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야를 기다린 사람 누가복음 221 - 39

찬 송 : 109, 111, 112, 115, 116, 211, 331.

 

할렐루야!!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은총이 성도 여러분에게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12월이 되고 보니 다른 달보다 더 빨리 지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12월도 어느새 3분의 2가 지나갔습니다. 이제 금년이 꼭 열흘 남았습니다. 이와 같이 세월은 무상하게 지나가는데 우리들의 신앙과 믿음은 진정 주님을 만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는지 다시 한 번 자신을 돌이켜 보아야 하겠습니다.

 

다 같이 한번 따라 하시기 바랍니다. 메시야를 기다린 사람오늘 설교제목입니다.

이번 주 목요일이 성탄절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성탄절을 앞두고 오늘의 우리들은 어떻게 성탄절을 맞이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오늘날의 성탄절은 너무나 상업주의로 전락을 해 버렸습니다. 그래서 성탄절을 맞이하면 그리스도인들보다 장사하는 사람들이 더욱 기를 쓰고 한몫을 보려고 합니다. 심지어는 유흥가에서, 술집에서 이 성탄절을 맞아서 한 대목을 보려고 합니다.

 

오늘은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고 기다리던 두 사람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오늘 읽어드린 본문의 말씀은 예수님이 탄생하신 후 8일이 지나서 결례 예식을 하러 성전에 가셨을 때에 있었던 일입니다.

 

결례예식이란 하나님의 율법으로써 당시 유대인들은 사내아이가 태어나면 출생 후 8일 만에 할례의식을 하였습니다. 이때에 대부분의 아이들에게 이름을 지어줍니다. 이는 할례의 의식이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된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이때에 아이의 부모는 1년 된 어린양을 하나님께 희생 제물로 드렸으나 가난한 사람들은 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반구 두 마리를 번제와 속죄제로 드렸습니다. 요셉과 마리아가 비둘기로 제물을 마련한 것은 당시에 요셉의 가정이 매우 가난하였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요셉과 마리아가 어린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예루살렘 성전으로 결례예식을 하러 갔을 때에 그곳에서 시므온과 안나라는 선지자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 시므온과 안나라는 두 선지자가 이스라엘의 위로와 만백성을 구원하실 메시야를 기다리고 기다렸던 사람입니다.

 

1. 시므온과 안나는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1)먼저 시므온 선지자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시므온은 전승에 의하면 예수님의 출생당시 산헤드린 공회의 의장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산헤드린 의회는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당시의 다른 종교지도자들은 신앙보다는 세상의 재물과 명예와 영광을 탐닉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시므온은 모든 세상 유혹과 연락을 물리치고 오직 성경에 예언된 메시아를 대망 하는 신실 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시므온은 아기 예수를 목격하고 그분이 성경에 예언된 메시아요 장차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감당할 그리스도이심을 최초로 선포하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이제 선지자 시므온이 어떻게 신실 된 삶을 살았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시므온은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이는 곧 시므온이 하나님의 율법을 쫓아 모든 사람들에게 공의를 베풀며 정직하고 성실한 삶을 사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산헤드린의 공회원이었던 시므온은 재판관이었던 자신의 신분을 백분 선용하여 재판을 베풀되 하나님의 법을 쫓아 공의로 판결을 하며 어려운 사람들에게 선하고 구제하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둘째, 시므온은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는 곧 신앙인으로서 하나님 앞에 경건하며 무흠하여 세상의 세속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과 구별된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셋째, 시므온은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였습니다.

여기서 이스라엘의 위로란 메시야를 통해서 주어질 위로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실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메시야가 오시면 그들을 외세로부터의 고통과 질고에서 해방시키고 위로와 평강을 가져다 줄 것으로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일생의 기도제목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시므온은 메시야를 대망은 하되 "정치적인 해방자 예수" 가 아니라 죄와 사망으로부터 인류를 구원하시는 참 메시아 "위로의 예수" 를 기다린 것입니다.

진실로 시므온은 진정한 구원자요 모든 문제의 해결자가 되시는 분은 메시아이신 그리스도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깨닫고 날마다 메시야를 대망하며 하나님께 무릎 꿇고 기도하였던 것입니다.

 

넷째, 시므온은 평생을 성령과 신령한 교제를 하며 살았습니다.

이와 같은 사실은 본문 말씀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25-“성령이 그 위에 게시더라는 말과

26-“그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27-“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라고 기록된 말씀을 통하여 알 수가 있습니다.

진실로 시므온은 사람에 대하여는 의롭고 하나님에 대하여는 경건하며 성령의 인도하신 가운데 메시야를 대망 하는 자였습니다.

 

(2)선지자 안나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시므온 외에 또 한사람의 선지자가 있었으니 바로 여선지 안나입니다. 안나는 어떤 사람입니까?

 

첫째, 안나 선지자는 일평생 성전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평생 동안 성전을 떠나지 않고 성전 안에서 기거하였다는 것이 아닙니다. 즉 이 말은 안나 선지자가 일평생 공식적인 성전 예배와 행사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였을 뿐만 아니라 평상시에도 성전 봉사에 자신의 몸과 마음을 바침으로 마치 성전에서 사는 자와 같았다는 것입니다.

진실로 84년 동안 과부로 지낸 안나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일은 곧 안나 자신의 일이요 성전을 섬기는 일은 곧 안나의 평생 직업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둘째, 안나는 주야로 금식을 하며 기도했습니다.

이는 곧 안나가 평생을 경건생활에 힘쓰며 정결한 그리스도의 신부로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삶을 살았다는 의미입니다. 당시는 로마의 식민지하에서 종교가 타락하고 윤리와 도덕이 부패하여 땅에 떨어진 상황에서 비록 20대 초반에 청상과부가 되었지만 안나는 육신의 정욕으로 인하여 자신의 몸을 더럽히지 아니하고 일평생을 금식과 기도로써 신앙의 정절을 지켰던 것입니다.

마치 불의한 세상 가운데서도 300년 동안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의로운 삶을 살다가 하나님 나라로 올리어 간 에녹과도 같았습니다. (5:21-24)

 

셋째, 안나도 성령의 지시와 인도를 받은 사람입니다.

본문 38절 말씀 마침 이 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그에 대하여 말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감사하고' 란 어떤 대상 즉 하나님에게 메시야를 만남에 대하여 감사를 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안나가 하나님께 감사를 하였다는 말은 안나가 성령의 감동으로 메시아이신 아기 예수를 단번에 알아보았다는 뜻입니다.

 

이와 같이 안나 선지자는 평생 동안 정절을 지키며 기도를 통하여 경건된 생활을 하여 왔기 때문에 신령한 눈을 열어 성령의 지시를 깨달을 수 있었고 그 결과 그렇게도 소망하던 메시야를 만나는 영광의 은총을 받게 된 것입니다.

실로 그 당시에도 유명하고 이름 높은 종교지도자들이 많이 있었는데 유독 보잘 것 없는 늙은 할머니인 안나가 메시야를 만나는 영광을 누린 것은 오늘날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깨닫게 해 줍니다.

 

2. 시므온은 메시아의 탄생을 어떻게 기다렸습니까?

 

시므온 선지자는 본문 26절 말씀에 그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습니다. 시므온은 이 말씀을 들은 후 성전에서 아기 예수를 만나기까지 얼마나 긴 세월이 지났는지는 알 수 없으나 날마다 날마다 행여나 오늘일까 아니면 내일은 만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메시야를 고대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성전에서 아기 예수를 만났습니다. 성령께서 감동하시기를 이 아기가 하나님이 보내시기로 언약하신 메시야이다라는 말씀을 듣고 시므온 선지자는 아기 예수를 품에 안고서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늙은 선지자 시므온의 두 눈에서는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습니다. 메시야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는 그 말씀에 하루도 편한 날이 없었습니다. 솔직히 죽을래야 죽을 수도 없었습니다.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이 말씀은 주여! 이제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이 종이 메시야를 보았사오니 편안히 눈을 감을 수 잇사옵니다라는 뜻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시므온 선지자가 메시아 그리스도의 탄생을 그처럼 고대하고 고대한 것처럼 오늘의 우리 성도들은 다시 오실 재림 예수님을 고대하고 고대해야 하겠습니다.

 

다 같이 복음성가를 부르겠습니다.

낮에나 밤에나(59)

1낮에나 밤에나 눈물머금고 내주님 오시기만

고대합니다 가실 때 다시오마 하신 예수님

오주여 언제나 오시렵니까

 

2고적하고 쓸쓸한 빈들판에서 희미한 등불만

밝히어 놓고 오실줄만 고대하고 기다리오니

오주여 언제나 오시렵니까

 

3먼하늘 이상한 구름만떠도 행여나 내주님

오시는가해 머리들고 멀리멀리 바라보는 맘

오주여 언제나 오시렵니까

 

4내주님 자비한 손을 붙잡고 면류관 벗어들고

찬송부르면 주님께신 그곳에 가고 싶어요

오주여 언제나 오시렵니까

 

5신부되는 교회가 흰옷을입고 기름준비 다해놓고

기다리오니 도적같이 오시마고 하신 예수님

오주여 언제나 오시렵니까

 

6천년을 하루같이 기다린 주님 내영혼 당하는것

볼수없어서 이시간도 기다리고 계신 내주님

오주여 이시간에 오시옵소서

 

3. 안나는 메시아의 탄생을 어떻게 기다렸습니까?

 

본문 38절 말씀에는 마침 이 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그에 대하여 말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안나는 매일 매일 100세가 넘은 고령에도 불구하고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며 금식하며 기도하기를 84년이란 긴 세월이 지났습니다.

말이 84년이지 생각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기나긴 84년의 세월을 지나면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쉬지 않고 날마다 성전에 와서 기도하기를 주여 언제입니까? 이 백성들의 진정한 메시야를 보내 주실 날이 언제입니까?” 부르짖어 간구 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우리들은 84년은커녕 10년도 기도를 하지 못합니다. 10년은커녕 1년도 못하고 포기를 하고 맙니다.

 

안나 선지자는 아기 예수를 만난 후 너무나도 감격하여 두 눈에서는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습니다. 이제는 안나 선지자도 두 눈을 감고 하늘나라로 갈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안나 선지자는 거기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에게 아기 예수에 대하여 증거를 하였습니다.

여러분들이여 여기 이 아기가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다리는 메시야입니다. 이분이 장차 인류의 죄악을 담당하시고 모든 사람을 죄악에서 구원하실 구주십니다.”

 

결 론 : 오늘의 말씀을 마칩니다.

 

오늘의 우리들은 시므온과 안나 두 선지자를 통하여 이 성탄절을 앞두고 몇 가지 꼭 깨닫고 지켜 행하여야 할 일이 있습니다.

 

첫째, 시므온과 안나와 같이 진실 되고 모든 사람들에게 의로운 사람이 되며 하나님께는 경건한 삶을 사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저를 통하여 역사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둘째, 시므온과 안나가 메시아의 탄생을 고대하고 고대한 결과 메시아 예수님을 만난 것처럼 오늘의 우리들도 이 성탄절을 맞이하여 예수님을 간절히 사모하여 우리의 마음속에 주님을 만나는 성탄절이 되어야 합니다.

셋째, 시므온과 안나가 메시아 예수를 고대하고 고대한 것처럼 오늘의 우리 성도들은 다시 오실 재림 예수를 고대하고 기다려야 할 줄로 믿습니다.

넷째. 시므온과 안나는 두 사람 다 나이가 많고 늙어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죽는 날까지 메시야를 대망 하면서 기도로써 경건생활에 힘쓰고, 찬양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말씀선포를 통해 뭇 심령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일에 힘썼습니다.

 

이와 같은 신실 된 삶은 오늘의 우리들이 본받아야 할 일입니다. 왜냐 하면 믿음의 연륜이나 나이에 구애 없이 우리들은 언제 주님께 부름을 받을지 알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말세를 당한 이 때에 주님의 재림이 임박한 이 시대를 사는 우리 성도들에게는 더욱 종말적인 신앙 자세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언제 어느 시간에 주님의 부름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주님 앞에 서기에 부끄럽지 않은 성도가 되기를 힘써야 하겠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그 동안 해마다 성탄절을 맞이했습니다. 그래서 인지 성탄절이 다가와도 별다른 감회가 없습니다. 가슴 울렁거리며 설레임 속에 기다리는 기다림이 없습니다. 이제 그 성탄절을 다시 기다려야 합니다. 시므온 선지자와 안나 선지자처럼 목숨 걸고 기다려야 합니다.

모쪼록 끝까지 힘쓰고 애쓰며 깨어서 근신하며 주님을 사모하고 기다리는 성도가 되어 주님 다시 오시는 날에 주님 앞에서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 듣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성탄절을 맞이하여 시므온과 안나와 같이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의 은혜와 은총을 대망 하여 이번 성탄은 진실로 기쁨과 은혜가 넘치는 복된 성탄절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새 한컴오피스 한글 2010 문서.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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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1235-40, 벧전4:7-11

 

알프스 산 남쪽 기슭에 있는 어느 마을 숲속에 한 노인이 조용히 살고 있었습니다. 이 노인은 산 계곡의 물에 여러 가지 더러운 잡동사니가 흘러 들어와서 마을로 흘러오는 샘물을 더럽힌다고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관리하도록 오래전부터 마을 사람들이 고용해 온 사람이었습니다. 이 노인은 말없이 충실하게 그 동네를 순찰하면서 나뭇잎과 나뭇가지를 줍고 샘물을 더럽히는 찌꺼기들을 제거했습니다. 마을은 날이 갈수록 깨끗해져 어느 덧 아름다운 휴양지로 소문이 났습니다. 오랜 세월이 흘렀습니다. 어느 날 저녁에 마을 사람들의 정기총회가 열렸습니다. 마을의 예산안을 심의하던 도중 누군가가 샘물을 관리하는 사람에게 지불되는 돈을 문제 삼기 시작했습니다. '도대체 그 노인은 무엇 하는 사람입니까? 무엇 때문에 별 쓸모없는 사람을 해마다 고용하는 것입니까? 더 이상 더럽지도 않으니 이제는 그 사람을 고용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그 날의 총회에서 그 노인은 해고되었습니다. 그 후 샘물에는 엷은 적갈색 이끼가 조금씩 생겨났습니다. 그러더니 점점 물은 더러워졌고 또 좀 지나자 끈끈한 기름 층이 샘물을 뒤덮고 물에서는 악취가 풍겨 나기 시작했습니다. 급기야 이상한 질병이 마을을 휩쓸었습니다. 당황한 마을 지도자들이 긴급회의를 소집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지난 번 결정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옛날 샘물을 지키던 그 노인을 다시 고용하였습니다. 몇 주도 채 지나지 않아서 샘물은 다시 맑은 생수로 변하기 시작했고 알프스 산기슭의 그 마을은 다시 전과같이 깨끗하여지고 아름다운 휴양지로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우리의 믿음을 잘 관리 하지 않으면 오염된 식수처럼 나도 병들고, 다른 사람도 병들게 만듭니다. 성도 개개인이 가정과 교회와 일터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본분을 잘 감당하게 되면 주님과 사람들과 관계를 아름답게 하고, 주변을 아름답게 만들어 가는 아름답고 향기로운 성도가 됩니다. 오늘 대강절 셋째 주일을 맞아 두 본문을 중심으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슬기로운 성도에게는 때를 잘 분별하는 통찰력이 있습니다.

 

복음서의 누가복음 본문에 주님이 오시는 종말의 때에 깨어 있는 성도가 될 것을 당부하는 말씀이 기록 되어 있습니다. 서신서 본문 벧전 4:7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세계 곳곳에서 지구의 종말을 알리는 이상 징후들이 끊임없이 나타나는 것을 보고 있고, 사단이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 할 수만 있으면 택한 자라도 넘어지게 하려고 거짓 선지자와 거짓 예언자들이 많이 나타나 미혹을 하고 있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각종 재난과 재해, 자연의 징조들, 기근과 난리와 이스라엘을 둘러싼 중동의 전쟁 위기, 악이 가득한 세상과 세상 문화 등을 보면 정말 마지막 때가 되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마24장에서 마지막 때의 징조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마24:32-35에서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하셨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종말의 사건을 직접경험하고 지켜보게 될 마지막 세대에 대해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비유에서 이스라엘의 회복은 나라를 잃고 오랜 기간 동안 세계 각처에 흩어져 살던 이스라엘이 기적적으로 1948514일에 나라를 다시 재건하는 놀라운 일을 경험하였습니다. 그야말로 죽었던 것처럼 보였던 무화과나무에 가지가 연하여 지고 잎이 돋는 회복의 역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주님은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이루리라는 말씀 가운데 종말의 때를 암시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말하는 세대는 몇 년을 의미할 까요? 이에 대해 다양한 주장들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한 사람이 태어나서 죽음을 맞이하는 기간으로 해석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 기간을 시 90:10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는 기간으로 본다면 한 세대는 70- 80년 이라는 유연한 계산이 나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 하면 48년생인 67세의 세대가 다 죽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성경의 예언이 모두 성취 된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여러 징조들 가운데 일월성신이 마지막 때의 징조로 나타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엘2:31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하려니와했습니다. 해가 어두워지는 일식, 달이 핏빛같이 변하는 월식의 징조를 말하는데, 개기 월식이 일어날 때 붉은 빛으로 변하는 달을 Red Moon 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최근 놀랄만한 사건의 징조가 이미 이스라엘 땅에서 시작되었다는 소식입니다. Four blood moons 혹은 테트라드라고 하는데, 2014년과 2015년 이스라엘의 유월절과 초막절 절기에 맞춰서 달이 핏빛으로 변하는 개기월식이 연이어 4번이나 발생 한다는 것입니다. 2015320일 이스라엘의 종교력으로 11일에 태양 전체가 가려지는 개기일식이 발생하고, 나팔절에 해당 되는 2015913일에는 태양의 일부가 가려지는 이 사건은 이미 NASA에서도 확인해 주고 있는 사건으로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렀다는 하늘의 징조가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아무튼 종말의 때가 가까운 것을 알고 깨어 있는 신앙으로 무장하여 이 시대의 파숫꾼의 사명을 바로 감당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2.슬기로운 성도에게는 깨어 있는 산 믿음이 있습니다.

 

성도가 형식적인 종교인이 되면 안 됩니다. 그런 믿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이 될 수 없고, 구원 받는 산 믿음이 아니라 죽은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산 신앙을 가지기를 원하십니다. 확실한 신앙고백을 하는 믿음, 주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가지고 매일 하나님 중심으로 살기를 소망하면서 주님과 교제하는 믿음,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은혜를 사모하는 믿음, 나의 하는 모든 일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기를 힘쓰는 산 믿음을 가지기를 원하십니다. 본문 벧전4:11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했습니다.

 

이태리의 작은 마을에서 말안장과 말 재갈 등 말의 장신구를 만드는 것을 생업으로 하고 있는 베네딕트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기의 직업에 대한 애착심이 없이 생계를 위한 수단으로 자신의 일을 마지못해 호구지책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밖이 갑자기 소란해서 보니 말이 무엇에 놀랐는지 갑자기 뛰고 몸부림을 치는 바람에 말에 탄 손님은 어쩔 줄 모르고 고삐를 잡고 안장에 달린 발 바이에 힘을 주면서 사력을 다해 애쓰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다행히 말이 안정을 찾고 위태한 고비를 무사히 넘겼습니다. 이것을 본 베네딕트는 자기의 직업에 대한 중요성을 발견하고 자기가 하는 일이 다른 사람의 안전과 행복에 직결된다는 것에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후 그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재간과 정성을 기울여 더 좋고 더 튼튼한 말 장신구를 만드는 봉사의 정신으로 일생을 살았다고 합니다. 이처럼 내가 하는 일이 주께서 내게 맡기신 일이고, 이 일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고, 기쁨을 줄 수 있도록 하나님 경외하는 신앙으로 성실하게 임하는 모습이 믿음으로 사는 자의 모습입니다.

 

산 믿음의 성도는 늘 깨어 있는 자로 삽니다. 본문 눅12:37주인이 와서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했고, 벧전4:7에는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했습니다. 산 믿음의 사람은 늘 깨어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하며 삽니다. 마지막 때가 되면 믿음 지키기 참으로 어려운 세상이 된다고 성경은 예고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내가 올 때 믿음을 보겠느냐 하셨습니다. 사단은 육신의 쾌락으로, 물질의 탐욕으로, 교묘한 이단 사설로 사람들을 멸망의 구렁으로 끌고 가려는 상상할 수 없는 큰 시험의 때입니다. 신앙인의 비리가 발견되면 신문으로, 방송으로, 인터넷으로 막 비난을 하여 기독교 전체를 매도하고, 기독교에 대한 안티 세력들이 무섭게 공격하여 교회는 다 썩었다. 목사는 다 썩었다.”고 말하면서 교회를 비난하여 교회를 떠나게 하고, 신앙을 갖지 못하게 훼방합니다. 그런데 세상 언론이 하도 떠들어 대니까 교인들마저 그런 줄 압니다. 어느 종교보다 많은 봉사를 하고 있는 기독교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고, 무소유니, 사회봉사니 하면서 크게 미화 시켜 큰 인물이라고 방송 매체를 통해 부각시켜 사람들을 바른 믿음에서 떠나게 합니다. 우리가 이런 가운데서도 믿음 잃지 않고 사명을 감당하고 하나님 앞에 서려면 깨어 기도 하면서 성경의 말씀에 깊이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성도들이 깨어 있지 않으면 도적처럼 갑자기 주님을 맞게 되고, 노아의 때처럼 큰 심판을 받게 됩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때에 대해 이렇게 경고합니다.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더니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였으며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서 불과 유황이 비 오듯 하여 저희를 멸하였느니라 인자의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17:26-30) 우리 모두 깨어 있는 산 믿음으로 살다가 다시 오실 주님을 맞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3.슬기로운 성도에게는 준비하는 지혜가 있습니다.

본문 눅12:36너희는 마치 그 주인이 혼인집에서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과 같이 되라하셨고, 40절에 그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하시니라하셨습니다. 깨어 준비하는 신앙을 가지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마25장에 열 처녀 비유에서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기름 등불 준비하고 있다가 신랑을 맞게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슬기로운 성도는 성령 충만으로 기름 등불을 예비합니다. 기름은 성령을 상징합니다. 악한 시대에 성령 충만을 받지 않으면 믿음의 확신을 갖지 못하게 되어 미혹에 넘어지는 자가 됩니다. 미련한 다섯 처녀처럼 등만 있지 기름이 없는 형식적인 신자가 됩니다. 이 신앙으로는 악을 이기고 성결한 자로 살지 못합니다. 종말에는 악이 난무하는 현상들이 나타납니다. 예수님의 재림 이전에는 전 세계적으로 갈수록 악이 증가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현실을 보면 무서운 전쟁과 테러가 지구촌을 공포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이뿐 아니라 간통과 살인과 동성애와 낙태와 마약과 폭력 등의 도덕적 붕괴도 난무하고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권면합니다. "주의 약속은 어떤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벧후3:9-14)

 

성도가 성령 충만을 받고 은혜를 받게 되면 마치 노아가 그 세대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으로 성결하게 살았던 것처럼 주님을 본받아 성결하게 살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심판을 받을 때에도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믿음의 방주, 구원의 방주를 예비하여 구원을 받고, 보호를 받게 됩니다.

 

이런 성도들은 모든 사람들이 다 치우쳐 악의 물결에 휩쓸려 갈 때에도 주님을 경외하며 성실하게 선한 청지기로 살아갑니다. 누가복음 본문35절에 허리에 띠를 띠고 기다리는 사람, 베드로전서 본문 10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는 말씀 모두 주신 사명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자가 되라는 권면입니다.

 

마지막 때에는 사랑 없어 피차 물고 먹다가 멸망하는 일이 많을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본문 8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사랑이 식어지면 봉사하면서도 원망이 생깁니다. 시험에 빠져 서로 반목하고 싸우게 됩니다. 비판하고, 이간질 하고, 비난합니다. 그러면 상처를 받고, 상처는 상처를 낳고, 그 상처는 또 다른 상처를 재생산시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사랑으로 허다한 죄를 덮으라고 강조합니다. 사랑이 세상을 사는 지혜입니다. 어떤 일에도 누구와도 서운한 관계를 만들지 마세요. 미워하는 원수를 만들지 마세요. 사랑하며 사는 것이 우리가 사는 최고의 영적전략입니다. 성령은 우리로 성결한 믿음의 사람, 사랑의 사람으로,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인내의 사람이 되게 합니다. 우리 모두 성령 충만을 사모하면서 믿음으로 잘 준비하는 삶을 살다가 오실 주님을 기쁨으로 맞이하는 복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슬기로운 성도는 잘 준비 하며 삽니다.

.슬기로운 성도에게는 때를 잘 분별하는 통찰력이 있고, 깨어 있는 산 믿음이 있고, .준비하는 지혜가 있습니다. 우리 모두 성령 충만 하여 영적 통찰력을 가지고 깨어 있는 산 믿음으로 잘 준비 하며 살다가 다시 오실 주님 맞는 성도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망의 길 724-27

 

[1-5] 내 아들아, 내 말을 지키며 내 명령을 네게 간직하라. . . .

 

솔로몬은 말한다. “내 아들아, 내 말을 지키며 내 명령을 네게 간직하라. 내 명령을 지켜서 살며 내 법을 네 눈동자처럼 지키라. 이것을 네 손가락에 매며 이것을 네 마음판에 새기라. 지혜에게 너는 내 누이라 하며 명철에게 너는 내 친족이라 하라. 그리하면 이것이 너를 지켜서 음녀에게, 말로 호리는 이방 계집에게 빠지지 않게 하리라.”

 

솔로몬은 자신의 말과 명령과 법을 지혜나 명철과 동일시한다. 그가 말한 내 말’ ‘내 명령’ ‘내 법은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계명과 법, 곧 성경말씀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지혜와 명철이 된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조심스럽게 행하여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것이 우리의 지혜와 명철이다(5:32).

 

솔로몬은 그의 아들이 그의 말과 명령과 법을 친근히 하라고 교훈한다. 그는 아들에게 그의 말을 지키며 그의 명령을 간직하라고 말한다. 또 그는 그의 명령을 지켜 살며 그의 법을 그의 눈동자처럼 지키라고 말하며 그것을 기념 반지처럼 그의 손가락에 매며 그의 마음판에 새기라고 말한다. 또 그는 지혜와 명철을 내 누이’ ‘내 친족이라고 부르라고 말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친근히 하는 것이 좋다.

 

본문은 그리하면 이것이 너를 지켜서 음녀에게, 말로 호리는 이방 계집에게 빠지지 않게 하리라고 말한다. 잠언 2:16지혜가 또 너를 음녀에게서, 말로 호리는 이방 계집에게서 구원하리니라고 말했고, 6:24이것이 너를 지켜서 악한 계집에게, 이방 계집의 혀로 호리는 말에 빠지지 않게 하리라고 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로 범죄치 않게 지켜준다. 그러므로 시편 119편 저자는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라고 고백했다(119:11). 사람이 죄 짓지 않는 것이 지혜요 복인데, 죄 짓지 않는 길은 성경말씀 곧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마음에 두는 것이다.

 

[6-23] 내가 내 집 들창으로, 살창으로 내어다보다가 어리석은 . . . .

 

솔로몬은 그의 집 들창으로, 살창으로 내어다보다가 어리석은 자들 중에, 소년들 중에 한 지혜 없는 자를 보았다고 말한다. 그 소년은 거리를 지나 음녀의 골목 모퉁이로 가까이 하여 그 집으로 가는데 저물 때, 황혼 때, 깊은 밤 흑암 중이었다고 말한다. 부부 관계 외의 남녀 관계는 가까이하면 사고가 나기 쉽다. 특히 음녀의 집은 멀리하는 것이 지혜인데, 그 소년은 그렇지 못하였다.

 

그때 창녀의 옷을 입은 간교한 여자가 그를 맞았다. 음녀는 단정치 못한 옷을 입고 간교하다. 그는 떠들며 완패하였다. 음녀는 수다스럽고 억세다고 묘사되었다. 또 그의 발은 집에 머물지 아니하였다. 그는 가정에 충실한 주부가 아니다. 그는 때마다 거리나 광장 모퉁이, 모퉁이에 서서 사람을 기다렸다. 그는 그 소년을 붙잡고 입을 맞추며 부끄러움을 모르는 얼굴로 말하였다. “내가 화목제를 드려서 서원한 것을 오늘날 갚았노라. 이러므로 내가 너를 맞으려고 나와서 네 얼굴을 찾다가 너를 만났도다. 내 침상에는 화문 요와 애굽의 문채 있는 이불을 폈고 몰약과 침향과 계피를 뿌렸노라. 오라 우리가 아침까지 흡족하게 서로 사랑하며 사랑함으로 희락하자. 남편은 집을 떠나 먼 길을 갔는데 은 주머니를 가졌은즉 보름에나 집에 돌아오리라.” 그 여자는 육신적 쾌락과 사랑을 사모하였고 그 상대를 찾았다. 그는 부드럽고 아첨하는 말로 그 어리석은 소년을 유혹했고, 그 소년은 곧 그를 따라갔다.

 

솔로몬은 그 소년이 그를 따라간 것이 마치 소가 푸주로[도살자에게] 가는 것 같고 미련한 자가 벌을 받으려고 쇠사슬에 매이러 가는 것과 일반이라고 말한다. 또 그는 필경은 살이 그 간을 뚫기까지에 이를 것이라. 새가 빨리 그물로 들어가되 그 생명을 잃어버릴 줄을 알지 못함과 일반이니라고 말한다. 음녀를 따르는 자는 결국 실패하고 죽게 되고 멸망케 될 것이다.

 

[24-27] 아들들아, 나를 듣고 내 입의 말에 주의하라. 네 마음이 음녀의 길로 치우치지 말며 그 길에 미혹지 말지어다. 대저 그가 많은 . . . .

 

솔로몬은 또 말한다. “아들들아, 나를 듣고 내 입의 말에 주의하라. 네 마음이 음녀의 길로 치우치지 말며 그 길에 미혹지 말지어다. 대저 그가 많은 사람을 상하여 엎드러지게 하였나니 그에게 죽은 자가 허다하니라. 그 집은 음부의 길이라. 사망의 방으로 내려가느니라.”

 

솔로몬은 우리에게 지혜의 말에 주의하고 우리의 마음이 음녀의 길로 치우치지 말고 그 길에 미혹지 말라고 말한다. 이것은 잠언에 여러 번 나온 교훈이다. 잠언 5:8, “네 길을 그에게서 멀리하라 그 집 문에도 가까이 가지 말라.” 잠언 5:20, “내 아들아, 어찌하여 음녀를 연모하겠으며 어찌하여 이방 계집의 가슴을 안겠느냐?” 잠언 6:25, “네 마음에 그 아름다운 색을 탐하지 말며 그 눈꺼풀에 홀리지 말라.”

 

솔로몬은 많은 사람들이 음녀로 인해 상하여 엎드러졌고 죽음을 맛보았다고 말한다. 옛날 삼손의 실패는 대표적인 한 예이다. 삼손이 블레셋 가사의 한 여자에게 들어가고 소렉 골짜기의 들릴라라는 여자에게 들어간 것이 실패와 죽음의 원인이 되었다(16). 세상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때때로 성도도, 심지어 목사도 음녀로 인해 실수하고 실패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하고 항상 조심해야 한다. 음행의 죄는 항상 조심하고 피하고 멀리하는 것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

 

솔로몬은 음행의 결과가 죽음이요 지옥 형벌이라고 말한다. “그 집은 음부의 길이라. 사망의 방으로 내려가느니라.” 구약성경에서 음부라는 말(쉐올)무덤혹은 지옥을 가리킨다. 본문은 지옥이라는 뜻으로 볼 수 있다(KJV). 잠언 2:18[음녀의] 집은 사망으로, 그 길은 음부(레파임 죽은 자들’)로 기울어졌다고 말하고, 또 잠언 5:3-5음녀의 입술은 꿀을 떨어뜨리며 그 입은 기름보다 미끄러우나 나중은 쑥같이 쓰고 두 날 가진 칼같이 날카로우며 그 발은 사지로 내려가며 그 걸음은 음부로 나아간다고 말한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우리는 음란에 빠지지 않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마음에 간직해야 한다. 우리는 성경말씀 곧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눈동자같이, 우리의 손가락의 반지같이 여기고 우리의 마음판에 새기고 우리의 누나같이 친근히 여겨야 한다. 우리는 성경말씀을 주야로 읽고 묵상하고 마음 속에 간직하자. 하나님의 말씀을 친근히 하는 것이 거룩의 길이다. 시편 119:9, 11,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둘째로, 우리는 음녀를 조심해야 한다. 본문은 음녀의 특징들을 열거한다. 첫째, 음녀는 특유의 옷을 입는다. 그것은 단정치 못하고 음란한 옷이 분명하다. 둘째, 음녀는 떠들고 소란스럽다. 셋째, 음녀는 완패하다. 즉 완고하고 반항적이다. 넷째, 음녀는 그 발이 집에 머물지 않는다. 다섯째, 음녀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얼굴을 가졌다. 여섯째, 음녀는 아첨하는 말을 한다. 일곱째 음녀는 육체적 사랑을 추구한다. 성도는 이러한 음녀를 조심해야 한다. 우리는 음녀에게 미혹을 받는 어리석은 자같이 되지 말아야 한다. 또 성도는 마음과 말과 몸가짐을 단정히 해야 한다. 여성도는 단정한 옷을 입어야 한다. 디모데전서 2:9, “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 아담한[단정한] 옷을 입으며 염치와 정절로 자기를 단장하고.”

 

셋째로, 우리는 음녀에게 미혹되는 것은 곧 지옥에 이르는 길임을 알아야 한다. 음란은 사람의 죄성의 중요한 요소이다. 성경은 음란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고(고전 6:9) 새 예루살렘 성 곧 천국 밖에 있을 것이며(22:15), 또 행음자들은 지옥불에 참여한다고 말한다(21:8). 성도는 모든 죄를 멀리하되 특히 음란의 죄를 조심하고 멀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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