 그들 중의 어떤 사람들이 음행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음행하지 말자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시험하지 말자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 그런즉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5-12절) 이 모든 것이 내가 죽지 않아서 오는 재앙입니다.
4. 아직도 덜 죽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세 천사들이 불어야 할 나팔 소리가 남아 있음이로다 하더라” 왜 넷째 나팔까지 하고 나머지를 의한 이런 중간 진행멘트가 필요할까요? 아직도 계속하여 더 들어야 할 말씀이 있다는 것입니다. 다 됐다고 오해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다 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위험한 것은 없습니다. 지식은 교만하게 하고, 섰다 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는 것이 성경의 교훈입니다. 은혜 받고 엄청난 변화를 받았어도 하나님 보실 때는 아직입니다.
전기 100볼트가 밝은 것 같지만 태양 아래서는 희미한 등불과 같고, 태양 역시 크지만 우주에서 보면 작은 반딧불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교만하지 말고 늘 성경을 보고 도전 받고 또 나보다 더 위대한 사람들을 보고 도전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인간은 한 순간이라도 말씀의 감화가 중단되면 타락으로 나아갑니다. 그러므로 늘 성경 보면서 믿음의 도전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죽는 것을 귀히 여기십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곧 죽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온전히 죽고 죽어 독수리의 잔치를 열어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 주님의 재림을 맞이할 수 있는 자가 되고, 하나님의 음성을 더 크게 들으며, 영원히 심판을 당하지 않으며, 더욱 온전히 죽고 죽어 우리 안에서 예수가 사는 가장 복된 믿음의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출처:한국강해설교연구원원문보기글쓴이:agas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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