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메시아 시대

 

1-9, 이새에게서 난 한 싹

 

[1]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이사야는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9)가 나서 결실할 것이라고 예언한다. 이것은 메시아께서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것을 예언한 것이다. 메시아를 다윗의 자손이라고 표현하지 않고 다윗의 아버지인 이새의 자손이라고 표현한 것은 메시아의 비천한 출생을 암시하는 것 같다. 이새는 가난하고 비천한 신분의 사람이었다. 다윗은 동료 신하들에게 왕의 사위 되는 것을 너희는 경한 일로 보느냐? 나는 가난하고 천한 사람이로라고 말했었다(삼상 18:23).

 

이 예언은 메시아의 인성(人性)과 그의 낮아지심을 나타낸다.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는 아기 예수를 출산하고 40일이 지나 결례(潔禮)를 행하는 날에 예루살렘에 올라가 비둘기 한 쌍으로 제사하려 하였는데(2:24), 그것은 가정의 경제적 형편이 어려웠음을 나타낸다. 보통 출산한 여인은 1년된 어린양으로 속죄제를 드렸으나 가난한 경우는 비둘기로 드렸다(12:6-8). 예수 그리스도는 가난한 가정에서 출생하셨고 비천한 종의 모습으로 세상에 오셨다.

 

[2] 여호와의 신 곧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모략과 재능의 신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 그 위에 강림하시리니.

 

이사야는 여호와의 신 곧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모략과 재능의 신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 그 위에 강림하시리라고 예언한다. ‘이라는 원어(루아크)’()이라는 뜻이다. ‘여호와의 신여호와의 영곧 성령을 가리킨다. ‘강림하신다는 원어(누아크)머무르다’(rest upon)는 뜻이다. 성령께서는 메시아 위에 머무르실 것이다. 성령은 지혜와 총명의 영이시며 모략과 권능의 영이시며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라는 말은 여호와를 경외케 하는 영이라는 뜻일 것이다.

 

과연 예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에 성령께서는 그 위에 비둘기처럼 내려오셨다. 마태복음 3:16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셨다고 증거한다. 그러나 실상 예수께서는 본래부터 신성(神性)을 가진 자로서 사람이 되셨다. 사도 요한은 증거하기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라고 하였다(1:14).

 

본절은 메시아의 신성(神性)을 예언한 것이다. 메시아께는 성령의 충만함이 있을 것이다. ‘메시아라는 말은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이며 그것은 성령의 충만한 부음을 가리킨다. 골로새서 2:9그 안에는 신성(神性)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셨다고 말한다.

 

[3-5]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 . . .

 

선지자 이사야는 또 예언하기를, “[메시아]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치 아니하며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치 아니하며 공의로 빈핍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공의로 그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몸의 띠를 삼으리라고 말한다. ‘즐거움을 삼는다는 원어(하리코)냄새를 낸다, 알아차린다, 향기를 낸다는 뜻이며 또 기뻐한다고 번역되기도 한다(BDB, NASB, NIV). 옛날 영어성경은 지혜를 얻게 한다고 번역했는데(KJV), 그것이 더 나아 보인다.

 

이 예언은 메시아의 사역의 한 면을 증거한다. 즉 메시아께서 오셔서 공의의 심판자로 일하실 것을 증거한다. 메시아께서는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하지 않으시고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치 않으실 것이다. 즉 그는 사람을 외모로 심판하지 않으실 것이다. 그는 공의로 가난한 자들을 심판하시고 정직으로 겸손한 자들을 판단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앞에는 억울한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악한 자들은 그가 공의로 보응하시는 심판을 두려워해야 한다. 그것은 그가 그의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시며 그의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들을 죽이실 것이며 공의와 정직으로 심판을 시행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6-9] 그때에 이리가 어린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찐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 . . .

 

선지자 이사야는 또 메시아의 오심과 그의 사역의 결과로 이 땅 위에 평화의 세계가 이루어질 것을 예언한다. “그때에 이리가 어린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찐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뗀 어린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메시아의 오심으로 이루어질 새 세계의 특징은 한마디로 평화이다. 거기에는 악한 짐승들이 없을 것이다. 모든 짐승들은 성질이 온순해질 것이다. 그러므로 그때는 세상에 상함과 해됨이 더 이상 없을 것이며, 그것은 세상에 하나님의 지식과 경외함이 충만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예언은, 만일 그것이 문자적 의미라면, 천년왕국에서 이루어질 것이며, 만일 비유적, 영적 의미라면, 신약시대나 천국의 모습을 가리킨 것일 것이다. 그 예언은 영적으로 이미 이루어지고 있다.

 

이사야 11:1-9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감사하며 그를 굳게 믿고 의지하자. 예수께서는 이사야서에 예언된 메시아로 이 세상에 오셨다. 사도 바울은,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고 말했다(딤전 1:15). 우리 모두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믿고 따르자.

 

둘째로, 우리는 장차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의로 심판하실 것을 알자. 하나님께서는 공의로 온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며(2:6-8) 아들 예수를 심판자로 세우셨다. 예수께서는 아버지께서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다고 말씀하셨다(5:22). 또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에게 회개를 명하셨고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고 말했다(17:30-31). 그러므로 이 지식을 가진 우리는 죄를 멀리하고 의롭고 선하게 살아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이루어질 평화의 새 세계를 사모하며 소망하자. 평화의 새 세계는 영적으로는 이미 시작되었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죄인들이 거룩한 의인들로 변화된 자들이다. 그들은 평안을 얻었고 또 화평케 하는 사신으로 부름을 받았다. 그러나 우리의 성화가 불완전하듯이 지상의 교회는 여전히 불완전하다. 그러나 장차 주의 재림으로 이루어질 천년왕국이나 천국에서 이 예언은 충만하게 이루어질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대로 의()가 충만한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며(벧후 3:13) 그 세계를 사모하며 소망하자.

 

10-16, 만민의 기호

 

이사야는 메시아께서 만민의 기호가 되실 것이며 그때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과 온 열방이 그에게로 나아올 것이라고 예언한다.

 

[10-11] 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 . . .

 

이사야는 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호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 그 날에 주께서 다시 손을 펴사 그 남은 백성을 앗수르와 애굽과 바드로스와 구스와 엘람과 시날과 하맛과 바다 섬들에서 돌아오게 하실 것이라고 말한다.

 

본문은 그 날에라는 말을 두 번 말한다. ‘그 날은 분명히 메시아 시대를 가리킨다. “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라는 원문은 단순히 그 날에 이새의 뿌리가 있을 것이라고 되어 있다(KJV, NASB, NIV). 1절에서 이사야는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라고 예언하였었다. 그러나 그는 본절에서 그 날에 이새의 뿌리가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메시아께서는 이새의 자손인 한 인간으로 오실 것이지만, 실상 그는 이새의 뿌리, 아니 모든 사람의 뿌리이시다.

 

이새의 뿌리라는 표현은 메시아의 신성(神性)을 가리킨다. 하나님은 모든 인생의 뿌리이시다. 요한계시록 22:16에서도 예수께서는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라고 말씀하셨다. 만물은 다 하나님에게서 나왔다. 요한복음 1: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고 말한다. 또 고린도전서 8:6,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며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았느니라고 말한다.

 

본문은 이새의 뿌리가 만민의 기호로 설 것이며 이방 나라들이 그에게로 돌아올 것이라고 말한다. 12절은 여호와께서 열방을 향하여 기호를 세우실 것이라고 말한다. ‘만민의 기호라는 말은 만민이 그를 믿고 따를 자,’ 즉 세상의 주님과 구주라는 뜻이다. 예수님은 세상의 주님과 구주이시다. 사도 바울은 증거하기를,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고 하였다(딤전 1:15).

 

본문은 메시아 시대에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 돌아오고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온다고 예언한다.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라’(10)는 말씀의 원문은 열방이 그를 찾으리라는 뜻이다. 또 주께서는 그 날에 다시 손을 펴셔서 그 남은 백성을 앗수르와 애굽과 바드로스와 구스와 엘람과 시날과 하맛과 바다 섬들, 곧 동서사방에서 돌아오게 하실 것이다. ‘그 남은 백성이라는 말은 남은 자라는 말과 동의어로서 하나님께서 은혜로 택하신 자들을 가리킨다.

 

[12] 여호와께서 열방을 향하여 기호를 세우시고 . . . .

 

이사야는 또 여호와께서 열방을 향하여 기호를 세우시고 이스라엘의 쫓긴 자를 모으시며 땅 사방에서 유다의 이산(離散)한 자를 모으시리라고 예언한다. 이것은 메시아 시대에 이방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과 뿔뿔이 흩어진 이스라엘이 회복될 것을 예언한 것이다.

 

메시아 시대에는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의 회복과 이방인들의 구원이 있을 것이다. 이것은 바로 신약성경이 증거하는 바이다. 로마서 11장에서 사도 바울은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함을 면키 위하여 이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했다(11:25-26).

 

[13-16] 에브라임의 투기(妬忌)는 없어지고 . . . .

 

이사야는 또한 메시아 시대에 분열된 교회의 단합이 있을 것이며 세계복음화의 일이 이루어질 것이며 남은 자들을 위한 구원의 대로(大路) 곧 광대한 길이 열릴 것이라고 예언한다.

 

그는 먼저 에브라임의 투기(妬忌)는 없어지고 유다를 괴롭게 하던 자는 끊어지며 에브라임은 유다를 투기하지 아니하며 유다는 에브라임을 괴롭게 하지 아니할 것이요라고 말한다. 이전에는 북쪽 이스라엘과 남쪽 유다, 즉 구약교회가 서로 질투하고 갈등하였었다. 그러나 메시아 시대에는 참된 교회는 단합하며 서로 사랑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주께서 남기신 새 계명의 정신이며 또 요한복음 17장에 기록된 주님의 마지막 기도의 내용,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17:11)라고 하신 기도의 내용이기도 하다. 참된 교회들은 일치단합할 것이다.

 

이사야는 또 그들이 서(西)으로 블레셋 사람의 어깨에 날아 앉고 함께 동방 백성을 노략하며 에돔과 모압에 손을 대며 암몬 자손을 자기에게 복종시키리라고 예언한다. 그것은 메시아 시대에 이스라엘이그 주변의 나라들을 정복할 것을 보인다. 그것은 신약교회가 세계를 복음으로 정복할 것을 묘사한 것이라고 본다. 과연 신약교회는 세계를 복음으로 정복하였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았다.

 

이사야는 또 여호와께서 애굽 해고(海股)를 말리시고 손을 유브라데 하수 위에 흔들어 뜨거운 바람을 일으켜서 그 하수를 쳐서 일곱 갈래로 나눠 신 신고 건너가게 하실 것이라. 그의 남아 있는 백성을 위하여 앗수르에서부터 돌아오는 대로(大路)가 있게 하시되 이스라엘이 애굽 땅에서 나오던 날과 같게 하시리라고 말한다. ‘애굽 해고(海股)’라는 원어(레숀 얌-미츠라임)애굽 바다의 혀’ (KJV, NASB)10)라는 뜻으로서 홍해의 북서쪽 끝, 즉 오늘날 수에즈만을 가리킨다고 본다.

 

하나님께서는 홍해를 말리시고 유브라데 강을 쳐서 일곱 갈래로 나눠 신 신고 건너갈 수 있게 하실 것이며, 또 그의 남아 있는 백성을 위해 앗수르에서부터 돌아오는 대로(大路)가 있게 하시되 이스라엘이 애굽 땅에서 나오던 날과 같게 하실 것이다. 이 예언은 온 세계에서 하나님의 구원 사역이 힘있게 일어날 것을 암시한다.

 

세계복음화는 하나님의 뜻이다. 부활하신 주 예수께서는 열한 제자들에게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명하셨다(28:19). 그는 일찍이 제자들에게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고 말씀하셨었다(24:14). 이제 그 일이 거의 이루어졌다.

 

이미 신약시대의 초기에 하나님의 복음이 주의 사도들을 통해 온 세상에 전파되기 시작하였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광대하고 효력 있는 전도의 문, 구원의 문이 에베소에서 열렸다고 간증하였다(고전 16:9). 또 그는 골로새서에서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군이 되었노라고 말했다(1:23). 요한계시록에서, 사도 요한은 말하기를,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옷을 입고 손에 종려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찬송하였다고 하였다(7:9). 세계복음화가 완성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만민의 기호, 곧 세상의 구주이시며, 택한 모든 백성은 다 그에게로 나아올 것이다. 세계복음화는 하나님의 뜻이다. 구원의 대로(大路)가 열려져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인에게 힘써 전하자. 전도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수요전도대에 참여하고, 국내의 개척교회사역이나 국외의 선교사역에 물질과 기도로 힘써 후원하자.

 



이사야10: 앗수르에 대한 심판

 

1-19, 앗수르에 대한 심판

 

[1-4] 불의한 법령을 발포하며 불의한 말을 기록하며 빈핍한 자를 불공평하게 판결하여 내 백성의 가련한 자의 권리를 박탈하며 과부에게 토색하고 고아의 것을 약탈하는 자는 화 있을진저. 너희에게 벌하시는 날에와 멀리서 오는 환난 때에 너희가 어떻게 하려느냐? 누구에게로 도망하여 도움을 구하겠으며 너희 영화(榮華)를 어느 곳에 두려느냐? . . . .

 

선지자는 이스라엘 사회가 매우 불법하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다. “불의한 법령을 발포하며 불의한 말을 기록하며 빈핍한 자를 불공평하게 판결하여 내 백성의 가련한 자의 권리를 박탈하며 과부에게 토색하고 고아의 것을 약탈하는 자는 화 있을진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백성을 위해 봉사하기커녕 옳지 않은 법령을 공포하였고 가난하고 빈핍한 자들을 불공정하게 판결하며 그들의 권리를 박탈하고 과부의 소유물이나 고아의 소유물을 강제로 빼앗았다. 그러니 그런 자들에게 어떻게 하나님의 진노가 선포되지 않겠는가?

 

하나님의 율법은 공의와 선과 진실을 명한 법이었다. 출애굽기 23:6너는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공평치 않게 하지 말며 거짓 일을 멀리하며 무죄한 자와 의로운 자를 죽이지 말라. 나는 악인을 의롭다 하지 아니하겠노라고 말했다. 레위기 19:15너희는 재판할 때에 불의를 행치 말며 가난한 자의 편을 들지 말며 세력 있는 자라고 두호하지 말고 공의로 사람을 재판할지니라고 말했다. 또 잠언 14:31,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존경하는 자니라고 말한다.

 

불의와 악이 가득한 이스라엘 사회에 대해, 선지자는 징벌을 선포한다. “너희에게 벌하시는 날에와 멀리서 오는 환난 때에 너희가 어떻게 하려느냐? 누구에게로 도망하여 도움을 구하겠으며 너희 영화(榮華)를 어느 곳에 두려느냐? 포로된 자의 아래에 구푸리며 죽임을 당한 자의 아래에 엎드러질 따름이니라. 그럴지라도 여호와의 노가 쉬지 아니하며 그 손이 여전히 펴지리라.” 그들은 재앙의 날에 누구에게 도움을 청하러 도망칠 수 없고 다 포로로 잡혀가고 죽임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노는 그 정도로 그치지 않을 것이다.

 

[5-6] 화 있을진저, 앗수르 사람이여. 그는 나의 진노의 막대기요 그 손의 몽둥이는 나의 분한(忿恨)이라. 내가 그를 보내어 한 나라를 치게 하며 내가 그에게 명하여 나의 노한 백성을 쳐서 탈취하며 노략하게 하며 또 그들을 가로상의 진흙같이 짓밟게 하려 하거늘.

 

하나님께서는 이방 나라를 그의 진노의 도구,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앗수르를 그 도구로 사용하셨다. 그래서 그는 앗수르를 나의 진노의 막대기라고 부르셨고, 그 손의 몽둥이는 나의 분한(忿恨)이라고 말씀하셨다. 또 그는 내가 그를 보내어 한 나라[한 불경건한 나라]를 치게 하며 내가 그에게 명하여 나의 노한 백성을 쳐서 탈취하며 노략하게 하며 또 그들을 가로상의 진흙같이 짓밟게 하려 하였다고 말씀하셨다. ‘한 나라라는 원문(고이 카네프)한 불경건한 나라’(BDB, NASB, NIV)라는 뜻이다. 그것은 이스라엘 나라를 가리켰다. 하나님께서는 불경건한 이스라엘 나라를, 앗수르 나라를 도구로 사용하여 치셨다.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이었다. 세상 역사는 하나님의 섭리의 역사이다.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을 다스리시며 세상 나라들을 하나님의 섭리의 도구,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신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앗수르를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셨던 것은 그들이 의로웠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앗수르 사람들의 악함에 대해서도 이제 진노를 선언하신다.

 

[7-11] 그의 뜻은 이 같지 아니하며 그 마음의 생각도 이 같지 아니하고 오직 그 마음에 허다한 나라를 파괴하며 멸절하려 하여 이르기를 나의 방백들은 다 왕이 아니냐? 갈로는 갈그미스와 같지 아니하며 . . . .

 

앗수르는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을 받았었으나, 하나님의 보시기에 바르지 못했다. 앗수르는 하나님께서 뜻하신 이스라엘의 침공과 탈취로 만족하지 않았다. 그들의 뜻과 마음의 생각은 하나님의 뜻과 생각과 달랐다. 그들은 여러 나라들을 파괴하며 멸절시키려 하였고 심지어 유다까지도 침공하려 하였다. 그들은 자랑하듯이 말하기를, “나의 방백들은 다 왕이 아니냐? 갈로는 갈그미스와 같지 아니하며 하맛은 아르밧과 같지 아니하며 사마리아는 다메섹과 같지 아니하냐? 내 손이 이미 신상을 섬기는 나라에 미쳤나니 그 조각한 신상이 예루살렘과 사마리아의 신상보다 우승하였느니라. 내가 사마리아와 그 신상에게 행함같이 예루살렘과 그 신상에게 행치 못하겠느냐?”고 하였다.

 

[12-14] 이러므로 주 내가 나의 일을 시온산과 예루살렘에 다 행한 후에 앗수르 왕의 완악한 마음의 열매와 높은 눈의 자랑을 벌하리라. . . .

 

하나님께서는 여러 나라들을 침략하려는 앗수르 사람들의 그 욕심과 교만을 미워하셨다. 그는 말씀하시기를, “이러므로 주 내가 나의 일을 시온산과 예루살렘에 다 행한 후에 앗수르 왕의 완악한 마음의 열매와 높은 눈의 자랑을 벌하리라고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아도나이)라고 표현하셨다. 그것은 하나님 자신이 온 세상의 소유자시요 통치자시라는 뜻이다. 하나님은 주님이시요 왕이시다. 그는 주권적 섭리자이시다. 시온산과 예루살렘, 즉 유다 나라에 대한 그의 일, 곧 유다를 징계하시는 일을 행하시는 이도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그는 이제 그 일을 다 행하신 후에 앗수르 왕의 완악한 마음의 열매와 높은 눈의 자랑을 벌하시겠다고 선언하신다.

 

완악한 마음이라는 원어(고델 레밥)거만한 마음이라는 뜻이다(BDB, NASB, NIV). 앗수르는 마음이 교만했고 높은 눈으로 자랑하였다. 그들은 말하기를, “나는 내 손의 힘과 내 지혜로 이 일을 행하였으니 나는 총명한 자라. 열국의 경계를 옮겼고 그 재물을 약탈하였으며 또 용감한 자같이 위에 거한 자를 낮추었으며 나의 손으로 열국의 재물을 얻은 것은 새의 보금자리를 얻음 같고 온 세계를 얻은 것은 내어버린 알을 주움 같았으나 날개를 치거나 입을 벌리거나 지저귀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고 하였다. 교만은 큰 죄악이다.

 

[15-19] 도끼가 어찌 찍는 자에게 스스로 자랑하겠으며 . . . .

 

선지자는 이제 앗수르에게 그들의 교만과 자랑이 합당치 않다고 말한다. “도끼가 어찌 찍는 자에게 스스로 자랑하겠으며 톱이 어찌 켜는 자에게 스스로 큰 체 하겠느냐? 이는 막대기가 자기를 드는 자를 움직이려 하며 몽둥이가 나무 아닌 사람을 들려 함과 일반이로다.” 앗수르는 하나님의 손의 도끼나 톱과 몽둥이에 불과하였다.

 

그러므로 선지자는 앗수르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한다. “그러므로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살찐 자로 파리하게 하시며 그 영화(榮華)의 아래에 불이 붙는 것같이 맹렬히 타게 하실 것이라. 이스라엘의 빛은 불이요 그 거룩한 자는 불꽃이라. 하루 사이에 그의 형극과 질려[가시와 엉겅퀴]가 소멸되며 그 삼림과 기름진 밭의 영광이 전부 소멸되리니 병자가 점점 쇠약하여 감 같을 것이라. 그 삼림에 남은 나무의 수가 희소(稀少)하여[적어서] 아이라도 능히 계산할 수 있으리라.”

 

 

본문의 교훈은 분명하다.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만 경외하며 의지하고 섬기며 순종하자. 그는 온 세상에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며 주님이시다. 그는 주권적 섭리자이시다(5-6, 12, 16). 세상의 모든 사람이 경배하며 섬길 자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뿐이다. 이사야 45:5-7,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나니 나밖에 신이 없느니라.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나는 네 띠를 동일 것이요 해 뜨는 곳에서든지 지는 곳에서든지 나밖에 다른 이가 없는 줄을 무리로 알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 나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

 

사도 요한은 그의 첫 번째 서신에서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앎이요라고 썼다(요일 2:13). 예수께서는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라고 기도하셨다(17:3). 우리는 태초부터 계신 하나님,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더욱 알고 그를 믿고 섬기며 순종하자.

 

둘째로, 우리는 의롭고 선하게만 살자. 하나님께서는 모든 불의와 악을 미워하신다. 특히 그는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멸시하고 학대하는 것을 미워하시고, 또 그는 높은 마음, 교만한 마음, 자랑하는 마음을 미워하신다(1-2, 12). 그는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 사랑하라고 교훈하셨고, 또 가난하고 궁핍한 자들을 불쌍히 여기고 돌아보라고 교훈하셨다.

 

잠언 18:12,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고 말했고, 잠언 14:31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존경하는 자니라고 말하였다. 우리는 겸손한 마음으로 선을 행하자.

 

예수께서는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셨다(11:29). 또 그는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고 말씀하셨다(13:34-35).

 

사도 바울은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라고 교훈했고(4:31-32),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고 했다(2:2-3). 우리는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사랑과 선을 실천하자.

 

20-34, 남은 자가 돌아올 것

 

본문은 본장 앞부분에 이어서 앗수르의 심판에 대해 말씀하면서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 돌아올 것을 예언하였다.

 

[20-23] 그 날에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야곱 족속의 피난한 자들이 다시는 자기를 친 자를 의뢰치 아니하고 . . . .

 

선지자는, ‘그 날즉 하나님께서 앗수르 나라를 심판하시는 날에,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과 야곱 족속의 피난한 자들이 다시는 자기를 친 앗수르 같은 나라를 의뢰하지 않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 여호와 하나님을 진실히 의뢰할 것이며, 남은 자들 곧 야곱의 남은 자들이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이스라엘이여 네 백성이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돌아오리니 넘치는 공의로 훼멸[멸망]이 작정되었음이라. 이미 작정되었은즉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온 세계 중에 끝까지 행하시리라고 말했다.

 

끝까지라는 원어(칼라)완전한 멸망’(BDB, NASB)이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의 최종적 심판과 멸망을 작정하셨고 그것을 이루실 것이다. 그것은 공의의 심판일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불의와 죄에 대해 매우 진노하시고 엄히 징벌하실 것이다. 이 세상은 마침내 완전히 멸망할 것이다.

 

본문은 남은 자에 대해 증거한다. ‘남은 자라는 말이 본문에 4번이나 나온다(20, 21, 21, 22).7)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에서 피하여 남은 자들, 곧 하나님의 은혜로 택하심을 입은 자들이다. 그들은 멸망치 않고 구원을 얻을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 곧 앗수르를 멸하시고 그들을 구원하신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다. 그들은 다시 앗수르를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만 진실히 의지할 것이다.

 

[24-27]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시온에 거한 나의 백성들아 앗수르 사람이 애굽을 본받아 막대기로 너를 때리며 몽둥이를 들어 너를 칠지라도 그를 두려워 말라. 내가 불구에 네게는 분을 그치고 노를 옮겨 그들을 멸하리라 하시도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채찍을 들어 그를 치시되 오렙 반석에서 미디안 사람을 쳐죽이신 것같이 하실 것이며 막대기를 드시되 바다를 향하여 애굽에 드신 것같이 하실 것이라. 그 날에 그의 무거운 짐이 네 어깨에서 떠나고 그의 멍에가 네 목에서 벗어지되 기름진 까닭에 멍에가 부러지리라.

 

하나님께서는 다시 앗수르에 대한 심판을 말씀하셨다.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시온에 거한 나의 백성들아, 앗수르 사람이 애굽을 본받아 막대기로 너를 때리며 몽둥이를 들어 너를 칠지라도 그를 두려워 말라. 내가 불구(不久)[머잖아] 네게는 분을 그치고 노를 옮겨 그들을 멸하리라 하시도다.” 현재 유다 나라는 앗수르 나라의 침공을 당하고 있을지라도, 장차 하나님께서는 유다 나라를 침략하는 앗수르 나라를 징벌하시고 멸망시키실 것이다.

 

만군의 여호와, 곧 무수히 많은 천사들을 거느리신 능력의 하나님께서는 채찍을 들어 앗수르 나라의 왕을 치실 것이다. 그는 옛날 사사 기드온 시대에 미디안 사람들을 오렙 반석에서 쳐죽이게 하신 것처럼(7:25) 하실 것이며, 또 출애굽 시대에 애굽에서 모세가 바다를 향하여 지팡이를 든 것같이 하실 것이다(14:15-16). ‘그 날곧 앗수르 나라가 심판을 받는 그 날에, 앗수르 나라의 무거운 짐이 이스라엘의 어깨에서 떠나고 앗수르 나라의 멍에가 이스라엘의 목에서 벗어질 것이다. 27절에 기름진 까닭에라는 원문(밉페네 솨멘)기름부음 때문에’(KJV)라고 번역할 수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나라에 주신 기름부음, 특히 하나님께 기름부음을 받으실 메시아를 가리킨 것 같다(Poole, 박윤선). 앗수르 나라의 멸망과 이스라엘 나라의 구원은 메시아로 말미암아 이루어질 것이다.

 

[28-32] 앗수르 왕이 아얏에 이르러 미그론을 지나 믹마스에 치중을 머무르고 영을 넘어 게바에서 유숙하매 라마는 떨고 사울의 기브아 사람은 도망하도다. 딸 갈림아 큰 소리로 외칠지어다. . . .

 

앗수르 왕8)은 유다에 들어올 것이다. 그는 아얏에 이르러 미그론을 지나 믹마스에 치중을 머무르고 영을 넘어 게바에서 유숙할 것이다. 아얏, 미그론, 믹마스, 게바는 다 예루살렘 부근에 있는 유다 나라의 성들이다. ‘치중이라는 한자어(輜重)이라는 뜻이다.

 

선지자는 계속 외친다. “그때 라마는 떨고 사울의 기브아 사람은 도망하도다. 딸 갈림아 큰 소리로 외칠지어다. 라이사야 자세히 들을지어다. 가련하다. 너 아나돗이여. 맛메나 사람은 피난하며 게빔 거민은 도망하도다. 이 날에 그가 놉에서 쉬고 딸 시온 산 곧 예루살렘 산을 향하여 그 손을 흔들리로다.” ‘손을 흔든다는 표현은 적군이 그 성을 공격하는 모습을 묘사할 것이다.

 

[33-34]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혁혁한 위력으로 그 가지를 꺾으시리니 그 장대한 자가 찍힐 것이요 높은 자가 낮아질 것이며 철로 그 빽빽한 삼림을 베시리니 레바논이 권능 있는 자에게 작벌을 당하리라.

 

선지자는 계속 말한다.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혁혁한 위력으로 그 가지를 꺾으시리니 그 장대한 자들이 찍힐 것이요 높은 자들이 낮아질 것이며 철로 그 빽빽한 삼림을 베시리니 레바논이 권능 있는 자에게 작벌을 당하리라.”

 

주 만군의 여호와라는 표현은 하나님께서 주권적 섭리자이심을 강조한다. ‘혁혁한 위력으로라는 원어(베마아라차)와지끈하게’(with a terrible crash)(NASB)라는 뜻이다.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와지끈하게 꺾으실 그 가지는 앗수르 왕을 가리킬 것이며(박윤선, Poole, J. A. Alexander), 레바논도 앗수르를 가리킬 것이다(31:3). 그 장대한 자들’(원문)높은 자들’(원문)도 앗수르의 장군들을 가리킬 것이다. ‘권능 있는 자는 하나님 혹은 하나님의 천사(37:36)을 가리킬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세상에 임할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두려워하자. 22, “넘치는 공의로 훼멸[멸망]이 작정되었음이라.” 하나님께서는 유다의 우상숭배와 음란을 심판하실 것이며, 앗수르의 교만과 악함과 강포를 심판하실 것이다. 마지막 날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은 작정되어 있다. 로마서 2:5, 16, “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곧 내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 날이라.” 그 심판은 참으로 두려운 사건일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두려워하고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모든 죄를 미워하고 버리자.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을 의지하며 사모하자. 이사야서는 남은 자에 대해 증거하며 강조한다. ‘남은 자라는 표현이 본문에 4번이나 나온다. 남은 자들은, 그리고 오직 남은 자들만, 모든 우상숭배와 죄를 회개하고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며 하나님만 진실히 의지할 것이다. 그들은 경건하고 의롭고 선한 자들이 될 것이다. 세상에는 하나님께서 은혜로 남겨두신 자들이 있다. 엘리야 시대와 같은 배교의 시대에도 하나님께서는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고 바알에게 입을 맞추지 않은 자들 7천명을 남겨두셨다(왕상 19:18). 남은 자들은 돌아올 것이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진실히 믿고 순종하는 자들은 남은 자들이다. 우리는 과연 남은 자들의 표를 가지고 있는가?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남은 자들이라면, 우리는 모든 죄를 버리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그의 긍휼과 은혜만 사모하자.

 



이사야9: 메시아 왕국

 

[1-5] 전에 고통하던 자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으로 멸시를 당케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편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취도다.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케 하시며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로 추수하는 즐거움과 탈취물을 나누는 때의 즐거움같이 그들이 주의 앞에서 즐거워하오니 이는 그들의 무겁게 멘 멍에와 그 어깨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를 꺾으시되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셨음이니이다. 어지러이 싸우는 군인의 갑옷과 피묻은 복장이 불에 섶같이 살라지리니.

 

본문은 고통당하던 이스라엘 백성, 특히 이스라엘 북방의 스불론과 납달리 땅에 기쁨과 즐거움의 날이 찾아올 것을 예언한다. 이스라엘은 전에 고통을 당하고 흑암 가운데 있었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했으며 멸시를 당했고 무겁게 멘 멍에와 어깨에 채찍과 압제자의 막대가가 있었다고 묘사된다. 북쪽 이스라엘 나라는 죄로 인해 이방 나라에 포로가 되었고 많은 핍박과 학대를 당하였었다. 모든 인생의 영적 상태도 이와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은 마귀와 죄와 사망에 포로되어 양심의 고통, 육신의 질병들, 환경적 고통, 사망의 공포와 고통을 당하고 있다. 이것이 세상의 현실이다.

 

본문은 이런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큰 빛과 즐거움이 올 것이라고 예언한다. 본문은 전에 고통하던 자들에게 이제 흑암이 없으리라고 말한다. 본문은 또 옛적에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으로 멸시를 당케 하셨으나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편 이방인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다고 말한다. ‘해변 길’(Via Maris)은 북쪽의 다메섹에서 갈릴리 호수와 므깃도를 이어 가사로 이어지는 구약시대에 가장 중요한 도로이었다. ‘요단 저편이라는 표현은 가나안 땅을 표현하는 말이다. ‘이방인의 갈릴리라는 표현은 이스라엘의 북방이 이방 나라들의 영향을 많이 받아 부패했음을 나타내는 것 같다.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들에게 빛이 비췰 것이다. 성경에서 빛은 참 지식과 의와 기쁨을 가리킨다. 그것은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왔다. 예수 그리스도는 참빛으로 세상에 오셨다(1:9). 그는 말씀하시기를,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고 하셨다(8:12).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갈릴리에서부터 전도사역을 시작하셨다. 마태는 이사야서의 본문을 인용하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내용을 성취하셨다고 말했다(4:12-16).

 

하나님께서는 또 그들에게 큰 즐거움을 주실 것이다. 본문은 그가 이 나라를 창성케 하시며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로4) 그들은 추수하는 즐거움과 탈취물을 나누는 때의 즐거움같이 주 앞에서 즐거워할 것이라고 말한다. 또 본문은 그 까닭이 하나님께서 그들의 무겁게 멘 멍에와 그 어깨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를 미디안의 날 같이 꺾으실 것이기 때문이며, 어지러이 싸우는 군인의 갑옷과 피묻은 복장이 불에 땔감같이 살라질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전도를 통한 영혼들의 구원과 교회의 건립과 확장과 그로 인한 충만한 기쁨과 즐거움은 이 예언의 성취이다.

 

[6-7]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이사야의 예언은 메시아 예언에서 절정을 이룬다. 이사야는 신적 메시아의 탄생을 예언한다. ‘이는이라는 시작말은 이스라엘의 회복이 한 아기의 탄생으로 말미암음을 나타낸다.

 

이사야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다고 예언한다. 과거시제를 사용한 것은 미래 사건의 확실성을 나타낸다. 메시아를 한 아기라고 표현한 것은 메시아의 인성(人性)을 증거한다. 메시아께서는 한 인간으로 탄생하실 것이다.

 

그 아기의 이름은 기묘자라고 불릴 것이다. ‘기묘자라는 원어(펠레 al,p,])놀라우신 분이라는 뜻으로 메시아의 신성(神性)을 나타낸다. 그의 성육신(成肉身)과 동정녀 탄생, 그의 기적 행하심, 또 그의 부활 등은 다 신기하고 놀라운 사실들이다. 인간으로 오실 메시아는 신적 존재이실 것이다.

 

모사’(요에츠 $[wy~)(조언자)라는 이름은 메시아의 지혜를 나타내며, ‘전능하신 하나님’(엘 깁보르 rw~bg laO~)이라는 이름은 그의 능력을 나타낸다. 특히 영존하시는 아버지’(아비-아드 d[' yba)라는 명칭은 그의 영원성, 그의 사랑, 생명의 근원 되심, 아버지와 일체(一體) 되심 등을 증거한다. 그것은 다 메시아의 신성에 관계된다. 메시아는 인성(人性)과 신성(神性)을 겸비하신 독특하고 놀라운 인격이시다.

 

평강의 왕’(사르-솰롬 !wl~~`-r`')이라는 명칭과, “그 어깨에 정사(政事, 다스림)를 메었고,” “그 정사(政事)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는 말씀은 메시아의 사역, 즉 그가 장차 하실 일을 증거한다. 메시아는 왕 곧 통치자로 오실 것이며, 그의 통치 사역은 자기 백성에게 평강을 주시는 사역일 것이다.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하나님의 예언은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며, 과연 그대로 이루어졌다.

 

예수 그리스도는 평강의 왕으로 오셨다. 그는 십자가 대속(代贖)으로 의와 평강을 이루셨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고 하나님과 화목케 되었고(고후 5:18; 5:1), 그것에 근거하여 참 평강을 얻었고 누리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셨다(11:28). 또 그는 제자들에게,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말씀하셨다(14:27). 그러므로 사도 바울도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기를 원하노라고 기원하였다(살후 3:16).

 

본문을 통해 얻는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메시아께서는 참빛으로 오셨다. 그는 우리에게 하나님과 인생, 구원과 내세에 대한 참된 지식을 주셨고 완전한 의를 주셨고 기쁨과 행복을 주셨다. 메시아는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고 불리신다. 그는 참된 신성과 참된 인성을 가지신 독특하고 놀라우신 인격이시다. 우리가 믿는 예수가 바로 이 메시아 곧 그리스도이시다. 여러분은 그 사실을 참으로 깨닫고 그를 믿고 구원을 얻으셨는가?

 

둘째로, 메시아께서는 특히 평강의 왕으로 오셨다. 이 세상에는 참된 평안이 없다. 참 평안은 하나님의 세계에서만 가능한 복이다. 그러나 주 예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셨다. 그는 십자가 대속사역으로 이 평안을 우리에게 허락하셨다.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마다 이 평안을 누린다. 우리는 이 은혜를 감사하며 누리며 또 다른 이들에게 증거하자.

 

8-21,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

 

[8-12] 주께서 야곱에게 말씀을 보내시며 그것을 이스라엘에게 임하게 하셨은즉 모든 백성 곧 에브라임과 사마리아 거민이 알 것이어늘 그들이 교만하고 완악한 마음으로 말하기를 벽돌이 무너졌으나 우리는 다듬은 돌로 쌓고 뽕나무들이 찍혔으나 우리는 백향목으로 그것을 대신하리라 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르신의 대적을 일으켜 그를 치게 하시며 그 원수들을 격동시키시리니 앞에는 아람 사람이요 뒤에는 블레셋 사람이라. 그들이 그 입을 벌려 이스라엘을 삼키리라. 그럴지라도 여호와의 노가 쉬지 아니하며 그 손이 여전히 펴지리라.

 

본문은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증거한다. 선지자 이사야는 먼저 이스라엘 백성의 교만함을 지적한다. 그는 주께서 야곱에게 말씀을 보내셨고 그것을 이스라엘에게 임하게 하셨으므로 모든 백성 곧 에브라임과 사마리아 거민이 그것을 알 수 있었지만, 그들이 교만하고 완악한 마음으로 말하기를 벽돌이 무너졌으나 우리는 다듬은 돌로 쌓고 뽕나무들이 찍혔으나 우리는 백향목으로 그것을 대신하리라고 하였다고 말한다. ‘완악한이라는 원어(고델 ld,GO)거만한이라는 뜻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참으로 교만하였다.

 

선지자는 이제 그들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있을 것을 선언한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르신의 대적을 일으켜 그를 치게 하시며 그 원수들을 격동시키시리니 앞에는 아람 사람이요 뒤에는 블레셋 사람이라. 그들이 그 입을 벌려 이스라엘을 삼키리라. 그럴지라도 여호와의 노가 쉬지 아니하며 그 손이 여전히 펴지리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원수들인 아람 사람들과 블레셋 사람들을 격동시켜 이스라엘을 삼키게 하실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5) 하나님의 노가 쉬지 않으실 것이다.

 

[13-17] 이 백성이 오히려 자기들을 치시는 자에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며 만군의 여호와를 찾지 아니하도다. 이러므로 여호와께서 하루 사이에 이스라엘 중에서 머리와 꼬리며 종려가지와 갈대를 끊으시리니 머리는 곧 장로와 존귀한 자요 꼬리는 곧 거짓말을 가르치는 선지자라. 백성을 인도하는 자가 그들로 미혹케 하니 인도를 받는 자가 멸망을 당하는도다. 이 백성이 각기 설만(褻慢)하며 악을 행하며 입으로 망령되이 말하니 . . . .

 

선지자는 또 이 백성이 오히려 자기들을 치시는 자에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며 만군의 여호와를 찾지 아니하도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그들의 무지와 완악함이다. 사람이 실수하고 범죄할 수는 있어도 그 실수와 죄를 깨닫고 인정하고 회개하고 떠나는 것이 중요하다. 자녀가 부모의 교훈을 어기고 잘못을 범할 수 있으나 부모가 그것을 지적할 때 즉시 그 잘못을 인정하고 그것을 뉘우치고 그것을 버리고 새 출발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도 똑같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을 치시는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았고 만군의 여호와이신 하나님을 찾지 않았다.

 

그러므로 선지자는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선언한다. “이러므로 여호와께서 하루 사이에 이스라엘 중에서 머리와 꼬리며 종려가지와 갈대를 끊으시리니 머리는 곧 장로와 존귀한 자요 꼬리는 곧 거짓말을 가르치는 선지자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장로들과 존귀한 자들을 친히 끊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는 하루 사이에 그들을 죽이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선지자 이사야는 백성을 인도하는 자가 그들로 미혹케 하니 인도를 받는 자가 멸망을 당하는도다라고 말한다. 백성을 인도하는 자들의 역할은 참으로 중요하다. 그들이 백성을 잘못 인도하면 그 백성은 잘못된 길로 가고 마침내 멸망을 당하게 될 것이다. 또 선지자는 이 백성이 각기 설만(褻慢)하며 악을 행하며 입으로 망령되이 말한다고 지적한다. ‘설만(褻慢)하다는 원어(카네프 #nEj:)불경건하다는 뜻이다(BDB, NASB, NIV). ‘망령되이라는 원어(네발라 hl;b;n])어리석은 것이라는 뜻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다 불경건하며 악을 행하였고 입으로 어리석은 것을 말하였다.

 

선지자는 또 말하기를, “그러므로 주께서 그 장정을 기뻐 아니하시며 그 고아와 과부를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시리라고 한다. 하나님은 자비와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시지만, 사람들이 그를 두려워하지 않고 고의적으로 악을 행할 때 그는 그들을 기뻐하지 않으시고 그들을 긍휼히 여기지도 않으실 것이다. 비록 고아와 과부라 할지라도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의 긍휼을 입을 수 없을 것이다. 선지자는 또 그럴지라도 여호와의 노가 쉬지 아니하며 그 손이 여전히 펴지리라고 선언한다. 하나님의 진노는 참으로 두려운 것이다.

 

[18-21] 대저 악행은 불태우는 것 같으니 곧 질려와 형극을 삼키며 빽빽한 수풀을 살라서 연기로 위로 올라가게 함과 같은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진노로 인하여 이 땅이 소화되리니 백성은 불에 타는 섶나무와 같을 것이라. 사람이 그 형제를 아끼지 아니하며 우편으로 움킬지라도 주리고 좌편으로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여 각각 자기 팔의 고기를 먹을 것이며 므낫세는 에브라임을, 에브라임은 므낫세를 먹을 것이요 . . . .

 

선지자 이사야는 하나님의 진노를 불에 비유한다. 그는 대저 악행은 불태우는 것 같으니 곧 질려와 형극을 삼키며 빽빽한 수풀을 살라서 연기로 위로 올라가게 함과 같은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진노로 인하여 이 땅이 소화되리니 백성은 불에 타는 섶나무와 같을 것이라고 말한다. 소돔 고모라는 하늘의 불로 멸망을 당했다. 성경은 하나님의 진노를 불에 자주 비유한다. 나훔 1:6, “누가 능히 그 분노하신 앞에 서며 누가 능히 그 진노를 감당하랴. 그 진노를 불처럼 쏟으시니 그를 인하여 바위들이 깨어지는도다.” 마침내 하나님의 최종적 진노의 형벌은 지옥 불못이다. 지옥은 꺼지지 않는 불이며(9:43)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을 것이다(9:44, 46, 48).6)

 

선지자는 하나님의 징벌을 선언하기를, “사람이 그 형제를 아끼지 아니하며 우편으로 움킬지라도 주리고 좌편으로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여 각각 자기 팔의 고기를 먹을 것이며 므낫세는 에브라임을, 에브라임은 므낫세를 먹을 것이요 또 그들이 합하여 유다를 치리라고 한다. 이스라엘은 굶주림 속에서 서로의 것을 빼앗으며 또 그들은 연합하여 유다를 칠 것이다. 선지자는 또 그럴지라도 여호와의 노가 쉬지 아니하며 그 손이 여전히 펴지리라고 부언한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를 두려워하자. 하나님께서는 아람 사람들과 블레셋 사람들을 일으켜 교만한 이스라엘을 치실 것이다. 또 그는 하루 사이에 이스라엘의 지도자들과 거짓 선지자들을 멸망시키실 것이다. 그는 청년들을 기뻐하지 않으시고 고아와 과부를 긍휼히 여기지 않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불로 섶나무를 태우듯이 그들을 태우실 것이다. 그는 그들이 서로의 것을 빼앗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은 이렇게 무서울 것이다.

 

그러나 본문에 더 두려운 말씀은 12, 17, 21절에 반복해 나오는 말씀이다. 12, “그럴지라도 여호와의 노가 쉬지 아니하며 그 손이 여전히 펴지리라.” 17, “그럴지라도 여호와의 노가 쉬지 아니하며 그 손이 여전히 펴지리라.” 21, “그럴지라도 여호와의 노가 쉬지 아니하며 그 손이 여전히 펴지리라.” 하나님은 긍휼의 하나님이시지만, 한번 그가 노하시면 그는 악인을 철저하게 징벌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를 두려워하자.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를 피해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교만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오자. 그것이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는 길이다. 이스라엘의 문제는 교만이었다. 9, “그들이 교만하고 완악한 마음으로 말하기를.” 교만은 그 자체가 큰 죄악이며 멸망의 길이다. 교만은 모든 인생의 문제이다. 사람은 교만한 마음 때문에 자기 중심적으로 살고 하나님의 뜻에 복종치 않는다. 교만한 이스라엘은 자기를 치시는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았고 하나님을 찾지도 않았다(13). 그러나 그것은 큰 잘못이었다.

 

우리는 죄를 지적받을 때 그것을 욕으로 여기지 말고 깨닫고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한다. 이사야 31:6,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는 심히 거역하던 자에게로 돌아오라.” 예레미야 3:14, 22,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나는 너희 남편임이니라,”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 오라. 내가 너희의 배역함을 고치리라.” 요한계시록 3: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우리는 교만한 마음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오자.

 

셋째로, 우리는 인도자를 잘 만나야 한다. 16-17, “백성을 인도하는 자가 그들로 미혹케 하니 인도를 받는 자가 멸망을 당하는도다. 이 백성이 각기 설만하며[불경건하며] 악을 행하며 입으로 망령되이[어리석은 것을] 말하니.” 우리가 만일 잘못된 인도자를 만나면 우리는 잘못된 길로 가기 쉬울 것이다. 구약시대에 거짓 선지자들은 헛된 평안을 선포하였다. 예레미야 6:14, “그들[선지자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심상히[대수롭지 않게] 고쳐주며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

 

예수께서도 거짓 선지자들, 즉 거짓 목사들의 출현을 예언하시며 그들을 경계하라고 교훈하셨다. 마태복음 24:11, 24,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으며,”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 우리는 그들의 전하는 말과 선한 행실을 보고 그들이 참된 목사인지 여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믿음 안에서 앞선 자들이나 교회의 직분을 받은 자들은 말과 행실에 있어서 다른 이들에게 본이 되어야 하고 다른 이들의 신앙 생활과 교회 생활에 유익을 주고 덕을 세우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사야8: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따르라

 

1-10, 앗수르가 오리라

 

[1-4]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큰 서판을 취하여 그 위에 통용 문자로 마헬살랄하스바스라 쓰라. . . .

 

여호와께서는 이사야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큰 서판을 취하여 그 위에 통용문자로 마헬살랄하스바스라 쓰라. 내가 진실한 증인 제사장 우리야와 여베레기야의 아들 스가랴를 불러 증거하게 하리라.” ‘마헬살랄하스바스라는 원문(마헤르 솰랄 카쉬 바즈 zB' vj' ll;v; rhem'])노략이 속히 온다. 그가 약탈을 서둘렀다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에게 노략이 속히 올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신 것이었다. 또 하나님께서 이사야에게 주신 이 계시는 진실한 증인 우리야와 스가랴를 통해 확증될 것이었다. 그들은 진실한 증인이라고 불리었다.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가감 없이 그대로 증거하는 자가 진실한 증인이다.

 

이사야는 자기 아내(한네비아 ha;ybiN_h')[여선지자]와 동침했고 그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았다. 여호와께서는 이사야에게, “그 이름을 마헬살랄하스바스라 하라. 이는 이 아이가 내 아빠, 내 엄마라 할 줄 알기 전에 다메섹의 재물과 사마리아의 노략물이 앗수르 왕 앞에 옮긴 바 될 것임이니라고 말씀하셨다. 선지자의 아들 이름은 하나님의 계시된 뜻대로 노략이 속히 온다. 그가 약탈을 서둘렀다는 뜻이었다. 그 아이가 자라서 내 아빠(아비 ybia;), 내 엄마(임미 yMiai)’라고 말할 줄 알기 전에, 즉 아마 2-3살이 되기 전에, 앞으로 2-3년 내에, 아람과 이스라엘이 망할 것이다. 역사적으로, 아람과 이스라엘은 주전 722년경에 앗수르의 침공으로 멸망하였다.

 

악한 세상 나라는, 비록 일시적으로 강할지라도, 결국 망하고 만다. 땅에 있던 전제국가들, 백성의 인권을 짓밟고 자유를 빼앗던 그 독재국가들은 다 망하고 말았다. 대 로마 제국도, 군국주의 일본 제국도, 나치 독일도 다 망했다. 불경건하고 부도덕하던 아람과 이스라엘도 그렇게 망할 것이다. 그들은 앗수르의 침공으로 망할 것이다. 그들의 재물과 노략물은 앗수르 왕 앞으로 옮긴 바 될 것이다.

 

[5-8] 여호와께서 다시 내게 일러 가라사대 이 백성이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을 버리고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을 기뻐하나니 . . . .

 

여호와께서는 다시 이사야에게 말씀하셨다. “이 백성이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을 버리고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을 기뻐하나니 그러므로 주님인 내가 흉용하고 창일한 큰 강 곧 앗수르 왕과 그의 모든 위력으로 그들 위에 덮을 것이라. 그 모든 곬[수로들과 강들]에 차고 모든 언덕에 넘쳐 흘러 유다에 들어와서 창일하고 목에까지 미치리라. 임마누엘이여, 그의 펴는 날개가 네 땅에 편만하리라.”

 

유다의 잘못은,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을 버리고 아람 왕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 이스라엘 왕 베가를 기뻐하고 의지한 것이었다. ‘실로아는 예루살렘 남동쪽에 있는 샘의 이름이었다. 그것은 신약성경에 나온 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날 때부터 소경된 자를 그리로 보내어 눈을 뜨게 하셨던 바로 그 실로암 못이다(9:7).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은 참 선지자들을 통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킬 것이다. 그것은 야단스럽거나 사람들을 혹하게 하는 달변이 아니고, 조용하고 진실하고 진지한 교훈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유다 백성은 그런 말씀에 흥미를 느끼지 않았다. 그들은 오히려 주위의 나라들의 요란스런 우상숭배적 행위들에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그들은 세상적 방식, 육신적 방식으로 하나님을 섬기려 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먼 곳으로부터 앗수르 사람들을 불러오셔서 유다가 의지하는 아람과 이스라엘을 멸망시키실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인 내가 흉용하고 창일한 큰 강 곧 앗수르 왕과 그의 모든 위력으로 그들 위에 덮을 것이라.” 하나님께서는 모든 열국을 다스리시는 하나님, 주님이신 하나님이시다. 그는 악한 세상 나라들을 마침내 멸망시키실 것이다.

 

뿐만 아니라, 앗수르의 침공은 유다 땅에도 큰 타격을 줄 것이다. 앗수르 왕은 그 모든 곬[수로들, 강들]에 차고 그 모든 언덕에 넘쳐 흘러 유다에 들어와서 창일하고 목에까지 미칠것이다. ‘그 모든 곬과 그 모든 언덕은 아람과 이스라엘의 골짜기들과 강들과 언덕들을 가리키는 것 같다. 앗수르 왕은 아람과 이스라엘을 정복한 후에 유다에까지도 접근해 올 것이다. “임마누엘이여, 그의 펴는 날개가 네 땅에 편만하리라.”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백성의 범죄 때문에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유다 나라를 임마누엘이여라고 부른 것은 그 나라가 임마누엘곧 메시아의 땅이며 장차 메시아로 인해 회복될 것을 암시하는 것 같다. 메시아는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고 회복시키실 것이다.

 

[9-10] 너희 민족들아 훤화하라. 필경 패망하리라. 너희 먼 나라 백성들아 들을지니라. 너희 허리를 동이라. 필경 패망하리라. 너희 허리에 띠를 띠라. 필경 패망하리라. 너희는 함께 도모하라. 필경 이루지 못하리라. 말을 내어라. 시행되지 못하리라. 이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심이니라.

 

그러나 최총적으로는 앗수르를 포함한 모든 열방들이 다 멸망할 것이다. 선지자는 외친다. “너희 민족들아 훤화하라[혹은 부서지리라(NASB)]. 필경 패망하리라. 너희 먼 나라 백성들아 들을지니라. 너희 허리를 동이라. 필경 패망하리라. 너희 허리에 띠를 띠라. 필경 패망하리라. 너희는 함께 도모하라. 필경 이루지 못하리라. 말을 내어라. 시행되지 못하리라. 이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심이니라.”

 

지금 아람과 이스라엘이 유다를 침공하고 위협하지만, 그들은 수년 내에 앗수르에게 멸망할 것이다. 그러나 앗수르는 영원한 나라인가? 아니다. 앗수르도 모든 지혜와 모략으로 계획하며 전쟁을 준비하고 수행하지만, 결국 망하고 말 것이다. 세상 나라들은 다 멸망할 것이다. 본문은 필경 패망하리라는 말을 세 번이나 반복한다. 그들의 계획은 결국 실패할 것이다. ‘필경 이루지 못하리라,’ ‘시행되지 못하리라.’

 

열국이 패망하고 그들의 계획이 실패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선지자는 이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심이니라고 말한다. 즉 하나님께서 유다와 함께하시기 때문이다. 유다에는 임마누엘의 약속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메시아의 약속이다. 그것은 이사야 7:14에서 임마누엘이라고 불릴 한 아기의 탄생을 예언했을 때 이미 암시되었다. 메시아께서 오셔서 이루실 일 때문에 열국들은 결국 패망하고 유다는 마침내 이길 것이다.

 

 

이사야 8:1-10 본문이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역사의 주관자 하나님을 알자. 하나님께서는 이사야의 아들 마헬살랄하스바스가 내 아빠, 내 엄마라고 부를 줄 알기 전에 다메섹과 사마리아, 곧 아람과 이스라엘을 패망케 하실 것이다(4). 그는 친히 앗수르를 불러 오실 것이다. 7, “그러므로 주님인 내가 흉용하고 창일한 큰 강 곧 앗수르 왕과 그의 모든 위력으로 그들 위에 덮을 것이라.” 또 그는 열국들의 패망을 선언하셨다(9-10). 그 예언 속에는 앗수르의 멸망도 포함된다. 하나님께서는 악의 세력들을 다 파하실 것이다. 사도 바울은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단[악의 대장]을 너희 발 아래서 상하게 하시리라고 말했다(16:20). 하나님은 홀로 역사를 주관하시는 자이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역사를 주관하시는 주권적 섭리자이심을 알자. 시편 96:10, “열방 중에서는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통치하시니 세계가 굳게 서고 흔들리지 못할지라. 저가 만민을 공평히 판단하시리라 할지로다.” 요한계시록 11:15,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가로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노릇 하시리로다.”

 

둘째로, 우리는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로 만족하자. 6, “이 백성이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을 버리고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을 기뻐하나니.” 그것이 유다의 문제점이었다. 우리는 하나님의 교훈을 버리고 세상의 것들을 기웃거리고 세상 사람들의 사상과 풍습을 배우려 하지 말자. 우리는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로 만족하자. 우리는 역사적 기독교 진리로, 성경적 기독교로 만족하자. 우리는 성경의 교훈, 즉 성경의 교리적, 윤리적 교훈을 붙들자. 우리는 옛신앙을 붙들자. 예레미야 6:16,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행치 않겠노라 하였으며.” 유다 백성들은 변절하고 패역하였으나, 우리는 그렇게 하지 말자.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내게 들은 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고 부탁하였다(딤후 1:13-14). 우리는 이 사도적 전통, 즉 성경적, 역사적 기독교 신앙으로 만족하며 그 진리, 그 신앙을 굳게 붙들고 지키자.

 

셋째로, 우리는 임마누엘을 믿자. 유다까지도 앗수르의 침공을 받을 것을 예언하면서도,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을 임마누엘이여라고 부르셨다(8). 선지자는 이방 나라들의 패망과 그들의 계획의 실패의 이유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심이니라고 말했다(10).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심이라는 뜻이 임마누엘이다. 임마누엘은 메시아를 가리켰다(7:14). 하나님의 백성의 구원과 승리는 메시아의 사역에 의존한다. 인생은 다 부족하고 구원받은 성도도 여전히 죄성을 가지고 있고 실수와 범죄가 없지 않은 존재들이지만, 우리의 의는 메시아의 대속 사역에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부족한 인생들을 위해 메시아를 보내주셨다. 그는 많은 사람들을 위한 대속물이 되셨다. “우리의 의는 이것뿐 예수의 피밖에 없다!”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항상 함께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28:20). 또 성령께서는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하신다(14:16).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로하시고 이기게 하시는 자이시다.

 

11-22, 하나님을 두려워하라

 

[11-12] 여호와께서 강한 손으로 내게 알게 하시며 이 백성의 길로 행치 말 것을 내게 경성시켜 가라사대 이 백성이 맹약한 자가 있다 말하여도 너희는 그 모든 말을 따라 맹약한 자가 있다 하지 말며 그들의 두려워하는 것을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고.

 

하나님께서는 강한 손, 즉 강한 감동으로 그의 뜻을 선지자 이사야에게 알게 하셨다. 세상 사람들의 생각이 강하고 그 영향이 너무 크므로 하나님께서는 강한 감동으로 선지자를 교훈하신 것이다. 오늘날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강하게 감동하셔서 이 세대와 싸워 이기게 하시기를 원한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이 백성곧 이스라엘 백성의 길로 행치 말라고 교훈하셨다. 그는 그에게 세상 사람들의 사고방식으로 생각지 말고 그들의 생활방식으로 살지 말라고 교훈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맹약한 자가 있다 말하여도 너희는 그 모든 말을 따라 맹약한 자가 있다 하지 말며 그들의 두려워하는 것을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고 하셨다. 12절에 두 번 나오는 맹약한 자가 있다는 말의 뜻은 불분명하다. ‘맹약한 자라는 원어(케쉐르 rv,q,)공모(共謀), 모반(謀反)’이라는 뜻이다. 이 구절에 대한 주석가들의 해석은 다양한 것 같다. 그러나 12절 후반의 말씀에 비추어 볼 때, 맹약한 자 혹은 공모(共謀)라는 표현은 이스라엘이 아람과 동맹하여 형제 유다를 치려는 것을 가리킨 것 같다. 그들 연합군의 침공, 그들의 공모는 유다에게 매우 두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일 것이다.

 

[13-15] 만군의 여호와 그를 너희가 거룩하다 하고 그로 너희의 두려워하며 놀랄 자를 삼으라. 그가 거룩한 피할 곳이 되시리라. 그러나 이스라엘의 두 집에는 거치는 돌, 걸리는 반석이 되실 것이며 예루살렘 거민에게는 함정, 올무가 되시리니 많은 사람들이 그로 인하여 거칠 것이며 . . . .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두려워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만군의 여호와 그를 너희가 거룩하다 하고 그로 너희의 두려워하며 놀랄 자를 삼으라. 그가 거룩한 피할 곳이 되시리라고 말씀하셨다. 역사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시다. 개인의 생사화복(生死禍福)이나 국가의 흥망성쇠(興亡盛衰)는 하나님께서 홀로 주장하신다. 그러므로 외형적으로는 아람과 이스라엘의 동맹이 위협적이고 두려운 일이지만, 유다는 그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유다는 오직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만 두려워해야 한다. 역사상 경건한 성도들은 다 그러하였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풀무불과 사자굴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만 두려워하며 의지하고 소망하였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도 그러해야 한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즉시 부언(附言)하시기를, “그러나 이스라엘의 두 집에는 거치는 돌, 걸리는 반석이 되실 것이며 예루살렘 거민에게는 함정, 올무가 되시리니 많은 사람들이 그로 인하여 거칠 것이며 넘어질 것이며 부러질 것이며 걸릴 것이며 잡힐 것이니라고 하셨다. 하나님께서 거룩한 피할 곳이 되심에도 불구하고 불신앙적 유다 백성에게는 오히려 거치는 돌이 되실 것이다. 그것이 역사적 사실이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당시에 절정적으로 드러났다(벧전 2:8).

 

[16-18] 너는 증거의 말씀을 싸매며 율법을 나의 제자 중에 봉함하라. 이제 야곱 집에 대하여 낯을 가리우시는 여호와를 나는 기다리며 그를 바라보리라. 보라 나와 및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자녀들이 이스라엘 중에 징조와 예표가 되었나니 . . . .

 

이사야는 너는 증거의 말씀을 싸매며 율법을 나의 제자 중에 봉함하라. 이제 야곱 집에 대하여 낯을 가리우시는 여호와를 나는 기다리며 그를 바라보리라고 말했다. 그는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싸매며 그의 제자들 중에 봉함하라고 말한다. ‘싸매며 봉함한다는 것은 보존한다는 뜻인 동시에 감춘다는 뜻이라고 본다. 그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께서도 그들을 향해 낯을 가리우시지만, 이사야는 하나님만 바라본다. 그는 세상 풍조와 여론까지도 역행하며 살아야 했다. 그의 길은 고난의 길이며 외로운 길이었다.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의 참된 종들과 성도들이 가야 할 길이다.

 

이사야는 또 자기 자녀들이 하나님의 징조와 예표가 되었다고 말한다. “보라 나와 및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자녀들이 이스라엘 중에 징조와 예표가 되었나니 이는 시온산에 계신 만군의 여호와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그의 첫아들 스알야숩남은 자들이 돌아온다는 뜻을 가졌고, 둘째 아들 마헬살랄하스바스노략이 속히 임한다는 뜻이었다.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주신 그 계시의 말씀을 잘 보존해야 했다. 그 말씀은 유다 백성에게 지침이 되고 소망이 될 것이었다.

 

[19-22] 혹이 너희에게 고하기를 지절거리며 속살거리는 신접한 자와 마술사에게 물으라 하거든 백성이 자기 하나님께 구할 것이 아니냐? 산 자를 위하여 죽은 자에게 구하겠느냐 하라. 마땅히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좇을지니 그들의 말하는 바가 이 말씀에 맞지 아니하면 그들이 정녕히 아침빛을 보지 못하고 이 땅으로 헤매며 곤고하며 주릴 것이라. 그 주릴 때에 번조하여 자기의 왕 자기의 하나님을 저주할 것이며 위를 쳐다보거나 땅을 굽어보아도 환난과 흑암과 고통의 흑암뿐이리니 그들이 심한 흑암 중으로 쫓겨 들어가리라.

 

이사야는 특히 신비주의적, 은사주의적 거짓 선지자들에 관해 경계하였다. 그는 말하기를, “혹이 너희에게 고하기를 지절거리며 속살거리는 신접한 자와 마술사에게 물으라 하거든 백성이 자기 하나님께 구할 것이 아니냐? 산 자를 위하여 죽은 자에게 구하겠느냐 하라고 하였다. 선지자 이사야가 사역하던 시대에 유다 사회에는 하나님의 뜻을 전한다고 하는 지절거리며 속살거리는 신접한 자와 마술사즉 신비주의적, 은사주의적 거짓 선지자들이 많았던 것 같다.

 

그러나 선지자 이사야는 단호하게 말한다. “마땅히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좇을지니 그들의 말하는 바가 이 말씀에 맞지 아니하면 그들이 정녕히 아침빛을 보지 못하고 이 땅으로 헤매며 곤고하며 주릴 것이라.” ‘그들이 정녕히 아침빛을 보지 못한다는 원문(아쉐르 에인-로 솨카르 rj'v' /l @yIa' rv,a})그들 속에 빛이 없기 때문이다는 뜻이다(KJV, NASB). 우리의 신앙생활의 표준은 율법과 증거, 곧 하나님의 말씀, 성경말씀뿐이다. 기적은, 성경의 기록이 완성되기 전에 하나님의 진리를 확증하는 목적으로 어느 기간 동안 주셨던 것이었다.

 

기독교는 결코 기적을 추구하거나 기적을 의존하는 기적주의 종교가 아니다. 기독교는 바로 알고 바로 믿고 바로 사는 종교이다. 기독교인은 하나님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알고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뜻대로 경건하고 의롭고 선하고 진실하게 살기를 결심하고 힘쓰는 자들이다. 하나님의 말씀 중심 곧 성경 중심으로 살지 않는 자는 그 속에 진리의 빛, 곧 참된 지식이 없는 자이다.

 

이사야는 계속 말하기를, “[그들은] 그 주릴 때에 번조하여[노하여서] 위를 보며 자기의 왕 자기의 하나님을 저주할 것이며 땅을 굽어보아도 환난과 흑암과 고통의 흑암뿐이리니 그들이 심한 흑암 중으로 쫓겨 들어가리라”(원문, NASB, NIV)고 하였다. 거짓된 신비주의에 빠져 거짓된 것을 의지하고 그것들에게 묻는 자들은 결국 방황하고 곤고하고 하나님을 저주하고 환난과 고통의 흑암에 떨어질 것이다.

 

 

이사야 8:11-22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세상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두려워하자. 하나님은 창조자시며 섭리자이시다. 그는 개인의 생사화복과 사회의 흥망성쇠를 홀로 주관하시는 주권적 섭리자이시다. 그는 인류의 역사를 홀로 주관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다. 여호와 하나님만 우리의 의지할 자이시며 우리의 참된 피난처이시다. 주께서는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고 말씀하셨고(10:28),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끝은 아직 아니니라고 하셨다(24:6). 히브리서 저자는 이렇게 말했다.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에 참은 것을 생각하라. 혹 비방과 환난으로써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혹 이런 형편에 있는 자들로 사귀는 자 되었으니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산업을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산업이 있는 줄 앎이라.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10:32-39).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계신 참 하나님만 두려워하고 의지하자.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 말씀만 붙들자. 성경은 우리의 신앙생활의 기준이다. 우리는 성경적 기독교, 역사적 기독교, 곧 옛신앙을 굳게 붙들자. 특히 오늘날 불건전하고 거짓된 신비주의, 은사주의가 난무하여 성도들을 유혹한다. 기독교는 신비주의나 은사주의가 아니다. 사도 바울은,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전한다고 증거했다(고전 1:22-23). 우리는 은사추구적, 은사의존적 신앙생활을 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 말씀의 바른 교리를 믿고 바른 생활교훈을 따라 살자. 그것이 진정한 기독교이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고 말했다(딤후 4:3-4). 오늘 시대가 바로 이런 시대라고 생각된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는 성경 말씀을 붙들자. 성경을 열심히 읽고 묵상하고 연구하고 옛 길을 참고하면서 바로 믿고 바로 사는 신앙생활을 하자.

 



이사야7: 이스라엘의 멸망을 예언함

 

1-9, 연기 나는 두 나무토막

 

[1-2] 웃시야의 손자요 요담의 아들인 유다 왕 아하스 때에 아람 왕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 이스라엘 왕 베가가 올라와서 예루살렘을 쳤으나 능히 이기지 못하니라. . . .

 

유다 왕 웃시야의 손자요 요담의 아들인 유다 왕 아하스 때에 아람 왕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 이스라엘 왕 베가가 올라와서 예루살렘을 쳤으나 이기지 못하였다. 어떤 사람이 다윗 집에 고하기를 아람이 에브라임과 동맹하였다고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과 그 백성의 마음이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림같이 흔들렸다. 이전에 다윗 때는 이스라엘이 아람을 지배하기도 하였었다. 또 다윗 집에는 하나님께서 보호하신다는 약속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 원수들의 거대한 세력 앞에서 유다 왕은 두려워 떨고 있다. 그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그것은 그의 마음이 죄로 인해 약해졌기 때문이었다.

 

[3-4] 때에 여호와께서 이사야에게 이르시되 . . . .

 

그러나 그때에 여호와께서는 선지자 이사야에게 소망의 말씀을 주셨다. “너와 네 아들 스알야숩은 윗못 수도 끝 세탁자의 밭 큰길에 나가서 아하스를 만나 그에게 이르기를 너는 삼가며 종용하라. 아람 왕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이 심히 노할지라도 연기 나는 두 부지깽이 그루터기에 불과하니 두려워 말며 낙심치 말라.’”

 

유다 왕 아하스는 악한 왕이었으나 하나님께서는 아하스에게 위로와 격려의 말씀을 주신 것이었다. 그것은 유다의 경건한 자들을 위한 위로와 격려이었고 또한 하나님의 긍휼로 악인들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신 일이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가 그 아들 스알야숩과 함께 아하스를 만나게 하셨다. 스알야숩은 남은 자가 돌아온다는 뜻으로 그 이름 자체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소망과 위로가 되었다.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통해 아하스에게 주신 말씀의 내용은, 아람 왕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 이스라엘 왕 베가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너는 삼가며 종용하라. 아람 왕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이 심히 노할지라도 연기 나는 두 부지깽이 그루터기에 불과하니 두려워 말며 낙심치 말라.” 하나님께서는 그 왕들이 연기 나는 두 부지깽이 그루터기즉 연기 나는 두 나무토막에 불과하다고 표현하셨다. ‘연기 나는 두 나무토막은 화덕에서 불타는 나무가 아니다. 그것은 화덕에서 꺼내져, 불이 꺼져 가는, 그래서 연기만 많이 나는 나무이다. 아람과 이스라엘의 세력은 꺼져 가는, 연기 나는 나무토막에 불과하다. 그것은 그들이 앗수르 왕에게 패망할 것을 암시한다. 그러므로 유다 왕은 그들을 두려워 말고 그들로 인해 낙심치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5-9] 아람과 에브라임 왕과 르말리야의 아들이 악한 꾀로 너를 대적하여 이르기를 우리가 올라가 유다를 쳐서 그것을 곤하게 하고 . . . .

 

하나님께서는 이사야에게, 아하스에게 말할 것을 계속 말씀하셨다. “아람과 에브라임과 르말리야의 아들이 악한 꾀로 너를 대적하여 이르기를 우리가 올라가 유다를 쳐서 그것을 곤하게 하고 우리를 위해 그것을 파하고 다브엘의 아들을 그 중에 세워 왕을 삼자하였으나 주 여호와의 말씀에 이 도모가 서지 못하며 이루지 못하리라.”

 

아람 왕과 이스라엘 왕은 동맹을 맺고 유다를 쳐서 파하고 다브엘의 아들을 왕으로 세우자는 계획까지 세웠지만, 그 계획은 서지 못하며 이루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세상의 모든 일은 하나님의 허락이 있어야 세워지고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한 국가의 흥망성쇠와 온 세계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주권적 섭리자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대저 아람의 머리는 다메섹이요 다메섹의 머리는 르신이며 에브라임의 머리는 사마리아요 사마리아의 머리는 르말리야의 아들이라도 65년 내에 에브라임이 패하여 다시는 나라를 이루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다. “65년 내에 에브라임이 패하여 나라를 이루지 못하리라는 말씀은 무슨 뜻인가? 그것은 북쪽 이스라엘 나라의 멸망과 그 백성이 포로로 잡혀가는 일을 가리킨 것 같다.

 

이스라엘 왕 베가 때에(주전 733년경)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 3(주전 744-727년경)는 이스라엘 백성을 포로로 잡아갔다. 열왕기하 15:29, “이스라엘 왕 베가 때에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이 와서 이욘과 아벨벳마아가와 야노아와 게데스와 하솔과 길르앗과 갈릴리와 납달리 온 땅을 취하고 그 백성을 사로잡아 앗수르로 옮겼더라.”

 

또 이스라엘의 마지막 왕인 호세아 때에(주전 722년경) 이스라엘은 앗수르 왕 살만에셀 5(주전 727-722년경)에게 망하였고 포로로 잡혀갔다(왕하 17:1-6). 그리고 후에 앗수르 왕 에살핫돈(주전 681-669년경) 때에 앗수르 왕은 사람들을 앗수르 지역에서 옮겨 사마리아 여러 성들에 두었고(왕하 17:24) 이로써 나라 회복의 가능성을 완전히 없애려 하였다. 65년의 기간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정확히 모르나, 아하스 2(주전 740년경) 때로부터 에살핫돈이 므낫세 왕을 포로로 잡아간 때(주전 675년경; 대하 33:11)까지의 기간이 대략 65년이 된다.

 

그러나 유다 왕 아하스는 선지자로 전달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대신에 앗수르 왕을 의지했고 다메섹 신()들을 의지했다. 역대하 28:16, 23, “그때에 아하스왕이 앗수르 왕에게 보내어 도와주기를 구하였으니,” “[아하스 왕은] 자기를 친 다메섹 신들에게 제사하여 가로되 아람 열왕의 신들이 저희를 도왔으니 나도 그 신에게 제사하여 나를 돕게 하리라하였으나 그 신이 아하스와 온 이스라엘을 망케 하였더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결론적으로 말씀하셨다. “만일 너희가 믿지 아니하면 정녕히 굳게 서지 못하리라 하셨다 할지니라.” 하나님께서는 아하스와 유다 백성에게 참된 믿음, 굳건한 믿음이 필요함을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이사야 7:1-9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사람은 범죄하면 약해진다. 유다 왕 아하스는 악한 왕이었다. 아하스는 16년 통치하는 동안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히 행치 아니하고 이스라엘 열왕의 길로 행하며 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의 가증한 일을 본받아 자기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였다(왕하 16:2-4; 대하 28:1-4). 그 결과, 아하스와 유다 나라는 영육으로 매우 약해졌다. 그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며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바로 섬기지 않았던 북쪽 이스라엘과 이방 나라 아람 연합군의 침공 앞에 이제 두려워 떨고 있는 것이다. 성도가 범죄하면 몸도 마음도 약해지고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도우심을 확신치도 못하게 된다.

 

레위기 26장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선언하시기를,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법을 거슬러 범죄할 때, “내가 그들의 마음으로 약하게 하리니 그들은 바람에 불린 잎사귀 소리에도 놀라 도망하기를 칼을 피하여 도망하듯 할 것이요 쫓는 자가 없어도 엎드러질 것이라. 그들은 쫓는 자가 없어도 칼 앞에 있음같이 서로 천답하여[발로 짓밟아] 넘어지리니 너희가 대적을 당할 힘이 없을 것이요라고 하셨다(26:36-37). 아하스와 유다가 그러하였다. 범죄한 사울의 모습도 그러하였었다(삼상 28:5). 성도가 범죄하면 약해진다. 잠언 28:1,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같이 담대하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담력을 얻으려면 죄를 철저히 회개하고 의를 행하고 믿음과 순종으로 살아야 한다.

 

둘째로, 하나님의 허락 없는 인간의 계획은 다 헛되다. 아람은 이스라엘과 동맹하여 유다를 침공하고 정복하려 계획하였다. 그들은 새로운 왕까지 내정하였다. 그러나 본장 7절에, “주 여호와의 말씀에 이 도모가 서지 못하며 이루지 못하리라고 말씀했다. 세상의 모든 일은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의 손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시편 127:1-2에는,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라고 말씀하였다.

 

누가복음 12장에 기록된 예수님의 비유, 어리석은 농부의 이야기는 한 좋은 예이다. 풍년을 맞은 그 농부는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모든 곡식을 쌓아두고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며 즐거워하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고 말씀하셨다(20). 그러므로 야고보는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이제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니 이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이라고 말했다(4:15). 우리는 하나님의 허락하심이 없는, 사람의 모든 계획들이 다 헛됨을 깨닫자.

 

셋째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 믿자. 9, “만일 너희가 믿지 아니하면 정녕히 서지 못하리라.” 아하스는 앗수르를 의지하려 하였었다(왕하 16:7).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자. 다윗은 시편 20편에서, “혹은 병거, 혹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고 말하였다. 그것이 하나님을 아는 자들의 마음가짐이다. 이사야는 말하기를,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의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고 하였다(26:3-4).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만 믿자. 우리는 개인의 생사화복이나 단체와 국가의 흥망성쇠가 다 하나님의 섭리에 달려 있음을 알자. 우리는 세계 역사도 다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음을 알자. 우리는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자.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룸을 믿는다(8:28). 사도 바울은 고난 중에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하나님을 굳게 의뢰하였다(딤후 1:12). 우리는 오직 하나님과 그의 모든 말씀과 약속만 믿자.

 

10-16, 임마누엘의 징조

 

[10-12] 여호와께서 또 아하스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한 징조를 구하되 깊은 데서든지 높은 데서든지 구하라. 아하스가 가로되 나는 구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나는 여호와를 시험치 아니하겠나이다 한지라.

 

여호와께서는 유다 왕 아하스에게 징조를 구하라고 말씀하셨다.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한 징조를 구하되 깊은 데서든지 높은 데서든지 구하라.” ‘징조라는 원어(오스 t/a)표적이라는 단어이다. 하나님께서 아하스에게 표적을 구하라고 하신 것은 아하스가 하나님의 예언, 곧 아람과 이스라엘이 연기 나는 두 나무토막에 불과하며 그 나라들이 멸망할 것이라는 예언을 믿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것은, 아하스가 불신앙적이었고 앗수르를 의뢰하고 이방신들을 섬기며 의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려 하신 것이라고 본다. 아하스가 하나님의 어떤 표적을 보고 하나님께로 돌아온다면 좋을 것이다. 하나님의 징조가 그에게 참 믿음을 만들어, 그가 하나님께 대한 불신앙과 우상을 섬기고 앗수르를 의지하는 마음을 버리게 되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아하스는 그렇게 하기를 거절하였다. 그는, “나는 구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나는 여호와를 시험치 아니하겠나이다라고 말하였다. 그것은 그가 믿음이 강하여서가 아니고 그 반대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하고 무시하기 때문에 표적을 거절한 것이었다. 그가 하나님을 시험하기를 원치 않는다고 말했으나, 그것은 일종의 위선적인 말이었다. 그는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 그는 그 대신에 인간의 이성의 판단을 믿었고 강대국 앗수르를 의지하였다.

 

역대하 28:16, “그때에 아하스 왕이 앗수르 왕에게 보내어 도와주기를 구하였으니.” 역대하 28:22-25, “이 아하스왕이 곤고할 때에 더욱 여호와께 범죄하여 자기를 친 다메섹 신들에게 제사하여 가로되 아람 열왕의 신들이 저희를 도왔으니 나도 그 신에게 제사하여 나를 돕게 하리라 하였으나 그 신이 아하스와 온 이스라엘을 망케 하였더라. 아하스가 하나님의 전의 기구들을 모아 훼파하고 또 여호와의 전문들을 닫고 예루살렘 구석마다 단을 쌓고 유다 각 성읍에 산당을 세워 다른 신에게 분향하여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의 노를 격발케 하였더라.” 이것이 아하스의 불신앙적 상태이었다.

 

[13-16] 이사야가 가로되 다윗의 집이여 청컨대 들을지어다. 너희가 사람을 괴롭게 하고 그것을 작은 일로 여겨서 또 나의 하나님을 괴로우시게 하려느냐?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그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알 때에 미쳐 뻐터와 꿀을 먹을 것이라. 대저 이 아이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알기 전에 너의 미워하는 두 왕의 땅이 폐한 바 되리라.

 

그러므로 이사야는 아하스에게 책망의 말을 전했다. “다윗의 집이여 청컨대 들을지어다. 너희가 사람을 괴롭게 하고 그것을 작은 일로 여겨서 또 나의 하나님을 괴로우시게 하려느냐?” 그는 아하스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지 않고 우상숭배에 힘쓰고 앗수르를 의지하려 한 것은 사람들과 하나님을 괴롭게 한 일이라고 지적하였다.

 

이사야는 이제 하나님께서 주실 놀라운 한 징조 혹은 표적을 선포한다. 그것은 아하스의 불신앙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하나님의 뜻의 선포이었다. 그것은 메시아의 탄생에 대한 예언이었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 예언은 임마누엘이라 불린 메시아의 초자연적 탄생에 대한 것이다. ‘징조혹은 표적이라는 말은 임마누엘의 초자연적 탄생에 맞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처녀라는 원어(알마 hm;l][')는 단순히 젊은 여자’(RSV)라는 뜻이 아니고, ‘결혼하지 않은 젊은 처녀를 가리킨다. 그것은 구약성경의 용법이나 고대 헬라어 70인역이나 또 신약성경의 적용에서 분명하게 증거된다.

 

구약의 몇 가지 예를 보자. 창세기 24:43, “내가 이 우물 곁에 섰다가 청년 여자(알마 hm;l][')가 물을 길러 오거든.” 이 단어는 16절의 처녀라는 말(베술라 hl;WtB])과 동의어로 사용되었다. 출애굽기 2:8, “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가라 그 소녀(알마 hm;l][')가 가서 아이의 어미를 불러오니.” 아가 1:3, “네 기름이 향기로와 아름답고 네 이름이 쏟은 향기름 같으므로 처녀들이 너를 사랑하는구나.” 아가 6:8, “왕후가 육십이요 비빈이 팔십이요 시녀(알마 hm;l][')가 무수하되.”

 

신약성경의 적용에서도 분명하다. 마태복음 1:23, “보라 처녀(파르데노스 παρθένος)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신약성경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처녀 마리아의 몸을 통해 탄생하셨음을 밝히 증거한다.

 

사도 마태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해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다고 증거하였다(1:18). 또 그는, 그 남편 요셉이 저를 드러내지 않고 가만히 끊고자 하였다는 것과, 주의 천사가 꿈에 나타나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며 이것은 이사야 7:14의 예언의 성취라고 일러준 것과, 요셉이 주의 천사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의 아내를 데려왔으나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치 않았다는 사실을 증거하였다(1:19-25).

 

누가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처녀의 몸을 통해 탄생하셨음을 분명하게 증거하였다. 그는 그의 모친 마리아와 천사의 대화를 증거하였다.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1:34-35).

 

이사야의 본문은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고 말한다. ‘임마누엘’(lae WnM;[i)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뜻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성육신(成肉身)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이루어졌다. 요한복음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이사야의 예언은 하나님의 능력과 긍휼의 증표이었고 하나님의 약속이었다.

 

선지자 이사야는 계속 말하기를, “그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알 때에 미쳐 뻐터와 꿀을 먹을 것이라. 대저 이 아이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알기 전에 너의 미워하는 두 왕의 땅이 폐한 바 되리라고 하였다. 메시아가 5, 6세가 되기 전에 이스라엘 왕과 아람 왕의 땅들이 멸망할 것이라는 뜻이다. 이 말씀은 그대로 성취되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또 유다 땅의 보전에 대한 약속도 내포하였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아하스는 불신앙적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위해 표적을 주실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예언들과 표적들을 기록하고 증거한 책이다. 우리는 아하스와 같이 헛된 우상을 믿고 섬기지 말고, 무능한 존재인 사람도 의지하지 말고 허무한 돈이나 세상 권력도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순수하게 믿고 또 성경을 믿자.

 

디모데후서 3:15-17,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누가복음 1:1-4,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처음부터 말씀의 목격자 되고 일군된 자들의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 이는 각하로 그 배운 바의 확실함을 알게 하려 함이로라.”

 

요한복음 20:30-31,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영생)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는 하나님을 순수하게 믿고 섬겨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성경대로, 성경 중심으로만 믿고 섬겨야 한다. 오늘날에는 잘못된 사상들과 말들과 풍조들이 너무 많은 것 같다. 우리는 성경을 부정하고 불신앙하고 가감하는 자유주의, 이성주의를 경계하고 모든 성경을 다 믿어야 한다. 우리는 신구약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줄 깨닫고 믿어야 한다.

 

우리는 특히 거짓된 신비주의를 경계해야 한다. 주께서는 마태복음 24장에서 이미 교훈하셨다: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고”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11, 24). 사도 바울도 데살로니가후서 2장에서 이미 교훈하였다: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9-12).

 

성경의 예언대로, 오늘날 거짓된 신비주의가 너무 많이 교회를 어지럽히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언, 방언, 환상, 계시 등을 경계해야 한다. 그것은 대개 마귀에게 속는 것이다. 우리는 그런 것들에 미혹되지 말고 오직 성경의 건전한 교리와 윤리 교훈에 착념해야 한다.

 

17-25, 앗수르 왕의 오는 날

 

본문은, 하나님께서 지금 하나님의 이름 때문에 유다를 구원하시고 보호하시지만, 장차 아하스의 악에 대해 보응하실 것을 증거한다.

 

[17] 여호와께서 에브라임이 유다를 떠날 때부터 당하여 보지 못한 날을 너와 네 백성과 네 아비 집에 임하게 하시리니 곧 앗수르 왕의 오는 날이니라.

 

선지자 이사야는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기를, 장차 여호와께서 에브라임 곧 북쪽 이스라엘이 유다를 떠날 때부터 당하여 보지 못한 날을 아하스와 그의 백성 곧 유다 백성과 그의 아비 집 곧 다윗 왕가에 임하게 하실 것이며 그것은 곧 앗수르 왕의 오는 날이라고 말했다.

 

그는 여호와께서 그 재앙 곧 앗수르 왕이 오게 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복과 화는 다 하나님께 달려 있다. 하나님께서는 개인과 국가에 복을 주기도 하시고 재앙을 내리기도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주권적 섭리자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앗수르 왕을 부르실 것이다. 앗수르 왕은 누구인가? 그는 유다 왕 아하스가 도움을 요청했던 자이었다. 열왕기하 16장에 보면, 아하스는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에게 사자를 보내어 말하기를, “나는 왕의 신복이요 왕의 아들이라. 이제 아람 왕과 이스라엘 왕이 나를 치니 청컨대 올라와서 나를 그 손에서 구원하소서라고 말하였고, 여호와의 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은금을 취하여 앗수르 왕에게 예물로 보내었었다(왕하 16:7-8).

 

그러나 유다 나라는 장차 그 앗수르에게 화를 당할 것이다. 열왕기하 18장에 보면, 히스기야 왕 14년에 앗수르 왕 산헤립은 올라와 유다 모든 견고한 성읍들을 쳐서 취하였고 유다 왕 히스기야는 라기스로 사자를 보내어 앗수르 왕에게 말하기를,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나를 떠나 돌아가소서. 왕이 내게 지우시는 것을 내가 당하리이다라고 하였다. 또 앗수르 왕이 은 300달란트와 금 30달란트를 정하여 유다 왕 히스기야에게 내게 하므로, 히스기야는 여호와의 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은을 다 주었고 또 그때에 여호와의 전 문의 금과 자기가 모든 기둥에 입힌 금을 벗겨 모두 앗수르 왕에게 주었다(왕하 18:13-16). 유다 나라에 이런 치욕적인 일이 마침내 일어났었다.

 

[18-19] 그 날에는 여호와께서 애굽 하수에서 먼 지경의 파리와 앗수르 땅의 벌을 부르시리니 다 와서 거친 골짜기와 바위틈과 가시나무 울타리와 모든 초장에 앉으리라.

 

본문은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애굽 하수의 먼 지경의 파리와 앗수르 땅의 벌을 부르실 것이며, 그들이 와서 거친 골짜기와 바위틈과 모든 가시덤불과 모든 초장 혹은 물웅덩이들에 앉을 것이라고 말했다.

 

본문에는 그 날에라는 말이 여러 번 나온다(18, 20, 21, 23). 그 날은 하나님의 심판하시는 날, 그의 진노하시는 날, 그의 재앙의 날이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심판의 날이 있다. 인류 역사는 하나님의 작정한 시간표대로 진행된다. 물론, 우리는 성경에 계시된 바와 같이 인간의 선한 노력이 하나님의 작정하신 바를 이루는 방편이라고 믿는다.

 

하나님께서는 애굽과 앗수르를 파리와 벌로 비유하셨다. 그것은 그들 침략군들의 수가 많고 신속하고 피할 수 없을 정도로 공격적이고 그로 인한 고통과 해가 매우 클 것을 암시한다. 적군들은 거친 골짜기와 바위틈과 가시덤불과 초장 등 모든 곳에 들어와 그 곳들을 점령할 것이다. 그 땅에는 그들을 피하여 숨을 곳이 거의 없을 것이다. 모든 땅은 그들로 인해 고통을 당하고 황폐케 될 것이다.

 

[20] 그 날에는 주께서 하수 저편에서 세내어 온 삭도 곧 앗수르 왕으로 네 백성의 머리털과 발털을 미실 것이요 수염도 깎으시리라.

 

본문은 그 날에 주께서 하수 저편에서 세내어 온 삭도 곧 앗수르 왕으로 유다 백성의 머리털과 발털을 미실 것이요 수염도 깎으시리라고 말한다. 유다 왕 아하스는 앗수르를 의지했으나 이처럼 유다 나라는 장차 앗수르에게 큰 화를 당할 것이다. 이사야 10:5에서는 하나님께서 앗수르 사람들을 그의 진노의 막대기와 몽둥이라고 표현하셨으나, 본문은 앗수르 왕을 세내어 온 삭도 곧 면도칼이라고 표현하였다. 머리털이나 발털이나 수염은 사람들이 소중히 여기는 부분이다. 그러나 침략자들은 와서 그 털들을 다 밀어버릴 것이다. 유다 나라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곧 존귀한 자로부터 비천한 자까지 다 노략하고 짓밟을 것이다. 장차 유다는 큰 낭패를 당할 것이다.

 

[21-22] 그 날에는 사람이 한 어린 암소와 두 양을 기르리니 그 내는 젖이 많으므로 뻐터를 먹을 것이라. 무릇 그 땅 가운데 남아 있는 자는 뻐터와 꿀을 먹으리라.

 

본문은 그 날에 사람이 한 어린 암소와 두 양을 기를 것이며 그것들이 내는 젖이 많으므로 뻐터를 먹을 것이며 그 땅 가운데 남아 있는 모든 사람이 뻐터와 꿀을 먹을 것이라고 말한다. 사람이 한 어린 암소와 두 양을 기른다는 말은 가난한 생활을 묘사할 것이다. 황폐한 유다 땅에 남은 사람들은 가난할 것이다. 사람들의 수가 적기 때문에 우유와 버터가 많을 것이며 그래서 모든 사람이 뻐터와 꿀을 먹을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은, 농사나 장사가 되지 않으므로 곡식, 과일, 고기 등을 먹지 못하고 주로 뻐터와 꿀만 먹는다는 뜻도 가질 것이다.

 

[23-25] 그 날에는 천 주에 은 일천 개의 가치 되는 포도나무 있던 곳마다 질려와 형극이 날 것이라. 온 땅에 질려와 형극이 있으므로 살과 활을 가지고 그리로 갈 것이요 보습으로 갈던 산에도 질려와 형극 까닭에 두려워서 그리로 가지 못할 것이요 그 땅은 소를 놓으며 양의 밟는 곳이 되리라.

 

본문은 그 날에 포도나무 천 그루에 은 일천 개의 가치 되는 포도원마다 찔레와 가시나무들이 날 것이라고 말한다. 이전에 많은 포도 수확으로 큰 소득을 올렸던 포도원이 장차 가꿀 일손이 없어서 찔레와 가시나무들만 무성할 것이다. 또 본문은 온 땅에 찔레와 가시나무들이 있으므로 사람들이 살과 활을 가지고 그리로 갈 것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사람들이 짐승을 사냥하기 위해서이든지 아니면 짐승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본문은 또 보습으로 갈던 산에도 찔레와 가시나무들 때문에 두려워서 그리로 가지 못할 것이요 그 땅은 소를 놓으며 양의 밟는 곳이 되리라고 말한다. 이전에 밭과 포도원이었던 땅은 더 이상 밭 농사나 포도 농사를 하지 못하고 황폐하게 방치될 것이다.

 

 

본문이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자. 이스라엘의 죄악은 이스라엘로 멸망케 하였고, 유다의 죄악도 유다로 패망의 길로 나가게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고 죄를 짓지 말자. 하나님을 경외함이 지혜이다. 히브리서 2:1-3, “그러므로 모든 들은 것을 우리가 더욱 간절히 삼갈지니 혹 흘러 떠내려갈까 염려하노라. 천사들로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치 아니함이 공변된[공의로운] 보응을 받았거든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 히브리서 10:26-31,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세 증인을 인하여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하물며 하나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시고 또 다시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아노니 살아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 그러므로 우리는 특히 하나님 앞에서 고의적인 죄를 짓지 말고 그의 심판을 두려워하자.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를 믿자. 본문에는 그 날에라는 말이 반복되어 있다. ‘그 날은 하나님의 작정된 심판의 날이다. 그 날에 하나님께서는 앗수르 왕을 불러오실 것이다. 세계 역사는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의 손 안에 있다.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날이 있고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일이 있다. 우리 개인을 향해서도, 또 우리 가정이나 우리 교회나 우리 국가나 온 세계를 향해서도 그러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를 믿자.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3:5-6).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16:3).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만 소망하자.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를 믿는 자는 하나님만 소망하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의 소망은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데 있다. 그들이 하나님을 저버리고 그의 계명을 저버리고 자기 뜻대로 산 것이 불행의 원인이었다. 북쪽 이스라엘이 그러하였고 남쪽 유다도 하나님을 찾고 그의 계명에 순복하지 않으면 결국 그렇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앗수르 왕을 불러 그들의 땅을 황폐케 하실 것이다. 이스라엘은 이전에 누렸던 풍요를 더 이상 누리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이방 나라들에게 수치와 모욕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와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만 소망하며 그의 계명에 귀를 기울이고 힘써 행한다면 그들은 평안과 형통을 누릴 것이며, 징벌 아래 있다 할지라도 머잖아 회복의 날을 보게 될 것이다. 하나님 안에 평안과 영생이 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미쁘다 이 말이여 모든 사람들이 받을 만하도다. 이를 위하여 우리가 수고하고 진력하는 것은 우리 소망을 살아계신 하나님께 둠이니 곧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시라고 하였다(딤전 4:7-10). 우리는 모든 불경건과 불신앙과 모든 죄악을 회개하고 다 버리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며 소망하고 그의 계명에 순종하며 살자.

 



이사야6: 이사야의 환상

 

1-7, 이사야의 환상

 

[1] 웃시야 왕의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선지자 이사야는 웃시야 왕의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라고 말한다. 웃시야는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분열된 후 유다 왕국의 열 번째 왕이었다(주전 790-739년경에 통치). 역대하 26장에 보면, 웃시야 왕은, 하나님의 말씀을 밝히 아는 스가랴의 사는 날에 하나님을 구하였고 하나님을 구하는 동안에는 하나님께서 형통케 하셨다. 그러나 그가 강성해졌을 때 그는 마음이 교만해졌고, 성전에 들어가서 제사장들만 할 수 있는 분향하는 일을 하려다가 즉석에서 나병[한센병] 환자가 되었고 죽는 날까지 그러하였다(대하 26:5, 16, 19, 21).

 

교만하여 범죄했던 웃시야 왕이 하나님의 엄한 징벌로 죽었을 때, 이사야는 하나님의 엄위하심과 두려우심을 크게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또한 인간 왕은 실패하고 죽지만,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참된 왕으로서 영원히 살아계심을 깨달았을 것이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다. 구약시대의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본 자들이었다. 참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환상을 보고 하나님께서 들려주시는 음성을 들은 자이다. 이사야는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고 그 옷자락이 성전에 가득한 것을 보았다.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 12:41에서 이사야가 주 예수의 영광을 보았다고 증거하였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을 믿는 우리는 구약시대에 나타나신 하나님께서 곧 예수 그리스도와 동일하신 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사야가 본 주께서 높은 보좌에 앉으신 것은 그가 왕이심을 나타낼 것이다. 과연 이사야는 5절에서 그를 이라고 불렀다. 또 그의 옷자락이 성전에 가득한 것은 그가 제사장이심을 나타낼 것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왕이신 동시에 제사장이시다.

 

[2-4] 스랍들은 모셔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그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그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서로 창화하여 가로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이같이 창화하는 자의 소리로 인하여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집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이사야는 천사들이 그 영광의 주를 모셔 선 것을 보았다. 그는 그 천사들을 스랍들이라고 말한다. 성경에는 스랍을 포함하여 그룹, 가브리엘, 미가엘등 천사 개인 혹은 부류의 이름들이 나온다. 가브리엘과 미가엘은 천사 개인들의 이름이고, 그룹과 스랍은 천사 부류의 이름이라고 보인다. 이사야 6장에만 나오는 스랍은 하나님을 찬송하며 또 사람으로 하나님께 접근하도록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는 천사들인 것 같다.

 

스랍들은 각기 여섯 날개가 있었고 그 둘로는 그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그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면서 서로에게 외치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라고 하였다. 스랍들이 두 날개로 얼굴을, 다른 두 날개로 발을 가린 것은 그들의 겸손과 하나님 경외함을 나타낼 것이다. 또 그들이 다른 두 날개로 난 것은 그들이 민첩하게 하나님을 섬기며 그의 명령을 수행하는 것을 나타낼 것이다. 천사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이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그의 뜻을 온전하게 순종한다.

 

스랍들의 찬송 소리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거룩하시다. 거룩함이란 유한한 피조 세계로부터 초월해 계심과 도덕적 불결로부터 떠나 계심 즉 도덕적 성결을 가리킨다. ‘만군의 여호와는 하늘의 천군 천사들을 거느리신 능력의 하나님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영광은 온 세상에 충만하시다.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또한 온 세상, 온 우주의 하나님이시다. 그는 우주만물의 창조자시요 섭리자이시다. 그들이 외치는 소리로 인해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집에 연기가 충만하였다. 그것은 하나님의 위엄과 영광의 표시이었다. 하나님께서 이전에 시내산에 내려오실 때에도 우뢰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었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였었다(19:16, 18).

 

이와 같이, 이사야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다. 그는, 비록 웃시야 왕이 범죄하여 하나님의 징벌로 병으로 고생하다가 죽었으나, 영원하신 왕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죽지 않고 살아계시며 지극히 거룩하시고 온 세상에 그의 영광이 충만하신 신이심을 보았던 것이다.

 

[5] 그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그가 하나님의 거룩하신 영광을 보았을 때, 이사야는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라고 말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대조하여 자신의 죄악됨을 깨달았다. 특히 그는 자신의 입술의 더러움을 깨닫고 고백하였다.

 

사람의 입의 말은 그의 인격을 나타낸다. 주께서는 자기를 비난하는 바리새인들을 향해,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고 말씀하셨다(12:34-35). 인간의 죄성은 특히 말의 악함에서 나타난다. 죄인들의 특징은 악하고 더러운 말을 하는 것이다. 사람의 몸의 기관 중에 혀는 매우 악한 부분이다. 야고보서 3:8-10,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나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성도들에게 교훈하기를,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고 하였고 또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고 하였다(4:29; 5:4). 구원받은 첫 번째 표는 말의 성결에서 나타날 것이다. 변화된 인격은 말의 변화로 증거될 것이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영광 앞에서 죽은 자와 같이 되었다. 그는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라고 말했다. 어부였던 베드로도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 영광 곧 신성(神性)의 영광을 보았을 때 그 발 앞에 엎드러져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고백하였었다(5:8). 또 사도 요한도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 영광을 보았을 때 그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같이 되었었다(1:17).

 

[6-7] 때에 그 스랍의 하나가 화저로 단에서 취한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그것을 내 입에 대며 가로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그때에 스랍들 중 하나가 화로에서 쓰는 부젓가락으로 단에서 취한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이사야에게로 날아와서 그것을 그 입에 대며 말했다.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제단 숯불을 입에 댄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고난으로 이루신 대속(代贖)으로 정결케 됨을 상징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효력은 오늘도 추하고 더러운 우리의 입술을 정결케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의 온 몸을 깨끗케 한다.

 

죄사함 곧 더러운 악의 제거는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일이며 특히 말씀의 봉사자인 선지자에게 필요한 일이다. 오늘날에도 말씀의 봉사자들인 목사와 전도사, 그리고 장로, 권사, 권찰, 교사에게 필요한 일이다. 우리에게는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고 권면하는 거룩한 직분이 주어져 있다. 이제 우리의 입이 정결하지 않다면, 우리가 어떻게 이 거룩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으며 이 존귀한 직분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정결함을 얻어야 우리의 직분을 감당할 수 있다.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진리의 요점은 죄사함이다. 죄사함이 구원이다. 또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사함을 받았고 또 날마다 자신의 부족과 연약을 씻음받는 자들만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의 이 복음을 모든 사람에게 전파하고 권면하는 자격자가 될 것이다.

 

 

이사야 6:1-7에서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깨닫자. 이사야는 환상 중에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영광을 보았다. 하나님을 알며 그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와 지식의 근본이며(1:7; 10:9),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데 있다(17:3).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깨닫자.

 

둘째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부족함과 죄성(罪性)을 깨닫자. 이사야는 자신이 입술이 부정하며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만한 자임을 깨달았다. 베드로는 주 앞에 엎드려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했었고 바울은 자신을 죄인 중에 괴수라고 고백했었다(5:8; 딤전 1:15). 우리는 우리 자신의 심히 부족함과 죄악됨을 깨닫고 겸손히 하나님 앞에 엎드리자.

 

셋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의 몸과 입술을 정결케 하자. 우리가 하나님의 복음 사역에 쓰임을 받으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의 몸과 우리의 입술을 정결케 하자(딤후 2:21).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고(고후 7:1), 또 무엇에든지 정결하자(4:8). 또 주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요일 3:3).

 

8-13, 나를 보내소서

 

[8]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이사야는 환상 중에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고 자신의 추함과 입술의 부정함을 깨달았고 또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어 제단의 숯불로 그의 입의 악을 정결케 하심도 보았다. 그는 이 일들을 환상 중에 보았다. 그런 일이 있은 후, 그는 주님의 목소리를 들었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나님께서 자신을 우리라고 표현하신 것은 삼위일체의 신비를 암시한다. 하나님께서는 구약성경에서 몇 번 우리라는 표현을 사용하셨다. 그는 사람을 창조하실 때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라고 말씀하셨다(1:26). 또 그는 범죄한 아담을 에덴 동산에서 내어보내실 때,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고 말씀하셨다(3:22). 또 노아의 자손들이 뜻을 모아 바벨탑을 쌓았을 때, 그는 ,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여 그들로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고 말씀하셨다(11:7). 하나님께서 이처럼 때때로 우리라는 표현을 사용하신 것은 그의 삼위일체의 신비를 나타낸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그의 일을 위해 사람을 사용하심을 보인다. 그것은 성경 역사 전체에 나타난 하나님의 섭리 방식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일에 사람을 사용하신다. 또 이 말씀은 하나님의 일을 위해 쓰실 만한 사람이 많지 않음을 암시하는 듯하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해 갈꼬?” 하나님의 일은 어려운 일이며 그의 일을 수행하는 길은 고난의 길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자신께서 십자가의 길을 가셨다. 구약시대의 선지자들이나 신약시대의 사도들은 다 고난과 핍박을 당했고 멸시와 배척을 당했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천사들과 사람들에게 구경거리가 되었고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고 욕과 비방을 당하고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같이 되었다고 고백하였다(고전 4:9-13).

 

이사야는 하나님의 목소리에 응답하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말했다. 그는 어디에서 이런 헌신의 용기가 났을까? 그것은 분명히 그가 본 사죄(赦罪)의 환상에서 났을 것이다. 죄책감은 사람으로 하여금 두려움과 무기력함에 머물게 만든다. 그런 상황에서는 하나님께 즐거이 헌신하기 어렵다. 그러나 사람은 죄사함을 확신할 때 힘과 용기를 얻고 하나님께 즐거이 헌신하게 될 것이다. 죄는 영원한 멸망의 원인이며 거기에는 두려움밖에 없지만, 죄사함은 영생의 길이며 거기에는 기쁨과 평안이 넘친다. 그때 우리는 우리의 많은 죄를 사해주신 하나님께 즐거이 헌신할 수 있는 것이다.

 

[9-13]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이 백성의 마음으로 둔하게 하며 그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컨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서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내가 가로되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대답하시되 성읍들은 황폐하여 거민이 없으며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이 토지가 전폐하게 되며 사람들이 여호와께 멀리 옮기워서 이 땅 가운데 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오히려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삼키운 바 될 것이나.

 

자신을 하나님께 드린 이사야에게 하나님께서는 선지자의 직무를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하여 이 백성의 마음으로 둔하게 하며 그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컨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서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좀 이상한 말씀처럼 들린다. 그러나 이 말씀은, 구원이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에 달려 있음을 알려주는 중요한 진리를 보인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은혜 주실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지만, 그가 버려두신 자들에게서는 그의 은혜를 거두신다. 사람은 영적으로 죽어 있고 전적으로 부패되어 있어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도무지 깨닫지도 못하며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지도 못하고 하나님의 진리를 믿고 구원을 받지도 못하고 참된 의와 선을 행하지도 못한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값없이 주시는 은혜이다.

 

이것은 성경의 분명한 진리이다. 이것이 개혁주의 또는 칼빈주의라고 불리는 것이다. 요한복음 6:44,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사도행전 11:18, “저희가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 사도행전 16:14, “두아디라성의 자주 장사로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들었는데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신지라.” 로마서 9:16, 18,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시느니라.”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다.

 

선지자의 직무를 받은 이사야는 하나님께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라고 여쭈었다. 하나님께서는, “성읍들은 황폐하여 거민이 없고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이 토지가 전폐하게 되며 사람들이 여호와께 멀리 옮기워서 이 땅 가운데 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바벨론의 침입으로 예루살렘이 멸망하고 많은 사람들이 포로로 잡혀가게 될 때까지라는 말씀이다. 하나님께서는 심지어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오히려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삼키운 바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불순종하는 유다는 결국 완전히 멸망할 것이다.

 

이와 같이,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의 사역은 전망 없는 사역, 결실 없는 사역처럼 보였다. 하나님의 일은 때때로 전망 없는 사역, 결실 없는 사역처럼 보인다. 선지자 예레미야의 사역이 대표적인 예이었다. 그는 41년간 사역했지만, 한 명도 구원하지 못한 사역이었다. 예루살렘은 의인 한 사람이 없어서 마침내 멸망을 당하였다(5:1). 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도 외형적으로는 성공적이게 보이지 않았다. 그는 마침내 십자가에 처형되셨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

 

이런 사실들은 인간이 전적으로 부패되어 있고 구원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임을 증거한다. 하나님의 종들과 성도들은 이런 일들을 통해 하나님의 심정을 배우게 된다. 사도 바울은 마지막 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자기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을 것이라고 예언하면서 그러나 전도자는 고난을 각오하며 전도자의 직무를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딤후 4:3-5).

 

[13] . . .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그러나 사람이 무지하고 완악하다고 해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실패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고 말씀하셨다. 그루터기는 나무를 벤 후에 남은 나무둥치를 가리킨다. 유다가 멸망해도, 그 그루터기는 남을 것이다. 또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라고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땅의 거룩한 씨는 누구를 가리키는가? 그것은 메시아를 암시하는 말씀이라고 본다. 그것이 이사야의 책 전체에 흐르고 있는 메시아 진리이다. 이사야서는 또 남은 자에 대해 많이 말한다.3) 그들은 메시아를 믿고 구원받은 자들을 가리킨다고 본다. 그들은 처음에는 적은 수효일 것이지만(12:32), 마지막엔 셀 수 없이 많은 수가 될 것이다(7:9). 하나님의 일은 결국 실패치 않고 성공할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은 힘들고 지루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이사야 6:8-13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하나님의 일에 헌신하는 자가 되자.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라는 하나님의 음성에 이사야는 나를 보내소서라고 응답하였다. 오늘날도 하나님께서는 그의 복음 사역을 위해 보내실 만한 사람들을 찾으신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사함을 받고 그 죄사함을 확신하고 그 죄사함받은 감격을 가지고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즐거이 헌신하자. 또 하나님의 일에 쓰임받기를 소원하자.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일이 어렵다는 것을 미리 알자. 사람은 심히 부패되어 있고, 사람 구원의 일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할 때 하나님의 은혜만 간구하며 또 하나님의 심정을 배우며 인내하며 일해야 할 것이다. 목회와 전도, 주일학교 교사와 권찰의 일, 또 교회의 모든 봉사의 일이 다 그러하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이 어려움을 알고 단단히 각오하자.

 

셋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남은 자들이 되자. 인류의 소망은 거룩한 씨에 있다. 거룩한 씨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킴이 분명하다. 세상의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또 우리는 하나님의 남은 자들에게 소망을 둔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그 안에 거하는 자들이다(6:3-4; 15:4-5). 그 증표는 믿음과 순종과 거룩한 삶이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고 순종하는 남은 자들이 되자.

 



이사야5: 하나님의 심판

 

1-7, 하나님의 포도원

 

[1] 내가 나의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노래하되 . . . .

 

선지자 이사야는, “내가 나의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노래하되 나의 사랑하는 자의 포도원을 노래하리라. 나의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음이여 심히 기름진 산에로다라고 말한다.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을 가리키며(7) ‘심히 기름진 산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묘사된 가나안 땅을 가리킨다(3:8, 17; 13:5; 33:3; 20:24 ).

 

선지자 이사야는, ‘나의 사랑하는 자라는 말을 세 번이나 하였다. ‘나의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을 가리킨다. 그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한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할 뿐 아니라 또한 사랑해야 한다. 신명기 6:5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고 하셨다(10:37-38).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좋아하는 것, 기뻐하는 것, 즐거워하는 것, 믿고 의지하는 것, 오래 참고 기다리는 것, 겸손히 순종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

 

[2]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그 안에 술틀을 팠었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혔도다.

 

선지자 이사야는 계속 말하기를,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그 안에 술틀을 팠었도다라고 한다. ‘극상품 포도나무는 이스라엘 사람들 곧 유다 사람들을 가리켰다(7). 그들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경건한 아브라함의 자손들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족속이다. 땅을 파서 돌을 제거하고 망대를 세우고 술틀을 파듯이,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에 거주했던 우상숭배적이고 음란한 원주민들을 멸망시키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그 곳에 정착하게 하셨다.

 

선지자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좋은 포도 맺기를 바라셨으나 그들이 들포도를 맺었다고 말한다. ‘들포도라는 원어(베우쉼 !yviauB])는 본래 악취나는 무가치한 것들이라는 뜻이다. 들포도는 그들의 불경건함과 부도덕함을 가리킨다. 그것은 7절에 말한다. “그들에게 공평을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학이요 그들에게 의로움을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이었도다.”

 

[3-4] 예루살렘 거민과 유다 사람들아 구하노니 . . . .

 

3절 이하는 하나님의 친 음성이다. 선지자 이사야는 하나님의 특별한 감동 속에 하나님의 친 음성을 대언(代言)한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예루살렘 거민과 유다 사람들아 구하노니 이제 나와 내 포도원 사이에 판단하라. 내가 내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었으랴. 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렸거늘 들포도를 맺음은 어찜인고라고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모든 좋은 것을 다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좋은 열매 맺기를 원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의 많은 은혜를 받은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향해 패역하였고 불순종하였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인간의 전적 부패와 무능력을 증거한 역사이었다. 그러므로 선지자 예레미야는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고 말했다(17:9).

 

[5-6] 이제 내가 내 포도원에 어떻게 행할 것을 너희에게 . . . .

 

하나님께서는 이제 심판을 선언하신다. 그는 이제 내가 내 포도원에 어떻게 행할 것을 너희에게 이르리라. 내가 그 울타리를 걷어 먹힘을 당케 하며 그 담을 헐어 짓밟히게 할 것이요 내가 그것으로 황무케 하리니 다시는 가지를 자름이나 북을 돋우지 못하여 질려와 형극이 날 것이며 내가 또 구름을 명하여 그 위에 비를 내리지 말라 하리라고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의 국경선이 무너지며 예루살렘 성벽이 무너지고 외국 군대가 침공해 들어오고 이스라엘을 멸망시킬 것이다. 이스라엘 땅은 황무하게 될 것이다. 들판에는 가시나무와 엉겅퀴만 날 것이며, 비조차 내리지 않아 들판이 황량할 것이다.

 

[7] 대저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의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 그들에게 공평을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학이요 그들에게 의로움을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이었도다.

 

선지자는 포도원의 비유를 분명하게 설명한다.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을 가리키고 그의 기뻐하시는 포도나무는 유다 사람을 가리켰다. 좋은 포도는 공평과 의로움을 가리키고, 들포도는 피흘림과 부르짖음을 가리켰다. ‘포학이라는 원어(미스파크 jP;c]m)살륙, 피흘림이라는 뜻이다. 원문에서 공평’(미슈파트 fP;v]mi)포학’(미스파크 jP;c]m), ‘의로움’(체다카 hq;d;x])부르짖음’(체아카 hq;[}x)은 비슷한 발음으로 대조를 이룬다. 이스라엘 사회의 도덕은 땅에 떨어졌다. 불의와 불법으로 인한 탄식과 고통의 부르짖음이 컸다. ‘좋은 포도는 공평과 의, 사랑과 진실의 도덕성을 가리킨다. 그것이 인간이 창조된 본래의 하나님의 형상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며 성령의 열매이다. ‘들포도는 살륙과 피흘림, 미움, 거짓, 사악함을 가리킨다.

 

 

이사야 5:1-7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선지자처럼 하나님을 사랑하자.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좋아하고 하나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오래 참고 기다리며 겸손히 순종하며 즐거이 섬기는 것이다. 신명기 6장에서 모세는 교훈하기를,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하였다(6:4-5).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의 계명들 중 가장 큰 계명이다. 예수께서는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라고 말씀하셨다(22:37-38). 우리는 참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둘째로, 우리는 좋은 열매를 맺자. 잠언 8:13,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느니라.” 잠언 16:6, “인자와 진리로 인하여 죄악이 속하게 되고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인하여 악에서 떠나게 되느니라.” 하나님을 참으로 경외하고 사랑하는 자는 악을 멀리 떠나며 그의 계명을 생명같이 지킬 것이다. 하나님의 계명의 요점은 사랑이다. 그러므로 좋은 열매를 맺는다는 것은 거룩과 의와 사랑과 진실의 인격과 삶을 가리킨다.

 

그것은 인간이 본래 지음받았던 하나님의 형상의 내용이다. 에베소서 4:22-24,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그것은 성령의 열매이다. 갈라디아서 5:22-23,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우리는 의와 사랑과 진실의 좋은 열매를 맺는 자들이 되자.

 

셋째로, 우리는 들포도를 맺는 자들과 그 포도원은 결국 망하고 황폐케 됨을 기억하자. 좋은 열매 없는 나무는 찍힐 것이다. 마태복음 3:10,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어 불에 던지우리라.” 요한복음 15:2,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불의와 미움과 악과 거짓을 행하는 자들은 세상에서도 또 영원히 멸망하게 될 것이다.

 

8-17, 이스라엘의 죄와 멸망

 

본문은 이스라엘의 죄와 멸망에 대한 말씀이다.

 

[8] 가옥에 가옥을 연하며 전토에 전토를 더하여 빈틈이 없도록 하고 이 땅 가운데서 홀로 거하려 하는 그들은 화 있을진저.

 

선지자는 먼저 이스라엘 백성의 죄악에 대해 지적한다. 그는, “가옥에 가옥을 연하며 전토에 전토를 더하여 빈틈이 없도록 하고 이 땅 가운데서 홀로 거하려 하는 그들은 화 있을진저라고 외친다. 사람들은 필요 이상으로 자신들이 사는 집을 확장했고 크고 아름답게 하였다(9). 또 사람들은 필요 이상으로 밭을 사고 또 샀다. 그것은 땅과 재산에 대한 욕심이었다. 그것은 오늘날 말로 하면 일종의 투기성이 있는 땅 구입, 집 구입이었다. 그것은 가난한 일반 사람들을 배려하지 않는 일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이 자기 중심적 욕심으로 가득한 자들에게 진노하셨다. 그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

 

[9-10] 만군의 여호와께서 내 귀에 말씀하시되 정녕히 허다한 가옥이 황폐하리니 크고 아름다울지라도 거할 자가 없을 것이며 열흘갈이 포도원에 겨우 포도주 한 바트가 나겠고 한 호멜지기에는 간신히 한 에바가 나리라 하시도다.

 

선지자는 만군의 여호와, 능력으로 섭리하시고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살아계신 섭리자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이사야의 귀에 분명한 말씀으로 말씀하셨다. 그는 말씀하시기를, 정녕 허다한 가옥이 황폐하리니 크고 아름다울지라도 거할 자가 없을 것이며, 또 열흘갈이 포도원에 겨우 포도주 한 바트가 나겠고 한 호멜지기에는 간신히 한 에바가 나리라고 하셨다. 열흘갈이(ten acres) 포도원은 약 1만평의 땅인데, 거기서 겨우 포도주 한 바트 즉 약 22리터가 나올 것이며, 한 호멜지기는 약 220리터의 곡식을 추수할 수 있는 밭인데, 거기서 겨우 한 에바 즉 약 22리터만 수확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엄중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땅을 황폐케 하실 것이며 그들의 수확과 소득이 매우 적게 되게 하실 것이다.

 

[11-12]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독주를 따라가며 밤이 깊도록 머물러 포도주에 취하는 그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이 연회에는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저와 포도주를 갖추었어도 여호와의 행하심을 관심치 아니하며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생각지 아니하는도다.

 

선지자는 그들의 죄악을 또 지적한다.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독주를 따라가며 밤이 깊도록 머물러 포도주에 취하는 그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이 연회에는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저와 포도주를 갖추었어도 여호와의 행하심을 관심치 아니하며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생각지 아니하는도다라고 그는 말한다. 그들은 아침 일찍부터 독한 술을 마시고 밤이 깊도록 포도주에 취하였고, 또 잔치를 열며 각종 악기를 연주케 하였으며 포도주를 마시며 즐겼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고 그의 손으로 하신 일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을 사랑함이 없었다.

 

[13-14] 이러므로 나의 백성이 무지함을 인하여 사로잡힐 것이요 그 귀한 자는 주릴 것이요 무리는 목마를 것이며 음부가 그 욕망을 크게 내어 한량없이 그 입을 벌린즉 그들의 호화로움과 그들의 많은 무리와 그들의 떠드는 것과 그 중에서 연락하는 자가 거기 빠질 것이라.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불경건함에 대해 징벌하실 것이다. 선지자는 이러므로 나의 백성이 무지함을 인하여 사로잡힐 것이요라고 말한다. 그들은 전쟁에 패배하여 포로로 잡혀갈 것이다. 또 선지자는 그 귀한 자는 주릴 것이요 무리는 목마를 것이며라고 말한다. 그들은 일용할 양식의 궁핍을 경험할 것이다. 또 선지자는 음부가 그 욕망을 크게 내어 한량없이 그 입을 벌린즉 그들의 호화로움과 그들의 많은 무리와 그들의 떠드는 것과 그 중에서 연락하는 자가 거기 빠질 것이라고 말한다. 그들의 호화로움과 쾌락은 끝날 것이며 그들은 다 지옥에 던지울 것이다. ‘음부는 지옥을 가리킨다고 본다(KJV).

 

[15-16] 천한 자는 굴복되고 귀한 자는 낮아지고 오만한 자의 눈도 낮아질 것이로되 오직 만군의 여호와는 공평하므로 높임을 받으시며 거룩하신 하나님은 의로우시므로 거룩하다 함을 받으시리니.

 

선지자는 또 천한 자는 굴복되고 귀한 자는 낮아지고 오만한 자의 눈도 낮아질 것이라고 말한다. 천한 자나 귀한 자나 다같이 패망을 경험할 것이다. 특히 교만한 자들이 낮아질 것이다. 사람은 교만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법에 복종치 않고 범죄한다. 교만은 불순종으로 나아간다. 이스라엘도 그러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멸망당할 때 그들의 교만은 낮아질 것이다. 그때 만군의 여호와는 공의로우시므로 높임을 받으실 것이며, 거룩하신 하나님은 의로우시므로 거룩하다 함을 받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공의로 세상을 심판하실 때에 하나님의 영광이 온 땅에 나타날 것이다.

 

[17] 그때에는 어린양들이 자기 초장에 있는 것같이 먹을 것이요 살찐 자의 황무한 밭의 소산은 유리하는 자들이 먹으리라.

 

선지자는 그때에는 어린양들이 자기 초장에 있는 것같이 먹을 것이요라고 말한다. 이스라엘이 멸망하여 그 땅이 황폐해질 때에 어린양들은 거기서 자기 풀밭처럼 풀을 뜯어먹을 것이다. 또 선지자는 살찐 자의 황무한 밭의 소산은 유리하는 자들이 먹으리라고 말한다. ‘살찐 자의 황무한 밭이란 지금 평안하고 부요하여 쾌락을 즐기는 자들의 밭이 그 날에 황무한 밭이 될 것이므로 그렇게 표현한 것일 것이다. ‘유리하는 자들은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자들을 가리킨다. 밭들은 주인 없는 밭이 되어서 거기서 무슨 열매나 결실이 나면 아무 나그네들이나 먹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이사야 5:8-17의 교훈은 무엇인가? 우리는 이스라엘의 범죄와 형벌을 통해 교훈을 받는다. 본문에서 우리는 적어도 두 가지 교훈을 얻는다.

 

첫째로, 우리는 사치와 쾌락을 버리자. 이스라엘은 사치하고 연락하였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통해 물욕(物慾)과 육신적 쾌락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경건하고 선하게 사는 일을 방해한다고 말씀하셨다(8:14). 재리(財利)와 일락(逸樂)은 성도에게서 하나님의 말씀이 자라지 못하게 가로막는 요소이다. 사치와 쾌락은 성도에게 큰 시험거리이며 경건하고 선한 삶에 반대된다. 야고보서 5:5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연락하여 도살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지게 하였도다라고 말한다. 성도는 이 세상에서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자족하며 검소하고 절약하며 살아야 한다. 우리는 사치와 쾌락을 버리자.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일에 관심을 가지자. 이스라엘 백성은 술취하며 잔치에 각종 악기를 갖추었지만, 여호와의 행하심에 대해선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러나 사도 바울에게는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 같은 귀한 일꾼들이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일에 동참한 자들이었다. 빌립보서 2:21-22, “저희가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자식이 아비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느니라고 말한다. 디모데는 예수 그리스도의 일, 곧 복음 전파의 일을 위해 헌신하고 봉사한 자이었다. 에바브로디도도 그러하였다. 빌립보서 2:30, “저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아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고 말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자가 되자. 우리는 무엇보다 교회의 공예배에 힘써 참석하며 기도하기를 힘쓰자. 또 전도하기를 힘쓰고, 국내외 선교와 개척전도의 일을 후원하자. 우리는 주일학교 교육에 관심을 가지고, 교사나, 차량운전 봉사에 참여하자. 찬양대 봉사도 귀한 일이다. 가정 예배를 쌓는 것은 큰 복이다. 주방 봉사의 일도 귀한 일이다. 문서출판사역과 신학교육의 일도 분명히 하나님의 일이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일들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자.

 

18-30, 화 있을진저

 

본문은 선지자 이사야가 이스라엘의 죄악들을 지적하며 하나님의 진노를 선포한 내용이다.

 

[18-19] 거짓으로 끈을 삼아 죄악을 끌며 수레 줄로 함같이 죄악을 끄는자는 화 있을진저. 그들이 이르기를 그는 그 일을 속속히 이루어 우리로 보게 할 것이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는 그 도모를 속히 임하게 하여 우리로 알게 할 것이라 하는도다.

 

선지자는 거짓으로 끈을 삼아 죄악을 끌며 수레 줄로 함같이 죄악을 끄는 자는 화 있을진저라고 말한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이 거짓과 죄악을 행한다고 지적한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는 의와 선과 진실의 사람이 되어야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불의와 죄악과 거짓으로 행하였다. 이스라엘 사회는 남을 비방하고 해치는 일이 많았고 거짓말이 난무하였다는 말이다.

 

선지자는 또 그들이 이르기를 그는 그 일을 속속히 이루어 우리로 보게 할 것이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는 그 도모를 속히 임하게 하여 우리로 알게 할 것이라 하는도다라고 말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거룩하고 공의로운 섭리를 믿지 않았고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참고 기다리지 않았다. 그들의 조급함은 곧 그들의 불신앙이었다.

 

[20-23]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광명으로 흑암을 삼으며 쓴 것으로 단 것을 삼으며 단 것으로 쓴 것을 삼는 그들은 화 있을진저. 스스로 지혜롭다 하며 스스로 명철하다 하는 그들은 화 있을진저. 포도주를 마시기에 용감하며 독주를 빚기에 유력한 그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은 뇌물로 인하여 악인을 의롭다 하고 의인에게서 그 의를 빼앗는도다.

 

선지자는 또,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광명으로 흑암을 삼으며 쓴 것으로 단 것을 삼으며 단 것으로 쓴 것을 삼는 그들은 화 있을진저라고 말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선악 판단을 바르게 하지 않았다. 그것은 매우 부패한 사회의 모습이다. 잠언 28:4율법을 버린 자는 악인을 칭찬하나 율법을 지키는 자는 악인을 대적하느니라고 말했다. 악을 선하다, 선을 악하다 하는 것은 그 심령이 도덕적으로 심히 부패되었음을 증거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도덕적 혼란을 미워하신다. 그러므로 잠언 17:15악인을 의롭다 하며 의인을 악하다 하는 이 두 자는 다 여호와의 미워하심을 입느니라고 말했다. 성도는 선악 판단을 바르게 해야 한다. 옳은 것은 옳다 하고 그른 것은 그르다 해야 하며, 선한 것은 선하다 하고 악한 것은 악하다 해야 한다. 그것이 공의로움이요 정직함이다.

 

선지자는 또, “스스로 지혜롭다 하며 스스로 명철하다 하는 그들은 화 있을진저라고 말한다. 자신을 지혜롭게 여기는 자보다 더 어리석은 자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잠언 26:12, “네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자를 보느냐?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바랄 것이 있느니라고 말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항상 우리 자신을 낮추며 우리 자신의 부족과 어리석음을 고백해야 할 것이다.

 

선지자는 또, “포도주를 마시기에 용감하며 독주를 빚기에 유력한 그들은 화 있을진저라고 말한다. 이스라엘 사회는 사람들이 술을 잘 마시는 사회이었다. 이것이 구약 교회의 모습이었다. 사람들은 포도주를 마시기에 용감하였고 독주를 섞어 만들기에 유력하였다. 그러나 술 취함이 사람을 실수케 만들며 또 과음과 폭음이 사람의 몸도 병들게 한다는 것은 상식적인 일이다. 술 취하는 자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성경은 분명히 말한다. 고린도전서 6:9-10,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금주(禁酒)와 금연(禁煙)은 그리스도인의 지혜요 복이다.

 

선지자는 또, “그들은 뇌물로 인하여 악인을 의롭다 하고 의인에게서 그 의를 빼앗는도다라고 말한다. 이스라엘 사회에는 뇌물이 많이 오고갔고 그로 인하여 도덕 판단이 혼란스러워졌다. 사람들은 뇌물을 받고 악인을 의롭다 하고 또 의인을 악하다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너는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밝은 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로운 자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고 출애굽기 23:8에 말씀하셨다.

 

구약 교회인 이스라엘 사회는 이처럼 거짓과 죄악이 많았고 사람들은 하나님의 공의의 섭리를 믿지 않았고 선과 악을 잘못 판단하였고 그러면서도 자신들을 지혜롭다고 생각하였고 술을 즐겼고 뇌물이 많이 오고갔다. 이스라엘 사회는 심히 부패되었고 죄악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이런 죄악에 대해 진노하셨다. 18-23절에서, 선지자는 이미 화 있을진저라는 말을 네 번이나 사용하였다(18, 20, 21, 22). 죄의 결과는 하나님의 화와 진노이다.

 

[24-25] 이로 인하여 불꽃이 그루터기를 삼킴같이, 마른 풀이 불 속에 떨어짐같이 그들의 뿌리가 썩겠고 꽃이 티끌처럼 날리리니 그들이 만군의 여호와의 율법을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의 말씀을 멸시하였음이라.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노를 발하시고 손을 들어 그들을 치신지라. 산들은 진동하며 그들의 시체는 거리 가운데 분토같이 되었으나 그 노가 돌아서지 아니하였고 그 손이 오히려 펴졌느니라.

 

선지자는 이로 인하여 불꽃이 그루터기를 삼킴같이, 마른 풀이 불 속에 떨어짐같이, 그들의 뿌리가 썩겠고 꽃이 티끌처럼 날리리니라고 말한다. 성경에서 불은 하나님의 진노의 상징이다. 그것은 문자 그대로 불일 수도 있지만, 여러 형태로 나타나는 불 같은 하나님의 진노를 가리킨다. 불은 두려운 것이다. 그것은 다 태우고 멸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불꽃이 그루터기를 삼킴같이, 또 마른 풀이 불 속에 떨어짐같이, 그 뿌리로부터 썩고 망하겠고 꽃 같은 그 찬란한 영광은 티끌처럼 날아갈 것이다.

 

선지자는 그들의 멸망의 이유를 다시 요약한다. 그는 그들이 만군의 여호와의 율법을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의 말씀을 멸시하였음이라고 말한다. 이스라엘의 죄악은 한마디로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멸시한 것이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하며 존중한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66:2에서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나의 말을 인하여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권고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말씀을 존중한다면, 그는 겸손하며 정직하고 선하며 진실할 것이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진노를 또 선포하기를,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노를 발하시고 손을 들어 그들을 치신지라. 산들은 진동하며 그들의 시체는 거리 가운데 분토같이 되었으나 그 노가 돌아서지 아니하였고 그 손이 오히려 펴졌느니라고 한다. 하나님의 진노로 이스라엘 백성의 시체는 거리에 쓰레기같이 많게 될 것이나 그래도 하나님의 노가 그치지 않을 것이다.

 

[26-30] 기를 세우시고 먼 나라들을 불러 . . . .

 

선지자는 또 하나님께서 먼 나라들을 불러와 이스라엘을 치게 하실 것이라고 선언한다. 그는 말한다. “기를 세우시고 먼 나라들을 불러 땅 끝에서부터 오게 하실 것이라. 보라 그들이 빨리 달려 올 것이로되 그 중에 곤핍하여 넘어지는 자도 없을 것이며 조는 자나 자는 자도 없을 것이며 그들의 허리띠는 풀리지 아니하며 그들의 신들메는 끊어지지 아니하며 그들의 살은 날카롭고 모든 활은 당기어졌으며 그 말굽은 부싯돌 같고 차바퀴는 회리바람 같을 것이며 그 부르짖는 것은 암사자 같을 것이요 그 소리지름은 어린 사자들과 같을 것이라. 그들이 부르짖으며 물건을 움키어 염려 없이 가져가도 건질 자가 없으리로다. 그 날에 그들이 바다 물결 소리같이 백성을 향하여 부르짖으리니 사람이 그 땅을 바라보면 흑암과 고난이 있고 빛은 구름에 가리어져서 어두우리라.”

 

선지자는 무서운 전쟁을 예고하였다. 이스라엘 나라를 침공할 이방 나라들의 군대는 빠르고 강할 것이며 그들 중에는 피곤하여 넘어지거나 조는 자가 없을 것이다. 그들의 무기는 날카로울 것이며 그들의 병거 바퀴는 회리바람 같을 것이며 그들의 부르짖는 소리는 사자들의 표호 소리와 같을 것이다. 온 땅은 흑암과 고난으로 가득할 것이다.

 

 

이사야 5:18-30에서 우리가 얻는 교훈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죄악에 대해 진노하시고 심판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범죄에 대해 불같이 진노하셔서 먼 나라들을 불러와 그들을 치실 것이며 그들의 시체는 거리에 쓰레기같이 될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율법의 경고대로 된 것이다. 레위기 26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않고 거역하면 그들의 대적들에게 패배하고 그들을 당할 힘이 없을 것이며 이스라엘은 마침내 멸망하고 그 땅은 황페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셨었다(14-17, 31-33, 37-38). 사람의 죄는 하나님의 진노와 멸망을 가져온다. 성도가 범하는 죄도 다르지 않다. 죄는 다 악하고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만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르게만 살자. 무엇이 바르게 사는 것인가? 오늘 본문에 의하면, 우선, 우리는 하나님을 인정하고 경외하며 그의 말씀 곧 성경말씀을 존중하고 그 말씀을 읽고 믿고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성경을 믿고 따르는 것이다. 또 우리는 거짓과 죄악을 버리고 멀리하며 선악을 바르게 판단해야 한다. 선악을 바르게 판단하는 기준은 성경과 우리의 양심이다. 우리의 양심은 항상 깨끗해야 한다. 또 우리는 자신을 지혜롭게 여기지 말고 항상 겸손히 처신해야 하며, 술 취하지 말고 깨어 절제해야 하며, 결코 뇌물을 받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오직 바르게만 살자.

 

 



이사야4: 시온의 회복

 

이사야 4장은 시온의 회복에 대해 증거한다. 이사야 1장부터 39장까지는 주로 심판에 대한 선언이다. 그러나 심판의 선언 가운데서도 본장과 같이 회복이나 위로의 메시지가 중간중간에 나오는 것이다. 4장에 시온의 회복, 9장의 메시아 왕국, 11장에 메시아 시대, 12장에 하나님의 구원을 감사하고 찬송함, 25장에 하나님의 구원을 찬송함, 26장에 구원의 노래, 27장에 이스라엘의 회복, 32장에 메시아의 통치, 35장에 새 세계 등의 주제들이 그러하다. 40장 이후에는 회복에 대한 메시지가 주로 나온다.

 

[1] 그 날에 일곱 여자가 한 남자를 붙잡고 말하기를 . . . .

 

1절은 앞장의 내용에 이어진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날에 일곱 명의 여자가 한 남자를 붙잡고 말하기를, “우리가 우리 떡을 먹으며 우리 옷을 입으리니 오직 당신의 이름으로 우리를 칭하게 하여 우리로 수치를 면하게 하라고 할 것이다. 왜냐하면 전쟁으로 남자들이 많이 죽었으므로 여자들이 결혼할 남자를 얻기 어렵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한 바로 그때 하나님의 긍휼과 회복의 영광이 나타난다.

 

[2-4] 그 날에 여호와의 싹이 아름답고 영화로울 것이요 그 땅의 소산은 이스라엘의 피난한 자를 위하여 영화롭고 아름다울 것이며 시온에 남아 있는 자,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 자 곧 예루살렘에 있어 생존한 자 중 녹명된 모든 사람은 거룩하다 칭함을 얻으리니 이는 주께서 그 심판하는 영과 소멸하는 영으로 시온의 딸들의 더러움을 씻으시며 예루살렘의 피를 그 중에서 청결케 하실 때가 됨이라.

 

선지자는 그 날에 여호와의 싹이 아름답고 영화로울 것이요 그 땅의 소산은 이스라엘의 피난한 자를 위하여 영화롭고 아름다울 것이라고 말한다. ‘이라는 원어(체마크 jm'x)가지, 이라는 뜻이다. 선지자들의 여러 예언을 보면, ‘여호와의 싹(혹은 가지)’은 메시아를 가리킴이 분명하다. 예레미야 23:5,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행사하며 세상에서 공평과 정의를 행할 것이라.” 예레미야 33:15, “그 날 그때에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리니 그가 이 땅에 공평과 정의를 실행할 것이라.” 스가랴 3:8, “제사장 여호수아야, 너와 네 앞에 앉은 네 동료들은 내 말을 들을 것이니라. 이들은 예표의 사람이라. 내가 내 종 순(체마크 jm'x,)을 나게 하리라.” 스가랴 6:12,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보라 순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자기 곳에서 돋아나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라.”

 

, 가지, 순은 확실히 메시아를 가리켰다. 그 메시아는 영화로우시고 아름다우실 것이다. 이것은 특히 메시아의 인격적, 도덕적인 면을 말한다. 사도 요한은 고백하기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말하였다(1:14).

 

또 하나님께서는 그의 택하신 백성을 거룩하게 하실 것이다. 본문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남은 자라고 표현한다. 선지자는 시온에 남아 있는 자,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 자 곧 예루살렘에 있어 생존한 자 중 녹명(錄名)된 모든 사람은 거룩하다 칭함을 얻으리니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이 죄악된 세상 가운데서도 어떤 이들을 은혜로 택하시고 세상에 남겨두신다. 그들이 남은 자들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남은 자들을 거룩하게 하실 것이다. 그들은 거룩하다고 칭함을 받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 심판하는 영과 소멸하는 영으로 시온의 딸들의 더러움을 씻으시며 예루살렘의 피를 그 중에서 청결케 하실 때에, 그들은 거룩하다고 칭함을 받을 것이다. ‘심판하는 영소멸하는 영은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시고 책망하시고 우리로 죄씻음을 받게 하시는 성령을 가리킨다.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중생시키시고 깨끗케 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성도거룩한 자라는 존귀한 이름을 얻게 되는 것이다.

 

[5-6] 여호와께서 그 거하시는 온 시온산과 모든 집회 위에 낮이면 구름과 연기, 밤이면 화염의 빛을 만드시고 그 모든 영광 위에 천막을 덮으실 것이며 또 천막이 있어서 낮에는 더위를 피하는 그늘을 지으며 또 풍우를 피하여 숨는 곳이 되리라.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성도라고 부르실 뿐 아니라, 또한 그들을 천막으로 보호하신다. 선지자는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 거하시는 온 시온산과 모든 집회 위에 낮이면 구름과 연기, 밤이면 화염의 빛을 만드시고 그 모든 영광 위에 천막을 덮으실 것이며 또 천막이 있어서 낮에는 더위를 피하는 그늘을 지으며 또 풍우[폭풍과 비]를 피하여 숨는 곳이 되리라고 한다. 세상에는 여름의 무더위가 있고 겨울의 강추위가 있다. 또한 세상에는 한낮의 뙤약볕이 있고 한밤의 폭풍우가 있다. 그때마다 우리는 피할 곳이 필요하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구원하셔서 깨끗하고 거룩하게 하실 뿐 아니라 이 환난과 고통 많은 세상 가운데서 그들의 피난처가 되시고 은신처가 되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이시며 은신처이시다.

 

 

이사야 4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메시아께서 오셨음을 감사하며 그를 믿자. 약속하신 여호와의 싹, 가지, 혹은 순이 나타나셨다. 그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이사야 선지자는 다른 곳에서 말하기를,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고 하였다(9:6).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셨다. 그의 탄생하던 날에 한 천사는 그 부근에서 양 치던 목자들에게 나타나 말하기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고 하였다(2:10-11). 사도 바울은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고 고백했다(딤전 1:15). 사도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말하였다(1:11-12).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주신 가장 큰 선물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감사히 영접하며 그를 믿고 의지하자.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로 남은 자곧 자기 백성을 삼으시고 구원하시고 거룩케 하셨음을 감사하자. 우리는 성도로 부름을 입었다. 로마서 1:7, “로마에 있어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고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에게.” 고린도전서 1:2,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 에베소서 1: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된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의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우리는 남은 자들 곧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되었고, 성도라는 존귀한 이름을 얻었다. 우리는 우리의 이 큰 구원을 감사하자.

 

셋째로, 우리는 환난과 고난이 많은 세상 속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피난처 되심을 감사하자. 하나님께서는 이사야서 다른 곳에서 말씀하시기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라고 하셨다(43:1-2). 예수께서는,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친히 말씀하셨다(28:20).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굳게 믿고 기도하며 항상 감사하자.

 



영광의 눈을 촉범치 말라     이사야 3장 1-12절


서 론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한 성도들은 이 세상에서 살아가지만 두 나라에 소속된 사람들입니다.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나라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나라입니다. 물질적인 나라를 우리는 흔히 세상이라고 부르고, 영적인 나라를 하나님의 나라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어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통치를 받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세상 국가인 대한민국의 국민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동시에 대한민국 통치권자들의 통치를 받으면서 살아갑니다.

구약시대의 이스라엘은 이 두 나라가 하나가 되었던 국가였습니다. 세상의 국가가 하나님의 나라가 되는 국가를 신정통치 국가라고 하는데, 본래 세상의 국가와 하나님의 나라가 일치했던 이스라엘에서는 이 두 가지 국가 간의 갈등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450년 동안의 사사시대를 거치는 동안 이스라엘이 외적의 침략을 많이 받게 되자, 이스라엘의 내부에서는 외적이 침략한 이유는 왕이 없기 때문이라는 목소리가 높아졌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사무엘 선지자를 찾아가서 우리에게도 왕을 세워달라고 요구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요구에 하나님께서는 불쾌한 감정을 드러내셨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침략을 당한 이유는 왕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들이 통치권자인 하나님께 불순종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판단은 명백히 잘못된 것이었지만, 그 요구가 너무 강해서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사무엘을 통해 이스라엘에 왕을 허락하셨습니다. , 앞으로 세워질 왕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권한을 위임 받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통치해야 한다는 조건이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갈수록 왕들은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 자신들의 경험과 뜻을 믿고 이스라엘을 다스리기 시작했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세상의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와 갈등을 일으키는 국면이 시작된 것입니다. 이사야서 3장은 바로 세상의 나라와 하나님의 나라가 갈등을 일으킬 때, 어떤 결과가 임하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본문입니다.

 

1. 유다의 혼란

 

이사야가 예언을 하던 시기에 남왕국 유다에는 큰 혼란이 일어났습니다. 선한 왕이었던 웃시야, 요담, 히스기야 와는 다르게 악한 왕 아하스는 바알과 아세라, 그리고 몰록에게 향을 드렸고 심지어는 자기 아들을 불태워 우상에게 제물로 드리는 못된 짓도 서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영적인 건달이요, 방탕자요, 타락자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로 말미암아 남왕국 유다를 아주 비참하게 낮추셨습니다.

아하스의 시대에 북쪽에 있는 아람 왕 르신이 북왕국 이스라엘의 왕 베가와 연합군을 형성하여 유다를 침공하였는데, 이 전쟁을 르신-베가 전쟁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엄청난 전쟁이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아하스 왕은 여전히 하나님만을 믿고 의지하라는 선지자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아하스 왕은 왕궁과 성전의 금은을 앗수르 왕 디글락빌레셋 3세에게 주며 아람과 북왕국 이스라엘을 공격해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아하스의 요청대로 디글락빌레셋 3세는 아람 왕 르신을 죽이고 호세아 왕 시대에 북왕국 이스라엘을 멸망시켰습니다. 그러나 앗수르가 유다에게 도움이 되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하스가 여호와의 전과 왕궁과 방백들의 집에서 재물을 취하여 앗수르 왕에게 주었으나 유익이 없었더라”(대하 28:21). 유다도 후에 앗수르의 침공을 받았던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수에 칠 가치가 어디 있느뇨”(2:22)말씀하였습니다. 다시 말해 여호와 하나님만을 의지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하스가 우상숭배하며 세상 왕국의 통치자로서 하나님 나라의 통치자이신 하나님을 대적했기 때문에 그 결과가 오늘 본문에 고스란히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그 결과는 한마디로 말해서 혼란chaos 입니다.

먼저 유다에 경제적인 혼란이 찾아왔습니다. “보라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예루살렘과 유다의 의뢰하며 의지하는 것을 제하여 버리시되 곧 그 의뢰하는 모든 양식과 그 의뢰하는 모든 물과”(1). 양식과 물을 제하셨기 때문에 먹을 것과 마실 것이 없게 되었습니다. 경제적인 대혼란에 처했습니다.

두 번째로 사회의 각계각층에 인재들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용사와 전사와 재판관과 선지자와 복술자와 장로와 오십부장과 귀인과 모사와 공교한 장인과 능란한 요술자를 그리 하실 것이며”(2-3). ‘그리하신다는 것은 제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군대에 가도 군인이 없고, 음식점에 가도 주방장이 없으며, 법원에 가도 재판관이 없고, 교회에 가도 목사님이 없습니다. 사회 각계각층의 훈련된 지도자가 모두 사라져버렸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유다를 침공할 때에 저가 또 예루살렘의 모든 백성과 모든 방백과 모든 용사 합 일만명과 모든 공장과 대장장이를 사로잡아 가매 빈천한 자 외에는 그 땅에 남은 자가 없었더라”(왕하 24:14)고 기록되었습니다.

경제적 혼란이 오고 사회의 인재들이 모두 사라지자 정치질서에도 혼란이 왔습니다. “그가 또 아이들로 그들의 방백을 삼으시며 적자들로 그들을 다스리게 하시리니”(4). 적자란 아주 어린 아기를 뜻합니다. 어린 아이들이 백성을 다스리게 되었으니 이것이 바로 정치질서의 혼란입니다. 본문 12절 말씀에도 내 백성을 학대하는 자는 아이요 관할하는 자는 부녀라 나의 백성이여 너의 인도자가 너를 유혹하여 너의 다닐 길을 훼파하느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아이나 부녀는 그 분야에 전문지식이 없고 경험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통치자가 되면 다닐 길을 훼파할 뿐만 아니라 백성들을 엉뚱한 길로 인도합니다. 또한 이들은 백성들의 사이를 이간합니다. “백성이 서로 학대하며 각기 이웃을 잔해하며 아이가 노인에게, 비천한 자가 존귀한 자에게 교만할 것이며”(5). 백성들이 서로 학대하고 잔해합니다. 계층과 세대 사이에 이간현상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통치자들은 자격도 의심스럽습니다. “혹시 사람이 그 아비의 집에서 그 형제를 붙잡고 말하기를 너는 의복이 오히려 있으니 우리 관장이 되어 이 멸망을 네 수하에 두라 할 것이면”(6)이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의복이 있다는 이유로, 양복 한 벌이 있다는 이유로 관장이 되었다면 그 통치자의 자격이란 보나 마나일 것입니다.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 통치자가 된 사람들에게는 당연히 책임감도 없고 해결책도 없습니다. “그 날에 그가 소리를 높여 이르기를 나는 고치는 자가 되지 않겠노라 내 집에는 양식도 없고 의복도 없으니 너희는 나로 백성의 관장을 삼지말라 하리라”(7). 지금은 멸망의 때요, 좋은 때가 아니니 관장을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책임성이 없는 태도입니다. 공부를 많이 하거나 지위가 높고 돈이 많은 사람일수록 고귀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이를 불어로 노블리스 오블리제라고 합니다. 지위가 높을수록 사회적인 책임을 많이 감당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책임과 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있음이 사회가 혼란해진 증거입니다.

이와 같은 사회적 혼란에도 불구하고 유다에는 사치풍조까지 만연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또 말씀하시되 시온의 딸들이 교만하여 늘인 목, 정을 통하는 눈으로 다니며 아기죽거려 행하며 발로는 쟁쟁한 소리를 낸다 하시도다”(16). 예루살렘의 여자들이 교만하여 늘인 목을 하고 다닙니다. ‘늘인 목은 목을 길게 빼서 머리를 곧바로 세운 것을 일컫는 말로 교만한 자세를 가리킵니다. 또한 정을 통하는 눈으로 다니고 아기죽거려 행합니다. ‘아기죽거린다는 말은 보폭은 짧지만 빠르고 교태가 섞인 걸음걸이를 말합니다. 뿐만 아니라 발로는 쟁쟁한 소리를 냅니다. 온갖 장신구를 걸치고 사치스럽게 행보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사야가 예언하던 시대의 사회적 혼란입니다. 경제적 혼란, 사회적 혼란, 정치적 혼란, 그리고 문화적 혼란입니다. 이러한 혼란에 대한 해결책도 없습니다. 해결책이 없기 때문에 8절의 말씀처럼 결국 예루살렘이 멸망하였고 유다가 엎드러졌습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유다의 멸망이 과거시제로 기록되어 있지만 영어성경에는 Jerusalem staggers, Judah is falling(예루살렘은 비틀거리며 유다는 떨어지고 있는 중이다) 현재 시제 진행형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2. 혼란의 원인

 

이 혼란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이사야는 혼란의 원인에 대해 정확하게 분석하였습니다. “예루살렘이 멸망하였고 유다가 엎드러졌음은 그들의 언어와 행위가 여호와를 거스려서 그 영광의 눈을 촉범하였음이라 그들의 안색이 스스로 증거하며 그 죄를 발표하고 숨기지 아니함이 소돔과 같으니 그들의 영혼에 화가 있을찐저 그들이 재앙을 자취하였도다”(8-9). 아하스와 유다 백성들의 언어와 행위가 하나님의 영광의 눈을 촉범했기 때문에 재앙과 혼란이 오게 되었습니다. 세상 국가가 하나님의 나라를 거역하고 대적한 것입니다.

게다가 이들에게는 죄의식마저도 없었기 때문에 죄를 숨기지 않고 발표하였습니다. 마치 동성연애자들이 커밍아웃coming out 하는 것처럼 죄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떳떳하게 발표하였습니다. 방대하게 악을 행하면서도 뻔뻔스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의 눈은 이들의 언어와 행위를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변론하러 일어나시며 백성들을 심판하려고”(13) 일어나셨습니다. “악인에게는 화가 있으리니 화가 있을 것은 그 손으로 행한대로 보응을 받을 것임이니라”(11). 하나님은 장로와 방백들을 국문하고, 사치하는 여자들의 사치품을 제하시며, 장정과 용사들이 전란에 망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이 예언대로 유다는 주전 587년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 의해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그 때에 썩은 냄새가 향을 대신하고 노끈이 띠를 대신하고 대머리가 숱한 머리털을 대신하고 굵은 베옷이 화려한 옷을 대신하고 자자한 흔적이 고운 얼굴을 대신할 것이며”(24). 24절에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가 대신하고입니다. 전에는 향이 좋은 향수를 뿌리고 다녔는데 이제는 썩은 냄새가 향기를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전에는 아름다운 머리띠를 둘렀는데 이제는 죽은 사람이 애곡할 때 두르는 노끈을 갖게 되었습니다. 전에는 화려한 옷을 입고 다녔는데, 이제는 굵은 베옷을 입게 되었습니다. 전에는 고운 얼굴이었는데 이제는 얼굴에 온갖 흉터와 상처만 남게 되었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세상 국가의 통치자들과 백성들의 언어와 행위가 하나님의 영광의 눈을 촉범했기 때문입니다.

 

세상 국가는 하나님의 나라가 번창하는 모판입니다. 대한민국이라고 하는 세상 국가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성장하고 확장하며 완성된 나라로 나아갑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이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신 이후에 또 다시 구원의 기회가 있다는 주장은 이단 사설입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면 구원의 문이 닫히고,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됩니다. 하나님은 세상 국가가 모두 하나님의 나라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또한 세상 국가 모두를 하나님의 나라로 바꿀 계획도 갖고 있지 않으십니다. 그저 세상 국가가 평안하게 먹고 사는 가운데 하나님의 교회가 성장하기를 원하십니다. 세상 국가는 하나님의 나라를 보호하고 육성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단지 하나님의 나라를 대적하지 않으면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대적하고 반역하면 그 결과는 이사야서 3장에 기록된 대로 혼란과 멸망chaos and destruction 뿐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세상의 국가가 부딪히면 세상의 국가가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망하는 법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13:38). 하나님은 세상 국가 속에 악한 자들이 살아도 은혜를 주십니다. 악한 자들도 동일한 햇빛과 비를 누리며 건강하게 살아갑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일반은혜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대한민국에 사는 불신자들을 모두 뽑아내신다면 세상 국가는 존재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학교는 어떻게 유지되고, 정치와 경제가 어떻게 유지될 수 있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악한 자들, 불신자들과 같은 가라지도 뽑지 않고 내버려 두시는 것입니다. 그들을 뽑지 않는 이유는 알곡을 보호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기 전에는 하나님의 백성과 불신자들이 공존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어떤 분이 대한민국의 통치권자가 되든지 바라는 것이 한 가지가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백성을 대항하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통치권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거역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대항하면 이 사회에는 혼란이 찾아오고 결국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뿐만 아니라 온 국가의 국민들이 피해를 보게 될 것입니다. 국가가 교회를 육성하기 위해 애쓸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대항하거나 핍박하지 않으면 됩니다. 교회를 핍박하는 인터넷 매체, 언론들도 조심해야 합니다. 교회를 이간시켜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항하지 않고 공조할 때, 하나님께서는 대한민국을 축복하시고 하나님의 나라가 커가는 아름다운 모판으로 가꾸어 가실 것입니다. 작년 한 해 동안 우리는 여러 가지 기도제목을 가지고 국가를 위해 오랜 시간 기도했습니다. 2007년에도 우리는 국가를 위한 안타까운 마음을 품고 대한민국이 평안하기를 함께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3. 하나님의 위로

 

세상의 국가와 백성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거역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유다를 심판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런 심판 중에도 하나님께서는 위로를 잊지 않으셨습니다. “너희는 의인에게 복이 있으리라 말하라 그들은 그 행위의 열매를 먹을 것임이요”(10). 세상 국가가 망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망하지는 않습니다. 오직 의인에게는 복이 있고, 의인은 그 행위의 열매를 먹게 될 것입니다. 부패하고 타락한 유다 왕국에도 참된 믿음을 가지고 사는 남은 자들the remnant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소수였지만, 의인으로 인정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사회가 전체적으로 부패하고 악이 횡행했기 때문에 소수의 의인들이 아무리 외치고 행동했어도 유다는 결국 멸망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의 눈은 여전히 의인들을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이들은 하나님 나라의 참된 백성들이었습니다.

세상의 국가가 멸망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나라는 계속해서 성장하고 결국 완성될 것입니다. 이러한 사상은 이미 주후 400년경에 아프리카 히포에서 목회했던 유명한 어거스틴의 신국론city of God에서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강한 국가였던 로마는 망했습니다. 서로마는 476년 게르만 족에 의해, 동로마는 1453년 터키족에 의해 멸망당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멈추지 않고 계속 성장했고, 지금도 성장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국권은 어느 누구에게도 이양되지 않습니다. 이 국권은 하나님께서 굳건히 붙잡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없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영적인 나라이며 영원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통치자는 위대하신 하나님이시며, 그 나라의 백성들은 순수한 믿음을 가진 성도들입니다. 우리가 충성하며 살아야 할 나라는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의인들에게도 대신하시는축복을 주십니다.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61:3).

 

결 론

 

아무리 세상의 국가가 혼란스럽고 근심이 온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의인들을 지키고 축복하십니다. 2007년에는 대한민국이라고 하는 세상 국가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리석게 대적하는 일이 없도록 함께 기도해야하겠습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대통령을 위해 기도합니다. 설령 대통령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국민들의 평안한 삶을 위해 바른 통치를 할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세상의 국가가 하나님을 대적하면 혼란과 멸망이 오고 그 피해는 하나님의 백성들뿐만 아니라 세상 국가의 국민들도 함께 입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 번영을 위해서라도 이 국가를 위해 함께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 한국의 기독교는 너무 이기주의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 나의 축복, 내 가정의 축복만을 생각하면서 사회를 위한 관심을 놓치고 있습니다. 사회가 어려워지면 하나님의 백성들도 함께 어려움을 겪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사회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위정자들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지 않도록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2006년에 남은 자the remnant로서 믿음의 삶을 살았습니다. 오는 2007년에도 우리는 믿음으로 사는 남은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세상 국가가 번영하도록 함께 기도할 뿐만 아니라 그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가 번영하도록 더욱 기도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설령 세상 국가의 통치자들과 백성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대적해서 혼란과 어려움이 온다고 할지라도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인들은 하나님이 위로와 축복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 국가의 번영과 환란에 관계없이 우리는 늘 의인으로서, 소수의 남은자로서,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삶은 축복으로 넘쳐나고 우리는 행위의 열매를 먹게 될 것입니다. 세상 국가 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믿음을 지키며 살아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6417일 총회 기도의 날 설교

 

기도의 능력을 회복합시다

 

성경 본문 이사야 37:14-20

찬송 361(기도하는 이 시간), 368(주 예수여 은혜를)

 

 

우리 고신대학의 설립자요 고신교회의 지도자이신 고 한상동 목사님은 신학교에서 설교할 때 자주 "자기가 죽어야 합니다. 자기가 죽어야 주님이 영광을 받으시고, 자기가 죽어야 교회가 삽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고신정신은 자기를 죽이는 정신입니다. 자기를 해체하고 자기를 부정하는 정신입니다. 19469월에 고려신학교를 중심으로 회개운동, 진리운동을 일으켰습니다. 우리 고신은 나라와 민족이 어려울 때마다 교단이 위기를 맞이할 때 마다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고신의 온 교회가 기도할 때 그때마다 하나님은 긍휼과 자비로 응답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우리의 기도에 응답 주셨습니다. 지금 우리 한국교회는 어느 때 보다 기도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정치적으로 혼란스럽고 경제적으로 위기를 당한 이 나라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북한의 계속적인 위협과 도발이 억제되고 평화적인 통일을 이룰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도전받는 한국교회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세상의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한 한국교회의 회복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안티 기독교 세력의 도전, 이슬람 세력의 도전, 동성애 차별주의 도전과 세속화의 도전과 이단의 끊임없는 도전을 극복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고신 교회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마지막 시대에 우리 고신 교회의 모든 지도자들과 성도들이 겸손히 하나님 앞에서 말씀대로 바로 서고 오직 하나님 나라와 영광을 위하여 겸손히 섬기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고신대학교 고려신학대학원 복음병원과 총회 산하 모든 기관들이 주의 뜻을 이루어가며 교단과 한국교회에 유익을 주며 신실하고 충성스런 목회자와 평신도 지도자를 양성하며 많은 영혼들을 치유하며 세상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기관들이 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고신 교회가 먼저 하나님 앞에 겸손히 엎드려 기도하는 운동에 앞장서야 합니다. 기도할 때 역사하시는 기도의 능력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고신 총회는 새해 들어서 기도 운동에 힘을 모으기로 결정하고 지난 118() 대구 성동교회에서 전심으로 하나님께 돌아가자’(삼상 7:3)라는 주제로 총회 기도의 날행사를 개최했습니다. 이 날 총회 임원을 비롯해, 각 노회 임원, 총회상임위원회 임원, 총회특별위원회 임원, 법인 이사회 임원, 총회산하 6개 연합기관(전국장로회연합회, 전국남전도회연합회, 전국여전도회연합회, 전국기독청장년연합회, 전국학생신앙운동, 전국주일학교연합) 임원 등이 참석하여 교단과 교회의 회개운동, 기도운동과 성령의 새 역사로 영적회복이 일어날 수 있도록’, ‘개척교회운동과 복음전도운동이 교회와 교단에 강하게 일어나도록’, ‘교단과 교회의 개혁운동이 일어날 수 있도록’, ‘교회의 성장과 교단 산하 기관들의 부흥과 성장을 위해라는 제목으로 각각 기도했습니다. 특히 학교법인 고려학원 등 총회 산하 17개 기관들의 기도제목을 공유하면서 함께 전심으로 기도했습니다. 앞으로 4월 노회에서 노회원들이 합심 기도를 하고, 오늘 417일 주일은 고신의 전국교회가 함께 기도하는 날로 그리고 5월에는 총회 산하 모든 기관들이 기도의 시간을 정해서 기도를 하고 기도의 대미를 장식하는 하이라이트는 오는 628일에는 전국교회가 김해 중앙교회당에 함께 모여서 함께 기도하기로 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금번 기도운동을 통해서 기도의 능력을 회복해야겠습니다. 우리는 기도생활을 다시 회복함으로 하나님의 크신 능력과 은혜를 체험하면서 주님을 더 가까이 하고 주님을 사랑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히스기야 왕은 놀라운 기도의 응답을 받았습니다. 자신과 가족과 교회를 구원하는 기도의 응답입니다. 유다 왕 히스기야는 당대 세계 최대의 강국 앗수르 왕 산헤립이 대군을 이끌고 유다를 침공해 왔습니다. 이미 북쪽 이스라엘은 앗수르에게 멸망을 당했습니다. 남쪽 유다의 여러 성읍들도 앗수르의 손에 들어갔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유다 백성들은 두려워 떨었습니다. 앗수르 왕 산헤립은 자기 부하 랍사게를 보내어 예루살렘 성문 앞에 서서 크게 고함을 지르면서 항복을 종용했습니다. 또 앗수르 왕 산헤립은 자기 부하를 시켜서 히스기야 왕에게 항복하라는 협박 편지를 보냈습니다. 항복하지 않고 대항하면 잔인하게 모조리 짓밟아 버리겠다는 것입니다. 이 절박한 상황에서 히스기야는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놀라운 응답으로 화답하셨습니다. 적의 대군을 다 물리치고 자신과 자신의 가족과 나라를 구원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교회적으로 위기적인 상황에 처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히스기야처럼 기도하여 응답받는 기도의 능력을 회복하는 성도로 살아갑시다.

 

첫째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기도해야 합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했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앗수르 왕 산헤립의 협박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그와 맞서 싸우겠다고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을 강구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오직 하나님만이 이 나라에 닥친 국난을 해결해 주실 분임을 믿고 하나님의 전에 올라가 기도했습니다.

14 히스기야가 그 사자들의 손에서 글을 받아 보고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서 그 글을 여호와 앞에 펴 놓고 15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16 그룹 사이에 계신 이스라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는 천하 만국에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라 주께서 천지를 만드셨나이다 17 여호와여 귀를 기울여 들으시옵소서 여호와여 눈을 뜨고 보시옵소서 산헤립이 사람을 보내어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훼방한 모든 말을 들으시옵소서

히스기야는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면서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며 성전에 올라가 기도했습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했습니다. 앗수르의 왕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신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18 여호와여 앗수르 왕들이 과연 열국과 그들의 땅을 황폐하게 하였고 19 그들의 신들을 불에 던졌사오나 그들은 신이 아니라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일 뿐이요 나무와 돌이라 그러므로 멸망을 당하였나이다.

히스기야는 앗수르의 왕들이 많은 나라들을 정복하고 폐허를 만들어 버렸고 그들이 섬기는 신의 형상들을 다 불에 던져 파괴해 버린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정복하는 나라의 사람들이 섬기는 신들을 불에 던졌는데 그것은 신이 아니고 사람들이 나무와 돌로 만든 우상에 불과한 것들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히스기야는 앗수르의 손에서 구원해 주실 분은 참신 살아계신 능력의 하나님뿐이심을 고백하고 하나님만이 우리의 구원자이심을 천하 만민이 알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히스기야는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만 믿었습니다.

20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이제 우리를 그의 손에서 구원하사 천하만국이 주 만이 여호와이신 줄을 알게 하옵소서 하니라.

히스기야는 오직 하나님의 능력만 믿고 나아가 기도했습니다. 히스기야는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우리 모든 인생 개개인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었습니다. 세상의 역사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었습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성전에 올라가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응답받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도 기도할 때 전능하신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는 믿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의심하지 말고 믿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응답해 주실 줄로 믿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기도하면 우리의 어려운 문제를 해결 해 주실 줄 믿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가장 선하신 방법으로 반드시 응답해 주신다고 믿고 기도해야 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하나님께서 어떠한 방법으로든 좋게 응답해 주실 줄 믿고 기도해야 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믿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11: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

성도 여러분, 우리는 히스기야처럼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지 말고 가장 선하게 응답해 주실줄 믿고 기도하여 응답을 받는 기도를 회복하는 성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둘째 모든 일에 먼저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일어나는 어려운 문제들 중요한 문제들을 가지고 먼저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을 구해야 합니다. 히스기야는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먼저 그 문제를 가지고 성전에 올라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14 히스기야가 그 사자들의 손에서 글을 받아 보고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서 그 글을 여호와 앞에 펴 놓고 17 여호와여 귀를 기울여 들으시옵소서 여호와여 눈을 뜨고 보시옵소서 산헤립이 사람을 보내어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훼방한 모든 말을 들으시옵소서.

히스기야는 먼저 하나님의 전을 찾아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다 아뢰었습니다. 우리도 어려운 문제가 생겼을 때 먼저 하나님께 아뢰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 가지고 와서 아뢰어야 합니다. 히스기야는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기도로서 모든 것을 해결했습니다.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히스기야는 성전에 올라가 하나님 앞에 나와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기도에 응답해 주시어 나라를 구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어려움을 당했을 때 하나님 앞에 기도로 도움을 구했습니다. 그는 병들어 죽게 되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선지자 이사야가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때 히스기야는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하나님께 간절히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전심전력을 다하여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기도에 즉각 응답하셨습니다. 히스기야에게 죽음을 선포하고 나가는 선지자 이사야가 성읍 가운데 이르기도 전에 응답해 주셨습니다. “너는 돌아가 히스기야에게 말하라 내가 너의 눈물의 기도를 보았고 들었다. 네가 사흘 만에 일어난 성전에 올라갈 것이요 15년을 더 살 것이다하나님은 히스기야의 기도에 바로 응답하셨습니다. 죽을병에서 사흘 만에 일으켜주시고 15년의 생명을 연장시켜 주셨습니다. 즉각적인 응답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도 우리의 모든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께 의논하고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개인의 문제도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자녀문제도 하나님께 먼저 기도해야 합니다. 가정 문제도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직장 문제도 사업 문제도 하나님께 먼저 기도해야 합니다. 나라와 민족의 문제도 하나님께 기도하고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문제들 크고 작은 일들, 어려운 문제, 중요한 문제를 들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며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의논하기 전에 하나님께 먼저 기도해야 합니다. 내가 무슨 계획을 세우고 대책을 만들기 전에 하나님께 먼저 아뢰고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먼저 구해야 합니다. 모든 문제를 다 의논하고 아뢰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권면합니다.

4: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여기서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라는 말은 '염려를 중단하라'는 뜻입니다. 이는 당면한 문제에 대해서 걱정하거나 초조해 하거나 불필요한 관심을 쏟지 말라는 말입니다. 오히려 어려운 문제들이 생길 때 먼저 기도하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 기도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각과 이해를 초월한 방법으로 우리에게 응답을 해 주십니다. 그 결과 마음에 평화를 주십니다. 우리가 모든 일을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지켜주시어 모든 근심과 실망으로부터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십니다. 우리는 하루의 첫 시간을 매일 새벽에 교회 나와서 전능하신 하나님께 모든 문제를 다 맡기고 기도로 도움을 구하여 많은 응답을 받는 역사가 일어나길 기원합니다. 우리는 24시간 새벽 낮 저녁 밤 언제든지 기도를 생활화 하는 성도들, 다니엘처럼 하루 세 번 시간을 정해놓고 규칙적으로 기도하여 많은 은혜를 받고 기도의 응답을 풍성히 받는 기도회복의 능력을 체험하는 성도들이 많아지길 기원합니다.

 

세째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히스기야의 기도는 바로 응답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위력을 보여주셨습니다.

36 여호와의 사자가 나가서 앗수르 진중에서 십팔만 오천인을 쳤으므로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본즉 시체뿐이라.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기도에 즉각 응답하시어 그 날 밤 앗수르 군대 185천명을 죽여 버리셨습니다. 큰 충격을 받고 산헤립은 고국으로 도망하고 말았습니다. 185천명을 하루 밤 사이에 죽여 버렸다는 것은 너무도 놀라운 기적입니다.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즉각적으로 응답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만이 보여줄 수 있는 위대한 능력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모욕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협박한 앗수스 왕 산헤립도 심판하셨습니다.

37 이에 앗수르의 산헤립 왕이 떠나 돌아가서 니느웨에 거주하더니 38 자기 신 니스록의 신전에서 경배할 때에 그의 아들 아드람멜렉과 사레셀이 그를 칼로 죽이고 아라랏 땅으로 도망하였으므로 그의 아들 에살핫돈이 이어 왕이 되니라.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기도에 즉각 응답하시어 185천명의 대군을 하룻밤 사이에 죽이시고 앗수르 왕 역시 자기 나라 니느웨에 가서 그의 신전에서 그의 신에게 경배할 때에 그의 아들들이 그를 암살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세우신 종 히스기야 왕을 모독 하고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협박하고 모독한 죄에 대한 심판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하나님의 이름을 경멸하고 그가 세우신 종을 미워하고 그의 택하신 백성을 괴롭힌 사람을 죄 없다하지 않으시고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역사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교회와 성도들을 핍박한 모든 정권 모든 나라들을 다 심판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는 자들을 반드시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기도하면 우리의 모든 기도를 들으시고 놀라우신 방법으로 응답하십니다. 크고 작은 모든 문제를 하나님 앞에 아뢰면 우리 인간의 지각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방법으로 응답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면 첫째 하늘에 대기권을 넘고, 둘째 하늘인 천체를 넘어서, 셋째 하늘인 하나님의 보좌에 바로 도달합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작은 신음 소리도 다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기도생활을 회복해야 합니다. 공식적으로 5만 번의 기도 응답을 받았다고 하는 고아의 아버지라 불리는 조지 뮬러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기도를 시작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바르게 기도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기도를 쉬지 않고 계속해서 하는 것이다." 기도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기도에는 응답이 있습니다. 기도의 역사를 회복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어려움을 당했을 때 하나님 먼저 나와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크고 작은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 먼저 가지고 나와서 기도하여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 하나님의 방법으로 응답받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 기도를 생활화여 응답받는 기도의 능력을 회복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 합심하여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한국교회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우리 고신 교회를 위하여 믿음으로 기도하여 응답받는 성도들이 다 되시길 기원합니다.

 

 

 

 

 

 

* 총회홈페이지(kosin.org) 행정지원실 - 총회자료실에서 한글파일 다운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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